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을 확인해보거라. 나한테 밟혀서 죽은 고충이 있을 것이다. 이 고충은 제때 뽑아내지 않았으면 왕야는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그 말에 소유는 다소 놀랐다. 그래서 방 안으로 다시 들어서 바닥을 확인해봤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밟힌 벌레가 있었다. 소유는 손수건으로 벌레의 사체를 주워들었고 왕야의 상처를 봉합한 고 신의(顧神醫)에게 물었다.“고 신의, 이것이 고충이 맞습니까?”고 신의는 눈을 빛내더니 잠시 살펴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어쩐지 왕야의 상처에 묻은 독이 이상하다 했습니다. 생명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인제 보니 고충의 독이었군요. 아마도 벌레가 상처 안으로 파고 들어갔던 것 같습니다.”말을 마치고 고 신의는 감탄하는 어조로 말했다.“세상에나, 참으로 다행입니다. 이것을 제때 빼내지 않았더라면 왕야의 목숨이 위험할 뻔했습니다.”그 말에 소유와 침상 위에 있던 부진환은 모두 놀랐다.소유는 곤혹스러웠다. 낙청연이 왜 왕야를 도우려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녀를 오해한 건 사실이었다. 그는 호위에게 얼른 그녀를 풀어주라고 했다.“제가 마음이 급해서 실례를 범했습니다. 송구합니다, 왕비 마마.”소유는 부드러운 태도로 그녀를 향해 예를 갖췄다.낙청연은 방 안으로 들어가서 비를 피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방 안에 있던 낙월영이 돌연 입을 열었다.“언니께서 의술을 익혔었군요. 고충이라는 것도 아시고, 언니가 때마침 도와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소유는 그녀의 말에 의문 어린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손을 뻗어 방 안으로 들어오려는 낙청연을 가로막았다. 그는 냉기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방 안이 좁습니다. 왕비 마마께서는 밖에서 기다리시지요.”소유는 명백히 그녀를 경계하고 있었다. 방 안이 좁다니, 방은 넓었고 사람도 얼마 없었다. 대체 어딜 봐서 좁다는 건지.비가 거세게 내리니 그저 방 안으로 들어가서 비를 피하고 조금 쉬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다.낙청연은 머리가 어지러웠고 온몸이 젖어있었다. 처마 밑에 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사람들은 못마땅한 눈빛으로 문가에 서 있는 낙청연을 바라봤다,소유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다가갔고 다시 한번 낙청연을 막아서려 했는데 낙청연이 사나운 눈빛으로 그를 흘겨보고는 그를 밀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에 소유는 저도 모르게 두려워졌고 부진환은 불쾌한 어조로 말했다.“뭘 하려는 것이냐?”낙청연은 싸늘한 눈빛으로 낙월영을 바라보았고 항마저를 꺼내면서 낙월영에게 따져 물었다.“번개를 불러온다는 이 물건에 대해 한번 상세하게 얘기해보거라. 그래야 그 연유를 다들 알 수 있지 않겠느냐?”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낙월영은 낙청연의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더없이 진지했다.“이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소유도 제가 이 물건을 치우는 것을 보았는데 언니가 그것을 가져왔다고 해서 무엇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그건 내가 너에게 이 물건을 가져오라 시킨 것이 아니더냐? 그러니 내 질문에 대답을 못 하는 것이겠지.”낙청연은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낙월영은 당연히 인정하기가 싫었고 돌연 눈물을 글썽이며 그녀를 바라보더니 애처로운 목소리로 말했다.“언니께서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겠지요. 언니는 적녀(嫡女)시고 저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언니 말만 들었으니까요.”그 가련한 어조와 표정을 보면 다들 낙청연이 어렸을 때부터 그녀를 괴롭혔을 것이라 짐작할 터였다.그리고 그 모습은 진짜 부진환의 보호욕을 불러일으켰고 부진환은 낙청연을 호되게 꾸짖으며 말했다.“낙청연, 내 경고를 잊은 것이냐? 당장 나가거라.”그의 말에 낙청연은 울컥해서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바닥으로 내던졌다. 물건이 깨지자 항마저 안에 있던 엄지손가락만큼 굵은 날카로운 철침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 철침 위에는 번개무늬와 부적이 잔뜩 쓰여있었다.“보았습니까? 뭔가를 불러온 것은 이 장식품이 아니라 이 안에 숨겨져 있던 인뇌전의 진안저(陣眼杵)입니다.”사람들은 그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낙청연이 이것을 어떻게 안 것일까?낙월
