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혜정은 육성현의 어두운 얼굴을 보면서 속으로 그가 한 게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성현의 대답에 그녀의 요행 심리는 깨졌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육성현이 되물었다. 그러자 염경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말했다. “넌 사람을 죽이려는 거야? 육씨 가문에서 목숨 값을 치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앞으로 염씨 가문과 육씨 가문은…….” “형님.” 염군이 그가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게 막았다. 두 가문의 관계가 틀어진다면 어느 누구에게도 좋은 점은 없기 때문이었다. 육성현은 일촉즉발의 분위기에서도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염노인이 임종 전에 그에게 했던 말 기억하십니까?” 육성현이 방에 들어와서 모두 몇 마디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엄혜정은 바로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어느 누구도 나를 괴롭히지 못하게 할 거라고 했어.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염정은에게 괴롭힘을 당했지.’“내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염노인께서 편히 가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육성현은 염노인을 이용해 그들의 입을 막았다. 그러자 염경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때 조영순이 들어와서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달이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사람이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기나 해? 정은이도 염씨 가문의 사람이야. 이 점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 “나도 이 참에 염씨 가문의 모든 사람에게 경고하죠. 엄혜정을 때리는 건 곧 나를 때리는 거예요. 다시 한번 이런 일이 일어나면 이렇게 쉽게 끝내지 않을 거예요.” 육성현은 아무도 안중에 두지 않고 말했다. ‘이게 쉽게 끝낸 거야? 그럼 쉽게 안 끝내면 어떻게 되는데?’ 염씨 가문은 이런 도발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육성현의 독함을 생각하자 조영순은 등이 시큰거리는 것 같았다. 그건 주전자에 데어 물집이 생긴 상처였다. 엄혜정은 육성현의 말을 반박하고 싶었다. ‘이렇게 말하면 남들은 내가 그의 마음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줄 알겠네. 분명히 자신의 체면을 위해서 그러는
‘그런데 10프로의 이윤을 엄혜정에게 주라고 하다니. 그럼 얼마야?’ 염정은은 더 이상 듣고 있을 수 없어 말했다. “무슨 뜻이야? 엄혜정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 누워만 있어도 그렇게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거야? 다른 요구사항은 없어?” “없습니다.” 왕 변호사가 대답했다. “난 못 믿어!” 염정은은 앞으로 나가 왕 변호사의 손에 있는 서류를 빼앗았다. 정말 추가요구가 없는 것을 본 그녀는 서류를 바닥에 던졌다. “왜 엄혜정에게 10프로의 이윤을 줘야 해요? 단지 염씨 가문에서 그녀에게 빚졌다고 생각해서? 육성현에게 시집가서 그녀가 잘 못 지내기라도 했어요? 시집간 여자는 더 이상 염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에요. 할아버지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유언장을 남기신 거예요? 좋은 점은 다 삼촌네 집에 주고, 나랑 우리 아빠는 들러리예요 뭐예요?” 염정은은 너무 답답해서 울음을 터뜨렸다. 염경은 실망스러워 한숨을 쉬었다. 염군은 조영순과 마주 보더니 말했다. “정은아, 슬퍼하지 마. 삼촌 매년 배당금을 너에게 다 줄게. 앞으로 너의 지출도 삼촌과 숙모가 책임질 거야. 이건 걱정할 필요 없어. 그리고 형님, 우린 친형제예요. 형님도 제가 이런 거 개의치 않는다는 거 알잖아요. 내 주식에서 절반을 형님에게 드릴게요.” “이거 주고 저거 주고 나면 넌 얼마나 남는데?” 염경은 갑갑한 말투로 말했다. “아버지도 우린 그럴 능력이 없다고 판단해서 결정을 내린 거니까 나는 다 받아들여. 그리고 나도 영순이가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염경은 말하고 일어났다. “정은아, 가자.” “아주버님…….” 조영순도 일어섰다. “정은아…….” 염경이 떠나자 염정은도 조영순을 상대하지 않고 따라 떠났다.조영순은 힘없이 소파에 앉아 허리를 짚었다. 염군은 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물었다. “어디 불편해?” 조영순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난 염씨 가문의 며느리인데 아버지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어. 이건 당신과 아주버님에게
