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친자감별을 끝냈어.” 조영순의 한마디가 채수명 아주머니의 의심을 말살했다. 채수명 아주머니의 표정은 기쁨이 아니라 걱정과 분함이었다. 그녀는 염정은이 걱정되었고, 눈엣가시 같았던 엄혜정이 상속자로 되는 게 분해서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엄혜정은 택시를 타고 거리로 나가 목적이 없이 거리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버스 정류장에 앉아 넋을 잃고 빗발을 바라보았다. 그 빗발들은 마치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그녀의 마음속에 떨어지는 것 같았다. 엄혜정은 기억이 있을 때부터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양부모에게 욕을 먹거나 매를 맞을 때마다 지혜롭게 대처했지만 그녀는 항상 친부모를 그리워했다. 그들의 모습, 성격, 가정환경 등을 추측하면서 빈민가보다도 더 가난한 가정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녀를 버릴 리가 없었으니까. 심지어 남아선호 사상 때문에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내 친부모가 권력과 세력이 있는 염씨 가문의 사람이라니.’ 사실, 엄혜정이 자신의 친부모가 염군과 조영순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미워하기보다는 억울한 마음이 더 커서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그들이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까? 염민우가 조영순이 딸을 잃어버린 후 정신상태가 좋지 않아 밤에 잠을 잘 수 없어 약물에 의지했었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천천히 회복되었다고 했었어. 그리고 날 찾는 걸 멈춘 적도 없다고 했어. 다만 소식이 없었을 뿐이야. 어수선한 빈민가에 던져졌는데 어떻게 찾겠어? 천벌을 받아야 하는 건 인신매매범이야. 그때 팔려가지 않았더라면 내가 빈민가에 갈 일도 없을 테고 김하준 같은 괴물을 만날 일 도 없었겠지.’그녀가 슬픔에 잠겨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버스 정류장에 차 한 대가 섰고, 차 안의 사람이 내려와 검은 우산을 쓰고 그녀 앞으로 걸어왔다. 먼지 하나 묻지 않고 반질반질한 남자의 구두가 엄혜정의 시선에 들어왔다. 그녀가 고개를 들자 육성
“아!” 엄혜정은 차 안에 던져졌고 육성현의 그림자가 차문으로 들오어는 빛을 막았다. 수하가 우산을 가져가자 차문이 닫히고 차는 버스 정류장을 떠났다. 차창에 빗물이 떨어졌는데 속도에 의해 흩어지거나 구불구불한 물자국이 되어 마치 사람 얼굴의 눈물자국 같았다. “뒤에 염씨 가문이 있으면 나와 맞설 자격이 있을 줄 알았어?” 육성현은 입가에 웃음을 띠고 눈에는 온도가 없었다. “너 내 성질 알지?” “너 대체 뭐 하려는 거야?” 엄혜정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 그를 향해 고함질렀다. 하지만 육성현은 분노하기는커녕 오히려 침착했다. 마치 쉽게 엄혜정을 통제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엄혜정이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육성현을 볼 때, 그는 엄혜정의 손목을 잡고 앞으로 당겨 자기의 허벅지에 엎드리게 했다. 그리고 그녀의 윗옷을 들추어 어깨뼈 부분의 초승달 모반을 보았다. 그의 호박색 눈동자는 순간 차갑고 의미심장해졌다. “너 뭐 하는 거야?” 엄혜정은 일어나려고 했지만 육성현이 그녀를 꽉 누르고 있어 힘을 쓸 수 없었다. 육성현은 그녀의 몸부림을 무시하고 모반을 눈 깜짝하지 않고 보았다. 사실, 육성현은 엄혜정의 몸에 대해 아주 잘 알았다. 이 모반은 말할 것도 없고 작은 점이라도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다만 그런 진상을 보니 다시 한번 확인해보고 싶었다. ‘엄혜정이 정말 염씨 가문의 잃어버린 딸이었어. 그런데 빈민가로 던져지다니 운명도 참 가혹하지.’ “김하준, 이거 놔!” 엄혜정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이를 악물고 말했다. 육성현은 자신의 이름을 듣고 손의 힘을 줄였다. 엄혜정은 즉시 그의 다리에서 내려와 맞은편 좌석에 앉아 들어 올린 상의를 정리하면서 육성현과 멀리 떨어졌다. “너 또 왜 이러는 거야?” “앞으로 염씨 저택에 가지 마.” 육성현은 명령조로 말했다. 예전이라면 엄혜정이 망설이다가 승낙했을 것이었지만 지금 염씨 가문과의 관계를 안 이상 안 갈 수가 없었다.엄혜정은 육성현의 포악한 표정을 보고 할 수 없
