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형민의 손이 어색하게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그는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안경에 가려져 있던 눈빛이 순간 교활한 미소로 이어졌다.“허 대표?”그는 손을 거둬들이더니 미간을 치켜올리며 경고를 건넸다.“내 기억대로라면... 심 매니저는 내가 요청한 파트너인 것 같은데.”“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허태준은 심유진의 손을 꽉 잡은 채 어두운 눈빛으로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된 차량 하나를 바라보았다.“이쪽을 향해 오고 있는 흰색 람보르기니, 아무래도 나은희 차같은데...”그가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여형민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심유진은 여형민의 도망치는 속도에 깜짝 놀랐다. 거의 슝 소리와 함께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그녀는 깜짝 놀란 나머지 어안이 벙벙했다.“들어가자.”허태준이 그녀의 손을 잡아당겼다.그의 부축하에 자리에서 일어선 심유진은 고개를 돌려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흰색 람보르기니를 바라보았다.거센 엔진소리가 점점 가까워졌고 몇초도 안 되는 사이에 번개처럼 드넓은 주차장에 들어섰다.예쁜 유턴에 이어 급브레이크와 함께 차는 완벽하게 주차되었다.심유진은 이토록 화려한 스킬을 텔레비전으로만 봤었다.하마터면 람보르기니 운전수를 향해 박수갈채를 보낼 뻔했다.람보르기니 문이 열리자 브라운톤의 긴 웨이브 머리를 한 채 베이지색 옷을 입은 여자가 느긋하게 차에서 내렸다.그녀의 메이크업은 진하지도 연하지도 않았지만 그녀의 이목구비는 확연히 보아낼 수 있었다.짙은 눈썹, 크고 맑은 눈, 높은 콧대, 날렵한 이목구비를 자랑하고 있었다.“허 대표.”그녀는 한 손을 호주머니에 넣은 채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를 불러세웠다.심유진은 그제야 최근 들어 많은 여자연예인들이 자신에게 남편 컨셉을 세우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힐끗 쳐다보기만 했는데도 그녀는 단번에 보통 남자들보다 몇 배는 멋진 여자한테 반해버리고 말았다.“나 대표.”허태준도 미소로 회답했다.“여형민을 찾는 거면... 조금 전에 이미 갔어.”나은희의 표정에는
“허태준 씨!”한 무리의 사람들이 허태준을 중심으로 그 주위를 에워쌌다.그 속에는 남자와 여자, 어르신과 젊은이들이 있었고 각종 향수 냄새도 뒤섞여진 바람에 심유진은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재채기했다.그녀의 옆에 붙어 서 있던 두 젊은 아가씨가 짜증 난 표정으로 말했다.“더러워...”그녀들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죄송합니다!”심유진은 다급히 사과했다.어르신들에게 인사하고 있던 허태준은 휙 고개를 돌려 매우 예의 바른 말투로 두 아가씨에게 말했다.“좀 멀리 떨어져 있어 줄래요? 향수 냄새가 역겨워서요.”두 여자는 얼굴이 하얗고 파랗게 질린 채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향수 냄새는 옅어졌지만 여전히 역겨웠다.심유진은 최대한 입으로 숨을 쉬는 것으로 코에 주는 자극을 줄이려고 했다.허태준은 그녀의 상황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어르신들과 친구들을 제쳐두고 심유진의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자리 찾아 먼저 앉아있어. 금방 찾으러 갈게.”바로 심유진이 바라던 바였다.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그녀가 허태준의 손을 놓고 떠나는 모습을 훤히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고 그녀의 행방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도 없었다.심유진은 인적이 드문 모퉁이에 자리 잡고 앉아 멍하니 창밖 풍경을 구경하고 있었다.“어머, 허 대표님 파트너 아니세요?”조금 전 자리를 떴던 두 여자가 다시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어머, 왜 혼자 앉아있어요? 허 대표님한테 쫓겨난 거예요?”그녀를 비웃는 두 여자의 표정은 매우 거슬렸다.“말했잖아, 허 대표님이 어떻게 이딴 여자를 좋아하겠어? 봐봐, 그새 허 대표님한테 버림받았잖아?”“쳇, 진짜 자기가 예쁜 줄 아는 거야? 거울 좀 보라 그래!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겠어!”그녀들이 하는 말은 듣기 거북했지만 심유진이 참을 수 없을 정도까진 아니었다.왜냐하면 그녀는 허태준의 진짜 파트너가 아니었고 그녀들이 질투를 쏟아부은 곳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단지그녀들의 목소리가 너
