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아는 이연을 위해 푸짐한 점심 상을 차렸다.식사를 마친 후, 그녀는 설거지를 하고, 주방 안팎까지 깨끗하게 닦았다.그런 뒤, 그녀는 다시 인근의 시장에 가서 채소들을 사다가 냉장고를 가득 채웠다. 말 그대로‘눈으로 미끄러운 겨울’에 이연이 외출하기는 불편할 터였다. 그래서 육류와 채소들로 냉장고를 모두 채운 후, 이연이 음식을 하기 편하도록 모두 준비했다. 원아는 자신을 이렇게나 생각하니, 이연은 울컥해서 뭐라고 말해야 좋을 지 몰랐다.“어차피 회사도 곧 휴가이니, 그 동안은 더 이상 출근 안 해도 돼. 네가 연가를 낼 수
이문기는 아픈 마음으로 서지선을 쳐다보았다.예전의 그 청렴, 고결하고 도도하던 여자가 이 지경까지 타락했을 줄은 몰랐다.그를 미워해서. 그와 맞서기 위해서. 무엇보다 그를 굴복시키기 위해서. 그가 맡는 사건이라면, 서지선은 무조건 끼어들어 방해했다. 심지어 인의, 도덕도 저버리면서까지.이번에 그녀는 이혜진과 원선미 모녀를 위한 무료 변호에 자원했다. 단지 그를 굴복시키기 위해서…….몇차례의 소송을 진행하며, 이문기는 서지선이 성장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보았다.지금 그녀는 확실히 노련해졌다. 노련하면서 교활해졌다. 관건은
법원 정문을 나선 뒤, 새하얀 세상을 바라보니 원아의 눈이 밝아졌다.밝게 내리쬐는 바깥의 여전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막 왔을 때처럼 더 이상 침울하지 않았다.이혜진과 원선미 두 모녀는 마침내 응분의 처벌을 받았다.원아의 허리를 감싸 안은 문소남은 그녀가 계속 눈썹을 찡그린 채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마음을 알 수 없어, 낮은 음성으로 물었다.“무슨 생각을 하길래, 그리 넋을 놓고 있지?”“이혜진과 원선미가 제1고등법원에 2차 항소를 한다면, 재판 결과가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요.”원아가 한숨을
원아는 그제야 문득 정신이 들었다. 오늘은 근무하는 날이었는데, 이혜진 모녀 재판 때문에 재차 휴가를 낸 것이었다.난처했다. 원아는 T그룹에 입사한 지 짧은 몇 달 사이에 연차 일수가 부서에서 제일 많았다.설계부서로 돌아가면 팀장님이 또 난리 치실 텐데…….문소남은 눈을 반짝거리며 원아를 응시했다. 작은 얼굴이 다양한 표정들로 바뀌는 것을 보니, 무척 사랑스러웠다.“자꾸 쳐다보지 마요. 네?”원아는 문소남이 내내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뜨거운 눈빛에 약간 긴장이 되었다.더욱이 엘리베이터 같은 좁은 공간
문예성이 눈물을 흘리며 도망쳤다. 마치 스스로 무덤을 판 것 같았다.그동안 형수가 순한 양인 줄로만 알았는데, 실상은 양의 탈을 쓴 늑대였다.“형수님, 정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겠네요. 어떻게 저한테 이러실 수 있어요?”예성이 원아를 원망하며 말했다.“내 생각엔 네가 너무 할 일이 없는 것 같아.”소남이 싸늘하게 말하며, 몸을 돌려 대표실로 향했다.“만약 그렇게 할 일이 없으면 지금 당장 남아프리카에 가도 돼. 내가 동준이 시켜서 가장 빠른 비행기 표를 구해 달라고 할 테니까.”“아, 형. 날
원아가 자료를 열심히 보고 있을 때였다. 서현이 정장 차림의 사람들 몇 명과 함께 사무실로 들어왔다.“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여기 계신 이분은 VIVI 그룹 설계부서 부장이고, 또 다른 분들은 VIVI그룹 설계부서의 부장과 책임 디자이너들입니다. 서로 인사 나누시기 바랍니다.”원아는 그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여자 부장은 대략 30대 후반인 듯했으나, 다른 사람들은 모두 꽤 젊어 보였다.“안녕하세요, 저는 T그룹 설계부서 주임 주소은입니다. 앞으로 함께 즐겁게 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소은이 웃음 띤 얼굴로 여자
‘원아라는 사람은 유난히 어려 보여. 마치 갓 졸업한 대학생처럼 말이야. 저런 애송이가 이렇게 힘든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VIVI 그룹의 설계 디자이너들은 막상, 원아가 대표와의 인맥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녀를 향해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회의는 대략 한 시간 남짓 진행되었다.방연주가 두꺼운 자료 한 묶음을 원아에게 건네주었다.“이것들은 모두 이번 프로젝트에 관한 자료입니다, 원아 씨, 며칠 동안 그것을 잘 숙지하길 바라요. 모레, 우리가 정식으로 합작 프로젝트를 연구하려고 하는데, 할 수 있겠어요
원아가 두 아이 생각에 잠겨 있자, 소은이 그녀를 툭 쳤다.“저기요, 바보같이 왜 웃어? 방금 대표님의 전화를 받은 거 아냐? 봐봐, 좋아서 감출 수 없는 이 미소 좀 보라고. 이 언니 질투 나게 만들어서 죽일 셈이야?”원아는 곧 서른이 되는 소은이 줄곧 솔로를 고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과거에 어떤 일을 겪은 탓인지는 알 수 없었다.많은 남자가 소은에게 접근했지만, 항상 거절했다. 자신은 남자를 감당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다.주소은은 매우 유능하고 총명한 사람이었다. 사실, 그녀가 처음 원아에게 접근했을 때는 지금
소남의 앞에서 원아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없었다.“출근하기 싫은 거예요?”소남은 그녀의 말을 겉으로는 믿는 척하며 물었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원아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전날부터 출근 준비를 했던 그녀가, 단순히 출근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지을 리 없었다.‘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 같아. 하지만 아침부터 무슨 일이 생긴 거지?’소남은 속으로 궁금해하면서도 원아를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원아는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굳이 진실을 캐