엄혜정은 육성현의 말을 듣고 말했다. “인연이라고 해도 악연이야.” ‘나도 참 비참하지. 분명 더 좋은 운명을 누릴 수 있었는데 하필이면 이런 사람한테 찍혀서 지금은 몸과 마음에 금이 간 채 그늘로 가득찼어.’ “염씨 저택으로 돌아가 날 벗어나려고? 나는 네가 그렇게 천진난만한 나이는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육성현은 엄혜정의 신분을 알고도 조금도 변한 게 없었다. “네가 염씨 부부의 딸이라는 걸 공개하는 건 나도 동의해. 그러면 염씨 가문에도 사위가 생기는 거고 육씨 가문과 염씨 가문이 혼인을 맺어 모두 기쁜 일이 되겠지.” 엄혜정은 육성현의 인간성이 없는 모습을 보고 더 이상 갈 길이 없다는 걸 알고 말했다. “이제 내가 염씨 부부의 딸이니 네가 원하는 건 다 만족시켜 줄 게. 그러니까 날 풀어주면 안 돼?” “넌 내가 지금 뭐가 부족해 보여?” 육성현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일어나서 건장한 몸으로 엄혜정을 뒤덮었다. “지금은 너 말고 아무도 날 만족시킬 수 없어.” “육성현, 저리 가…… 윽!” 육성현은 엄혜정의 부드러운 입술에 힘껏 키스했다. 마치 입술이 터져야 만족할 것만 같았다. “윽…… 육…….” 육성현은 엄혜정을 호화주택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엄혜정의 핸드폰을 포함한 모든 물건이 염씨 저택에 있어서 조영순이 전화를 해도 연락할 수 없었다. 육성현은 그녀가 염씨 저택에 가는 걸 막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말한 것처럼 염씨 가문에는 사위가 한 명 늘어나는 거니까. 하지만 엄혜정은 아직 갈 용기가 없었다. 가족을 찾은 정서가 그녀를 진정하지 못하게 했다. 모든 게 마치 꿈만 같았다. 비록 염씨 저택에 돌아가진 않았지만 엄혜정의 마음속은 기뻤다. 왜냐하면 가족을 찾았을 뿐만 아니라 애초에 버려진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보다 그녀를 더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심지어 육성현에게 받은 고난조차도 가볍게 느껴졌다. ‘이게 바로 가족이 있는 것과 없는 차이인가?’ 가정부는 급히
“달아, 할아버지한테 말해봐. 너 정말 육성현이랑 남은 인생 살고 싶어? 싫다면 할아버지가 해결할게.” 엄혜정은 시선을 떨구고 마음속의 진정한 정서를 가라앉혔다. 그녀는 당연히 육성현이라는 괴물과 여생을 함께 보내기 싫었다. 심지어 접촉도 하기 싫었다. ‘하지만 염씨 가문에서도 날 어떻게 도와줘? 육성현에게 내 사진과 동영상이 그렇게 많은데. 난 그럴 수 없어. 육성현의 마음이 얼마나 음험하고 어두운지 아니까.’ “결혼했으니까…… 잘 살고 싶어요.” 엄혜정이 말했다. “할아버지가 애초에 했던 말은 아직 유효해. 염씨 가문의 상속권은 여전히 너의 손에 있어. 넌 받아들이고 싶어?” 염노인이 물었다. 이번엔 엄혜정만 놀란 것이 아니라 조영순과 염군도 의아해했다. ‘아무리 그래도 엄혜정이 오랫동안 떠나서 지금 무엇을 할 줄 아는지도 모르는데. 애초에 염노인이 달이를 후계자로 선정한 후에 상속자의 기준에 따라 양성하려고 했었는데.’ “아버지, 아버지께서 가문의 사업을 중히 여기니 좀 더 심사숙고하는 건 어떠세요? 달이가 아직 집안의 자산에 대해 익숙하지도 않고요.” 조영순이 말했다. “익숙하지 않으면 배우면 되지, 아직 이렇게 젊은데.” 염노인은 다시 돌아온 어린 손녀에게 못 해줬던 사랑을 다 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자 염군이 말했다. “아버지, 일단 달이가 원하는지 물어봐야 하잖아요.” 염노인은 달이를 보며 자상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 “달아, 넌 어떻게 생각하니? 괜찮아, 어떻게 생각하든 할아버지한테 말해봐.” “전 방금 자신의 신분을 알아서 아직 아무것도 몰라요. 돌아오자마자 염씨 가문의 상속자가 된다고 하면 염씨 가문과 회사에 작지 않은 충격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상속자라고 하면 사람들의 불만을 자아낼 거예요. 그러니까 할아버지, 염씨 가문에는 저보다 더 적합한 사람이 있을 거예요.”엄혜정이 지혜롭게 분석했다. 염노인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염씨 가문의
엄혜정은 육성현과 함께 염노인의 저택에 갔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엄혜정은 눈시울이 붉은 조영순이 문어귀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엄혜정은 다가가서 위로의 말을 하고 싶었지만 말이 목구멍에 걸린 것처럼 나오지 않았다. “왔어?” 조영순은 엄혜정의 손을 잡고 말했다. 육성현을 본 그녀는 얼굴이 냉담했지만 바로 고개를 돌려 부드럽게 엄혜정에게 말했다. “들어가자, 할아버지가 기다리셔.” 조영순은 육성현을 못 본 듯이 엄혜정을 끌고 들어갔다. 육성현은 개의치 않고 따라 들어갔다. 방 입구에 가정부들과 채수명 아주머니가 서있었다. 방에 들어가니 염군 형제, 염민우, 염정은이 다 있었다. 염노인은 아들 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며느리를 딸처럼 대하고 가족들에게도 엄청 잘했다. 염노인이 병든 후 자식들의 상심한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염정은은 들어온 엄혜정을 보고 환영하지 않는 적의와 분노를 띤 눈빛으로 그녀를 째려보았다. 그녀도 당연히 엄혜정의 정체를 알았다. 그렇게 싫어하고 가난했던 사람이 염씨 가문에서 잃어버린 아이 었다니. 어느 누구도 이렇게 큰 신분전환은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었다. 엄혜정이 들어오자 염정은은 바로 일어서서 나갔다. 마치 둘 중 한 명만 있을 수 있다는 결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 염정은이 방을 나가자 채수명 아주머니는 그녀가 손해 볼까 봐 걱정되어 바로 뒤따라갔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염정은은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 육성현을 보았다. 염정은은 엄혜정이 지금 육성현의 아내이고 자신이 애초에 바보처럼 그와 약혼할뻔한 일을 잊고 있었다. ‘저 자식은 대체 날 뭐로 생각하는 거야? 내가 언제 이런 굴욕을 당해봤어?’ 육성현을 보는 염정은은 치가 떨렸다. “달아…….” “할아버지.” 엄혜정은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아 침대에 허약하게 기댄 염노인을 보고 불과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할아버지, 우리 병원에 가서 검사받아요. 그러면 곧 나을 거예요.” “쓸
