허택양을 감옥에 보낸 심유진은 한시름 놓았다.그러나 그녀가 가장 짜증나는 것은 블루항공의 현재 위기였다.여러 해 동안 합작해 온 고객들이 하나같이 모어로 갔기 때문에, 그들이 지금 가장 해야 할 일은 바로 새로운 고객을 끌어들여 회사의 영업액을 안정하개 유지하는 것이었다.중소형 고객을 끌어들이는 건 전문적인 부서가 책임지지만, 더 높은 고객을 끌어드리는 건 회사 고위층의 인맥에 의존해야 했다.육윤엽이 업무중심을 대한민국으로 옮기려면 그곳의 대기업들과 더욱 밀접히 연락하고 합작을 달성해야 했으나 유럽에서 처럼 자연스럽게 섞이지 못할 뿐만아니라 국내에 큰 규모의 항공회사도 적지 않았기에 굳이 그와 합작할 필요가 없었다.지금 바로 날아가 고객들을 직접 만나 성의를 보여주고 싶었지만 국내의 상황 때문에 김욱은 그를 차마 보낼 수 없었다. 마지막에 상의한 결과, 결국 김욱이 심유진과 함께 한번 다녀오는 것이었다.김욱은 블루항공의 2인자이고 심유진도 '블루항공 공주님' 이니 둘이 함께 가는 것도 고객들의 체면을 세워주는 셈이었다.**심유진은 집에 돌아와 허태준에게 대한민국에 출장을 다녀와야 한다고 알려줬다.허태준은 두말없이 캐리어를 들고와 짐을 쌌다."마침 제 부모님도 저더러 돌아오라고 하셨어요." 그가 당당하게 말했다."우리 둘 다 가면 별이는 어떡해요?" 심유진이 걱정스럽게 물었다.만약 하은설이 사고가 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별이를 맡겼을 것이다. 하지만 하은설은 지금 자기도 케어하지 못했기에 별이까지 맡기면... 그 결과는 참담할게 뻔했다. 그녀는 아버지 쪽에 맡길 생각은 아예 없었다.별이가 그녀의 아버지에게 오만한 돼지로 길러질 까봐 겁나서였다.허태준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별이를 불러와 진지하게 아이의 의견을 물었다. "아빠랑 엄마가 일이 있어서 대한민국에 가봐야 해. 며칠 후에는 돌아올 거야. 남아서 이모나 외할아버지랑 함께 있고 싶어, 아니면 우리랑 함께 가고 싶어?"별이는 신중하게 고민한 끝에 매우 진지하게
허태준은 오히려 걱정하지 않았다.심유진 보다 그의 부모님과 대처하는게 더 쉬울테니까.**그러나 부모님 보다 먼저 마주해야 할 사람이 있었다.공항.김욱은 심유진의 뒤를 따라 차에서 내리는 허태준과 별이를 보고 바로 얼굴을 굳혔다."왜 다 데리고 온 거야?" 김욱이 물었다. 말투가 좋지 않았다. "심유진, 우리가 대한민국으로 돌아가는 건 비지니스를 하러 가는 거지 여행을 가는게 아니야.""아니..." 그에게 말을 들은 심유진은 잘못한 일이 없어도 찔렸다. "그는-" 그녀는 허태준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침 처리할 일이 있어서 귀국해야 하고, 별이는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데리고 온 거야. 경주에 도착한 다음 갈라질 거야, 절대 일에 지장 없어." 그는 김욱에게 장담했다.김욱은 여전히 불만스러웠지만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없었다.대한민국에 전염병이 돌고 있기에 유럽에서 경주로 날아가는 비행기에는 사람이 매우 적었다. 큰 비즈니스석엔 오직 그들 네 명 뿐이었다.그러나 덕분에 감염될 위험도 적었고 비행기 안에서 시시각각 마스크를 끼고 밥도, 물도 못 마실 필요도 없었다.비행기 안에서 심유진과 김욱은 모두 노트북을 켜고 합작회사의 자료를 보면서 어떤 방안을 내놓을지 토론했다.허태준은 별이와 함께 그들과 통로를 사이에 두고 앉아 있었다.그는 별이에게 영화를 틀어주고 게임을 가르쳤고, 밤에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별이를 잠 재웠다.별이가 겨우 잠이 들자 허태준도 화장실을 갈 수 있었다.김욱은 시선을 노트북 화면에서 허태준의 뒷모습으로 옮긴 뒤, 생각에 잠긴 듯 입을 열었다. "별이를 잘 대해주긴 하네."심유진은 가볍게 "응." 이라고 대답한 뒤 감정을 숨기려고 눈을 깔았다. '친자식인데, 나쁠 수 있나.'**자고 일어나자 비행기는 이미 경주 공항에 착륙해 있었다.공항 문을 나서자마자 김욱은 전화로 합작 측이 파견한 운전기사에게 연락했다."김 대표님? 유진 아가씨랑 그냥 나오시면 됩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손에 팻말을 들고 있어서 알
자신이 사람을 잘못 봤다는 것을 깨닫고, 중년 남자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허허허허, 죄송합니다, 루 대표님”그는 조심스럽게 사과하고 나서 화제를 돌렸다. “육 대표님, 당신들은 모두 제 차를 타고 갑니까, 아니면 어떻게 갑니까?”그가 말하는 “당신들”에는 심유진과 계속 붙어다니는 허태준과 별이가 포함되어 있다.김욱은 심유진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저와 미스 심뿐입니다.”“오오오, 네!”중년 남자가 먼저 나서서 그의 캐리어를 밀어주며 웃으며 말했다.“제 차가 밖에 주차돼 있어서 죄송하지만 루 대표님과 미스 심이 좀 따라오셔야겠어요.”“당신들은요?”심유진이 고개를 돌려 여형민에게 물었다.여형민은 뒤로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제 차는 지하 1층에 있습니다, 당신들과 같은 길이 아닙니다”심유진은 몸을 돌려 별이를 껴안고 뽀뽀를 한 뒤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버지 말 잘 들어야 돼, 엄마가 오늘 일하러 가야 해서 내일 다시 찾아갈게.”