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그녀를 속인 것도 모자라 하필이면 회사의 기밀을 왕은지에게 넘겼다."점심에 안 쉰 거 아니야?" 그가 화제를 바꿨다."잠이 안 와요." 그녀가 미간을 누르며 말했다. "왕은지에게 짓밟힌 느낌이에요.""일단 푹 쉬고 있어.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볼게." 그의 차분한 목소리는 그녀의 초조함과 불안을 해소시켰다.그녀는 자기도 몰래 웃었다. "어떻게 도울건데요? 시준 씨는 지금 Y국에 있고 지금은 ST그룹의 대표도 아닌데...""이 문제는 ST그룹의 대표와 상관이 없어. 당신이 내 지분을 최운석에게로 돌렸으니 당신 권력은 ST그룹의 대표를 초월했어."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차갑게 변했다.그녀의 얼굴에 피어올랐던 미소가 얼어붙었다.그녀는 방금 농담으로 아무 말이나 막 했는데 사실 이건 전혀 웃기지 않는 일이었다.왜 그가 지금 ST그룹의 대표가 아니란 말인가? 이것은 모두 그녀 때문에 생긴 일이다."시준 씨, 미안해요. 전 그저 당신이 빨리 귀국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한 말이에요. 돌아오면 최운석 씨한테 지분을 돌려주라고 할게요." 그녀는 자책하며 말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의 돈으로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아요.""쉬고 있어. 성빈한테 연락하도록 할게." 말을 마친 그는 전화를 끊었다.진아연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그가 일부러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회사 일을 물었다는 건 그녀를 돕고 싶어 한다는 걸 말해준다.그가 ST그룹의 대표든 아니든 지금 어디에 있든 그의 이런 마음 하나로 그녀는 무척 감동했다.그녀는 그에게 돌려주고 싶었다.그가 귀국한 후 그녀는 그의 모든 것을 돌려줄 것이고 그들의 관계도 더 소중히 여길 것이다.그녀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오후에 마이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그녀가 책상에 엎드려 자는 걸 본 그는 그녀의 앞에 다가가 등을 다독였다."아연아. 일어나, 누가 왔는지 알아?" 마이크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그녀를 불렀다.그녀는 눈살을 찌푸리고 잠에서 깨지 못했다."
진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ST그룹의 투자를 받을 의향은 있었지만 이로 인해 ST그룹에 피해를 줄까 걱정되었다.ST그룹이 투자하고 손해를 보면 어떻게 하지?비록 지금 ST그룹이 박시준의 회사가 아니지만 앞으로 언젠간 다시 박시준의 손에 돌려줄 것이다. 그녀의 마음속에 ST그룹의 대표는 박시준뿐이었다."성빈 씨,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회사가 지금 부딪친 문제는 기술의 연구 개발이에요.""내가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성빈이 담담하게 말했다. "박시준이 나에게 전화를 하기 전에 이미 아연 씨 회사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았어요. 왕은지의 제이그룹을 이기려면 생산 라인을 하나도 스톱하면 안 돼요. 그리고 왕은지와 가격 전쟁을 해야 해요. 왕은지가 기진맥진해서 떨어져 나가든지 아연 씨가 나가든지 둘 중 하나만 남겨질 거예요. 이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어요."성빈의 말을 들은 진아연은 마음이 식었다.그녀는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 "그러려면 돈이 많이 필요해요... 왕은지는 많은 투자자를 찾았다고 하던데...""맞아요. 그래서 지금은 ST그룹만 진아연 씨를 구할 수 있어요." 성빈이 컵을 들고 물을 마시려다 컵이 비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마이크에게 건네줬다. "물컵을 큰 거로 바꿔 줄래요?"마이크: "커피를 주문할게요. 좀 있다 아연이랑 얘기가 끝나면 임원들을 불러올 테니 같이 대책을 의논해 봐요..""진아연 씨가 아직 우리의 투자를 받을지 결정하지 않았잖아요." 성빈이 눈썹을 씰룩이며 말했다. "그렇게 간절히 우리에게 인수되길 바라는 거예요?""인수라니요? 당신들이 투자했다고 해도 경영권은 우리 손에 있는 거 아닌가요? 설마 경영권도 가져가려고요? 이런 젠장." 마이크가 그를 노려보았다."하하. 마이크 씨가 관리한 회사가 무슨 꼴인지 한번 봐요." 성빈이 놀려댔다. "경영권은 당신들이 가져요. 다만 우리는 감독할 권리가 있어요. 경영을 제대로 하지 못할 시 우리가 인수하는 거로 해요.""욕망이 너무 넘치는 거 아니에요? 아예 가격을
