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유진은 결백을 인증받고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한 몸에 받아안았다.총지배인이 그녀에게 직접 연락하여 복직을 신청했다. 아마 다음 주쯤이면 다시 로열 호텔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심유진은 그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건넸다.**토요일 아침, 심유진은 허태준의 연락을 받았다.그는 이미 아파트 앞에 도착해 있었다.그녀는 그가 오래 기다릴까 봐 옷만 대충 갈아입고 생얼로 문을 나섰다.차 안에는 허태준 한 명뿐이었고 심유진은 자연스럽게 조수석에 앉았다.“여 변호사님은요?”그녀가 물었다.허태준은 핸들을 꽉 움켜잡았다.그녀가 입을 열자마자 찾은 사람이 여형민... 너무 기분 나빴다.“안가.”그가 쌀쌀맞은 말투로 대답했다.심유진은 간단하게 대답한 뒤 또다시 물었다.“아침 식사는 했어요?”허태준은 앞만 바라보며 대답했다.“아니.”“그럼 밥 먹을래요?”심유진은 주머니 안에서 텀블러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어젯밤에 끓인 계란죽이예요.”그녀는 허태준이 평소 밖에서 식사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에 특별히 아침 식사를 준비한 것이었다.“만약 달콤한 맛을 원한다면 토스트와 딸기잼도 준비했어요.”허태준은 다급히 브레이크를 밟고 길옆에 주차했다.“계란죽이면 돼.”그가 대답했다.심유진은 곧바로 텀블러를 그의 손에 건넸다.“뚜껑 열어서 먹어요. 숟가락 줄게요.”그녀는 말하는 동시에 허리 숙여 호주머니 안에서 은 숟가락을 꺼냈다.“이 숟가락은 어제 금방 포장 뜯은 거예요. 이미 깨끗하게 씻어서 가져왔으니까 안심하고 먹어도 돼요.”그녀의 미소는 달콤했고 아주 귀여웠다.허태준은 입이 바짝 말라 드는 것 같았다.그는 텀블러를 자신의 다리 위에 올려놓았다.뚜껑을 열자마자 뜨거운 열기와 죽의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혀 식욕을 불러일으켰다.허태준은 은 숟가락을 건네받고 죽을 한술 떴다.죽은 딱 좋게 익은 상태였다. 계란과 쌀이 조화로운 맛을 이루었고 매 한입마다 계란의 고소함과 쌀의 달콤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허태준은 입맛이 까다로웠기에 아무리 맛없
“왜그래?” 허태준이 심유진을 보며 물었다.“당신 얼굴이……”심유진이 풉하고 웃었다.허태준은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보더니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거기가 아니라……”심유진은 몸을 앞으로 기울여 손가락으로 그의 얼굴에 붙은 밥풀을 떼어냈다.그녀의 손끝이 얼굴에 닿자 허태준은 순식간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심유진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고, 허태준은 헛기침을 하며 휴지 두 장을 뽑아 그녀에게 건넸다.“여기에 닦아. 그리고…… 고마워.”말을 마친 그는 차의 시동을 걸었다.**일찍 출발해서 그런지 차가 막히지 않아 시내에서 팔공산까지 가는 데 겨우 두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팔공산은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관광산으로 걸어서 올라가거나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갈 수 있었다. 심유진은 허태준이 당연히 케이블카를 탈 줄 알고 케이블카를 타는 곳에 줄을 섰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예상과는 반대로 케이블카 옆에 있는 등산로를 택했다.심유진은 용기를 내 그의 외투를 잡아당겼다. “저…… 우리 케이블카 타고 가는 거 아닌가요?”허태준은 자신의 주머니에 핸드폰을 꺼내더니 심유진에게 보여줬다.“나 핸드폰밖에 안 가져왔어.”그런데 공교롭게도 심유진도 현금이 없었다.심유진은 삼성페이는 되겠지 하고 매표소로 향했지만, 매표소 직원이 케이블카는 현금결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하는 수 없이 두 사람은 팔공산을 오르기 시작했다.평소 체력이 좋지 않은 심유진은 헥헥거리며 그의 뒤를 쫓았고, 허태준은 뒤를 돌아 그녀를 보았다.“잠깐 쉴까?” 그는 심유진에게 물었다.심유진은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허리춤에 손을 얹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경사가 꽤 있는 산이라 등산로 양쪽에는 긴 안전끈이 있었다. 그녀는 그 끈에 온몸을 의지했다.다행히 산을 오르는 사람이 없어 심유진은 아예 계단에 주저앉았고 허태준이 그 옆에 서있었다.마침 생수 몇 상자를 메고 산에 오르는 짐꾼이 신기한 듯 그들을 몇 번 더 보았다.“아가씨, 산 초입부터
