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이는 어찌할 바를 몰라 도와달라는 눈빛으로 전유준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는 백미러를 통해 자신도 어쩔 수 없다는 눈빛을 보낼 뿐이었다."유이 씨, 차 안에 잠깐 계세요. 저는 사야 할 물건이 있어서 나갔다 올게요."눈치가 빨랐던 전유준은 변명거리를 찾아 자리를 피했다. 한태군과 함께 일한 오랜 세월 동안 그의 마음을 먼저 알아차린 적이 손에 꼽히는데, 강유이와 함께 있을 때만큼은 눈에 뻔히 보였다.전유준은 강유이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는 입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언제까지 자려는 거야."한태군의 입꼬리는 미세하게 올라가더니 몸을 기울여 강유이의 어깨에 기댔다.강유이는 몸을 흠칫 떨며 한태군을 향해 머리를 돌렸다. 오뚝한 코, 빽빽한 속눈썹, 얇은 입술, 조각도 이렇게 못 만들 정도로 예쁜 모습이었다. 강유이는 어릴 적부터 한태군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혼혈의 특징이 여자보다도 정교한 이목구비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사실 강유이는 한태군의 예쁜 얼굴 때문에 줄곧 그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성인이 된 한태군은 치명적인 매력까지 더해져 더욱 잊지 못할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는 마치 바다 한 가운데 소용돌이처럼 그녀를 빨아들였고, 빙빙 돌리며 정신도 못 차리게 했다.강유이가 잠깐 넋을 놓고 있을 때, 따듯한 입술이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강유이는 순간 숨을 들이쉬며 눈을 크게 떴다.뒤늦게 정신 차린 강유이의 얼굴은 폭삭 익은 새우처럼 빨개졌다."너... 너 자는 척한 거야?!"한태군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네가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데 어떻게 잠들겠어?""아무리 그래도... 기습은 반칙이지."강유이는 어색하게 시선을 피했다. 덕분에 진정하기는 완전히 틀린 것 같았다.한태군은 그녀와 이마를 맞대면서 물었다."싫었어?""... 싫은 건 아니고."한태군은 피식 웃었다."그렇다면 좋다는 뜻이네?""너 자꾸 이러면 나...""또 삐질 거라고?"한태군은 소리 내어 웃으며 그녀의 얼굴을 꼬집었다."그래도 상관없어.
진예은은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나 불렀어?"반재신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의 앞으로 가서 섰다. 165cm의 진예은은 그의 앞에서 유난히도 작아 보였다."너 원래 B동에 살았지?"강유이의 기숙사는 A동, 휴학 전 진예은의 기숙사는 B동에 있었다. 하지만 개학하고 나서는 하필이면 강유이와 같은 기숙사에 배정받게 되었다.진예은은 잠깐 멈칫하다가 눈살을 찌푸렸다."기숙사 바꿨어.""왜?""내가 기숙사를 바꾼 이유를 왜 너한테 말해야 하지?"진예은은 반재신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는 강유이의 오빠이자 학교에서 가장 훌륭한 유망주로 평가받았다. 금융학과를 전공으로 하는 동시에 컴퓨터학과도 복수전공으로 하는 그는 한태군 외에 따라갈 사람이 없었다.반재신은 아주 명석하고 솔직한 사람이었다. 특히 싫어하는 일과 사람에게 아주 단호했고, 사정을 봐주지도 않았다. 그는 한태군과 정반대의 성향을 보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만약 한태군은 미소 뒤에 칼을 품는 스타일이라면, 반재신은 칼을 완전히 드러내는 스타일이었다.반재신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진예은을 바라봤다."한태군이 보냈나?"진예은은 인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이미 추측되는 바가 있으면서 왜 나한테 묻는 거야?"반재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진예은이 몸을 돌리며 이어서 말했다."나를 너무 경계하지 마. 나는 누구한테 철면피하게 친구가 되어 달라고 들러붙는 사람이 아니니까. 나한테 친구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존재일 뿐이야."반재신은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진예은이 멀어져가는 모습을 묵묵히 바라볼 뿐이었다....며칠 후.강유이의 광고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무턱대고 공격하는 안티팬이 여전히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번 기회에 입덕한 팬도 아주 많았다. 팬들은 그녀를 '인간계에 떨어진 요정', '동방의 아프로디테', '청순과 섹시의 결합체'라고 불렀다.레이린은 강유이가 안티팬의 공격으로 광고 모델에서 잘리기는커녕, 팬이 잔뜩 생긴 것을 보고 홧김에 태블릿을 바
