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하는 두사람의 대화를 듣고 낌새를 챘다.“연희야, 혹시 유진 씨가 네 언니라는 거야? 그럼 둘이 자매사이라는 거야? 어? 이렇게 보니 분위기가 닮은 것 같기도 하고?”정재하가 떠들든 말든 심유진과 심연희는 그를 상대할 시간이 없었다.“연희야, 이리와. 유진 씨 편하게 해드려야지. 그렇게 안고 있으면 네 옷도 망가지고 유진 씨도 난처해하시는 거 안 보여? 이리 와서 밥 먹자.”정재하는 심연희를 심유진에게서 떼어내려고 했지만 심연희는 꼼짝하지 않았다.“나 그럼 언니랑 같이 앉을래!”그녀는 심유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교태를 부리며 말했다.“그럴 필요……”심유진이 말을 하기도 전에 심연희가 허태준에게 다가가 자리를 바꿔달라고 했다.“허 대표님 자리 좀 양보해 주세요~”심유진은 허태준을 보며 제발 도와달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허태준은 웃으며 심연희와 자리를 바꿔주었다.심유진은 한숨을 내쉬며 심연희와 허태준이 자리를 바꾸는 것을 보았다.그녀는 내심 정재하가 나서서 심연희를 데리고 가주길 바랬다. 하지만 정재하는 눈치를 어디에 뒀는지 그저 허태준 옆에 앉는다는 생각에 들떠서 심연희는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아…… 오늘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심연희는 파티 내내 심유진 옆에 앉아 자신의 지난 얘기를 떠들었다. 심유진은 그녀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몇 년 묵은 얘기까지 토해냈다.심유진은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을 이 지옥 속에서 꺼내 줄 사람을 찾았지만, 아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근데 언니 방금 허 대표님이 언니보고 여자친구라고 한 거 말이야. 그거 사실이야?”심유진은 심연희의 물음에 무의식적으로 맞은편에 있는 허태준을 바라보았다.그는 우아하게 시선을 아래로 두고는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고, 그 옆에는 심연희 못지않게 재잘거리는 정재하가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심연희와 정재하가 같이 지내면 오디오 끊길 일은 없겠네.’멍하니 정재하를 보고 있던 심유진은 심연희가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정신이
심유진의 질문에 심연희는 입을 삐죽이더니 대답했다.“재하 오빠는 유학 때 만났어. 대학교에 소규모 클럽이 있었는데, 그 중에 나랑 재하 오빠 그리고 어떤 언니만 한국인이었거든 그래서 급속도로 친해졌지. 우리는 늘 함께 놀았고, 당시에는 호감만 있었지 사귀는 사이는 아니었어. 시간이 흘러 둘 다 졸업했고, 우연히 어느 술자리에서 오빠를 만나게 된 거야. 그때 운명이라고 느끼고 양가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교제를 시작했어.” 심연희는 준비된 문장을 읽든 아무 감정없이 후루룩 정재하와의 이야기를 뱉어 냈다.‘뭐야 무표정으로 연예사를 읊다니? 설마 심연희는 정재하를 좋아하지 않는 건가?’말을 마친 심연희는 심유진을 뚫어져라 보았다.“언니, 이제 언니 차례 아냐?”심유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연회장에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도 꽤 컸을 뿐 아니라, 테이블도 넓었기에 허태준은 그녀와 심연희가 대화하는 내용을 듣지 못할 것이다.심유진은 열심히 식사를 하는 허태준을 보며 “아무 말이나 해도 되겠다” 하고 안심했다.“태준 씨가 우리 호텔을 시찰하러 왔을 때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옆에서 호텔 소개를 했어. 당시에 나도 결혼 생활 마치고 솔로였고…… 힘든 와중에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태준 씨의 모습이 얼마나 멋있던지…… 그래서 내가 막 들이댔어.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마음으로 대시를 했지. 그도 내 진심을 알아봤는지 만나보자고 하더라고.”심유진은 꾸며낸 이야기라도 허태준의 체면을 살려주고 싶었다.“그래?” 심연희는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는 듯 다시 허태준 쪽을 한번 흘겨보았다.“허 대표님 그렇게 안 봤는데, 꽤 쉬운 사람이네?”심연희에 말에 심유진은 위기감을 느꼈다.“쉬운 사람 아니야. 얼마나 힘들었는데, 내가 얼마나 열심히 대시를 했는지 알면 아마 너도 놀랄 걸?”심연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웃음을 지었다.“아무튼 언니는 참 운이 좋네~”**시간이 흐르자 사람들이 얼추 밥을 다 먹고 일어났다.심