그것은 화상이었다. 엄혜정은 그 상처들이 마치 자신의 몸에 있는 것 같이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앞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어서 발자국 소리가 나지 않았다. 조영순은 침대에 앉아 옆에 놓은 약을 들고 면봉으로 상처에 조금씩 발랐다. 엄혜정은 그녀의 상처가 어떻게 생긴 건지 알고 있었다. 그날, 육성현에게 차여 탁자에 부딪칠 때 뜨거운 물에 데인 것이었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이렇게 심각했구나.’ 엄혜정은 육성현이 미웠다. 하지만 무섭기도 했다. 예전에 그녀의 양부모를 죽인 트라우마가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그녀는 조영순이 자신의 친부모라고 해서 육성현이 봐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았다. 조영순은 염군이 돌아온 줄 알고 고개를 돌리지 않고 말했다. “통화 끝났어? 누가 전화 온 거야?” 대답이 없자 조영순은 계속 말했다. “내가 묻지 말아야 하는 것을 물었어. 앞으로는 묻지 않을 게.” 엄혜정은 그녀의 말투를 듣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부부사이의 감정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왜 의심을 품고 있지?’ “달이 밑에 있어? 빨리 발라줘. 달이 혼자 내버려 두면 안 돼. 오늘 하루 밖에 묵을 수 없으니 내가 주방에 가서 요리사한테 점심에 달이가 좋아하는 요리를 하라고 할 거야. 다음에 또 언제 올 수 있을지 모르니까. 난 육성현이 내 사위가 되는 게 너무 싫어. 이혼하면 어때? 앞으로 달이를 우리 곁에 두고 결혼한다고 해도 우리가 선택한 사람과 해야 해. 육성현은 절대로 좋은 사람이 아니야…….” 엄혜정은 조영순이 육성현을 욕하는 것을 듣고 마음이 편했다. 왜냐하면 그녀도 육성현이 나쁜 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엄마, 앞으로 자주 올 게요.” 엄혜정이 말했다. 조영순은 몸이 굳어버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믿을 수 없는 눈빛으로 약을 발라주는 사람을 보았다. 그녀는 염군인 줄 알았다. 게다가……. “너 방금 날 뭐라고 불렀어?” 조영순은 격분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물었
염군은 눈시울을 붉히며 엄혜정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그래.” 이 순간, 엄혜정의 마음속에는 행복으로 가득 찼다. ‘이게 집이 있는 느낌이구나.’ 엄혜정은 이런 느낌이 처음이었지만 이런 행복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엄혜정은 정말로 염씨 저택에서 하룻밤만 묵고 이튿날 점심을 먹은 후 가려고 했다. 그러자 염민우가 직접 말했다. “너 육성현이랑 이혼해! 하룻밤만 자고 가다니, 너무 자유 없는 거 아니야?” 조영순은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 “너 정말 육성현 좋아해? 왜 혼인신고 했는데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거야? 내가 육원산에게 물어봤어. 그는 너희 둘이 서로 좋아해서 그랬다는데 난 왠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아.” 엄혜정은 엄마의 눈빛이 너무 예리하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처음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생각을 유지했다. “엄마한테 사실대로 말해봐, 무서워하지 말고.” 염군이 말했다. 엄혜정은 아빠와 엄마가 알아도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육성현에게 있어서 위협과 권세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약점이 없고 행동이 괴이한 망명자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염씨 가문은 대대로 규칙적이어서 정말로 싸운다면 절대로 육성현 그 미친 자식을 당해낼 수 없었다. “어차피…… 결혼해야 하니까 내 생각엔 육씨 가문이 제일 적합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육성현도 집에 가고 싶을 땐 가라고 했어요.” 엄혜정은 미안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 “미안해요. 육성현이 엄마한테 한 일은 내가 사과하라고 할게요.” 조영순은 어쩔 수 없이 웃었다. “엄마는 네가 행복할 수 있으면 돼.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아.” “사위가 장모를 때리는 건 정말 처음 봐!” 염민우는 와가 나서 다음에 육성현을 만나면 그와 한바탕 싸우고 싶었다. “넌 불 난 집에 부채질하지 마.” 조영순은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 “너 육성현 이길 수 있냐?” 염민우는 벌떡 일어나서 말했다. “엄마!” 염군은 위엄 있게 말