잠시 후 육성현이 방으로 들어왔다. “염노인.” 염노인은 눈앞의 거대한 몸집을 힘겹게 바라보며 말했다. “내 요구는 한 가지밖에 없어. 달이한테 잘해 줘, 그렇지 않으면 내가 귀신이 되어서라도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걱정 마세요. 나를 포함한 누구도 그녀를 괴롭히지 못하게 할 거예요.” 육성현은 진심 어린 말투로 말했다. 이런 자리가 아니었다면 엄혜정은 그의 거짓된 모습을 밝혔을 것이었다. ‘세상에서 날 가장 심하게 괴롭히는 게 육성현 아니야?’ “그럼 됐어…….” 염노인은 힘겹게 숨을 쉬었다. 엄혜정은 그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고 손을 들어 가볍게 염노인의 손가락을 잡았다. 그 모습은 마치 엄혜정이 돌잡이 때의 화면과 겹친 것 같았다. 염노인은 멍하니 바라보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할아버지?” 엄혜정은 당황해서 불렀다. “아버지?” “아버지!” 조영순, 염군 형제, 그리고 엄혜정까지 모두 염노인을 불렀는데 그는 더 이상 눈을 뜨지 않고 숨을 멈추었다. 염노인의 장례식에는 가족 외에 일부 종요한 손님들이 참석했다. 염씨 저택에는 비통한 분위기로 가득 찼다. 엄혜정은 상복을 입고 연못 옆에 서서 멍하니 있었다. 연못의 물이 그녀의 초췌한 안색을 비췄다. “엄혜정!” 엄혜정이 고개를 돌리자 누군가에게 뺨을 맞았다. 짝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맞아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염정은은 화가 치밀어올라 노호했다. “너 왜 돌아왔어? 밖에서 죽었어야지, 왜 염씨 저택으로 돌아온 거야? 너 때문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거야!” 엄혜정은 아무런 표정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굴에는 손자국이 뚜렷하게 나있었다. 조영순이 마침 그 장면을 보고 급히 달려와 엄혜정을 보호했다. “정은아, 너 뭐 하는 거야?” “내가 틀린 말 했어요? 쟤만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할아버지도 돌아가시지 않았어요!” 염정은은 손가락으로 엄혜정을 가리키며 말했다. “염씨 가문에 너 같은 사람은 없으니까 꺼져!”조영순은 엄혜정의 앞에
잠깐 멈춘 사이에 육성현은 엄혜정의 손을 잡고 끌고 갔다. 조영순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말했다. “육성현, 네 눈에 대체 염씨 가문이 있긴 하니? 육씨 가문에서 사람을 존중하는 법도 가르쳐주지 않았어?” 육성현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엄혜정을 강제로 데려갔다. “너…….” 조영순이 앞으로 가서 사람을 빼앗으려는데 염군이 그녀를 붙잡았다. 조영순은 화가 나서 말했다. “왜 날 잡아? 가서 달이를 데려와야지.” “달이는 지금 육성현의 아내야. 친부모라고 해도 억지로 뺏지는 못해. 비록 전에 불쾌한 일이 있었지만 화목하게 지내는 게 좋을 거야. 그래야 육성현이 달이한테 잘해줄 거 아니야.” 그렇긴 하지만 조영순은 육성현이 자신을 안중에 두지 않는 것 같아 마음속엔 몹시 불편했다. 엄혜정은 방에 끌려들어 가자마자 육성현에게 물었다. “너 왜 그래? 그 사람은 내 친엄마야. 예전에 날 수양딸로 삼았을 때와는 다르잖아! 그들을 다치게 할 생각 하지 마.” “내가 뭘 어쨌는데?” 육성현이 물었다. “태도가…… 안 좋잖아.” 육성현은 그녀를 소파에 앉히고 말했다. “너만 말 잘 들으면 그런 거는 문제가 아니야.” 그는 말하면서 의약상자를 찾아 안에 있는 소염수를 꺼내 직접 발라주었다. 따끔거림이 엄혜정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엄살은.” 육성현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 ‘빈민가에서 나온 사람보고 엄살이 심하다니, 비웃는 것도 아니고.’ 엄혜정은 육성현의 뺨을 갈기고 싶었다. “빈민가에서 나온 여자 중에 너보다 여린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러니 엄살이 심한 거지.” “빈민가의 모든 여자와 다 놀아봤어?” 엄혜정은 참지 못하고 되받아쳤다. “왜 말이 그렇게 거칠어?” “…….” 엄혜정은 이를 악물고 참았다. “너 알기 전에는 많이 놀았는데 그 후에는 없어.” 육성현이 말했다. “나 같은 남자를 어디 가서 찾냐?” “그 말은 맞는 말이야.” 엄혜정이 대답했다. ‘이런 괴물이 더 있을 리가 없잖아.’ 육성
