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은 언제부터 그쪽에 서 있었던 걸까.낙청연은 그때까지도 상대가 문밖에 서 있는 줄 알았다.그러나 검은 그림자가 움직이자, 낙청연은 놀랍게도 그 사람은 방안에 서 있다는 걸 발견한다.낙청연이 들어온 후부터 방안에는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으니 문이 열린 적은 없었다.그러니 이 사람은, 처음부터 방 안에 있었던 것이다.그렇게 낙청연이 조용히 문을 따고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며 창고를 뒤지는 걸 지켜본 것이다.낙청연은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낙청연은 주먹을 꽉 쥐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창문으로 도망치려고 했다.그러나 그 검은 그림자는 재빨리 낙청연 옆으로 오더니 그녀의 어깨를 누르고 팔을 뒤로 잡았다.낙청연은 뒤를 돌아 상대를 놀라게 하여 물러서게 하려 했으나 상대는 몸을 돌려 피했다.낙청연이 틈을 타 도망치려 하자 상대는 아주 쉽게 다시 낙청연을 끌어당겼다.살기로 가득한 손바닥이 습격해오자 익숙한 느낌이 밀려왔다.낙청연은 눈앞의 검은 그림자를 보더니 깜짝 놀랐다. 부진환이었다!무공을 모두 잃은 낙청연은 피하지 못해 치명적이지 않은 위치로 피하며 맞았다.순간, 고통이 밀려오고 낙청연은 썩 밀려가 벽에 부딪힌 채 크게 넘어졌다.그렇게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부진환은 앞으로 다가와 낙청연을 잡았으나 반항할 힘조차 없는 그녀 얼굴의 면사를 벗겼다.그렇게 낙청연의 팔목을 잡은 부진환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네가 왜 여기에!”낙청연은 너무 아파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고 말했다.“쭉 여기에 있었던 겁니까?”부진환은 미간을 찌푸린 채 낙청연을 밖으로 끌어냈다.달빛 아래, 부진환은 낙청연의 손을 잡고 기산 송무를 빼앗았다.부진환은 어두운 안색으로 기산 송무를 들고 차가운 눈빛으로 물었다: “그 여인과는 무슨 사이냐?”“찾는 물건이 그 약재 상자에 있으면서, 풍도 상회에 있던 그날 밤은 왜 아닌 척을 하였느냐?”낙청연이 화가 난 채 떠나는 모습에 부진환은 자신이 약재 상자를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는지, 무슨 잘못을 한 건 아닌지 의
“이제야 의심하다니, 너무 늦었다는 생각은 안 드십니까?”“왕야, 제가 왕야를 죽이려 했다면 수없이 많은 기회가 있었을 겁니다.”부진환은 미간을 구기며 호통을 쳤다.“난 너와 그 사람과의 관계를 물었다!”“너희는 무공의 결이 같아. 심지어 그렇게 흔한 것도 아니지. 그러니 날 속일 생각은 하지 말 거라!”태의는 낙월영의 눈이 거의 먼 상태라고 했다. 여국의 기산 송무부터 그는 의심했다.소유에게 조사해보게 하니 풍도 상회 때 가져온 약재는 변방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여국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었다.그래서 며칠 동안 저택에 있지 않는다고 소문을 퍼뜨려 그 정체불명의 사람이 미끼를 물게 할 생각이었다.사실 그는 매일 밤 창고에 있었고 오늘 밤 드디어 사냥감이 미끼를 물었다.그런데 미끼를 문 것은 그자가 아니라 낙청연이었다.그러니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낙청연은 화가 났고 그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뿌리치지 못했다. 바늘로 콕콕 쑤시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그녀는 화를 내며 말했다.“네! 저랑 그자는 한패입니다! 됐습니까?”부진환은 마음 아픈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낙청연은 갑자기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결국 통증을 참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부진환은 안색이 흐려지더니 곧장 그녀를 안았다.품 안에 안긴 그녀는 입가에 핏자국이 있었고 부진환은 마음이 아팠다.그는 그녀를 안고 다급히 방으로 들어갔고 소유에게 의원을 불러오라고 했다.어렵사리 정신이 든 낙청연은 의원이 부진환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왕야, 왕비 마마께서는 상태가 심각하십니다. 예전에 심각한 내상을 입은 적이 있습니까?”부진환은 심장이 철렁했다. 그는 그녀의 무공을 없앴던 때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의원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왕비 마마께서는 경맥을 다치신 데다가 오늘 상처가 더해져 반드시 몸조리를 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질병이 생겨 몇 년밖에 살지 못할 겁니다.”그 말에 부진환은 멈칫했다.“우선 약부터 내주시게.”의원은 고개를 끄덕인 뒤