염민우는 잠깐 멈칫하더니 말했다. “왜? 육성현 데리러 가려고? 너희들 감정이 그렇게 좋았어?” “네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나쁘지도 않아.” 엄혜정이 말했다. “너도 이제 친정이 생겼으니까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염민우가 가르쳐줬다. “알았어. 그러니 내가 괴롭힘을 당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돼.” 엄혜정은 그를 안심시켰다. 말한 후 엄혜정은 고개를 돌려 조용히 염민우를 바라보았다. ‘예쁘게 생겼지만 여성스럽지 않고, 눈매는 조영순과 닮았으며 조각같이 완벽해.’ “그렇게 보면 내가 오해할 거야.” 염민우는 앞을 보며 말했다. 엄혜정은 웃으며 말했다. “나는 내가 이렇게 잘생긴 동생이 있을 줄 몰랐어.” “네가 그렇게 예쁜데 동생이 못생길 리가 있어?” 엄혜정은 그의 말에 웃었다. “서로 칭찬하기냐?” “사실대로 말한 거야.” 육성현은 사무실에서 고위층과 간단한 회의를 하고 있었다. 기세가 맹렬하고 위압적이고 침착해서 양복을 입고 가죽구두를 신으니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 같았다. 30분 후에 회의가 끝났다. 노크소리가 나자 육성현은 서류를 보면서 말했다. “들어와.” 엄혜정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책상에 마주 앉아 눈살을 찌푸리고 서류를 보는 남자를 보았는데 정말로 그럴듯해 보였다. 문을 닫고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 그의 책상 앞에서 섰다. 육성현은 이상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엄혜정은 담담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았는데 맑은 눈동자에는 별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육성현은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몇 시에 퇴근해?” “네가 왜 왔어?” 육성현은 되물었다. “널 데리러 왔지.” 육성현은 몸을 뒤로 기대고 앞에 있는 서류를 닫고 말했다. “다 했으니 가자!” 엄혜정은 그의 말이 진짜인지 의심했다. 엄혜정이 몸을 돌리자마자 육성현이 그녀를 책상에 눕혔다. 그리고 남성의 기운이 얼굴을 덮치더니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물었다. “음…….” 엄혜정은 갑자기 키스를 당해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육
육성현과 엄혜정은 계단을 내려가 전동오토바이를 탔다. 원래는 큰 사이즈였는데 육성현의 큰 몸집이 올라타니 작게 보였다. 잘 탄 후에 엄혜정은 육성현에게 적합한 헬멧을 주었다. 두 사람은 헬멧을 착용하고 전동오토바이를 몰고 회사 대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벤틀리는 뒤에서 따라갔다. 전동오토바이가 자동차도로에서 달리고 있었는데 바람이 얼굴을 스쳐 햇빛에 그을린 먼지 냄새가 났다. 이런 느낌은 마치 옛날 빈민가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육성현은 표정이 약간 부드러워져 손을 뻗어 엄혜정의 허리를 안았다. 그녀의 허리는 두 손으로 전체를 안을 수 있을 만큼 가늘었다. 육성현은 엄혜정의 어깨에 턱을 얹고 말했다. “옛날 생각이 난 거야?” “맨날 고급 차 타는 것도 지겹지 않아? 옛날을 느낄 겸 이거 타고 바람 쐬면 좋잖아.” 엄혜정이 말했다. “그리고 네가 전동오토바이를 운전하면 사람들이 문제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 내가 운전하면…….” “내가 뒤에 타고 있어도 문제 있어 보여.” 육성현은 그녀의 말을 끊었다. 엄혜정은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네 차가 뒤에 있으니 타기 싫으면 내려.” 엄혜정은 말하며 속도를 늦추려고 했다. 이때 육성현이 그녀의 손위를 잡고 속도를 높였다. 그러자 속도가 방금 전의 30에서 40으로 되었다. 전동오토바이는 길에서 자유롭게 빠져나가 신호등을 하나씩 지나갔다. 멈춰서 신호등을 기다리는 동안 옆에 다른 전동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멋있고 여자는 예뻐! 그리고 남자가 여자의 허리를 꼭 껴안고 있는 걸 보니 서로 사랑하는 커플인 것 같아. 사람이 멋있으니 전동오토바이도 고급스러워 보이는구나.’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전동오토바이의 브랜드를 보고 같은 브랜드를 사겠다고 생각했다.파란불로 변하자 엄혜정은 바로 속도를 내서 멀리 떠났다. 육성현은 웃으며 그녀의 귓가에 물었다. “얼굴이 왜 빨개졌지?” “난 너처럼 염치가 없지 않으니까.” “앞으로 매일 나 데리러 와.” 육성현
육성현이 도착하자 집사는 급히 뛰어들어가 육원산에게 말했다. 육원산이 거실에서 나와 육성현이 전동오토바이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엄혜정은 전동오토바이를 세우고 있었다. 그는 그제야 아까 통화할 때 왜 바람소리가 들렸는지 알아챘다. ‘두 사람 뭐 하는 거야? 웬 전동오토바이? 취미 하고는. 누가 빈민가에서 나온 게 아니라고 할까 봐 부끄러운 일을 찾아서 한다니까.’ 엄혜정이 예전의 신분이라면 육원산이 한바탕 꾸짖었을 텐데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그녀는 염씨 가문의 조영순이 잃어버렸던 딸이라 지금 엄청 애지중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육원산은 염씨 가문의 일인자인 조영순의 미움을 사기 싫었다. 그는 못 본 척 돌아서서 집으로 들어갔다. 저녁은 이미 준비가 되어서 오면 바로 먹을 수 있었다. 식사자리에 앉은 후 육원산이 말했다. “이 반찬들 좋아해?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주방의 요리사 보고 하라고 할게.” 엄혜정은 식탁의 음식을 보고 그들을 위해 준비한 것이라는 걸 알았다. 왜냐하면 육원산은 나이가 많아 음식을 담백하게 먹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엄혜정은 예전이었다면 육원산이 절대로 이렇게 대해주지 않았을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녀도 무엇 때문에 이렇게 큰 변화가 일어났는지 알고 있었다. “아닙니다. 