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남은 차의 속도를 더 올렸다.영은은 멀미가 나 토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지를 생각해 참느라 죽을 맛이었다. 소남이 일부러 차를 빨리 몰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이 여자와 빨리 헤어지고 싶은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속도를 높였다.“소…… 소남 씨…… 좀 천천히 운전하면 안 될까요? 제가…… 멀미가 좀 나서…….”영은은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마치 자동차 경주처럼 빠른 속도는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소남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난 이런 속도를 좋아해.”영은은 마음이 불편했지만, 소남의 말을 듣고는 불만
“아가씨, 왜 그러세요? 무슨 일이에요?”“아니…… 아니에요. 그냥 좀 어지러워서 그래요. 좀 쉬고 싶은데, 다른 방부터 청소하시겠어요?”영은은 할 수 없이 거짓말을 하며 진정하려고 애썼다. “네, 아가씨, 무슨 일이 있으면 절 꼭 부르세요. 집에 계속 있을테니까요. 아셨죠? 만약 너무 아프면 사모님께 연락할게요.”미자 아주머니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녀를 걱정하며 말했다.영은은 침실 벽에 걸린 거대한 사진들을 바라보며 식은땀을 흘렸다.그동안 벽에는 서양화나 자신의 화보 사진들이 걸려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것들은 온데간
영은은 설도엽과의 격렬했던 관계를 끝내고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때 흥신소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쪽에서 주소를 하나 알려주었다. 영은은 몸이 피곤해 죽을 지경이었지만 이를 악물고 차를 몰아 주소지를 찾아갔다. ……오늘은 햇볕도 그리 뜨겁지 않은 데다 모처럼 소남이 쉬는 날이었다. 그는 집에서 원아와 두 아이와 함께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 점심을 먹은 후, 소남은 두 아이를 데리고 집 안에 있는 야외 수영장으로 갔다.야외 수영장은 타원형으로 전원주택 화원 안에 마치 보석처럼 박혀 있었다.수영장의 물은 따뜻했고, 짙푸른 색을
소남은 거실 소파에 앉아 아이들과 함께 게임을 했다. 원아는 침실에서 이연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이연는 원아에게 하소연을 하는 중이었다. 며칠 전에 자기가 교통사고를 내 어떤 남자와 부딪혔는데, 성질이 고약해 매일같이 자기를 괴롭히며 그의 의식주까지 책임지게 하고 심지어 자신을 도우미 아줌마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또 자기는 정말 그 남자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원아는 이연을 한참이나 위로했다. 그녀는 그제야 기분이 조금 풀렸다. 사고 이후, 이연은 한동안 의기소침해 있었고 활기찬 모습은 도무지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 울다가 웃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미친 사람 같았다.걱정스러운 얼굴로 서성이던 미자 아주머니는 혹시라도 영은이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얼른 주희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식을 들은 그녀는 회사에서 급히 돌아왔고, 공무로 바쁜 임문정 역시 허둥지둥 달려왔다.영은의 방은 엉망진창이었고, 손에서는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다. 주희진은 깜짝 놀라 영은을 품에 안았다.“우리 딸, 너 왜 그래? 엄마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무슨 일이야? 응?”주희진은 깜짝 놀라 영은의 상처를 싸매고 치료했다. 그녀는 마음이
문 노인과 장인숙이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소남과 원아가 사는 곳을 찾아왔다. 소남은 조금 놀랐지만, 전혀 예상 못 했던 일도 아니었기에 덤덤히 그들을 맞이했다.다만, 미간을 조금 찌푸렸을 뿐이었다.“할아버지, 어머니. 어떻게 오셨어요?”문 노인의 얼굴이 어두웠다.그는 지팡이를 짚고 앞장서서 걸었다. 그 뒤를 장인숙이 따랐고, 또 몇몇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이 함께했다.문 노인이은 소파 앞에 서 있는 원아를 발견하고는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지팡이로 마루를 세게 두드리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이 여자는 이미 떠났던 것이
가문의 명예를 중요하게 여겨 온 문 노인은 매우 화가 나, 다시는 원아를 집안에 들이고 싶지 않았다.장인숙은 침착하게 소남을 바라보며 충고했다.“소남아, 할아버지와 엄마 말 들어. 하루라도 빨리 이 여자와 관계를 끊고 앞으로도 그녀와 연락하지 마. 임 지사 쪽에서는 내일이 너와 영은의 약혼식이니 다른 일이 생기지 않도록 이 여자와 결판을 내기를 원하고 있어. 이 여자는 오늘, 반드시 A시를 떠나야 해!"원아는 울렁이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정말 자신이 낯선 곳으로 보내지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무엇보다 더는 소남을 볼 수 없게
문 노인은 소남의 말을 듣고 하마터면 숨이 멎을 뻔했다. 임씨 집안과 화해를 위해 노력하는 것도 부족할 상황에 오히려 파혼을 생각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소남아,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너에게 했던 말이 있다. 남자는 책임감을 느끼고 약속한 말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지. 그런데 지금 네 행동을 보아라. 넌 정말 배신자가 되고 싶은 거냐? 우리 문씨 집안이 남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면 좋겠냐는 말이다. 어쨌든 넌 약속대로 임씨 집안 딸과 결혼해야 해!"솔직히, 문 노인은 손자가 배신자가 되건 아니건 상관이 없었다. 그가
소남의 앞에서 원아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없었다.“출근하기 싫은 거예요?”소남은 그녀의 말을 겉으로는 믿는 척하며 물었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원아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전날부터 출근 준비를 했던 그녀가, 단순히 출근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지을 리 없었다.‘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 같아. 하지만 아침부터 무슨 일이 생긴 거지?’소남은 속으로 궁금해하면서도 원아를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원아는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굳이 진실을 캐