한태군은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그러면 너는 내 어디가 좋은데?"강유이는 잠깐 고민하다가 서슴없이 답했다."얼굴."한태군은 잠깐 멈칫하더니 더 크게 웃으며 말했다."잘생겨서 다행이라는 생각은 처음 하네."강유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다 무언가 말하려고 할 때, 한태군이 그녀를 품으로 끌어당겼다."내가 너를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없어."강유이의 눈초리는 파르르 떨렸다. 한태군이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심장이 주체 되지 않았다. 만약 이게 바로 설렘이라는 감정이라면 그녀는 오래전부터 한태군에게 설렌 게 틀림없었다.한태군과 강유이는 서로 손을 맞잡고 성악실에서 나갔다. 다른 학생과 마주쳐도 절대 손을 놓지 않았다. 두 사람이 커플이라는 것을 완전히 밝히기로 한 것이다.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줄리안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잠깐 놀랐다가 곧 침묵했다. 강유이가 지난번에 한 말에 관해서는 아직도 의심하고 있었다. 게다가 요즘 리사와 연락이 되지 않아 마음속의 궁금증을 더욱 풀 수 없었다."저 두 사람 진짜 사귀는 건가?""몰랐어? 한태군이 강유이 때문에 조기 졸업까지 포기했잖아."사실 빅토리아대학교에는 한태군을 좋아하는 여자가 꽤 많았다. 하지만 한태군의 눈에는 강유이 밖에 없었기에 함부로 다가가지 못했다. 이토록 눈에 띄는 플러팅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줄리안나는 다른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들으며 입술을 꼭 깨물었다. 이때 낯선 번호가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어두운 방 안의 구석에 앉아 있는 여자의 안색은 유난히 어두웠다. 그녀는 문자를 보낸 기록을 황급히 지우고 있었다. 침대 위에서 들려오는 코 고는 소리에 마음이 점점 더 불안해졌다.이때 휴대폰이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후다닥 소리를 꺼버리고 침대 위에 있는 남자가 깬 것은 아닌지 한참 관찰했다. 남자는 잠깐 뒤척이기만 할 뿐 깨지는 않았다.그녀는 시름 놓은 듯 한숨 돌리며 남자의 휴대폰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그리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애절하게 말했
강유이는 억지로라도 우산을 한태군을 향해 기울었다."그래도 안 돼. 내가 불편해서 그래."강유이가 고집부리는 것을 보고 한태군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녀를 꼭 끌어안은 채로 머리카락에 입술을 댔다."그러면 비 맞지 않게 더 가까이 붙어야겠다.""..."강유이는 어쩐지 속은 감이 있었다.기숙사에 도착한 다음 강유이는 지붕 아래에 서서 한태군을 향해 몸을 돌렸다."너 빨리 돌아가서 옷 갈아입어."한태군의 반쪽 어깨는 이미 완전히 젖어버렸다. 하지만 그는 짧게 대답만 할 뿐 움직이지는 않았다.강유이는 머리를 갸웃하며 물었다."왜 안가?"한태군이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강유이를 바라보고 있을 때, 그녀는 갑자기 발뒤꿈치를 들어 그의 입꼬리에 뽀뽀했다.한태군은 그대로 얼어버렸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강유이는 후다닥 위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혼자 남은 한태군은 자기 입꼬리를 만지작대며 피식 웃었다.'겁쟁이...'기숙사로 돌아간 강유이는 문에 기댄 채 심호흡했다.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은 도무지 진정되지 않았다. 그녀가 먼저 뽀뽀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유이야."진예은의 목소리를 듣고 정신 차린 강유이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응? 왜?"머리를 감고 나온 진예은은 물기 가득한 머리카락을 닦느라 강유이의 이상한 반응을 발견하지 못했다."줄리안나가 아까 찾아왔었어.""왜?""몰라, 급한 일이 있는 것 같더라고. 전화번호를 남겼으니까 꼭 전화해달래."진예은은 줄리안나가 남긴 쪽지를 강유이에게 건네줬다.강유이는 의아한 표정으로 쪽지를 바라봤다. 줄리안나가 직접 전화번호를 남긴 걸 보면 진짜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았다.강유이는 침실로 가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전화는 금세 연결되었다."여보세요? 줄리안나, 나를 찾으러 왔었어?""강유이, 리사를 암시장에 팔아버린 거 네 짓이지?"줄리안나의 질문에 강유이는 멈칫하며 물었다."그게 무슨 뜻이야?""연기하지 마. 리사가 오늘 전화 왔었어. 너 때문에 다른 사람한테