그는 시선을 아래로 옮기다가 그녀의 가슴골에 묻은 와인 자국을 발견했다.“이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예요?”그가 물었다.심유진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치켜올리며 평온한 말투로 대답했다.“실수로 와인을 흘렸거든요.”“왜 이렇게 실수가 많은 거예요?”정재하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 대신 화장실 문을 열어주었다.“빨리 들어가서 씻어요!”술 자국은 원래부터 지우기 힘들었다. 심유진은 물로 젖힌 뒤 한참 동안 비볐는데도 와인 자국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았다.그녀는 진이 빠져 변기에 기댄 채 쑤신 어깨를 주물렀다. 발도 너무 오래 서 있었던 탓에 아프기 그지없었다.화장실에 들를 사람만 없었어도 그녀는 파티가 끝날 때까지 내내 이곳에 앉아있고 싶었다.바로 그때 휴대폰 벨 소리가 고요함을 꿰뚫고 들려왔다.심유진은 허태준이 그녀를 찾는 전화인 줄 알고 다급히 휴대폰을 꺼냈지만 스크린에 띈 번호는 낯선 익명의 번호였다.그녀는 맨 처음 광고 판매사에서 온 연락인 줄 알았다. 하지만 퇴근 시간까지 맞춰 누군가에게 연락하는 광고 판매사는 없을 것 같았다.심유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통화 수신 버튼을 눌렀다. 휴대폰 너머로 한 여자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혹시 심유진 씨인가요?”“네.”확신에 찬 답을 들은 상대방이 말을 이었다.“저는 S 대원병원 척추과 간호사입니다. 이렇게 연락드린 건 다름이 아니라 남편분 병원비가 많이 밀린 상태라서요. 서둘러 와서 병원비를 지불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차에 따라 퇴원 수속을 밟을 수밖에 없어요.”심유진은 병원에 자신의 번호를 남긴 적이 없었다. 누가 봐도 조건웅 부모가 그녀에게 연락하라고 시킨 게 분명했다.“죄송합니다. 지금 조건웅 씨와 이혼 수속을 밟고 있는 중이라서요. 병원비는 조건웅 씨 부모님한테 얘기해주세요.”그녀는 절대 요구를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그들한테 돈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적금이 없다고 해도 조건웅이 그들에게 사준 집 한 채를 판다면 몇억 원은 손에 넣을 수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갑자기 머릿속에 우정아가 떠올랐다.그녀는 비록 조건웅과 우정아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현재 두 사람의 관계는 자신보다는 훨씬 가까울 것이 분명했다.“간호사님, 잠시만요. 제가 조건웅 주변 사람에게 전화를 해볼테니까 기다려주세요. 금방 다시 전화를 드릴게요.”“예, 되도록 빨리 부탁드려요.”심유진은 우정아의 연락처가 없기에 조건웅의 친한 지인들에게 연락하기 시작했다.“여보세요? 오랜만이네요.” “어, 오랜만이네요. 근데 유진 씨 무슨 일이죠?”“다름아니라 혹시 우정아 핸드폰 번호 알아요? 좀 보내줄 수 있나요?”“드릴 수는 있는데……”“그럼 빨리 좀 보내주세요.”“근데 그 사람 지금 감옥에 있는 거 아니에요?”“네? 감옥이요? 무슨 이유로……”“몰랐어요? 우정아 씨가 유산 후에 우울증이 심해져서 조건웅 씨랑 매일 다퉜다고 하더라고요. 다들 매일 싸우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사건 당일에는 엄청 크게 싸웠대요. 그러더니 우정아가 화를 참지 못하고 그대로 차로 그를 받았다고 해요.”“세상에!”“원래 이 사실을 유진 씨한테 전하려고 했는데…… 너무 죄송스럽기도하고, 차마 제 입이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근데 이렇게 유진 씨가 전화를 주시니 저도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거예요. 이번 일은 참 유진 씨한테 죄송하게 됐습니다.”“아, 어쩔 수 없죠. 솔직하게 얘기해줘서 고마워요.”심유진은 사건의 진상을 듣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지독하게도 나를 힘들게 했던 조건웅과 우정아. 마지막이 좋지는 않구나. 이게 바로 인과응보인가? 이런 걸 보면 신이 있긴 한 것 같기도하네.’심유진은 조건웅의 병원비를 내줘야 하는 건지 아닌지 머리가 아팠다. 지금 그의 부모는 도망갔고, 동생은 연락두절에 우정아는 감옥살이까지……그녀는 그의 직장동료들에게 전화를 돌릴까 고민했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빠듯했다.때마침 간호사에게 전화가 왔고, 지금 당장 병원비를 내지 않으면 바로 퇴원하라고 최후통첩을 했다. ‘조건웅 저 상태로 퇴원을 하면 그냥