엄혜정은 육성현의 어두운 얼굴을 보면서 속으로 그가 한 게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성현의 대답에 그녀의 요행 심리는 깨졌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육성현이 되물었다. 그러자 염경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말했다. “넌 사람을 죽이려는 거야? 육씨 가문에서 목숨 값을 치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앞으로 염씨 가문과 육씨 가문은…….” “형님.” 염군이 그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게 막았다. 두 가문의 관계가 틀어진다면 어느 누구에게도 좋은 점은 없기 때문이었다. 육성현은 일촉즉발의 분위기에서도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염노인이 임종 전에 그에게 했던 말 기억하십니까?” 육성현이 방에 들어와서 모두 몇 마디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엄혜정은 바로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어느 누구도 나를 괴롭히지 못하게 할 거라고 했어.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염정은에게 괴롭힘을 당했지.’“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염노인께서 편히 가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육성현은 염노인을 이용해 그들의 입을 막았다. 그러자 염경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때 조영순이 들어와서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달이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사람이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기나 해? 정은이도 염씨 가문의 사람이야. 이 점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 “나도 이 참에 염씨 가문의 모든 사람에게 경고하죠. 엄혜정을 때리는 건 곧 나를 때리는 거예요. 다시 한번 이런 일이 일어나면 이렇게 쉽게 끝내지 않을 거예요.” 육성현은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고 말했다. ‘이게 쉽게 끝낸 거야? 그럼 쉽게 안 끝내면 어떻게 되는데?’ 염씨 가문은 이런 도발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육성현의 독함을 생각하자 조영순은 등이 시큰거리는 것 같았다. 그건 주전자에 데어 물집이 생긴 상처였다. 엄혜정은 육성현의 말을 반박하고 싶었다. ‘이렇게 말하면 남들은 내가 그의 마음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줄 알겠네. 분명히 자신의 체면을 위해서 그러는
육성현은 흠칫 놀랐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누구를 죽였다고 그래? 혜정아, 다 오해야. 나 지금 다 고쳤어. 진짜야, 어서 내려와. 물만두가 식겠다.”“오지 마!”엄혜정은 감정이 격해져서 소리쳤다.“다가오면 뛰어내릴 거라고 얘기했어!”“그래, 안 갈게.”육성현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혜정아, 진짜야.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우선 먼저 내려와. 내려오면 내가 다 설명해 줄게. 다 오해야.”“사실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냥 유희의 말이 날 깨닫게 했을 뿐이야.”엄혜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육성현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근데 나 지금 다 알게 됐어. 증거는 없지만 넌 김하준이잖아. 난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 네가 달라질 거라 기대했어. 근데, 넌 어떻게 네 아이의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어? 김하준,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세상에 어떻게 너 같은 괴물이 다 존재해?”“혜정아, 내려와서 천천히 얘기하자, 응? 거긴 너무 위험해.”“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기분을 모르지? 너도 한번 느껴봐야 해.”엄혜정은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안돼!”육성현은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하지만 엄혜정의 옷자락도 미처 잡지 못했다.그는 엄혜정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밑에 서 있던 하인 중 그 누구도 엄혜정을 받아내지 못했다.“다 죽일 거야!”육성현은 미친 듯이 달려갔고, 눈에 거슬리는 하인들을 모조리 걷어차 버렸다. 그는 엄혜정 옆으로 기어가 부드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혜정아, 혜정아. 병원에 데려다줄게. 아무 일도 없을 거야!”엄혜정은 눈을 떴다. 그녀의 머리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초점이 점차 사라지는 눈으로 육성현을 바라보았다.“김하준, 다음 생이 있다면, 난 다시는 널 만나지 않을 거야…….”이렇게 한마디만 남기고 엄혜정은 숨을 끊게 되었다.“그래, 만나지 마,
