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 뻔했는데 이 전화 한 통에 그녀는 다시 머리가 맑아졌다."이 사람 참 어이없네. 당신에게 전화하려면 낮에 하면 될 걸 꼭 한밤중에 전화해야 한대?" 박시준이 물었다. "강민의 일이 뭐라고 그래? 강도평이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뭐 대수라고.""그래요. 너무 기뻐서 시간을 확인 안 했나 봐요." 진아연이 강훈의 행동에 관해 설명했다. "강훈이 강민의 돈줄을 막았으니 기분이 좋긴 하네요.""강민이 다른 방법으로 돈을 빼앗으려 할 거라는 생각은 안 해?" 박시준이 덤덤하게 말했다. "강민한테 신경 꺼. 감히 우리한테 딴마음을 먹는다면 영원히 이 세상에서 없애버릴 테니까.""그래요. 그만 자요. 내일 설날 계획 중에서 하나 골라야겠어요. 설날에 재미있게 놀다 와요." 진아연은 말하며 골치 아픈 일과 쓸데없는 일을 잊으려 했다. "내일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봐요.""그럼 자. 내일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돼서 우리 설날 여행에 영향 주지 않았으면 좋겠어.""별일 없을 거예요. 당신 지금 컨디션이 이렇게 좋으니 분명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진아연이 그를 안았다. "앞으로 나보다 더 오래 살지도 몰라요."박시준의 잔잔하던 기분이 그녀의 한마디에 갑자기 긴장해졌다."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어디 아파?""아니요! 그냥 해본 말이니 긴장하지 말아요." 진아연이 어이없이 웃었다. "당신은 운동하는 걸 좋아하지만 난 별로 안 좋아해요. 앞으로 별일 없으면 당신이 나보다 오래 살 거라는 뜻이에요.""나중의 일은 생각하지 마. 나랑 함께 운동하자.""당신이랑 함께 운동을 한다고 해도 우리 둘 중 한 사람은 먼저 갈 거잖아요." 진아연은 냉정한 마음으로 생사를 대하려 했다. "그러니 함께 운동하자는 말을 하지 말아요."박시준: "...""그만 자요, 난 자는 걸 더 좋아해요."다음날 아침 진아연과 박시준이 일어나아래층으로 내려가다가 딸과 마주쳤다.라엘이는 두 사람이 이렇게 일찍 일어난 걸 보며 가슴을 졸였다. "오늘 또 만두 먹는 거예요?"진아연이
"아이들에게 물어볼까요?" 진아연이 말했다. "우린 아무래도 좋아요. 우리 둘만 여행 가는 거라면 당신 원하는 곳에 갈 거예요."진아연의 말에 박시준은 할 말을 잃었다"그럼 한이가 돌아오면 한에게 물어보지 뭐." 박시준이 곧 타협했다. "한이는 비행기 표를 끊었대? 언제 공항에 도착하는데? 내가 마중 나갈 거야."기대에 가득 찬 박시준의 모습에 진아연은 자기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아직 귀국 일정을 안 보내줬어요. 비행기 표를 끊으면 나한테 알려줄 거예요."B국.한이는 여소정과 영상통화 중이었다.소정이가 한이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마침 한이가 시간이 있다는 말에 전화를 끊고 영상통화로 바꿨다."한이야, 너의 아빠가 매일 나가 놀 생각만 하는데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언제든 나가 놀 수 있는데 설날엔 안돼. 설날에 결혼식이 있다는 걸 두 사람은 아직 몰라. 그래서 아무 준비도 안 하고 있는 거야. 하지만 우린 미리 결혼식 준비를 다 해놓고 설날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단 말이야." 여소정이 딸을 안고 한이와 통화하며 한이에게 예쁜 딸을 보여줬다. "지민이 너무 귀엽지 않아?"한이는 시큰둥하게 지민이를 보다가 표정이 한결 부드럽게 변했다. "지민이가 날 무서워하는 거 아니에요?""하하, 조금 그런 것 같아. 널 자주 못 보니 조금 무서운가 봐. 지난번에 널 봤을 땐 지민이가 통통했는데 지금은 많이 말랐어. 그래서 너에게 보여주는 거야." 여소정은 딸바보였다.한이는 지민이가 지난번에 봤을 때와 다른 점을 찾으려 애썼지만 도무지 찾아낼 수 없었다."지민이는 늘 귀여웠어요."여소정: "한이야, 여자아이에게 귀엽다고 하는 건 칭찬이 아니야. 사람들은 라엘이에게 예쁘다고 말해주잖아. 안 예쁜 여자아이에게 보통 귀엽다고 하는 거야."한이의 눈빛에 긴장감이 감돌며 자신이 뭔가 잘못 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정말 아주 귀여운 여자아이도 있어. 우리 집 지민이처럼 말이야. 통통한 모습이 귀여워 죽겠잖아." 여소정이 화제를 바꾸더니 환하게 웃었다.지민