"이런 방법을 일컬어, 발본색원한다고 하죠. 이건 특히 시준이가 선호하는 방법이에요." 성빈이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설명했다. "초반에 자본금이 많이 들긴 하겠지만, 경쟁 상대가 모두 사라지고 나면, 발언권은 모두 우리 차지가 될 거예요.""정말 우리가 스카우트 해올 수 있을까요? 왕은지가 분명 적지 않은 메리트들을 제시했을 텐데, 만에 하나 주식 지분까지 얘기가 된 거라면..." 진아연이 대답했다."왕은지가 줄 수 있는 건, 우리도 줄 수 있어요. 오히려 우린 더 많은 걸 줄 수도 있죠." 성빈이 대답했다. "만약 아연 씨라면, ST그룹과 제이그룹 중에서 어느 쪽을 택하겠어요?"두 회사는 규모 자체가 달라, 서로 비교 대상이 되지 않았다."그럼... 직접 스카우트에 나설 생각이에요, 아니면 제가 할까요?" 진아연이 물었다."우리 둘이 함께 하면 어때요!" 성빈이 대답했다. "물론 시준이가 나섰다면 상황이 더 쉬웠을 거예요. 하지만 언제 귀국할 예정인지 물었더니, 당분간은 힘들 것 같다고 하더군요."진아연이 눈꼬리를 축 늘어뜨리며 말했다. "시준씨는 김형문이 죽고 난 뒤에나 돌아올 수 있을 거예요. 김형문이 지금 중환자실에 있기는 하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죠.""나한테는 그런 말 없었어요. 나한테는 전화로 아연 씨 회사에 관한 이야기만 하더군요. 다른 얘기는 일절 없었어요." 성빈이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바둑판의 바둑돌이 된 듯한 기분이네요. 시준이는 나를 형제로 생각한 적이 없었던 거죠.""그렇지 않아요." 진아연이 박시준을 대변했다. "시준 씨는 그저 성빈 씨 걱정을 시키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거예요. 혹여나 성빈 씨가 자기를 찾아오기라도 하면, 상황이 더욱 힘들어질 테니까요.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그 지역의 토착 세력을 이기기는 힘들다는 말, 들어봤죠? Y국의 법률 조항은 우리나라와 달라요. 그쪽에선 몇몇 힘 있는 가문의 사람들을 외에는, 다른 평범한 사람들의 목숨은 파리 목숨처럼 여긴다고요.""나도 알고 있어
갑자기 그녀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그녀가 스스로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기꺼이 그에게 내어주는 것과, 그가 그녀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고자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그 순간, 그녀는 박시준이 왜 그토록 화가 났었는지 이해가 되었다.그가 잃은 것은 단지 ST그룹만이 아니었다. 그의 신념과 믿음이 붕괴되어버린 것이었다.그가 그녀의 진명그룹을 빼앗을 것이라고 그녀가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처럼, 그 또한 그녀가 ST그룹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게 할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저녁, 진아연은 여소정을 집으로 초대해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아연아, 상처는 아직도 아파?" 여소정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상처를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팠다.수술할 때, 머리의 일부분을 밀어야 했다.다행히 그녀는 머리숱이 많은 편이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머리의 상처는 잘 티가 나지 않았다."응. 다 나으려면 한 달은 걸린대." 진아연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준기 씨랑은 어때?""비슷하지 뭐! 이제 뜨거움은 사라지고, 노부부 모드가 시작되었어." 여소정이 진아연을 소파로 데려와 앉히며 말했다. "그나저나, 나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았어." "기분이 어때? 일은 좀 익숙해졌어?" 진아연은 그녀가 가져온 선물 더미 속에서, 선물을 하나씩 꺼냈다."할만해, 생각보다 어렵지 않더라고. 아버지께선 회사가 망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하셨어. 노후 자금은 이미 마련해 두셨대. 그저 내가 걱정되셨던 거지." 여소정이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참 당황스럽더라.""너 부담 갖지 말라고 그렇게 말씀하신 거야. 회사를 운영하는 건 꽤 힘든 일이거든. 타고나길 대표가 되는 걸 좋아하고, 그런 강도 높은 스트레스와 자극을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그걸 견디지 못하는 사람도 있어." 진아연이 말했다."나는 책임자는 영 별로야. 하지만 우리 아버지에게 자식이라곤 딸인 나 하나뿐이고, 난 그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겠지.