“이건 장기적인 투자예요.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거고, 게다가 당신이 진행 중인 연구도 이제 상용화될 때가 됐어요.” 소남은 원아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살짝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원아가 진행한 연구는 몇 차례의 임상 실험을 통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었다. 그 후 회사의 마케팅팀이 시장 조사를 했고, 적절한 가격 조건만 맞으면 대부분의 의료 기관이 그 약품을 대량으로 구입하여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시장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원아는 소남의 가까운 존재감에 살짝 혼란스러워하며 나지막이
소남은 설계 도면을 디스크에 저장한 후, 모든 자료를 서류 봉투에 넣었다. 모든 작업을 마친 그는 원아도 샤워를 끝냈을 것이라고 짐작하며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그는 문을 열고 들어갔고, 원아는 이미 샤워를 마치고 화장대 앞에서 꼼꼼하게 스킨케어를 하고 있었다.원아가 고개를 돌려 소남을 보며 말했다. “다 출력했어요?”“다 출력했어요.” 소남이 대답하며 다가 갔고 원아가 일어서자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 “아까 에런한테서 전화가 왔어요.”“무슨 일이죠...” 원아는 갑작스러운 불안감을 느꼈다. 이런 시간에 에런이 전화를
원아는 설계도를 꼼꼼히 살펴보았다.ML그룹의 입찰 이후, 소남이 이렇게 공들여 건축 설계도를 완성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설계도의 세부 사항 하나하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대표님, 이 설계도 정말 멋져요!” 원아는 감탄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을 하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원아는 생물제약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지금은 소남의 건축 설계도에 감탄하고 있는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소남 씨가 방금 내가 한 말을 듣고, 내가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텐데. 안 그러면
눈이 녹으면서 날씨는 평소보다 더 쌀쌀해졌지만, 이연의 마음은 따뜻했다.예전에는 이연이 감히 송씨 가문 사람들을 마주할 용기도 없었고, 이런 일들을 처리할 결심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욱의 사랑이 이연의 결심을 굳건하게 해주었다. 즉,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현욱 씨...” 이연이 나지막이 말했다.“난 항상 여기 있어.” 현욱은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혹시 내가 도울 일이 생기면 꼭 말해줘요.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똑똑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당신을 도울 거예요.” 이연은 결심하
현욱이 그런 표정을 짓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원아는 그가 무언가 중요한 일에 직면해 있음을 직감했다.“그렇겠죠.” 비비안도 원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2층.현욱은 소남을 찾아가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소남은 현욱의 계획을 듣고 나서 얼굴이 굳어졌다.“알겠어. 앞으로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이번에는 형님의 도움이 정말 필요해요. 저도 이번만큼은 절대로 사양하지 않을 거예요. 형님은 제 편에 단단히 서주기만 하면 돼요.” 현욱은 말했다.소남의 지지가 있다면, SJ그룹은 쉽게 무너지지 않
막 앉았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는 윤수정에게서 온 것이었다. 재훈은 전화를 받지 않고, 대신 윤수정에게 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형이 확실히 모든 개인 서류들을 전부 다시 발급한 것 같아요. 그 시기가 꽤 이른 편이었는데, 그때는 우리가 이연을 경계하지 않았을 때였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가 이 문제를 잘 처리하실 거예요.]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재훈은 핸드폰을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송현욱과 이연... 너희 둘이 결혼을 했다고 해도, 내가 너희들을 행복하게 내버려 둘 것 같아!’‘
“할아버지, 지금 금고에 있는 형의 모든 개인 서류를 가지고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아마 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서류들뿐일 거예요. 할아버지께서 형한테 정략결혼을 추진하실 때, 형은 이미 그때 모든 개인 서류를 다시 재발급 신청을 해서 새롭게 발급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재훈은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최대한 차분하게 송상철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송상철의 얼굴은 화가 난 나머지 핏발이 부풀어 올랐고, 유 집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현욱이 이 녀석 당장 데려와.”“예, 어르신.” 유 집사는 이번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재훈이 지난번 T그룹의 입찰사업계획서를 훔치려다 실패한 일이 있었고, 그는 그 책임을 부하에게 돌렸지만, 송상철은 여전히 그 일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재훈은 지금 자신이 직접 모든 것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네 엄마는 깨어나긴 한 거야?” 송상철이 다시 물었다.“예, 깨어나셨어요.” 재훈은 거실에서 최대한 인내심을 갖고 서 있었다. 송상철이 모든 질문을 끝내야만 재훈이 서재로 가서 금고를 열 수 있기 때문이었다.송재훈은 송상철의 모든 질문이 끝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며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