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청연은 벽 구석 쪽에 놓인 몽둥이를 휘둘러 맹금우를 기절시켰다. 그리고는 소매 안에서 찐빵을 꺼내서 그녀의 입안에 쑤셔 넣어 그녀가 삼키게 만들었다.사내들은 창문 쪽에서 인기척이 들리자 낙청연이 창문 쪽으로 도망치려는 줄로 알았다.“여기 있었군. 감히 도망칠 생각을 하다니.”그중 한 명이 맹금우의 뺨을 내리쳤고 낙청연은 내친김에 맹금우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사내들은 기절한 맹금우를 낙청연으로 여겼고 그녀를 침상 위로 옮겼다.낙청연은 벽에 귀를 딱 붙이고 안쪽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일이 확실히 진행되고 있자 낙청연은 그제야 유유히 몸을 돌려 그곳을 떠났다.밤이 깊어진 틈을 타 낙청연은 몰래 부엌으로 가서 먹을 것을 찾았지만 부엌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결국 낙청연은 부엌 구석 쪽에 자리를 잡고 잠을 청했다.공무를 마친 부진환은 서방 안에서 휴식을 취하려 했는데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렸고 낙월영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왕야! 주무시고 계십니까?”그녀의 황급한 목소리에 부진환은 얼른 문을 열었다.“왜 그러느냐?”낙월영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조금 전 눈물을 흘린 것처럼 그렁그렁한 눈으로 부진환을 바라보았다.“왕야, 제가 아까… 사내 여럿이 언니의 방 안으로 들어가는 걸 목격했습니다. 왕야, 제발 언니를 용서해주세요.”그녀의 말에 부진환의 안색이 돌변했다.사내 여럿이 낙청연의 방으로 들어갔다니? 그는 소유에게 분명 그 짓을 그만하라고 분부했었다.“왕야, 저한테 언니는 한 명뿐입니다. 언니가 무슨 짓을 저질렀든 언니가 제 언니인 건 변함없는 사실입니다.”낙월영은 울음을 터뜨리면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고 부진환은 미간을 좁히더니 얼른 그녀를 부축해서 일으켜 세웠다.“나와 함께 가보자꾸나.”“그…”낙월영은 고개를 숙이면서 민망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부진환의 눈빛이 살벌하게 빛났다. 낙청연이 대체 무슨 짓을 꾸민 것인지, 왜 지금에 와서도 포기하지 않는지 의문이었다. 게다가 낙월영이 그가 무슨 짓을 했다고 오해까지 하게 만들
맹금우와 하인들은 본디 낙청연의 방에 있지 말아야 했는데 하필 오늘 밤 이 모든 사람이 낙청연의 방에 모여들었고 정작 그녀는 방 안에 없었기에 부진환은 낙청연이 일을 꾸민 것으로 생각했다.낙청연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미간을 좁히면서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왕야, 지금 죄인을 문초하시는 겁니까?”그 모습에 낙월영이 얼른 그녀에게로 다가가서 그녀의 팔뚝을 잡았다. 그녀는 작지만 모두가 들을 수 있을 만한 목소리로 말했다.“언니, 왕야께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오늘 밤 무엇을 하셨는지 솔직하게 왕야께 말씀드리세요. 제가 있으니 왕야께서는 언니를 난처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낙월영의 행동을 보면 오늘 밤 일이 진짜 낙청연이 꾸민 일 같아 보였다.낙청연의 눈동자에 티 나지 않게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녀는 무언가 켕기는 게 있다는 듯이 시선을 아래로 내리뜨리면서 목소리를 낮췄다.“사실 오늘 내가 체면을 구기는 일을 하기는 했지…”그 말에 낙월영은 일부러 놀란 표정을 해 보이면서 목청을 높였다.“뭐라고요? 언니, 왜 이렇게 어리석습니까?”낙월영은 낙청연을 끌고 앞으로 나서면서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언니, 왕야께 잘못했다고 비세요. 제가 있으니 괜찮습니다.”낙월영은 낙청연의 표정을 살피더니 예전과 똑같이 멍청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이 기회를 틈타서 그녀가 자신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 다음 부진환이 화가 나서 그녀에게 곤장형을 내리기를 바랐다.부진환은 미간을 좁혔고 표정을 굳혔다.주위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모든 이의 이목이 낙청연에게로 집중되었고 모두 그녀가 자신의 죄를 털어놓기를 바랐다.맹금우는 맹 관사의 친딸로 섭정왕부의 일등 계집종이었다. 어찌 보면 왕야의 측근이기도 했기 때문에 낙청연이 맹금우를 해친 것이면 절대 용서받지 못할 것이었다.낙청연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자신의 납작해진 배를 어루만지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오늘 밤 부엌에 먹을 것을 훔치러 갔는데 찾아보니 쌀 한 톨 없더군요