"당신 말이 맞아." 박시준이 말했다. "검사 결과가 좋은데 나 출근하면 안 될까? 집에 있으려니 답답해 죽겠어. 나 회사에 나가 놀게 해줘.""나가서 안 돌아오고 싶은 거죠?" 진아연이 놀렸다. "그렇게 일하고 싶으면 가요.""내가 출근하면 당신은?" 박시준은 그녀 혼자 집에서 심심할까 걱정되었다. "나랑 같이 회사에 출근하지 않을래? 마땅한 자리 하나 만들어 줄게. 우리 매일 같이 출퇴근하면 얼마나 좋아."그의 생각을 들은 진아연은 머리털이 곤두섰다."여보, 난 당신을 좋아하지만 당신 일에 대해선 아무런 취미가 없어요. 출근하려거든 해요. 내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제가 알아서 할 거예요." 진아연은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박시준: "그래, 그럼 지금 회사로 보내줘."진아연은 자기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한시라도 심심한 걸 못 참네요, 정말!""이번에 꽤 오래 쉬었어." 박시준은 앞으로 회사에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눈빛이 반짝거렸다. "일하지 않으니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아. 사람은 일을 해야 해. 일이 사람을....""알았으니 그만 해요. 쉬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니 본인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억지로 주입하려 하지 말아요." 진아연은 그를 회사로 보내줬다. "저녁에 기사더러 데리러 가라고 할게요. 미리 얘기하는데 야근은 안 돼요.""알았어. 당신은 집에 있는 걸 좋아한다니 기분이 더 좋은 걸." 박시준이 갑자기 말을 바꿨다.박시준을 회사로 보낸 후 진아연은 기사더러 위정의 집으로 운전하라고 했다.오늘 위정이는 집에서 시은이 옆을 지키고 있었다.두 아이가 모두 학교에 가서 집안은 아주 조용했다."수현이가 벌써 학교 생활에 적응한 거예요?" 진아연은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다."소소랑 같은 반인데 애들이 서로 의지해. 그리고 유치원 선생님에게도 미리 말씀을 드려서 선생님들이 수현이를 잘 보살펴. 그래서 수현이가 쉽게 적응하는 거야." 위정이 대답했다. "저녁에 여기서 밥 먹고 가. 내가 요리할 거야.""알았어요, 좀 있
"강민 씨, 강씨 가문의 유산을 받았어요?" 전화기 너머로 조순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강민은 숨을 들이쉬고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요. 날 아웃시켰네요. 너무 창피해서 종일 마음을 추슬렀지만 쉽지 않네요."조순현은 멍해졌다.그녀는 강민이 실패하리라 생각지 못했다.조순현이 알고 있는 강민은 여우 같은 여자였기 때문이었다.똑똑하고 교활할 뿐만 아니라 잔인하기도 했다."조순현 씨가 앞으로 저와 손을 잡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요. 난 당신에게 줄 수 있는 돈이 없어요. 앞으로 내 생계조차 해결하기 어려워요... 강도평을 죽이면 잘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 생활은 여전히 엉망진창이네요." 강민이 속상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다."나한테 비참한 모습을 보여줘서 뭐 하려고요?" 조순현이 차갑게 비꼬았다. "당신이 아무리 비참하다고 해도 나만큼 비참하겠어요? 당신은 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조차 모르고 있잖아요.""내가 돈을 줬잖아요? 그 돈이면 어느 나라에서든 집을 사고 살아갈 수 있을 텐데요?" 강민은 어리둥절했다."내가 어찌 감히 그러겠어요. 당신들이 날 죽이고 입막음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요? 전 같은 곳에서 오래 머물지 못해요." 조순현은 망설임없이 내뱉었다. "하지만 이제 날 어떻게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박시준도 당신이 나랑 손을 잡았다는 걸 알게 됐으니 말이에요.""그만 해요." 강민은 수치심이 들었다. "다 내 탓이에요. 제가 욕심이 너무 많았어요. 능력도 안 되면서 말이에요. 마음은 하늘만큼 높은데 명은 종이 쪼가리보다 더 얇네요.""당신이 그렇게 말하니 화가 나려고 하네요. 당신은 적어도 사람답게 살고 있잖아요. 전 그런 삶을 하루도 살아본 적이 없어요." 조순현은 마음이 칼에 찔린 것처럼 아파와 강민을 향해 쏘아붙였다. "나에게 현이에 관한 정보가 있을 거라 생각하나본데 내가 정말 현이 정보를 갖고 있다면 박시준을 찾아가서 돈을 달라고 했겠죠. 내가 바보예요? 내가 아무리 박시준을 못 믿는다고 해도 난 진아연을 만난
조순현은 잠시 고민하다 동의했다."조순현 씨, 당신이 가진 증거가 뭔지 제게 말해줄 수 있나요? 당신과 저는 현이를 찾아내야 해요." 강민은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말했다. "좀 그렇다면 제게 다 말해주지 않아도 괜찮아요...""Y국의 공범과 연락해서 현이를 찾은 뒤, 박시준에게 말해 구출해 달라고 부탁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단서를 찾아줬는데..."조순현은 여기까지 말한 뒤, 말을 멈췄다.좋은 단서였다면 조순현이 현이를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그렇게 말하니 그 단서에 대해서 더 알고 싶네요." 강민은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 "조순현 씨, 알려주세요. 저랑 같이 현이를 찾아요. 도와드릴게요. 저희는 이미 한 배에 올라탔습니다. 박시준한테 말을 잘못 했다가 박시준이 제게 돈 한 푼도 주지 않을 수 있어요."