낙청연은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고 부진환은 성큼성큼 그녀에게로 다가가더니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네가 한 짓이냐?”낙청연은 차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비꼬며 말했다.“왕야, 이제야 제 말을 믿으시겠습니까?”자신이 한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었다.부진환은 울컥 화가 치밀어올라 호위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장검을 뽑아 낙청연의 목에 겨누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한기가 서려 있었다.“너를 죽일 것이다.”낙청연은 목을 빼 들면서 고고한 자태로 말했다.“왕야께서 절 죽이고 싶으시다면 죽이세요. 앞으로 며칠 동안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릴 것인데 섭정왕부 내에 있는 인뇌진을 처리하지 않으면 섭정왕부는 폐허가 되겠지요. 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죽을 것입니다.”“너!”부진환은 장검을 힘주어 잡고 있다가 갑자기 피를 토했고 소서는 얼른 부진환을 부축하면서 걱정스레 말했다.“왕야! 고 신의, 고 신의!”소서가 고 신의를 부르자 호위가 대답했다.“고 신의는 불길 속에서 도망쳐 나오고는 정신을 잃으셨습니다.”그때 낙청연이 앞으로 나섰고 부진환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었다.부진환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고 홧김에 낙청연을 밀어내려고 했다.“왕야, 살고 싶지 않으신가 봅니다?”낙청연은 예의 따위는 차리지 않고 그를 위협했고 부진환은 분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더는 움직이지 않고 그녀가 맥을 짚게 놔뒀다.고 신의가 쓰러졌으니 지금 그를 치료할 수 있는 건 그녀뿐이었다. 낙청연은 그 모습에 속으로 냉소를 흘렸다. 그는 분명 그녀의 실력을 믿고 있었고 고충도, 인뇌전 일도 전부 믿고 있었다.그러나 그가 그 일들을 믿는다고 해도 그는 여전히 낙월영을 감싸고 돌 것이다.낙청연은 또다시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몸의 원래 주인의 억울함이었고 원한이었다.그런데 억울하다고 뭘 어쩔 수도 없었다. 어차피 그의 마음속에는 낙청연이 없었기 때문이다.“왕야께서는 화병이 나셔서 피를 토하신 것입니다. 평정을 되찾고 마
그곳에서 나온 뒤 낙청연은 소서를 데리고 저택 안에 있는 인뇌진을 처리하러 갔다. 나침반은 꺼낼 수 없었으나 조상님께서 물려주신 귀한 보물이었기에 그녀는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알 수 있었다. 빗줄기는 많이 약해졌고 저택의 사람들은 벼락을 맞아 어지럽혀진 방을 깨끗하게 청소하느라 바빴다. 낙청연은 소서를 데리고 저택 이곳저곳을 다녔는데 그들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낙월영은 이미 한참 전에 정신을 차렸고 왕야와 낙청연이 서방에 있다는 걸 알고는 감히 그들을 방해하지는 못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방안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그녀는 낙청연이 서방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서야 급히 그곳으로 향했다.하지만 서방에 도착하니 소유가 그녀를 막아섰다.“둘째 아씨, 왕야께서는 부상이 심하셔서 지금 쉬고 계십니다.”낙월영은 당황했다. 왕야의 서방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낙청연이 들어갈 수 있는데 자신은 들어갈 수 없다니, 그녀는 왕야가 정말 자신이 낙월영의 공로를 가르쳤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둘째 아씨, 얼른 처소로 돌아가서 쉬시지요.”소유가 작은 목소리로 그녀를 일깨웠다.불현듯 정신이 든 낙월영은 몸을 돌려 떠나려 했는데 소유마저 그녀를 처소까지 모시지 않았다.낙월영은 굉장히 조바심이 나고 낙청연이 미웠다. 이 모든 게 다 낙청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인뇌진은 무슨, 그녀는 낙청연이 얼마나 멍청한지 잘 알고 있었고 그녀가 이런 것들을 알 리 없다고 생각했다.낙청연을 떠올릴수록 마음이 급해졌다. 더는 낙청연을 속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낙월영은 최대한 빨리 낙청연을 죽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낙청연은 온밤을 바삐 돌아치면서 소서와 함께 인뇌진을 해체했다. 그 물건들은 전부 소서가 챙겨갔고 낙청연은 다시 자신의 처소로 돌아왔다.인뇌진을 해체하기는 했으나 낙청연은 소매 안에 있는 나침반이 여전히 약하게 진동하고 있음을 느꼈다. 섭정왕부 안에는 여전히 강한 살기가 있었는데 무언가에 의해 억눌러져 있었다.저택
