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원래 그런 걸 좋아하셔. 마음에 들어서 정말 다행이야.”…며칠 뒤 S 국.이날은 외교부 직원들 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그들은 조민도 회식에 초대했고, 조민은 원래 참석할 생각이 없었지만 동료들의 열정적인 초대에 결국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퇴근 후 그녀는 직장 동료와 함께 회식 장소로 향했다.식당에 막 들어선 순간, 그녀의 눈에 데니스가 보였다. 데니스는 블루 계역의 캐주얼 슈트를 입고 있었는데 확실히 눈에 띄는 외모였다.그녀는 두 여직원의 뒤를 따르며 테이블에 합석했다.옆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던 데니스가 술잔을 흔들며 조민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조민 씨는 우리 회식에 처음 참석하시는 거죠?”곁에 있던 여자 통역사가 농담 섞인 말을 던졌다.“데니스 조민 씨한테만 너무 신경을 쓰고 있는 거 아니에요? 혹시 두 사람 뭔가 있는 거 아니에요?”데니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전 기쁠 것 같은데요?”그의 말은 충분히 노골적이였다.데니스는 자기 마음을 전혀 감출 생각이 없었다.조민이 미간을 찌푸리다가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며 미소 지었다.“데니스 씨는 참 말을 직설적으로 하시네요.”“제가 좀 원래 직설적이긴 합니다.”곁에 있던 여자 통역사가 조민의 앞으로 다가와 물었다.“어때요? 데니스와 잘 해볼 생각 있으신가요?”주변 사람들이 열렬하게 호응하며 그녀를 주시했다.조민은 그저 예의적인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당분간 업무 외의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요.”“조민 씨는 일에는 엄청 진지한 타입이시네요.”“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사실 저는 자연스럽게 만나는 걸 더 추구하는 편이라서요. 저희 Z 국에서는 보통 자연스럽게 만나 점점 더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며 만나는 걸 더 선호해서요.”데니스가 천천히 술을 들이켰다. 그는 더 이상 방금 전과 같은 말을 꺼내지 않았다.드디어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문뜩 조민은 맨 구석에 어떤 여자가 멍하니 홀로 앉아있는 걸 발견했다. 그녀는 시끌벅적한
조민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그녀가 나가는 모습을 데니스가 집요한 시선으로 쫓고 있었다.화장실 문을 연 조민은 아까 그 여자가 안에 있는 걸 발견했다. 깜짝 놀란 여자가 서둘러 세면대로 다가갔다.직장 동료로서 걱정되었던 조민이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술 많이 마셨어요?”여자가 고개를 저었다.“다행이네요. 아무래도 이런 장소에서는 적게 마시는 게 좋죠.”조민이 티슈 몇 장을 뽑아 립스틱을 지웠다. 잠시 후 문뜩 그녀의 눈에 여자의 옷소매가 살짝 올라간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손목에 울긋불긋한 흔적이 선명했다. 놀란 조민이 물었다.“손목은 왜 그래요?”당황한 여자가 서둘러 옷소매를 끌어내리며 대답했다.“아.. 아무것도 아니에요.”그녀가 서둘러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런데 막 문을 나서려던 그녀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조민을 돌아보았다.“데니스를 믿지 마세요.”그녀는 그 말만 하고 곧바로 나가버렸다.조민이 미간을 찌푸렸다.데니스를 믿지 말아라…?혹시나 저 여자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그녀의 손목에 남은 흔적은 분명히 뭔가에 묶였던 흔적처럼 보였다.볼일을 마친 조민이 화장실을 나서다가 데니스와 마주쳤다. 방금 전 여자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조민은 갑자기 그와 마주치게 되자 무척 당황해했다.그녀의 이상을 알아차린 데니스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혹시 애나가 뭐라고 했나요?”애나는 아까 그 여자의 이름인가?조민이 오히려 그를 돌아보며 되물었다.“그녀는 당신 여자친구 아니었나요? 왜 저한테 그런 걸 묻죠?”데니스가 잠시 멈칫거리더니 곧바로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사실 이제는 전 여자친구거든요.”“헤어졌나요?”“네.”데니스의 얼굴에는 별다른 감정 기복이 느껴지지 않았다.“바람피우고 날 배신했는데 헤어지지 않을 이유가 있나요?”조민은 그녀의 손목 상처에 대해 끝까지 묻지 않았다. 이번 일은 결코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닐 것 같았다.“그랬군요. 그래서 두 사람 관계가 그렇게