강민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조순현은 생각했다."현이를 데려간 사람 손목 안쪽에 작은 흉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조순현이 단서를 말했다.강민: "무슨 흉터죠? 점? 아니면 다친 흉터?"조순현: "손목을 그은 흔적."강민이 다시 물었다. "그럼 그 사람은 남자인가요? 아니면 여자?""그건 말할 수 없어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시죠." 조순현은 다 말해주지 않았다."알겠습니다. 절 믿으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그럼 시간과 장소는 조순현 씨가 정하세요." 강민은 절박함과 그녀의 진심을 다 보여줬다.이것이 그녀에게 남은 마지막 동아줄일 테니.이번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알겠습니다." 조순현은 그녀의 진심에 마음이 움직였다.사실 조순현은 강민에게 이 단서를 말해줄 때부터 조순현은 이미 결정을 내렸다.조순현 역시 이번 기회에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눈 깜짝 할새, 새해가 되었다.한이와 마이크는 B국에서 진아연과 박시준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돌아왔다.물론 그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진아연과 박시준에게도 이 사실을 숨겼다.한이는 돌아온 뒤, 친구들이 집으로 자신을 보러온다는 이
진아연은 여소정과 마이크를 한번 씩 본 뒤, 여소정과 눈이 마주쳤다. "소정아, 마이크가 무슨 말을 하려던 거야?"여소정은 당황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여소정은 변명거리를 찾아내려 했지만 머릿속이 새하애졌다.마이크가 바로 이어서 말했다. "소정이는 내가 또 좋은 분위기 깨는 말 할까봐 그런 거야. 자자, 이제 새해인데! 이번 해도 어떻게 잘 보낼지 생각해야지!""마, 마, 맞아! 내 말이 그 말이야." 여소정의 얼굴이 빨개졌다. "마이크! 새해부터 이상한 말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벌써 잊었어?"진아연은 당황해 하며 말했다. "소정아, 뭘 그렇게까지 말해? 마이크도 당황스러워 하잖아.""당황은 무슨? 너 당황했어?" 여소정은 마이크를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마이크, 놀랐냐고? 남자가 이런 걸로 놀라기는...""뭐? 아니! 전혀 안 놀랐는데? 내가 얼마나 남자다운데." 마이크의 당황하는 모습에 다들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모두가 식사를 하기 시작했고 어색했던 분위기가 풀렸다.진아연은 한이를 보며 말했다. "아빠가 설에 가족들이랑 여행가고 싶다고 하더라. 계속 집에만 있었더니 답답했나봐. 무슨 여행 계획을 다섯 가지나 만들어서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던데. 네가 집에 있고 싶다고 하면 아빠는 아마 여행 갈 생각을 단념할 걸!"진아연은 한이에게 이런 말을 한 이유는 한이가 박시준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알려주고 싶어서 였다.지성은 어머니의 말을 듣고는 중얼거렸다. "치... 나는 놀러 가고 싶은데! 형, 집보다 밖에 여행다니는 게 훨 재밌어!"지성이는 밖에 나가 노는 것을 좋아했지만 생각보다 밖의 날씨는 많이 추웠고, 지성이는 보통 아이들보다 체력이 약했기 때문에 이모님도 그를 데리고 외출을 자제하는 편이었다."지성아, 내일 재밌게 놀 수 있을 거야! 소정이 이모는 거짓말 안 하는 거 알지?" 여소정은 지성을 달래주었다."소정이 이모, 지민이도 내일 데리고 오면 안 돼요?! 같이 놀래요!" 지성이가 말했다."그래,
의사는 그녀가 아이를 가지기 힘들 것이라 말했다."소정아, 나도 안 낳을 거야." 시은이가 소정이를 위로했다."그래서 내가 은서 씨한테 아이 얼른 가지라고 한 거야! 하하하! 지성이 혼자 남자 아이니까. 같이 더 있다가는 지성이 성격도 여성스럽게 바뀌겠어." 여소정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사실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이미 지민이가 있으니 여소정은 만족했다."여성스럽게 되는 게 뭐 어때서요. 순하고 좋죠! 지성이가 여자 아이들처럼 말 잘 들으면 좋지 않아요? 지성이는 원래부터 배려심이 많았죠. 이런 아이들이 나중에 좋은 여자도 만난다구요." 최은서는 아들을 낳는 것을 원치 않았다. "저는 여자 아이를 낳고 싶어요. 그러면 지성이는 여자 넷에 둘러싸여 크겠네요. 하하하!""은서 씨, 아이를 낳는 게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아요. 하늘의 뜻에 따르는 걸로 해요." 진아연이 말하자 여소정을 바라보며 웃었다. "아, 그리고 은서 씨가 말한 게 맞아. 지성이가 여자 아이들이랑 잘 지낸다면 분명 더욱더 이해심이 많은 아이로 자랄 수도 있어. 뭐 아들이 어떤 모습이든지 나야 좋지만. 아, 하지만 은서 씨. 아직 결혼 이야기는 이르다구요!""