감시자는 리사가 도망갈 생각도 없이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 아프다는 말을 순순히 믿었다. 손님에게 병이라도 옮기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사를 데리고 근처에 있는 작은 진료소에 갔다.리사는 의사에게 자신의 증상을 말했다. 그러자 의사는 그녀의 차림새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그리고 이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감정 없이 말했다."혈액검사를 해보죠."리사는 의사를 따라 한 방 안으로 들어갔다. 감시자는 문밖에서 기다렸다. 어차피 이곳도 암시장의 영역이었기에 그녀가 도망가지 못할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리사는 피를 뽑으며 의사에게 물었다."검사 결과는 얼마 후에 나오나요?""20분이요."의사는 혈액검사를 하러 다른 곳으로 갔다.리사는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고정 전화를 힐끗 보고는 눈치를 살피다가 신속하게 줄리안나의 번호를 눌렀다. 줄리안나의 위치를 파악하고 나서는 밖으로 나가 게임을 하는 감시자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그게... 제가 돈이 없어서 그러는데 주변에 은행이 있어요?""잔머리 굴리지 마.""저 진짜 돈이 없어서 그래요."리사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돈 뽑아서 치료하겠다는데 그것도 안 되는 거예요? 제가 아프면 당신들만 손해잖아요."감시자는 리사의 말을 믿은 듯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도망갈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도망갔다가 잡힌 결과가 뭔지 잘 알고 있지?"감시자는 리사를 데리고 근처에 있는 은행으로 갔다. 리사는 긴장한 듯 옷깃을 꽉 잡았다. 줄리안나가 은행 근처에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리사!"역시나 은행 앞으로 가자마자 줄리안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사는 감시자를 힘껏 밀치고 줄리안나를 향해 달려갔다."네년이 감히 나를 속여?!"감시자는 어두운 안색으로 빠르게 쫓아갔다.줄리안나는 리사와 손을 잡고 함께 도망가기 시작했다. 감시자는 그 새로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두 사람을 쫓는 사람은 점점 더 많아졌다.리사는 머리를 돌려 무서운 속도로 쫓아오는 남자들을 바라봤다. 어두운 방 안에 가둬져서 같은
는 인터넷에서 유명할 뿐만 아니라 출판까지 될 정도의 베스트셀러였다. 어디서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강유이도 본 적 있는 유명한 소설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강유이는 줄곧 작가가 남자라고 생각해 왔다.강유이의 시선을 느낀 진예은은 어색한 표정으로 물었다."왜 그렇게 쳐다봐?"강유이는 턱을 괴고 말했다."넌 어떻게 연극영화과에 오게 됐는지 궁금해.""좋아하니까. 소설은 돈 벌기 위해 쓰는 거고.""네가 왜 돈을 벌어야 하는데?"진예은은 한태군의 사촌 동생이었다. 어머니가 황실의 사생아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황실과 연결 고리가 있는 부잣집 출신이었기에, 그녀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게 약간 이해가 가지 않았다.진예은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모든 사람이 다 너 같은 줄 알아? 집안에서 사랑받는 공주님은 내 고충을 모르겠지."진예은의 표정은 약간 어두웠다. 그녀의 어머니는 황실의 사생아다. 황실의 혈통이 있기는 하지만 평생 인정 받지 못할 운명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는 중산층 출신으로 부자라고 하기에는 어렵다.더구나 가족들은 장자이자 남자인 진찬만 중요시하고 진예은은 언제나 뒷전이었다. 그녀는 지금껏 오빠를 위해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신의 명성을 버리고 휴학해서 오빠의 아이를 돌볼 정도로 말이다.진찬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언제나 쉽게 얻어왔다. 반대로 진예은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직접 쟁취해야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로는 집안에서 돈 달라는 얘기를 한 적 없기도 했다. 그녀는 못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카페 카운터, 식당 주방, 술집 가수, 그리고 지금의 소설 작가까지... 전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했던 일이다.강유이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미안, 내가 너무 생각 없이 말했지..."강유이는 진예은의 사정에 대해 잘 몰랐다. 그래서 왜 좋은 집안을 두고 혼자 아득바득 살아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괜찮아, 나는 이미 습관 됐으니까. 지금껏 혼자 버텨왔는데 더 못할 게 뭐가 있어? 성인이
