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고통에 데니스가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밀쳐냈다. 그녀의 손에 들린 만년필을 확인한 그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몸에 만년필까지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그가 테이블 서랍에서 수갑을 꺼내들었다.“네가 그렇게 얌전하게 못 있겠다면 우리 조금 다른 플레이를 해 볼까?”조민의 표정이 굳어졌다. 절대 저 수갑을 차면 안 됐다.그녀는 테이블 위에 놓인 스탠드부터 재떨이까지 손에 잡히는 대로 남자를 향해 내던졌다. 데니스는 그녀의 행동에 점점 화가 치밀었다. 아무리 그녀가 안간힘을 써도 결국 남자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조민은 그로 인해 침대 위로 내동댕이쳐졌고, 차가운 금속 수갑이 그녀의 손목에 채워졌다.조민이 높은 소리로 살려달라고 외치며 계속하여 바깥을 살폈다.설마 아직도 그들이 도착하지 않은 걸까? 그녀의 기대가 이렇게 무너져 버리는 걸까?피부가 공기와 직접적으로 맞닿는 느낌에 조민이 몸을 흠칫 떨었다. 그녀의 동공이 흔들렸다. 지금 이 순간 데니스는 마치 인면 몰수한 한 마리의 짐승처럼 그녀를 덮치려 하고 있었다.강렬한 혐오감이 머릿속을 온통 지배했다. 조민은 손목에서 느껴지는 고통 따위는 상관할 새도 없이 있는 힘껏 반항했다.“데니스 이 놈아! 너 내 몸에 손 하나 대봐. 내가 너 어떻게든 죽여버릴 테니까!”그러자 데니스는 그저 냉소를 지었다.“그럼 네가 어떻게 날 죽일 수 있을지 기대해 보지!”“안돼…”“쾅!”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 무리의 경찰들이 방 안을 침입했다. 그들 뒤로 애나와 소찬 그리고 다민이 들어왔다.방안의 상황을 발견한 소찬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그가 빠르게 뛰어가 데니스에게 주먹을 날렸다.“이 새끼가 감히 누구를 건드려!”경찰이 서둘러 그를 말렸다. 다민도 빠르게 달려와 그를 막아섰다. 데니스는 경찰에게 제압당해 바닥에 쓰러졌다. 고개를 든 그의 눈에 경찰 뒤에 숨어있는 애나가 보였다.“네가 감히 날 엿 먹여?!”애나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차마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했다.손목
조민이 고개를 숙이며 그의 어깨에 머리를 파묻었다.그리고 며칠 후 애나가 제공한 증거와 경찰이 직접 목격한 상황까지 있었기에 데니스는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게 되었다. 그는 전대미문의 추악한 스캔들 주인공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스캔들의 파급력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예전에 그에게 피해를 입은 여성들까지 나타나 용기 있게 그의 죄를 고발했다.데니스 명의 하에 있던 호텔도 철저한 조사를 받게 되었다. 데니스의 만행이 완전히 드러난 것을 알고 나서야 호텔 직원들은 그가 호텔 고위층이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직원들에게 억지로 그의 비밀을 지키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또한 피해를 입은 대부분의 여성들이 이 호텔에서 끔찍한 일을 겪었었다. 그녀들은 모두 똑같은 룸에 머물렀었는데 그 룸은 그의 프라이빗 한 공간이었다. 