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이야…"아안이 강유이를 부축했지만 강유이는 그 손을 뿌리쳤다. 아니, 뿌리치려고 했다, 하지만 몸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아안이 강유이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힘들어 보이는데 쉬는 게 좋겠어."다른 이들도 강유이의 상태를 보곤 다가와 물었지만 아안이 웃으며 대신 대답했다."유이 몸이 좀 안 좋은 것 같으니까 내가 의무실로 데려갈게."그 말을 들은 친구들도 의심을 품지 않았다.한편 강유이는 아안의 품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다 의자에 무릎을 부딪혔다. 그 고통에 강유이는 조금 정신을 차릴 수 있었고 덕분에 대본도 챙기지 않고 자리를 벗어났다."내가 가볼게."아안이 대본을 주워 들곤 말했다.강유이는 벽을 짚으며 힘겹게 걷고 있었다. 복도 전체가 빙글빙글 도는 것 같은 느낌에 머리를 툭툭 치니 맥박과 심장박동이 덩달아 빨라졌다.결국 강유이가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려는 찰나, 아안이 그녀를 부축하더니 안아 들었다.먹을 것을 사 들고 온 진예은은 이리저리 둘러봤지만 어디에서도 강유이를 발견하지 못했다."강유이는?"결국 진예은은 다른 이를 잡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몸이 불편한 것 같아서 아안이 의무실로 데려갔어."진예은은 그 말을 듣자마자 이상함을 알아차리곤 의무실로 갔지만 그곳에는 강유이와 아안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진예은의 안색이 순식간에 바뀌었다.강유이에게 전화도 걸어봤지만 전화를 받는 이는 없었다.경영학과 행정동 앞에서 다른 이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반재신을 발견한 진예은은 다른 이를 상관할 새도 없이 그에게 달려갔다."반재신!"반재신이 고개를 돌린 순간, 진예은이 그를 끌고 어딘가로 가기 시작했다.그 모습에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바라봤고 반재신이 얼른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뭐 하는 거야?"하지만 진예은은 말을 제대로 이을 수조차 없었다."강유이가…"그 이름을 들은 반재신이 얼른 진예은의 어깨를 잡고 다급하게 물었다."유이가 왜!""아안이 강유이를 데리고 갔어."한편, 강유이를 데리고 체
하지만 그때, 창고의 문이 갑자기 열렸다. 놀란 아안이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그의 얼굴 위로 주먹이 날아왔다.반재신은 아안에게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다시 그의 옷깃을 잡은 채 주먹을 날렸다."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감히 누구 몸에 손을 대는 거야?!"뒤따라 들어선 진예은은 아안의 몸 위에 올라타 주먹을 날리고 있는 반재신을 보다 강유이를 바라봤다."강유이!"그녀의 이상함을 알아차린 진예은이 얼른 강유이를 부축하며 그녀의 볼을 쳤다."그만하고 유이 좀 봐봐!"진예은이 반재신을 보며 소리쳤다.반재신의 주먹이 그제야 허공에서 멈추더니 아안을 툭 내려놓곤 발길질을 한 번 했다."유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너뿐만 아니라 네 뒤의 진찬도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아안은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피로 얼룩진 코를 만졌다. 그의 얼굴은 퉁퉁 부어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입가와 눈가의 멍이 제일 선명했다.곧이어 반재신은 강유이를 안아 들곤 창고를 떠났다.따라나서던 진예은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돌리고 아안을 보며 말했다."정신 차려, 진찬은 정 씨 집안을 희생한 것처럼 너까지 희생해 버리고 말 거야."그 말을 들은 아안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병원으로 간 강유이는 전면적인 검사를 받게 되었다. 머지않아 의사가 심각한 얼굴로 나왔다."환자분께서 혹시 금지된 약물을 먹은 겁니까?""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반재신이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환각 성질을 가진 약물인데 주사하거나 복용하게 되면 사지가 무력해지고 의식이 흐릿해집니다. 진정제 작용을 가지고 있어서 대량으로 복용하면 몸에 해로운 약물입니다."의사의 말을 들은 반재신이 주먹을 쥐었다. 그는 아안이 자신의 동생에게 금지된 약물을 먹이는 짓까지 할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반재신이 CCTV를 보지 않았다면, 그래서 아안이 강유이를 어디로 데리고 갔는지 발견하지 못했다면 강유이는 이대로 망쳐질 뻔했다.-강유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시간은 이미 저녁이 다 되
