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오늘 아침 시은이의 머리를 빗어줄 때 갑자기 하얗게 염색하고 싶다고 해서 말이야. 만약 진짜 수현이를 입양하게 된다면 진짜 염색할 것 같아."진아연은 위정 말에 참지 못해 웃었다. “그냥 동의하시지 그래요! 시은 씨는 어떤 색으로 염색해도 다 이쁠 것 같아요.”"일단 며칠 동안 진정하고 다시 결정하자고 말했어." 위정은 바로 자기 걱정을 말했다. "그리고 염색은 아무래도 두피와 모발에 좋지 않아서 말이야.""사실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리고 너무 자주 염색하지 않으면 괜찮을 거예요. 아니면 흰색 가발을 선물해 줘요." 진아연은 이어 자기 생각을 알렸다. "전에도 가발을 자주 쓰지 않았나요?""그런 생각은 못 했네. 일단 수현이의 검사를 마치고 다시 상의해 볼게.""네. 어제 라엘과 지성이도 수현이와 만났는데,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어요. 아마 수현이가 현이라고 생각했나 봐요." 진아연은 현이의 얘기에 방금까지 웃고 있던 미소가 바로 사라졌다. “현이도 착한 사람을 만났으면 좋을 텐데 말이에요.”"무조건 그럴 거야. 너희처럼 착한 사람이라면 하늘이 분명 현이한테 좋은 터전을 마련해 줬을 거야. 지금은 힘들어도 나중에 무조건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위정은 진아연이 우울해하자 바로 위로해 줬고진아연은 그의 말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오전, 수현이의 검사를 마치자 피부과 전문의들은 함께 모여 회의를 진행했고오후에 바로 자세한 진단 내용을 알렸다."수현이의 상황은 안 피부 백색증인 것으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안 백색증보다 심각하지만, 그래도 최악의 상황은 아닙니다. 평소 자외선 차단에 유의하시면 사실 일반인처럼 살 수 있지만, 이 부분은 부모님께서 많이 신경 쓰셔야 합니다. 만약 학교를 가게 되면 선생님들과 아이의 간호 방법을 설명하셔야 합니다. 현재 발병하지 않아 특별한 약물 치료는 진행하지 않으셔도 되고 추후 완치할 수 있는 약이 있는지 알아봐야 합니다."병원에서 나오자 진아연은 수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고도중
진아연은 아이의 말에 뭔가가 떠올랐지만그녀가 채 말하기 전에 경호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수현아, 아연 이모는 보육원 원장이 아니야. 너를 데리고 하산한 이유는 네 병 때문에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데리고 온 거야. 아연 이모한테 절친도 데리고 하산하기를 바란다면 과하지 않을까 싶어.”진아연은 경호원을 힐끗 노려보더니 바로 말렸다.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만약 사원에서 더는 아이들을 챙겨줄 수 없다면 제가 챙겨줄 수 있어요.”수현이는 이들의 말에 붉어진 얼굴로 수줍게 말을 이었다. “경호원 아저씨, 저는 수수가 나중에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했던 거예요. 아연 이모가 아니어도 말이에요. 저도 아이를 키우는 건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수현이의 말을 듣던 경호원은 아이의 말에 당황했는지 바로 설명했다."수현아, 아저씨는 절대 너를 탓하는 뜻이 아니야! 너무 마음에 두지 마!" 경호원은 조심스럽게 아이를 보면서 설명했다."경호원 아저씨, 만약 수수와 만나면 엄청 이뻐할걸요." 수현이는 참지 못해 자기 절친을 자랑했다. "수수는 똑똑하고 귀엽고 제가 지금까지 본 친구 중에서 제일 귀여운 친구예요.""그럼 너보다 더 귀여워?" 경호원은 웃으면서 아이한테 물었다.수현이는 어찌 보면 꽤 귀여운 아이였고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그 외에 수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조숙한 편이었고이는 질병 때문일 수도 있지만, 버림받은 이유일 수도 있었다.그리고 산에서 자란 아이들은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보다 더 조숙하고 철들기 마련이라 생각했다.수현이는 경호원의 말에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모두 귀여워요.""하하!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아니면 여승님들이 그렇게 말한 거야?""다들 그렇게 얘기했어요." 수현이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내일 같이 만나러 가요. 저 진짜 거짓말하지 않았어요.""그래. 그리 귀엽다고 하는데, 아저씨가 선물이라도 사서 내일 만나면 줘야지." 경호원은 계속해 수현이와 얘기
