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징역?” 여형민은 눈을 찡그렸다. “그가 한 짓에 비해 너무 가볍네. 그의 손에는 사람의 목숨이 걸려있으니까!”허태서가 노인을 독살한 것은 허태서가 직접 인정한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 상황이 '고문에 의한 자백'의 의심이 있어, 허태준은 그 비디오를 증거로 제출하려 하지 않았다.“그가 감옥에 들어가면, 살든 죽든 그가 통제 하지 못한다.” 허태준이 말했다.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깊고 검은 눈동자는 살을 에는 듯 한 한기를 품고 있었다.감옥 안에는 중범죄자가 많고, 사소한 일로 싸움을 벌이는 이들이 많다. 그러다 잘못해 죄수를 죽이는 일도 드문 일이 아니다. 처리하는 데도 그리 까다롭지 않다. ——어차피 그들에게 인명 하나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 게다가 허씨 둘째 삼촌 가족 중에는 이미 두 명이 감옥에 들어갔다. 허씨 둘째 아주머니가 오늘 이 사건을 일으킴으로써, 아마도 감옥 밥을 먹게 될 가능성이 크다. 허태서의 가족은 이미 없어서 그의 죽음에 대해 추궁할 사람이 없으니, 이 일은 그냥 넘어갈 것이다. “그러니 이 기간 동안, 누군가 그를 잘 지켜보게 해서 다시 사고가 나지 않도록 해.”허태준은 자신에게 사고가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이 몇 년 동안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고, 할아버지의 훈련 덕분에 매번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었다. 그는 허태서가 담벼락을 넘어 심유진이나 별이에게 손을 댈가봐 걱정했다. 만약 허태서가 정말로 그둘을 겨냥한다면—— 허태준은 그를 감옥에 보내기 전에 직접 손에 죽여 버릴까 봐 걱정이었다.“알고 있어.” 여형민은 이미 허태서 옆에 사람을 두고 그의 모든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네가 날 도와서 할 일이 있어.” 허태준이 여형민을 바라보며 진심을 담은 표정을 지었다.“음?” 여형민이 몸을 곧게 펴고 앉았다. **여형민은 허태준의 집에서 잠시 앉아 있다가 떠났다. 허태준은 일어나 식당으로 갔다. 허태준의 어머니는 옆쪽 싱
“너 아직도 유진이랑 재혼 안 했니?”어머니는 의외라는 듯 말했다. “너 계속 거기로 다니면서 몇 주씩 있는 거 보면, 이미 그 사람 설득했을 줄 알았는데!”엄마의 눈빛은 조롱 섞인 듯했고, 말투도 농담하는 그런 식이었다. 허태준은 불편한 듯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이건 어머니와 아버지의 의견을 물어봐야 하는 거잖아요.” “아버지랑 내가 반대하면, 너는 유진이랑 재혼 안 할 거야?” 어머니는 반문했고, 눈빛은 명확했다. 허태준은 더욱 불편해졌다. 그는 빵을 만지며 그녀의 시선을 피했고, 자연스레 기세가 약해졌다. “그건 아니지만...”“그래, 그럼 언제 재혼할 계획이야?” 어머니는 손에 있던 일을 멈추고 그와 진지하게 대화하기 시작했다. “국내 상황이 좀 나아지면 이야기해보려고요.” 허태준은 빵 부스러기를 휴지로 손에서 닦아내며 말했다. “결혼식은 국내에서 하려고 합니다만, 이건 아직 유진이하고 상의 안 한 부분이에요.”“아직 상의 안 했어?” 어머니는 급해졌다. “혹시 이 일이 너 혼자 김칫국을 마신건 아니겠지?” 어머니에게 의심받는 것에 허태준은 내심 좀 서운했다. “어머니——” 그는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엄격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 그런 '강압적인' 짓 하면 안 돼, 경고하는데 유진이가 너와 결혼하는 걸 원하지 않으면, 절대로 네가 그녀랑 결혼하는 걸 허락하지 않을 거야!” 어머니는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녀가 동의했어요, 우리가 결혼식에 대해 논의할 시간이 아직 없었을 뿐이에요.” 허태준이 설명했다. 어머니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유진이는 정말 좋은 아이야, 나도 많이 좋아해." 그녀는 말하면서 허태준을 강하게 노려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유진이 어머니였다면, 절대로 그녀를 다시 너한테 시집보내지 않았을 거야.” 그녀가 그렇게 노골적으로 '반대'를 하는 바람에 허태준은 반박할 말이 없었다. “너 예전에...... 기억 못 하겠지만, 유진이한테 꽤 못됐었어.” 엄마의 말투도 전보다