“아니, 그저 단서를 알고 있는 것뿐이다.”낙청연은 그제야 안도했다.하지만 낙월영은 그렇게 쉽게 속지 않았다. 그녀는 억울한 얼굴로 울면서 부진환의 소맷자락을 붙잡았다.“왕야, 왕야께서는 제 눈을 고치고 싶지 않으신 겁니까?”“제가 잘못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그러지 않겠습니다.”“눈이 먼다면 전 살지 못할 겁니다.”“왕야, 정확히 말해주세요. 제 눈을 고쳐줄 생각이 없으시다면 지금 당장 죽겠습니다.”“앞으로 눈이 멀어서 괴롭힘을 당하는 것보다는...”낙월영은 말하면서 더욱더 서글피 울기 시작했다.낙청연은 낙월영의 울음소리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힘겹게 몸을 일으켜 침대맡에 놓인 찻잔을 그녀에게 던졌다.“울려거든 나가서 울 거라.”찻잔은 낙월영의 발치에서 산산이 조각났고 겁을 먹은 낙월영은 더욱더 큰 소리로 울었다.부진환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고 이마에 핏줄이 불거졌다. 그는 갑자기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마치 수많은 가시가 그의 머릿속을 파고들 듯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다.그는 몇 번이나 기산 송무를 달라는 낙월영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었지만 이성이 그를 막았다.그러나 머리가 너무 아파 도저히 견디기 힘들었다.낙월영은 아직 울고 있었고 결국 참지 못한 부진환은 문을 박차고 나가 자신을 서방에 가두었다.낙월영은 울면서 그를 뒤따랐다.“왕야, 왕야.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대꾸해주세요.”부진환은 머리를 단단히 쥔 채로 비틀거리다가 탁자에 부딪혔고 주먹으로 힘껏 탁자를 내리쳤다.그런데도 고통은 줄지 않았다. 부진환은 안색이 창백해져 핏줄이 불거졌고 자신의 머리를 주먹으로 때리기 시작했다.소유는 그 소리를 듣고 곧바로 사람을 시켜 문밖에 죽치고 있던 낙월영을 쫓아냈다.방 안에 들어가 보니 부진환이 자기 머리를 때리려 하고 있었다.그는 다급히 부진환을 막았다.“왕야! 왕야 아니 됩니다!”부진환은 눈동자에 핏발이 서 눈이 빨갰다. 그는 두통 때문에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바닥에서
소유는 걱정스레 물었다.“왕야, 태의에게 보이지 않아도 되겠습니까?”조금 전 상황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이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한 모습을 떠올리면 아직도 두려웠다.부진환은 살짝 차가워진 눈빛으로 덤덤히 말했다.“오늘 일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말거라.”소유는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하지만 왕야, 심각한 상황인 듯하니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부진환은 서서히 눈을 감았다.“해결할 수 없다.”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몸 어디에 문제가 생긴 건지 아직도 알지 못했다.그도 자신이 정말 낙월영을 사랑하게 된 건지 의심한 적이 있었다.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상대의 모든 약점을 포용할 수 있고 못생겼을 때도 싫어하지 않고 꾀를 부린다고 해도 혐오하지 않아야 했다.그러나 부진환은 자기 자신을 설득할 수 없었다.그는 그녀의 능청스러운 작태를 혐오했고 수작을 부리는 것을 싫어했다.그러나 그는 종종 이성을 잃고 그녀를 걱정하고 지켜주려 했다.그래서 무언가 그를 조종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저낙을 몇 번이나 찾아갔지만 저낙은 아무것도 보아내지 못했다. 그조차도 알지 못하니 이 세상에 누가 해결할 수 있을까?소유는 한숨을 쉬었다.“왕야, 계속 이 상태를 유지하실 겁니까?”“너무 위험합니다. 왕야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부진환은 잠시 침묵하다가 화제를 돌렸다.“송천초를 불러와 낙청연의 상처를 치료하거라.”소유가 대답했다.“알겠습니다.”-낙청연은 상처 때문에 죽은 듯이 자다가 아침에야 깨어났다.정신을 차려보니 소유가 송천초를 데리고 왔다.송천초가 낙청연을 진맥하려고 하는데 소유가 입을 열었다.“왕비 마마께서는 걸으실 수 있소? 걸을 수 있다면 일단 왕비 마마의 정원으로 옮기는 것이 좋겠소. 그러면 송 의원도 치료하기 더욱 편할 것이오.”같은 정원에 있다면 어젯밤 같은 상황이 생길 경우 낙청연에게 그 모습을 들킬 수 있었다. 부진환은 낙청연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기산 송무를 얻고 싶다면 나와 함께 연회에 참석하거라.”그것은 부진환의 필체였다.부진환은 또 그녀를 협박했다.