이거면 충분합니다.” 엄혜정이 말했다. 그러자 육원산이 인자한 말투로 말했다. “그래, 그럼 많이 먹어.” 육성현은 그들의 대화에 아무런 방응도 없이 음식을 먹었다. 마치 육원산이 엄혜정에게 예의를 차리든 말든 그와는 상관없는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앉아서 차까지 마셨다. 육원산이 엄혜정에게 대하는 태도는 예전과 천지 차이였다. “참, 너희들이 혼인신고를 했으니 날 잡아서 결혼식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냐?” 육원산이 찻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육씨 가문과 염씨 가문이 혼인을 맺는 것이니 성대할수록 좋을 것 같아.” 엄혜정은 멍해졌다. 그녀는 육원산이 이런 생각을 할 줄은 몰랐다. 그녀는 육성
“내가 말했잖아. 할아버지가 방금 돌아가셔서 그런다고.” “정말 그거 때문인지 내가 모를 것 같아?” 엄혜정은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육성현이 너무 심술부린다고 생각했다. ‘내가 어떤 심정인지, 그리고 왜 그의 곁에 남아있는지 그가 더 잘 알잖아.’ “기분 나빠?” 엄혜정은 마음이 불편에서 일어나 앉으려고 했다. 하지만 상체를 들자마자 육성현의 손에 눌려 다시 누웠다. “우린 이미 혼인신고를 했어. 그런데 결혼식을 하는지 안 하는지가 그렇게 중요해? 우리가 가문 혼인을 맺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너와 염정은처럼 가문 혼인을 맺는 게 과연 감정이 있을까?” 육성현은 엄숙한 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엄혜정은 머리가 총명해서 빈민가의 유일한 명문대 생이었다. 김하준은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독서감은 아니었다. 그래서 자기가 갖지 못한 걸 갖고 싶어 했다. 엄혜정이 방금 한 말이 진실성은 낮을지 몰라도 육성현의 귀에는 듣기 좋았다. 차가 저택으로 돌아와서 엄혜정은 내리자마자 다른 익숙한 차를 보았다. 그건 염민우의 차였다. 육성현은 한 눈 보고 얼굴이 차가워졌다. 그리고 눈에 사악한 빛이 스치더니 엄혜정의 얼굴을 돌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에 키스하며 물었다. “여보, 아직도 졸려?” 엄혜정은 그의 갑작스러운 다정한 행동에 멍해졌다. 거실에 들어가자 염민우가 소파에 앉아 즐겁지 않은 표정으로 두 사람을 보았다. ‘서로 껴안고 들어오다니. 정말이야 아니면 쇼하는 거야?’ 육성현은 그제야 엄혜정의 어깨에 얹은 손을 내리고 소파로 걸어갔다. “언제 왔어? 밥 먹었어?” “먹고 왔어. 지나가는 길에 들른 건데 반갑지 않은가 보네?”염민우가 물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넌 혜정이의 동생이고 내 처남이야. 언제든지 환영해.” 하지만 그렇다고 염민우가 육성현에 대한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육성현이 조영순을 다치게 한 후부터 원한은 맺혔다. 엄혜정 때문이 아니었다면 그는 절대로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었다. 엄혜정은 육성현의 눈치를
육성현은 흠칫 놀랐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누구를 죽였다고 그래? 혜정아, 다 오해야. 나 지금 다 고쳤어. 진짜야, 어서 내려와. 물만두가 식겠다.”“오지 마!”엄혜정은 감정이 격해져서 소리쳤다.“다가오면 뛰어내릴 거라고 얘기했어!”“그래, 안 갈게.”육성현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혜정아, 진짜야.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우선 먼저 내려와. 내려오면 내가 다 설명해 줄게. 다 오해야.”“사실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냥 유희의 말이 날 깨닫게 했을 뿐이야.”엄혜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육성현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근데 나 지금 다 알게 됐어. 증거는 없지만 넌 김하준이잖아. 난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 네가 달라질 거라 기대했어. 근데, 넌 어떻게 네 아이의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어? 김하준,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세상에 어떻게 너 같은 괴물이 다 존재해?”“혜정아, 내려와서 천천히 얘기하자, 응? 거긴 너무 위험해.”“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기분을 모르지? 너도 한번 느껴봐야 해.”엄혜정은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안돼!”육성현은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하지만 엄혜정의 옷자락도 미처 잡지 못했다.그는 엄혜정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밑에 서 있던 하인 중 그 누구도 엄혜정을 받아내지 못했다.“다 죽일 거야!”육성현은 미친 듯이 달려갔고, 눈에 거슬리는 하인들을 모조리 걷어차 버렸다. 그는 엄혜정 옆으로 기어가 부드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혜정아, 혜정아. 병원에 데려다줄게. 아무 일도 없을 거야!”엄혜정은 눈을 떴다. 그녀의 머리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초점이 점차 사라지는 눈으로 육성현을 바라보았다.“김하준, 다음 생이 있다면, 난 다시는 널 만나지 않을 거야…….”이렇게 한마디만 남기고 엄혜정은 숨을 끊게 되었다.“그래, 만나지 마,