퇴원한 후, 엄혜정은 방에 혼자 남았을 때 원유희에게 연락했다.“유희야, 괜찮아? 김명화가 널 납치했다고 들었는데, 구출됐다고?”“응, 괜찮아. 지금은 집에 도착했어.”“다행이다.”원유희는 그녀의 정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부모님이 돌아가신 일 말이야. 나 다 알게 됐어.”원유희는 순간 멈칫했다.‘다 알았다고?’“미안해 혜정아, 숨기는 게 아니었는데.”“괜찮아, 나랑 아이를 생각해서 숨긴 거잖아.”엄혜정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물었다.“네가 김명화를 죽였어?”“아니. 그날에 크루즈에서 김명화가 도망쳤거든. 우리가 김명화를 찾았을 땐 이미 주검으로 됐어. 그 주검도 바다에서 건져낸 거야.”“육성현도 있었지?”“응, 얘기해줬어?”엄혜정은 덤덤하게 물었다.“육성현을 의심해 보지 않았어?”원유희는 흠칫했고 아무런 얘기도 할 수가 없었다.“김명화를 죽인 사람, 그리고 우리 부모님을 죽인 사람 말이야…….”“그럴 리가?”원유희는 당황했다. 그녀는 엄혜정이 왜 육성현을 의심하게 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무슨 단서라도 발견한 거야? 아니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유희야, 저 사람 진짜 육성현이 아니잖아. 김하준이라고. 나 그 사람 잘 알아.”엄혜정은 목이 메였지만 울먹이면서 끝까지 말했다.“난 그 사람 고칠 줄 알았어,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혜정아, 아직 조사하고 있어.”“그럼 너희들도 육성현을 의심하고 있다는 얘기잖아, 맞지?”“오해일 수도 있어.”“오해일 리가 없어.”엄혜정은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원유희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자 그녀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그리고 시체처럼 무기력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엄혜정은 서재에서 나온 육성현을 보면서 얘기했다.“나 물만두 먹고 싶은데, 사다 줄래? 예전에 빈민가에서 자주 사주던 물만두 말이야.”“그래.”육성현은 엄혜정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먼저 우유 좀 마시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육성현은 엄혜정을 끌어안았다.“김명화가 죽었대. 복수한 셈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네가 무사히 지내야 장인어른 장모님이 안심하시지 않겠어? 침착해.”엄혜정은 울면서 그의 품에 쓰러졌다.그러고는 배가 간간이 쑤시자, 엄혜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렀다.육성현은 그녀의 상황을 바로 눈치채고 기사에게 소리쳤다.“얼른 병원으로 가!”“얼른!”염민우도 재촉했다. 그는 얼른 엄혜정의 손을 잡았는데, 그녀의 손이 얼음처럼 차갑다는 것을 발견했다.“누나, 아직 나도 있잖아. 그러니까 아무 일도 생기면 안 돼. 누나, 꼭 버텨줘.”엄혜정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그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난 부모님을 가질 자격이 없는 걸까……?’엄혜정이 깨어났을 때 그녀는 이미 병원에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만졌다.육성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금 안정을 취해야 한대.”엄혜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민우는?”“밖에 있어. 너무 걱정되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어.”엄혜정은 육성현의 손에서 자기 손을 뺐다.“두 사람 너무해. 이렇게 큰일을 어떻게 나한테 숨길 수가 있어? 평생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육성현, 우리 부모님의 목소리를 합성해서 나랑 통화하게 했어? 네 아이디어지? 넌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혜정아,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너한테 알려준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네 옆에는 나랑 아이가 있고, 민우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너밖에 없어. 너한테도 무슨 일이 생기면, 민우는 더 고통스러워질 거야.”엄혜정은 말을 하지 않았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엄혜정도 염민우가 더 고통스러워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때 엄혜정은 염민우가 갑자기 엄청나게 말라갔던 것이 생각이났다. 엄혜정은 염민우의 일이 바쁜 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염민우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울지 마. 의사가 지금은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했어.”