"응, 이제 괜찮아.""다행히 너희 오빠가 너를 발견했어, 아안이 너한테 약까지 먹인 거 기억나?"진예은이 강유이를 보며 물었다."약을 먹였다고?"강유이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그녀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전혀 알지 못했다. 오늘 콜라 빼곤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강유이의 안색이 갑자기 변했다. 설마 그 콜라에 문제가 있었던 걸까?"기억나는 거 있어?"진예은이 강유이를 보며 물었다."그냥 콜라 마셨었어, 하지만 아안이 준 거 아니야, 게다가 다른 친구들도 다 마셨는데."강유이는 이미 아안을 충분히 경계하고 있었기에 저번에 아안이 준 물도 마시지 않았었다.하지만 콜라는 다른 친구가 준 것이었다. 게다가 연습을 하고 있던 이들도 모두 마시길래 강유이도 생각 없이 마신 거였다.진예은은 강유이의 말을 들으며 아마도 그 콜라에 무슨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아안은…"강유이는 무언가를 물으려고 했지만 결국 말을 꺼내지 못했다.강유이는 아안에게 실망했다, 아안도 이런 일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고충이 있었지만 그가 이런 짓을 하기로 결정한 이상, 그 어떤 고충도 이유가 될 수 없었다."아안이 어떻게 되든 너는 신경 안 써도 돼. 오늘 너희 오빠가 없었다면 너 아안 손에 다 망쳐졌을 거야. 아안이 진찬의 말을 듣고 너를 가까이 한 순간부터 퇴로는 없었어."진예은이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한편, 한 폐창고.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머리에 검은 천을 뒤집어쓴 채 바닥에 쓰러져 몸을 웅크리고 있는 남자에게 발길질을 해댔다.한태군과 전유준이 창고로 들어서고 나서야 사람들이 행동을 멈추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사람의 머리 위에 있던 검은 천을 걷어냈다.갑자기 밝아진 눈앞에 남자가 눈을 가늘게 뜨고 주위의 사람들을 살펴봤다.한태군은 전유준의 손에 있던 의자를 가져와 아안의 앞에 자리를 잡았다. 아안은 얼굴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새로운 상처를 얻게 되었다."진찬이 너를 참 과대평가했나 봐, 그런 낯짝으로 정말 내 손에서 사람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펜치를 들고 힘을 쓰자 아안의 손톱이 살과 함께 떨어졌다, 더불어 피가 남자의 얼굴에 튀었다.그리고 피범벅이 된 아안의 손가락만이 남았다.아안의 처참한 비명소리가 창고를 울렸고 그의 목에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마 위에는 땀방울까지 송골송골 맺혔다.그리고 다섯 번째 손톱까지 뽑았을 때, 아안은 고통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정신을 잃은 것 같습니다."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한태군을 보며 말했다."물 좀 뿌려서 깨워, 그리고 계속해."한태군이 손목시계를 만지며 무덤덤하게 말했다."저 손톱들은 진찬한테 보내, 내가 주는 선물이라고 꼭 말해주고."말을 마친 한태군이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났다.이튿날, 피범벅이 된 손톱 선물을 받은 진찬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도련님, 저쪽에서 아안의 손톱이라고 보내왔습니다. 아마도 한 도련님의 손에 걸린 것 같으니 아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해 보입니다."옆에 있던 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그 말을 들은 진찬이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아안이 아직 나를 팔 생각은 없어 보이네, 하지만 이젠 없애야겠어.""죽이겠다는 말인가요?""제일 좋기는 한태군의 본거지에서 죽어야지."진찬이 아안에게 이런 일을 시켰다는 사실을 한태군이 알았다고 해도 아안만 사라진다면 증거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게다가 아안을 잡은 지금, 한태군은 그를 괴롭히기만 할 뿐 죽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안이 한태군의 본거지에서 죽는다면 한 씨 집안에게 작지 않은 타격을 가져다줄 것이 분명했다.-신턴 빌라강유이는 방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틀 동안 학교를 가지 않았다.그때 수업이 없었던 진예은이 빌라로 찾아와 문을 두드렸다. "예은아."진예은을 본 강유이가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맞이했다."너 심심할까 봐 먹을 거 좀 사서 왔어."진예은이 피아노 옆으로 다가가 사 온 빵을 내려놓았다."다른 애들은 나한테 무슨 일 있었는지 모르는 거지?""걱정하지 마, 다 네가 아파서 안나온 걸로 알고 있