퇴원한 후, 엄혜정은 방에 혼자 남았을 때 원유희에게 연락했다.“유희야, 괜찮아? 김명화가 널 납치했다고 들었는데, 구출됐다고?”“응, 괜찮아. 지금은 집에 도착했어.”“다행이다.”원유희는 그녀의 정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부모님이 돌아가신 일 말이야. 나 다 알게 됐어.”원유희는 순간 멈칫했다.‘다 알았다고?’“미안해 혜정아, 숨기는 게 아니었는데.”“괜찮아, 나랑 아이를 생각해서 숨긴 거잖아.”엄혜정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물었다.“네가 김명화를 죽였어?”“아니. 그날에 크루즈에서 김명화가 도망쳤거든. 우리가 김명화를 찾았을 땐 이미 주검으로 됐어. 그 주검도 바다에서 건져낸 거야.”“육성현도 있었지?”“응, 얘기해줬어?”엄혜정은 덤덤하게 물었다.“육성현을 의심해 보지 않았어?”원유희는 흠칫했고 아무런 얘기도 할 수가 없었다.“김명화를 죽인 사람, 그리고 우리 부모님을 죽인 사람 말이야…….”“그럴 리가?”원유희는 당황했다. 그녀는 엄혜정이 왜 육성현을 의심하게 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무슨 단서라도 발견한 거야? 아니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유희야, 저 사람 진짜 육성현이 아니잖아. 김하준이라고. 나 그 사람 잘 알아.”엄혜정은 목이 메였지만 울먹이면서 끝까지 말했다.“난 그 사람 고칠 줄 알았어,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혜정아, 아직 조사하고 있어.”“그럼 너희들도 육성현을 의심하고 있다는 얘기잖아, 맞지?”“오해일 수도 있어.”“오해일 리가 없어.”엄혜정은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원유희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자 그녀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그리고 시체처럼 무기력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엄혜정은 서재에서 나온 육성현을 보면서 얘기했다.“나 물만두 먹고 싶은데, 사다 줄래? 예전에 빈민가에서 자주 사주던 물만두 말이야.”“그래.”육성현은 엄혜정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먼저 우유 좀 마시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육성현은 엄혜정을 끌어안았다.“김명화가 죽었대. 복수한 셈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네가 무사히 지내야 장인어른 장모님이 안심하시지 않겠어? 침착해.”엄혜정은 울면서 그의 품에 쓰러졌다.그러고는 배가 간간이 쑤시자, 엄혜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렀다.육성현은 그녀의 상황을 바로 눈치채고 기사에게 소리쳤다.“얼른 병원으로 가!”“얼른!”염민우도 재촉했다. 그는 얼른 엄혜정의 손을 잡았는데, 그녀의 손이 얼음처럼 차갑다는 것을 발견했다.“누나, 아직 나도 있잖아. 그러니까 아무 일도 생기면 안 돼. 누나, 꼭 버텨줘.”엄혜정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그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난 부모님을 가질 자격이 없는 걸까……?’엄혜정이 깨어났을 때 그녀는 이미 병원에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만졌다.육성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금 안정을 취해야 한대.”엄혜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민우는?”“밖에 있어. 너무 걱정되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어.”엄혜정은 육성현의 손에서 자기 손을 뺐다.“두 사람 너무해. 이렇게 큰일을 어떻게 나한테 숨길 수가 있어? 평생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육성현, 우리 부모님의 목소리를 합성해서 나랑 통화하게 했어? 네 아이디어지? 넌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혜정아,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너한테 알려준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네 옆에는 나랑 아이가 있고, 민우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너밖에 없어. 너한테도 무슨 일이 생기면, 민우는 더 고통스러워질 거야.”엄혜정은 말을 하지 않았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엄혜정도 염민우가 더 고통스러워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때 엄혜정은 염민우가 갑자기 엄청나게 말라갔던 것이 생각이났다. 엄혜정은 염민우의 일이 바쁜 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염민우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울지 마. 의사가 지금은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했어.”