낙청연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있는 하인들에게 다가가서 차분하고 느긋하게 물었다.“내가 시킨 일이라고 했느냐? 그럼 말해보거라. 내가 언제 어디서 너희들더러 여기로 오라고 했느냐? 언제 내 처소로 들어오라 어떻게 얘기했느냐? 게다가 이건 왕비의 처소다. 감히 이곳에 들어갈 생각을 했느냐? 내가 무슨 조건을 약속했길래 죽음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냐?”그녀의 연이은 질문에 무릎을 꿇고 있던 하인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들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맹금우를 바라보면서 그녀의 도움을 바랐다.부진환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조용히 그 모습들을 전부 지켜보고 있었고 낙청연을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홀로 이 많은 적을 상대해야 하는데 그녀는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조리 있게 얘기했다. 낙청연은 생각보다 똑똑한 사람이었다.“말해보거라. 내가 시킨 일이라 하지 않았느냐? 내가 너희들에게 어떻게 얘기했는지 다시 말하는 것도 못 하겠느냐?”낙청연은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맹금우는 마음이 급해졌다. 그들은 그 문제에 관해서 말을 맞춘 적이 없었기에 계획이 틀어지게 된 것이다. 맹금우는 무언가 기억난 듯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약입니다. 왕비 마마께서는 저에게 약을 쓰셨습니다. 왕야께서도 왕비 마마께 당한 적이 있으시지요. 왕비 마마께서 약을 쓴다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부진환의 눈빛이 차가워졌다.낙청연은 부진환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채고는 얼른 먼저 입을 열었다.“왕야, 제가 왕야께 이 약을 썼다면 혼인날 왕야께서 정신을 차릴 수 있었겠습니까? 게다가 제가 가져온 미정향은 그날 다 써버렸습니다. 전 이곳에 올 때 몸만 왔습니다. 제가 또 어디서 약을 구한다는 말입니까?”낙청연이 그날 썼던 약은 미정향이었고 그 약은 극락산보다 효과가 훨씬 떨어졌다. 맹금우는 정원 바닥에 내쳐지고도 정신을 아예 못 차렸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었으니 약효가 몹시 강하다는 건 아주 명백한 사실이었
부진환의 미간에 있던 불길한 기운이 더 강해졌고 눈가는 파란빛을 띠고 있었다. 낙청연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더니 참지 못하고 다시 한번 그에게 충고했다.“왕야, 자꾸 그렇게 한쪽 말만 믿으시면 정말 큰일 나실 것입니다. 요 며칠간은 외출하지 마세요. 정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부진환은 그녀의 말을 듣고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건지 경고하며 말했다.“저택 안에서 요사스러운 말로 사람들을 현혹하거나, 월영의 월자라도 꺼내는 날엔 네 혀를 잘라버릴 것이다.”낙청연은 코웃음을 쳤다. 그를 걱정하는 마음에 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부진환은 그녀가 낙월영을 모함하려 한다고 생각했다.사람의 호의를 이렇게나 받아들이지 못하니, 낙월영은 그가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부진환이 죽으면 수세를 써달라고 할 필요도 없으니 더 좋았다.낙청연은 더는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기에 곧바로 발걸음을 옮겨 자신의 처소로 향했다.낙월영은 승상부의 큰아씨였으니 부진환은 그녀를 죽일 수 없지만, 그녀가 편히 살지 못하게 할 수는 있었다. 낙월영은 부진환이 이번 고비를 넘길 수 있을지 없을지를 지켜볼 생각이었다. 그의 몸에는 용의 기운이 있으므로 어쩌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몰랐고, 만약 그가 위기를 이겨낸다면 낙청연은 그때 가서 다시 방도를 생각해 볼 셈이었다.처소로 돌아온 낙청연은 직접 이불을 새로 바꿨고 일을 마치니 이미 자시(子時:밤 11시부터 오전 1시까지의 사이)였다.그녀는 벽에 몸을 붙인 채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예전에 배운 적이 있었던 내공 심법(內功心法)으로 기운을 다스리고 호흡을 가다듬을 생각이었다. 그녀의 몸은 살이 많아 묵직했고 다시 무예를 익히려면 우선은 경맥을 뚫어야 했다. 그래서 낙청연은 매일 밤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내공 심법을 수련했다. 이렇게 하면 앞으로 무예를 익히는 데 도움이 될 터였다.평소였다면 그녀의 정력으로는 날이 밝을 때까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을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왜인지 모르게 두 시진 정도 지나니 스