"응, 여기 너 말고 누가 또 있어?"반재신은 다시 평소의 얼굴로 돌아갔다.그 모습을 본 진예은이 웃음을 터뜨렸다."그런 말 할 필요 없어, 유이한테 정말 무슨 일이 생겼다면 나 한태군한테 할 말 없는 사람이니까."진예은이 말을 마치곤 갑자기 반재신을 훑어봤다."오빠라는 사람이 이번에 실직했어."반재신의 안색이 어두워졌지만 진예은은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빌라를 떠났다.빌라로 들어선 반재신이 신발을 갈아신는 사이, 강유이가 위층에서 내려왔다."오빠.""아주머니는?""오늘 아드님이 조금 아프다고 하셔서 내가 집으로 돌려보냈어.""너 점심은 먹은 거야?"반재신이 강유이에게 물으며 소매를 걷고 주방으로 가는 모습을 본 강유이가 그를 따라가며 물었다."오빠가 하려고?""응, 너 할 줄 알아?"반재신이 손을 씻으며 물었다.예전에 강유이의 큰 오빠가 있을 때는 큰 오빠가 밥을 도맡아 했었다. 그의 요리 실력은 강유이의 아빠만큼이나 훌륭했다. 반재신의 요리 실력은 강유이의 큰 오빠보다 못했지만 적어도 강유이보다 나았다.강유이가 식탁 앞에 앉아 밥을 기다리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반재신은 카레밥을 그녀 앞에 대령했다.카레밥의 맛은 비주얼과 달리 강유이의 입맛에 맞았다."오빠 카레밥은 정말 끝내주게 잘한다 말이지."강유이가 카레밥을 입속으로 밀어 넣으며 말했다. "받아먹는 주제에 말도 많다."반재신이 강유이에게 주스를 내어주며 말했다.그러자 강유이가 반재신을 보며 예쁘게 웃었다.그렇게 강유이의 앞에 앉아 그녀가 밥을 먹던 모습을 지켜보던 반재신이 한참이 지나 갑자기 말했다."그 여자, 네 친구 할만한 것 같아."그 여자?반재신의 말을 들은 강유이가 의아한 얼굴로 반재신을 바라봤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그가 말하는 그 여자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지금 예은이를 말하고 있는 거야?""걔 말고 누가 또 너랑 친해?"반재신이 의자에 기대어 앉으며 강유이의 시선을 피했다."전에는 예은이랑 가까이 놀지 말라고 했잖아."강유이의
매기는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아파 죽겠어, 아직 붓기가 빠지지 않았다고.""몇 달만 지나면 괜찮아 질 거야. 걱정하지 마, 데이비가 지금 네 얼굴에는 빨리 싫증을 내지 않을 거니까."진찬이 매기의 손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빨리 싫증 내면 어떡해?"그 말을 들은 진찬이 얼굴에 미소를 걸었지만 눈에는 전혀 웃음기가 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내가 사람 보내서 너를 데리고 나올게.""정말?""응,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일단 쉬어."진찬이 병실 앞까지 왔을 때, 그의 부하가 옆으로 다가왔다."도련님."부하가 진찬의 귓가에 대고 무언가를 말했고 그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병실 안의 매기는 신경 쓰지 않은 채 사람들을 데리고 떠났다.그들이 떠난 뒤, 매기는 한태군에게 메시지를 보내곤 즉시 삭제했다.한편 매기의 메시지를 받은 한태군은 확인하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그때 전유준이 병실에서 나왔다."도련님, 아안의 목숨을 살릴 수 있지만 아마 절단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합니다.""진찬 정말 인정사정없네."한태군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전유준도 진작에 진찬의 의도를 알아차렸다."네, 도련님께서 조심하지 않았다면 아안은 이미 죽었을 겁니다. 아안이 도련님 손에서 죽었다면 굉장히 불리해졌겠죠."한태군이 살인범이라는 죄명을 쓰게 된다면 한 씨 집안은 여론의 입에 오르내려야 했다.전유준의 말을 들은 한태군이 웃었다."하지만 진찬 그놈 생각도 못 하겠죠, 내가 일부러 그랬다는 거."아안의 손톱을 뽑아 진찬에게 보낸 이유는 진찬에게 아안이 자신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진찬은 아안을 죽이기 위해 분명히 움직였을 것이다. 진찬이 급하게 굴지 않은 이유도 아안이 너무 빨리 진찬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진찬은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했다. 주위의 사람들의 신임을 사기 위해서는 독하고 매정한 방법은 소용이 없었다.