“알았어요…….”염민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입구에 서 있는 엄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누…… 누나. 여긴 어쩐 일이야?”엄혜정은 멍하니 거기에 서서 염민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얘기하고 있던 사람을 봤다.“하늘나라라뇨? 저희 부모님이 왜 하늘나라에 계셔요?”“아니야,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고 있었어.”엄혜정은 두 사람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엄혜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핸드폰을 못 찾자 바로 차로 뛰어갔다.“누나!”염민우는 엄혜정을 쫓아갔다.“뭐 하려고 그래?”“엄마 아빠한테 전화할 거야.”“지금 여행 중이시니까, 방해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엄혜정은 그를 보면서 물었다.“사실대로 얘기해줘. 엄마 아빠 왜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은 거야? 거짓말하지 마! 사실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임신했는데 엄마랑 아빠가 계속 안 오시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두 분 무슨 일이 생긴 거 맞지?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 거야?”염민우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 참고 말했다.“더 이상 묻지 마…….”“염민우! 계속 우물쭈물 얘기 안 하면, 나 이젠 널 안 봐!”염민우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집에 오는 게 아니었어, 그나저나 아저씨는 왜 또 그런 허튼소리를 해서 참…….’“맞아, 누나 임신 3개월쯤 되었을 때,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셨어.”엄혜정은 몸이 휘청거렸다. 염민우는 바로 그녀를 부축했다.“침착해요! 엄마랑 아빠는 누나가 무사하기를 원하셨을 거야. 난 누나가 못 받아들일 것 같아서 장례식 때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어.”엄혜정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염민우를 바라보았다.“너 이러고도 내 친동생이 맞아? 어떻게 안 알려줄 수가 있어! 아기만 중요하고 부모님은 안 중요할 것 같아? 너…….”너무 충격 받은 엄혜정은 눈앞이 점점 캄캄해지더니 기절을 하고 말았다.“누나!”
육성현이 다가와 물었다.“유희야, 괜찮아?”원유희는 고개를 저었다.“너 안색이 안 좋은데, 왜 그래?”“김명화가 죽었어요.”김신걸이 얘기했다.“해독제는 찾았어요?”원유희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쉽네. 그럼 감염된 사람들은 우선 좀 참아야겠어.”원유희는 갑자기 뭐가 생각나 바로 김신걸을 밀쳤다.“날 만지지 마!”육성현은 그제야 원유희의 볼 아래의 병변 부위를 발견했다.“유희야, 김명화가 너한테도 독을 썼어?”김신걸은 미간을 찌푸렸다.“상관없어.”“안돼. 우리 둘다 아이들하고 접촉하지 않으려 한다면 애들이 걱정할 거야.”원유희는 거절했다.김신걸은 줄곧 원유희와 스킨쉽이 있었다. 원유희는 그도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했다.“방금도 널 안았는데, 감염되면 진작에 감염됐어.”김신걸이 말했다.원유희는 그래도 싫었다.“아니, 그래도 만지지 마.”해독제도 못 가진 상황에 김명화는 의문스럽게 죽었다. ‘여기 김명화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 있었단 말이지?’김신걸은 김명화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바다에 던질 일은 더더욱 없었다.그럼 분명 다른 사람이 한 짓이었다.‘무슨 목적으로? 김신걸도 감염되면 배후의 사람을 어떻게 잡아내지?’‘다른 조직의 사람도 이곳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원유희는 말을 하지 않았다.“내려가자.”김신걸은 원유희의 말대로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원유희가 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떠날까 봐서 걱정이었다. 김신걸은 더 이상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원유희는 김신걸을 따라 떠났다.육성현은 먼 곳에 있는 김명화의 시체를 봤다. 그리고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떠났다.이제 아무도 김명화를 죽인 사람이 육성현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엄혜정은 이미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지금 어떠한 사고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육성현은 잠깐 해독제가 없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은 후 다시 생각하려 했다.엄혜정은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배는 이미 많이 나