지성이는 아직 멀었지만 한이는 곧이라구. 한이야, 혹시 학교에서 좋아하는 여자는 없어?" 여소정은 장난스럽게 한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면 부끄러워 할 필요 없어. 잘 생기고, 돈도 많으니까! 여자들이 쫓아다니는 거 아니야? 우리 한이가 매력이 얼마나 대단한데!"진아연, 박시준: "......"그들의 눈에는 한이는 아직 어린아이였다!한이는 수저를 내려놓고 여소정을 담담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소정이 이모, 저랑 같이 수업듣는 학생들은 저보다 10살이나 더 많아요."여소정: "..." 그녀는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하지만 10살 차이는 사회적으로나 그렇게 큰 문제로 인식되지 않았다. "10살 정도는 문제 없지! 한이는 성숙하니깐 누나들이랑 잘 어울려!"하준기는 더이상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사실 그의 친척과 친구들은 특별한 일이 없지 않은 이상 이렇게 이른 시간에 연락하지 않았다.특히나 오늘은 설날이었고, 그를 이렇게 찾을 이유가 없었다.그는 메세지를 하나씩 열어 보았고 엄청난 축하 메시지들이 와있었다.——시준 씨, 행복한 결혼식 되세요.——박 대표님, 결혼을 축하드립니다!——시준아, 아연이와의 오늘 행복한 하루가 되기를 바래!...박시준은 수많은 축하 메시지를 보자 얼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꿈인가?!그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그는 진아연과 이미 결혼했고, 비록 이혼은 했지만 결혼식은 이미 오래 전에 했다.그는 자신이 분명 꿈에서 본 것이라 생각하고 휴대폰을 다시 내려놓고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자려고 했다.진아연은 박시준이 일어난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왜냐하면 그녀는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리자 그가 깰까봐 휴대폰을 들고 화장실로 조용히 들어갔기 때문이었다.전화는 여소정에서 걸려온 것이었다.아직 아침 6시이였다. 설마 여소정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걸까?그녀는 바로 전화를 받았고 여소정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아연아, 일어나! 내가 가서 깨워줄까? 아니면 지금 일어날래?"진아연은 당황했다. "소정아... 무슨 일이야? 아직 6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온 거야?""그래! 5시에 도착했어." 여소정은 일 층 거실에서 진아연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 "지성이는 아직 자고 있어! 지민이는 지성이랑 같이 재워 놓고 나오는 길이야."진아연은 그 말을 듣자 더욱더 혼란스러웠다.그녀는 창밖을 내다보았고, 밖은 칠흑같이 어두웠다."소정아, 무슨 일 있어?" 진아연은 여소정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라 생각하고 화장실에서 나와 방문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나왔다.방에서 나오자 진아연의 목소리가 더욱더 커졌다. "내가 지금 내려갈게."말을 마친 그녀는 전화를 끊고 재빨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계단을 내려오자마 거실의 모습을 보고 그녀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3년 후.A국, 공항.현이는 둘째 오빠와 함께 공항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3년이야 3년! 남자친구라는 사람 드디어 너 찾으러 오는 거야!" 박지성은 현이를 놀리며 얘기했다. "설마 너랑 헤어지러 오는 건 아니겠지? 어쨌든 3년 동안 못 만났는데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현이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둘째 오빠, 저 지금 저주하시는 거예요? 비록 3년 동안 못 만났지만 매일매일 영상통화 하면서 서로 얼굴 봤거든요!"박지성은 툴툴거리며 말했다. "사이버 연애하는 거랑 뭐가 다르냐?"현이: "어쨌든 이번에 A국에 와서 정착하기로 약속했으니까 이제부터 다시는 떨어져 지내는 일 없을 거예요."박지성: "네 남자친구도 자존심이 너무 강해. 이따 아버지 만나고 얘기 얼마 나누지도 않고 다시 티켓 사고 도망치는 거 아니야?"현이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뭐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아!"현이는 곧바로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바라보았다——서은준이 캐리어를 끌며 출구에서 나오고 있었다.현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은준을 향해 달려가 서은준의 품에 안겼다.