“그래요?”그는 요동치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켰다.“저는 글쎄 잘 모르겠는데요.”“너야 당연히 모르지!”허 아주머니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네가 어렸을 때 사진을 언제 꺼내는 봤어? 너는 아마 네가 어렸을 때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지 못할 거야!”그녀의 말이 틀린 곳 하나 없었다.“아! 맞다.”허 아주머니는 문득 뭔가 생각났다. “유진이 이따가 일이 끝나면 온대?”“안 올 것 같은데요.”허태준은 풀이 잔뜩 죽어 말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 눈을 번쩍였다.“어머니께서 유진이한테 전화 해보실래요?”제 배로 낳은 아들이 무슨 수작인지 허 아주머니가 모를 리 없었다.마침 그녀도 심유진을 오랫동안 보지 못했기에 허태준의 부탁을 들어줬다.“저녁에 내가 전화하마. 유진이도 아직 일하고 있을 거야.”...하지만 허아주머니의 추측은 완전히 빗나갔다.기사님은 심유진과 김욱을 호텔까지 바래다준 후 떠났다. 기사님은 떠나면서 그들에게 말했다.“진 대표님께서 두 분보고 먼저 쉬라고 하셨습니다. 일 얘기는 두 분께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신 후 내일 다시 얘기하자 하셨습니다.”장거리 비행은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김욱은 자연스레 총지배인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호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심유진은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풀썩 걸터앉았다. 그녀는 허태준한테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전화기 너머 허태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일 다 봤어요?”“오늘 아직 고객님을 만나지 못했어요.”심유진은 느릿느릿하게 침대 머리에 기댔다. 별이는 괜찮은지 물어보려다가 문득 지난번 그녀가 허태준한테 관심을 주지 않았다면서 뾰루퉁해 했던것이 생각났다. 심유진은 하는 수 없이 말을 돌렸다.“태준 씨, 요즘 집에서 좀 어때요?”그녀의 딱딱한 어투를 허태준은 단번에 알아차렸다.그는 실소를 금치 못하면서 굳이 심유진한테 따지지 않았다.“괜찮아요.”허태준은 눈치 빠르게 물었다.“별이랑 통화할래요?”심유진은 휴대폰을 꼭 움켜쥐며 고심
허태준은 일부러 허 아주머니한테 전화기를 넘겨주었다.“유진아.”허 아주머니는 심유진을 매우 반가워했다.“일은 다 끝났어?”심유진은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침착하게 말했다.“네, 어머니 저 오늘은 할 일이 없어요.”“딱 좋네!”허 아주머니는 이때다 싶어 허태준의 등을 떠밀었다.“어서 유진이 데리러 가! 너희들이 올 때면 마침 밥이 다 될 거다!”허태준은 억울한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어머니, 유진 씨는 아직 온다고 대답하지 않았어요.”“아, 그렇네!”허 아주머니는 그제야 다시 심유진의 의견을 물었다.“유진아, 저녁에 밥 먹으러 우리 집에 올래?”사실 심유진은 그렇게 먼 곳 까지 가고 싶지 않았고 허 아주머니와 밥 먹는 것도 불편했다. 하지만 어른이 말을 한 이상, 허 아주머니의 체면을 구길 수는 없었다.“갈게요.”심유진은 순순히 허 아주머니의 뜻을 따랐다.“들었지?”허 아주머니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허태준의 등을 툭 쳤다. 그러고는 휴대폰을 다시 허태준한테 넘겨줬다.“시간 지체하지 말고 빨리 가!”...합작사 측에서 심유진에게 제공한 호텔은 서울에서 셋째로 손꼽히는 호텔이다. 1위는 로열 호텔, 2위는 킹 호텔이다.심유진이 그 두 호텔과 이래저래 얽혀있었기에 김욱은 합작사 측에서 이곳을 예약하도록 말해두었다.그들이 묵은 이 호텔은 규모는 꽤 크지만, 관광지와 멀리 떨어진 비교적 외진 곳에 있었기에 이곳을 찾는 사람이 유독 적었다.허태준은 이 외진 곳 까지 차를 몰고 오느라 시간이 적지 않게 걸렸다.심유진은 허태준의 부모님을 뵙기 위해 간단히 화장을 했다. 그녀는 김욱에게 톡을 남겨둔 후 들고 온 가방만 들고 호텔을 나섰다.허태준의 차는 호텔 정문 앞에 세워져 있었다. 8888인 차량 번호가 유독 눈에 띄었다.심유진은 차에 오르자마자 허태준을 탓했다.“왜 아주머니를 막지 않았어요. 여기서 집까지 얼마나 먼데...”허태준은 몸을 숙여 심유진에게 안전벨트를 매주었다.“어머니가 유진 씨를 엄청 보고싶어 하세요. 오
