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일단 원수정이 제성을 떠나는 걸 막아야 한다는 것.“조급해하지 마, 내가 곧 김신걸한테 말해 볼 테니 기다려.”윤정이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고, 문밖에 선 원유희는 초조했다.김신걸이 독하게 진짜 이런 짓을 하다니, 인정사정 없이!원유희는 전화를 받지 않는 김신걸에게 문자를 보냈다.[우리 엄마를 풀어주고 제성을 떠나게 하지 마. 네가 만족할 수 있다면 내가 뭐든지 할게.]문자는 그저 바다에 빠진 돌처럼 소식이 없었다.김신걸에게 그녀는 그냥 이 정도였던 걸까. 그렇다면 지금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거의 한 시간째 윤정의 답을 기다렸는데, 어찌된 일인지 연락이 없다.원유희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김신걸의 위치를 확인했다. 드래곤 그룹에 있는 걸 확인한 후 택시를 타고 도착해 곧장 엘리베이터로 향했지만, 제복을 입은 보안요원에게 가로막혔다.“여기 함부로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누구를 찾아오셨죠?”“김신걸이요.”“프론트에서 예약하세요.”예전에도 몇 번 왔기 때문에, 보안 요원이 그녀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저번에는 분명히 이렇게 막지 않았는데, 지금은 예약이 필요하다니. 일부러 이러는 게 분명하다.예약할 수 없는 게 아니라, 기다릴 수가 없다.“좋게 좋게 갑시다, 네? 결과는 제가 책임질게요.”원유희는 김신걸을 만날 수 있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안 됩니다. 그냥 가세요. 난처하게 하지 마시고.”보안요원이 거절했지만 원유희는 절대 이대로 갈 수 없었다. 무조건 김신걸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엘리베이터로 향했고, 보안요원이 그녀의 길을 막았다.“나가주세요.”“김신걸을 만나게 해 주세요. 당신들을 난처하게 하지 않을게요.”원유희의 말에 보안요원은 답이 없었고, 옆에서 윤설이 한정판 핸드백을 든 채 우아한 발걸음으로 걸어왔다.“어디서 큰소리야? 드래곤 그룹의 권력자가 네 말을 듣겠니?”원유희는 윤설이 나타난 걸 보고 가슴이 식었다. 윤설이 있으면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김신걸을 만난다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기나 해?”윤정이 무서운 얼굴로 일어났다.그의 혼인을 망치고, 원수정이 제성을 떠나게 만들고 원유희를 슬프게 한 게, 윤설이라니, 자신이 아끼는 딸 윤설이라니! 그는 믿기 어려웠다.윤설이 멍한 얼굴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아빠, 저한테 이렇게 무섭게 대하신 적이 없는데, 원수정 모녀 때문에…?”이전에 윤정은 무섭기는커녕 큰 소리조차 낸 적이 없었다. 온화한 아버지의 모습 그 자체였던 그가, 지금 그녀에게 화를 내고 있다.이런 어이없는 일이 생기다니.“제가 누구를 위해서 그런 짓을 했겠어요?”윤설이 억울해서 눈물을 흘리며 이어 말했다.“아빠, 저도 이런 추잡한 짓 하고 싶지 않았어요.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된 건데요?”이렇게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반성을 모르는 태도. 윤설의 이런 태도는 윤정을 골치 아프게 했다. 아버지로서 그 불안도 이해할 수 있지만 옳은 일을 저질렀다고 여기게 해서는 안 된다. 딸이 자신 때문에 이런 짓을 하다니. 내막을 알게 된 윤정은 놀라서 오랫동안 말을 이을 수 없었다.“아빠, 미안해요, 잘못했어요.”윤설은 윤정이 정말 화가 난 걸 보고는 말을 바꾸어 사과하며 앞으로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화내지 마세요. 다음부터 그런 일 없을 거예요.”자신이 아끼는 딸이 매달리는 걸 보고, 그도 어쩔 수 없었다.“가서 김신걸에게 원수정을 풀어주라고 하고, 이런 짓은 그만둬!”“네? 원수정을요?”윤설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가까스로 원수정을 처리했는데, 풀어주라니? 공든 탑을 무너뜨릴 수는 없다.“네가 저지를 일인데, 어떻게 원수정 탓을 하고 쫓아낼 수 있겠니?”아버지의 말을 들은 윤설이 멍한 표정을 하다가 별안간 미소를 지었다.“아빠 지금 원수정 모녀를 도우려는 거예요? 저를 이렇게 몰아세우시고?”“만약 네가 저지른 일이 아니었다면, 나와 원수정은… 이제는 정말 안 돼.”윤정의 안색이 무거웠다. 애초에 윤설과 장미선의 재혼 일 때문에 원수정을 볼 낯이 없었는데,