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심유진이 허태준을 바라보았다.그도 그녀를 보고 있었다.먹물처럼 까만 눈동자에 옅은 애틋함이 숨어 있다.“그럼......내일 뵐게요.”심유진이 말했다.“응.”허태준은 입술을 올리며,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내일 봬요.”**“어디 가?”차가 고속도로로 진입하고 여형민은 허태준에게 물었다.“나의 부모님 댁에 가.”허태준이 별이의 과자 봉지를 뜯어주며 대충 대답했다.“확실해?”백미러로 화목한 부자를 곁눈질한 여형민은 물었다. “확실해?”허태준은 그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왜?”“너 부모님에게 어떻게 설명할려고.” 여형민의 시선은 별이에게로 향했다.“부모님은 별이를 본적이 있고 별이가 심유진의 아들이라는 것도 알아.”-다만 별이가 그의 아들인 줄은 모른다.여형민은 아직 묻고 싶은 것이 많지만, 별이 앞에서 말하기가 불편했다.그래서 그는 입을 다물었다.**곧 허태준의 부모님 댁에 도착하자 여형민은 차 시속을 천천히 줄였다.“어....”그는 브레
그가 움직이지 않자, 허태준은 별이를 안고 앞좌석으로 가 그의 품속에 억지로 넣었다.“차 문을 잠그고, 그를 잘 보호해.” 이 말을 남기고, 허태준은 결연히 차에서 내렸다.“아이고—” 여형민은 막으려 했지만 한발 늦었다. 그는 허태준이 가는 것을 보았다. 걸음은 단호했고, 뒷모습은 길었다. “젠장!” 여형민은 짜증스럽게 욕을 하며 허태준이 지시한 대로 차 문을 잠갔다.“여삼촌, 우리 아빠가 뭐 하러 갔어요?” 별이가 그에게 물었다, 얼굴엔 걱정이 가득했다. 여형민은 허태준에게서 별이에게로 시선을 돌리고, 억지로 웃음을 짜냈다.“태준이... 아마 배가 아파서 이웃집에 화장실을 빌리러 간 것 같아.” 그는 극도로 어색한 변명을 했다. 별이는 “오” 하고 대답하고 고개를 숙이며 그의 품에 얌전히 안겼다. 믿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칼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갑자기 멈췄다.“드디어 얼굴을 내밀었구나!” “너 이 배신자야!”“내 택양을 돌려내!”여형민은 몸이 떨렸고, 불안한 시선을 뒤로 돌렸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손으로 별이의 귀를 막고, “곧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곧”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시끄러운 경찰 사이렌 소리가 멀리서부터 가까워졌다. 여형민은 점점 더 초조해졌고, 차에서 내려서 직접 상황을 살펴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는 할 수 없었다. 그에겐 자신의 임무가 있었다.십 몇 분이 더 지나고, 허태준의 모습이 마침내 후방 거울에 다시 나타났다. 여형민은 급히 창문을 내리고 물었다. “어떻게 됐어?”허태준은 “괜찮아.”라고 말했다. 목소리엔 이상한 점이 들리지 않았다.경찰 사이렌 소리는 서서히 멀어졌고, 여형민은 차를 허태준 집 앞으로 돌려놓았다. 허 둘째아주머니는 이미 없었다—아마 경찰에게 데려간 듯했다. 허태준이 초인종을 눌렀다, 집 안 사람이 조심스레 물었다. “누구세요?”허태준이 대답했다. “나야, 태준이.”큰 철문이 서서히 자동으로 열렸다. 허태준은 차창 너머로
별이로 인해 허태준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은 다 녹아버렸다.허태준의 아버지는 지체 없이 허태준의 어머니의 품에서 별이를 빼앗아 끌어안고 토닥토닥 해주며 기뻐하며 중얼거렸다. “아이고 이뻐라!”조손 세 사람의 화기애애한 모습이 보기 좋았지만 여형민이 신경 쓰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그는 허태준의 어머니에게 물었다. “아주머니, 태준이는요?”어머니는 손가락으로 웃층을 짚으며 말했다. “옷이 더러워졌다며 올라가서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고 온단다. 너도 쟤의 저 버릇을 알잖아”허태준의 결벽증은 허씨 집안 전체가 다 아는 일이다.“오.”여형민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별이야, 디저트 먹을래? 할머니가 빵이랑 에그 타르트를 구웠어.” 허태준의 어머니는 별이의 손을 잡아당기며 별이의 관심을 끌려고 시도했다.“너의 어머니도 맛있다고 한거야.”“디저트 먹고 할아버지랑 마당 구경 갈래? 할아버지가 키운 귀뚜라미를 보여 줄게! 정말 재밌어!” 허태준의 아버지도 질세라 말했다.여형민은 소파에 앉아 이 순간의 분위기가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허태준의 부모님은 별이가 허태준의 친아들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두 사람 모두 그를 마치 친손자처럼 대하는 것이 그는 매우 감개무량했다.-특히 허태준의 아버니는, 당시 허아리를 보고도 이렇게 활짝 웃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형민아, 너 혼자 여기 좀 앉아 있어, 응?” 허태준의 어머니는 별이를 끌고 식당으로 갔고, 아버지도 뒤따라갔다.여형민은 허씨 집안에서 '남'이라고 할 수 없다, 혼자 있는 것이 그들과 함께 있는 것보다 더 편안했다.핸드폰으로 e-메일을 뒤지며 기다린 지 30분 가까이 지나서야 허태준은 위층에서 내려왔다.허태준의 어머니의 말대로 그는 샤워를 하고, 머리카락이 완전히 마르지 않았다. 빳빳한 셔츠 양복에서 헐렁한 맨투맨 팬츠로 갈아입고 수수한 면 슬리퍼를 신은 모습은 집에서 아주 편안한 이미지였다.허소성은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천천히 그의 곁으로 걸어가서 물었다. “우리 부모님과 별이는?”