“알았어요…….”염민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입구에 서 있는 엄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누…… 누나. 여긴 어쩐 일이야?”엄혜정은 멍하니 거기에 서서 염민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얘기하고 있던 사람을 봤다.“하늘나라라뇨? 저희 부모님이 왜 하늘나라에 계셔요?”“아니야,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고 있었어.”엄혜정은 두 사람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엄혜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핸드폰을 못 찾자 바로 차로 뛰어갔다.“누나!”염민우는 엄혜정을 쫓아갔다.“뭐 하려고 그래?”“엄마 아빠한테 전화할 거야.”“지금 여행 중이시니까, 방해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엄혜정은 그를 보면서 물었다.“사실대로 얘기해줘. 엄마 아빠 왜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은 거야? 거짓말하지 마! 사실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임신했는데 엄마랑 아빠가 계속 안 오시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두 분 무슨 일이 생긴 거 맞지?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 거야?”염민우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 참고 말했다.“더 이상 묻지 마…….”“염민우! 계속 우물쭈물 얘기 안 하면, 나 이젠 널 안 봐!”염민우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집에 오는 게 아니었어, 그나저나 아저씨는 왜 또 그런 허튼소리를 해서 참…….’“맞아, 누나 임신 3개월쯤 되었을 때,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셨어.”엄혜정은 몸이 휘청거렸다. 염민우는 바로 그녀를 부축했다.“침착해요! 엄마랑 아빠는 누나가 무사하기를 원하셨을 거야. 난 누나가 못 받아들일 것 같아서 장례식 때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어.”엄혜정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염민우를 바라보았다.“너 이러고도 내 친동생이 맞아? 어떻게 안 알려줄 수가 있어! 아기만 중요하고 부모님은 안 중요할 것 같아? 너…….”너무 충격 받은 엄혜정은 눈앞이 점점 캄캄해지더니 기절을 하고 말았다.“누나!”
육성현이 다가와 물었다.“유희야, 괜찮아?”원유희는 고개를 저었다.“너 안색이 안 좋은데, 왜 그래?”“김명화가 죽었어요.”김신걸이 얘기했다.“해독제는 찾았어요?”원유희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쉽네. 그럼 감염된 사람들은 우선 좀 참아야겠어.”원유희는 갑자기 뭐가 생각나 바로 김신걸을 밀쳤다.“날 만지지 마!”육성현은 그제야 원유희의 볼 아래의 병변 부위를 발견했다.“유희야, 김명화가 너한테도 독을 썼어?”김신걸은 미간을 찌푸렸다.“상관없어.”“안돼. 우리 둘다 아이들하고 접촉하지 않으려 한다면 애들이 걱정할 거야.”원유희는 거절했다.김신걸은 줄곧 원유희와 스킨쉽이 있었다. 원유희는 그도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했다.“방금도 널 안았는데, 감염되면 진작에 감염됐어.”김신걸이 말했다.원유희는 그래도 싫었다.“아니, 그래도 만지지 마.”해독제도 못 가진 상황에 김명화는 의문스럽게 죽었다. ‘여기 김명화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 있었단 말이지?’김신걸은 김명화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바다에 던질 일은 더더욱 없었다.그럼 분명 다른 사람이 한 짓이었다.‘무슨 목적으로? 김신걸도 감염되면 배후의 사람을 어떻게 잡아내지?’‘다른 조직의 사람도 이곳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원유희는 말을 하지 않았다.“내려가자.”김신걸은 원유희의 말대로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원유희가 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떠날까 봐서 걱정이었다. 김신걸은 더 이상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원유희는 김신걸을 따라 떠났다.육성현은 먼 곳에 있는 김명화의 시체를 봤다. 그리고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떠났다.이제 아무도 김명화를 죽인 사람이 육성현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엄혜정은 이미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지금 어떠한 사고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육성현은 잠깐 해독제가 없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은 후 다시 생각하려 했다.엄혜정은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배는 이미 많이 나