김명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진선우는 킬러들과 격투하고 있었고, 매번 그들의 치명적인 곳을 공격했다.진선우가 실력이 없었다면, 킬러들은 진작에 그를 해결했을 것이다.김명화는 무엇을 깨닫고 손을 돌려 원유희를 잡으려 했다.원유희는 후퇴하는 동시에 다른 힘에 의해 품에 안겼다.“이거 놔!”원유희는 낯선 남자인 줄 알고 발버둥 치려 했다.“유희야.”원유희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고, 익숙한 얼굴을 보자 아주 기뻤다.“김신걸?”“나야.”김명화는 서로 애틋한 두 사람을 보자 화가 더 났다.“원유희, 역시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긴 사람, 너였어.”김명화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그쪽이 너무 방심한 탓이죠.”‘내가 예전에 김신걸의 곁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일이 김명화에게 착각을 준 거야?’“왜, 날 죽이려고? 네까짓 게?”김명화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다른 출구로 달려갔다.하지만 경호원들은 이미 그곳에 서서 그를 막았다.김명화는 총을 꺼내 쏘자, 한 경호원은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경호원은 얼른 옆으로 비켜 숨었다.일반인들은 그 출구를 포기했을 것이다. 김신걸의 사람들이 숨어있었기에, 그 출구는 아주 위험했다.하지만 김명화는 기어코 사격을 하면서 길을 텄다.안에 숨어 있던 경호원들은 피하면서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경호원들의 반격에 김명화는 하마터면 맞을 뻔했다. 그러다가 몇발 더 쏘고는 바로 달렸다.김명화는 크루즈에 오래 있었다. 하여 갓 크루즈에 올라온 김신걸의 사람들보다 이곳을 훨씬 더 잘 알았다.몇 개의 모퉁이를 돌면 은폐하기 적합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김명화는 다시 부하들에게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제야 김명화는 김신걸의 사람들이 진작에 올라왔고, 자기 쪽 부하들은 아마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도망치지 못한다면 김신걸에게 잡힐 것이 뻔했다.김명화는 죽어도 김신걸에게 잡히고 싶지 않았다.그러다가 갑자기 한 사람의 인기척이 났다. 김명화는 본능적으로 총을 들었다
원유희는 지금 약 때문에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크루즈 곳곳에는 CCTV가 있었다. 방에 들어올 때, 그 윗부분에 CCTV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한밤중에 몰래 뭔가를 찾아보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김명화는 일찌감치 그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원유희는 떠나기 전에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겨주었기에 그가 곧 이곳을 찾아올 거라 믿었다.다만 김신걸의 속도가 이렇게 빠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날이 밝는 무렵, 원유희는 헬리콥터 소리를 들었다.이어 문이 펑 하고 열렸고, 원유희는 반응하기도 전에 멱살이 잡혔다.“연락을 어떻게 한 거야?”말을 마치고 원유희의 몸을 수색하려 했다.“아! 미쳤어요? 나 핸드폰 없어요!”“김신걸이 왔다고 널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 죽어서 지옥에 내려가더라도 널 끌고 갈 거야. 가자!”“아니…….”원유희는 힘 없이 밖으로 끌려 나갔다.김명화는 원유희를 다른 방으로 보냈다.“우린 여기서 김신걸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돼.”원유희는 고개를 들어봤다. 입구에는 많은 폭탄이 놓여있었다.그걸로 부족한지 김명화는 원유희의 몸에 폭탄을 묶었다.“미쳤어요?”김명화는 원유희의 얼굴을 꽉 쥐었다.“김신걸이 널 어떻게 구할지 구경이나 하려고 그런다.”원유희는 마음이 매우 불안했다.‘김신걸이 왜 이렇게 왔을까? 너무 눈에 띄잖아.’다시 들어보니 이미 헬리콥터 소리가 나지 않았고, 밖에는 다른 인기척도 없었다.한 남자가 와서 말했다.“헬리콥터가 지나갔어요. 그냥 순찰하다가 지난 것 같아요.”김명화는 멍하니 서 있었다.원유희는 그를 비웃었다.“저 소리에 이렇게까지 놀랐단 말이에요?”“닥쳐!”김명화의 표정은 엄청나게 나빴다.“난 신걸이랑 아이들이 감염되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연락하지 않을 거고요. 배고픈데 이 폭탄들이나 좀 뜯어줄래요?”김명화가 경각심을 낮추었을 때, 크루즈 밑에서 잠수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10명 좌우로 보이는 사람들은 갈고리를 가드레일에 던지고 밧
