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혹시 조민 씨 되시나요?”조민이 고개를 들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으니 아버지가 마련해 준 맞선 상대가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때문에 그녀는 혼자 밥만 먹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결국 그 상대가 도착한 모양이었다.그녀가 미소 지었다.“네 맞아요. 앉으세요.”남자가 자리에 앉으며 테이블에 세팅된 음식을 확인했다.조민이 웃으며 말했다.“죄송해요. 아무래도 설 연휴다 보니 이해는 하는데 30분이나 지나도 안 오셔서 저는 안 오실 거라 생각했거든요.”남자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그가 반 시간이나 지각했다는 걸 돌려 말하고 있었다.“일 때문에 조금 늦었습니다, 죄송해요. 참, 조민 씨는 외국에서 통역 일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그녀는 젓가락을 놓지 않고 대답했다.“네 맞아요. 설 연휴가 지나면 다시 그쪽으로 돌아갈지 말지 고민 중이에요.”남자의 얼굴에는 시종일관 미소가 걸려있었다.“또 외국에 나가실 생각인가요?”“상황 봐서요.”그렇게 대답한 조민이 고개를 들며 남자를 바라보았다.“만약 결혼을 하게 되면 일 때문에 외국에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국내에 계속 남아있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괜찮으신가요? 유현성 씨.”유현성이 멈칫거렸다.조민이 계속하여 말을 이었다.“그쪽만 괜찮다면 저는 빨리 결혼하고 싶어요. 비록 결혼 후 재산이 부부 공동 재산이라고 하지만 저는 독립적으로 재산을 관리하고 싶거든요. 그쪽이 번 돈은 그쪽이 관리하고, 제가 번 돈은 제가 직접 관리하는 거죠.아이 문제는 일단 저는 지금은 아이를 일찍 낳을 생각이 없어요. 앞으로 몇 년간 제 생활이 조금 안정되면 그때 가질 생각이에요. 물론 아이를 낳은 후에는 베이비시터가 봐줘야 하고요. 제 일에 방해가 되면 안 되니깐요.”“잠깐만요…”유현성이 참지 못하고 그녀의 말을 끊었다.“우리 이제 만난 지 몇 분밖에 안 되었는데 다짜고짜 결혼부터 꺼내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조민이 의아한 듯이
조민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가요. 서울에 레스토랑이 이곳 하나도 아닌데 우연은 정말 우연이네요.”조민이 어깨를 으쓱거렸다.“하긴 서울에서도 유명한 고급 레스토랑이 그렇게 많은 건 아니니까 어쩌면 겹칠 확률이 제법 높을 수도 있겠네요.”소찬이 피식 웃었다.“조금 덜 유명한 곳에 갈 수는 없었어요?”“어차피 이젠 당신 이름도 알게 되었으니깐요.”조민이 싱긋 웃더니 먼저 걸어가 버렸고, 소찬이 혀를 찼다. 어쩐지 엄청 손해 본 기분이 들었다.반재언이 차를 몰고 오자 남우가 얼른 차에 올랐다. 그런데 다음 순간 그가 차 문을 잠가버렸다. 소찬은 차 문이 잠기자 조수석으로 다가가 창문을 두드렸다.“지금 이거 무슨 뜻이야?”반재언이 그를 힐끗 바라보더니 씩 미소 지었다.“남은 시간은 우리 부부만의 시간이니까 너 알아서 돌아가.”“아니 그게 무슨…”반재언은 정말로 그 혼자만 남겨둔 채 시동을 걸고 쌩하니 떠나 버렸다. 소찬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아까 밥을 먹을 때만 해도 세 명이서 잘만 먹었는데 갑자기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며 버리고 간다고?하, 남자의 말은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더니!소찬은 허리에 손을 얹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멀리서는 조민이 자신의 차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조민이 차에 올라탄 후 막 안전벨트를 매는데 갑자기 조수석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가 차에 올랐다. 그녀가 멍한 표정으로 소찬을 바라보더니 놀란 기색으로 물었다.“그쪽 일행과 간 거 아니었어요?”“저쪽은 부부잖아요. 부부 사이에 껴서 뭐 하겠어요. 그리고 지난번에 그쪽이 제 차에 올라탈 때 저도 아무 말 안 했잖아요?”조민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바로 출발했다.조민은 차를 거칠게 모는 스타일이었다. 가는 길 내내 소찬은 손잡이를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운전 좀 똑바로 할 수는 없어요? 제 목숨을 그쪽한테 맡기기는 싫다고요.”조민이 대답했다.“이거 평균 속도예요.”“지금 시속이 80이나 넘었어요. 어어어..! 제