이만의 말을 들은 진찬이 바닥에 쓰러져있던 부하를 바라보자 부하가 놀라서 말했다."도련님, 저희는 모르는 일입니다. 저희가 도련님을 배신할 리가 없잖아요!""이만, 매기가 수술 전에 뭘 했지?"진찬은 매기를 의심하고 있었다.이만은 그 사실에 등에 식은땀이 났지만 고개를 숙인 채 담담하게 대답했다."수술 3일 전까지 그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저한테 데이비 씨에 대해 물은 걸 보면 아마도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이만의 말을 들은 진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매기를 의심하고 있긴 했지만 그녀는 확실히 한 씨 집안사람과 연관이 없었다."내가 매기를 데이비 곁으로 보내겠다고 했는데 매기가 나를 원망하진 않았어?"진찬이 웃으며 물었다. 매기가 진찬의 뜻을 거역하고 자신을 배신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하지만 이만은 여전히 침착했다."아안과 매기는 아무 상관도 없으니 매기가 도련님을 원망한다고 해도 아안의 일에 끼어들 필요는 없습니다."이만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는지 진찬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래 것들 조사 좀 해 봐."이만이 고개를 끄덕이곤 부하를 데리고 나갔다.이튿날, 학교.강유이는 화장실에 들렀다가 다른 이들이 수군거리는 말을 듣게 되었다."아안 재벌 집 아들이라고 하지 않았어? 설마 신분을 위조한 건가?""나 학교 앞에서 아안 아버지를 만났는데 돈 있는 사람이랑 좀 차이가 있어 보였어. 아안 본명이 패리츠고 아안 헤리스는 예명이래.""걔 아버지는 아안이 정학 처분을 받았다는 걸 아직 모르고 있나 봐, 학교 앞에서 엄청 오래 기다리던데 불쌍해."강유이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학교 앞에는 평범하지만 깨끗하게 차려입은 중년 남자 하나가 경비원 두 명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중년 남자는 경비원이 뭐라고 해도 떠나지 않으려고 했다.그 모습을 본 강유이는 중년 남자에게 다가갔다."안녕하세요."강유이를 발견한 중년 남자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누구신지?""아안 아버지 되시죠
"진작 끝났지."강유이가 예쁘게 웃으며 대답했다."품에 안고 있는 건 뭐야?""이거…"강유이는 순간 뭐라고 해야 할지를 몰라 고개를 숙였다."내가 솔직하게 말하면 화낼 거야?"강유이의 말을 들은 한태군이 그녀를 바라보다 눈을 가늘게 떴다."네가 말 안 해서 내가 화내는 건 안 무서운가 봐.""아안 아버지가 아안에게 주려고 가지고 온 건데 연락이 안 된다고 해서 내가…"강유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한태군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또 아안이네, 유이 너 걔 용서해 줄 생각인 거야?""그게 아니라 아안 아버지가 너무 불쌍해 보여서, 이거 그냥 대신 전해주려는 것뿐이야. 아안이 한 일은 걔네 아버지랑 아무 상관도 없잖아."한태군은 강유이의 말에 화가 나 웃음을 터뜨렸다."아안이 어디 있는지 알기나 해?""모르지, 그래서 재신 오빠한테 도와달라고…""반재신도 몰라, 나만 알고 있어."한태군이 무척 침착하게 말했다.한태군의 말을 들은 강유이가 한참 고민하다 물건을 한태군에게 건네줬다."그럼 오빠한테 줄게."하지만 한태군은 아무런 표정도 없는 얼굴로 크랜베리가 담긴 박스를 바라봤다."내가 버릴까 봐 걱정되지도 않아?""이것 봐, 화낼 줄 알았어, 그냥 내가 줄 거야."그 말을 들은 강유이가 박스를 다시 제 쪽으로 가져오며 말했다."내가 화를 안 내게 생겼어, 아안 아버지가 불쌍하다고 이거 가져 온 건 알겠는데 네가 아안의 일을 알고 나서도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네."한태군이 강유이를 품에 안고 말했다."아안 아버지가 불쌍한 거랑 아안이 불쌍한 게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거야?"강유이의 말을 들은 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더니 다시 말했다."아안이 지금 잘 못 지내고 있다면 아안을 동정할 건지 그걸 물어보고 있는 거야.""동정이랑 용서는 다른 일이야, 불쌍하게 여긴다고 해서 용서한다는 건 아니잖아."강유이의 말을 들은 한태군이 웃었다.그 모습을 본 강유이가 까치발을 들고 한태군에게 가까이 다가가 불쌍한 얼굴로 물었다.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