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정문을 나선 뒤, 새하얀 세상을 바라보니 원아의 눈이 밝아졌다.밝게 내리쬐는 바깥의 여전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막 왔을 때처럼 더 이상 침울하지 않았다.이혜진과 원선미 두 모녀는 마침내 응분의 처벌을 받았다.원아의 허리를 감싸 안은 문소남은 그녀가 계속 눈썹을 찡그린 채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마음을 알 수 없어, 낮은 음성으로 물었다.“무슨 생각을 하길래, 그리 넋을 놓고 있지?”“이혜진과 원선미가 제1고등법원에 2차 항소를 한다면, 재판 결과가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요.”원아가 한숨을
원아는 그제야 문득 정신이 들었다. 오늘은 근무하는 날이었는데, 이혜진 모녀 재판 때문에 재차 휴가를 낸 것이었다.난처했다. 원아는 T그룹에 입사한 지 짧은 몇 달 사이에 연차 일수가 부서에서 제일 많았다.설계부서로 돌아가면 팀장님이 또 난리 치실 텐데…….문소남은 눈을 반짝거리며 원아를 응시했다. 작은 얼굴이 다양한 표정들로 바뀌는 것을 보니, 무척 사랑스러웠다.“자꾸 쳐다보지 마요. 네?”원아는 문소남이 내내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뜨거운 눈빛에 약간 긴장이 되었다.더욱이 엘리베이터 같은 좁은 공간
문예성이 눈물을 흘리며 도망쳤다. 마치 스스로 무덤을 판 것 같았다.그동안 형수가 순한 양인 줄로만 알았는데, 실상은 양의 탈을 쓴 늑대였다.“형수님, 정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겠네요. 어떻게 저한테 이러실 수 있어요?”예성이 원아를 원망하며 말했다.“내 생각엔 네가 너무 할 일이 없는 것 같아.”소남이 싸늘하게 말하며, 몸을 돌려 대표실로 향했다.“만약 그렇게 할 일이 없으면 지금 당장 남아프리카에 가도 돼. 내가 동준이 시켜서 가장 빠른 비행기 표를 구해 달라고 할 테니까.”“아, 형. 날
원아가 자료를 열심히 보고 있을 때였다. 서현이 정장 차림의 사람들 몇 명과 함께 사무실로 들어왔다.“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여기 계신 이분은 VIVI 그룹 설계부서 부장이고, 또 다른 분들은 VIVI그룹 설계부서의 부장과 책임 디자이너들입니다. 서로 인사 나누시기 바랍니다.”원아는 그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여자 부장은 대략 30대 후반인 듯했으나, 다른 사람들은 모두 꽤 젊어 보였다.“안녕하세요, 저는 T그룹 설계부서 주임 주소은입니다. 앞으로 함께 즐겁게 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소은이 웃음 띤 얼굴로 여자
‘원아라는 사람은 유난히 어려 보여. 마치 갓 졸업한 대학생처럼 말이야. 저런 애송이가 이렇게 힘든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VIVI 그룹의 설계 디자이너들은 막상, 원아가 대표와의 인맥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녀를 향해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회의는 대략 한 시간 남짓 진행되었다.방연주가 두꺼운 자료 한 묶음을 원아에게 건네주었다.“이것들은 모두 이번 프로젝트에 관한 자료입니다, 원아 씨, 며칠 동안 그것을 잘 숙지하길 바라요. 모레, 우리가 정식으로 합작 프로젝트를 연구하려고 하는데, 할 수 있겠어요
원아가 두 아이 생각에 잠겨 있자, 소은이 그녀를 툭 쳤다.“저기요, 바보같이 왜 웃어? 방금 대표님의 전화를 받은 거 아냐? 봐봐, 좋아서 감출 수 없는 이 미소 좀 보라고. 이 언니 질투 나게 만들어서 죽일 셈이야?”원아는 곧 서른이 되는 소은이 줄곧 솔로를 고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과거에 어떤 일을 겪은 탓인지는 알 수 없었다.많은 남자가 소은에게 접근했지만, 항상 거절했다. 자신은 남자를 감당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다.주소은은 매우 유능하고 총명한 사람이었다. 사실, 그녀가 처음 원아에게 접근했을 때는 지금
미경이 즉시 원아를 발견했다. 그녀는 정안의 팔을 꽉 잡고는 콧방귀를 뀌었다.“왜 어딜가나 저 여자가 있는 거야? 귀신이야 뭐야? 정말 재수 없어!”지난번, 명품 매장에서도 원아를 곤경에 빠뜨리려던 미경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었다. 오히려 자신의 값비싼 액세서리만 잃어버린 데다 그로 인해 가족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아야 했다. 게다가 큰 오빠에게는 한 달 넘게 용돈을 뜯겼다.지난번 일을 생각하던 미경은 짜증이 났다.원아는 교만한 데다 제멋대로인 미경에게 호감이 생기지 않았다.두 아이의 손을 잡고 소남과 함께 자리를
미경이 분위기 파악도 못 한 채 소리를 질러 댔다.“고객님, 혹시 어떤 정신적인 문제가 있으신가요? 여기서 나가주십시오. 당신은 저희의 고객을 도둑으로 몰며 모욕하고 있습니다. 혹시 그 말을 입증할 증거를 가지고 있나요?”지배인의 목소리는 매우 날카로웠다. 가늘게 뜬 눈동자는 이제 곧 비바람이 몰아칠 것을 예고하고 있다.“네가 뭔데 참견이야? 너는 상관하지 마!” 미경은 상대의 기세에 잠시 눌린 듯했지만, 이내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지난 사건 이후로, 정안에게서 더는 소남을 자극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었지만, 응석받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