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채은서는 아들이 좀 제대로 하길 바라면서 손가락으로 예성을 찔렀다.“네 형 좀 봐라. 지금 아이가 벌써 둘이야. 너 이 방탕한 놈, 빨리 자리 잡아서 나한테 결혼할 며느리 좀 데려와! 내일부터 얌전히 집에서 선이나 봐. 네 혼사를 확정 지어야겠어.”문예성이 애원했다.“어머니, 설마요? 나 아직 어린데, 결혼하기 싫어…….”“더 이상 핑계 대지 마. 결혼 안 해도 돼. 너도 네 형처럼 토실토실한 손자나 안겨줘.”채은서가 말했다.“그런 괜찮네.”문예성이 턱을 괴고서 진지하게 고민해 본다.그는 이 방법이 괜찮다는 생
그녀는 원아를 힐끗 쳐다보았다.심플한 일상복을 입고 있는 저 여자는 아무런 액세서리도 착용하고 있지 않았다. 위, 아래 전신에서 겨우 저 얼굴 하나 볼만 했다.이렇게 평범하기 그지없는 여자가 반짝이는 자신과 어떻게 비교나 되겠는가?“영은이 이렇게 일찍부터 건너왔으니, 아침 아직 먹지 않았지? 자, 우리와 함께 아침 먹으면 되겠다.”장인숙은 친절하게 영은의 손을 끌고 자리에 앉혔다.영은은 부러 몇 번의 사양을 한 뒤에 권유에 따라 식탁 앞에 앉았다.자신에 대한 혐오감과는 달리 임영은을 대하는 장인숙의 상냥한 모습을 본 원아
원아는 이연이 보낸 주소에 따라 황급히 병원으로 달려갔다. 겁먹은 듯한 모습으로 산부인과 앞의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는 이연이 눈에 들어왔다.산부인과 앞이 다른 여자들은 모두 남편이나 남자친구가 함께였다. 그와 달리 외톨이처럼 혼자인 이연의 모습이 무척 불쌍해 보였다.한동안 보지 못하던 사이에 이연은 심할 정도로 야위었다. 원래 동글동글, 통통하던 얼굴이 지금은 날카롭게 변했다. 눈을 거의 다 가린 앞머리 때문에 표정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다만 일자로 바짝 오므린 입술이 지금 어둡게 가라앉은 그녀의 기분을 말해주고 있었다
아무것도 물을 수 없었던 원아는 자신이 이연의 상처를 건드렸다는 것을 알고서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시큰거려 오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원아는 이연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또박또박, 분명한 음성으로 약속했다.“잘 들어. 내가 너한테 미안해. 나를 원망해도 좋아…… 하지만 아이는 잘못 없어. 지울 수 없다면 낳아야지. 아이가 태어나면, 내가 키우는 것 도와줄 게. 내가 앞으로 아기의 대모가 되는 거야. 어때?”텅 비어 있던 이연의 눈에 조금은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원아, 난 널 원망할 생각 없어. 내가 너무 부주의했던 거야.
수성 아파트.“연아, 잠시 여기에서 지내. 여기 집세는 내가 이전에 이미 일년치를 지불했어. 임대 기한까지 반 년 정도 더 남았는데, 임대료 환급도 안돼. 그래서 지금 집만 빈둥빈둥 놀고 있는 셈이야.”원아가 이연을 잡고서 말했다.“원아, 고마워. 네가 없었다면 나 혼자서는 정말 어째야 좋을지 몰랐을 거야.”이연은 방 하나와 거실 하나로 된 집을 한 차례 훑어보았다. 집 내부의 인테리어가 아주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이었다. 저도 모르게 마음 깊숙이 원아를 향한 고마움이 올라왔다.이제 그녀의 어머니 황신옥의 관심은 모두 오빠
“어머, 이게 누구야. 원아 씨 아냐? 남자한테 안겼지 않았어? 듣자하니, 그 부호가 별장 데려가서 호강을 시켜 준다며. 평생 여기 돌아올 리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찌 이리 빨리 돌아왔대? 설마 그 부호한테 차인 거야? 하, 그러게, 내가 뭐랬어. 여자가 안겨서는 끝이 좋을 리가 없지. 기어코 말 안 듣더니. 남자는 모두 새 걸 좋아하지, 오래된 건 싫어해. 원아 씨가 부귀할 운이 없으니, 참새가 봉황이 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지, 뭐.”원아는 정말 이 두씨 아주머니가 싫었다.그녀가 나이를 내세워 큰 소리 치는 게 너무 싫었다
원아는 이연을 위해 푸짐한 점심 상을 차렸다.식사를 마친 후, 그녀는 설거지를 하고, 주방 안팎까지 깨끗하게 닦았다.그런 뒤, 그녀는 다시 인근의 시장에 가서 채소들을 사다가 냉장고를 가득 채웠다. 말 그대로‘눈으로 미끄러운 겨울’에 이연이 외출하기는 불편할 터였다. 그래서 육류와 채소들로 냉장고를 모두 채운 후, 이연이 음식을 하기 편하도록 모두 준비했다. 원아는 자신을 이렇게나 생각하니, 이연은 울컥해서 뭐라고 말해야 좋을 지 몰랐다.“어차피 회사도 곧 휴가이니, 그 동안은 더 이상 출근 안 해도 돼. 네가 연가를 낼 수
이문기는 아픈 마음으로 서지선을 쳐다보았다.예전의 그 청렴, 고결하고 도도하던 여자가 이 지경까지 타락했을 줄은 몰랐다.그를 미워해서. 그와 맞서기 위해서. 무엇보다 그를 굴복시키기 위해서. 그가 맡는 사건이라면, 서지선은 무조건 끼어들어 방해했다. 심지어 인의, 도덕도 저버리면서까지.이번에 그녀는 이혜진과 원선미 모녀를 위한 무료 변호에 자원했다. 단지 그를 굴복시키기 위해서…….몇차례의 소송을 진행하며, 이문기는 서지선이 성장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보았다.지금 그녀는 확실히 노련해졌다. 노련하면서 교활해졌다. 관건은
소남의 앞에서 원아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없었다.“출근하기 싫은 거예요?”소남은 그녀의 말을 겉으로는 믿는 척하며 물었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원아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전날부터 출근 준비를 했던 그녀가, 단순히 출근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지을 리 없었다.‘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 같아. 하지만 아침부터 무슨 일이 생긴 거지?’소남은 속으로 궁금해하면서도 원아를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원아는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굳이 진실을 캐