오직 그만이 그 룸을 사용할 수 있었고, 그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그 방에 들어갈 수 없었고 방 키는 딱 하나뿐이었다. 특수하게 만들어진 그 키는 데니스 본인만 소유하고 있었다.그 방 안에서 각종 성적 도구들이 발견되었는데 세간 사람들이 몰랐던 데니스의 또 다른 일면이 낱낱이 공개된 순간이었다.데니스의 가족들 마저 그를 보호해 주지 않았다. 심지어 공개적으로 그의 재편 결과에 대해 수긍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가문의 계승권은 그와 아무 상관이 없을 거라고 단단히 못을 박아 놓았다.데니스가 최종 무기 징역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애나는 드디어 소원을 이루었다는 듯이 대성통곡하였다. 그녀는 곧바로 사직서를 제출했다.복도를 걷던 조민은 마침 짐을 정리하고 나가는 중이었던 애나와 마주쳤다.“지금 떠나는 거예요?”애나가 고개를 끄덕였다.“저한테 불쾌한 기억만 남겨준 이 도시에서 빨리 벗어나려고요. 앞으로도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을 것 같네요.”어떤 사람들의 ‘악몽’은 오랜 시간을, 아니 어쩌면 평생을 걸쳐야 떨쳐낼 수 있다는 것을 조민은 잘 알고 있었다.그녀가 애나를 바라보고 미소 지었다.“어쩌면 다른 도시로 가서 새롭게 다
”…”소찬이 그만 할 말을 잃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때 한 아주머니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꺼냈다.“난 민이 네가 민씨 가문 도련님이랑 잘 될 줄 알았는데. 두 사람 어렸을 때부터 쭉 붙어 다니지…”누군가가 아주머니를 말리며 결국 대화는 중단 되엇다. 여기서 민서율 이름을 꺼내다니! 이웃 주민들은 모두 조민이 민서율을 좋아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현 남자친구 앞에서 그 이야기를 꺼내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말을 꺼낸 아주머니도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서둘러 말을 바꿨다.“어머 미안해. 아줌마가 일부러 그 말을 꺼낸 건 아닌데.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지나간 일은 지나간 거지.”조민은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떠난 후 소찬이는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며 건방지게 말했다.“왜요. 어렸을 때부터 쭉 붙어 다녔다던 그 친구한테 다른 마음이라도 품었나 보죠?”“무슨 마음?”그와 나란히 걷고 있던 조민이 서서히 발걸음을 늦추었다.“내가 다른 마음을 품고 있기를 바라는 거예요? 당신과 헤어지고 그 남자라도 찾아 갈까 봐?”소찬이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뒤돌아 보았다.“그런 생각 하기만 해봐요! 그랬다가는 내가…”조민이 고개를 들고는 그를 바라보았다.“그랬다가는?”소찬이 갑자기 그녀를 번쩍 안아들었다. 조민이 무의식적으로 그의 목을 감싸 안으며 주위를 살폈다. 그녀가 웃으며 물었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이렇게 당신을 안고 그 집 문 앞에서 어슬렁거리면 그놈, 아주 열불이 나서 죽지 않을까요?”조민이 웃음을 터뜨렸다.“유치해요.”“맞아요 나 유치해요. 그런데 당신 나한테 주기로 했던 거 아직 안 줬어요.”