“왜 돈 없다고 거짓말을 했냐고요!”심유진은 자신이 왜 이 고생을 하는지에 대한 분노가 이성을 삼켜버려 허태준이 어떤 사람인지 잊은 채 그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아니 오만 원 뿐이었어. 케이블카는 인당 삼만 원이라고.”그의 대답에 심유진은 할 말이 없었다.그녀는 끝없이 이어진 산길을 보며 물 뚜껑을 닫고 계단 옆의 줄에 의지해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어휴, 갑시다.”그러나 허태준은 움직이지 않았다.“올라갈거야?”그는 그녀의 말에 의심을 표시했다.“아무래도 배고프기 전에 올라가야겠네요.”심유진은 한 손에 물병을 꼭 쥐고 낑낑거리며 올라갔다.허태준은 몇 걸음을 걷더니 그녀의 앞길을 막아섰다.“왜요.”심유진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허태준은 물병을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바꾸었다.“지금 계속 잡고가는 줄…… 그거 더러워.”그는 그녀가 잡고 있는 밧줄을 턱으로 가리켰다.“이거 당겨.”심유진은 의외로 세심한 그의 말에 조금 당황했다.그녀는 자신의 손바닥을 툴툴 털더니 그를 보았다.“괜찮아요. 어차피 이미 더러워졌으니까.”허태준은 허리를 약간 굽히고 다짜고짜 그녀의 손을 잡았다.따듯한 그의 손을 잡으니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손을 꼭 쥐었다.허태준은 그녀의 손을 통해 그녀의 심장소리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아 언제 도착해…….”심유진은 그의 손을 잡고 궁시렁거리며 산을 올랐다.허태준은 차가운 그녀의 손을 느끼며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갔다.얼마나 지났을까 심유진은 종이인형처럼 그에게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다.“저기 그 물 안 마실거면 저 좀 줘요.”심유진은 자신의 물을 다 마시고 그의 물까지 탐내기 시작했다.오르막길이 심해 땀은 많이 났으나 산 중턱에 오니 산아래보다 기온이 낮아 추웠다.분명히 산 아래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는데, 중턱에 이르자 하늘에서 가랑비까지 흩날리기 시작했다.허태준은 심유진에게 자기의 외투를 벗어주고는 단추를 하나하나 채웠다.잠시후 허태준의 등은 모두 빗물로 젖었고 반투명
그 말을 들은 심유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의 말대로 얼마지나지 않아 정상에 도착했고, 검은 우산을 든 양복을 입은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와 그를 맞이했다.“허 대표님! 오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네요.”그는 두 사람을 별장 전용 차로 데려가더니 두 사람에게 담요를 건넸다.허태준은 비를 맞아도 멀쩡했지만 심유진은 상태가 좋지 않았다.그녀의 입술은 파랬고, 온몸을 덜덜 떨고있었다.“가서 따듯한 물로 목욕하고 뭐 좀 먹어야겠네.”허태준은 그런 그녀가 걱정됐다.**산 정상 입구에서 성운 별장까지는 차로 십분이 걸렸다.별장 로비에는 총지배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허태준을 기다리고 있었고, 허태준과 심유진이 도착하자 그 사람은 직접 그를 방까지 데리고갔다.“대표님의 짐은 어제 도착해서 방에 두었습니다.”그 사람은 방 카드를 허태준에게 건네주고는 정중히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떴다.허태준은 카드로 방문을 열고 들어갔고 그 뒤에 심유진은 멀뚱멀뚱 그 자리에 서있었다.“왜 안들어와?”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쳐다보았다.심유진은 머뭇거리며 물었다.“우리 둘이 한 방에 지낸다고요?”“보통의 연인사이라면 한 방에서 자지 않나?”“하지만……!”“잊지 마. 당신은 내 연인 신분으로 여기에 와있다는 걸.”“하지만 우린 진짜 연인은 아니잖아요.”“주최 측에서 우리가 가짜 연인이라는 걸 알것 같아?”“그럼...”심유진은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 그에게 대답했다. “제가 따로 방을 하나 예약해야겠네요.”허태준은 코웃음을 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와봐.”“네?”“들어와보면 알아.”“……”“여기 보이지? 이 방안에는 여러개의 방이 있어. 마음에 드는 곳에서 지내면 돼.”“아……”“혹시 방금 내가 너를 어떻게 하는 건 아닌가 걱정했다면 꿈 깨는 게 좋을 거야.”심유진은 이 사실을 깨닫고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졌다.그는 허태준에게 자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려고 했지만 허태준은 이미 방으로 들어가 문을