하지만 이해할 수 있다. 윤정은 그저 딸을 보호하고 싶었을 뿐, 잘못은 없었다.그렇다면 원수정은 잘못이 있는가?아마 장미선과 윤설만이 그의 진정한 가족이겠지…….원유희는 핸드폰에 움직이는 김신걸의 위치를 보고 황급히 커피숍에서 나와 드래곤 그룹으로 달려갔다.입구에 도착하자 그녀는 차에 타려고 하는 김신걸을 보고 그를 부르며 달려갔다."김신걸!"하지만 경호원이 그녀를 막으며 가까이 가지 못하게 했다.김신걸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태도는 무심했고 심지어 차가웠다.원유희는 가쁜 숨을 가다듬고 말했다."몇 분만, 몇 분이면 돼. 내 엄마, 내 엄마 놔주면 안 돼?""안돼."김신걸은 아주 짧은 한마디로 대답했다.원유희가 잠시 당황하더니 이내 물었다."왜? 내 엄마랑 아빠의 그 일은 오해야. 레스토랑에 가서 알아보면 알 거야. 정말 오해라고! 김신걸, 윤설 때문에 그러는 거 알아. 하지만 내 엄마도 피해자야! 내가 보낸 문자 봤어? 뭐든지 할 테니까, 우리 엄마 좀 놔주라. 응?"김신걸은 눈물이 글썽한 그녀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넌 결국 이 정도야."말을 마친 그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차에 탔다.그 자리에 남겨진 원유희는 그대로 굳어버렸고 마음도 차갑게 식었다.시동을 건 차는 점점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그녀는 아직도 그 난감한 상황에서 벗어나질 못했다.'그래, 난 결국 이 정도야. 애원해도 싫다는데. 김신걸은 다신 나에게 용서를 빌 기회를 주지 않을 거야. 어떡하지, 엄마 어떻게……'김신걸의 경호원은 정말 원수정을 먼 곳으로 보냈다.그리고 목적지에 이르러서야 떠났다.원수정은 못 믿겠다는 듯 다시 제성에 돌아갈 생각을 했다.주민 등로 증도 있고 돈도 있으니 아주 쉽게 기차표를 구매할 수 있을 것이다."죄송해요. 매진입니다.""지금 몇 신데 벌써 매진이에요? 방금 그 사람도 제성에 가는 표를 샀잖아요?"원수정의 기분이 좋지 않았다."자, 다음 분."직원은 아예 그녀를 무시했다.원수정은 화가 났지
“유희야 어때? 다 샀어?”“엄마, 못 사요. 신분증이 유효하지 않대요.”원수정의 재촉하는 말에, 원유희가 힘없이 말했다.“이… 김신걸 이게 꼭 우리 모녀를 이렇게 못살게 굴어야 돼? 걔 무슨 병 있는 거 아니야?”“엄마, 먼저 머물 곳을 좀 알아봐야겠어요. 당분간 지낼 곳이 없어요.”원수정이 발을 동동 굴리며 화가 났고, 그 모습을 본 원유희는 김신걸을 찾아갔다가 만났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걸 말하지 못했다.아마 며칠 지나서 그의 화가 풀리길 기다렸다 다시 말하면 괜찮을까…?“설마 내가 앞으로 제성에 못 가는 건 아니겠지? 내가 갈 수 없고, 너도 나올 수 없는데, 우리 모녀가 전화로밖에 연락할 수 없단 말이야? 이런 경우가 어딨어?”“싫어도 어쩔 수 없어요. 김신걸이 고집을 부리는 한은.”“걔 찾아봤어?”“음…….”원수정은 짜증이 났지만, 지금 화를 낸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한밤중에 도로에서 잘 수는 없는 법, 결국 주어진 상황에서 타협점을 찾을 수밖에. “유희야, 그냥 김신걸 찾지 마. 뭐야 진짜! 나 여기서 기다릴게. 들었어?”“잠깐 여행 간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방법을 찾아볼 테니까.”“어떤 방법을 쓰든 김신걸 찾지 마. 찾으면 화낼 거야.”“알았어요…….”전화를 끊고, 원유희는 지하철역을 나섰다. 김신걸을 찾아가지 않는다면 평생 원수정을 볼 수 없는걸까?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녀는 더할 나위 없이 잘 알고 있다. 마음이 독하고 수단이 악랄하며 절대 마음이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이제 그녀가 가서 빌어도 소용 없을텐데, 또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그때, 손에 있는 휴대폰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김명화의 전화.순간 원유희의 머릿속에 생각이 스쳤다. 혹시 김명화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까…?김명화와 김신걸 간에 암암리에 벌어졌던 관계를 생각하니 몸이 움츠러들었다.“왜 이렇게 느려? 뭐가 바빠?”아직 입도 열지 않았는데, 김명화의 참을성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안 바빠