"아연 이모, 제가 그리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수현이는 진아연의 말에 기쁘기도 하지만,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다."물론이지. 수현이가 목표를 정하면 우리 함께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 돼. 그리고 앞으로 이런 비밀들을 시은 이모나 나한테 알려주면 돼. 우리 모두 너의 가장 친한 친구니까 말이야.""네!"다음 날 아침, 날씨도 좋지 않고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라엘과 지성이는 일곱 시도 채 되지 않아 바로 일어났다.라엘은 이미 머리핀 한 박스를 책가방에 넣었고 사원에 도착하면 머리핀을 여자애들에게 나눠줄 생각이었다.아직 쓰지 않은 머리핀이 서랍장에 쌓여 있어 라엘은 사원 여자애들에게 선물할 생각이었고지성이는 누나가 선물을 준비하자 자기도 뭔가를 준비할 생각이었다."누가, 그럼 나는 뭘 선물할까?" 지성이는 머리핀 같은 액세서리보다장난감들이 많지만, 전부 챙겨갈 수 없으니 무엇을 선물해야 할지 고민이었다!"넌 너무 어려. 굳이 선물하지 않아도 돼!" 라엘은 동생을 힐끗 보면서 답했지만지성이가입을 삐죽거리고 불만 가득한 모습을 보자 다시 아이디어를 하나 던져줬다. "너 돈 많지 않아? 그냥 봉투 줘."지성이: "아..."라엘: "누나가 가서 봉투 찾아볼게."지성이: "누나, 잠깐만! 같이 가!"아이들은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봉투를 찾기 시작했다.8시, 진아연과 박시준은 일어나 아래층으로 향했고아이들은 이미 아침을 먹고 거실에서 장난감을 놀고 있었다.라엘은 지성이의 장난감이 너무 유치하다고 생각해수현이와 지성이를 데리고 함께 놀았다.이때 이모님이 다가와 아침을 차려주면서 박시준과 진아연에게 물었다. “지성이가 사원에 가서 아이들에게 봉투를 나눠줄 생각인 것 같아요. 혹시 문제라도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네요.”진아연은 이모님의 말에 깜짝 놀랐다. "아직 어린아이인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한 거죠?""아마 라엘이 알려줬을 거에요. 라엘이 사원 어린이들에게 머리핀을 나눠주려는 걸 지성이가 알게 되서 사원 아이들에게 뭐라도 선물하고
박시준은 위로해 주는 진아연의 말에 참지 못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나도 함께 가고 싶은데, 네가 말리니 그냥 집에 있을게. 밖에 날씨도 추우니까 옷 따뜻하게 입고 가.""네." 진아연은 그의 말에 그저 몸이 따뜻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시준 씨, 갑자기 이렇게 말을 잘 들으니 적응이 안 돼요. 좀 더 달래야 할 것 같았는데, 제가 쓸데없는 생각했네요.""그럼 달래줘." 박시준은 그녀의 말에 바로 부응했다."하하, 오늘 저녁에 돌아와서 달래줄게요." 진아연은 붉어진 얼굴로 아침을 마치고 입을 닦았다. "시준 씨, 주말인데 일하지 말고 쉬어요. 너무 심심하면 친구들을 불러서 집에서 수다나 떨어요.""그래. 조심히 다녀와.""네. 오늘 일기예보 확인했어요. 흐린 날씨지만 바람도 불지 않고 비도 오지 않아요.” 진아연은 말하면서 거실로 향했고박시준은 그녀를 따라 집 앞까지 배웅했다.아이들은 이미 각자 가방 하나씩 메고 대기하고 있었다.진아연은 얼른 패딩을 입고 가방을 챙긴 후,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가자! 위정 삼촌은 아마 출발했을 거야."진아연의 말에 경호원들과 이모님도 같이 움직여 차에 탔다.아침 9시.이들은 사원에 도착하자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위정과 경호원들을 먼저 만났다."위정 씨, 왜 이곳은 남성 참배객을 받지 않는 걸까요?" 경호원은 호기심에 위정에게 물었다.위정: "사원마다 규정이 있으니 저희는 그냥 이들의 규정에 따르면 돼요.""네! 저는 그냥 안전을 위해 걱정뿐입니다." 경호원은 계속해 말을 이었다. "저도 남자지만, 어떤 남자들은 진짜 나빠서 말이죠...""성별을 구별하지 않고 나쁜 사람들은 있는 법이죠. 하지만 나쁜 남자 힘은 여자보다 쌔고 하니깐 이런 차원에서 남성 참배객을 받지 않는 것 또한 이해합니다.""네. 그런데 밖에 있으니 좀 춥네요." 경호원은 추운지 몸서리쳤고그의 말대로 바람은 불지 않지만, 아무래도 산 위에 있는 사원이라 공기가 찰 수밖에 없었다."그리 추우면 움직여도 돼요.""그럼 너무
"그래. 마음의 준비는 이미 다 했어.""위정 선배, 너무 긴장하실 필요 없어요. 사회자 아주 좋은 사람이에요. 그녀는 애들이 다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뿐이에요. 앞으로 수현이 잘 돌보기만 하면 선배 곤란하게 하지 않을 거예요.""알았어."진아연은 위정을 사회자가 있는 쪽으로 데려간 후, 아이들을 찾으러 뒷마당으로 향했다.방금 스님은 수현이, 라엘이와 지성이를 데리고 아이들에게 선물과 용돈 봉투를 나누어 주러 뒷마당으로 향했다.오늘은 주말이라 애들이 모두 절에 있었다.라엘이와 지성이까지 더해지니 뒷마당은 더욱 활기차고 시끌벅적해졌다.스님의 지도하에 애들은 두 줄로 나눠섰다.진아연이 마당에 들어섰을 때, 스님은 마침 아이들에게 라엘이와 지성이를 소개해주고 있었다.스님은 아이들에게 라엘이와 지성이는 산 아래에서 놀러온 친구라고 소개했다, 지성이와 라엘이의 실제 가정상황에 대해 상세히 말하지 않았다.