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유진이 조금 버거워하자 허태준이 얼른 일어나 별이를 받아 안았다. “별아...” 허태준은 별이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파 목이 메었다. “삼촌.” 허태준은 별이 앞에서 눈빛에 어린 살기를 감추려 노력했다. 자신의 아들을 건드린 정소월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허태준은 별이를 자신의 무릎에 앉혔다. “아직도 아파?” 허태준이 별이의 눈물을 닦아주며 자상하게 물었다. 여형민은 그 모습을 보면서 입을 삐죽거렸다. 부자간의 정은 무시 못 한다더니 결벽증이 그토록 심한 허태준도 이 순간만큼은 결벽증을 극복한 것 같았다. 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방 안에 있는 세 명의 어른 모두 주먹을 꽉 쥐었다. 허태준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울분을 감췄다. “삼촌이 상처 좀 봐도 될까?” 허태준이 조심스레 묻자 별이가 또 고개를 끄덕였다. 허태준은 떨리는 손으로 별이의 옷을 들췄다. 허리와 등에 모두 멍이 가득했다. 허태준의 눈빛에 한기가 흘렀다. 옆에 앉아있던 여형민마저도 그 모습을 보며 표정이 굳었다. 허태준은 그 상처들을 만져보려다가 혹시 별이가 아파할까 봐 그만뒀다. “미안해.” 허태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사실 그는 아빠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얘기하고 싶었다. 정소월이 미웠지만 자기 자신이 더욱 증오스러웠다. 심유진은 허태준의 슬픔과 분노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가 왜 이토록 분노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별이와는 고작 몇 번 만난 것이 다인데 아무리 정이 들었다고 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식사 준비는 다 됐어요?” 심유진의 시선을 느낀 여형민이 물었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심유진은 그제야 하다 만 요리가 떠올랐다. “아니요, 별이랑 잠시만 놀아주세요.”심유진이 얼른 주방으로 들어갔다. 심유진이 간 뒤에야 허태준은 마음 놓고 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출 수 있었다. 아직도 눈물이 고여있는 눈으로 허태준을 바라보며 별이가 말했다. “삼촌은 아빠 같아요.” 허태준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심유진은 허태준과 여형민에게 저녁식사를 함께하자고 권했지만, 예상외로 그 둘이 먼저 거절했다. “일이 있어서 다음에 같이 먹어요.” 허태준은 말을 마치고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었고 눈빛에는 사랑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별아, 안녕,”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유달리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심유진은 갑자기 빨라지는 심장 박동소리에 얼른 고개를 숙이며 당황한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 했다. 여형민은 그런 심유진을 보며 생각이 많아진 것 같았다, 별이는 허태준에게 손을 저으며 작별인사를 했다, “삼촌, 잘 가.” 별이는 입맛이 없는지 몇 입 먹지도 않고 젓가락을 내려놨다. “나 배불러.” 별이가 눈치를 보며 다시 한번 강조했다. “정말 배불러.” 심유진과 하은설 모두 늘 별이에게 관대했지만 음식을 낭비하는 건 절대 용납하지 않았었다. 별이도 평소에 음식을 남긴 적이 없었지만, 오늘은 특수 상황이었기에 심유진도 뭐라 하지 않았다. 그냥 밥도 잘 먹지 못하는 별이를 보며 마음이 아플 뿐이었다. “배부르면 그만 먹어도 돼.” 심유진은 남은 밥을 자신의 그릇에 덜어놓았다. “TV 볼래? 애니메이션 틀어줄까?” 별이가 신이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기운을 차린 별이를 보며 심유진도 웃음을 지었다. 심유진도 식사량이 많은 건 아니었기에 남은 밥을 억지로 먹어버렸다. 별이와 함께 TV를 보다가 심유진은 해외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아 본사의 상사에게 오늘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상사도 심유진의 상황에 대해 매우 걱정해 줬다. “괜찮아요? 정 힘들면 다시 본사로 돌아올 수 있도록 제가 신청해 볼게요.”심유진도 본사로 돌아갈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정소월이 풀려날까 봐 두려워서였다. 허태준이 정소월을 풀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으니 이제 와서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괜찮아요. 근데 전에 제가 신청한 보디가드는 언제부터 출근이 가능할까요?”“내일이요.” 상사가 드디어 정확한 답변을 줬다.