당황한 조민이 되물었다.“외교부 애나 씨는 여자친구 아니었나요?”그럼 데니스는 대체 왜 그런 말을!‘잠깐만, 부서 여직원은 데니스가 솔로에 여자친구가 없고 아직 결혼도 안 했다고 했었는데, 만약 데니스의 여자친구가 애나 씨라면 왜 공개하지 않았던 거지?’한 부서에서 일하는데 아는 사람이 없다고?소찬이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그 남자가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요. 손가락으로 다 헤지 못할 정도인걸요. 당신이 말한 여자가 몇 번째인지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하지만 내가 봤을 때 그 남자는 지금 다음 상대로 당신을 노리고 있어요.”조민의 몸이 굳어졌다. 그녀가 굳은 표정의 소찬을 바라보았다.“그 사람에 대해 잘 아나 봐요?”“파라다이스가 움직이면 그 어떤 비밀도 캐낼 수 있죠. 이 세상에는 절대 비밀이란 게 없거든요.”차가 빠르게 움직이며 줄지어 선 가로등 불빛이 어두웠다 밝아졌다 하며 차 안으로 비춰들어왔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조민이 입을 열었다.“애나 씨의 손목에서 묶인 흔적을 발견했거든요. 그리고 애나 씨는 데니스를 엄청 두려워하고 있었어요. 저한테 데니스를 믿지 말라는 말까지 해줬고요!”물론 그 말을 듣지 않았어도 데니스를 믿을 생각은 없었다.데니스는 그녀에게 애나가 바람을 피워서 자신을 배신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애나가 조민에게 쓸데없는 말을 할까 경계하고 있었다.그가 걱정하는 건 정말로 단순히 ‘전 여자친구’로서의 험담 뿐이였을까?만약 정말로 그녀가 바람을 피워 배신했다면 왜 그 남자는 그녀가 자신의 나쁜 말을 하고 다닐까 걱정하고 있을까?소찬이 미간을 찌푸렸다.“왜 그렇게 다른 사람 일에 신경 쓰기를 좋아하는 거예요?”“하지만 제 눈으로 직접 본 이상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없는걸요. 난 데니스가 애나 씨한테 무조건 무슨 짓을 했다고 생각해요.”소찬이 말했다.“아무 사람이나 쉽게 믿지 말아요.”조민이 멈칫거리더니 더 이상은 대답하지 않았다.아파트에 도착한 후 그녀가 차에서 내렸다. 무슨 생각을 떠올렸는지 그녀
”그 사람이 보고 싶어.”소찬은 그녀가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진짜 혼나고 싶어서 이래요? 그놈 말고 다른 사람 생각해요!”조민은 눈물 때문에 시야가 흐릿해 당장 그의 표정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누구를요? 설마 당신을?”소찬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지더니 잠시 후 그녀를 마주 보며 자세를 바로 했다.“안 취한 거 정말 확실해요?”“제가 취한 것처럼 보여요?”“그렇게 보이긴 하네요.”조민이 시선을 내려뜨렸다. 사실 방금 그 말은 충동적이긴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보다 세 살이나 더 많았으니 가능할 리가 없었다. 십 년 동안의 긴 짝사랑으로 그녀는 민서율한테 모든 공력을 다 써버린 것만 같았다. 이제는 더 많은 걸 바랄 엄두마저 안 났다.잠시 후 그녀가 피식 웃었다.그녀가 고개를 숙이며 속마음을 감췄다.“농담이었어요. 너무 마음에 두지 말아요.”그녀는 자신이 벌여놓은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자 이제 됐어요. 배도 부르고 저 먼저 들어가 자야겠어요. 갈 때 잊지 말고 문 잘 닫아줘요.”소찬은 기가 막혔다. 그녀가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그가 그녀를 잡아당겼다.“아무리 취했어도 자기가 뱉은 말에 책임은 져야죠!”조민이 흠칫 놀랐다. 그녀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그녀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닌지 의심했다.잠시 후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무슨 책임을…?”소찬이 그녀와의 거리를 좁히며 말했다.“내가 아무렇게나 건드려도 되는 사람인 줄 알아요? 한번 꼬셨으면 책임을 져야죠.”그녀가 눈을 깜빡거리더니 갑자기 그의 입에 쪽하고 입을 맞추었다.잠자리가 수면을 건드리고 날아오르는 것처럼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었다.목적을 이룬 조민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이렇게요?”소찬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커다란 손을 뻗어 그녀의 뒤통수를 감싸며 끌어당겼다. 그와 그녀의 입술이 빈틈없이 맞물렸다. 조민의 상반신이 이미 그의 품에 기대어진 상태였다.한참이 지나서야 소찬이 그녀의 입술
