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노인과 문소남 두 형제가 모두 자신을 쳐다보고 있자 원아는 난감하기 그지없었다.그녀는 할아버님께 사과했다.“죄송합니다, 할아버님. 방금 제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주말에 집에 가서 할아버지와 고모의 의견을 들어보겠습니다. 그때 가능한 시간을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래도 괜찮을까요?”문 노인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그래, 그때 사돈 어른과 함께 식사하며, 역서를 뒤져 납길과 납폐를 보낼 적당한 시간을 찾아보자. 지켜야 할 절차는 소홀함 없이 거치는 게 좋아.”한평생을 살아오면서 길일을 중시해 온 문 노인이기
“쯧쯧쯧, 할아버지, 형수와 결혼하기도 전에 이미 애처가가 된 형을 좀 보세요. 결혼하고 나면 바로 공처가가 되지 않겠어요?”예성의 말을 들은 문 노인이 히죽거리며 웃고 있는 둘째 손자를 보더니 별안간 지팡이를 높이 들어 그 발등을 쳤다.“이 놈아, 네 형은 두 번째로 아이 가진 게 두 달이나 됐어. 그런데 넌 아직도 혼자인 채로 며느리도 찾지 못하고 있으니, 원. 우리 문씨 집안 망신은 혼자 다 시키고 있어, 이 놈이!”“아이고, 할아버지, 저도 스물 댓 살이나 먹었어요. 제 사정도 좀 봐 주시면 안돼요? 매번 사람들 앞에서
“5월 1일? 그렇게 빨리?”원 노인과 원민지, 두 부녀 모두 깜짝 놀랐다.원아가 시집갈 줄 알고 있었던 원 노인이었으나 그래도 감개무량해짐은 어쩔 수 없었다.그가 사랑하는 손녀, 일찍이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던 손녀가 곧 시집을 간다니. 정말, 기쁘면서도 섭섭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떨리는 주름진 손을 들어 연신 눈가의 눈물을 닦았다.“원아야, 할애비는 네가 조만간 시집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또 그 날을 오랫동안 바래 왔었다. 하지만, 네가 정말 시집을 간다고 생각하니, 할아버지가 너무 서운하다!”할아버지의 주름진
원아가 좀 억울하다는 듯이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아니, 할아버지 친손녀는 자신 아닌가? 시집가기도 전부터 손녀사위를 편애하시다니, 좀 불공평하지 않으냔 말이다!손을 뻗어 원아의 손가락을 잡은 소남이 자신의 손바닥으로 감쌌다.원아는 그의 손바닥이 아주 뜨겁다고 느꼈다.……드라마 촬영장.영은은 현재 한참 촬영 중이었다. 목덜미 부분을 부풀려 쪽을 진 머리에 아름다운 장식을 달고 하늘하늘한 옛 전통 의상을 입고 있는 영은은 무척 아름다웠다.이번에 영은이 찍는 시대극 ‘천관녀’는 인기 웹소설을 각색한 것이었다. 드라마는 삼국시
영은은 이렇게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재벌가에 시집가기 위해 영은은 최근 주희진에게 상류사회의 예절, 피아노, 꽃꽂이, 요리 등을 배우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이고 있었다.심지어 어머니 주희진에게 투자를 배우며 경영에도 참여하기 시작했다.그녀는 자신의 자질과 능력으로 문소남을 잘 내조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영은을 뒤따르던 매니저가 영은에게 권했다.“영은 씨, 오늘 저녁에 드라마 제작진 전체 회식이 있을 거예요. 영은 씨가 잠시 참석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감독님하고 제작자와 관계를 잘 만들어 두면 이후 촬영할
“내 돈을 받으면서 감히 이딴 소리나 지껄이고 있어? 내가 바빠서 너랑 여러 소리할 시간 없어. 언니, 얘 당장 스탭에서 빼 버려요!”영은의 매니저가 고개를 끄덕였다.“응.”영은은 다른 두 여배우도 한 번씩 돌아보며 속으로 얼굴을 기억했다. 앞으로 수습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다른 말없이 영은은 바로 이 허름한 작은 트레일러를 떠났다. 앞으로 나서는 영은의 매니저 말투가 냉담하다.“진옥이 너, 빨리 나가라. 너는 앞으로 더 이상 임영은 씨 대역이 아니야.”갑자기 해고된 진옥은 이를 악물며 떠나는 영은의
전화기 저편의 상대는 협박성의 말들을 사납게 쏟아내더니 원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던 원아는 하던 음식을 계속 할 생각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며칠 전 퇴근할 때 디저트 가게에서 만났던 그 낯선 여자가 생각났다.당시 자신에게 CD 한 장을 건네 주던 그녀는 말끝마다 소남에게 불리한 것이 들었다며 소남을 떠나라고 자신을 협박했었다.그때 그녀는 집에 돌아온 후 핸드백을 내려놓은 채 그 일을 잊고 있었다.임신 건망증.지금 그 여자의 전화를 받고서 원아는 그 시디가 기억났다.그 안에 도대
소남이 원아를 안아 들고 침실로 갔다. 그녀의 배를 조심하며 위에서 안았다.놀란 그녀의 시선 가운데, 낮게 허스키하게 가라앉은 소남의 음성이 달콤한 와인향을 띤 것 같았다.“원아, 넌 지금 불장난을 하고 있어. 알잖아, 이러면…… 네가 지른 불 네가 꺼야지!”소남의 눈에 담긴 불꽃을 바라보던 원아의 몸이 일순 굳었다.가느다란 두 팔로 가슴 앞을 가린 원아가 조심스럽게 두 사람의 거리를 벌리며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아직…… 아직 3개월도 채 안 되었어요. 할 수 없어요…….”자그마하고 연한 그녀의 음성엔 수줍음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