원유희는 집에 돌아와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베란다로 가서 김명화가 떠난 걸 확인하고 나서야 집을 나와 학교로 향했다.그녀는 평소 아주 가끔 학교에 간다. 정확히 말하면, 거의 가지 않는다.부모는 아무리 바빠도 아이의 학교에 가 봐야 하는데, 이렇게 하는 게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가 없다.하지만 그녀가 자주 나타나지 않는다면, 삼남매에게도 좋지 않을 텐데. 아빠가 없는 아이들…….원유희는 교문을 통해 보육원으로 향했다.멀리서 어린 친구들이 운동장에서 체육 수업을 하고 있는 오빠, 언니들과 함께 놀고 있는 게 보인다. 멀리서 보면 마치, 펭귄 무리처럼 보이는 모습.“조한, 상우, 유담!”원유희가 걸어가면서 이름을 부르자, 다른 친구들과 빙글빙글 돌며 놀던 세 아이는 기뻐하며 달려갔다.“엄마!”“엄마!”“엄마가 왔어요!”아이들이 차례로 엄마 품으로 뛰어드는 순간, 그녀는 ‘아이구’하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얼굴의 웃음이 떠나질 않고 손으로 아이들을 꼭 껴안고 있다.“엄마 어떻게 왔져요?”“귀여운 나 보러 왔죠?”“엄마 왜 오랫동안 안왔져요?”“미안해, 오늘 엄마가 쉬는 날이라서 바로 왔어. 뽀뽀!”원유희가 아이들의 말에 대답하며 한 명씩 안고 뽀뽀하자, 아이들이 즐겁게 깔깔거리며 웃었다. 웃으며 고개를 돌린 순간, 원유희의 시선이 무의식적으로 어디론가 쏠렸다.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사람. 나수빈이 그녀를 보고 있는 걸 본 순간, 놀란 표정으로 얼굴의 웃음기가 사라지고 온 몸이 굳었다.품에 안긴 아이들, 그 아이들이 ‘엄마’하며 부를 때, 비밀이 갑자기 공기중에 노출된 것 같다.변명할 길이 없다는 생각에, 원유희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아이들을 밀어내고 일어나 나수빈을 향해 허리를 살짝 굽혀 인사했다.앞으로 다가가 세 아이를 쳐다보는 나수빈의 말투가 차분하다.“셋 다 네 아이야?”“우리 따로 얘기할까요?”“그래, 네가 나랑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할 지 궁금하네.”운동장 옆 한적한 구석, 멀리서도 운동장을
“……혼전임신이예요.”원유희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어른들의 눈에 분명 도덕적으로, 인격적으로 안좋게 비치겠지.나수빈도 자신의 황당한 처지에 놀랐다. 표원식, 정말 미친 거 아니야? 이런 여자애한테 매달려? 도대체 어느 집에서 받아들일까?원유희에 대한 그녀의 처음 좋았던 인상이 단번에 바닥으로 떨어졌다.“너 정말 꼴 좋다, 그리고 너의 고모, 아니, 네 엄마 원수정, 나는 정말 눈이 삐어도 너희 모녀 둘은 아는 체 안 할거야!”나수빈이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경고의 말을 날렸다.“앞으로 내 아들에게 더 이상 접근하지 마, 알았지?”“걱정하지 마세요. 사실 처음부터 저는 교장선생님의 여자친구가 아니었어요. 교장선생님이 더 이상 선을 보고 싶지 않으셔서 저를 이용하신 거예요.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있어야, 결혼생활도 오래 갈 수 있지 않겠어요?”나수빈은 어이가 없었다. 지금 이 말은 누구한테 하는 것일까? 무슨 자격으로 이런 말을 하는거지?중요한 건, 그녀의 아들이 직접 원유희에게 호감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같이 밥 먹은 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던데, 이게 무슨 억지 변명이야, 하지만, 원유희의 태도가 이렇다면, 나쁘지 않군.“그리고 아주머니, 저에게 아이가 있는 건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아 주시겠어요? 특히 저희 엄마요. 엄마는 아무것도 몰라요.”“모른다고?”“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아이를 데리고 제성을 떠나려고 했지만, 후에 일이 생겨서 그럴 수가 없었어요.”나수빈은 그녀가 말하는 ‘일이 생겨서’가 무슨 일인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원유희가 더 이상 표원식의 미래를 그르치지 않길 바랄 뿐.부탁에 대한 대답 없이, 나수빈이 돌아섰다.떠나는 그녀를 보는 원유희의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올 듯이 뛰었다.‘어떡하지?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건 아니겠지?’한 사람씩 더 알게 될 때마다, 그녀는 난처해질 것이다.바쁘게 사무실로 돌아온 표원식이 소파에 앉아 자료를 뒤적거리는 나수빈을 발견했다.“엄마, 무슨 일로