이때 박지성은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진아연이 물었다. "아직 못 만났어? 설마 안 오는 건 아니지?"박지성: "엄마, 제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에요. 금방 나왔어요, 지금 현이랑 껴안고 있어요! 우리 이제 곧 집에 갈 거니까 엄마랑 아빠도 마음의 준비 잘 하고 계세요."박 씨 저택.진아연은 통화를 마친 후 박시준에게 전달했다.박시준은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자신의 용모를 검사했다.진아연은 화장실 문 앞에서 지켜보며 소리내어 웃었다. "거울 그만 비춰요, 충분히 멋있어요!"박시준: "여보, 좀이따 은준이한테 좀 엄격해야 할까?"진아연: "현이가 그렇게 좋다는데, 은준이도 현이 위해서 A국에 있겠다고 한데다 엄격하게 해서 뭐하려구요? 굳이 두 아이의 기분을 망쳐야겠어요? 은준이도 지금 어엿한
서 어르신은 진지한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얘기를 꺼낼 줄 예상치 못했기에 차마 어찌할 바를 몰랐다.왜냐하면 진지한에게 돈을 달라고 할 계획이긴 했지만 얼마나 달라고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어쨌든 진지한은 엄청난 부자였고, 적게 달라고 하니 왠지 손해를 보는 기분이였고 많이 달라고 하자니 거절 당할까 봐 걱정되었다.서 어르신은 한동안 망설인 후 진지한에게 말했다. "진 대표님 집이 A국에서 엄청난 부자라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가 적당한지는 대표님께서 정하시죠! 저와 우리 아들에게 푸대접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진지한은 눈살을 찌푸렸다.배유정은 그것을 보고 바로 입을 열었다. "아버님께서 금액을 정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저희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얼마가 적당할지 가늠이 안 가네요. 굳이 저희더러 정하라면 돌아가서 저희 시아버님과 상의해 봐야 할 것 같네요."서 어르신: "혹시 박시준 씨 말하는 겁니까?"배유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저희 시아버님 저희 남편보다 더 까다로울 겁니다. 입장 바꿔서 아버님이라도 따님을 평범한 남자한테 시집 보내진 않을 거잖아요?"서 어르신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긴 해요. 그럼 그냥 우리끼리 얘기하죠!"배유정: "지금부터 고민해 보셔도 괜찮아요. 저희 요 이틀 동안은 여기 있을 거거든요."서 어르신: "알겠어요! 그럼 우선 연락처 먼저 교환하죠! 나중에 일이 있을 때도 서로 연락하기 편하잖아요."배유정은 진지한을 흘끗 보았고 그제서야 진지한은 휴대폰을 꺼내들고 서 어르신과 연락처를 교환했다.병원.현이는 서은준의 곁에서 어머니의 뒷일을 처리했다.서은준은 장례식장에 전화를 걸어 어머니의 시신을 옮겨달라고 했다.현이가 서은준에게 물었다. "장례식 간단하게 치를 생각이에요?"서은준: "엄마 켠에도 친척들이 별로 없어."현이: "네. 그럼 어머니 계실 묘지부터 골라야죠?"서은준: "엄마가 전에 유골을 엄마 고향 연못에 뿌려달라고 했어."현이: "..."서은준: "엄마는 내
진지한: "그래요 그럼! 근처에 가까운 카페라도 갈까요."서 어르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좋아요! 사실 우리 집이 바로 병원 근처에 있는데 한 번 가보실래요? 현이도 우리 집에서 꽤 오랫동안 지냈었고 우리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랑 사이가 아주 좋았거든요."진지한은 배유정을 보며 말했다. "그럼 한 번 가볼래?"배유정: "좋아요!"서 어르신은 즉시 진지한과 배유정을 자신의 차로 안내하며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서 어르신의 집에 도착한 후 서 어르신은 즉시 하인들을 분부하여 과일과 디저트를 올리라고 했다.서 어르신은 집사를 가리키며 진지한에게 말했다. "이 사람이 바로 우리 집 집사입니다. 예전에 현이 할머니도 집사가 뽑고 집에 들였죠."진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서 어르신은 집사에게 말했다. "이 분은 수수 친 오빠야, 유명한 대기업의 대표 진지한 씨."집사: "진 대표님, 안녕하세요! 수수 정말 괜찮은 아이였어요, 그때 우리 모두 수수를 많이 좋아했답니다. 전에 수수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리를 듣고 많이 속상했는데 사실이 아니라니 참 다행이에요! 수수는 정말 철도 들고 씩씩한 아이였어요, 제가 봤던 아이들 중 가장 씩씩한 아이에요. 수수가 잘 지내고 있다니 정말 기쁘네요."진지한: "전에 우리 동생 잘 챙겨줘서 고마웠어요."집사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대표님, 별 말씀을요! 수수는 정말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어요. 매번 적극적으로 맡아서 일도 잘하고 정말 괜찮은 아이에요. 우리는 그때부터 수수가 나중에 대학 졸업하고나면 꼭 잘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진지한은 집사의 말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서 어르신이 집사에게 말했다. "귀한 손님과 할 얘기가 있으니 먼저 내려가."집사는 즉시 물러났다.서 어르신은 진지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현이가 우리 은준이랑 사이가 좋았다는 거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제가 현이를 은준이 곁에 안배했거든요, 그때 두 아이 나이가 비슷했기도 했고 서로 얘기도 잘 통할 거