원유희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김명화가 갑자기 뒤에서 무슨 짓을 할까 봐, 원유희는 그를 등지고 누울 수가 없었다.“너 기억나? 어릴 때 김신걸이 널 괴롭히면 넌 우리 집에 달려와서 내 침대에서 잤잖아.”“기억 안 나요.”“기억하는 거 다 알아. 난 그때 정말 널 도와주고 싶었어.”원유희는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반박하지 않았다.그녀는 천장을 쳐다보며 말했다.“이전의 김명화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요.”김명화의 표정은 어두워졌다.“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내가 제일 아끼는 사람을 죽이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죠? 죽어서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원유희는 지금의 김명화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아무리 유년 시절이 불행해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낙으로 삼으면 안 되죠!”“정말 고상한 척하네. 김신걸은 사람은 죽인 적이 없대? 육성현은 없대? 왜 걔네들이 사람을 죽인건 용서하면서, 난 용서하지 못하는 건데? 그 사람은 네 남편이고 네 가족이니까? 비겁하고 이기적인 건 너도 마찬가지야.”“참, 너도 사람을 죽였잖아. 네가 죽인 사람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누군가의 아들이야.”원유희는 기분이 착잡해졌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명화는 원유희의 반응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그러니까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쉽게, 편하게 살자.”“이렇게 예전의 저질렀던 일을 합리화하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명분으로 더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요?”원유희는 김명화를 바라보면서 물었다.“당신을 용서하기 싫은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까지 자기의 잘못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요? 차라리 해독제를 그냥 줘요. 시장에 유통하지 말고요. 그러면 예전에 있었던 일은 없던 거로 할게요.”“정말?”김명화는 원유희를 보면서 물었다.“물론이죠.”원유희는 김명화의 말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그래. 해독제를 줄 수 있어. 근데 대신 넌 나랑 평생 같이
“밥 안 먹으면 너만 손해야.”김명화는 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맞네,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무슨 힘으로 김명화를 상대하겠어?’잠시 후, 납득이 간 원유희는 젓가락을 들고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김명화는 그녀가 고기를 입에 넣는 것을 보고 물었다.“어때?”“설마 그쪽이 한 거예요?”원유희는 귀찮다는 듯이 그를 한번 힐끗 쳐다봤다.“맞아, 내가 직접 했어.”‘이게 뭐 자랑할 일인가?’“수고했네요,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니.”“내가 힘들 것 같으면 같이 할까?”“할 줄 모르는데요.”“정말 상전 팔자구먼.”김명화는 원유희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원유희는 김명화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원유희는 김명화가 자신을 괴롭히고, 김신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이곳에 데려온 줄로 알았다.근데 직접 밥도 해줄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설마 요리에 무슨 수작을 부린 거 아니죠?”원유희는 젓가락을 멈추었다.김명화는 손에 있는 젓가락을 흔들었다.“나도 먹고 있잖아.”“먼저 해독제를 먹었겠죠.”“그런 거 아니야.”“그럼 내가 묻힌 진물은? 그건 어떻게 해결한 거죠?”원유희가 물었다.“해독제가 있으니까 괜찮은 거잖아요.”“해독제 가지고 싶어?”“줄 생각은 있고요?”“착하면 줄게.”원유희는 의심스러웠지만 말하지 않았다.어차피 금방 왔으니 당장 해독제를 받을 수는 없었다. 하여 원유희는 일단 참고 해독제를 발견하면 김명화를 바로 제압하는 것을 선택했다.밥을 다 먹고 나머지는 부하가 다 치웠다.“같이 샤워할까?”김명화가 물었다.원유희는 그를 차갑게 보며 말했다.“아니요. 먼저 씻어요.”원유희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다.원유희는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침착하자고 했다. ‘근데 자는 건 어떡하지? 정말로 같이 자야 해?’원유희는 침대를 봤다. 두 사람이 자고도 넉넉한 침대였고, 중간에 뭘 놓을 수도 있었다.김명화가 만약 자기 몸에 손을 대면 원유희는 같이 죽을 각오도 했다.10여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