이에 진아연은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이건 지성이가 여러분을 위해 준비한 용돈이에요, 지성이가 오랫동안 모은 세뱃돈이에요. 봉투 받고 지성이한테 고맙다고 말해주세요. 그리고 라엘이 언니가 준비한 머리핀도 있는데, 머리핀 받고 나서 뭐라고 말해야 하죠?""라엘 언니, 고마워요!" 아이들은 한 목소리로 라엘이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라엘이의 어린 마음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그녀는 많은 악세사리 보석이나 장식품을 가지고 있었는데 대부분 부모님이나 오빠가 준 선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집에 예쁜 옷들과 신발들이 아주 많았다, 매일 옷을 갈아입는다고 해도 적어도 한 달 동안은 겹치지 않을 것이다.줄곧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던 라엘이는 여태 부족함이라는 걸 모르고 지냈었다, 하여 부모님들에게 버림받은 이 아이들을 바라보며 그녀의 눈시울은 자기도 모르게 붉어졌다.그녀의 삶은 너무 동화처럼 행복해서 어둠과 가난이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에 어둠과 가난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언니가 머리핀 해줄게!" 라엘이는 말하
진아연은 어린 꼬마애가 생각이 그렇게까지 깊을 줄은 예상치 못했다."수현아, 수수한테 이모 번호 있으니까 나한테 연락이 올 거야."수현이는 기분이 많이 가라앉은 것 같았다: "할머니는 왜 꼭 수수를 데려가려고 한 거에요?"수현이에게는 산 속의 생활도 나쁘지 않았다.진아연과 시은이를 만난게 아니었다면, 수현이는 이곳에서 떠나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수현아, 이건 그 할머니분의 결정이라 우리도 강요할 수 없었어."스님은 평온한 어조로 물었다. "수현이는 산에서 내려가고 그동안 잘 지냈어?""잘 지내고 있었어요. 진 이모가 저 데리고 병원에 가서 병도 치료했어요. 라엘이 언니랑 지성이 동생도 저한테 아주 잘해줘요. 시은이 이모도 새로 알게 됐어요... 시은이 이모가 저를 입양하고 싶어해요. 참, 시은이 이모랑 진 이모는 한 가족이에요. 다 좋은 사람 같아요. 저 시은이 이모랑 같이 살고 싶어요."스님은 진아연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진 아가씨, 수현이가 따라가길 원하는 거 보면 아마 인연은 정말 따로 있나봅니다. 그럼 앞으로 우리 수현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아닙니다, 앞으로 수현이 데리고 자주 찾아뵐게요. 절에 다른 도움이 필요하시거나 어려운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제게 연락하세요. 사회에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면 전 그것으로도 너무 행복합니다." 진아연은 진심을 다해 얘기했다."진 아가씨,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이곳에서 당신과 당신의 가족이 늘 건강하고 잘 되시길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스님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그래서 말인데 제가 지난 번에 산에서 빌었던 소원이 제 가족과 관련된 소원이긴 합니다. 제게 딸이 하나 있는데 태어난 후로 쭉 저희와 떨어져 지냈어요. 제가 딸을 찾아갔을 때는 이미 사라지고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요. 지금까지도 딸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어디서 잘 지내고 있는건지 모르겠습니다." 진아연은 마음속에 담아두고 끙끙 앓던 속앓이를 얘기하며 한숨을 내쉬었다.스님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진 아가씨,
라엘이의 눈꺼풀도 졸음을 참지 못하고 내려오기 시작했다."엄마, 이번 주 일기는 오늘의 이야기를 적을 거에요." 라엘이는 휴대폰을 뒤지며 오늘 찍은 사진들을 보았다.원래 절에는 사진 찍는 것을 허용하지 않지만 라엘이는 그 규정을 모르고 스님에게 애들과 사진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스님은 미소를 지으며 승낙했다."좋아! 그럼 일기 다 쓰고 엄마한테 보여줘.""알겠어요. 엄마, 이 사진 보세요. 제가 한 번 세어봤는데 저랑 지성이 빼면 32명의 어린이들이 있어요." 라엘이가 웃으며 말했다. "공교롭게도 저희 반에도 마침 애들이 32명 있거든요.""수현이가 떠났으니 이제 산에는 31명의 애들만 남았겠네." 진아연이 말했다."그리고 이젠 수수도 절에 없어요!""수수는 애초부터 절에 속하지 않았어. 수수한테는 가족이 있으니까. 수수 못봐서 엄마도 많이 아쉽네. 수현이가 수수 그렇게 많이 좋아하는 거 보면 수수도 수현이처럼 착한 아이일 거야." 진아연은 한탄하며 말했다."수수의 조모는 왜 수수를 데리고 떠난 거에요? 