비가 그치고 날이 개인 후의 공기는 더없이 맑았다. 지초는 쉬러 갔고 낙청연은 나침반을 들고 나갔다.풍수지리가 좋은 곳에서 일월정화(日月精華)를 흡수하면 내공 심법을 수련하는 데 도움이 되어 재주를 하루라도 빨리 연마할 수 있기 때문이다!자정이 넘은 이 시각의 정원은 유달리 고요했다. 나침반을 들고 그녀는 둘러보더니 조용한 화원의 정자에서 멈췄다. 그리고 나침반을 몸 앞에 두었더니 나침반은 천천히 질서 있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달빛이 나침반을 비추니 은은한 하얀색 빛이 퍼지기 시작했다.묘초(卯初)에 황금 닭이 새벽을 깨우고 하늘이 어슴푸레 밝아오자 낙청연은 눈을 떴다.내공 심법을 수련한지 비록 이틀밖에 되지 않았지만, 효과는 현저했다. 주먹을 쥐었을 때 전보다 힘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아-”갑자기 처량한 비명이 고요하고 아름다운 아침을 깨웠다.맹금우가 죽었다.낙청연의 정원, 우물에서 기이하게 죽어 있었다.창백한 얼굴은 수면 위로 떠 있었고 몸은 우물 바닥에 서 있었다. 어떻게 사람이 죽어서도 서 있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정원은 사람들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었다. 모두 맹금우의 시체를 밖으로 끌어 올리려고 했으나 밑에서 무엇인가 그녀를 끌어당기는 듯이 아무리 애를 써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빠르게 부진환도 알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그녀의 정원에 모였다.소소는 몇 명 시위에게 시체를 끌어 올리라고 시켰다.맹금우의 죽음에 대해서 정원의 하인들까지 수군대기 시작했다.“어젯밤에 맹금우가 왕비님 정원에 들어가서 왕비님과 다투는 것을 목격했어.”“나도 맹금우의 미친 듯한 고함을 들었어.”“설마 왕비가 맹금우를……”듣고 있던 부진환의 안색은 안 좋았다. 그는 낙청연을 바라보더니 “어젯밤에 맹금우가 여기 왔었던 거냐?”“네! 하지만 왔다고 해서 제가 죽인 겁니까? 저는 오히려 그녀가 복수하려고 일부러 저의 정원에서 죽음을 택하여 저에게 모함한다고 생각합니다.” 낙청연은 차가운 어투로 의심에 대한 불쾌함을 드러냈다.“언니, 맹금우가
“여러분 똑똑히 보십시오, 이런 걸 증거라고 하는 겁니다!”“마손된 소매와 밧줄의 잔부스러기들 그리고 이끼 흔적까지! 어젯밤 밧줄을 끊은 사람은 바로 낙월영입니다!”“맹금우의 죽음은 저와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낙청연이 말은 마친 순간, 주위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낙월영은 겁에 질려 안색이 창백해졌고, 발악하듯 황급히 변명했다: “전 그런 적이 없습니다. 제가 아니란 말입니다!”“증거가 확실한데도 변명을 하다니! 우리 예쁜 동생은 지금 맹금우를 속여서 죽이고 이 언니한테 뒤집어씌우려는 것 아니냐!” 낙청연은 낙월영의 손을 붙잡고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한 구절 한 구절 주옥같이 말했다: “우리가 쌓아온 자매의 정은? 지금 이건 대체 무슨 뜻이란 말이냐?”한 번이고 두 번이고 받아줬더니 이젠 정말 기어오르려고 하는 건가!낙청연은 당할지 몰라도 낙요는 절대 당하지 않는다!하지만 곧바로 힘센 팔이 낙월영을 힘껏 끌어당기더니 뺨을 후려갈기는 소리와 함께 성난 부진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낙청연!”순간, 부진환의 반지가 낙청연의 얼굴을 스치면서 손자국과 함께 핏자국을 남겼다.피비린내가 번지고 낙청연은 뺨을 감쌌다. 왠지 모르겠으나 가슴이 칼로 후비는 듯이 아파왔다. 마음이 아픈 것이 아니라 진짜로 심장이 아팠다.사랑하는 이에게 뺨을 맞았으니 가슴이 아파 눈물이 차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이 몸의 주인은 아직도 이 남자를 지독하게 사랑하고 있었다.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애써 감추고 뺨에 묻은 핏자국을 닦았다. 그리고는 붉은 눈시울로 어둡다 못해 당장이라도 사람을 죽일 것 같은 안색의 부진환을 쳐다보았다.반면, 이를 지켜보던 낙월영은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녀는 부진환의 어깨에 살포시 기대어 창백한 얼굴로 낙청연을 위해 사정하는 척했다: “ 왕야, 언니도 잠깐 실수한 겁니다. 화내지 마십시오.”말을 하면서 그녀는 건방진 눈빛으로 낙청연을 힐끔 쳐다보았다. 낙월영의 눈빛은 도발과 승리자의 기쁨으로 가득했다.이를 지켜보던 낙청연은