소찬이 고개를 숙이며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언제까지 발뺌할 생각이죠?”조민이 그의 볼에 쪽 하고 입을 맞추며 대답했다.“오늘 밤에 시간 줄게요.”그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집에서는 좀 그런데…”그녀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당신이 진작부터 이랬으면 난 벌써 정인군자 노릇따위는 안 했겠죠.”말이 끝나고 소찬은 그녀의 입에 키스했다.조민은 손을 내밀고 그를 끌어안았다.온 방의 온도가 계속 오르더니 애매하고 화끈거렸다. 서로가 서로에게 속해질 때까지 영혼이 융합된 것이다.…같은 시각, 진성.화해진에 있는 민박 술집은 아직 문을 닫지 않았다. 고풍스러운 길목의 야시장은 불빛이 은은했다. 새벽이 됐어도 사람이 사는 온기가 가득했다.민서율은 혼자서 옥탑에 앉아서 칵테일을 시켰고 옆 테이블 손님들의 소란과 조용한 그는 서로 대비됐다.피아노 소리가 들려오자, 율동이 울려 퍼지면서 여자가수가 피아노 치면서 노래 불렀다. 약간 쉬어 있는 목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당신은 나타나고 또 사라졌다. 착각이 날 황야에서 길을 잃게 했다. 나는 울어도 보고 타협도 해봤다. 바람에 흔들리는 낮이 결국에는 어두운 밤에 찢어지게 됐다. 이 느낌이 너무 강렬해서 밤새도록 흘린 눈물이 밝은 달빛을 적셨다. 끊임없이 한 번, 두 번 반복해 양심의 가책을 안고 하루 이틀 지내고...”사방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오자, 민서율은 머리를 돌려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여자 가수를 향해 바라봤다.민박집 사장이 먹을거리를 들고 그의 테이블에 가져다줬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더니 웃었다.“그 애 이름은 채원이야. 이쁘지? 진성예술학원에 있는 음대생이고, 19살인데 우리 가게에서 가수로 알바하고 있어. 채원이 친구들은 모두 연예계에 진출해서 드라마 영화 찍는다고 하더라.”민서율은 시선을 거두었다.“나 이건 시키지 않았어.”사장이 자리에 앉았다.“서비스야. 힘들게 와서 휴가하는데 여기서 2주나 있는데 어떻게 민 도련님께 서비스를 주지 않겠어!”민서율은 그에게 술을 따랐다.“가게 장사 잘되나 보네.”“여행 개발구니깐. 외지에 있는 사람들이 다 좋아해.”사장은 술잔을 들고 그랑 건배했다.“어때? 요즘 여기서 지내고 나니 좀 홀가분해지지 않았어?”그는 술을 마시고 담담하게 답했다.“그런 셈이
자기 집 고양이가 다른 집 베란다에 갔고, 그것도 잡힌 것을 보고는 채원은 놀라서 냉기를 들이마셨다. 그녀는 두 손을 모았고 표정은 꽤나 경건해 보였다. “죄송해요. 우리집 츄미가 폐를 끼쳤네요. 제가 지금 데리고 올게요. 죄송한데 츄미를 안아 저에게 주시겠어요?”베란다 사이에 1.5m 거리가 있었고, 그녀는 이쪽으로 두 손을 내밀면서 받겠다는 뜻을 했다.민서율은 아무 말 하지 않고 고양이를 잡아다 건네줬다.채원은 고양이를 받고 급하게 품에 안았다.“고마워요. 진짜 신세 졌어요.”그녀는 몸을 돌려서 살짝 품에 있는 츄미를 때렸다.“다시 마음대로 달아나면 너 데리고 불임 수술하러 갈 거야!”츄미는 소리 지르면서 항의하는 듯했다.민서율은 소매를 걷고 고양이 털이 있는 데를 털고는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갔다.이튿날, 민서율은 널찍한 실크 잠옷을 입고 아래층에 내려갔다. 민박은 손님을 위해 뷔패식 아침과 커피를 준비한다. 민박집 사장은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다가 민서율이 커피 한 잔을 따르는 것을 봤다.