정재하는 조각상처럼 벽에 등을 기대고는 문밖으로 나오는 그녀를 보았다.“왜 아직도 여기 있어요?” 심유진이 물었다.그녀는 그가 벌써 갔다고 생각했다.정재하는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그 옷 잘 안 닦일 것 같은데요. 여기 집주인이랑 잘 아는 사이라 옷 정도 빌려줄 수 있어요.”“아,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제가 좀 일이 있어서 가봐야겠네요.”“아? 혹시 허 대표님하고요?”정재하는 심유진에게 옷을 빌려준다는 핑계로 허태준과 인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심유진은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아뇨. 정재하 씨, 저 혼자 갈 겁니다.”엄밀히 말하면 심유진은 허태준의 파트너로 파티에 온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허태준과 같이 다녀야 할 이유도 없고, 더더욱 그에게 바래다 달라고 할 권리도 없었다. 게다가 이 파티의 분위를 보아하니 허태준이 주인공임에 틀림없었다. 그녀가 그를 데리고 나간다면 파티의 흥이 깨질 것이 분명했다.“유진 씨, 혼자 간다고요? 차 가지고 왔나요? 이곳은 좀 구석진 곳이라 차가 잘 다니지 않아요. 만약 괜찮다면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그는 허태준과 말을 몇마디 나누고 싶었지만, 그의 옆에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기에 심유진의 도움없이는 말은 커녕 눈인사도 못할 것 같았다. 정재하는 파티에 남아서 시간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심유진에게 호감을 얻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정재하가 마음이 따듯한 사람이라는 걸 지난번에 병원부터 느꼈다.그러나 그녀는 안면도 몇 번 트지 않은 그를 너무 성가시게하고 싶지 않았다.“택시 부르면 금방 와요. 괜찮아요.”그녀는 콜택시 앱을 키자마자 휴대폰을 정재하에게 빼앗겼다.“최근에 뉴스 못 봤어요? 콜택시 앱으로 예약한 차량에서 난 살인사건이요! 요즘 세상이 얼마나 흉흉한데, 이렇게 외진 곳으로 콜택시를 불러요?”심유진도 정재하가 말하는 내용을 모르고 있지는 않았다.“제가 데려다 드릴 테니 걱정마세요!”정재하는 성큼성큼 앞장섰다.그녀의 휴대폰이
“두 분 어디가시는데요?”“일이 좀 있어서요. 나 대표님 그럼 먼저 가볼게요.”심유진은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허태준이 어두운 표정으로 1층 연회장으로 돌아오자 흩어졌던 사람들이 또 다시 그를 에워쌌다.그는 기분이 언짢다는 듯 한 마디 말도 없이 그들을 막았다.“허 대표!”창가에 앉아 있던 나은희가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이 파티에 온 모든 사람들이 허태준과 안면을 트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하지만 나은희는 원래부터 허태준과 잘 아는 사이었고, 그에게 아부를 할 이유가 없는 사람 중 하나였다.“나 대표.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나은희는 그의 질문에 서둘러 대답하지 않고 와인 한 잔을 들어 그에게 건넸다.“혹시 나하고 술이라도 한 잔 할까?”그녀의 의미심장한 표정에 허태준은 경계하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허태준은 나은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항상 무뚝뚝하고 공과 사가 뚜렷한 여성이었다.“허 대표 내 선의를 너무 의심하는 거 아냐? 난 그저 거래를 하자는 건데?”“무슨 거래?”“심유진 씨에 관해서.”심유진이라는 이름을 듣자 허태준은 주저하지 않았다.“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데, 당장 말해봐.”나은희는 허태준의 반응을 보고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는 듯 크게 웃었다.“일단 나한테 여형민 씨 개인 핸드폰 번호를 줘. 그럼 내가 유진 씨가 어디로 갔는지 알려줄게.”나은희의 말을 듣고 허태준은 술잔을 내려놓았다.“좀 곤란한데……. 심유진을 찾는데 굳이 다른 사람을 통할 이유는 없지.”그는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심유진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뭐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직접 심유진 씨에게 전화해보던가.”그녀의 태도에 허태준은 이상함을 느꼈다.허태준은 심유진에게 전화를 걸었고, 통화음이 몇 번 가기도 전에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다며 전화가 끊어졌다. 허태준은 고개를 갸우뚱하면 몇 번 더 전화를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그 모습을 본 나은희는 술을 한 모금 마시