"이모 남편이 별로라면서요, 그렇죠?" 라엘이 다가와 진아연의 다리 위에 엎드렸다."맞아, 라엘아, 나중에 남편을 찾을 때가 오면 반드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단다! 절대로 준기 삼촌처럼 능력도 없으면서, 쓸데없는 일에 기웃거리기만 좋아하는 사람은 만나면 안 돼!" 여소정이 웃으며 말했다. "네가 돈을 아주 잘 벌고, 기생오라비같은 남자를 만나 먹여 살리면서 살고 싶다면, 그러면 준기 삼촌 같은 사람도 괜찮아.""기생오라비 같은 남자를 만나 먹여 살리면서 살 거라면, 왜 세연 삼촌 같은 남자는 만나지 않는 거예요?" 라엘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여소정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그 말, 준기 삼촌한테 꼭 전해야겠다! 그 말을 듣고 나면 이제 자기 주제를 확실히 알겠지! 하하!""가서 밥 먹으렴!" 진아연이 라엘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리에서 일으켰다. "라엘아, 모든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란다. 준기 삼촌에게도 세연 삼촌에게는 없는 준기 삼촌만의 장점이 있어.""아연아, 뭘 그렇게 준기 씨를 감싸주니? 어느 방면으로 봐도 준기 씨보다 김세연 씨가 훨씬 월등하지! 세연 씨 같은 사람을 만날 수만 있다면, 난 준기 씨랑 곧바로 이혼할 거야!" 여소정은 이런말을 하며 기분이 좋아보였다.진아연은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넌 정말 시준 씨 말고 다른 남자는 생각도 해 본 적 없어?" 여소정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진아연이 고개를 저었다. "다른 남자들한테는 그저 호감이나, 좋은 친구라는 감정만 느껴질 뿐이야. 다른 감정은 없어.""그렇구나. 하긴, 시준 씨가 오죽 잘 나야지! 준기 씨가 시준 씨 반만 따라갔어도, 내가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았을 거야!""사실, 시준 씨가 사업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라서가 아니야." 진아연이 쑥스러워하며 말을 이었다. "내 눈에 시준 씨는 정말 잘생겼거든. 나중에 시준 씨가 일을 그만두거나, 나한테 의지하며 산다고 해도, 난 그래도
"제 친척 중 하나가, 오랫동안 임신 준비를 했는데도 임신이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실력이 뛰어난 한의사를 찾아가 몇 달 동안 약을 처방받아 먹었더니, 금방 임신을 했다지 뭐예요." 이모님이 기쁜 마음으로 말했다. "그래서 소정 씨도 지금 임신 준비 중이잖아요? 소정 씨도 그 한의사를 찾아가 보면 어때요? 효과가 있으면 제일 좋고, 만에 하나 효과가 없더라도 손해 볼 것은 없잖아요."진아연이 여소정을 바라보았다."좋아요! 그 한의사 연락처 좀 알려주세요, 시간 날 때 한번 가 보죠, 뭐." 여소정이 고개를 돌려 진아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모님 말씀이 맞아. 손해 볼 것 없지, 뭐.""나중에 처방전 가져와서 나한테 보여 줘.""알았어.""사실 나도 잘 모르긴 해." 진아연이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래도 한번 찾아볼게.""하하하! 이모님의 추천이면 믿을 만하지! 별 문제 없을 거야." 여소정이 이모님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정말로 아이가 생기면, 제가 꼭 크게 보답할게요!"이모님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이만 생긴다면 더 바랄 것도 없죠. 지금 바로 전화해서 연락처를 물어볼게요."이모님이 말을 마친 뒤 주방을 떠났다.라엘이 밥을 한 숟갈 뜨고는 진아연에게 말했다. "엄마, 전 나중에 커서 아기를 낳지 않을 거예요!""왜 아기를 낳고 싶지 않다는 거야?" 진아연은 어린 딸이 갑자기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어 어리둥절했다. "라엘이 너는 아직 어리잖아, 나중에 커서 다시 고민해봐도 늦지 않아.""배가 부풀어 오르는 게 싫어요! 안 예쁘단 말이에요." 라엘이 조그만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어째서 남자들한테 아기를 낳게 하지 않는 거예요?""라엘아, 그것참 좋은 질문이야. 너희 엄마한테 남자가 아기를 낳을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좀 연구해보라고 해줘." 여소정은 아이를 낳는 문제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듯 보였다. "만약 남자가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된다면, 난 시준 씨처럼 훌륭한 기업가
