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씨 가문의 사람들이 얼마나 바쁜 사람들인지 알기나 해요? 모든 걸 다 기억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요. 난 분명히 어제 오늘 병문안을 오겠다고 말해뒀어요. 병실 호수까지 알고 있다고요. 2505호, 맞죠?” “죄송하지만, 저희는 미리 연락받은 게 없습니다. 환자의 가족분들이 너무 바빠서 잊어버리신 모양이네요. 아니면 여사님께서 다시 한번 환자의 가족분께 전화해서 허가를 받아주시겠어요?”수간호사는 고집했다. ‘이 병동에 있는 환자들은 모두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이야. 내 마음대로 들여보낼 수는 없어.’ 수간호사가 계속
이곳에서 계속 주희진을 기다렸다고 말할 수 없었던 윤수정이 재빨리 핑계를 대며 설명했다. “저희 둘째 아들이 몸이 아파서 이 병원에 입원해 있거든요.” 인상을 찌푸린 주희진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임영은을 떠올린 그녀가 공감과 걱정을 담은 표정으로 윤수정을 바라보며 말했다.“아드님은 좀 괜찮으세요?”“상황이 그리 좋지 않네요.” 주희진이 말을 걸어오자, 윤수정이 은근히 기뻐하며 몸을 돌려 그녀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의사도 이유를 알 수 없으니, 진통제와 신경안정제로 상태를 안정시킬 뿐이니까요.” “정말 심각하신
좋지 않은 예감을 느낀 주희진이 눈을 깜박거리며 물었다. “윤 여사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윤수정이 일부러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여사님, 여사님도 저도 가십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제가 내뱉는 말들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건 원치 않아요. 오늘 저를 만났다는 것도, 제가 했던 말도 다 잊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윤수정이 이렇게 말할수록 주희진은 더욱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염초설이랑 문소남이 남에게 알릴 수 없는 관계라는 겁니까?” “여사님도 알고 계셨어요?” 곧장 자신의 입을
전화를 끊자마자, 윤수정의 핸드폰이 또 울렸다. 수신 버튼을 누른 그녀가 귀찮다는 말투로 말했다. “무슨 일이에요?”[사모님, 큰일 났어요. 재훈 도련님께서 정신을 차리셨는데, 또 온몸에 경련이 일어났어요!]수화기 너머에서는 간병인의 다급한 목소리와 참을 수 없는 통증에 울부짖는 송재훈의 고함이 들려왔다. 조금 전까지 득의양양하던 윤수정의 마음이 순식간에 흐트러졌다. 그녀가 엘리베이터로 돌아가 잽싸게 위층을 누르며 말했다.“당장 의사를 부르세요. 나도 지금 바로 올라갈게요.”...주희진은 병원을 떠난 뒤에도 윤수정이
“하지만 원아는 아직 외국에 있잖아요. 우리가 연락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주희진도 남편의 의견에 동의하는 듯했다. ‘두 사람의 결혼을 위해서라면 원아를 돌아오게 하는 수밖에 없어. 계속 같이 살기로 결정하든 이혼하기로 결정하든, 소남이가 혼자 결정하게 둘 수는 없잖아.’ ‘하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원아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거야.’ “그건 그렇지. 하지만 지난번에 원아가 우리한테 국제 택배를 보냈었잖아? 친구한테 그 주소에 대해서 알아봐 달라고 할게. 그러면 원아한테 연락할 방법을 찾을 수
원아가 승낙하자, 주희진이 임문정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초설아, 이만 끊을게. 오늘 저녁에 보자.” [네.] 원아가 말했다.주희진이 먼저 전화 끊었다.상황을 지켜보던 임문정이 물었다.“소남이도 같이 부를까?”“소남이랑 초설이가 같이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고 싶은 거죠?” 주희진은 남편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임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지난번에 두 사람이 같은 침실에서 하룻밤을 보냈을 때 이미 수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소남이의 인품을 생각해서 의심을 거뒀었잖아요.”주희진이 임
‘부드러운 표정만 보다가 저렇게 냉담한 표정을 보려니까 익숙하지 않네.’ “대표님, 혹시 제가 퇴근하기를 기다리시는 거예요?”소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은 이미 장 기사가 별장으로 데려갔어요.” 납치를 당하기 전의 원아는 야근한 적이 없었고, 일이 많을 때는 일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었다. 왜냐하면 일이 많을지라도 아이들을 소홀히 하지 않고, 일보다 아이들을 더욱 중시한다는 것을 문씨 가문의 식구들에게 증명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주희진의 요청을 받아 임씨 저택에 방문할 계획이라는 사실을 문소남에게 알리지
원아의 시선이 월계화에 향한 것을 본 임미자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사모님께서 잘 관리하셨으니, 내년에도 분명히 화려한 꽃이 필 겁니다.” “네, 항상 월계화에는 최선을 다하시니까요.” 원아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놀란 임미자가 초설을 바라보았다. “교수님, 저희 사모님에 대해서 정말 잘 알고 계시네요. 사모님께서는 확실히 최선을 다하십니다. 며칠 전 시간이 나셨을 때 이 월계화를 다듬기도 하셨거든요. 사모님께서도 내년 봄철이 지나면 아주 예쁜 월계화가 필 거라고 하셨습니다.” 임미자의 말을 들은 원아가 미소를 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