“무기징역?” 여형민은 눈을 찡그렸다. “그가 한 짓에 비해 너무 가볍네. 그의 손에는 사람의 목숨이 걸려있으니까!”허태서가 노인을 독살한 것은 허태서가 직접 인정한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 상황이 '고문에 의한 자백'의 의심이 있어, 허태준은 그 비디오를 증거로 제출하려 하지 않았다.“그가 감옥에 들어가면, 살든 죽든 그가 통제 하지 못한다.” 허태준이 말했다.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깊고 검은 눈동자는 살을 에는 듯 한 한기를 품고 있었다.감옥 안에는 중범죄자가 많고, 사소한 일로 싸움을 벌이는 이들이 많다. 그러다 잘못해 죄수를 죽이는 일도 드문 일이 아니다. 처리하는 데도 그리 까다롭지 않다. ——어차피 그들에게 인명 하나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 게다가 허씨 둘째 삼촌 가족 중에는 이미 두 명이 감옥에 들어갔다. 허씨 둘째 아주머니가 오늘 이 사건을 일으킴으로써, 아마도 감옥 밥을 먹게 될 가능성이 크다. 허태서의 가족은 이미 없어서 그의 죽음에 대해 추궁할 사람이 없으니, 이 일은 그냥 넘어갈 것이다. “그러니 이 기간 동안, 누군가 그를 잘 지켜보게 해서 다시 사고가 나지 않도록 해.”허태준은 자신에게 사고가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이 몇 년 동안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고, 할아버지의 훈련 덕분에 매번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었다. 그는 허태서가 담벼락을 넘어 심유진이나 별이에게 손을 댈가봐 걱정했다. 만약 허태서가 정말로 그둘을 겨냥한다면—— 허태준은 그를 감옥에 보내기 전에 직접 손에 죽여 버릴까 봐 걱정이었다.“알고 있어.” 여형민은 이미 허태서 옆에 사람을 두고 그의 모든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네가 날 도와서 할 일이 있어.” 허태준이 여형민을 바라보며 진심을 담은 표정을 지었다.“음?” 여형민이 몸을 곧게 펴고 앉았다. **여형민은 허태준의 집에서 잠시 앉아 있다가 떠났다. 허태준은 일어나 식당으로 갔다. 허태준의 어머니는 옆쪽 싱
“너 아직도 유진이랑 재혼 안 했니?”어머니는 의외라는 듯 말했다. “너 계속 거기로 다니면서 몇 주씩 있는 거 보면, 이미 그 사람 설득했을 줄 알았는데!”엄마의 눈빛은 조롱 섞인 듯했고, 말투도 농담하는 그런 식이었다. 허태준은 불편한 듯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이건 어머니와 아버지의 의견을 물어봐야 하는 거잖아요.” “아버지랑 내가 반대하면, 너는 유진이랑 재혼 안 할 거야?” 어머니는 반문했고, 눈빛은 명확했다. 허태준은 더욱 불편해졌다. 그는 빵을 만지며 그녀의 시선을 피했고, 자연스레 기세가 약해졌다. “그건 아니지만...”“그래, 그럼 언제 재혼할 계획이야?” 어머니는 손에 있던 일을 멈추고 그와 진지하게 대화하기 시작했다. “국내 상황이 좀 나아지면 이야기해보려고요.” 허태준은 빵 부스러기를 휴지로 손에서 닦아내며 말했다. “결혼식은 국내에서 하려고 합니다만, 이건 아직 유진이하고 상의 안 한 부분이에요.”“아직 상의 안 했어?” 어머니는 급해졌다. “혹시 이 일이 너 혼자 김칫국을 마신건 아니겠지?” 어머니에게 의심받는 것에 허태준은 내심 좀 서운했다. “어머니——” 그는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엄격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 그런 '강압적인' 짓 하면 안 돼, 경고하는데 유진이가 너와 결혼하는 걸 원하지 않으면, 절대로 네가 그녀랑 결혼하는 걸 허락하지 않을 거야!” 어머니는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녀가 동의했어요, 우리가 결혼식에 대해 논의할 시간이 아직 없었을 뿐이에요.” 허태준이 설명했다. 어머니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유진이는 정말 좋은 아이야, 나도 많이 좋아해." 그녀는 말하면서 허태준을 강하게 노려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유진이 어머니였다면, 절대로 그녀를 다시 너한테 시집보내지 않았을 거야.” 그녀가 그렇게 노골적으로 '반대'를 하는 바람에 허태준은 반박할 말이 없었다. “너 예전에...... 기억 못 하겠지만, 유진이한테 꽤 못됐었어.” 엄마의 말투도 전보다
