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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9 화

“우리는...” 아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할머니 한 분이 걸어 나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 할머니가 설마 원아 아줌마의 엄마는 아니겠지?

“할머니!” 훈아는 예의 바르게 말했다.

할머니......

원아는 훈아의 시선을 따라 뒤쪽을 쳐다보았다.

반백이 넘어 보이는 아주머니는 흰색과 핑크색이 섞인 아디다스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는데, 그녀는 갑자기 세 사람 앞에서 멈추어 섰다.

문소남은 이 사람이 원아의 엄마가 아닌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인사를 하지 않았다.

“아주머니,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세요?” 원아는 아줌마의 시선이 불편했다.

아줌마는 ‘에휴’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스트레칭을 하면서 이제 집에 돌아온 듯한 원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노파심에 충고라고 하려는 듯 눈썹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여자가 시집을 갔으면 살림살이도 해야지. 남편과 아이를 굶기면 어떡해. 시간이 몇 시인데 이제 들어와?”

‘남편’이라는 호칭은 포커페이스를 하고 있는 남자를 말하는 게 분명했다.

원아는 너무 어색했다.

그녀가 뭐라고 해명이라도 하려는 그때, 아줌마는 또 문소남을 바라보더니 그에게 비난하기 시작했다. “남편이란 사람도 잘한 건 없어. 기분 좀 나쁘다고 바로 와이프한테 얼굴 구기면 아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지금은 남자도 밥할 줄 알아야 하고 아내가 하는 집안일도 도와줘야지. 와이프한테만 의존하면 어떡해? 네가 아내랑 결혼 한 거지 도우미와 결혼한 게 아니잖아?”

원아는 아줌마의 말이 점점 선을 넘고 있는 것 같았다.

왜 이런 오해가 생긴 거지?

딱 봐도 그들과 같은 세상 사람이 아닌 게 눈에 보이는데...

“아주머니, 뭔가 오해하고 있으신 것 같은데. 저희는 상사랑 직원 사이에요.” 원아는 다급히 해명했다.

뭐라 계속 말하려던 아줌마의 입이 갑자기 멈추었다. 아줌마는 원아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잠시 후 아줌마는 뭐라 말하려 입을 우물거렸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저 세 사람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아무 사이가 아니라고 변명을 해? 누구를 속이려고?

아무리 사회적 풍기가 나빠지고 도덕이 몰락 된다 해도 말이지. 이 동네에 돈 많은 남자한테 빌붙어서 사는 사람이 있다니...

아무런 이유 없이 오해를 받게 된 원아는 자리를 떠나는 아주머니를 바라봤다. 그녀는 입술을 오물거렸다. 부자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둘 다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었다.

아직 미혼인 여자가 지켜야 하는 선이 뭔지 원아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일 때문에 남자를 만나는 건 상관없지만 늦은 시간에 사적으로 낯선 남자와 만나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문소남은 갑자기 고개를 숙이더니 옆에 있는 아들을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볼 일이 뭐야. 빨리 말해!”

원아는 고개를 돌렸다.

문훈아는 두 어른을 보면서 눈을 깜빡였다. 무슨 볼일이 있어서 여기에 온 건지 자기도 잘 몰랐다. 근데... 분명 아빠가 여기에 볼일 있다 그랬는데... 나보고 빨리 말하라고 하면...

아, 맞다! 훈아는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

근데 난 아빠따라 온 것뿐인데...

아이는 작은 팔, 다리로 어둠 속에서 힘겹게 커다란 박스 두 개를 끌고 왔다.

하나는 연 파란색, 나머지 하나는 흰색이었다. 상자에는 실크 리본이 정성스럽게 묶여있었다.

“원아 아줌마, 이건 아줌마한테 주는 선물.” 말을 끝낸 훈아는 뒤돌아 아빠를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틀리게 말했을 까봐 걱정이 되었다.

훈아는 키가 작다. 아직 어린아이였기에 원아는 훈아의 말소리만 들을 수밖에 없었다. 훈아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비록 문소남이 준 선물을 받지 않을 것이긴 하지만 힘겹게 들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 원아는 일단 그 선물을 받았다. 박스를 치우자 이제서야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원아는 고개 들어 아이를 바라보더니 상냥하게 웃었다.

“이걸 아줌마한테 왜 주는 거야?” 비록 이 말을 아이한테 묻고 있긴 했지만 그녀는 아빠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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