심유진은 마음이 아팠지만 일부러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별아, 엄마한테 솔직하게 얘기해.” “나…” 별이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을 다 꺼내기도 전에 눈물이 먼저 흘렀다. “나도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어.” 울면서 얘기하느라 발음이 똑똑하지 않았지먼 심유진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방금 애니메이션의 내용이 원래는 고아였던 아이가 자신의 친아빠를 다시 만나게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 떠올랐다. 전에 하은설은 그 부분을 보면서 펑펑 울었었다. 하지만 심유진은 애초에 아버지의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친아빠를 찾는 것에 미련이 없었다. 그저 별이가 생각이 많아질까 봐 무서웠다. 하지만 전에 봤을 때 별이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심유진은 별이도 자신처럼 아버지의 존재를 딱히 바라지 않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오늘 보니 그 생각은 틀린 것 같았다. 아마 예전에 볼 때는 나이가 어려서 그랬을 것이다. “왜 아빠가 보고 싶어? 엄마랑 이모로는 부족해?” 심유진이 물었다. 사실 이런 순간을 대비하기 위해 심유진은 5년을 준비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매우 침착할 줄 알았는데 정말 일이 닥치니 당황스러워져 준비해 둔 대사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빠는 강하니까 엄마랑 나 지켜줄 수 있잖아.” 울먹이며 한 말이지만 심유진의 마음속에 가시가 되어 박혔다. 심유진도 눈물을 흘릴뻔했다. 심유진은 엄마도 널 지킬 수 있다고 얘기하려 했지만 오늘 그 일이 있고 나서 심유진은 자신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느꼈다. 그녀는 별이의 몸과 마음에 자신이 상처를 입혔다고 생각했다. “엄마…” 별이가 심유진의 손을 잡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아빠 찾아주면 안 돼?” 심유진운 거절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빠를 찾아주기도 싫었다. “엄마가 조금 생각해 봐도 될까?” “얼마나?” 은근슬쩍 미루려고 했는데 별이는 매우 날카로웠다. 심유진은 별이를 설득했다. “아빠를 찾는 일은 별이한테 장난감을
별이의 친아빠가 누구인지는 심유진조차도 아직 모르고 있는데 하은설이 어떻게 알수 있을까. 당황한 하은설이 별이에게 되물었다. “그건 왜?” “나 아빠 찾고 싶어.” 하은설은 깜짝 놀랐다. 일단 심유진에게 이 사실을 얘기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별이를 달래는 것이 먼저였다. “왜 갑자기 아빠를 찾고 싶은 거야?” 별이는 지금까지 한 번도 아빠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그냥.” 별이가 입을 삐죽거렸다. 한 번도 하은설에게 이렇게 얘기한 적이 없었던 아이였다. 다섯 살이 아니었다면 사춘기가 아닐지 의심했을 것이다. “그래도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은설이 별이를 살살 달래며 얘기를 들으려고 했다. 별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엄마가 혼자 고생하는 게 싫어.” 하은설은 순간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릴뻔했다. “이모도 별이 마음 다 알아.” 사실 하은설도 정말 별이와 같은 마음이었다. 전에도 여러 번 심유진에게 믿을만한 남자를 만나라고 얘기한 적 있었다. 하지만 심유진은 그때마다 거절했다. 아마 두 번의 혼인이 심유진에게 준 충격이 컸던 탓인지 심유진은 그 누구와도 감정을 쌓아보려 하지 않았다. “난 별이만 있으면 돼.”심유진은 항상 이렇게 말했지만 별이는 그게 아니었나 보다. “근데 아빠를 찾으려면 먼저 엄마랑 얘기해 봐야 할 텐데 얘기했어?” 하은설이 묻자 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생각해 보겠대.” 하은설은 심유진을 잘 알았다. 아마 당장 별이를 달래기 위해 해본 말일 것이다. 하지만 별이를 실망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럼 우리 엄마를 조금 기다려 볼까?” “이모.” 별이는 다 아는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속이지 마. 엄마가 아빠 안 찾아줄 거라는 거 나도 알아.” 하은설이 놀라서 얼른 해명했다. “무슨 소리야! 엄마가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면서. 그럼 꼭 약속을 지킬 거야.” 단지 그 생각의 결과가 별이가 원한 방향이 아닐