김영아와 봉민은 매일 김형문의 병상 곁에서 김형문을 보살폈다.박시준 또한 쉴 틈이 없었다. 그는 매일 병원에 와서 김형문을 병문안하는 것 외에도, 김형문의 비즈니스 제국을 관리하느라 바빴다.Y국에 있는 김씨 가문의 사업은 산모 및 아동 용품 사업에서 교육, 장례, 고급 호텔, 쇼핑몰, 그리고 명품 사업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를 섭렵하고 있었다.처음 김형문이 그를 데리고 이 사업들을 돌아보게 하는 데만 꼬박 일주일의 시간이 걸렸다.그와 김영아가 결혼한 이후로, 김형문은 각 분야의 책임자들에게 그를 소개했다. 김형문이 그의 권한을 물려줄 사람이라고 대놓고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책임자들 모두 똑똑한 사람들이었다.이번에 김형문의 암살 사건이 있었을 때, 모두가 박시준에게 아부하느라 바빴다. 그 덕에 김형문이 아직 죽지 않았음에도, 이곳에서 박시준의 지위는 훨씬 견고해졌다.저녁. 병원에서 돌아온 김영아는 박시준이 집에 있는 걸 보고 조금 놀랐다."시준 씨, 오늘 일찍 들어왔네요. 매일 오늘처럼 일찍 들어올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렇지 않으면 몸이 많이 상할 거예요." 김영아가 다정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아버님은 좀 어때?""오전에 깨셨을 때는, 아직 쇠약하긴 하셨어도 꽤 평온하셨어요. 오후에 컨디션이 조금 회복되고 나니, 성질을 부리기 시작하셨죠. 당신 호텔에서 그런 습격을 당한 것에 많이 화가 나셨어요. 그래서 봉민 씨에게 호텔 담당자를 정리하라고 하셨어요." 김영아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의사가 지금은 격한 감정은 자제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전혀 듣질 않으세요. 범인을 직접 처리하지 못해 분하신가 봐요."박시준이 눈살을 찌푸렸다.정서훈의 여자친구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걸 김형문에게 알린다면, 그는 분명 물불을 가리지 않고 그녀를 죽이려 할 것이다.박시준이 정서훈 여자친구의 은신처를 옮겨야 한다고 산이 형에게 전화하려던 순간, 때마침 산이 형에게서 먼저 전화가 걸려 왔다."시준아, 김형문이 깼나 보지?
박시준은 곧바로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갔다.메스꺼움이 가시고 나자,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시준 씨, 미안해요! 아까는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녀가 수건으로 얼굴 위의 땀을 닦은 뒤 물었다. "방금 누구랑 통화한 거예요? 무슨 일 있는 거예요? 안색이 좋지 않아요.""매번 나한테 사과할 것 없어." 박시준이 거실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김영아도 그를 따라 거실로 갔다."시준 씨, 혹시 우리 아빠가 시준 씨한테 화를 내셨어요?" 김영아가 물었다. "주변 사람들이 아빠를 잘 보호해주지 않는다고 느껴지시나 봐요. 그래서 요즘 누구에게나 막무가내로 화를 내세요. 봉민 씨한테도 화를 내셨고요...""당신 아버지를 죽이려던 그 여자, 예전에 내가 숨겨줬던 여자야. 그런데 오늘 봉민에게 붙잡혔다는군." 박시준은 이번 일에 대해 김영아에게 설명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당신 아버지가 내 모든 업무를 중단시킨 거야."김영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파랗게 질렸다. "아빠가 당신을 탓하고 있어요... 얼른 가서 빌어요..."박시준이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가서 빌면, 소용이 있을 것 같아?"그의 무정한 얼굴을 보자, 김영아는 두려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면 어떡해요? 아빠는 더 이상 당신을 믿지 않으실 텐데. 앞으로 봉민 씨를 지원하실지도 몰라요.""봉민이 당신을 그렇게 좋아하니, 앞으로 봉민을 지원하시더라도, 당신한테는 전혀 문제 될 거 없을 거야." 박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시준 씨, 당신은 내 남편이에요." 김영아가 눈살을 찌푸리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아빠가 당신한테 그렇게 대하시는 걸 두고 보고만 있을 순 없어요. 당신이 그 여자를 숨겨준 건, 당신이 워낙 선한 사람이라, 그들처럼 그렇게 쉽게 사람을 죽여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틀렸어." 그가 그녀의 말을 바로잡았다. "내가 그 여자를 구해준 건, 그녀는 죽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야. 난 오히려 그녀가 당신 아버지를 죽이는 걸 실패한 게 안타까워."김영아의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