“이렇게나 오래 쉬었는데도 딱딱 제 시간을 지키네.”민서율은 커피를 들고 소파에 앉았다.“습관 됐어.”테이블에는 샌드위치, 라면, 계란, 떡과 영양죽 등이 있다.하지만 이것은 모두 민박 사장이 자기가 먹으려고 만든 조식이다. 손님용 뷔페는 뒷마당 식당에 있다.민박 사장이 신문 페이지를 넘겼다.“내가 만든 조식은 모두 담백한 거라 네 입맛에는 맞지 않을거야.”“담백한 게 좋지. 내가 요즘 열이 많아.”“아이고, 열이 많다고? 그럼, 여자를 찾아야겠네.”민박 사장이 웃었고, 민서율은 대꾸하지 않았다.그때 갑자기 뭔가가 그의 발목을 건드렸다. 그는 놀라서 테이블 밑으로 보았는데 털이 보송한 뭔가가 기어 나왔다.‘야웅’“츄미, 너 이자식이 왜 또 그 밑으로 들어갔어?”민박 사장이 고양이 소리를 듣자, 머리를 숙였더니 탁상 보 밑에 있는 츄미를 봤다.그는 빨리 신문을 내려놓고 츄미를 품에 안았다.“배고팠어? 너 주인이 나가기 전에
츄미는 기쁜듯 먹이를 순식간에 다 먹어버렸다. “원아. 너 오늘 학교 가서 수업 있는 거 아니었어?”“선생님 집에 일이 있나 봐요. 휴가 냈어요.”채원은 안추엽을 바라봤다.“저도 수업이 없는 걸 보고 나오는 거 아닙니까?”안추엽은 웃었다.“젊으니 참 좋네.”채원은 그제야 민서율을 보고는 몇 초 동안 멍했다.“아, 혹시 어제 저녁에 내 옆방에 있는 그분 아닌가요?”안추엽은 민서율을 바라봤다.“두 사람 서로 알아?”“그건 아니고 어젯밤에 츄미가 이분 베란다에 가서 좀 폐를 끼쳤거든요.”채원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뭔가 생각났다.“맞다. 추엽 오빠. 이분 여기서 오래 있었던 거 같은데요.”안추엽이 웃었다.“오래됐지. 내 친구는 서울에서 휴가 보내러 왔어.”“서울이요?”채원은 이때 소파에 앉아 취미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서울 재밌어요?”민서율은 담담하게 답했다.“그럭저럭.”“내 친구도 서울에 갔어요! 영화 학원에 갔다 그랬나? 아무튼 지금 영화랑 드라마도 찍는데요.”안추엽은 그녀를 바라봤다.“너도 찍고 싶어? 그럼 이 사람 찾으면 돼. 예전에 연예계에서 종사했었어.”민서율은 안추엽을 바라봤다.“연예계일은 더 이상 손대지 않기로 했어.”채원이 똑바로 앉았다.“난 연예계에 들어설 생각 없어요. 연예계가 뭐가 좋다고요! 특히 우리 같은 대학생인 경우에 기획사도 악질인 곳을 찾으면 몸을 파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더라고요. 죽으라고 일해야 하고 계약 해제 하려면 돈을 벌지 못한 나머지 위약금까지 내야 하고요.”“아이고, 우리 채원이가 아는 것도 많네!”채원은 콧방귀를 끼더니 계란 하나를 들었다.“내 주변에 아는 친구가 이뻐서 스카우트 당해서 데뷔했는데 결국에는 속아서 지금 연습생이나 하고 있잖아요. 4시간만 휴식할 수 있고 매일 연습만 해야 하고 휴가 내서 나가지도 못해요. 얼마나 불쌍한데요.”안추엽이 커피를 들었다.“헛소문도 많기도 하다. 그러니 주방에 있는 동이도 아무것도 다 잘 알지 알고 보니 네가 말한
민박에 술집이 있고 야식해야 해 다른 직원들은 모두 오후 5시에 출근해 새벽 2시까지 영업하고 문을 닫는다.가게에서 알바하는 사람은 채원뿐이고, 그녀는 그냥 저녁에 잠시 와서 손님들한테 노래해 주고 낮에 수업이 없으면 가게에 와서 일을 돕는다. 나이가 어려서 가게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녀를 특히 잘 보살핀다.저녁에 공연 끝나도 늦어서 택시 잡기 힘들면 민박에서 쉬게 한다.익숙하지 못했던 얼굴이 서로 같이 천천히 지내면서 익숙해졌고 나중에는 서로 아끼는 사이가 된다.안추엽은 매년 명절이 되면 가게 직원들과 함께 회식을 준비해 직원 참과 보너스를 주기에 민박이라고 하기보다 모든 사람이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큰 가정이라고 하는 게 더 맞앗다.