정재하의 차는 지난번과 같은 은색 벤츠였다. 스포츠카라 그런지 아주 속도가 빨랐다. 바람이 거세게 불자 심유진은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추웠다.“속도를 좀 낮춰주시지요? 너무 추운데…… 그리고 이거 덮개는 안 닫혀요?”바람이 어찌나 부는지 심유진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비비안이 머리카락을 단단히 묶어줬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엉겨붙어 어떻게 변했는지 모를 일이었다.정재하는 뒤늦게 놀란 듯 덮개를 닫고 히터를 켰다.“오! 미안해요. 혼자 운전하는 게 버릇이 돼서!”심유진은 머리를 정리하며 괜찮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근데 유진 씨, 시간이 늦었는데 S 대학병원에 가서 뭐해요?”“그냥 일이 좀 있어요.”정재하는 그녀가 대답하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한 시간 후에 차는 S 대학병원 입구에 섰다.“오늘 감사했어요.”심유진이 차에서 내리려 하자 정재하가 그녀를 불러세우더니 자신의 외투를 벗어주었다.“밤에는 쌀쌀하니 이거 걸쳐요.” “아……”평소같았으면 거절했을 심유진이지만 날씨도 너무 추웠고, 옷도 얇아서 거절할 수가 없었다.**늦은 시간이라 병원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심유진은 조건웅이 있는 층으로 올라가 담당 간호사를 찾았다.“조건웅 씨 담당하시는 분 계신가요?”“전데요. 혹시 전 와이프 분?”심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어디로 가서 결제하면 되나요?”“지금 시간이 늦어서 원무과 직원들은 모두 퇴근했으니, 핸드폰으로 병원 어플 다운받아서 거기서 납부하시면 됩니다. 여기 조건웅 씨 진료카드 번호 입력하시고 비용 납부하시면 끝이에요. 그리고 이것만 있으면 다음 납부 때도 병원에 오실 필요없어요.”간호사는 서랍 속에서 QR코드를 꺼냈다.심유진은 조건웅과 이번 일을 마지막으로 다시 얽히고 싶지 않았기에 어플까지 다운받아가며 그의 병원비를 내주기 싫었다. 게다가 병원비 납부에 자신의 신용카드를 등록하면 매번 그의 병원비가 자신의 카드에서 빠져나갈
심유진이 병원에서 나오는 것을 본 정재하는 얼른 차에서 내렸다.“유진 씨!”그는 무슨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는 표정으로 손을 휘휘- 흔들었다.“아직 안 갔어요?”“아 그게…… 하하.”정재하는 한참 동안이나 실없이 웃어댔다.“허 대표님! 저한테 직접 전화를 주셨어요!” “아, 그래요? 왜 전화를 했대요?”“허 대표님이 저한테 유진 씨랑 같이 있냐고고 물으시더니 어디냐고 유진 씨를 데리러 오겠다고 했어요.” “지금요? 전화를 언제 받았는데요?”심유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유진 씨가 병원에 들어가자마자 허 대표님의 전화가 왔어요. 아마 30분 전이었죠.”심유진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이미 아홉시가 넘었다.‘그가 여기까지 오려면 적어도 한 시간이 걸릴텐데…… 게다가 파티가 일찍 끝날리 없잖아, 나 집에 너무 늦게 가는 거 아니야?’심유진은 서둘러 허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지금 어디야.”그녀는 허태준의 목소리에서 기분이 언짢음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여기 S병원이요. 근데 굳이 여기까지……”“지금 가는 중이야.”허태준의 말소리에는 약간의 바람소리도 뒤섞여 있었다.“오지 않으셔도 돼요. 여기 재하 씨도 같이 있어서 재하 씨가 저를 집에 데려다 주면 되거든요.”수화기 너머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그녀는 찬 바람에 몸을 떨며 정재하의 외투를 조금 더 졸라맸다.“나 지금 가고 있으니까 어디 갈 생각말고 거기 있어.”“그래도 굳이……!”그는 심유진의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심유진은 어두워진 핸드폰 화면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발만 동동굴렀다.정재하가 그런 심유진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싱글벙글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뭐라고 하십니까? 여기로 오신대요?”“네.”정재하는 환호성을 지르며 뛸 듯이 기뻐했다.두 사람은 추위를 피하기위해 차에 앉아 그를 기다렸다. 삼십분 후 병원 입구로 마세라티 한 대가 거대한 엔진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심유진은 한눈에 허태준의 차임을 알아보았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