“이건 장기적인 투자예요.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거고, 게다가 당신이 진행 중인 연구도 이제 상용화될 때가 됐어요.” 소남은 원아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살짝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원아가 진행한 연구는 몇 차례의 임상 실험을 통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었다. 그 후 회사의 마케팅팀이 시장 조사를 했고, 적절한 가격 조건만 맞으면 대부분의 의료 기관이 그 약품을 대량으로 구입하여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시장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원아는 소남의 가까운 존재감에 살짝 혼란스러워하며 나지막이
소남은 설계 도면을 디스크에 저장한 후, 모든 자료를 서류 봉투에 넣었다. 모든 작업을 마친 그는 원아도 샤워를 끝냈을 것이라고 짐작하며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그는 문을 열고 들어갔고, 원아는 이미 샤워를 마치고 화장대 앞에서 꼼꼼하게 스킨케어를 하고 있었다.원아가 고개를 돌려 소남을 보며 말했다. “다 출력했어요?”“다 출력했어요.” 소남이 대답하며 다가 갔고 원아가 일어서자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 “아까 에런한테서 전화가 왔어요.”“무슨 일이죠...” 원아는 갑작스러운 불안감을 느꼈다. 이런 시간에 에런이 전화를
원아는 설계도를 꼼꼼히 살펴보았다.ML그룹의 입찰 이후, 소남이 이렇게 공들여 건축 설계도를 완성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설계도의 세부 사항 하나하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대표님, 이 설계도 정말 멋져요!” 원아는 감탄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을 하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원아는 생물제약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지금은 소남의 건축 설계도에 감탄하고 있는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소남 씨가 방금 내가 한 말을 듣고, 내가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텐데. 안 그러면
눈이 녹으면서 날씨는 평소보다 더 쌀쌀해졌지만, 이연의 마음은 따뜻했다.예전에는 이연이 감히 송씨 가문 사람들을 마주할 용기도 없었고, 이런 일들을 처리할 결심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욱의 사랑이 이연의 결심을 굳건하게 해주었다. 즉,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현욱 씨...” 이연이 나지막이 말했다.“난 항상 여기 있어.” 현욱은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혹시 내가 도울 일이 생기면 꼭 말해줘요.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똑똑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당신을 도울 거예요.” 이연은 결심하
현욱이 그런 표정을 짓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원아는 그가 무언가 중요한 일에 직면해 있음을 직감했다.“그렇겠죠.” 비비안도 원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2층.현욱은 소남을 찾아가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소남은 현욱의 계획을 듣고 나서 얼굴이 굳어졌다.“알겠어. 앞으로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이번에는 형님의 도움이 정말 필요해요. 저도 이번만큼은 절대로 사양하지 않을 거예요. 형님은 제 편에 단단히 서주기만 하면 돼요.” 현욱은 말했다.소남의 지지가 있다면, SJ그룹은 쉽게 무너지지 않
막 앉았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는 윤수정에게서 온 것이었다. 재훈은 전화를 받지 않고, 대신 윤수정에게 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형이 확실히 모든 개인 서류들을 전부 다시 발급한 것 같아요. 그 시기가 꽤 이른 편이었는데, 그때는 우리가 이연을 경계하지 않았을 때였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가 이 문제를 잘 처리하실 거예요.]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재훈은 핸드폰을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송현욱과 이연... 너희 둘이 결혼을 했다고 해도, 내가 너희들을 행복하게 내버려 둘 것 같아!’‘
“할아버지, 지금 금고에 있는 형의 모든 개인 서류를 가지고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아마 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서류들뿐일 거예요. 할아버지께서 형한테 정략결혼을 추진하실 때, 형은 이미 그때 모든 개인 서류를 다시 재발급 신청을 해서 새롭게 발급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재훈은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최대한 차분하게 송상철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송상철의 얼굴은 화가 난 나머지 핏발이 부풀어 올랐고, 유 집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현욱이 이 녀석 당장 데려와.”“예, 어르신.” 유 집사는 이번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재훈이 지난번 T그룹의 입찰사업계획서를 훔치려다 실패한 일이 있었고, 그는 그 책임을 부하에게 돌렸지만, 송상철은 여전히 그 일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재훈은 지금 자신이 직접 모든 것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네 엄마는 깨어나긴 한 거야?” 송상철이 다시 물었다.“예, 깨어나셨어요.” 재훈은 거실에서 최대한 인내심을 갖고 서 있었다. 송상철이 모든 질문을 끝내야만 재훈이 서재로 가서 금고를 열 수 있기 때문이었다.송재훈은 송상철의 모든 질문이 끝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며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