심유진은 젖은 옷을 벗고 따듯한 욕조에 물을 받아 목욕을 했다.개운하게 씻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니 상쾌함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똑똑-”허태준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그녀는 깜짝 놀랐다.“잠시만요.”“밥 먹으러 가야하지 않아?”심유진은 꼬르륵 소리나는 배를 움켜쥐고는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밖에 있던 허태준은 그녀가 문을 열지 않자 다시 문을 두드렸다.“안에서 뭐해?”“아무것도 아니에요.”“밥 먹어야 하지 않냐고.”“먹어야죠 같이 먹을까요?”“아니 난 배고프지 않아. 혼자 먹고 와.”“아……”심유진은 허태준의 차가운 대답에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순간 마음이 얼어붙었다.**심유진은 볶음밥 2인분을 시켜 하나는 혼자 먹고 하나는 포장해서 방에 가지고 갔다.비록 허태준이 배가 고프지 않다고 했지만 운동량이 그렇게 컸는데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돌아온 그녀는 허태준의 방문을 두드렸지만 허태준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허 대표님 거기 계십니까?”그녀는 허태준이 듣지 못할까 봐 큰소리로 물었다.방안이 유달리 조용했고, 심유진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허 대표님!”불길한 예감이 갈수록 짙어지자 그녀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암막 커튼으로 시커먼 방 안에는 숨소리만 가득했다.“아…… 잠들었구나.”그녀는 조용히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거실 탁자 위에 볶음밥을 올려놓은 그녀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잠에서 깨어나자 저녁 6시가 됐다그녀는 지긋이 허태준의 방문을 보았다. 문은 아직도 굳게 닫혀있었다.“허 대표님! 식사는 하고 주무셔야죠!”그녀의 목소리에도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그녀는 그가 너무 걱정된 나머지 텔레비전을 보며 그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배가 꽤 고플텐데? 저 사람은 저녁도 안 먹고……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그녀는 그의 방문을 열고 침대 옆으로 다가가 이불을 들췄다.큰 몸집의 남성이 땀에 흠뻑 젖은 채 새우처럼 몸을 말고 있었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심유진의 심장 박동이 갑자기 빨라졌다.‘아니야…… 설마 내 이름이겠어? 내가 잘못들었겠지. 유진이가 아니라 유정이라고 한거야! 암 그렇고 말고!’심유진은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력했다.그 순간 허태준의 표정은 마치 가위에 눌린듯 미간이 점점 일그러졌다.“유진아, 가지 마!”순간 허태준이 큰소리를 질렀다.그의 외침은 처참하고 절망적이었다.심유진은 악몽을 꾸는 듯한 그의 슬픈 표정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허태준은 손을 뻗어 끊임없이 손가락을 벌렸다가 꼭 쥐는것이 마치 무엇인가를 찾는것 같았다.무의식적으로 심유진은 손을 내밀었다.허태준이 그녀의 손을 잡는 순간 손가락이 부러질 정도로 힘을 다해 그녀를 붙잡았다.심유진은 옅은 신음소리를 내며 아픔을 꾹 참았다.그녀의 손을 잡자마자 그의 표정은 안정적으로 변했고, 심유진은 그의 옆에 기대앉아 수건으로 조금씩 얼굴의 땀을 닦았다.그런 그를 보는 그녀의 마음도 조금은 이상하고 복잡했다.“띵동-”바깥에서 초인종이 울렸다.아마 데스크에서 부른 의사가 왔을 것이다.심유진이 손을 빼려고 하자 허태준은 손을 더 꽉 잡았다.“가지 마.”그는 조용히 속삭였다.그녀가 손을 빼려고 할 수록 그는 그녀를 붙잡았다.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빨리 나가봐야 했지만 허태준이 놓아주지 않자 심유진은 안절부절했다.“안 갈 겁니다. 그러니 놔줘요.”“거짓말이잖아.”잠자던 허태준이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그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 코를 찡그리는데 모습이 유달리 슬퍼보였다.‘허 대표를 아프게 한 여자가 있는 모양이군……’심유진은 아직도 그가 부르는 이름이 자신의 이름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거짓말 아니니까 걱정말아요. 안 가요.”심유진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허태준의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태준 씨. 제발 이것 좀 놓아주겠어요?”그녀는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는 것처럼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허태준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입술을 오므리더니 천천히 손을 놓았다.그 틈