현관문이 열리자 소파에 앉아있던 허 아주머니는 총총걸음으로 그 둘을 맞이하러 나섰다.심유진이 먼저 집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니 허 아주머니는 방긋한 웃으며 그녀를 맞이했다.심유진은 허 아주머니의 모습에 적잖게 놀라서 저도 모르게 목청을 높아졌다.“아주머니!”“유진아!”허 아주머니는 신발장에서 슬리퍼를 꺼내 심유진한테 건넸다. 심유진이 슬리퍼로 갈아 신은 후, 허 아주머니는 심유진의 손을 꼭 움켜쥐고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유진이 약해졌네.”허 아주머니는 빼빼 마른 심유진을 보며 마음이 아파서 눈가가 촉촉해 졌다.심유진은 머쓱하게 웃으며 허태준한테 구원의 눈빛을 보냈다.허 아주머니의 지나친 리액션에 심유진도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됐어요. 어머니.”허태준은 바로 감동스러운 분위기를 깨며 말했다.그는 심유진의 손을 허 아주머니한테서 빼내고 다시 꼭 잡았다.“유진 씨는 몸무게가 내려가면 더 좋아해요.”허태준의 말이 오히려 너무 사실이어서 어이가 없었다.심유진은 그저 영혼 없이 웃었다.허태준은 아랑곳 하지 않고 티슈 몇 장을 허 아주머니의 손에 쥐여줬다.“이렇게 좋은 날에 우시면 좋던 분위기도 다 망쳐요.”그의 말은 과연 효과가 직방이었다. 허 아주머니의 눈물은 거짓말처럼 쏙 들어갔다.허 아주머니는 허태준을 매섭게 째려보았다.심유진만 없었다면 절대 허태준을 가만히 두지 않았을 거다.“아빠! 엄마!”허태준의 목소리를 들을 별이는 보고 있던 애니메이션도 뒤로하고 맨발로 현관으로 달려왔다.허 아주버님은 별이의 슬리퍼를 쥐고 다급하게 별이 뒤를 쫓아왔다.“별아, 착하지. 슬리퍼는 신어야지!”이 광경을 본 심유진은 두 눈을 의심했다.그녀의 인상 속의 허 아주버님은 친절하기는 커녕 웃음기 하나 없는 분이셨다.허 아주버님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심유진은 적응이 되지 않았다.별이는 심유진의 품에 폭 안기며 말했다.“엄마!”허 아주버님은 그제야 발걸음을 멈추고 자상하게 웃었다.“유진이 왔어?”“네, 아저씨. 안녕하세요.”허
허태준의 경고 때문에 허 아주버님과 허 아주머니의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심유진 앞이라 불쾌한 감정을 애써 숨겼다.저녁 준비는 이미 다 되었다.오랜만에 주방에 들어선 허 아주머니는 심유진이 좋아하는 음식들로 식사를 준비했다.식사 내내 허 아주머니가 계속 심유진에게 음식을 집어주어 앞접시가 비워질 새가 없었다.식사 후, 심유진은 허태준과 마당에서 산책하며 소화를 시켰다.별이도 따라나서고 싶었지만 허 아주머니가 별이를 제때 막았다.별장은 교외에 있었고 주변은 온통 별장이었다.이곳에는 고층 건물도 없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차량도 없다. 마당에 서있으면 맑은 공기가 코 깊숙이 스며들어오고 고개를 들면 넓은 밤하늘에 큰 도시에서 보기 힘든 별들이 보였다.“우리 나중에 늙으면 여기서 사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심유진은 생각보다 너무 좋은 환경에 연신 감탄을 자아냈다.‘우리’와 ‘나중에’라는 두 단어가 함께 그녀의 입에서 나오니 허태준은 바로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그래요.”허태준은 심유진의 손을 잡고 그녀의 발걸음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유진 씨가 어디를 좋아하면 저도 그곳에서 살게요.”이 세상 끝에서 심유진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상관이 없었다.“그럼 태준 씨는요?”심유진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그에게 물었다.“태준 씨는 여기가 좋아요?”허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저도 여기가 좋아요.”심유진은 그의 대답에 마음이 놓였다.그녀가 좋아하는 것 뭐든 허태준도 좋아한다니 이보다 기쁜 일이 없었다.“저 내일은 여기에 안 올래요.”심유진은 문 쪽을 돌아보며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아줌마가 주시는 대로 먹다가는 5킬로가 찔 거예요!”헐렁한 옷차림으로 배를 가렸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볼록 튀어나온 배를 들켰을 것이다.“그래요. 내일은 나도 회사로 돌아가야 해서 못 올 것 같아요.”허태준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안전 조심하세요.”심유진이 신신당부했다.“태서 씨는 기회를 잡아 태준