왜 수현이가 떠나면 수수도 떠나야 하는 거에요? 분명 수수는 절에서 떠나기 아쉬워 했다고 했잖아요? 조모는 누구를 가리키는 거에요?" 라엘이는 마음에 품은 의문을 모두 제기했다. "조모가 할머니라는 뜻이에요? 어디서 할머니를 조모라고 부르는 거에요?"라엘이의 마지막 질문에 진아연은 말문이 막혀버렸다.사실 진아연은 라엘이의 앞선 질문들에도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랐다.수수는 산에서 잘 지냈었다, 수현이가 입양되고 절을 떠났기 때문에 조모가 이리 급히 수수를 데리고 떠난 것이었다.조모의 행동은 다소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할지도 모른다."어쩌면 일부 지역에서 할머니를 조모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 진아연이 추측하며 말했다. "수현이가 수수 자기보다 어리다고 했던 거 같은데.""네. 그럼 수수는 엄마 아빠가 없는 거에요? 그렇지 않으면 할머니는 왜 수수를 데리고 절에서 지냈겠어요?" 라엘이는 수수도 너무 가엽게 느껴졌다.가족이 있긴 하지
박시준은 대답하며 휴대폰을 딸에게 돌려주었다."오늘 산에서 즐거웠어?""마냥 즐겁지만은 않았어요. 많은 애들이 선천적 질병 때문에 버림 받았어요. 그리고 일부 아이들은 건강했지만 그래도 부모님들에게 버림 받았죠. 그래서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라엘이는 시무룩해하며 말했다. "아빠, 그 아이들과 비하면 저는 너무 행복한 것 같아요.""라엘아, 이 세상에는 불행한 사람들도 많고 행복한 사람들도 많아. 행복한 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 박시준은 인내심과 함께 딸을 위로해 주었다. "먼 곳에 있는 시골에 가면 더 많은 불쌍한 아이들이 있을 거야. 어쩌면 밥도 배부르게 먹지 못하면서 지낼 수도 있어."아버지의 말을 들은 라엘이는 더 우울해졌다: "아빠, 제가 어떻게 해야 그 아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요?""그 아이들을 위해 돈을 기부할 수도 있고 물건을 기부할 수도 있지. 엄마랑 아빠는 매년마다 자선 단체에 기부하고 있어. 우리가 모든 사람들의 운명을 바꿀 수는 없어도 한 명이라도 더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거지.""알겠어요, 아빠.""라엘아, 아빠가 멀리 나갈 수 있을만큼 몸이 더 나아지면 우리 라엘이 데리고 더 많은 곳에 다닐게.""좋아요, 아빠! 아빠가 빨리 나으셨으면 좋겠어요!"진아연은 옆에서 부녀지간의 대화를 들으며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시준 씨, 솔직히 말해봐요. 당신 시골에서 지내본 적 없으시죠? 당신이 매년 자선 단체에 기부한다는 건 맞지만 당신 분명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체험해 본 적은 없을 거예요."박시준: "...""당신 라엘이 데리고 너무 외딴 곳에 가지 마세요, 걱정되니까요." 진아연은 무자비하게 비웃으며 말했다. "그때 가서 오히려 라엘이가 당신 챙겨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박시준: "..."굳이 그렇게 말할 필요까지 있나?아이 앞에서 체면 좀 차려주면 안되나?"라엘아, 너희 아버지는 3대째 사업을 이어오고 있어 늘 부자 집안이었어. 너희 아버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가난하게 지낸 적이 없었단다." 진아연이 딸에
3년 후.A국, 공항.현이는 둘째 오빠와 함께 공항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3년이야 3년! 남자친구라는 사람 드디어 너 찾으러 오는 거야!" 박지성은 현이를 놀리며 얘기했다. "설마 너랑 헤어지러 오는 건 아니겠지? 어쨌든 3년 동안 못 만났는데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현이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둘째 오빠, 저 지금 저주하시는 거예요? 비록 3년 동안 못 만났지만 매일매일 영상통화 하면서 서로 얼굴 봤거든요!"박지성은 툴툴거리며 말했다. "사이버 연애하는 거랑 뭐가 다르냐?"현이: "어쨌든 이번에 A국에 와서 정착하기로 약속했으니까 이제부터 다시는 떨어져 지내는 일 없을 거예요."박지성: "네 남자친구도 자존심이 너무 강해. 이따 아버지 만나고 얘기 얼마 나누지도 않고 다시 티켓 사고 도망치는 거 아니야?"현이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뭐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아!"현이는 곧바로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바라보았다——서은준이 캐리어를 끌며 출구에서 나오고 있었다.현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은준을 향해 달려가 서은준의 품에 안겼다.이때 박지성은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진아연이 물었다. "아직 못 만났어? 