정원에 혼자 남게 된 낙청연은 나침반을 꺼내서 우물가에 다가갔다. 그러자 사악한 기운은 구멍이 뚫린 듯이 마구마구 쏟아져 나왔다.의심에 가득 찬 그녀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밧줄을 기둥에 묶고 밧줄을 타면서 아예 우물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그녀는 우물 안을 확인하고 싶었다.우물은 생각한 것보다 깊지 않았고 숨을 참고 우물 밑까지 헤엄쳐가 보니 과연 팔괘판이 우물 밑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팔괘판은 너무 무거워서 옮길 수가 없었다. 사악한 기운은 바로 이 팔괘판에서 뿜어져 나왔던 것이다. 팔괘판의 모서리마다 밧줄이 묶여 있었는데, 아마도 주위의 시체들이 제어하고 있었으나 시체를 옮기면서 팔괘판의 방향이 바뀌어 사악한 기운이 방출된 것 같다.지금 그녀는 이것은 여국의 취살대진(聚煞大陣)이라는 것을 확신했다.팔괘판은 봉인만 잘 되어 있으면 살기가 밖으로 흐르지 않기 때문에 보통은 느낄 수 없다. 취살대진으로 사악한 기운이 충분히 끌어모은 뒤 봉인을 다시 열면 사악한 기운은 대진 내의 모든 것을 덮어씌운다. 장기적으로 취살대진 안에서 생활하면 반년을 넘지 못하고 급사하게 된다.이런 대진을 치려면 쉽지 않다. 대진을 친 사람은 여국의 사람일 뿐만 아니라 도행도 깊은 사람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취살대진을 칠 수 없기 때문이다. 낙월영이 사람을 죽여 우물에 빠트리는 바람에 시위들이 시체를 건져내면서 봉인된 입구를 파괴하지 않았다면 그녀도 당분간은 취살대진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천궐국에는 여국 사람이 오직 그녀뿐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아하니 섭정왕부 내에도 고수들이 숨어 있는 것 같다.그녀는 나침반으로 팔괘판의 사악한 기운을 잠시 봉인했다. 비록 대제사장인 그녀에게 사악한 기운은 위협이 되지 않지만 지금은 낙청연의 몸이기 때문이다. 이미 중독 증상으로 인해서 비만증이 생겼는데 또다시 사악한 기운까지 침범한다면 회복하기 더욱더 어려워진다.“왕비! 왕비!” 갑자기 위에서 다급한 부름 소리가 들렸다. 당황한 소리는 아마도 그녀가 우물
낙청연의 눈빛은 서늘해지더니 일부러 장미를 힘껏 밀었다. “그래, 내 엉덩이 크다. 이 엉덩이로 널 깔아뭉갤 수도 있는데 어쩌면 좋을까?”모퉁이로 밀려난 장미는 낙청연과 낙월영의 가운데서 마치 틈새에 끼운 것 같았다. 낙청연은 마차 밖에 있는 지초를 향해 오라고 손짓하면서 빈자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지초, 어서 올라오거라.”지초는 활짝 웃더니 마차에 타면서 말했다: “왕비 마마는 참으로 좋은 사람입니다.”틈새에 끼어서 온몸이 뒤틀린 장미는 원망하면서 말했다: “왕비, 마차는 작은데 왜 하필 계집종까지 데리고 가시나요! 둘째 아씨가 끼었잖습니까!”낙월영도 사실 너무 협소하다고 생각했다. 좁아서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너희들이 좁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냐? 좁으면 자기 발로 내려가든지.” 낙청연은 콧방귀를 끼더니 자신의 체형을 이용해 더욱더 세게 안으로 밀어붙였다.허약한 체질이긴 하나 무게는 충족했다. 거기 앉아만 있어도 집채만 했기 때문에 장미가 아무리 힘을 써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참다못한 낙월영은 다른 계집종 두 명을 마차에서 쫓아냈다. 마침내 마차는 널찍해졌다.낙월영은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의 안색은 줄곧 어두웠다.이번 친정 나들이하는 사람은 낙청연이었다. 하지만 낙월영이 혼인하는 날에 누군가에게 맞아서 기절하고 바꿔치기 당한 뒤 섭정왕부에서 여태껏 요양하고 있었다. 하여 오늘에야 낙청연과 승상부로 가는 것이었다.하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이번 친정 나들이하는 사람은 낙월영인 줄 알고 있었다.지금 이 시각 승상부의 입구에는 수많은 계집종이 모여있었다. 마차를 보더니 흥분해서 소리쳤다: “왔어요, 왔어요, 둘째 아씨가 왔어요!”낙청연이 먼저 마차에서 내리고 뒷이어 낙월영이 내렸다.계집종들이 달려오더니 낙월영을 겹겹이 에워싼다. 옆에 있는 낙청연에게는 관심도 없었고 심지어 눈길 조차 주지 않았다. 마치 공기처럼 무시했다.보고 있던 지초는 화를 내며 말했다. “다들 너무 하십니다!”낙청연은 지초를 끌어당겼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