“그래요?”그는 요동치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켰다.“저는 글쎄 잘 모르겠는데요.”“너야 당연히 모르지!”허 아주머니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네가 어렸을 때 사진을 언제 꺼내는 봤어? 너는 아마 네가 어렸을 때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지 못할 거야!”그녀의 말이 틀린 곳 하나 없었다.“아! 맞다.”허 아주머니는 문득 뭔가 생각났다. “유진이 이따가 일이 끝나면 온대?”“안 올 것 같은데요.”허태준은 풀이 잔뜩 죽어 말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 눈을 번쩍였다.“어머니께서 유진이한테 전화 해보실래요?”제 배로 낳은 아들이 무슨 수작인지 허 아주머니가 모를 리 없었다.마침 그녀도 심유진을 오랫동안 보지 못했기에 허태준의 부탁을 들어줬다.“저녁에 내가 전화하마. 유진이도 아직 일하고 있을 거야.”...하지만 허아주머니의 추측은 완전히 빗나갔다.기사님은 심유진과 김욱을 호텔까지 바래다준 후 떠났다. 기사님은 떠나면서 그들에게 말했다.“진 대표님께서 두 분보고 먼저 쉬라고 하셨습니다. 일 얘기는 두 분께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신 후 내일 다시 얘기하자 하셨습니다.”장거리 비행은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김욱은 자연스레 총지배인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호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심유진은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풀썩 걸터앉았다. 그녀는 허태준한테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전화기 너머 허태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일 다 봤어요?”“오늘 아직 고객님을 만나지 못했어요.”심유진은 느릿느릿하게 침대 머리에 기댔다. 별이는 괜찮은지 물어보려다가 문득 지난번 그녀가 허태준한테 관심을 주지 않았다면서 뾰루퉁해 했던것이 생각났다. 심유진은 하는 수 없이 말을 돌렸다.“태준 씨, 요즘 집에서 좀 어때요?”그녀의 딱딱한 어투를 허태준은 단번에 알아차렸다.그는 실소를 금치 못하면서 굳이 심유진한테 따지지 않았다.“괜찮아요.”허태준은 눈치 빠르게 물었다.“별이랑 통화할래요?”심유진은 휴대폰을 꼭 움켜쥐며 고심
하은설은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시간 없어, 빨리 가자! 너 기다리다 네 남편 목 빠지겠네!”심유진은 빨리 걷기 위해 두 손으로 얼른 웨딩드레스를 들어 올렸다.“응, 그래.”화창한 날씨에 황금빛 햇살이 꽃잎 사이로 레드카펫을 비추고 있었다.심유진은 아름다운 이곳에서 머물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질러 온실 문 앞까지 걸어왔다.온실 대문 앞에는 육윤엽이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은 별이의 손을 잡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별이는 심유진의 등장에 잡고 있던 육윤엽의 손을 떼고 그녀에게로 달려왔다.“엄마, 오늘 천사 같아요!”심유진도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웃었다.“고마워, 우리 별이!”오늘 결혼식의 화동인 별이는 정장 차림에 작은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고 앙증맞은 손에는 형형색색의 꽃잎이 들어있는 바구니가 들려있었다.온실 안에서 곧이어 결혼 행진곡이 울려 퍼졌고 육윤엽은 심유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가자.”심유진은 애써 웃고 있지만 눈물이 맺힌 육윤엽을 보고 갑자기 꼬끝이 찡해졌다.하은설은 그녀가 울려고 하자, 옆에서 한마디 했다.“참아, 울면 안 돼! 카메라가 돌고 있는데 화장 번지면 안 예쁘잖아.”심유진은 쏟아져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으면서 패딩 점퍼를 벗어 옆에 있던 스타일리스트에게 건넸고 육윤엽의 팔짱을 끼고 천천히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별이도 앞에 서서 두 사람의 보폭에 맞춰 걸어가면서 바구니 속의 꽃잎들을 한 웅큼씩 집어서 하늘로 흩뿌렸다.신부의 등장에 하객들은 잇달아 박수를 쳤고 심유진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허태준은 예식장 단상 앞에서 자신을 향해 한 발짝씩 걸어오는 심유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결혼식장이 크지 않은 탓에, 육윤엽과 심유진은 2분도 안 되어 예식장 단상 앞까지 걸어왔다.행복함에 싱글벙글하던 허태준은 육윤엽이 굳은 얼굴로 헛기침을 몇 번 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를 향해 공손히 인사했다.“아버님.”육윤엽은 심유진을 한 번