조사 결과 줄리안나가 암시장에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녀가 암시장에 몸 담근 적 있다는 소식이 퍼지는 순간 명성이 나락으로 치닫는 건 시간문제였다.줄리안나의 아버지가 마침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을 때, 비서가 USB 메모리를 들고 들어왔다."조금 전 어떤 남자가 와서 이걸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줄리안나의 아버지는 USB 메모리를 받아 들고 비서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 잠깐 고민하다가 USB 메모리를 컴퓨터에 꽂아 넣었다.USB 메모리 속에 담긴 것은 CCTV 영상이었다. 영상 속에는 줄리안나가 암시장에 납치된 모든 과정이 담겨 있었다. 그의 표정은 무섭게 싸늘해졌다.같은 시각, 한태군의 차가 줄리안나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세워져 있었다. 한태군은 창문을 내리고 커다란 저택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에 다시 올라탄 전유준은 백미러를 통해 한태군을 바라보며 말했다."도련님, USB 메모리는 말씀대로 전해드렸습니다."한태군은 시선을 거두며 창문을 올렸다."줄리안나가 암시장에 있다는 소식은 걔가 퍼뜨린 거예요?"한태군이 말한 '걔'는 리사였다.전유준은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리사는 그날 암시장에서 도망 나간 후 모텔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은행에서 10만 원을 꺼냈습니다. 조사를 해보니 최근 꾸준히 돈을 이체해 주는 사람이 있었더라고요."한태군은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역시 지금껏 연락하는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군요."전유준은 조사하는 과정에 수차례나 자기 눈을 의심했다. 아직 어린 여자아이가 저지른 짓이라고 하기에는 믿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리사는 한재욱의 목숨을 구해준 척 한씨 집안의 양녀가 되기까지 했다. 만약 한태군이 없었더라면 그녀는 진작에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을지도 모른다.암시장에서 도망 나간 리사는 곧바로 줄리안나의 소식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줄리안나의 명성에 먹칠하면 그녀의 아버지가 조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분명 그 기회를 노려 다시 착한 사람 흉내를 내려고 했을 것이다.다행히 한태군이 리사의 꼼수를 예상
강유이는 한태군을 바라보며 물었다."그걸 어떻게 알았어?"한태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사건의 자초지종을 전부 설명하고 나면 강유이가 자신을 두려워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잔인한 면을 강유이에게 보여준 적 없었고,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다.강유이의 맑고 깨끗한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한태군은 죄를 지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두 눈에 자신의 본모습이 비칠까 봐 두려웠다.한태군은 손을 들어 강유이의 눈을 막았다."나를 그렇게 보지 마.""왜?"강유이가 손을 밀어내며 묻자, 한태군은 장난기 섞인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왜긴, 뽀뽀하고 싶어져서 그러지."역시 이 방법이 먹혔는지 강유이는 귀가 빨개진 채로 시선을 피했다.한태군은 강유이를 기숙사 아래까지 데려다줬다. 그리고 몸을 돌리자마자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한태군은 그 사람을 향해 걸어가며 물었다."오래 기다렸어?"반재신은 팔짱을 끼더니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리사는 왜 또 풀어준 거야? 묶어두려면 좀 제대로 묶어두라고."반재신은 당연히 강유이에게 일어난 일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강유이와 줄리안나의 사건을 담은 문장이 리사의 계정으로 업로드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한태군은 시곗줄을 약간 느슨하게 풀며 말했다."리사는 진작에 우리 집안에서 나갔어."반재신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한태군이 이어서 말했다."리사 일은 내가 해결할게. 근데 너한테 부탁할 일이 있어..."한태군은 반재신에게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더니 무언가 말했다. 반재신은 약간 놀란 듯한 표정을 짓더니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내가 너를 도와준다고 착각하지 마.""알아, 이게 다 유이를 위해서라는 걸."...이튿날.학교에는 문장의 열기를 덮을 만한 엄청난 영상이 돌기 시작했다. 영상 속의 여자는 줄리안나가 아닌 다른 여자였다. 흔히 알려진 얼굴이라 알아보기 어렵지는 않았다."이 사람 한씨 집안의 수양딸 아니야?""우웩,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