심유진과 허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본 심연희는 심유진의 팔을 껴안고 초롱초롱한 큰 눈을 깜박이며 기대에 찬 얼굴로 심유진을 바라보았다.“언니~ 오늘밤 같이 있어줘~ 나 이 호텔에서 묵을 게~”심유진의 모든 감각이 허태준이 감고 있는 손에 집중되어 있어서 심연희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정재하는 심유진에게 심연희의 제안을 거절하라는 눈짓을 계속해서 줬다. 그의 눈짓을 읽은 심유진은 조용히 팔을 뺐다.“아냐, 모처럼 대구에 왔는데 남자친구랑 보내야지.”“아 왜~ 오늘 내 생일이니까 내 소원 들어준다고 생각하고 들어주면 안 돼?”그녀는 볼에 바람을 넣고 두 눈을 부라리며 토라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러나 심유진은 그녀의 뻔한 수법에 넘어가지 않았다.“아니, 그건 아닌 것 같아.”심유진이 아무런 동요가 없자 심연희는 또 눈물을 글썽이며 심유진의 팔을 붙잡고 흔들었다.“아 언니 제발~ 한 번만!”심연희가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리려고 하자 정재하가 태도를 바꾸었다.“유진 씨, 연희가 이렇게 부탁하는데 한번만 들어줘요. 시간 잠깐 낼 수 있잖아요? 연희랑 시간 좀 보내줘요~”“누구 마음대로?”허태준의 언짢은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심연희 씨, 미안하지만 지금부터 심유진 씨는 나와 시간을 보낼 겁니다.”허태준이 심유진의 허리를 힘주어 감쌌다.심연희는 허태준과 심유진을 쳐다보면서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 그래요. 어쩔 수 없죠.”심유진은 그녀의 손에서 팔을 빼 정재하에게 팔짱을 꼈다.심연희는 떠나는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안녕, 언니~” 라고 마지못해 말했다.**연회장 밖의 공기가 안과 다르게 선선했다.같이 있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 둘러 쌓였다가 해방이 되어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고마워요.”심유진은 고개를 쳐들고 허태준에게 말했다.“고맙긴?”“나 민망하지 않게 해준 것도, 그리고 이렇게 나올 수 있게 도와준 것도……”“이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닌
“맞아요. 부산에서 나고 부산에서 자랐죠. 하지만 대학을 대구로 와서 여기서 일도 구하고 정착한 거예요. 그 후로는 부산에 갈 이유도 갈 필요도 없었고요.”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말했다.평소답지 않게 단호한 그녀의 모습에 허태준은 잠시 멈칫했다.“그럼 대학 입학 이후에는 가족들과 연락하지 않고 산 거야? 아까 심연희 씨가 당신을 찾았다고 하던데.”심유진은 한참 후에 대답했다.“맞아요.”“왜?”허태준은 사실 그녀가 가족들과 연락하지 않은 이유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그는 그녀가 직접 말하는 것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심유진은 입을 열지 않았다.두 사람 사이에는 긴 침묵이 흘렀다. 심유진은 어색한 침묵을 견디기 힘들어 호텔 밖으로 나왔다.“근데 허태준 씨 부산으로 출장 간 거 아니었나요? 설마 정재하 씨 파티 때문에 온 거예요?” “맞아.”그녀는 허태준이 정재하에게 그녀를 위해서 돌아온 것이라고 말한 것이 믿기지 않았다. “아 대구에 볼 일이 있어서 겸사겸사 온 거야.”심유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동시에 약간의 실의에 빠졌다.**허태준은 심유진을 집까지 바래다주었다.그가 모는 차는 여전히 원래의 그 마세라티였다. 그가 그녀를 위해 산 롤스로이스는 장식품처럼 한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심유진은 매번 그 롤스로이스를 지나칠 때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했다.허태준도 그녀가 불편해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불편해할 필요 없어. 여형민 주면 되니까.”“……”“앞으로 네가 원하지 않는 건 강요하지 않을 게.”‘그게 내 마음이라고 할 지라도 말이야.’**다음날.객실을 확인하던 심유진은 우연히 심연희와 마주쳤다.심연희는 즉시 그녀의 팔을 껴안으며 “언니~” 라고 말했다.심유진은 심연희가 살갑게 다가올수록 마음이 불편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심연희는 턱을 그녀의 어깨에 대고 계속 눈을 깜박거렸다.“언니 시간 있으면 대구 좀 구경 시켜줘!”심연희의 말에 그녀는 머리가 지끈거렸다.그녀는 심연희가 빨리 돌아가길 바라