현이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오빠, 은준 씨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저 요 며칠 동안 언니 오빠랑 놀러다닐 수 없을 것 같아요."진지한: "괜찮아. 은준이 집에 이런 일이 생겼는데 우리도 놀 기분 아니야. 은준이 어머님 장례식 참석하고 돌아갈게."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여긴 장례식을 어떻게 치르지?" 진지한을 물었다.서은준은 현이의 남자친구자 현이 또래기도 하니 현이의 오빠로서 왠지 모르게 서은준을 도와 어머니의 뒷일을 처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현이: "국내랑 비슷해요. 돈 많은 사람들은 거창하게 치르고 보통 사람들은 그냥 간단하게 치르곤 해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장례식은 따로 안 치르고 직접 무덤에 묻기도 하구요."진지한: "좀 거하게 치르려면 어떻게 해야 해?"현이: "오빠, 은준 씨 어머님 장례식 치르는 거 도와줄려고요? 은준 씨 친척들도 별로 없으니까 그렇게 거하게 안 치러도 돼요."진지한: "그래. 그럼 은준이랑 어떻게 할 건지 상의해 봐.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줄게."현이: "고마워요, 오빠. 근데 안 도와줘도 괜찮을 것 같아요. 장례식 치르는데 돈 많이 들진 않을 거예요. 은준 씨도 저희가 자기 어머님 장례식 도와주겠다고 하면 받지 않을 거예요."진지한: "그래 그럼! 가서 은준이 옆에 있어줘!"현이: "오빠, 그럼 오빠랑 새언니는...""우리 걱정은 안해도 되. 나 너희 새언니랑 밖에 나가서 좀 걸을게,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하고.""알았어요, 오빠."현이는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진지한과 배유정은 병동을 나섰다.서 어르신은 병원 건물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진지한과 배유정이 나오는 것을 보고 바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진 대표님, 저희 아들이 저한테 깊은 오해가 있어 현이까지 절 싫어하나 보네요. 사실 저 예전에 현이한테 정말 잘해줬어요." 서 어르신은 솔직하게 얘기했다. "사실 현이가 아주 오래 전부터 저희 집에서 일했었거든요. 그때는 현이를 키우던 할머니와 같이 우리 집 주방에
전화를 끊은 후 서은준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현이는 서은준의 곁에 서서 물었다. "은준 씨, 왜 그래요?"서은준: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대. 미안하지만 당신 혼자 형님이랑 시간 보내야 될 것 같아! 난 병원으로 가야 될 것 같아."현이: "같이 가요! 어머님 방금까지 멀쩡하셨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두 사람은 진지한과 배유정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차를 잡으러 길가로 향했다.진지한과 배유정은 두 사람이 급하게 차에 올라타는 모습을 바라보며 조금 당황스러웠다.배유정: "여보, 우리도 병원에 가봐요! 은준 씨 어머님이 돌아가셨나봐요."진지한: "그래."두 사람은 택시 한 대를 세우고 서은준이 탄 차를 쫓았다.병원.빠른 속도로 병원에 도착한 서은준은 함께 서있는 의사 선생님과 서 어르신을 보았다.서 어르신은 아첨하는 말투로 말했다. "은준아, 원래는 너희 엄마 보러 병원에 온 건데 내가 왔을 때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어. 너무 안타깝구나!"서은준: "당신이 오기 전에 사망한 거 확실해요? 저도 오늘 왔었어요, 제가 왔을 땐 분명 아주 멀쩡했다고요!"서 어르신: "물론 다 사실이지! 못 믿겠으면 의사한테 물어봐!""의사한테 물어볼 필요 없어요!" 서은준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간호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주머니, 우리 엄마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신 거예요? 저 사람 오기 전에 돌아가신 거예요, 아니면 오고 나서 돌아가신 거예요?"겁에 질려 있는 간호인들 부들부들 떨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서 어르신은 분노에 가득 찬 어조로 간호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우리 아들이 묻고 있잖아요. 말해 보세요! 제가 여기 왔을 때 당신 어디 있는지 그림자도 못 봤는데 혹시 밖에서 놀고 있던 거 아니에요?"간호인은 곧바로 대답했다. "아버님께서 오셨을 때 물 받으러 잠깐 병실에 없었어요. 아버님께서 언제 오셨는지 어머님께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정말 미안해요! 이번 달 비용은 받지 않을게요!"간호인은 말