허태준의 차가운 말투에 심유진뿐만 아니라 옆에 준비하고 있던 의사도 겁에 질려 손에 쥐고있던 주삿바늘을 땅에 떨어뜨렸다.심유진의 몸은 순간적으로 굳어졌고 머리 속이 하얗게 변했다. .허태준은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앞에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왜 내 방에 들어왔냐고.”심유진은 허태준의 물음에 정신이 들어 의사를 가리키며 말했다.“당신이 열이 나서 의사를 불러왔어요.”허태준은 그제야 그녀 뒤에 남자가 청진기를 목에 걸고있다는 것을 알아챘다.“여기 체온계 줄게요. 이걸 겨드랑이에 넣고 체온을 재야 해요.”“아, 힘 없어서 나혼자는 무리인데. 좀 도와주지?”허태준은 당당하게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심유진은 의사와 그를 방안에 남기고 나와버리고 싶었지만, 그가 열이 펄펄 끓는 환자라는 사실에 충동을 꾹 참고 그의 옆에 앉았다.“그럼 단추 풀게요.”허태준은 그녀에게 자신을 맡긴듯 가만히 있었고, 심유진은 그런 그의 모습에 잔뜩 긴장을 한 듯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그녀는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를 행여 그가 들을까 얼굴을 푹 숙이고 그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었다.“빨리 좀 하지?”그녀는 겨우 맨 윗단추 세 개를 풀었고, 허태준은 그녀의 움직임에 맞춰 팔을 움직였다.벌어진 잠옷 사이로 보이는 그의 분홍빛 어깨는 그녀를 얼어붙게 만들었다.심유진은 다른 생각이 들지 않게 재빨리 체온계를 겨드랑이에 끼우고 얼굴을 돌렸다.“5분 동안 그러고 있어요.”그녀는 아무 일도 없는 척하며 자신의 휴대폰으로 5분 후 알람을 맞췄다.의사는 심유진과 자리를 바꾸어 허태준의 침대 옆에 섰다.“목이 아프거나 설사를 하나요?”“아뇨.”“그럼 아픈 곳은 어디죠?”“없어요.”의사의 물음에 허태준은 대충대충 대답했다.“띠리링-” 마침 그녀가 맞춘 알람이 울렸고 의사는 손을 뻗어 그의 겨드랑이에 체온계를 빼려고 했다.“아, 내가 직접 뺄테니까 제 몸에 손 대지 말아요.”의사는 지금까지 이렇게 비협조적인 환자를 본 적이 없었던지,
허태준은 고개를 저으며 입맛이 없다고 했다.“그럼 물 좀 마실래요?”그녀는 그의 입술이 까슬할 정도로 마른 것을 보았다.“응.”그녀는 냉장고 안에 있는 생수를 하나 꺼내 그에게 건넸다. “힘이 없어서 일어날 수가 없어.”“그럼 제가 일으켜 드릴게요.”그녀는 그의 목 뒷부분에 손을 얹고 조심스럽게 그의 몸을 침대 위로 30도 정도 끌어올렸다.허태준은 그녀의 품에서 물을 마시더니 피곤하다는 듯 다시 침대 속으로 파고들었다.“좀 더 잘래요?”그는 감기는 눈꺼풀을 억지로 뜨며 심유진을 바라보았다.그는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이용해 심유진을 자신의 옆에 두고 싶었다.“아니, 잠이 안오네. 옆에서 얘기 좀 해줄래?”심유진은 황당항 그의 요구에 당황했다.“무슨 얘기요?”“아무 말이라도 좋아.”그녀는 무슨 얘기를 해야할지 몰라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만지작거렸다.‘여형민 씨에게 부탁해서 여기로 와달라고 할까?’심유진이 한참 말이 없자 허태준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됐고, 지금 몇 시야?”“8시 43분이요.”“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다니.”허태준은 여기까지 와서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넌 저녁 먹었어?”“저녁…… 먹었죠.”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그에게 거짓말을 했다.“뭐 먹었어?”“볶음밥이요.”“맛있었어?”“그냥저냥 괜찮아요.”…모두 영양가 없는 얘기들이었지만 두 사람은 꾸준히 대화를 이어갔다.심유진이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하자 허태준이 졸리냐고 물었다.그녀는 황급히 손을 흔들며 졸리지 않다고 했다.“피곤할 텐데, 졸리면 가서 좀 자. 어차피 한 시간은 더 남았으니까.”“됐어요.”심유진은 두 눈을 크게 떴다.“괜찮아.” 허태준은 링거를 놓지 않은 왼손으로 침대 옆자리를 툭툭 쳤다.“여기 자리 있어. 그냥 여기서 자.심유진은 그의 말에 졸음이 확 달아났다.한 번도 동침한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의식이 멀쩡한 상태로 그의 옆에 눕는 것은 처음이었다.“아니요. 하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