김명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진선우는 킬러들과 격투하고 있었고, 매번 그들의 치명적인 곳을 공격했다.진선우가 실력이 없었다면, 킬러들은 진작에 그를 해결했을 것이다.김명화는 무엇을 깨닫고 손을 돌려 원유희를 잡으려 했다.원유희는 후퇴하는 동시에 다른 힘에 의해 품에 안겼다.“이거 놔!”원유희는 낯선 남자인 줄 알고 발버둥 치려 했다.“유희야.”원유희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고, 익숙한 얼굴을 보자 아주 기뻤다.“김신걸?”“나야.”김명화는 서로 애틋한 두 사람을 보자 화가 더 났다.“원유희, 역시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긴 사람, 너였어.”김명화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그쪽이 너무 방심한 탓이죠.”‘내가 예전에 김신걸의 곁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일이 김명화에게 착각을 준 거야?’“왜, 날 죽이려고? 네까짓 게?”김명화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다른 출구로 달려갔다.하지만 경호원들은 이미 그곳에 서서 그를 막았다.김명화는 총을 꺼내 쏘자, 한 경호원은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경호원은 얼른 옆으로 비켜 숨었다.일반인들은 그 출구를 포기했을 것이다. 김신걸의 사람들이 숨어있었기에, 그 출구는 아주 위험했다.하지만 김명화는 기어코 사격을 하면서 길을 텄다.안에 숨어 있던 경호원들은 피하면서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경호원들의 반격에 김명화는 하마터면 맞을 뻔했다. 그러다가 몇발 더 쏘고는 바로 달렸다.김명화는 크루즈에 오래 있었다. 하여 갓 크루즈에 올라온 김신걸의 사람들보다 이곳을 훨씬 더 잘 알았다.몇 개의 모퉁이를 돌면 은폐하기 적합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김명화는 다시 부하들에게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제야 김명화는 김신걸의 사람들이 진작에 올라왔고, 자기 쪽 부하들은 아마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도망치지 못한다면 김신걸에게 잡힐 것이 뻔했다.김명화는 죽어도 김신걸에게 잡히고 싶지 않았다.그러다가 갑자기 한 사람의 인기척이 났다. 김명화는 본능적으로 총을 들었다
원유희는 지금 약 때문에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크루즈 곳곳에는 CCTV가 있었다. 방에 들어올 때, 그 윗부분에 CCTV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한밤중에 몰래 뭔가를 찾아보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김명화는 일찌감치 그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원유희는 떠나기 전에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겨주었기에 그가 곧 이곳을 찾아올 거라 믿었다.다만 김신걸의 속도가 이렇게 빠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날이 밝는 무렵, 원유희는 헬리콥터 소리를 들었다.이어 문이 펑 하고 열렸고, 원유희는 반응하기도 전에 멱살이 잡혔다.“연락을 어떻게 한 거야?”말을 마치고 원유희의 몸을 수색하려 했다.“아! 미쳤어요? 나 핸드폰 없어요!”“김신걸이 왔다고 널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 죽어서 지옥에 내려가더라도 널 끌고 갈 거야. 가자!”“아니…….”원유희는 힘 없이 밖으로 끌려 나갔다.김명화는 원유희를 다른 방으로 보냈다.“우린 여기서 김신걸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돼.”원유희는 고개를 들어봤다. 입구에는 많은 폭탄이 놓여있었다.그걸로 부족한지 김명화는 원유희의 몸에 폭탄을 묶었다.“미쳤어요?”김명화는 원유희의 얼굴을 꽉 쥐었다.“김신걸이 널 어떻게 구할지 구경이나 하려고 그런다.”원유희는 마음이 매우 불안했다.‘김신걸이 왜 이렇게 왔을까? 너무 눈에 띄잖아.’다시 들어보니 이미 헬리콥터 소리가 나지 않았고, 밖에는 다른 인기척도 없었다.한 남자가 와서 말했다.“헬리콥터가 지나갔어요. 그냥 순찰하다가 지난 것 같아요.”김명화는 멍하니 서 있었다.원유희는 그를 비웃었다.“저 소리에 이렇게까지 놀랐단 말이에요?”“닥쳐!”김명화의 표정은 엄청나게 나빴다.“난 신걸이랑 아이들이 감염되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연락하지 않을 거고요. 배고픈데 이 폭탄들이나 좀 뜯어줄래요?”김명화가 경각심을 낮추었을 때, 크루즈 밑에서 잠수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10명 좌우로 보이는 사람들은 갈고리를 가드레일에 던지고 밧