서 어르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당신 나 지금 무시하는 거야? 우리 서씨 집안이 지금 좀 상황이 안 좋긴 해도 T국에서 여전히 명망있는 가족 기업이라고! 은준이가 철이 없다고 당신까지 이렇게 무식해서 어떡하려고 그래? 은준이 뒤에 내가 없었다면 박씨 집안에서 우리 은준이 거들떠 보기나 할 것 같아?"서은준의 어머니: "그 입 다무세요! 박씨 집안에는 당신처럼 속좁은 사람 없어요! 현이 가족들은 우리 은준이를 무시하지 않는다고요! 그니까 괜히 쓸데없이 그분들 귀찮게 하지 마세요! 당신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괜한 짓 하지 말라고요!"서 어르신: "정말이야? 박씨 집안에서 정말 은준이를 반대 안 해? 어떻게 반대 안 할 수가 있지? 설마 은준이더러 A국에 가서 데릴사위라도 하라는 건가?"서은준의 어머니: "그러든 말든 당신이랑 아무 상관 없어요! 당신 여태껏 은준이 돌본 적 없잖아요. 이젠 은준이도 독립했으니 당신 도움 더 필요 없어요! 만약에 은준이 여자친구가 현이가 아니었다면, 현이가 박씨 집안 딸이 아니었다면 당신 이렇게 부지런히 저 찾아오지 않았을 거잖아요... 당신이 어떤 마음 품고 있는지 제가 모를 것 같아서 그래요?"서 어르신: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릴 지껄이고 있는 거야? 은준이 18살 때 당신이 내 곁으로 보냈잖아? 당신은 못 키우겠다고 나더러 키우라고 했잖아? 내 도움이 없었다면 은준이 저렇게 유학 다녀올 수 있었을 것 같아? 만약에 유학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능력있을 것 같아? 지금 저렇게 사업할 수 있는 것도 다 내 덕분이라고!"서은준의 어머니는 화가 치밀어올라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했다. "은준이더러 대학 등록금 다 갚아주라고 할게요!"서 어르신: "이건 대학 등록금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은준이 내 아들이야, 엄연한 내 피가 흐르고 있는 내 아들이라고! 이건 변할 수 없는 사실이야! 은준이가 나중에 잘 지내던 못 지내던, 이 애비 떨쳐낼 생각은 꿈도 꾸지
현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저 지금은 안 가요. 저 신경쓰지 말고 당신 할 거 하면 되요."서은준: "여기 있어봤자 너한테 시간낭비일 뿐이야."현이: "저 그동안 진짜 열심히 공부하고 회사생활도 열심히 했다고요, 잠깐 쉬겠다는데 뭐가 어때서요."잠시 후 진지한과 배유정은 호텔로 돌아왔고 네 사람은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서은준의 어머니는 현이의 오빠와 새언니가 오는 것을 몰랐기에 그들이 온 것을 보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서은준의 어머니는 몸을 일으켜 앉으려 했으나 더 이상 힘을 줄 수 없었다.현이는 전동으로 서은준 어머니의 병실 침대머리를 올려 주었다. "어머님, 저희 오빠랑 새언니 신혼여행 겸 여기 놀러 왔다 어머님이랑 은준 씨 보러 여기 들른 거예요."서은준의 어머니: "아이고, 여기까지 오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현이를 알게 된 건 정말 우리 아들의 행운이에요..."배유정: "어머님,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은준 씨도 얼마나 훌륭한데요. 그렇지 않으면 현이도 은준이를 좋아할 리가 없잖아요."서은준의 어머니: "듣기론 현이 집이 엄청난 부자라던데... 혹시 우리 은준이 반대하는 건 아니죠?"배유정: "어머님, 저희도 사람 됨됨이와 인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은준이랑 현이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두 아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거라면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을 거예요."서은준은 어머니: "네... 정말 고마워요! 유일하게 걱정되고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게 바로 제 아들이에요. 현이네 집에서 우리 아들 너무 얕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우리 아들이 자존심이 강하거든요..."진지한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서은준의 어머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를 포함한 우리 가족 그 누구도 어머님 아들 무시하는 일 없을 겁니다."현이는 오빠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깊은 감동을 받은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서은준의 손을 꼭 잡았다.진지한은 병실에서 잠시 머물다 나갔다.현