“이모 또 거짓말!” 별이가 화를 냈다. “거짓말 아니야!” 하은설이 두 손을 들어 맹세했다. 그러고는 그 책임을 심유진에게 넘겼다. “너네 엄마가 한 번도 알려준 적 없어.” 별이에게 사실을 알려줄 수는 없으니 이런 핑계를 댈 수밖에 없었다. 별이가 심유진에게 아빠가 누구인지 직접적으로 물어보지는 못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별이는 아직도 의심하는 눈치였다. “엄마랑 아빠가 결혼할 때도 못 봤어?” 결혼식을 할 때면 가족이나 친구들이 가서 축하해 주는 모습을 별이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봤었다. 엄마는 가족이 없고 친한 친구는 하은설뿐이니 결혼식에 이모가 참석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은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이모는 미국에 있고 별이 엄마는 국내에 있었어. 둘 다 바빠서 연락도 잘 못할 때여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도 못 들었고. 별이 엄마가 이혼하고 미국에 온 다음에 이모랑 다시 친해진 거야. 근데 별이 아빠에 대한 이야기는 한 적이 없고 이모도 물어보지 못했어. 그러니까 별아, 아빠는 안 찾는 게 어때? 엄마가 이혼한 것도 다 별이 아빠가 큰 잘못을 해서 그런 거 아닐까? 그러니까 별이가 아빠를 찾는 게 오히려 엄마를 속상하게 만드는 일일 것 같은데?” 별이는 그 말을 듣고 바로 아빠를 찾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그럼...” 하지만 별이는 새로운 방법을 찾은 것 같았다. “우리 엄마가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지 알아?” 사실 이 질문도 하은설은 대답하기 힘들었다. 심유진이 좋아했었던 남자는 두 명, 조건웅과 허태준이었다. 이 두 명은 성별만 같을 뿐이지 다른 부분에서는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심유진은 허태준을 조금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조건웅과 이혼하고 나서는 대구에서 계속 출근했으면서 허태준과 이혼하니 미국까지 날아온 것만 봐도 알수 있었다. “어... 잘생긴 사람?” 하은설이 대답했다. 허태준처럼 잘생긴 사람이라면 심유진은 좋아할 것이다. 별이가 그 말을 듣고 눈을 반짝였다.
하은설은 별이가 보낸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예전에 심유진을 졸라 허태준의 사진을 보내달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비록 그때 사진에서 본 사람보다 마르긴 했지만 누가 봐도 허태준이었다. 하지만 별이가 왜 허태준의 사진을 가지고 있는 걸까? 그때 별이가 또 문자를 보냈다. “이모, 왼쪽 삼촌은 어때? 잘생겼어?” 하은설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별이는 심유진과 허태준을 만나게 하려는것 같았다. 하지만 하은설도 심유진에게서 대략 저 둘의 이야기를 들었었다. 허태준은 마음에 두고 있는 첫사랑이 있었고 그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 심유진과 이혼했다. 심유진이 허태준에게 어떤 마음을 먹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심유진이라면 깨진 거울을 다시 붙이려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 삼촌은 잘생기긴 했는데 별이 엄마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야.”하은설은 별이를 설득하려 했다. 그 말을 듣고 별이의 어깨가 축 처졌다. “아... 하지만 이 삼촌은 내가 만났던 사람 중에서 가장 잘생겼는걸.” 엄마가 허태준조차 좋아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좋아할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별이가 만난 사람이 너무 적은가 보지.” 하은설이 별이를 위로했다. “그리고 이모가 알기로는 이 삼촌은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는 것 같던데?” “응?” 별이는 처음 듣는 얘기였다. 여형민 삼촌이 결혼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아마 놀이공원 밖에서 마주쳤던 이쁜 이모일 것이다. 하지만 태준 삼촌은... “아닐걸?” “사실이야.” 하은설이 진지하게 말했다.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봐.” 별이는 정말 물어보러 갔다. 다만 허태준이 아닌 여형민에게 물었을 뿐이다. “삼촌, 태준 삼촌은 이미 결혼했어요?” 아직도 여형민의 휴대폰은 허태준 손에 있었다. 허태준은 이 문자를 보자마자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여형민이 자신의 휴대폰을 다시 가져가서 문자를 확인하고 답장했다. “그건 왜 물어?”별이는 대답하기가 곤란했다.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진짜요?” 별이는 다시 희망이 생겼다. “그럼!” 