낙청연은 부진환이 이번에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알지 못했지만 그와 함께 가기로 마음먹었다.피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부진환이 낙월영까지 데려갈 줄은 몰랐다.낙월영은 현재 명성이 나락까지 떨어졌다. 낙청연은 부진환이 그녀를 데려가서 뭘 할 생각인지는 몰랐다. 왜 괜히 데리고 나가서 웃음거리가 되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그러나 웃음거리가 되는 건 그녀가 아니었기에 낙청연은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낙월영은 오늘따라 유독 화려하게 치장했다. 그녀는 저번 연회 때 입었던 옷을 꺼내 입어 낙청연의 기를 죽이려 했다.낙청연은 그녀의 우쭐한 모습이 우스웠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지금 그녀가 가장 원하는 건 기산 송무였다.낙청연은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궁에 들어서자 사람들은 부진환의 옆에 서 있는 낙월영을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수군덕거렸다.“낙월영은 엄씨 가문 공자를 유혹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큰 소동을 벌였으면서 감히 궁에 오다니?”“정말 수치를 모르는 자군.”“염치가 있었다면 섭정왕에게 들러붙어 받아달라고 하지 않았겠지.”누군가 몰래 웃으며 말했다.가는 길 내내 듣기 거북한 말들이 이어졌다. 낙월영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녀는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하지만 낙청연은 사람들의 대화에서 남다른 화제를 포착했다.예를 들면 오늘 만족 공주와 만족 왕자가 연회에 참석해 황제에게 선물을 바친다는 얘기 말이다.낙청연은 진천리에게서 만족에 관해 들은 적이 있었다.그들은 변방에서 지냈고 변방은 만족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했다. 만족은 부족을 중심으로 각자 살고 있으므로 매우 혼란스럽고 자주 국경의 백성들을 공격한다고 했다.그런데 만족에 공주와 왕자가 있다고?연회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자리에 앉았고 황제와 태후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낙청연은 맞은 편에 앉은 이국적인 차림새의 남녀를 보았다.그들이
그의 시선은 부진환에게 멈췄다.“실력이 비범해 보이십니다. 지위 또한 남다르시겠지요. 전 랑목이라 합니다. 귀하와 무예를 겨루어 보고 싶습니다!”그 말에 대전 안의 사람들은 깜짝 놀랐고 곧이어 웃음을 터뜨렸다.“랑목 왕자, 다른 이와 겨루어 보는 건 어떻습니까?”“이분은 저희 천궐국의 섭정왕이십니다. 상대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랑목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잘됐군요. 안 그래도 이번에 천궐국에서 가장 강한 사람에게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거만한 말이었다!랑목 왕자가 이렇게 자신감에 차서 말하는 걸 보니 다들 그가 실력이 범상치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부진환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안으로 들어갔다.“어떻게 겨루겠소?”랑목이 대답했다.“오늘은 폐하의 생신이시니 무기로 겨루는 건 적절치 않은 듯합니다. 그렇다면 맨주먹으로 겨루는 건 어떻습니까?”“마음대로 하시오.”부진환의 눈빛은 흔들림이라고는 전혀 없이 평온했다.랑목 왕자는 주먹을 꽉 움켜쥐더니 곧바로 부진환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부진환은 몸을 옆으로 피했고 랑목 왕자는 팔을 휘둘렀다. 부진환은 몸을 뒤로 젖히며 피했고 발밑에 바람이 생기며 가볍게 이동했다.부진환은 랑목 왕자의 등 뒤에 선 뒤 그의 등을 향해 손을 뻗었다.뒤처진 랑목은 이를 악물며 다시 한번 그를 공격했다.부진환은 반격도 하지 않았는데 랑목은 초조한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부진환의 옷자락조차 만질 수 없었다.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랑목 왕자가 저희 천궐국의 최강자에게 도전하길래 실력이 아주 뛰어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허풍 떠는 실력이 굉장하시군요.”“하하하하.”“저런 실력으로 섭정왕에게 도전하다니, 주제넘군요.”“만족의 실력도 별거 없군요.”사람들은 그들의 대결을 보며 비웃었지만 낙청연은 오히려 눈살을 찌푸렸다. 만족의 실력은 진천리가 말한 것과 달랐다. 심지어 차이가 아주 심했다.대전 안의 사람들은 모두 경멸하듯 비웃었지만 낙청연은 갑자기