현이는 긴장감에 밥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모를 정도로 아무 맛도 느끼지 못했다.서은준과 큰 오빠의 대화는 기본적으로 중요한 얘기들을 다 꺼냈고 생각보다 훨씬 순조로웠다.큰 오빠도 화를 내지 않았고 서은준 역시 화나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사실상 이미 그녀의 걱정과 기대를 뛰어넘는 결과였다.하지만 현이는 여전히 마음이 무거웠다."은준 씨, 좀이따 저희 남편이랑 병원에 가서 어머님 한 번 찾아뵙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식사를 마친 후 배유정이 서은준에게 물었다.서은준: "좋아요."현이: "어머님께 미리 말씀 드릴까요?"서은준: "괜찮아. 이따 가서 직접 소개해 드리면 돼."서은준 어머니의 상태는 나날이 악화되고 있었고 휴대폰을 안쓴지 이미 오래 되었다.보통 간호인이 매일매일 서은준에게 어머니의 상태에 대해 보고하곤 하였다.배유정: "사업도 하느라 어머님도 챙기느라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보통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무너졌을 텐데."서은준: "현이의 예전 생활은 저보다 더 어렵고 힘들었어요. 현이도 무너지지 않고 씩씩하게 잘 버텼는데 저도 잘 이겨낼 겁니다."배유정: "하하! 둘 다 씩씩한 사람이라 좋네요. 지금이든 나중이든 어떠한 곤난도 두 사람을 무너뜨리지 못할 거예요."현이: "언니 정말 너무 좋아요! 언니는 정말 제가 봤던 사람들 중 저희 엄마 제외한 가장 부드러운 사람이에요."배유정은 현이의 칭찬에 얼굴이 빨개졌다.진지한: "너희 언니가 이 말 들으면 서운했을 거야."현이: "언니는 당연히 다르죠! 제 마음속 언니는 부드러운 성격이 아닌 용감하고 씩씩한 슈퍼 히어로같은 존재니까요."배유정: "라엘이 성격에 슈퍼 히어로가 되는 걸 더 좋아할 거예요."현이: "아무튼 언니는 절대 저와 이런 걸로 다투지 않을 거예요."배유정: "당연하지. 다들 배 부르게 먹었어? 다 먹었으면 오빠한테 계산하라고 할게."이 말을 들은 진지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때 서은준도 일어나며 말했다. "제가 계산할게요."현이는 애원하듯
현이가 말을 마친 후 서은준도 입을 열었다. "우선 열심히 일하고 제가 어느 정도 능력이 될 때 다시 책임지고 싶습니다."진지한은 차갑게 비웃으며 말했다. "사업이 그렇게 쉬울 것 같아? 그럼 사업이 실패하면 어떡하려고? 혹은 계속 미지근하게 아무런 진전도 없으면?"서은준: "형님이 말하신 것처럼 사업에 실패하거나 아무런 성과도 이뤄내지 못한다면 현이 고생시킬 생각은 없습니다."진지한: "자기 분수는 잘 알고있네."현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큰 오빠, 은준 씨 사업이 실패하거나 아무 성과를 이뤄내지 못한다고 해도 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적어도 돈 때문에 은준 씨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배유정은 다시 한 번 진지한의 손을 잡으며 진지한의 말이 심했다고 일깨워 주었다.다른 사람에게 차갑고 날카롭게 공격적일 순 있어도 현이에게 이렇게 공격적이진 못했다.현이 역시 자신의 말이 다소 부적절하다고 느꼈는지 말투를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큰 오빠, 전 그냥 돈이 한 사람을 판단하는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뿐이에요. 그리고 저희 집 이미 충분히 돈 많잖아요. 아무리 돈 많은 상대를 찾는다고 해도 저희 집보다 돈이 많은 사람은 찾기 어려울 거예요. 어차피 우리 집보다 돈이 많은 게 아니라면 돈이 많은 사람을 찾든 좀 적은 사람을 찾든 다 똑같잖아요."배유정: "현이 말이 맞아요. 가장 중요한 건 사람 됨됨이고 두 사람의 감정이에요. 만약에 상대방이 서은준 씨보다 돈이 더 많지만 현이한테 잘하지 않는다면 그런 남자에게 현이를 억지로 시집 보내는 건 아무 의미 없잖아요."진지한: "우리 집 조건만 봐도 현이한테 잘해주지 않을 남자는 없어."배유정은 할 말을 잃었다.진지한이 말한 것 역시 사실이였기 때문이다.현이가 누구에게 시집을 가든 함부로 현이를 건들지 못 할 것이다.이것이 바로 친정이 재력가인 힘이었다.현이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얘기했다. "다른 사람들이 제게 잘해주는 이유가 저희 집안 때문이라면 서은준 씨는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