설마 안 오는 건 아니지?"박지성: "엄마, 제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에요. 금방 나왔어요, 지금 현이랑 껴안고 있어요! 우리 이제 곧 집에 갈 거니까 엄마랑 아빠도 마음의 준비 잘 하고 계세요."박 씨 저택.진아연은 통화를 마친 후 박시준에게 전달했다.박시준은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자신의 용모를 검사했다.진아연은 화장실 문 앞에서 지켜보며 소리내어 웃었다. "거울 그만 비춰요, 충분히 멋있어요!"박시준: "여보, 좀이따 은준이한테 좀 엄격해야 할까?"진아연: "현이가 그렇게 좋다는데, 은준이도 현이 위해서 A국에 있겠다고 한데다 엄격하게 해서 뭐하려구요? 굳이 두 아이의 기분을 망쳐야겠어요? 은준이도 지금 어엿한
서 어르신은 진지한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얘기를 꺼낼 줄 예상치 못했기에 차마 어찌할 바를 몰랐다.왜냐하면 진지한에게 돈을 달라고 할 계획이긴 했지만 얼마나 달라고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어쨌든 진지한은 엄청난 부자였고, 적게 달라고 하니 왠지 손해를 보는 기분이였고 많이 달라고 하자니 거절 당할까 봐 걱정되었다.서 어르신은 한동안 망설인 후 진지한에게 말했다. "진 대표님 집이 A국에서 엄청난 부자라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가 적당한지는 대표님께서 정하시죠! 저와 우리 아들에게 푸대접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진지한은 눈살을 찌푸렸다.배유정은 그것을 보고 바로 입을 열었다. "아버님께서 금액을 정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저희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얼마가 적당할지 가늠이 안 가네요. 굳이 저희더러 정하라면 돌아가서 저희 시아버님과 상의해 봐야 할 것 같네요."서 어르신: "혹시 박시준 씨 말하는 겁니까?"배유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저희 시아버님 저희 남편보다 더 까다로울 겁니다. 입장 바꿔서 아버님이라도 따님을 평범한 남자한테 시집 보내진 않을 거잖아요?"서 어르신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긴 해요. 그럼 그냥 우리끼리 얘기하죠!"배유정: "지금부터 고민해 보셔도 괜찮아요. 저희 요 이틀 동안은 여기 있을 거거든요."서 어르신: "알겠어요! 그럼 우선 연락처 먼저 교환하죠! 나중에 일이 있을 때도 서로 연락하기 편하잖아요."배유정은 진지한을 흘끗 보았고 그제서야 진지한은 휴대폰을 꺼내들고 서 어르신과 연락처를 교환했다.병원.현이는 서은준의 곁에서 어머니의 뒷일을 처리했다.서은준은 장례식장에 전화를 걸어 어머니의 시신을 옮겨달라고 했다.현이가 서은준에게 물었다. "장례식 간단하게 치를 생각이에요?"서은준: "엄마 켠에도 친척들이 별로 없어."현이: "네. 그럼 어머니 계실 묘지부터 골라야죠?"서은준: "엄마가 전에 유골을 엄마 고향 연못에 뿌려달라고 했어."현이: "..."서은준: "엄마는 내
진지한: "그래요 그럼! 근처에 가까운 카페라도 갈까요."서 어르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좋아요! 사실 우리 집이 바로 병원 근처에 있는데 한 번 가보실래요? 현이도 우리 집에서 꽤 오랫동안 지냈었고 우리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랑 사이가 아주 좋았거든요."진지한은 배유정을 보며 말했다. "그럼 한 번 가볼래?"배유정: "좋아요!"서 어르신은 즉시 진지한과 배유정을 자신의 차로 안내하며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서 어르신의 집에 도착한 후 서 어르신은 즉시 하인들을 분부하여 과일과 디저트를 올리라고 했다.서 어르신은 집사를 가리키며 진지한에게 말했다. "이 사람이 바로 우리 집 집사입니다. 예전에 현이 할머니도 집사가 뽑고 집에 들였죠."진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서 어르신은 집사에게 말했다. "이 분은 수수 친 오빠야, 유명한 대기업의 대표 진지한 씨."집사: "진 대표님, 안녕하세요! 수수 정말 괜찮은 아이였어요, 그때 우리 모두 수수를 많이 좋아했답니다. 전에 수수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리를 듣고 많이 속상했는데 사실이 아니라니 참 다행이에요! 수수는 정말 철도 들고 씩씩한 아이였어요, 제가 봤던 아이들 중 가장 씩씩한 아이에요. 수수가 잘 지내고 있다니 정말 기쁘네요."진지한: "전에 우리 동생 잘 챙겨줘서 고마웠어요."집사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대표님, 별 말씀을요! 수수는 정말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어요. 매번 적극적으로 맡아서 일도 잘하고 정말 괜찮은 아이에요. 우리는 그때부터 수수가 나중에 대학 졸업하고나면 꼭 잘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진지한은 집사의 말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서 어르신이 집사에게 말했다. "귀한 손님과 할 얘기가 있으니 먼저 내려가."집사는 즉시 물러났다.서 어르신은 진지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현이가 우리 은준이랑 사이가 좋았다는 거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제가 현이를 은준이 곁에 안배했거든요, 그때 두 아이 나이가 비슷했기도 했고 서로 얘기도 잘 통할 거