거울에 비친 등 어멈은 기쁨에 가득 차서 말했다.“네, 네. 기억했습니다. 정말 어떻게 왕비 마마께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사옵니다. 오늘부터는 제가 왕비 마마를 모시겠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겠지만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등 어멈은 그 말과 함께 비녀를 손에 들고 낙청연의 머리에 꽂아주려 했다.바로 그 순간, 낙청연의 눈빛이 번뜩였고 그녀는 잽싸게 등 어멈의 손을 잡고서는 그녀와 마주 보고 섰다.등 어멈은 깜짝 놀라더니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물었다.“왕비 마마, 왜 그러십니까?”낙청연이 손에 힘을 주자 등 어멈은 고통스러운 얼굴로 손에 힘을 풀었고 비녀가 바닥에 떨어졌다.상대는 낙청연의 뜻을 알아채고는 살벌한 눈빛을 하며 재빨리 탁자 위에 있는 다른 비녀를 들어 낙청연을 찌르려 했다.등 어멈은 힘이 아주 셌고 낙청연은 버티지 못하고 그녀에게 밀쳐져 바닥에 쓰러졌다. 서늘한 빛이 감도는 비녀는 마치 예리한 칼날처럼 그녀의 눈동자 위에서 번쩍이고 있었다.등 어멈은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비녀로 그녀의 눈알을 찌르려 했다.액살을 구분해내는 것은 풍수사(風水師)가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었다. 낙청연은 등 어멈의 눈동자가 초록색으로 빛나는 걸 보고는 곧바로 상대가 무엇인지 알아챘다.“몹쓸 놈, 죽어라!”낙청연은 등 어멈의 손목을 잡고 있던 손에서 갑자기 힘을 풀었고, 그 바람에 뾰족한 비녀가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낙청연은 날렵한 몸짓으로 고개를 한쪽으로 피했고 동시에 등 어멈의 복부를 주먹으로 치고 그녀를 걷어찼다.그리고는 벌떡 몸을 일으켜 등 어멈의 몸 위로 올라타서는 손가락을 씹어서 피를 낸 뒤에 등 어멈의 이마에 부적을 적기 시작했다.부적이 완성되는 순간 등 어멈의 이마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등 어멈은 고통스러운 듯 몸을 비틀었다. 등 어멈은 얼굴은 사정없이 찡그리면서 끊임없이 비명을 내질렀다.정원에 있던 하인들은 그 처참한 비명에 등골이 오싹했다. 그들은 한데 모여서 수군덕거리기 시작했다.“왕비 마마께서 학대하시는 건 아
낙청연의 말을 들은 지초는 그 자리가 과분한 자리라 생각해 더듬거리며 말했다.“왕… 왕비 마마, 전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습니다.”“차를 따르고 물을 받아 올 줄은 알겠지. 머리를 빗는 것도 할 줄 알 테고. 그것만 알면 되니 여기 남거라.”낙청연은 곧바로 지초를 일으켜 세웠고 지초는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낙청연은 그녀의 앞에 그릇과 젓가락을 놓아주며 말했다.“양이 많아서 혼자 다 먹지 못하겠으니 너도 앉아서 먹거라.”지초는 깜짝 놀라더니 어쩔 줄 몰라 했지만, 감히 거절할 수도 없어서 얌전히 그릇을 들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그녀의 어리바리한 모습에 낙청연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스승님이 사매를 데리고 왔을 때 사매도 지금의 지초처럼 굴었었다.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니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지초가 떠나고 나서야 낙청연은 혼자 남아 천명 나침반을 꺼냈다. 그녀는 조심스레 나침반을 닦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침반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낙청연은 조금 놀랐다. 나침반을 들고 방문을 나서서 정원으로 향하려는데 갑자기 비가 거세게 쏟아졌다.그녀는 그제야 섭정왕부의 풍수를 보았다. 왕부의 뒤쪽에는 산이 있었는데 수도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구조였다. 왼쪽에 유수(流水)가 있으니 청룡의 기운이 있고 오른쪽에는 장도(長道)가 있어 백호의 기운이 있었다. 앞에는 연못이 있어 주작의 기운이 있고 뒤에는 군산(群山)이 있어 현무의 기운이 있었으니 그야말로 귀한 땅이었다. 그러니 이런 곳에 지어진 왕부 또한 길택(吉宅)임이 분명했다.그러나 저택 안에는 악기(惡氣)가 감춰져 있었다. 낙청연은 나침반을 들고 긴 회랑에서 갔다 왔다 했으나 악기의 근원을 찾지 못했다. 아마도 비 때문에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기에 비가 멈춘 뒤 다시 살펴볼 생각이었다.비가 줄기차게 쏟아졌으나 공기는 후덥지근했고 몸이 찌뿌둥했다.밤이 되자 왕부의 대문 쪽에 검은 기운이 피어올랐
