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열 받게도 하지윤 부장이 자리에 없었다.원아를 싫어하니 자연 원아와 관계가 좋은 주소은과 이연도 예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 두 사람이 연합해서 자신을 대적하니, 서현은 이 둘을 싸잡아 같이 미워하게 됐다.팀장이 떠난 후 직원들은 다시 각자의 업무에 몰두하기 시작했다.“원아 씨, 왜 참고 말을 안 해? 팀장이 그렇게 비난하는데 대꾸조차 안 하니 정말 만만해 보이는 거지, 뭐.”이연은 사실 원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원아가 고소를 지었다.“내가 잘못했는 걸. 비난 받는 게 당연해. 무어라 받아 칠 여지
하지윤의 멘탈은 보통 강한 것이 아니었다.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듯한 문소남의 날카로운 눈동자를 마주하고서도 얼굴에 서늘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비록 심장은 바짝 졸아든 상태라도 말이다.하지윤은 문소남이 얼마나 예리한 지 잘 안다.감히 그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었던 그녀는 대범하게 인정했다.“한 번 있었던 것 같네요. 그때 대표님의 차를 타고 갈아 입을 속옷을 사러 편의점에 갔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하나를 흘린 걸 알았지만, 대표님께 말씀드리기가 좀 그랬습니다. 아무래도 여성 속옷이다 보니…….” 늘 세련되고 시크했
‘여보?!’마치 천둥이 내려쳐 그녀의 심장을 찌르는 것 같았다. 그녀는 경악스러울 뿐이었다!문소남이 언제 그 여자와 이처럼 친밀한 관계로 발전했단 말인가? 그녀를 ‘여보’라고 저장해 놓다니?눈앞이 흐려지고 마음이 천근만근 무거워진 하지윤은 숨을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문소남의 데스크 앞에 나무조각처럼 멍하니 서 있는 그녀는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억울함이 깃든 눈가엔 수분이 차올라 눈을 깜빡이면 바로 뚝뚝 흘러내릴 것 같았다.고개를 든 소남은 인형처럼 책상 앞에 서 있는 하지윤을 보며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하 부장? 아직
허요염을 똑바로 쳐다보는 원아는 끝까지 예의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부드럽던 눈동자는 차가워져 있었다.요염을 한 차례 훑은 원아가 우유를 한 모금 마셨다.“이보세요, 저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요. 또 소남 씨를 짝사랑하고 있는 분인지, 아니면 과거에 관계가 있었던 분인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저는 절대 소남 씨를 떠나지 않을 거라는 겁니다. 소남 씨 스스로 헤어지자 말하지 않는 이상은요. 그런데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떠나라 말라 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군요.”요염은 눈을 가느다랗게 모은
‘소남 씨를 연모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의 지시를 받은 걸까? CD에 도대체 어떤 비밀이 들어있길래, 내가 알아서 떠날 거라고 저리 자신 있게 말하는 거지?’꼬리를 무는 의문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원아는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그녀가 한창 심란한 마음일 때 소남이 가게에 등장했다.슈트를 걸친 소남의 동작 하나하나가 여유가 넘치며 우아했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흠잡을 데 없이 세련된 모습이었다. 블루 넥타이는 물론 화이트 셔츠까지 고상하고 귀티가 흘렀다. 무엇을 하든 남성의 성숙함과 귀품이 배여 있는 문소남은
문소남이 계속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자, 원아는 좀 부끄러운 듯 농담했다.“왜, 왜 계속 나를 쳐다봐요? 내 얼굴에 뭐 꽃이라도 피었어요?”정신을 차린 소남이 새카만 눈동자에 사랑을 가득 담아 대답했다.“당신 얼굴에 꽃은 없지만, 내 눈엔 당신이 꽃보다 더 예뻐.”원아의 얼굴이 붉어졌다.소남이 피식 웃으며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마치 잠자리가 앉았다 날아가듯이.원아가 눈꼬리로 살짝 곁눈질을 하니 가게 안에 있는 많은 손님들이 보였다. 개중엔 엄마, 아빠와 함께 한 아이들도 적지 않아 뺨이 더 달아올랐다.“조
채은서는 사실 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욕심 많은 소남이 아무런 집안 배경도 없는 이런 여자와 결혼하려 하다니 정말 뜻 밖이었다.‘예성이는 반드시 대단한 가문의 재원과 결혼시킬 거야.’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식사를 계속하던 문예성이 축하 인사를 건넸다.“축하합니다, 형님. 형수님과 드디어 결실을 맺게 되셨군요. 결혼식 날 제가 들러리를 설게요.”장인숙이 예성에게 죽일 듯한 눈빛을 보내었다.장인숙을 상대하기 귀찮은 예성은 아예 못 본 척했다.장인숙은 거듭 소남을 설득했다.“아들, 5월 1일은 너무 이르
문 노인과 문소남 두 형제가 모두 자신을 쳐다보고 있자 원아는 난감하기 그지없었다.그녀는 할아버님께 사과했다.“죄송합니다, 할아버님. 방금 제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주말에 집에 가서 할아버지와 고모의 의견을 들어보겠습니다. 그때 가능한 시간을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래도 괜찮을까요?”문 노인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그래, 그때 사돈 어른과 함께 식사하며, 역서를 뒤져 납길과 납폐를 보낼 적당한 시간을 찾아보자. 지켜야 할 절차는 소홀함 없이 거치는 게 좋아.”한평생을 살아오면서 길일을 중시해 온 문 노인이기
소남의 앞에서 원아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없었다.“출근하기 싫은 거예요?”소남은 그녀의 말을 겉으로는 믿는 척하며 물었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원아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전날부터 출근 준비를 했던 그녀가, 단순히 출근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지을 리 없었다.‘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 같아. 하지만 아침부터 무슨 일이 생긴 거지?’소남은 속으로 궁금해하면서도 원아를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원아는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굳이 진실을 캐