현이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오빠, 은준 씨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저 요 며칠 동안 언니 오빠랑 놀러다닐 수 없을 것 같아요."진지한: "괜찮아. 은준이 집에 이런 일이 생겼는데 우리도 놀 기분 아니야. 은준이 어머님 장례식 참석하고 돌아갈게."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여긴 장례식을 어떻게 치르지?" 진지한을 물었다.서은준은 현이의 남자친구자 현이 또래기도 하니 현이의 오빠로서 왠지 모르게 서은준을 도와 어머니의 뒷일을 처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현이: "국내랑 비슷해요. 돈 많은 사람들은 거창하게 치르고 보통 사람들은 그냥 간단하게 치르곤 해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장례식은 따로 안 치르고 직접 무덤에 묻기도 하구요."진지한: "좀 거하게 치르려면 어떻게 해야 해?"현이: "오빠, 은준 씨 어머님 장례식 치르는 거 도와줄려고요? 은준 씨 친척들도 별로 없으니까 그렇게 거하게 안 치러도 돼요."진지한: "그래. 그럼 은준이랑 어떻게 할 건지 상의해 봐.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줄게."현이: "고마워요, 오빠. 근데 안 도와줘도 괜찮을 것 같아요. 장례식 치르는데 돈 많이 들진 않을 거예요. 은준 씨도 저희가 자기 어머님 장례식 도와주겠다고 하면 받지 않을 거예요."진지한: "그래 그럼! 가서 은준이 옆에 있어줘!"현이: "오빠, 그럼 오빠랑 새언니는...""우리 걱정은 안해도 되. 나 너희 새언니랑 밖에 나가서 좀 걸을게,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하고.""알았어요, 오빠."현이는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진지한과 배유정은 병동을 나섰다.서 어르신은 병원 건물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진지한과 배유정이 나오는 것을 보고 바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진 대표님, 저희 아들이 저한테 깊은 오해가 있어 현이까지 절 싫어하나 보네요. 사실 저 예전에 현이한테 정말 잘해줬어요." 서 어르신은 솔직하게 얘기했다. "사실 현이가 아주 오래 전부터 저희 집에서 일했었거든요. 그때는 현이를 키우던 할머니와 같이 우리 집 주방에
전화를 끊은 후 서은준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현이는 서은준의 곁에 서서 물었다. "은준 씨, 왜 그래요?"서은준: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대. 미안하지만 당신 혼자 형님이랑 시간 보내야 될 것 같아! 난 병원으로 가야 될 것 같아."현이: "같이 가요! 어머님 방금까지 멀쩡하셨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두 사람은 진지한과 배유정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차를 잡으러 길가로 향했다.진지한과 배유정은 두 사람이 급하게 차에 올라타는 모습을 바라보며 조금 당황스러웠다.배유정: "여보, 우리도 병원에 가봐요! 은준 씨 어머님이 돌아가셨나봐요."진지한: "그래."두 사람은 택시 한 대를 세우고 서은준이 탄 차를 쫓았다.병원.빠른 속도로 병원에 도착한 서은준은 함께 서있는 의사 선생님과 서 어르신을 보았다.서 어르신은 아첨하는 말투로 말했다. "은준아, 원래는 너희 엄마 보러 병원에 온 건데 내가 왔을 때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어. 너무 안타깝구나!"서은준: "당신이 오기 전에 사망한 거 확실해요? 저도 오늘 왔었어요, 제가 왔을 땐 분명 아주 멀쩡했다고요!"서 어르신: "물론 다 사실이지! 못 믿겠으면 의사한테 물어봐!""의사한테 물어볼 필요 없어요!" 서은준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간호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주머니, 우리 엄마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신 거예요? 저 사람 오기 전에 돌아가신 거예요, 아니면 오고 나서 돌아가신 거예요?"겁에 질려 있는 간호인들 부들부들 떨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서 어르신은 분노에 가득 찬 어조로 간호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우리 아들이 묻고 있잖아요. 말해 보세요! 제가 여기 왔을 때 당신 어디 있는지 그림자도 못 봤는데 혹시 밖에서 놀고 있던 거 아니에요?"간호인은 곧바로 대답했다. "아버님께서 오셨을 때 물 받으러 잠깐 병실에 없었어요. 아버님께서 언제 오셨는지 어머님께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정말 미안해요! 이번 달 비용은 받지 않을게요!"간호인은 말