“바닥을 확인해보거라. 나한테 밟혀서 죽은 고충이 있을 것이다. 이 고충은 제때 뽑아내지 않았으면 왕야는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그 말에 소유는 다소 놀랐다. 그래서 방 안으로 다시 들어서 바닥을 확인해봤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밟힌 벌레가 있었다. 소유는 손수건으로 벌레의 사체를 주워들었고 왕야의 상처를 봉합한 고 신의(顧神醫)에게 물었다.“고 신의, 이것이 고충이 맞습니까?”고 신의는 눈을 빛내더니 잠시 살펴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어쩐지 왕야의 상처에 묻은 독이 이상하다 했습니다. 생명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인제 보니 고충의 독이었군요. 아마도 벌레가 상처 안으로 파고 들어갔던 것 같습니다.”말을 마치고 고 신의는 감탄하는 어조로 말했다.“세상에나, 참으로 다행입니다. 이것을 제때 빼내지 않았더라면 왕야의 목숨이 위험할 뻔했습니다.”그 말에 소유와 침상 위에 있던 부진환은 모두 놀랐다.소유는 곤혹스러웠다. 낙청연이 왜 왕야를 도우려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녀를 오해한 건 사실이었다. 그는 호위에게 얼른 그녀를 풀어주라고 했다.“제가 마음이 급해서 실례를 범했습니다. 송구합니다, 왕비 마마.”소유는 부드러운 태도로 그녀를 향해 예를 갖췄다.낙청연은 방 안으로 들어가서 비를 피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방 안에 있던 낙월영이 돌연 입을 열었다.“언니께서 의술을 익혔었군요. 고충이라는 것도 아시고, 언니가 때마침 도와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소유는 그녀의 말에 의문 어린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손을 뻗어 방 안으로 들어오려는 낙청연을 가로막았다. 그는 냉기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방 안이 좁습니다. 왕비 마마께서는 밖에서 기다리시지요.”소유는 명백히 그녀를 경계하고 있었다. 방 안이 좁다니, 방은 넓었고 사람도 얼마 없었다. 대체 어딜 봐서 좁다는 건지.비가 거세게 내리니 그저 방 안으로 들어가서 비를 피하고 조금 쉬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다.낙청연은 머리가 어지러웠고 온몸이 젖어있었다. 처마 밑에 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사람들은 못마땅한 눈빛으로 문가에 서 있는 낙청연을 바라봤다,소유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다가갔고 다시 한번 낙청연을 막아서려 했는데 낙청연이 사나운 눈빛으로 그를 흘겨보고는 그를 밀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에 소유는 저도 모르게 두려워졌고 부진환은 불쾌한 어조로 말했다.“뭘 하려는 것이냐?”낙청연은 싸늘한 눈빛으로 낙월영을 바라보았고 항마저를 꺼내면서 낙월영에게 따져 물었다.“번개를 불러온다는 이 물건에 대해 한번 상세하게 얘기해보거라. 그래야 그 연유를 다들 알 수 있지 않겠느냐?”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낙월영은 낙청연의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더없이 진지했다.“이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소유도 제가 이 물건을 치우는 것을 보았는데 언니가 그것을 가져왔다고 해서 무엇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그건 내가 너에게 이 물건을 가져오라 시킨 것이 아니더냐? 그러니 내 질문에 대답을 못 하는 것이겠지.”낙청연은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낙월영은 당연히 인정하기가 싫었고 돌연 눈물을 글썽이며 그녀를 바라보더니 애처로운 목소리로 말했다.“언니께서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겠지요. 언니는 적녀(嫡女)시고 저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언니 말만 들었으니까요.”그 가련한 어조와 표정을 보면 다들 낙청연이 어렸을 때부터 그녀를 괴롭혔을 것이라 짐작할 터였다.그리고 그 모습은 진짜 부진환의 보호욕을 불러일으켰고 부진환은 낙청연을 호되게 꾸짖으며 말했다.“낙청연, 내 경고를 잊은 것이냐? 당장 나가거라.”그의 말에 낙청연은 울컥해서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바닥으로 내던졌다. 물건이 깨지자 항마저 안에 있던 엄지손가락만큼 굵은 날카로운 철침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 철침 위에는 번개무늬와 부적이 잔뜩 쓰여있었다.“보았습니까? 뭔가를 불러온 것은 이 장식품이 아니라 이 안에 숨겨져 있던 인뇌전의 진안저(陣眼杵)입니다.”사람들은 그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낙청연이 이것을 어떻게 안 것일까?낙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