허태준이 또 한 번 확신을 주자 별이는 기뻐서 침대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그러니까 이모 말이 틀렸다는 뜻이고 즉 태준 삼촌이 엄마가 좋아할 스타일이 아니라는 그 말도 틀릴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이런 결론을 얻자 별이는 힘이 불끈 솟아올랐다. 당장 엄마랑 태준 삼촌을 만나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조심스레 진행해야 했다.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안 됐다. 본사에서 신청해 준 보디가드는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심유진 집으로 왔다. 매일 출퇴근을 도와주던 기사님도 더욱 프로페셔널한 분으로 바뀌여졌다. 심유진은 조금이나마 덜 불안해졌다. 하지만 정소월의 판결이 나지 않았으니 완전히 걱정이 안 되는 건 또 아니었다. 어제 정소월이 경찰에 잡혀갈 때도 호텔에서 꽤나 큰 소동이 일었다고 한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이미 소문은 심유진과 별이랑 관련이 있는 일이라고 파다하게 퍼졌다. 심유진은 별이랑 호텔에 도착하고부터 주변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사무실에 도착하고 심유진은 웃느라 경직된 볼의 근육을 풀어줬다.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전화가 걸려 왔다. 경찰 두 명이 심유진을 찾아왔다는 전화였다. 어제 보안실에서 오늘 중으로 경찰들이 사건의 경과를 물어보러 방문할 것이라고 전달했었다. 심유진은 경찰들을 사무실로 모셨다. 하지만 경찰들은 심유진에게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별이에게 물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하게 말해줄 수 있을까?”심유진이 얼른 별이를 가로막았다.“어제 사건은 cctv에 이미 다 찍히지 않았나요?”별이는 아직 어리기에 심유진은 별이가 또다시 그 기억을 떠올리며 힘들어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미 cctv자료를 경찰에 증거자료로 제출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호텔방 안에 cctv가 없었어요.”경찰들도 입장이 난감했다. “저희는 정소월씨가 아드님을 방 안으로 데려가서 뭘 했는지 알아야 하거든요. 정소월 측 변호인의 입장에 따르면
하루가 지났는데 별이 몸에 생긴 멍자국들은 옅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짙어졌다. 경찰들도 그걸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잠시 옷을 벗겨주시겠어요? 사진 좀 찍겠습니다.” 심유진은 별이의 옷을 벗겨 상처들을 드러냈고 경찰들은 꼼꼼히 사진을 찍었다. “제가 방에 들어갔을 때 정소월이 저희 아들을 심하게 때리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달려가서 정소월이 행동을 멈추도록 끌어안았고요. 때린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증거는 없어요.” 심유진은 당시 동영상을 찍어두지 않은 것이 후회됐다. 하지만 별이를 구해야 했기 때문에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호텔 보안인원들이 들어와서 정소월을 제압했어요. 그때 심한 말들을 해서 참지 못하고 뺨을 때렸습니다.” 심유진은 솔직하게 얘기했다. “만약 그걸 고의상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네요.” 심유진의 침착함이 정소월과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그리고 누구를 대하든지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퍼붓는 정소월과 달리 아무리 화가 나도 예의 있고 조리 있게 얘기하는 심유진의 모습에 경찰들도 저도 모르게 마음이 심유진 쪽으로 기울었다. “상황은 잘 알았습니다. 혹시 사건수사에 다른 진전이 있으면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경찰들이 떠나고 심유진은 별이에게 옷을 다시 입히고 꼭 안아줬다. “아직 많이 힘들어?” 심유진이 걱정하자 별이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별이가 자신을 살짝 꼬집었다. 금세 눈에 눈물이 고였다. 심유진은 마음이 아프면서도 정소월을 향한 원망과 분노가 더 가득해졌다. “엄마, 나 피자 먹고 싶어.” 별이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그래.” 심유진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피자뿐만 아니라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엄마 최고!” 별이가 활짝 웃으며 심유진에게 입을 맞췄다. 그 웃음을 보니 심유진도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별이가 자신을 속이기 위해 연기를 하는 것이라는 걸 알아도 기꺼이 속아 넘어가 주고 싶었다. 별이가 기쁘기만 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