서 어르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당신 나 지금 무시하는 거야? 우리 서씨 집안이 지금 좀 상황이 안 좋긴 해도 T국에서 여전히 명망있는 가족 기업이라고! 은준이가 철이 없다고 당신까지 이렇게 무식해서 어떡하려고 그래? 은준이 뒤에 내가 없었다면 박씨 집안에서 우리 은준이 거들떠 보기나 할 것 같아?"서은준의 어머니: "그 입 다무세요! 박씨 집안에는 당신처럼 속좁은 사람 없어요! 현이 가족들은 우리 은준이를 무시하지 않는다고요! 그니까 괜히 쓸데없이 그분들 귀찮게 하지 마세요! 당신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괜한 짓 하지 말라고요!"서 어르신: "정말이야? 박씨 집안에서 정말 은준이를 반대 안 해? 어떻게 반대 안 할 수가 있지? 설마 은준이더러 A국에 가서 데릴사위라도 하라는 건가?"서은준의 어머니: "그러든 말든 당신이랑 아무 상관 없어요! 당신 여태껏 은준이 돌본 적 없잖아요. 이젠 은준이도 독립했으니 당신 도움 더 필요 없어요! 만약에 은준이 여자친구가 현이가 아니었다면, 현이가 박씨 집안 딸이 아니었다면 당신 이렇게 부지런히 저 찾아오지 않았을 거잖아요... 당신이 어떤 마음 품고 있는지 제가 모를 것 같아서 그래요?"서 어르신: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릴 지껄이고 있는 거야? 은준이 18살 때 당신이 내 곁으로 보냈잖아? 당신은 못 키우겠다고 나더러 키우라고 했잖아? 내 도움이 없었다면 은준이 저렇게 유학 다녀올 수 있었을 것 같아? 만약에 유학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능력있을 것 같아? 지금 저렇게 사업할 수 있는 것도 다 내 덕분이라고!"서은준의 어머니는 화가 치밀어올라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했다. "은준이더러 대학 등록금 다 갚아주라고 할게요!"서 어르신: "이건 대학 등록금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은준이 내 아들이야, 엄연한 내 피가 흐르고 있는 내 아들이라고! 이건 변할 수 없는 사실이야! 은준이가 나중에 잘 지내던 못 지내던, 이 애비 떨쳐낼 생각은 꿈도 꾸지
현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저 지금은 안 가요. 저 신경쓰지 말고 당신 할 거 하면 되요."서은준: "여기 있어봤자 너한테 시간낭비일 뿐이야."현이: "저 그동안 진짜 열심히 공부하고 회사생활도 열심히 했다고요, 잠깐 쉬겠다는데 뭐가 어때서요."잠시 후 진지한과 배유정은 호텔로 돌아왔고 네 사람은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서은준의 어머니는 현이의 오빠와 새언니가 오는 것을 몰랐기에 그들이 온 것을 보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서은준의 어머니는 몸을 일으켜 앉으려 했으나 더 이상 힘을 줄 수 없었다.현이는 전동으로 서은준 어머니의 병실 침대머리를 올려 주었다. "어머님, 저희 오빠랑 새언니 신혼여행 겸 여기 놀러 왔다 어머님이랑 은준 씨 보러 여기 들른 거예요."서은준의 어머니: "아이고, 여기까지 오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현이를 알게 된 건 정말 우리 아들의 행운이에요..."배유정: "어머님,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은준 씨도 얼마나 훌륭한데요. 그렇지 않으면 현이도 은준이를 좋아할 리가 없잖아요."서은준의 어머니: "듣기론 현이 집이 엄청난 부자라던데... 혹시 우리 은준이 반대하는 건 아니죠?"배유정: "어머님, 저희도 사람 됨됨이와 인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은준이랑 현이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두 아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거라면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을 거예요."서은준은 어머니: "네... 정말 고마워요! 유일하게 걱정되고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게 바로 제 아들이에요. 현이네 집에서 우리 아들 너무 얕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우리 아들이 자존심이 강하거든요..."진지한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서은준의 어머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를 포함한 우리 가족 그 누구도 어머님 아들 무시하는 일 없을 겁니다."현이는 오빠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깊은 감동을 받은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서은준의 손을 꼭 잡았다.진지한은 병실에서 잠시 머물다 나갔다.현