육운영과 김욱은 블루 항공이 설 연휴에도 쉬지 않은 탓에 경주에서 이틀을 보내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다만 심유진은 보름 정도 되는 설 연휴 중 절반 시간을 허씨 가문의 별장에서 가족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로 인해 많은 공공장소가 문을 닫은 상황이라 밖을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육운영과 김욱은 짧은 휴가가 끝난 뒤, 업무에 복귀했다.별이도 설 연휴가 끝난 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허태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별이의 유치원 픽업을 위해 일부러 허태준과 심유진이 사는 동네에 집까지 샀다.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지나, 블루 항공 경주 지사의 재건축도 이제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김욱은 몇 명의 핵심 직원들을 경주 지사 쪽으로 파견시켜 심유진과 함께 회사 초반 운영을 하도록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의 운영은 정상 궤도에 올랐고 일부 본사의 업무도 경주 지사 쪽으로 넘어왔다.회사가 눈코 뜰 새 바빠지자, 심유진은 5월 예정이었던 결혼식을 취소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허태준이 결혼식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을 알기에 바쁜 일정 속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서 디자이너들을 만나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면서 결혼식 준비를 했다....5월이 되자, 모두의 예상대로 코로나는 국내에서 유럽과 미국으로 퍼졌다.블루 항공은 다행히 코로나가 N시티에서 유행하기 전, 대부분의 부서를 이동한 상황이라 큰 타격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진성그룹과의 협업을 통해 국내의 여러 의료기기 공장을 설립하고 마스크 등 의료 물자를 전 세계로 운송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반면 모어 항공은 블루 항공과의 소송에서 패한 뒤, 입소문이 나쁘게 퍼져서 고객들을 블루 항공에 뺏긴 신세가 되었다.게다가 이번 사건의 주역이었던 마리아는 집에서 쫓겨났다는 소문까지 돌았다.모든 일이 잘 풀리는 중, 심유진과 허태준의 결혼식 날도 다가왔다.심유진은 결혼식 날이면 해방감이 들 줄 알았지만, 날이 다가올수록 기대감과 긴장감으로 잠을 설쳤다....YT 그룹이 부
허아주머니는 특별히 심유진을 위해 아침밥을 남겨두었다.심유진은 허아주머니의 정성에 감동했고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허태준과 별이는 그녀가 아침을 다 먹자,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고 때마침 허아주머니는 주방에서 만두가 가득 담긴 도시락통을 허태준에게 건넸다.“자, 이거 잊지 마.”“고맙습니다.”허태준은 심유진을 바라보며 물었다.“떠나도 될까요?”심유진은 어젯밤의 일로 토라져서 답도 하기 싫었지만, 허아주머니 앞에서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짧게 답했다.“네, 가죠.”그녀는 답을 하고 나서 별이의 손을 잡고는 허아주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대문을 나섰다.허태준도 귀여운 그녀의 행동에 웃음을 머금으며 두 사람을 뒤따랐다....허태준이 별이에게 미리 증조할아버지를 뵈러 간다고 말했고, 별이는 가는 내내 차 안에서 폭풍 질문을 던졌다.“증조할아버지는 왜 증조할아버지라고 부른 거예요?”“증조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아빠인 건가요?”“증조할아버지는 무서워요?”“증조할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만두를 먹을 수 있어요?”...허태준은 별이의 모든 질문에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대답했다.그동안 심유진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볼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허태준은 냉랭한 심유진의 태도에 어젯밤 자기의 행동이 과한 것 같아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하지만 허태준은 그녀가 거부할수록 점점 더 야만적으로 변하는 자기를 도저히 통제할 수 없었다.허태준은 어젯밤 생각에 몸이 반응해 오면서 또 피가 끓기 시작했다....허태준은 별이를 안고 묘지 입구에서 산 꽃다발을 무덤 앞에 놓았고, 몸을 굽혀 물티슈로 쌓인 먼지를 꼼꼼히 닦아냈다.“할아버지, 저 왔습니다.”심유진도 허태준의 할아버지를 보자, 화가 풀리는 느낌이었다.그녀는 별이와 함께 무덤을 향해 절을 세 번 올렸다.심유진은 사진 속의 자상한 노인을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할아버지, 저 기억하세요? 태준 씨 아내 심유진이에요.”