반지훈이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버지, 일단 잡초부터 정리해요.”반준성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장갑을 끼고 무덤 주위의 잡초를 정리했다. 강성연도 곁에서 열심히 도왔다.30분 후, 무덤 주위를 덮고 있던 잡초가 깨끗이 제거되었다. 반준성은 새로 사 온 흰 장미 꽃다발을 비석 앞에 내려놓았다. 그 옆에는 그녀가 생전에 좋아했던 과일로만 선별한 과일 바구니도 같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반준성은 곧바로 내려가지 않았다. 그는 한참 동안 무덤 앞에서 자리를 지켰다. 반지훈과 강성연은 그를 방해하지 않고 먼저 내려와 먼 곳에서 그를 바라보았다.“어머님이 일찍 돌아가셨는데도 아버지께서는 지금까지 어머님을 잊지 못하게 계시네요. 두 분 예전에 엄청 서로를 사랑했겠죠?”반진훈이 강성연을 품에 안았다.“내게 기억이란 게 생겼을 때부터 두 사람은 항상 사이가 좋았어. 할아버지 말씀처럼, 아버지의 약점이 곧 어머니셨거든. 아버지와 할아버지 두 분 모두 자기 여자한테 꼼짝 못 하는 타입이셨지.”강성연이 가볍게 웃었다.“그분은 지금도 여자한테 지는 걸 억울해 하시지 않나요?”반지훈도 함께 웃었다.“그럴지도.”반지훈이 고개를 돌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성연아, 만약 나중에 내가 먼저 네 곁을 떠나게 되면 넌 어떡할 거야?”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곧바로 그녀가 소리 내어 웃었다.“그럼 다른 남자 찾아야죠, 뭐.”그가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대답이 이렇게 빨라?”그녀가 반지훈을 마주 보며 눈을 깜빡였다.“당신이 갈 때쯤이면 한… 칠, 팔 십은 되었을 텐데 할머니가 되어서 몇 년 동안만 더 놀다가 당신 찾으러 가면 안 돼요?”그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그것도 그러네.”강성연이 그의 손을 잡았다.“사람 생이 길면 얼마나 길겠어요. 이제 아이들도 컸고 손주도 생겼는데 될 대로 되라죠. 뭐 하러 그런 걸 걱정해요? 우리는 그냥 지금처럼만 쭉 함께 살아요.”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꽉 움켜잡으며 그녀에게 몸을 기댔다.…다음 날
남우가 작게 웃더니 곧이어 그에게 물었다.“조민 씨와는 같은 학교였어?”“응. 나랑 유이, 재신이랑 같은 학교 다녔어. 학교 선배였어.”반재언이 스테이크를 예쁘게 세팅하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가 그녀를 돌아보았다.“왜, 단순한 선후배 사이한테도 질투하는 거야?”“누가 질투했다고 그래? 그냥 궁금했을 뿐이야.”남우가 주방에서 나와 우유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의자를 빼 자리에 앉았다.“난 같은 학교 학생이랑도 연락하지 않는데, 넌 참 친구 많아서 좋겠다.”반재언도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왜 안 해?”남우가 말했다.“나 동남아에 있을 때 군학교 다녔어. 다 남자들뿐이었는데, 아버지가 그쪽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나만 따로 방을 썼었어. 처음에 갔을 때 남학생들이 내가 철부지 부잣집 도련님인 줄 알고 눈꼴 시렸었나 봐. 그래서 엄청 몰래 괴롭혔었어. 나도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체력 훈련할 때마다 엄청 때려서 복수해 줬지. 그 뒤로는 아무도 뭐라 하지 않더라고. 대신 학교 다니는 내내 나를 두려워했었지. 어차피 그 뒤로 졸업하고는 한 번도 본 적 없었어.”반재언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예전의 남우를 생각하면 주변에 온통 남자들만 득실거리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그가 피식 웃었다.“만약 나중에 우리한테 아들이 생긴다면 아들이 널 닮아 호승심이 강한 것도 좋을 것 같아. 하지만 딸은 너를 닮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애.”남우가 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무슨 뜻이야? 그래서 내가 싫어?”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고개를 숙이며 그녀에게 뽀뽀했다.“그럴 리가. 아들은 널 닮고, 딸은 날 닮으면 좋잖아?”남우는 생각에 잠겼다. 그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아들이 자신을 닮으면 어디 가서 괴롭힘을 당하진 않을 것이다. 딸이 아버지를 닮는다면..남우는 반재언을 빤히 쳐다보았다.‘아버지를 닮으면 너무 지나치게 예쁘게 생기지 않을까?’순간 그녀는 미래의 자기 딸이 얼마나 예쁠지 기대되기 시작했다.설
