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는 결국 아이를 지킬 수 없었다. 원아가 병실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순식간에 더 야위어 있었다. 창백한 얼굴은 더욱 연약해 보였다.그녀의 손바닥만 한 작은 얼굴에는 잿빛 절망이 가득했고, 눈빛은 텅 비어, 마치 영혼이 떠난 사람 같았다.“보라 씨…….”원아는 그녀를 바라보며 마음이 아파 그녀의 가녀린 팔을 가볍게 쥐며 위로했다.“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몸조리도 잘해야 해요. 지금 당신 몸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아이는 앞으로 또 낳을 수 있을 거예요…….”“아니요. 앞으로 더는 아이를 갖지 않을 거예요…….”
원아가 근거 없는 소문으로 난처했던 것은 출근 첫날뿐이었다. 물어볼 것도 없이 문소남이 힘을 쓴 것이었다. 원아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은 결과를 기다리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최근 서현과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었다. 하지만 이제 원아는 그런 것들이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녀는 결코 나약한 여자가 아니었다. 이전에는 서 팀장이 자신의 상사이기 때문에 되도록 피하고 싶었지만, 이번 일로 깨달은 바가 있었다.동준으로부터 전해 들은 소식은 원아의 마음을 진작시키기에 충분했다.큰 상을 걸면
하지윤은 천천히 일어나 서현의 앞으로 걸어갔다.서현은 몸이 떨려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하 부장님,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어떻게 이렇게까지 하세요?”하지윤은 눈을 감고 말했다.“서 팀장, 지금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는 거예요? 난 가만히 있는데, 당신이 날 건들었잖아요.”하지윤의 눈에 서현은 말 잘 듣고 이용하기 좋은 애완견 같은 존재일 뿐이었다.마음에 들면, 맛있는 ‘고기’를 몇 입 먹게 하고 그렇지 않으면 버리면 되는 거였다.만약 서현이 자신을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진작 버려졌을 것이다
서현은 원아의 마음이 여린 편이며, 문 대표가 그녀를 끔찍이도 사랑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원아가 자신을 도와준다면 하직 한 가닥 희망은 있는 셈이었다. 서현은 이제껏 원아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입장이었다. 자존심이 센 그녀가 부하 직원에게 사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그러나 지금은 그것 외에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하지만 서현을 바라보는 원아의 얼굴은 냉정했다. “이 사건은 시험 주최 측에게 결정권이 있어요. 저에게는 아무런 권리가 없다는 말이에요.”눈물로 화장이 지워진 서현의 얼굴은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원아는 마침내 부정행위를 했다는 모함에서 벗어나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직접 소남에게 저녁 식사를 만들어 주기로 했다. “내가 도와줄게, 당신 혼자 너무 힘들어.” 소남은 채소 씻는 것을 도와주려고 팔을 걷어붙였다.하지만 원아는 그를 서재로 내쫓았다.“당신은 먼저 회사 일부터 처리해요. 저녁 준비는 혼자서도 충분해요. 아주머니도 도와주실 거고요. 당신이 여기 있으면 괜히 방해만 돼요.”원아는 그가 며칠 전 자신을 위해 여행을 가느라 밀린 일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비록 임신 중이었지만, 아직 활동하는
두 사람이 식탁에 앉은 것은 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원아는 저녁을 먹는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계속해서 얼굴이 화끈거렸기 때문이었다.그녀는 두 손이 시큰시큰하며 아팠다. 조금 전까지 그를 위해 손으로 그의 욕구를 해결하도록 도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손으로 밥을 먹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러나 소남의 표정은 오히려 편안하고 즐거워 보였다. 가끔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아 원아는 몸 둘 바를 몰랐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두 사람은 독립된 공간에 가서 휴식을 취했다. 아무도 방해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소남
약속한 토요일이 되었다.원민지와 원아가 함께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기로 약속한 날이었다.일이 있었던 소남은 기사 민석에게 원아를 태우고 병원에 가달라고 부탁했다.그는 원아에게 검사가 끝나면 반드시 결과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달라고 했다.병원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고모는 전화를 걸어 자신은 6번 건물의 606호에 있으니 그곳으로 오라고 했다.원아는 고모가 알려준 대로 6번 건물로 향하던 중 잔디밭 쪽에서 정장 차림의 주희진을 보았다.그녀는 가슴에 손을 올리고 얼굴이 일그러진 채 황급히 외래 진료 건물 쪽으로 달려갔다.그리
원아는 간호사의 말에 주희진을 한 번 보고 미소를 지었다.“간호사님이 착각하셨나 봐요. 이분은 임 지사님 사모님이세요. 저희는 모녀 관계가 아니에요…….”앳돼 보이는 얼굴의 간호사는 주희진의 팔에서 주삿바늘을 빼면서 민망한 듯 미소를 지었다.“아, 죄송합니다. 두 분이 너무 닮아서 제가 착각했어요…….”원아도 그녀의 말에 웃으며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주희진은 달랐다.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원아를 바라보았다. 왜 사람들이 자신과 원아의 사이를 모녀 관계로 착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 수희도 원아를 처음 보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