오후에 심유진은 총 지배인의 호출을 받고 사무실에 들어갔다.뜻밖에도 심연희도 그곳에 있었다.이번에 심연희는 심유진을 보고도 그녀를 '언니' 라고 부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살갑게 다가오지도 않았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 정숙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총 지배인은 그 두 사람의 관계가 자매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심 매니저, 여기는 심연희 씨라고 해요.”“아……”“심 매니저, 여기 심연희 씨가 대구에 놀러왔는데 어디를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셔서 내 생각엔 심 매니저가 심연희 씨를 데리고 여기저기 구경을 다니면 좋을 것 같은데요?”심유진은 총 지배인의 말을 듣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심연희…… 보기보다 영악하구나. 그때 그 어리고 멍청하던 중학생이 아니야.’심유진은 심연희의 기묘한 미소를 보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총 지배인이 저렇게까지 얘기하는데 심유진이 거절할 방법이 없었다.“그럼 심 매니저? 저랑 같이 구경하려면 카카오톡 추가해야 겠네요?”심연희는 자신의 카카오톡 아이디를 그녀에게 알려주었다.“아, 그래야 겠네요.”심유진은 어쩔 수 없이 심연희의 카카오톡을 추가했다.**심유진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심연희의 앞에서 걷고 있었다.“언니 화났어?”심유진은 뒤를 돌아 심연희를 쳐다보더니 이내 다시 앞만 보고 걸었다. “언니, 나 다른 뜻이 있었던 건 아니야! 난 그저 언니랑 시간을 좀 보내고 싶어서 그랬어. 내가 무례했다면 미안해.”“응 맞다. 무례했지. 내 직장에서 지배인님까지 끌어드려서……”“미안 미안! 언니 용서해줘……”심유진은 심연희에 사과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심연희는 그녀에게 카톡을 보내기 시작했다.[언니 화 풀어라ㅠㅠ][난 언니가 좋단 말이야!][내가 잘못 했어 언니!]끊임없이 울리는 진동에 심유진은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두드렸다.[화 안 났어.]그러자 심연희가 그녀의 옆으로 다가와 방방 뛰었다.“언니 그럼 화 안내는 거지?”“응 그래.”“야호!”“그럼 어디 갈래? 어디 가고 싶은데?”
“그럼 어쩔 수 없지. 셋이 먹어도 좋아~”**다음 날. 심유진은 심연희와 아침 8시에 로열 호텔 문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7시 50분에 도착한 심유진은 심연희에게 카톡을 보냈으나 심연희는 답장하지 않았다.그녀는 차 안에 앉아서 줄곧 8시 10분이 될 때까지 기다렸지만, 심연희는 나오지 않았다.심유진은 심연희에게 전화를 걸었고 한참 통화음이 연결되다가 끊어졌다.“우웅, 여보세요?”심연희의 목소리는 아직 잠이 덜 깬 것이 분명했다.심유진은 화가 났지만 조용히 그녀에게 말했다.“지금 8시 10분이야.”“응? 정말? 10분만 더 잔다는 걸 내리 자버렸네!”“그럼 빨리 일어나. 아침 뭐 먹을래? 먼저 사둘 게.”심유진은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빵이랑 커피 부탁해 언니~ 사랑해!”심유진은 심연희의 애교에 문득 자신이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랐고, 이런 친동생이 있었다면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됐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심유진은 복잡한 가정사를 가졌기 때문에 그녀는 심연희를 진심으로 동생처럼 대할 수 없었다.게다가 심연희가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이러는 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로열 호텔은 투숙객에게 아침식사를 매일 제공한다. 한식부터 중식 일식 등 모든 것이 갖춰져 있다.심유진은 호텔 로비를 지나쳐 레스토랑에 들어가 빵 몇 가지와 커피를 내려 테이크아웃 용기에 담았다. 심유진이 모든 준비를 마쳤는데도 심연희는 나타나지 않았다.그녀는 심연희에게 카톡을 보냈다.[언제 나와?]한참 후 심연희에게서 답장이 왔다.[나 아직 화장하고 있어~10분 정도 걸려.][커피 식겠어 빨리 내려와.][금방 갈게 언니~ 미안 미안]심연희는 이렇게 대답했지만, 30분 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심유진의 참을성이 바닥 나기 직전 엘리베이터 쪽에서 심연희가 느릿느릿 걸어왔다.10월 말의 날씨는 선선하다 못해 약간 썰렁하게 느껴졌다.심연희는 분홍색 기모 맨투맨에 청바지 그리고 흰 운동화를 신었다.심유진은 걸어 나오는 심연희를 보고 차
