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화한 밤거리 풍경은 여전했다. 소남의 차는 넓은 고속도로를 빠르게 달렸다. 그는 영은을 집으로 데려다 주기 위해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둘은 아무 말 없이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영은은 창밖으로 도로가 막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집까지 가는 길은 한 시간 남짓했지만, 소남과 일 분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었다. 그녀는 설레는 마음으로 소남을 바라봤다. 그는 참을성 있게 신호를 기다리며, 손으로 운전대를 짚고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임영은 씨, 혹시 할머님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세요? 급하게 선물을
영은은 혹시나 소남이 할머니의 말을 거절할까 봐 떨리는 가슴을 붙잡고 숨죽이며 대답을 기다렸다. 영은은 마치 중독된 듯 소남에게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한편, 소남은 갑작스러운 할머니의 물음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진중한 얼굴로 영은 할머니를 바라봤다.“할머님, 저는 영은과 이제 막 사귀기로 했습니다. 저희 두 사람은 성격이 정반대여서 서로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하기로 한 이상, 저는 영은에게 잘해줄 것입니다. 결혼은 장난이 아니니까요. 때가 되면 제가 영은을 우리 집에 인사시키고, 가족의
주희진은 날카로운 눈으로 소남을 주시했다. 그는 정말 외적으로도 훌륭했다. 정장 차림의 다른 남자들에 비하면 훨씬 털털한 차림의 흰색 셔츠에 검은색 캐주얼 바지를 입었음에도 우아한 자태는 감추어지지 않았다.그는 화려하면서도 차갑고 도도한 양귀비처럼 사람을 끌어당겼다. 또한, 흠 하나 없는 외모와는 달리 강한 카리스마로 여자들이 빠져들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사랑에 빠진 영은은 이제 맹목적으로 그만을 바라봤다. 그녀는 자신이 소남으로부터 확답을 받았다고 여겼고, 온 세상을 얻은 것처럼 기뻐했다. 그러나 희진은 그의 눈에서 영은에
원아와 이야기를 나누다 원 노인은 손녀의 몸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원민지는 병상에 누워서도 여전히 담담한 조카딸을 바라보며 약혼식에서의 일을 떠올렸다.결국, 그녀는 여전히 풀지 못했던 의혹을 꺼내놓았다. “약혼식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줄 수 있니? 왜 갑자기 파혼하기로 했는지 궁금해. 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맞지? 그렇지 않다면, 그런 무모한 일을 할 리가 없잖아. 이제 고모에게 말해주면 안 되겠니?”원아의 하얀 얼굴에 슬픈 그림자가 드리워졌다.“고모, 제가 결혼이
이연은 그의 외모에 놀랐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잡힌 손목을 빼내려 했다. 하지만 남자의 힘이 워낙 세서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누구야! 누군데 내 손을 잡는 거야? 이런 개망나니!”송현욱은 동생이 아끼는 차가 엉망이 된 것을 보고는 이연을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이 법을 어긴 것을 알고 있나요? 남의 차에 함부로 낙서했으니 법적 책임을 져야겠지요.”이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발뺌을 했다. “할 일이 그렇게도 없어요? 내가 낙서했다는 증거라도 있어요? 이거 놔요. 안 그러면 신고할 거예
원아는 송현욱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잘 알지는 못했다. 그는 지나치게 사악하고 음흉한 성격으로, 심지어 웃을 때조차도 차가워 보였다. A시 조직폭력배의 두목인 그는 도시 전체 조직폭력배를 통제하고 있었다. 그런 남자가 잔인한 것은 당연했다. ‘이연은 음식을 사러 갔을 뿐이잖아. 그런데 어떻게 송현욱을 만났지? 대체 무슨 일이야?’원아는 마음이 불안해져서 황급히 소남에게 전화를 걸었다.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뛰어가고 싶었지만, 다리를 다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소남은 송현욱과 친구 사이였기 때문에 어쩔 수
이연은 매우 놀란 듯 보였다. 눈물 자국이 남아 있는 얼굴도 심상치 않았다.원아는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자마자 갑자기 화가 났다.그녀는 이연의 팔을 잡아당겨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세히 살폈다. 원아는 분노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송현욱이 너를 괴롭혔니? 그 나쁜 놈이…….”원아는 이연에게 질문하면서도 소남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친구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것을 책망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런 일은 절대 없었어. 현욱은 단지 겁만 주었을 뿐이지 절대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어.” 소남은 아무 잘못이 없다는 듯
이연은 원아를 귀찮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 사실 원아가 송현욱을 알고 있다는 것을 몰랐지만, 문 대표를 떠올린 건 사실이었다. 원아를 봐서라도 문 대표가 송현욱에게 사정하여 배상금을 낮출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이었다. 사실, 이연이 이렇게 놀란 얼굴이었던 이유는 송현욱이 정말 변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무서운 애완동물을 한 방 가득 키우고 있었다. 아프리카 비단뱀, 이를 악랄하게 드러낸 티베탄 마스티프 등…….대체 그녀의 어떤 말이 그의 기분을 상하게 했는지 모르지만
소남의 앞에서 원아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없었다.“출근하기 싫은 거예요?”소남은 그녀의 말을 겉으로는 믿는 척하며 물었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원아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전날부터 출근 준비를 했던 그녀가, 단순히 출근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지을 리 없었다.‘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 같아. 하지만 아침부터 무슨 일이 생긴 거지?’소남은 속으로 궁금해하면서도 원아를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원아는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굳이 진실을 캐