"네 가족이랑 민서율 가족 관계가 좋은 거 아니었어? 그런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조민은 대답하지 않고 다가오는 민서율과 강라라를 바라보았다.강라라도 조민을 발견하고는 민서율의 손을 잡고 인사를 건넸다. "조민 씨, 정말 우연이네요.”강라라가 말하자 민서율은 조민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조민도 예의를 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네요, 정말 우연이에요.”그녀는 더 이상 강라라와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듯 와인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몇몇 친구들은 그들 사이의 분위기를 보며 이상함을 느꼈고, 한 친구가 민서율을 바라보며 물었다.“민서율, 이 분이 네 여자친구야?” 민서율이 대답이 없자, 강라라가 재빨리 말했다.“네, 저랑 서율 오빠랑 사귄 지 좀 됐어요.”서율 오빠라……?현장에 있던 사람들 중 반 씨 가문의 강유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과거에 강유이가 민서율과 매우 좋은 관계를 가졌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민서율은 특히 강유이를 아꼈고,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민서율이 그녀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리고 강유이도 민서율을 오빠라고 불렀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강라라의 모습을 보면서 모두 뭔가를 이해한 듯했다. 한 여학생이 미소를 지으며 고의인지 파악할 수 없는 말을 꺼냈다. "그렇구나. 강유이도 결혼했다고 들었어. 그런데 민서율 네가 이렇게 오랫동안 강유이를 잊지 않을 줄은 몰랐네.”이 말에 강라라의 얼굴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그녀는 자신이 강유이 대신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다른 사람이 그 말을 하는 것을 싫어했다. 하지만 민서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녀를 대신해서 설명조차 하지 않았다.이건 그녀가 정말로 강유이 대신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 아닌가?강라라는 입술을 깨물고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정말요? 강유이 씨는 이미 결혼을 했고 서율 오빠는 또 나를 만났으니 어쩌면 이게 인연일지도 모르겠네요.”그 여학생은 강유이의 대역이 어떻게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나올 수 있는 건지 의아
그녀는 민서율을 죽도록 짝사랑하지 않았었나? 분명 민서율 밖에 모르는 바보 같은 여자였는데, 어떻게 마음이 이렇게 빨리 변할 수가 있단 말이지? 아마도 그녀는 체면을 잃고 있었다고 느꼈기 때문에 변명할 구실을 찾은 것일 거다. "내가 정말 농담하는 것 같아요?"조민은 휴대폰을 들고 번호를 찾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난 농담 따위는 하지 않아요.” 그녀는 귀에 휴대폰을 갖다 댔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기만을 속으로 기도했다.제발 체면이라도 지켜 주기를! 잠시 뒤, 마침내 상대방은 나른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조민은 옆으로 걸어가며 미소를 지었고, 사람들의 표정은 굳어버렸다.“자기야, 이제 일어난 거야?” 상대방은 조민의 ‘자기야’라는 호칭을 듣자마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앉더니 발신자 번호를 확인하자 낯선 번호가 보였다. “누구세요?”그러자 조민은 목소리를 낮추었다.“조민 씨, 제 말이 아직도 안 들리시나요?” 그녀는 친구들에게 향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고, 다시 뒤돌아서 전화했다."저 좀 도와주세요!” 소찬은 머리를 긁적이며 카운터에 있는 시계를 힐끔 쳐다봤다. "뭘 도와주라는 거예요, 나 요즘 시차 적응에 시달리고 있는 거 몰라요? 당신이 내 단잠을 다 망쳤다고요!” "제발요, 당신한테 돈도 줄 수 있어요. 그냥 와서 연기 한 번만 해주면 앞으로 당신이 원하는 건 뭐든 다 들어줄게요! 그리고 다시는 당신을 방해하지 않을게요.”소찬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당신 같은 여자를 만나다니, 난 정말 운도 지지리 없나 보군요. 빨리 주소나 보내요.” 그렇게 말한 소찬은 전화를 끊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걸어갔다.조민은 휴대폰을 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뒤돌아서 친구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 사람이 지금 막 일어나서 아마 조금 있다가 올 것 같애. 너희들에게 소개하는 걸 깜빡했네.” "민아, 너 진짜 남자친구가 있는 거야? 언제부터?” 그러자 조민은 진지하게 대답했다."그냥 우연한 만