허태준의 심장은 튀어나올 듯이 뛰었다.그는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 몸을 숙여 심유진을 껴안았다.“유진 씨.”허태준을 얼굴을 심유진 어깨에 파묻고 잠긴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곧이곧대로 속마음을 드러내면 그녀가 되려 겁을 먹고 도망칠까 봐 두려웠다.결국 허태준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녀를 위협했다.“이제 저한테서 평생 도망칠 수 없어요.”애초에 심유진은 도망갈 생각 따위 없었다.심유진은 허태준을 더 꼭 끌어안았다. 그녀가 막 입을 떼려 할 때 문득 옆에 통창이 눈에 들어왔다.투명 창문 너머로 허 아주버님, 허 아주머님과 별이 세 명이 각기 다른 표정으로 그둘을 바라보고 있었다.심유진은 화들짝 놀라서 급히 허태준을 밀어냈다.그를 밀어낼 때 심유진은 저도 모르게 그의 팔을 건드렸다.“아!”갑작스러운 통증에 허태준은 이를 깨물었다.심유진이 훔쳐보는 세 사람을 꾸짖을 새도 없이 다급하게 허태준을 부축했다.“왜 그래요?”심유진은 그의 팔을 이리저리 스캔하며 물었다.허태준은 심유진을 옆으로 조금 끌어당겨 집 반대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튼튼한 벽이 마침 세 사람의 시선을 막았다.그는 잔뜩 불쌍한 표정으로 왼팔을 들어 올렸다.“오늘 아침, 집에 돌아왔을 때 마침 또 소란 피우러 온 둘째 아주머니와 마주쳤어요. 그녀를 막으려다가 아주머니가 손에 든 칼에 베였어요.”“어디 다친 거예요?”심유진은 그의 왼손을 잡고 심장박동이 빨라져 말 속도도 따라 빨라졌다.“심각해요? 상처는 다 치료했어요? 아직도 아파요?”연회색 긴팔 맨투맨이 허태준 팔뚝의 상처를 덮었다. 허태준은 우물쭈물하면서 손으로 대략적인 위치를 가리켰다.“심각하지는 않아요. 둘째 아주머니는 이미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을 테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이 상처가 헛되지 않게 만들 거예요.”“우리 이만 들어가요.”심유진은 산책할 기분이 아니었다.“상처가 덧나지는 않았는지 한번 봐야겠어요.”허태준이 하도 심각한 일도 가볍게 말하는 타입이라 그다지
허태준의 왼쪽 팔뚝에는 얇은 거즈가 둘려져 있었다. 헐렁한 후드티가 마침 상처를 가려서 가까이서 봐도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심유진은 조용히 허태준이 거즈를 벗기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러자 10센티미터 정도의 베인 자국이 드러났다.허태준이 이미 상처를 헹구고 알코올로 소독해서 일찍이 피가 멈췄다.경악할 정도의 상처가 아님에도 심유진의 마음은 찢어지듯 아팠다.심유진은 손으로 상처를 어루만졌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계속 고이는 눈물을 애써 참았다.허태준은 동정심을 유발하고 싶었을 뿐 심유진을 울릴 생각은 없었다.“작은 상처일 뿐이에요.”그는 침착하게 심유진의 손에서 팔을 빼내고 다시 거즈를 빙빙 감았다.“이틀 정도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다시는 위험한 일에 나서지 말아요.” 심유진은 그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당부했다.“경찰에 신고하면 해결될 일에 굳이 나서지 말아요.”다행히 둘째 아주머니는 힘이 약해서 큰 피해를 주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에 건장한 체격의 남자를 상대하게 된다면 이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알겠어요.”허태준은 순순히 대답했다.“저 지금 진지해요.”심유진은 허태준이 지금 그녀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적당히 얼버무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심유진은 약속을 원했다.“저...”심유진이 눈을 깜빡이자 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내려왔다.“저 도저히 감당이 안 돼요.”그녀는 목이 메고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만약 태준 씨한테 뭔 일이라도 생기면...”심유진의 눈물을 보고 허태준은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그는 긴 팔을 뻗어 심유진을 자신의 품에 안았다.그는 머리를 숙여 심유진의 정수리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심유진의 뜨거운 눈물이 그의 옷에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저한테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을 거예요.”허태준은 겁에 질린 그녀를 안심시켰다.“저 꼭 건강하게 아무런 사고 없이 유진 씨와 별이 곁에 있을 거예요.”심유진은 그의 허리를 꽉 감싸안아 몸이 더 찰싹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