...다음날 조민은 비서장을 따라 회의에 참석했다. 해외 의원들과의 회의 내내 그녀는 모든 대화를 노트북에 기록했고 비서장에게 통역도 해주었다.장장 두 시간 동안의 담화가 끝나고 나서야 그녀는 비서장과 함께 행정 기관에서 나올 수 있었다.차 앞까지 도착한 비서장이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저는 다른 볼 일이 있으니까 조민 씨는 이제 저를 따라올 필요 없어요.”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조심히 다녀오세요.”비서장이 탄 차가 떠난 후 조민은 그제야 무음으로 설정해 두었던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소찬한테서 온 문자를 확인한 그녀가 싱긋 미소를 지었고, 조민은 먼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방금 전까지 회의하고 있었어요. 생각은 잘 하셨나요 소찬 씨?”소찬이 헛기침을 하더니 제법 진지하게 목소리를 깔며 물었다.“오늘 몇 시에 퇴근하나요 여자친구님?”조민이 웃으며 대답했다.“다섯 시요.”“그럼 여자친구님께서는 오늘 저녁 어떤 걸 먹고 싶나요?”“저는…”조민이 입꼬리를 씩 올리며 대답했다.“뭐.. 다 괜찮아요. 있으면 있는거 먹죠. 남자친구를 먹는 것도 괜찮고요.”마침 물을 마시고 있었던 탓인지 그 말을 들은 소찬이 그만 사레가 들어버렸다. 겨우 진정한 그가 이를 악물며 웃음을 참았지만, 결국 웃어버렸다. “당신 이렇게 잔뜩 기대에 부푼 모습이 참… 기대되네요.”뭐라 대답하려던 조민의 눈에 누군가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그녀가 다급하게 소찬에게 말했다.“제가 지금 좀 바빠서 먼저 끊을게요. 이따가 다시 말해요.”그녀는 소찬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한편 그녀의 일방적인 통화에 소찬은 기가 막혀 웃음이 났다.“이 여자가 정말. 자기가 한 말에 책임감이라고는 일도 없네.”그 시각 조민은 마스크를 쓴 여자를 향해 다가갔다. 여자가 조민을 보며 마스크를 벗었다. 애나였다.애나가 주변을 살피며 그녀에게 물었다.“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근처 카페로 향했고, 조민은 카운
”그게 무슨 말이에요?”조민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다른 여자들이라니?”“제가 처음이 아니에요. 저도 그에게 속았던 거였어요.”애나가 고개를 수그렸다. 그녀는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데니스한테 속아 넘어갔는지 또 그에게 어떤 잔인한 짓을 당했는지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모든 걸 전해 들은 조민은 순간 등골이 오싹해났다. 믿을 수 없었다. 데니스가 그녀에게 접근한 방법이 지금 그가 조민에게 다가오는 방법과 완전히 똑같았다.그는 일부러 교묘한 함정을 팠다. 그리고 우연한 만남을 가장해서 접근하고 신사적인 모습을 보여준 후 호감을 갖고 있다는 듯이 여자와 천천히 친구 사이로 발전해갔다.데니스는 자신의 외모와 조건, 그리고 특유의 위트를 무기로 매너 있게 여자들에게 다가가 수많은 소녀들의 마음을 훔쳤다.그러고는 교제한다는 명의로 수많은 여성들과 관계를 가졌다.여자가 완전히 사랑의 늪에 빠져 자신한테 완벽한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착각할 때 쯤에 남자는 숨겨왔던 잔혹한 이빨을 드러냈다. 애나와 데니스의 관계가 회사 내부에 퍼지지 않은 것도 단지 데니스가 회사 내부에서 자신의 돈 많은 솔로 이미지를 유지하고 싶었던 것뿐이었다.처음에는 사내 연애로 그녀의 직장 생활이 어려워질 거라는 걸로 핑계를 대고 비밀을 유지했다. 애나는 그 말을 진심으로 믿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그가 자기 몰래 밖에서 꽤 많은 여자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곧바로 그에게 따졌지만 돌아온 건 데니스의 무차별적인 폭행이었다.애나는 그의 폭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일말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삼 년 동안이나 묵묵히 버티며 살아왔다.그녀의 사정을 들은 조민은 처음에는 놀랐고 곧 동정심이 들었다.조민은 서럽게 울음을 터뜨리는 애나를 보고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다.“그가 만난 여자들 중 그에게 반항한 여자는 한 명도 없었나요?”애나가 멈칫거리더니 고개를 내저었다.“그가 고른 여자들은 전부 이제 막 사회에 진입한 대학