“너도 이제 서른인데, 원유희한테 뭘 바라는 건 아니지?”나수빈의 의심에 표원식이 자세를 고쳐앉으며 말했다.“마지막이예요.”“뭐가?”“소개팅, 마지막이라구요. 이번에 안 되면 더 이상 주선하지 마세요.”“만약 네가 일부러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내가 지금까지 소개시켜 준 여자들 다 너한테 반했다는데, 문제는 너한테 있는 거 아니니?”“엄마가 원인을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요, 일부러 말 안했죠.”목이 메인 나수빈의 안색이 좋지 않다.“원유희 같은 것도 마음에 들면, 다른 여자들도 괜찮아야지!”그녀는 절대 남자 며느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 하지만 원유희가 아이를 낳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세 아이의 엄마라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더욱 답답하다.“이렇게 몇 년 동안 시도해 봐도, 원유희밖에 없어요. 저도 엄마가 그 사람 마음에 안 들어하는 거 알고, 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그의 말에 나수빈은 마음이 심란했다.“내가 약속 잡아볼게. 이번 아가씨는 분명히 네 마음에 들 거야.”자리를 떠난 나수빈은 너무나 답답했다. 자신의 완벽한 아들이 남자를 좋아하다니.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런데 그걸 바꾼 여자는 왜 또 하필 속상하게도 원유희일까?주차장으로 걸어가다가 세 아이를 마주쳤고, 아이들이 큰 눈에 짙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귀엽게 그녀를 바라보다가 불렀다.“할머니다!”“할머니!”“할머니!”동글동글한 몸, 혀 짧은 목소리, 멍청한 귀여움.나수빈이 아이들을 무시할 수 없어 발도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데, 그 중 유담이 먼저 앞으로 다가가서 작은 얼굴을 들고 말했다.“할머니, 우리 엄마를 아시죠? 할머니 너무 세심하고 좋으세요.”“너네 엄마를 아는 사람이 모두 좋은 사람은 아니야. 일부러 접근하는 나쁜 사람일 수도 있어.”조한이 다가가서 나수빈의 치맛자락을 세게 잡아당기자, 그녀는 불편해서 쪼그리고 앉았다.“왜?”“새로 오신 분이세요?”“뭐?”나수빈이 한동안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이, 상우도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
표원식은 말없이 눈동자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커피를 들어 한 모금 마신 후 입술을 오므리는 그녀.“요즘 좀 어때요?”마음속의 감정을 억누른 채, 그가 물었다.“그냥 그러죠, 매일 출근하고, 아이랑 같이…….”“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잖아요.”“그 사람은 이미 윤설과 약혼했어요, 예전과 달라졌죠.”원유희의 얼굴이 약간 굳어지고, 표원식의 안경 렌즈 뒤 눈빛이 차가워졌다.“시간이 늦었는데, 제가 먼저 아이들만 데리고 갈까요?”“네.”원유희가 떠나고, 표원식은 커피잔을 내려놓은 채 창문 밖으로 시선을 쓸었다.선생님과 학생들. 눈에 가득한 캠퍼스 경치는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세 아이를 데리고 돌아가는 길에 전화가 왔지만, 손예인인 것을 확인하고 바로 음소거 한 뒤, 집에 도착해서 아이와 잠시 논 후에야 시간을 내서 전화를 했다.“설마 배은망덕한 짓 하려는 건 아니지?”손예인의 목소리가 좋지 않다.“내가 무슨 말 했어?”“아니면 됐어. 이제 내 성의를 알겠지? 같이 손잡고 윤설을 상대하는 거 어때?”“김신걸이 윤설을 너무 감싸고 돌아. 네가 그녀를 상대하면 김신걸이 너와 나를 가만두지 않을거야.”“당연히 쥐도 새도 모르게 해야지! 그 여자가 너를 괴롭히면 너도 똑같이 하면 되잖아.”원유희는 손예인의 사고가 너무 단순하다고 생각했다. 김신걸이 어떤 사람인데? 마음 독하게 제성의 권력을 장악하고 악랄한 행동을 일삼는 데다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보기만 해도 두렵다.윤설을 건드리면, 김신걸은 틀림없이 끝까지 조사할 것이다. 지금 원수정도 제성에서 쫓겨났는데, 더 이상 김신걸을 건드릴 수는 없지. 그렇지 않으면 정말 평생 원수정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지금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없어.”원유희는 좋은 생각이 있냐고 묻긴 했지만,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내가 요즘 너무 짜증나서 너랑 뭘 상의할 시간도 없어.”“뭐가 그렇게 짜증이 나?”“나와 윤씨 가문의 일, 잊었어? 우리 엄마가 제성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