“이건 장기적인 투자예요.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거고, 게다가 당신이 진행 중인 연구도 이제 상용화될 때가 됐어요.” 소남은 원아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살짝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원아가 진행한 연구는 몇 차례의 임상 실험을 통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었다. 그 후 회사의 마케팅팀이 시장 조사를 했고, 적절한 가격 조건만 맞으면 대부분의 의료 기관이 그 약품을 대량으로 구입하여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시장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원아는 소남의 가까운 존재감에 살짝 혼란스러워하며 나지막이
소남은 설계 도면을 디스크에 저장한 후, 모든 자료를 서류 봉투에 넣었다. 모든 작업을 마친 그는 원아도 샤워를 끝냈을 것이라고 짐작하며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그는 문을 열고 들어갔고, 원아는 이미 샤워를 마치고 화장대 앞에서 꼼꼼하게 스킨케어를 하고 있었다.원아가 고개를 돌려 소남을 보며 말했다. “다 출력했어요?”“다 출력했어요.” 소남이 대답하며 다가 갔고 원아가 일어서자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 “아까 에런한테서 전화가 왔어요.”“무슨 일이죠...” 원아는 갑작스러운 불안감을 느꼈다. 이런 시간에 에런이 전화를
원아는 설계도를 꼼꼼히 살펴보았다.ML그룹의 입찰 이후, 소남이 이렇게 공들여 건축 설계도를 완성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설계도의 세부 사항 하나하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대표님, 이 설계도 정말 멋져요!” 원아는 감탄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을 하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원아는 생물제약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지금은 소남의 건축 설계도에 감탄하고 있는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소남 씨가 방금 내가 한 말을 듣고, 내가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텐데. 안 그러면
눈이 녹으면서 날씨는 평소보다 더 쌀쌀해졌지만, 이연의 마음은 따뜻했다.예전에는 이연이 감히 송씨 가문 사람들을 마주할 용기도 없었고, 이런 일들을 처리할 결심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욱의 사랑이 이연의 결심을 굳건하게 해주었다. 즉,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현욱 씨...” 이연이 나지막이 말했다.“난 항상 여기 있어.” 현욱은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혹시 내가 도울 일이 생기면 꼭 말해줘요.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똑똑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당신을 도울 거예요.” 이연은 결심하
현욱이 그런 표정을 짓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원아는 그가 무언가 중요한 일에 직면해 있음을 직감했다.“그렇겠죠.” 비비안도 원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2층.현욱은 소남을 찾아가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소남은 현욱의 계획을 듣고 나서 얼굴이 굳어졌다.“알겠어. 앞으로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이번에는 형님의 도움이 정말 필요해요. 저도 이번만큼은 절대로 사양하지 않을 거예요. 형님은 제 편에 단단히 서주기만 하면 돼요.” 현욱은 말했다.소남의 지지가 있다면, SJ그룹은 쉽게 무너지지 않
막 앉았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는 윤수정에게서 온 것이었다. 재훈은 전화를 받지 않고, 대신 윤수정에게 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형이 확실히 모든 개인 서류들을 전부 다시 발급한 것 같아요. 그 시기가 꽤 이른 편이었는데, 그때는 우리가 이연을 경계하지 않았을 때였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가 이 문제를 잘 처리하실 거예요.]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재훈은 핸드폰을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송현욱과 이연... 너희 둘이 결혼을 했다고 해도, 내가 너희들을 행복하게 내버려 둘 것 같아!’‘
“할아버지, 지금 금고에 있는 형의 모든 개인 서류를 가지고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아마 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서류들뿐일 거예요. 할아버지께서 형한테 정략결혼을 추진하실 때, 형은 이미 그때 모든 개인 서류를 다시 재발급 신청을 해서 새롭게 발급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재훈은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최대한 차분하게 송상철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송상철의 얼굴은 화가 난 나머지 핏발이 부풀어 올랐고, 유 집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현욱이 이 녀석 당장 데려와.”“예, 어르신.” 유 집사는 이번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재훈이 지난번 T그룹의 입찰사업계획서를 훔치려다 실패한 일이 있었고, 그는 그 책임을 부하에게 돌렸지만, 송상철은 여전히 그 일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재훈은 지금 자신이 직접 모든 것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네 엄마는 깨어나긴 한 거야?” 송상철이 다시 물었다.“예, 깨어나셨어요.” 재훈은 거실에서 최대한 인내심을 갖고 서 있었다. 송상철이 모든 질문을 끝내야만 재훈이 서재로 가서 금고를 열 수 있기 때문이었다.송재훈은 송상철의 모든 질문이 끝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며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