원유희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김명화가 갑자기 뒤에서 무슨 짓을 할까 봐, 원유희는 그를 등지고 누울 수가 없었다.“너 기억나? 어릴 때 김신걸이 널 괴롭히면 넌 우리 집에 달려와서 내 침대에서 잤잖아.”“기억 안 나요.”“기억하는 거 다 알아. 난 그때 정말 널 도와주고 싶었어.”원유희는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반박하지 않았다.그녀는 천장을 쳐다보며 말했다.“이전의 김명화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요.”김명화의 표정은 어두워졌다.“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내가 제일 아끼는 사람을 죽이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죠? 죽어서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원유희는 지금의 김명화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아무리 유년 시절이 불행해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낙으로 삼으면 안 되죠!”“정말 고상한 척하네. 김신걸은 사람은 죽인 적이 없대? 육성현은 없대? 왜 걔네들이 사람을 죽인건 용서하면서, 난 용서하지 못하는 건데? 그 사람은 네 남편이고 네 가족이니까? 비겁하고 이기적인 건 너도 마찬가지야.”“참, 너도 사람을 죽였잖아. 네가 죽인 사람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누군가의 아들이야.”원유희는 기분이 착잡해졌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명화는 원유희의 반응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그러니까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쉽게, 편하게 살자.”“이렇게 예전의 저질렀던 일을 합리화하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명분으로 더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요?”원유희는 김명화를 바라보면서 물었다.“당신을 용서하기 싫은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까지 자기의 잘못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요? 차라리 해독제를 그냥 줘요. 시장에 유통하지 말고요. 그러면 예전에 있었던 일은 없던 거로 할게요.”“정말?”김명화는 원유희를 보면서 물었다.“물론이죠.”원유희는 김명화의 말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그래. 해독제를 줄 수 있어. 근데 대신 넌 나랑 평생 같이
“밥 안 먹으면 너만 손해야.”김명화는 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맞네,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무슨 힘으로 김명화를 상대하겠어?’잠시 후, 납득이 간 원유희는 젓가락을 들고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김명화는 그녀가 고기를 입에 넣는 것을 보고 물었다.“어때?”“설마 그쪽이 한 거예요?”원유희는 귀찮다는 듯이 그를 한번 힐끗 쳐다봤다.“맞아, 내가 직접 했어.”‘이게 뭐 자랑할 일인가?’“수고했네요,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니.”“내가 힘들 것 같으면 같이 할까?”“할 줄 모르는데요.”“정말 상전 팔자구먼.”김명화는 원유희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원유희는 김명화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원유희는 김명화가 자신을 괴롭히고, 김신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이곳에 데려온 줄로 알았다.근데 직접 밥도 해줄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설마 요리에 무슨 수작을 부린 거 아니죠?”원유희는 젓가락을 멈추었다.김명화는 손에 있는 젓가락을 흔들었다.“나도 먹고 있잖아.”“먼저 해독제를 먹었겠죠.”“그런 거 아니야.”“그럼 내가 묻힌 진물은? 그건 어떻게 해결한 거죠?”원유희가 물었다.“해독제가 있으니까 괜찮은 거잖아요.”“해독제 가지고 싶어?”“줄 생각은 있고요?”“착하면 줄게.”원유희는 의심스러웠지만 말하지 않았다.어차피 금방 왔으니 당장 해독제를 받을 수는 없었다. 하여 원유희는 일단 참고 해독제를 발견하면 김명화를 바로 제압하는 것을 선택했다.밥을 다 먹고 나머지는 부하가 다 치웠다.“같이 샤워할까?”김명화가 물었다.원유희는 그를 차갑게 보며 말했다.“아니요. 먼저 씻어요.”원유희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다.원유희는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침착하자고 했다. ‘근데 자는 건 어떡하지? 정말로 같이 자야 해?’원유희는 침대를 봤다. 두 사람이 자고도 넉넉한 침대였고, 중간에 뭘 놓을 수도 있었다.김명화가 만약 자기 몸에 손을 대면 원유희는 같이 죽을 각오도 했다.10여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