“이건 장기적인 투자예요.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거고, 게다가 당신이 진행 중인 연구도 이제 상용화될 때가 됐어요.” 소남은 원아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살짝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원아가 진행한 연구는 몇 차례의 임상 실험을 통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었다. 그 후 회사의 마케팅팀이 시장 조사를 했고, 적절한 가격 조건만 맞으면 대부분의 의료 기관이 그 약품을 대량으로 구입하여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시장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원아는 소남의 가까운 존재감에 살짝 혼란스러워하며 나지막이
소남은 설계 도면을 디스크에 저장한 후, 모든 자료를 서류 봉투에 넣었다. 모든 작업을 마친 그는 원아도 샤워를 끝냈을 것이라고 짐작하며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그는 문을 열고 들어갔고, 원아는 이미 샤워를 마치고 화장대 앞에서 꼼꼼하게 스킨케어를 하고 있었다.원아가 고개를 돌려 소남을 보며 말했다. “다 출력했어요?”“다 출력했어요.” 소남이 대답하며 다가 갔고 원아가 일어서자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 “아까 에런한테서 전화가 왔어요.”“무슨 일이죠...” 원아는 갑작스러운 불안감을 느꼈다. 이런 시간에 에런이 전화를
원아는 설계도를 꼼꼼히 살펴보았다.ML그룹의 입찰 이후, 소남이 이렇게 공들여 건축 설계도를 완성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설계도의 세부 사항 하나하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대표님, 이 설계도 정말 멋져요!” 원아는 감탄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을 하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원아는 생물제약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지금은 소남의 건축 설계도에 감탄하고 있는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소남 씨가 방금 내가 한 말을 듣고, 내가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텐데. 안 그러면
눈이 녹으면서 날씨는 평소보다 더 쌀쌀해졌지만, 이연의 마음은 따뜻했다.예전에는 이연이 감히 송씨 가문 사람들을 마주할 용기도 없었고, 이런 일들을 처리할 결심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욱의 사랑이 이연의 결심을 굳건하게 해주었다. 즉,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현욱 씨...” 이연이 나지막이 말했다.“난 항상 여기 있어.” 현욱은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혹시 내가 도울 일이 생기면 꼭 말해줘요.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똑똑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당신을 도울 거예요.” 이연은 결심하
현욱이 그런 표정을 짓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원아는 그가 무언가 중요한 일에 직면해 있음을 직감했다.“그렇겠죠.” 비비안도 원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2층.현욱은 소남을 찾아가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소남은 현욱의 계획을 듣고 나서 얼굴이 굳어졌다.“알겠어. 앞으로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이번에는 형님의 도움이 정말 필요해요. 저도 이번만큼은 절대로 사양하지 않을 거예요. 형님은 제 편에 단단히 서주기만 하면 돼요.” 현욱은 말했다.소남의 지지가 있다면, SJ그룹은 쉽게 무너지지 않
막 앉았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는 윤수정에게서 온 것이었다. 재훈은 전화를 받지 않고, 대신 윤수정에게 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형이 확실히 모든 개인 서류들을 전부 다시 발급한 것 같아요. 그 시기가 꽤 이른 편이었는데, 그때는 우리가 이연을 경계하지 않았을 때였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가 이 문제를 잘 처리하실 거예요.]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재훈은 핸드폰을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송현욱과 이연... 너희 둘이 결혼을 했다고 해도, 내가 너희들을 행복하게 내버려 둘 것 같아!’‘
“할아버지, 지금 금고에 있는 형의 모든 개인 서류를 가지고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아마 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서류들뿐일 거예요. 할아버지께서 형한테 정략결혼을 추진하실 때, 형은 이미 그때 모든 개인 서류를 다시 재발급 신청을 해서 새롭게 발급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재훈은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최대한 차분하게 송상철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송상철의 얼굴은 화가 난 나머지 핏발이 부풀어 올랐고, 유 집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현욱이 이 녀석 당장 데려와.”“예, 어르신.” 유 집사는 이번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재훈이 지난번 T그룹의 입찰사업계획서를 훔치려다 실패한 일이 있었고, 그는 그 책임을 부하에게 돌렸지만, 송상철은 여전히 그 일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재훈은 지금 자신이 직접 모든 것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네 엄마는 깨어나긴 한 거야?” 송상철이 다시 물었다.“예, 깨어나셨어요.” 재훈은 거실에서 최대한 인내심을 갖고 서 있었다. 송상철이 모든 질문을 끝내야만 재훈이 서재로 가서 금고를 열 수 있기 때문이었다.송재훈은 송상철의 모든 질문이 끝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며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