그러고는 별이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심유진이 혼자 방에서 나오자, 사람들은 그녀에게 엄청난 질문 세례를 했다.“태준이는? 왜 같이 내려오지 않았어?”“아빠는 어디 있어요? 불꽃놀이 시켜준다고 저랑 약속했단 말이에요.”심유진은 방에서 나오면서 침착하게 둘러댔다.“샤워하고는 피곤하다고 일찍 잠들었어요.”어른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고 김욱만이 그녀를 몇 초 동안 주시했다.별이는 실망한 듯 입을 삐쭉거렸다.“아빠 미워! 오늘 같은 날 왜 이렇게 빨리 주무시는 거죠?”심유진은 그런 별이가 사랑스러운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피곤해서 일찍 잠들었어. 내일 아빠가 우리 별이랑 같이 불꽃놀이 해주실 거야, 그때까지 참을 수 있지?”그녀의 말이 끝나고 허태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세뱃돈을 심유진과 별이에게 건넸다.허아주머니는 두 사람을 보면서 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유진아,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심유진은 허아주머니에게 다가가더니 뜨겁게 포옹했다.“어머님, 고마워요.”허아주머니는 심유진의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그녀를 더욱 꽉 껴안았다.“우리 유진이는 너무 착해.”이어 육운엽과 김욱도 세뱃돈을 건넸고, 별이는 많은 세뱃돈을 받은 것에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늦은 시간 탓에 몇몇 어른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때마침 허아주버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늦었는데 다들 이만 들어가서 쉬지.”심유진도 별이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허태민, 너도 이제 자야지.”별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한 손에는 두툼한 돈봉투를 꼭 쥐고 다른 한 손은 심유진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심유진은 별이를 재운 뒤에도 허태준의 화가 아직 풀리지 않은 것 같아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방으로 향했다.다들 잠들었는지 온 집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고 심유진이 조심스레 방문을 열자, 그녀가 켜놓았던 무드등조차 꺼져 있어 칠흑같이 어두웠다.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 방안으로 끌어당겼고, 놀라서 비명을 지르려고 할 때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더니 발끝으
“새해 복 많이 받아요.”왜인지 심유진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그녀는 울먹거리며 말했다.“왜 그래요?”허태준은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어쩔 줄 몰랐다. 그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불꽃놀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요?”심유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완전 좋았어요!”“근데 왜 우는 거예요?”허태준은 그녀가 우는 게 싫었다.심유진이 울면 허태준도 덩달아 마음이 아팠다.“너무 감동적이어서요.”심유진은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훌쩍거렸다.“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새해를 보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사랑하는 사람...”허태준의 입꼬리가 점점 귀에 걸리더니 심유진의 허리를 더 꼭 껴안았다.“저도 사랑해요, 유진 씨.”그는 머리를 숙이고 심유진의 이마에 키스했다.심유진은 허태준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다급히 그를 밀어냈다.하지만 워낙 세게 껴안아 밀어 지지 않았다.“모두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어요.”심유진은 이성을 잃은 허태준을 일깨워 줬다.김욱은 그녀가 잠에서 깬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불꽃 쇼도 끝난 상황에 허태준과 위에 오래 무르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했다.심유진은 그 의심을 피할 수 있을 만큼 낯이 두껍지 못했다. 허태준은 그녀를 화나게 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것을 알기에 그녀를 놓아줬다.“잠시 후에 꼭 보충해야 해요.”허태준은 위협적으로 말했다.“어떻게 때울까요?”심유진은 웃음을 터뜨리면서 서둘러 내려가지 않았다.그녀는 까치발을 들고 허태준의 턱으로부터 그의 얼굴 곳곳에 키스했다.“이러면 돼요?”심유진은 허태준의 아랫입술을 깨물고 눈웃음치며 그를 유혹했다.“아니면 이렇게?”그녀는 허태준의 몸을 어루만지며 그를 달아오르게 했다.허태준의 검은 눈동자는 반짝 빛났고 몸에 뜨거운 피가 흘렀다.하지만 그는 꾹꾹 참으며 인내심 있게 심유진의 다음 유혹을 기다렸다.“우리... 스릴 넘치게 놀아 볼래요?”심유진은 허태준의 턱을 잡으며 그의 애간장을 태웠다.그녀는 마치 섹시한