“자, 아침식사.”심유진은 몸을 돌려 뒷좌석에 있는 봉투를 가져와 먼저 손으로 만져 보았다.“히터 켜 둬서 식지는 않았을 거야.”눈웃음을 머금은 심연희는 빵과 커피가 들어있는 봉투를 받아 들고서 천천히 차 내부를 살펴보았다.“근데 언니, 왜 이렇게 싼 차를 몰고 다녀?”그녀는 아무 뜻없이 물었겠지만 심유진은 그녀의 말에 기분이 상했다.“엄마가 그러는데, 언니가 집을 떠날 때 2억 정도 줬다 던데?”심연희의 말에 잊고 있던 과거가 떠올랐다.그 은행 카드는……그녀가 대학을 졸업하고 막 호텔에 들어가 일할 때였다.어느 날 그녀의 엄마가 갑자기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유진아, 아빠랑 동생 모두 너 보고싶어 하니까, 언제 집에 한 번 오지 그러니.”심유진은 엄마의 말을 반신반의했지만 아직 연을 끊은 것은 아니기에 쉬는 날 집에 찾아 갔다.사영은은 그녀를 데리고 백화점에가 옷도 사주고, 화장품도 사주고,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사주었다. 그러더니 조용히 카드를 꺼내 그녀에게 주었다.“이 카드 비밀번호는 네 생일이야. 여기에 2억 들어있어.”그 순간 심유진의 눈물은 왈칵 쏟아질 뻔했다.그녀는 사영은이 자신의 생일을 잊어버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너는 나의 친딸이야. 내가 어떻게 너의 생일을 잊을 수 있겠니?”그녀는 집에 돌아가 침대에 누워 그동안 자신이 엄마를 오해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이런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사흘째 되는 날, 사영은은 자기한테 혼사를 주선해주었는데 남자 측이 YT 그룹의 이사라고 알려주었다.“그 남자 쪽이 조건이 너무 괜찮아서 그래. 너도 평생 호텔에서 일하며 지내는 것보다는 사모님 소리 들으며 지내야 지 않겠어? 엄마가 너 생각해서 그러는 거니까. 한번 만나봐.”“……”“근데 남자가 나이가 좀 있다더라. 근데 성공한 남자 중에 젊은 남자가 어디 있겠니? 그냥 인생 핀다 생각하고 만나는 게 어때? 얘, 네 덕에 엄마도 호강 좀 해보자!”그날 심유진과 사영은은 크게 다투었다.사영은은 그녀를 때리고 욕하
“역시 내 생일을 모르는 게 틀림없어. 설마 고의로 속인 건가?”심유진은 사영은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그녀에게 카드를 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는 가위로 카드를 반으로 잘랐다.**“그 카드? 없어.”“그 안에 든 돈도 안 썼어?”“……”“언니는 왜 엄마랑 아빠를 미워해?”심유진은 심연희가 몸만 컸지 정신 상태는 아직 중학생에 머문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심연희는 눈을 한번 깜빡이자, 눈물이 마치 끈 떨어진 구슬처럼 주르르 흘러내렸다.“사실 엄마랑 아빠도 언니를 거기로 시집보내고 싶었겠어? 하지만 그 남자 돈도 많고…… 일단 결혼만 하면 언니가 일 안하고 지내도 되니까 편하게 살라고 그런거지. 엄마 아빠도 다 언니 생각해서 그런 거야.”심연희의 말은 사영은과 똑같았다.심유진은 목구멍까지 ‘그럼 네가 시집가지 그랬어.’ 라는 말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아, 그래. 근데 난 늙은 사람은 싫어.”심유진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심연희는 코를 한번 훌쩍거리더니 차에 있던 티슈를 한 장을 꺼내 눈물을 닦아냈다.“근데, 언니도 참 운 좋다! 그때 그렇게 시집갔으면 허 대표님을 만날 수나 있었겠어? 언니도 대단해 정말!”“그래.”심유진은 선글라스를 머리에 얹고 핸들을 잡았다.**하루 동안 심유진은 심연희와 함께 대구의 유명한 관광지 그리고 성심당까지 두루 둘러보았다.저녁 먹을 무렵 심연희는 정재하의 전화를 받았다.“언니 어쩌지? 재하 씨가 저녁에 일이 생겼다네?”“그래? 그럼…… 우리끼리라도 먹어야 하나?”저녁 시간이 되자 그녀는 심연희에게 물었다.“음…… 밥 생각 없는데.”“그럼 아무것도 안 먹는다고?”심연희는 가만히 창밖을 보더니 바깥 표지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언니 우리 술이나 마시러 갈까?”심유진은 고개를 돌려 거리를 살펴보았다. 이곳이 바로 이름난 동성로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었다.동성로는 대구에서 ‘술집 거리’로 유명하며 대구의 미남 미녀들이 모이는 곳이다.동성로에는 사람이 많아 차가 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