민서율은 정원에 걸어 나갔다. 안추엽은 정원에서 꽃과 나무들의 가지를 치고 있었다.그는 머리를 돌려 민서율을 바라봤다.“오늘 날씨 좋은데 나가서 좀 안 돌아?”“뭐 볼 것도 없어.”“내가 보기에 넌 나보다 더 집돌이인 것 같다.”안추엽은 천천히 일어섰다.“우리 화해진에 아직도 볼거랑 놀거리가 이렇게나 많은데 네가 안 가보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애.”민서율은 꽃들을 봤다.“너 언제 이런 걸 좋아했어?”“내 생활에 의미를 조금 더해 주는 거지. 떠들썩한 큰 도시를 떠나니 사람이 다 여유로워 졌어. 꽃이나 심고 차나 마시고 오후에는 커피 한잔하고 또 츄미가 옆에 있어주고 얘기 나누는 사람도 있고 미리 퇴직해서 노년의 삶을 사는 것도 꽤 재밌어.”민서율은 손을 등 뒤에 졌다.“이게 바로 세속과 싸우지 않고 남과 쟁취하지 않은 생활인가?”“뭘 더 쟁취해야 하는데? 권력을 쟁취하든 이익을 쟁취하든 우리가 죽고 나면 아무것도 못 가져가. 어떤 사람은 고상함을 추구하고 어떤 사람은 그냥 일반 생활만 추구해 하지만 무엇을 추구하든 간에 모두 자기의 목표가 있어야 해.”안추엽은 정원에 있은 은행나무를 봤다.“내 목표는 간단해. 돈과 이익이 많은 걸 바라지도 안 해. 그냥 기쁘고 평안하면 돼.”말하고는 몸을 돌
민서율은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들었다. 고양이로 인해 어찌할 바를 모른다.채원은 빨대를 물면서 웃었다.“츄미가 너무 열정적이네요. 아저씨. 너무 마음에 두지 말아요.”민서율은 소란을 피우는 츄미를 누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아저씨?”“보기에는 젊어 보이는데, 우리 사장님이랑 비슷한 나이 아니신가요?”민서율은 할 말이 없다.그녀가 자기의 나이에 무슨 오해 있는 거 아닌가?그는 머리를 숙여 품에 있는 츄미를 봤다. 손으로 살짝 그의 부드러운 털을 만졌다.“안추엽이 나보다 4살 많아.”“그럼 보자. 사장님이4살 많으니까 그래도 서른은 된거 잖아요. 나보다 11살이나 많은데 아저씨 아니면 뭐예요?”그가 11살 때 채원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이다.민서율은 그녀를 힐끗 보았는데, 확실히 어린 여자애였다.‘야웅’츄미는 살이 많은 발로 그의 옷을 건드리면서 머리로 안에 들어가려 했다.채원은 놀라서 빨리 그를 안고 와서는 얼굴에 어색함이 돌았다.“죄송해요. 츄미가 남자들한테만 너무 열정이 넘치네요. 암컷이니 어쩔 수 없어요.”츄미를 품에 안고 채원은 살살 그의 머리를 건드렸다.“다른 사람 옷을 건드리면 어떡해? 이 야한 고양이야!”민서율은 입은 옷을 정리하고는 고양이 털을 털었다.채원은 몰래 그를 훑어봤다. 그리고 이 아저씨가 나이는 좀 있지만 그래도 잘생긴 것은 인정해 줘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좀 더 지나고 나서야 채원은 민서율과 좀 더 익숙해졌다. 민서율도 처음처럼 그렇게 츄미를 배척하지 않았다. 주동적으로 그의 머리도 여러 번 만졌다.창밖에 빛이 한창 따뜻했다. 그는 소파에 앉아서 잡지를 보고 있고 츄미는 그의 발 옆에 누워서 자고 있다.민서율은 머리를 돌려 츄미를 바라보고는 손을 들고 살살 그의 털을 만졌다. 처음에는 츄미가 눈을 떴는데 민서율인지 알아보고는 그의 손을 핥더니 또 다시 배를 까며 누웠다.그러자 민서율의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안추엽은 채원과 카운터에 있고 두 사람이 머리를 돌려 거실을 보니 안추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