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은은 핸드백을 꽉 쥔 채 그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이미 마음속에서는 거칠고 사나운 파도가 일고 있었지만, 애써 태연한 척했다. “진보라! 3번 룸!” 조장으로 보이는 여자가 급히 보라를 찾았다.“네, 바로 갈게요! 죄송합니다, 손님.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보라가 원아를 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원아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어서 가라고 손짓했다. 보라가 떠나자, 소남은 자상한 태도로 원아를 부축하여 룸으로 들어갔다.문소남이 원아를 정성껏 대하는 모습을 보자
두 어린 쌍둥이가 식탁 앞에 바른 자세로 앉았다.소남은 아이들을 아주 잘 교육했다. 그들의 식탁 예의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원원의 품에 안겨 있는 고양이는 여전히 나른한 모양이었다.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폭 파묻혀 있으면서, 원원이 하얗고 부드러운 털을 어루만져도 가만히 있었다.파란색 제복을 입고 흰 장갑을 낀 멋진 웨이터가 음식을 가져왔다. 화이트 트러플, 캐비어, 로얄피자, 해산물 카레 등 보기 드문 음식들이 가득 차려졌다.상차림이 끝나자, 웨이터는 공손하게 예의를 차려 인사한 뒤 조용히 물러났다.“훈아, 원원,
남자의 손에서 물건을 건네받은 영은은 그것을 속옷 주머니에 조심스럽게 넣었다.그리고 곧바로 그녀는 블루캐슬 쪽으로 향했다.사거리를 지나고 있을 때, 더러운 손 하나가 영은의 외투 옷자락을 덥석 잡았다.“아가씨, 선심을 베풀어 주세요!”영은이 선글라스를 벗었다.눈살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보니, 덥수룩한 머리를 한 꾀죄죄한 몰골의 노숙자 하나가 영은의 옷자락을 당기고 있었다. 노숙자는 술에 취해 있었다. 구멍이 뚫린 허름한 겹저고리를 입고 있었는데, 제 빛깔을 모를 정도로 더러웠다. 그의 얼굴 역시 몇 개월 동안 씻지 않은 듯
“고양이는 아마도 제 주인을 찾아가야 할 것 같아. 우리 딸, 엄마 말 잘 들어봐. 일단 고양이가 돌아가게 하자. 집에 도착하면 엄마가 한 마리 사 줄게, 응?”“그래도……. 아직 고양이와 충분히 못 놀았는걸요? 집에 계신 증조할아버지가 동물 키우는 걸 허락 안 하시잖아요.”원원은 엄지손가락을 잘근잘근 씹으며 슬픔이 가득한 큰 눈을 깜박거렸다.문소남이 입술 가장자리를 우아한 자세로 닦으며 말했다.“증조할아버지가 키우지 말라고 하셨지만, 아빠는 키우라고 허락할게. 며칠 후에 우리 네 식구는 따로 나가서 살게 될 거야. 그때 너
영은은 화장실 벽에 기대어 섰다. 말을 듣지 않는 고양이 때문에 화가 나 죽을 지경이었다.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통조림으로 아무리 유혹해도 고양이는 내려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귀신 같은 놈!’하지만, 영은은 반드시 고양이에게 주사를 놓아야만 했다.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다음 계획을 실천할 수 없었다.영은은 하이힐을 벗고 맨발로 세면대 위로 올라갔다. 고양이를 안아서 내리려는 목적이었다.뜻밖에도, 그 새하얀 페르시안 고양이는 그녀의 의도를 짐작한 것 같았다. 영은이 세면대 위로 올라가자마자 바닥을 향해 뛰어내렸다.고양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 어쩔 줄을 몰랐다.아직 어린 원원은 놀라 그대로 얼어버렸다. 고양이가 원원에게 달려들었다.어린 원원의 눈이 커졌다.“원원!” 원아는 재빨리 훈아와 원원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았다. 아이들은 작은 얼굴을 원아의 가슴 속에 파묻었다. 원아는 온몸으로 고양이의 공격을 막았다.흰 고양이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온몸의 하얀 털은 가시처럼 곧게 섰으며, 검푸른 눈에서는 살기가 돌았다. 이윽고 날카로운 발톱이 원아의 스웨터에 박혔다.“저리 가!” 원아는 어깨에 있는 흰 고양이를 떨어뜨리려 애썼다.원아는
익숙한 남자의 뜨거운 기운이 원아를 향해 밀려오고 있었다…….냄새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익숙한 남자의 향기가 원아의 콧속을 가득 메웠다. 원아는 차갑지만 맑은 기운을 느끼며, 소남의 목덜미를 껴안았다. 그러자 마음이 서서히 진정되기 시작했다.조금 전까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소남에게 안기자마자 알 수 없는 슬픔 같은 것이 샘물처럼 솟아오르기 시작했다.원아가 나직이 말했다.“소남 씨…….”소남은 원아를 안아 올려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소남의 시선이 원아의 상처 난 목에 닿았다. 그의 얼굴에 아파하는 마음이 드러났다
다행히, 중년의 의사는 송씨 집안 둘째인 송현욱 밑에서 오랫동안 일한 탓인지 그런 말에 쉽게 동요되지 않았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처럼 매서운 기세의 남자 앞에서 부들부들 떨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소남이 원아의 소매를 걷어 올리자, 눈처럼 하얀 피부가 드러났다.중년 의사가 원아의 팔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지금껏 피부 좋은 부잣집 아가씨들을 많이 진료해 봤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여인과 같은 여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어찌나 뽀얗고 여리던지 마치 아기 피부 같았다.게다가 그 하얀 피부에서는 마치 빛이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