현이는 긴장감에 밥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모를 정도로 아무 맛도 느끼지 못했다.서은준과 큰 오빠의 대화는 기본적으로 중요한 얘기들을 다 꺼냈고 생각보다 훨씬 순조로웠다.큰 오빠도 화를 내지 않았고 서은준 역시 화나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사실상 이미 그녀의 걱정과 기대를 뛰어넘는 결과였다.하지만 현이는 여전히 마음이 무거웠다."은준 씨, 좀이따 저희 남편이랑 병원에 가서 어머님 한 번 찾아뵙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식사를 마친 후 배유정이 서은준에게 물었다.서은준: "좋아요."현이: "어머님께 미리 말씀 드릴까요?"서은준: "괜찮아. 이따 가서 직접 소개해 드리면 돼."서은준 어머니의 상태는 나날이 악화되고 있었고 휴대폰을 안쓴지 이미 오래 되었다.보통 간호인이 매일매일 서은준에게 어머니의 상태에 대해 보고하곤 하였다.배유정: "사업도 하느라 어머님도 챙기느라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보통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무너졌을 텐데."서은준: "현이의 예전 생활은 저보다 더 어렵고 힘들었어요. 현이도 무너지지 않고 씩씩하게 잘 버텼는데 저도 잘 이겨낼 겁니다."배유정: "하하! 둘 다 씩씩한 사람이라 좋네요. 지금이든 나중이든 어떠한 곤난도 두 사람을 무너뜨리지 못할 거예요."현이: "언니 정말 너무 좋아요! 언니는 정말 제가 봤던 사람들 중 저희 엄마 제외한 가장 부드러운 사람이에요."배유정은 현이의 칭찬에 얼굴이 빨개졌다.진지한: "너희 언니가 이 말 들으면 서운했을 거야."현이: "언니는 당연히 다르죠! 제 마음속 언니는 부드러운 성격이 아닌 용감하고 씩씩한 슈퍼 히어로같은 존재니까요."배유정: "라엘이 성격에 슈퍼 히어로가 되는 걸 더 좋아할 거예요."현이: "아무튼 언니는 절대 저와 이런 걸로 다투지 않을 거예요."배유정: "당연하지. 다들 배 부르게 먹었어? 다 먹었으면 오빠한테 계산하라고 할게."이 말을 들은 진지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때 서은준도 일어나며 말했다. "제가 계산할게요."현이는 애원하듯
현이가 말을 마친 후 서은준도 입을 열었다. "우선 열심히 일하고 제가 어느 정도 능력이 될 때 다시 책임지고 싶습니다."진지한은 차갑게 비웃으며 말했다. "사업이 그렇게 쉬울 것 같아? 그럼 사업이 실패하면 어떡하려고? 혹은 계속 미지근하게 아무런 진전도 없으면?"서은준: "형님이 말하신 것처럼 사업에 실패하거나 아무런 성과도 이뤄내지 못한다면 현이 고생시킬 생각은 없습니다."진지한: "자기 분수는 잘 알고있네."현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큰 오빠, 은준 씨 사업이 실패하거나 아무 성과를 이뤄내지 못한다고 해도 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적어도 돈 때문에 은준 씨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배유정은 다시 한 번 진지한의 손을 잡으며 진지한의 말이 심했다고 일깨워 주었다.다른 사람에게 차갑고 날카롭게 공격적일 순 있어도 현이에게 이렇게 공격적이진 못했다.현이 역시 자신의 말이 다소 부적절하다고 느꼈는지 말투를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큰 오빠, 전 그냥 돈이 한 사람을 판단하는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뿐이에요. 그리고 저희 집 이미 충분히 돈 많잖아요. 아무리 돈 많은 상대를 찾는다고 해도 저희 집보다 돈이 많은 사람은 찾기 어려울 거예요. 어차피 우리 집보다 돈이 많은 게 아니라면 돈이 많은 사람을 찾든 좀 적은 사람을 찾든 다 똑같잖아요."배유정: "현이 말이 맞아요. 가장 중요한 건 사람 됨됨이고 두 사람의 감정이에요. 만약에 상대방이 서은준 씨보다 돈이 더 많지만 현이한테 잘하지 않는다면 그런 남자에게 현이를 억지로 시집 보내는 건 아무 의미 없잖아요."진지한: "우리 집 조건만 봐도 현이한테 잘해주지 않을 남자는 없어."배유정은 할 말을 잃었다.진지한이 말한 것 역시 사실이였기 때문이다.현이가 누구에게 시집을 가든 함부로 현이를 건들지 못 할 것이다.이것이 바로 친정이 재력가인 힘이었다.현이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얘기했다. "다른 사람들이 제게 잘해주는 이유가 저희 집안 때문이라면 서은준 씨는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