설날에 모처럼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니 저녁이 되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들 모두 약주를 하자 허 아주머니는 육윤엽과 김욱을 모두 집에 못 가게 막았다.아침 일찍 일어나 쉴 새 없이 바빴던 심유진은 저녁이 되자 졸음이 쏟아졌다.허 아주머니는 피곤해하는 심유진을 발견하고 먼저 올라가서 쉬라고 했다.하지만 심유진은 주먹을 꽉 쥐며 졸음을 떨쳐내려 애썼다.“조금만 더 버텨볼게요.”심유진은 격식을 따지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새해 카운트 다운을 하기도 전에 잠에 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먼저 자고 싶지 않았다.올해 그녀는 더 이상 떠돌이 처지가 아닌 가족과 함께였기에 더욱 이 소중한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고 싶었다.허태준은 눈썹을 찌푸리며 그녀를 극구 말렸다.“먼저 올라가서 눈 붙이고 있어요.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기 전에 깨워줄게요.”허태준은 심유진이 무슨 마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마음이 아프고 미안해졌다.허태준이 말리자 나머지 사람들도 그녀를 말리기 시작했다.별이 마저도 심유진의 손을 힘껏 잡아당기며 잠을 권했다.결국 심유진은 그들의 의견을 꺾지 못하고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는 하품하며 침실로 향했다....“유진아! 심유진! 빨리 일어나! 12시야!”누군가 심유진의 뺨을 툭툭 치면서 깨웠다.심유진이 눈을 뜨자 눈앞에는 장난꾸러기처럼 웃는 김욱이 있었다.심유진은 김욱의 손을 치우고 그를 세게 때렸다.복수를 마친 심유진은 그제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왜 오빠가 날 깨우러 온 거야? 태준 씨는?”“아래층에 있어. 별이가 태준 씨를 놔주지 않아서 내가 올라왔지.”김욱은 방금 맞은 곳을 문지르며 투덜거렸다.“이럴 줄 알았으면 깨우지 않는 건데.”“오빠가 먼저 날 때렸잖아! 내 탓 하지 마!”심유진은 이불을 젖히고 몸을 일으켰다.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물었다.“지금 몇분이야?” 김욱은 휴대폰 화면을 켜고 말했다.“11시 59분이야. 이미 카운트 다운 시작됐어.”“이렇게 빨리?”조금만 잔줄 알
심유진은 생각을 되짚어보고는 문득 허태준이 유럽으로 갔었던 일이 떠올랐다.하지만 허태준은 허택양의 일을 처리하러 유럽으로 가는 거라 핑계를 댔었다.“허태준은 너보다도 경우가 있는 사람이었어.”육윤엽은 코웃음 치고는 투덜거리기 시작했다.“너는 참 결혼하기 전부터 남편 생각밖에 안 하네.”“아이참...”심유진은 헛웃음 지으며 이를 꼭 깨물었다.그녀는 이미 들킨 바에 모든 사실을 다 털어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사실, 저와 태준 씨 이혼한 적 없어요. 저 이미 6년 전에 태준 씨와 결혼 했었어요.”허태준은 이 사실을 육윤엽한테 말한 적 없었다.심유진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육윤엽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너희 둘...”육윤엽은 가슴을 쥐어 잡고 괴로워했다.심유진과 김욱은 급히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요? 심장이 아파요?”육윤엽은 심유진의 뒤통수를 공격한 후에야 표정이 온화해졌다.그의 손이 너무 매웠는지 심유진은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앞으로 또 이런 중요한 일을 숨겼다간 더 아프게 때릴 줄 알아.”육윤엽은 험상궂은 얼굴로 겁을 주었다.심유진은 뒤통수를 쥐어 잡으며 대답했다.“다시는 안 숨길게요!”허태준의 부모님은 육윤엽과 김욱을 반갑게 맞이했다. 두 사람이 별장에 들어서서부터 허 아주머니는 차를 따라주고 과일을 내오며 쉬지도 않고 대접했다.육윤엽은 젠틀하게 허태준의 부모님을 대했다. 아무래도 오는 길에 심유진을 실컷 욕한 덕분일 수 있다.게다가 육윤엽은 두 사람의 선물도 준비해 왔다.그는 허 아주버님한테 비싼 브랜드 시계를, 허 아주머니한테는 경매에서 낙찰받은 비싼 보석 세트를 선물로 줬다.두 사람은 한참 거절하다가 끝내 심유진의 설득에 못 이겨 선물을 받았다.양쪽 부모님은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이번에 여기에 온 것은 아이들과 같이 설을 보내고 싶어서 이기도 하지만 두 분과 결혼식에 대해 상의하려고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그들이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허태준과