애나가 멍하니 조민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가장 걱정하는 사람이 아직 얼굴도 몇 번 보지 못한 낯선 여자 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조민 씨, 그 사람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쉬운 상대가 아닙니다.”“알고 있어요.”조민이 그녀를 마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때문에 애나 씨의 협조가 필요해요. 그 남자의 다음 타깃이 저라면 제가 미끼가 될게요. 그러니 애나 씨는 그가 시킨 일을 당신이 훌륭히 완수했다고 믿게 만들어야 해요.”조민이 자기 휴대폰을 그녀에게 건네더니 비밀번호까지 알려주었다.“애나 씨는 나중에 여기 저장되어 있는 소찬이라는 사람한테 전화 한 통 해줄래요. 하는 김에 경찰서에도 연락해 주시고요. 제가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볼게요.”애나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어떻게 저를 그렇게 믿을 수 있죠?”혹시 일을 마친 후 자신이 그녀의 죽음 따위는 상관하지도 않고 도망쳐 버리면 어쩌려고?“애나 씨가 정말로 저를 해칠 생각이었으면 저한테 이곳에 온 목적을 말하지도 않았겠죠. 제가 한눈판 사이에 제 커피에 약을 넣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어쩌면 이번이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일 수도 있으니까요. 애나 씨도 그 기회를 놓지고 싶지는 않겠죠?”애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정말 제가 성공할 수 있을까요?”“걱정 말아요. 애나 씨가 전화만 해 주면 무조건 성공할 테니까요.”한편, 호텔 객실.초인종 소리를 들은 데니스가 문 앞까지 다가가 물었다.“누구지?”“나야.”그는 도어 스코프로 애나인 것을 확인한 후에야 문을 열었다. 그가 주변을 살핀 후 그녀를 방안으로 끌어당겼다.그녀가 몸을 심하게 떨고 있는 걸 확인한 데니스가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물었다.“여자는?”애나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차 안에 있어. 어떻게 데리고 올라와야 할지 몰라서…”데니스가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이번 일은 참 잘해네.”애나는 대답하지 않았다.데니스가 직원
뜻밖의 고통에 데니스가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밀쳐냈다. 그녀의 손에 들린 만년필을 확인한 그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몸에 만년필까지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그가 테이블 서랍에서 수갑을 꺼내들었다.“네가 그렇게 얌전하게 못 있겠다면 우리 조금 다른 플레이를 해 볼까?”조민의 표정이 굳어졌다. 절대 저 수갑을 차면 안 됐다.그녀는 테이블 위에 놓인 스탠드부터 재떨이까지 손에 잡히는 대로 남자를 향해 내던졌다. 데니스는 그녀의 행동에 점점 화가 치밀었다. 아무리 그녀가 안간힘을 써도 결국 남자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조민은 그로 인해 침대 위로 내동댕이쳐졌고, 차가운 금속 수갑이 그녀의 손목에 채워졌다.조민이 높은 소리로 살려달라고 외치며 계속하여 바깥을 살폈다.설마 아직도 그들이 도착하지 않은 걸까? 그녀의 기대가 이렇게 무너져 버리는 걸까?피부가 공기와 직접적으로 맞닿는 느낌에 조민이 몸을 흠칫 떨었다. 그녀의 동공이 흔들렸다. 지금 이 순간 데니스는 마치 인면 몰수한 한 마리의 짐승처럼 그녀를 덮치려 하고 있었다.강렬한 혐오감이 머릿속을 온통 지배했다. 조민은 손목에서 느껴지는 고통 따위는 상관할 새도 없이 있는 힘껏 반항했다.“데니스 이 놈아! 너 내 몸에 손 하나 대봐. 내가 너 어떻게든 죽여버릴 테니까!”그러자 데니스는 그저 냉소를 지었다.“그럼 네가 어떻게 날 죽일 수 있을지 기대해 보지!”“안돼…”“쾅!”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 무리의 경찰들이 방 안을 침입했다. 그들 뒤로 애나와 소찬 그리고 다민이 들어왔다.방안의 상황을 발견한 소찬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그가 빠르게 뛰어가 데니스에게 주먹을 날렸다.“이 새끼가 감히 누구를 건드려!”경찰이 서둘러 그를 말렸다. 다민도 빠르게 달려와 그를 막아섰다. 데니스는 경찰에게 제압당해 바닥에 쓰러졌다. 고개를 든 그의 눈에 경찰 뒤에 숨어있는 애나가 보였다.“네가 감히 날 엿 먹여?!”애나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차마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했다.손목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