낙청연은 차가운 눈빛으로 낙월영을 바라봤다.낙월영은 미소를 띠며 도발하듯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낙청연을 바라보았다.낙월영은 일부러 그런 것이다!“그렇습니까? 그분이 누구십니까? 설신무를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랑목 왕자는 아주 기대하는 눈치였다.대전 안의 사람들은 다들 이상한 표정으로 낙청연을 바라보았다.수도에서 설신무를 출 수 있는 사람은 부설 낭자, 즉 섭정왕비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부진환의 눈빛이 차가워졌으나 낙월영은 계속해 말을 이어갔다.“그건 바로 섭정왕비이신 낙청연입니다!”그 말에 랑목 왕자는 낙청연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는 예를 갖추며 아주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왕비 마마께서 설신무를 추시는 모습을 볼 영광을 제게 주시겠습니까? 이것은 천 리를 달려온 저의 소원입니다!”낙청연은 눈빛이 날카로웠다. 그녀는 들어주지 않을 생각이었다.그의 소원이 그녀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게다가 이런 상황에서 섭정왕비인 그녀가 만족 사람을 위해 춤을 춘다는 건 기가 막힌 일이었다.“섭정왕, 왕비 마마께 설신무를 청해도 되겠습니까?”랑목 왕자는 간곡한 태도로 부진환에게 말했다.미간을 잔뜩 구긴 부진환은 거절하려 했으나 낙월영이 부진환의 팔짱을 끼며 입을 열었다.“왕야, 조금 전 랑목 왕자와 겨루다가 실수로 랑목 왕자를 다치게 하지 않았습니까? 왕비 마마에게 춤을 추게 하는 것으로 보상해줄 수 있습니다.”“하물며 랑목 왕자는 먼 길을 달려왔고 이 수도에는 오직 왕비 마마만 설신무를 출 줄 아니 왕비 마마에게 춤을 추게 하여 좌중들의 안목도 높여주시지요.”낙청연은 부진환을 바라보았다. 이런 자리에서 정말 내게 춤을 추게 할 생각은 아니겠지?만족 왕자는 조금 전 부진환에게 졌다. 그런데 부진환이 랑목 왕자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기 왕비더러 춤을 추게 한다면 이긴 것이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고작 만족일 뿐인데 그들이 왜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춤을 추며 상대에게 잘 보여야 하는가?부진환은 거절하려고 했지만 머릿속에 수많은 목소리가
“네 태도에 달렸다.”차가운 말에 낙청연은 숨이 막힐 듯했다.낙청연은 일어나서 대전 안으로 걸어갔다.대전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낙청연에게 집중되었다. 이것은 부설이 진짜 얼굴을 드러낸 뒤로 처음 설신무를 추는 것이다.현장에 있던 일부 사람들은 부설루에서 설신무를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과는 완전히 달랐다.“허락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섭정왕!”랑목 왕자는 흥분한 얼굴로 부진환에게 예를 갖추었다.그렇게 분위기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미묘하게 변했다.부경리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이건 랑목 왕자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폐하께서도 설신무를 본 적이 없기에 섭정왕께서는 폐하의 생신을 축하해 드리고 싶은 것뿐입니다.”“오늘 섭정왕과 섭정왕비의 선물이 아주 마음에 드는구나.”사람들은 맞장구를 치는 것으로 그것의 성질을 바꾸었다.음악이 울려 퍼지자 낙청연은 춤을 추기 시작했다.비록 설신무의 모든 동작을 기억하고 있었으나 그녀가 추는 설신무는 린부설만큼 요염하고 부드럽지 않았다.오히려 단단함과 살기가 느껴졌다.그리고 지금의 설신무는 예전처럼 나풀거리고 고결하지 않고 아주 격렬하고 화려했다.부진환은 미간을 좁히며 그녀의 분노와 원망이 가득 담긴 동작을 지켜보았다.큰 바위가 심장을 짓누르고 있어 숨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춤이 끝나고 대전 안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와 찬사가 쏟아졌다.“부설 낭자가 절세 무희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었군요. 화려하지만 속되지 않고 여운이 길게 남습니다!”“그러게요. 설신무는 볼 때마다 다른 느낌이 드는 것 같습니다.”그건 매번 춤을 추는 사람이 달랐기 때문이다.낙청연은 대꾸하지 않고 자리로 돌아갔다.부경한이 칭찬했다.“섭정왕에게 이런 왕비가 있다니 아주 큰 행운이오! 나 또한 무척 부럽소!”셋째 형님과 낙청연의 안색이 좋지 않은 걸 보아낸 부경한은 최대한 일을 무마하려 했다.하지만 그 말에 낙월영은 오히려 이를 악물었다.대전 안의 사람들은 그녀의 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칭찬하고 있었지만 낙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