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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9화

허태준은 심유진보다 머리 하나가 컸기에 가까이에서 머리를 들어 올려 그와 대화하기란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었다.

“산부인과 병원에 남자가 가서 뭐 하게요?”

허태준은 의기양양하게 반박했다.

“아내와 같이 가는 남자도 없나요?”

“그럼 당신은 아내와 같이 가는 건 가요?”

심유진이 되물었다.

“그럼요.”

허태준은 고개를 끄덕였고 눈가에는 짙은 웃음기가 섞였다.

심유진은 그런 그의 모습에 얼굴을 붉혔고 화를 내며 그를 밀쳤다.

“아무튼 안 돼요!”

허태준은 반쯤 물러났다.

“그럼 문 앞까지 데려다줄게요. 안 들어가면 되죠?”

심유진이 다시 거절할까 봐 그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사고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걱정돼서 그래요.”

이 말에 그녀는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하은설의 간곡한 부탁이 아니었다면 심유진은 그의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안 돼요.”

심유진은 마음을 독하게 먹고 완강한 표정을 지었다.

“집에서 기다려요, 금방 돌아올 테니까.”

그 둘은 그렇게 오랫동안 신경전을 벌였다.

고집이라면 허태준도 심유진에게 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지금 그녀를 이길 필요가 없었다.

“그래요.”

결국 허태준은 한 걸음 물러났다.

“빨리 돌아와요, 도착하면 전화하고요.”

**

하은설이 심유진과 만나기로 한 곳은 병원 근처의 한 카페였다.

하은설은 창가에 앉아 두 손으로 뜨거운 아메리카잔을 들고 창밖의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심유진은 빠르게 하은설을 찾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앞에서 흔들었다.

“뭘 보는 거야?”

하은설은 시선을 거두고 힘겹게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

“빨리 왔네.”

심유진은 하은설의 맞은켠에 앉자마자 입을 열었다.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거야? 이렇게 비밀스럽게, 꼭 얼굴 봐야 한다고...”

심유진이 오기 전 몇 번이나 마음을 먹고 시뮬레이션을 한 하은설이었다.

그녀는 용기를 내 심유진에게 말했다.

“사실 나 오전에 병원에 가지 않았어... 병원 예약은 오후야...”

“응?”

심유진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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