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숙은 시아버지의 무서운 얼굴에 더는 아무 말 하지 못했다. 그녀는 칼과 포크를 들고 접시에 놓인 고기를 썰었다. 마치 그것을 원아로 여기고 화풀이를 하는 것 같았다. 채은서는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인 듯 아무렇지 않아 보였지만, 속으로는 냉소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시아버지는 이미 문씨 집안에서 원아의 지위를 인정한 것 같았다. 장인숙처럼 멍청한 여자만 고집을 부리며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그녀는 장인숙과 원아 사이의 갈등이 여전한 것을 보며 그것이 더 심해지기를 바랬다. 소남은 냅킨으로 입과 손을 닦은 후 원아의 손을
임영은은 최근 며칠 동안 계속 악몽을 꾸었다. 자기가 저지른 악행이 들통 나는 바람에 양부모에게 버림받는 꿈이었다.꿈에서 원아는 임씨 집안으로 돌아왔고 승리자의 모습으로 자신을 조롱했다. 영은은 다시 굶주림과 추위가 가득한 삶으로 돌아가 고아가 되어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친딸을 찾았음을 환영하는 파티 이후로 영은은 제정신이 아니었다.주희진도 더는 그날의 일에 관해 묻지 않고 집에만 머물렀다. 그녀의 한숨은 날로 더 깊어졌다. 점심 때쯤, 영은은 식은땀을 흘리며 악몽에서 깨어났다.원래는 아늑했던 방이 지금은 이상하게도
원아는 주소은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떨어뜨렸다. 그녀는 다시 전화를 주울 틈도 없이 다급히 물었다.“언니, 지금 어디에 있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인데요? 언니가 있는 위치를 지금 빨리 말해줘요”“나, 나는…….”소은은 숨이 찬 듯 헐떡이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것 같았다.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멀리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빨리 잡아! 묶어서라도 병원으로 데리고 가! 주소은, 네가 순순히 말을 들으면 배 속에 있는 두 아이 중 한 명은 지킬 수 있을지 몰라. 하지만 끝까
수십조가 걸린 비즈니스 사업을 협상할 때도 담담하기 그지없었던 동준은 주소은이 현재 처한 상황을 생각하니 심장이 떨려왔다. 그는 주차장으로 쏜살같이 달려가 시동을 걸고 속도를 최대한으로 내 달렸다.소남도 그의 뒤를 따랐다.소남은 이번 일에 딱히 개입해야 할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주소은은 T그룹의 직원인 데다 직원을 보호하는 것은 대표로서의 책임이기도 했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더군다나 주소은은 원아와 사이가 좋은 동료 이상의 친구였다. 만약 자신이 그녀가 위험에 처한 것을 모른 척한다면, 원아에게 평생 용서받지 못할지도
주소은은 수술 침대로 옮겨졌다.절망의 눈물이 그녀의 시야를 가리며 눈가를 따라 끝도 없이 흘러내렸다. 지금 그녀는 속으로 동준이 자신을 구하러 오기를 간절히 바랐다.하지만 그 역시 자기 아들의 목숨을 구하는데 급급해 백문희처럼 아기의 골수를 이식하고 싶어 했다. 그날 소은은 아이의 아버지가 동준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 한편으로 기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동준은 자신에게 잔인한 결정을 요구했다.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전에 동준은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고 아이에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그래서 소은도 마음이 점차 열렸고
동준은 오토바이를 타고 신호도 무시한 채 차들 사이로 속도를 최고로 끌어올려 달렸다.그가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자 주변의 차들이 그와 부딪치지 않으려고 핸들을 급히 꺾는 바람에 오히려 사고가 날 뻔했다.[“X발, 죽고 싶어?][미친놈! 죽으려면 혼자 죽을 것이지, 왜 다른 사람까지 끌어 들이는 거야!]운전자들의 욕설이 동준에게 날아들었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절망에 잠긴 주소은의 모습뿐이었다.사실, 동준도 소은의 배 속에 있는 아기의 골수를 재원에게 이식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생각일
백진희는 질투심 때문에 아이를 거칠게 다루었다.갓 태어난 아기는 그녀의 손에 눌려 숨이 막히자 죽을힘을 다해 울어댔다.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주소은은 얼굴이 창백해지며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그녀는 아픈 몸으로 슬픔에 몸부림치며 소리를 질렀다.“백문희, 내 아기를 놓아줘! 내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당연히 이 아이가 해야 할 일을 해야지! 골수이식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아니야!”백문희는 무표정한 얼굴로 십 센티가 넘는 뾰족한 하이힐을 또각 거리며 아이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그녀의 품에 안긴 아이는
주소은은 병상에서 링거를 맞으며 옆에 누운 딸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겪었던 위험했던 장면을 떠올리니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숨조차 쉬기 어려울 지경이었다.그녀는 손을 내밀어 잠든 아기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이 아이가 첫째야. 둘째는 첫째만큼 발육 상태가 좋지 않대. 일부러 출산을 유도한 거라 생명이 위독한 상태야. 지금 응급수술하고 있어…….”아픈 둘째 딸을 생각하자 소은은 가슴이 칼에 베인 듯 아파왔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원아는 얼른 휴지를 꺼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언니, 아기는 괜찮을 거예요. 출산
소남의 앞에서 원아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없었다.“출근하기 싫은 거예요?”소남은 그녀의 말을 겉으로는 믿는 척하며 물었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원아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전날부터 출근 준비를 했던 그녀가, 단순히 출근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지을 리 없었다.‘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 같아. 하지만 아침부터 무슨 일이 생긴 거지?’소남은 속으로 궁금해하면서도 원아를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원아는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굳이 진실을 캐