“이건 장기적인 투자예요.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거고, 게다가 당신이 진행 중인 연구도 이제 상용화될 때가 됐어요.” 소남은 원아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살짝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원아가 진행한 연구는 몇 차례의 임상 실험을 통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었다. 그 후 회사의 마케팅팀이 시장 조사를 했고, 적절한 가격 조건만 맞으면 대부분의 의료 기관이 그 약품을 대량으로 구입하여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시장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원아는 소남의 가까운 존재감에 살짝 혼란스러워하며 나지막이
소남은 설계 도면을 디스크에 저장한 후, 모든 자료를 서류 봉투에 넣었다. 모든 작업을 마친 그는 원아도 샤워를 끝냈을 것이라고 짐작하며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그는 문을 열고 들어갔고, 원아는 이미 샤워를 마치고 화장대 앞에서 꼼꼼하게 스킨케어를 하고 있었다.원아가 고개를 돌려 소남을 보며 말했다. “다 출력했어요?”“다 출력했어요.” 소남이 대답하며 다가 갔고 원아가 일어서자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 “아까 에런한테서 전화가 왔어요.”“무슨 일이죠...” 원아는 갑작스러운 불안감을 느꼈다. 이런 시간에 에런이 전화를
원아는 설계도를 꼼꼼히 살펴보았다.ML그룹의 입찰 이후, 소남이 이렇게 공들여 건축 설계도를 완성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설계도의 세부 사항 하나하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대표님, 이 설계도 정말 멋져요!” 원아는 감탄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을 하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원아는 생물제약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지금은 소남의 건축 설계도에 감탄하고 있는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소남 씨가 방금 내가 한 말을 듣고, 내가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텐데. 안 그러면
눈이 녹으면서 날씨는 평소보다 더 쌀쌀해졌지만, 이연의 마음은 따뜻했다.예전에는 이연이 감히 송씨 가문 사람들을 마주할 용기도 없었고, 이런 일들을 처리할 결심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욱의 사랑이 이연의 결심을 굳건하게 해주었다. 즉,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현욱 씨...” 이연이 나지막이 말했다.“난 항상 여기 있어.” 현욱은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혹시 내가 도울 일이 생기면 꼭 말해줘요.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똑똑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당신을 도울 거예요.” 이연은 결심하
현욱이 그런 표정을 짓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원아는 그가 무언가 중요한 일에 직면해 있음을 직감했다.“그렇겠죠.” 비비안도 원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2층.현욱은 소남을 찾아가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소남은 현욱의 계획을 듣고 나서 얼굴이 굳어졌다.“알겠어. 앞으로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이번에는 형님의 도움이 정말 필요해요. 저도 이번만큼은 절대로 사양하지 않을 거예요. 형님은 제 편에 단단히 서주기만 하면 돼요.” 현욱은 말했다.소남의 지지가 있다면, SJ그룹은 쉽게 무너지지 않
막 앉았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는 윤수정에게서 온 것이었다. 재훈은 전화를 받지 않고, 대신 윤수정에게 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형이 확실히 모든 개인 서류들을 전부 다시 발급한 것 같아요. 그 시기가 꽤 이른 편이었는데, 그때는 우리가 이연을 경계하지 않았을 때였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가 이 문제를 잘 처리하실 거예요.]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재훈은 핸드폰을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송현욱과 이연... 너희 둘이 결혼을 했다고 해도, 내가 너희들을 행복하게 내버려 둘 것 같아!’‘
“할아버지, 지금 금고에 있는 형의 모든 개인 서류를 가지고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아마 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서류들뿐일 거예요. 할아버지께서 형한테 정략결혼을 추진하실 때, 형은 이미 그때 모든 개인 서류를 다시 재발급 신청을 해서 새롭게 발급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재훈은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최대한 차분하게 송상철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송상철의 얼굴은 화가 난 나머지 핏발이 부풀어 올랐고, 유 집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현욱이 이 녀석 당장 데려와.”“예, 어르신.” 유 집사는 이번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재훈이 지난번 T그룹의 입찰사업계획서를 훔치려다 실패한 일이 있었고, 그는 그 책임을 부하에게 돌렸지만, 송상철은 여전히 그 일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재훈은 지금 자신이 직접 모든 것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네 엄마는 깨어나긴 한 거야?” 송상철이 다시 물었다.“예, 깨어나셨어요.” 재훈은 거실에서 최대한 인내심을 갖고 서 있었다. 송상철이 모든 질문을 끝내야만 재훈이 서재로 가서 금고를 열 수 있기 때문이었다.송재훈은 송상철의 모든 질문이 끝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며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