심유진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육윤엽과 김욱을 데리러 가야 했다. 그녀는 저녁밥을 먹은 후 방으로 올라가 샤워하고 잘 준비를 했다.하지만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뒤척였지만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그때 허태준은 별이를 재우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방에 불이 아직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서 물었다.왜 아직도 안 자고 있어요?”심유진은 이불을 들춰 몸을 일으켰다.“저 지금 너무 걱정돼요.”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헝클어진 채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뭐가 걱정돼요?”허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내일 저의 아버지가 여기에 오시잖아요... 만약 어머니와 아버님과 트러블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죠?”심유진은 내일 육윤엽과 허태준의 부모님이 싸우기라도 할까 봐 생각만 해도 머리가 뻐근했다.“아버님은 현명하신 분이니 걱정하지 말아요.”허태준은 심유진을 다독였다.“아버님께서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눈치 보게 하는 분은 아니잖아요.”허태준의 말에 심유진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태준 씨가 아버지 눈치를 많이 보던데요?”허태준은 마른기침하며 핑계를 둘러댔다.“그것도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 거잖아요.”허태준은 이미 겁에 잔뜩 질려 육윤엽이 없어도 감히 그의 나쁜 말을 하지 못했다. 심유진은 이를 이미 알아차렸다.“아무래도 오빠한테 전화해서 신신당부해야겠어요.”그녀가 충전 케이블을 뽑자 휴재폰 충전이 중단되었다.허태준은 다급하게 그녀를 뜯어말렸다.“두 분 이미 잠에 드셨을 거예요. 할 말은 내일 아침에 데리러 갈 때 해도 늦지 않았어요.”심유진은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하긴. 그렇긴 하네요.”허태준은 심유진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주었다.“됐어요. 얼른 자요.”허태준은 방안의 불을 끄고 무드등 하나만 켜뒀다.“내일 할 일이 워낙 많아서 쪽잠을 잘 시간도 없을 거예요.”심유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태준을 쳐다봤다.그녀는 갑자기 장난꾸러기같이 웃었다.“저 잠 좀 재워주지 않을래요? 아무 이야기를 해
“네. 그럼 우리 먼저 가볼게요.”심유진은 들고 온 가방을 챙기고 허태준을 데리고 집을 떠났다.“내일 아침 제가 데리러 올게요. 설날이어서 택시가 잘 잡히지 않을 거예요.”육윤엽은 거절 대신 한가지 요구를 말했다.“그럼 너 혼자와.”심유진은 멈칫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육윤엽은 변하지 않았다.“알겠어요.”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저는 아버지가 다 받아들인 줄 알았어요.”현관문이 닫히자마자 심유진은 투덜거렸다.“아직도 태준 씨를 싫어하시는 거였어요.”허태준은 심유진의 손을 꼭 잡으며 미소를 띠었다.“우리 천천히 해요.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하죠.”허태준은 육윤엽이 하루아침에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그는 일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심유진의 입술은 삐죽 튀어나왔다.“뭐 아버지가 저를 막 대하는 것도 아니고 태준 씨가 괜찮다면 저도 괜찮아요.”허태준은 그런 심유진이 마냥 귀여웠다.“그럼 제가 마음이 급했다면 어쩔 생각이에요?”그는 고개를 숙이고 부드러운 눈길로 심유진을 놀렸다.“저는...”심유진은 육윤엽의 태도를 바꿀 방법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천천히 하죠. 천천히 해!”육윤엽과의 부녀 관계를 끊을 수도 없으니 그녀는 결국 자포자기하며 외쳤다....심유진과 허태준 별장으로 돌아오자 허 아주머니는 적잖게 놀란 동시에 조금 심술이 났다.“너희 둘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 왜 사돈이랑 더 같이 있어 주지 않고!”허 아주머니는 물어보면서 허태준을 탓했다.“사돈께서 멀리서 오셨는데 잘 모셔야 할 것 아니야!”심유진은 허태준의 편을 들어줬다.“태준 씨가 모시고 싶지 않아서 온 건 아니에요. 저의 아버지와 오빠가 오랜 비행으로 잠을 못 자서 많이 피곤해하셨어요. 대꾸할 맥도 없어서 저희를 내쫓으셨어요.”“아... 그랬구나.”육윤엽의 거친 성격을 잘 몰랐던 허 아주머니는 머쓱하게 웃었다.“그럼 어쩔 수 없지.”심유진과 허태준이 밖에 나갔다가 온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