“이건 장기적인 투자예요.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거고, 게다가 당신이 진행 중인 연구도 이제 상용화될 때가 됐어요.” 소남은 원아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살짝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원아가 진행한 연구는 몇 차례의 임상 실험을 통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었다. 그 후 회사의 마케팅팀이 시장 조사를 했고, 적절한 가격 조건만 맞으면 대부분의 의료 기관이 그 약품을 대량으로 구입하여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시장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원아는 소남의 가까운 존재감에 살짝 혼란스러워하며 나지막이
소남은 설계 도면을 디스크에 저장한 후, 모든 자료를 서류 봉투에 넣었다. 모든 작업을 마친 그는 원아도 샤워를 끝냈을 것이라고 짐작하며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그는 문을 열고 들어갔고, 원아는 이미 샤워를 마치고 화장대 앞에서 꼼꼼하게 스킨케어를 하고 있었다.원아가 고개를 돌려 소남을 보며 말했다. “다 출력했어요?”“다 출력했어요.” 소남이 대답하며 다가 갔고 원아가 일어서자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 “아까 에런한테서 전화가 왔어요.”“무슨 일이죠...” 원아는 갑작스러운 불안감을 느꼈다. 이런 시간에 에런이 전화를
원아는 설계도를 꼼꼼히 살펴보았다.ML그룹의 입찰 이후, 소남이 이렇게 공들여 건축 설계도를 완성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설계도의 세부 사항 하나하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대표님, 이 설계도 정말 멋져요!” 원아는 감탄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을 하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원아는 생물제약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지금은 소남의 건축 설계도에 감탄하고 있는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소남 씨가 방금 내가 한 말을 듣고, 내가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텐데. 안 그러면
눈이 녹으면서 날씨는 평소보다 더 쌀쌀해졌지만, 이연의 마음은 따뜻했다.예전에는 이연이 감히 송씨 가문 사람들을 마주할 용기도 없었고, 이런 일들을 처리할 결심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욱의 사랑이 이연의 결심을 굳건하게 해주었다. 즉,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현욱 씨...” 이연이 나지막이 말했다.“난 항상 여기 있어.” 현욱은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혹시 내가 도울 일이 생기면 꼭 말해줘요.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똑똑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당신을 도울 거예요.” 이연은 결심하
현욱이 그런 표정을 짓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원아는 그가 무언가 중요한 일에 직면해 있음을 직감했다.“그렇겠죠.” 비비안도 원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2층.현욱은 소남을 찾아가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소남은 현욱의 계획을 듣고 나서 얼굴이 굳어졌다.“알겠어. 앞으로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이번에는 형님의 도움이 정말 필요해요. 저도 이번만큼은 절대로 사양하지 않을 거예요. 형님은 제 편에 단단히 서주기만 하면 돼요.” 현욱은 말했다.소남의 지지가 있다면, SJ그룹은 쉽게 무너지지 않
막 앉았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는 윤수정에게서 온 것이었다. 재훈은 전화를 받지 않고, 대신 윤수정에게 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형이 확실히 모든 개인 서류들을 전부 다시 발급한 것 같아요. 그 시기가 꽤 이른 편이었는데, 그때는 우리가 이연을 경계하지 않았을 때였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가 이 문제를 잘 처리하실 거예요.]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재훈은 핸드폰을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송현욱과 이연... 너희 둘이 결혼을 했다고 해도, 내가 너희들을 행복하게 내버려 둘 것 같아!’‘
“할아버지, 지금 금고에 있는 형의 모든 개인 서류를 가지고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아마 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서류들뿐일 거예요. 할아버지께서 형한테 정략결혼을 추진하실 때, 형은 이미 그때 모든 개인 서류를 다시 재발급 신청을 해서 새롭게 발급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재훈은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최대한 차분하게 송상철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송상철의 얼굴은 화가 난 나머지 핏발이 부풀어 올랐고, 유 집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현욱이 이 녀석 당장 데려와.”“예, 어르신.” 유 집사는 이번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재훈이 지난번 T그룹의 입찰사업계획서를 훔치려다 실패한 일이 있었고, 그는 그 책임을 부하에게 돌렸지만, 송상철은 여전히 그 일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재훈은 지금 자신이 직접 모든 것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네 엄마는 깨어나긴 한 거야?” 송상철이 다시 물었다.“예, 깨어나셨어요.” 재훈은 거실에서 최대한 인내심을 갖고 서 있었다. 송상철이 모든 질문을 끝내야만 재훈이 서재로 가서 금고를 열 수 있기 때문이었다.송재훈은 송상철의 모든 질문이 끝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며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