강라라는 자신 앞에 있는 남자를 알아보고는 말을 꺼냈다."이 사람은 분명 그날 커피숍에서……” "맞아요." 조민은 강라라를 바라보며 대답했다."그때부터 우리는 사귀고 있었죠. 단지 당신의 다도 공연을 폭로하기 위해 이 사람이 날 모른 척했었을 뿐이에요.” 강라라의 안색이 달라졌고, 소찬은 조민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재빨리 연기에 돌입했다. "아, 이분들이 자기 친구들이야?”“응, 맞아.”“안녕하세요.” 소찬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고, 조민의 친구들도 강라라보다 소찬을 더 열정적으로 대했다. 소찬은 민서율과 강라라를 바라보며 말했다."아, 두 분은 낯이 익네요.” 민서율은 얼굴이 어두워졌다.“저도 뵌 적 있습니다.” 강라라는 소찬이 그날 일을 다 말해버릴까 봐 먼저 선수를 치고 나갔다."당신이 정말 조민 씨의 남자친구가 맞나요?”그러자 소찬은 싫은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무슨 뜻이죠, 설마 날 좋아하기라도 하는 겁니까? 미안하지만 당신은 내 취향이 아니네요. 참, 지난 번 커피숍에서의 연극은 정말 멋졌습니다!” 그는 말에 강라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건 무슨 말씀 이시죠?”한 친구가 묻자 소찬은 조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떤 여자가 자기 자신에게 커피를 뿌려놓고는 내 여자한테 뒤집어씌운 일이 있었습니다.” “맙소사, 그런 일이 있었군요!” 주변 사람들의 말소리에 강라라는 화가 나서 몸을 떨었고, 결국엔 울음을 터뜨리며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 민서율은 조민을 쳐다본 다음 소찬을 쳐다보고 강라라를 따라 나갔다. 다른 친구들 사이의 토론은 그들이 떠난 후 점차 줄어들었다.결혼식이 끝난 뒤, 조민은 소찬이 차 앞에 서서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고, 소찬이 손을 내밀며 물었다."내 연기비는?”조민이 지갑을 꺼내더니 현금이 부족한 걸 발견하고는 대답했다.“나중에 톡으로 보내 줄게요.” 소찬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고 웃으며 팔짱을 꼈다. "혹시 이걸로 내 카톡을 따내려는 속셈은 아니겠죠?” 조민
남우는 입을 다물고 말없이 의자에 몸을 기댔다.그녀가 깨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고, 적어도 민망한 장면을 자신의 눈으로 보지 않을 수 있었다. 차가 별장에 도착하자 경호원이 문을 열었고, 반재언은 남우와 함께 차에서 내렸다.눈앞에는 리조트호텔 같은 별장들이 있었고, 모두 프라이빗 수영장을 갖추고 있었다."재언 도련님.” 구릿빛 피부를 가진 키가 큰 남자가 별장에서 나오더니 미소를 지으며 반재언을 껴안았다. "돌아오셨습니까? 소찬이 그 녀석은요? 도련님과 같이 오지 않은 건가요?” 반재언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대답했다.“그 사람은 아직 돌아오기 아쉬워해서.” 이때 남자는 남우를 바라보았다.“이 분은 혹시..?”“내 아내.”반재언이 남우를 소개했고, 남자는 놀란 눈치였다.“소찬이 도련님께서 여자가 생겼다고 한 말을 들었는데 사실일 줄은 몰랐네요. 그런데 이미 결혼도 하신 겁니까?” 반재언은 남우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고, 안에 있던 도우미들은 차를 끓여 거실로 가져왔다.그 남자는 거실에서 반재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대화 중에 남우는 그 남자의 이름이 다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는 파라다이스 사람인 것 같았다. “내 증조할아버지께서는 지금 어때?” 그러자 다민이 대답했다.“연 씨 어르신의 건강이 예전만큼이나 좋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어르신의 딸과 손자, 손자며느리도 모두 곁을 지키고 있어요.”남우는 반재언의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당신한테 증조할아버지가 있었어?”그에게 친척이 이리도 많았다니. 반재언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고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내일 당신도 같이 뵈러 가자.” 다민은 조금 놀랐다.그는 반재언을 알고 지낸 지 수년이나 지났지만 그가 여성을 향해 그렇게 다정하게 행동하는 것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이 여자가 그의 아내가 될 수 있었던 것을 보니 반재언이 그녀를 매우 좋아하는 것만 같았다. "재언아, 돌아왔다면서도 왜 미리 알려주지 않은 거야?” 이때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