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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부진환의 미간에 있던 불길한 기운이 더 강해졌고 눈가는 파란빛을 띠고 있었다. 낙청연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더니 참지 못하고 다시 한번 그에게 충고했다.

“왕야, 자꾸 그렇게 한쪽 말만 믿으시면 정말 큰일 나실 것입니다. 요 며칠간은 외출하지 마세요. 정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진환은 그녀의 말을 듣고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건지 경고하며 말했다.

“저택 안에서 요사스러운 말로 사람들을 현혹하거나, 월영의 월자라도 꺼내는 날엔 네 혀를 잘라버릴 것이다.”

낙청연은 코웃음을 쳤다. 그를 걱정하는 마음에 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부진환은 그녀가 낙월영을 모함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호의를 이렇게나 받아들이지 못하니, 낙월영은 그가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부진환이 죽으면 수세를 써달라고 할 필요도 없으니 더 좋았다.

낙청연은 더는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기에 곧바로 발걸음을 옮겨 자신의 처소로 향했다.

낙월영은 승상부의 큰아씨였으니 부진환은 그녀를 죽일 수 없지만, 그녀가 편히 살지 못하게 할 수는 있었다.

낙월영은 부진환이 이번 고비를 넘길 수 있을지 없을지를 지켜볼 생각이었다. 그의 몸에는 용의 기운이 있으므로 어쩌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몰랐고, 만약 그가 위기를 이겨낸다면 낙청연은 그때 가서 다시 방도를 생각해 볼 셈이었다.

처소로 돌아온 낙청연은 직접 이불을 새로 바꿨고 일을 마치니 이미 자시(子時:밤 11시부터 오전 1시까지의 사이)였다.

그녀는 벽에 몸을 붙인 채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예전에 배운 적이 있었던 내공 심법(內功心法)으로 기운을 다스리고 호흡을 가다듬을 생각이었다. 그녀의 몸은 살이 많아 묵직했고 다시 무예를 익히려면 우선은 경맥을 뚫어야 했다. 그래서 낙청연은 매일 밤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내공 심법을 수련했다. 이렇게 하면 앞으로 무예를 익히는 데 도움이 될 터였다.

평소였다면 그녀의 정력으로는 날이 밝을 때까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을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왜인지 모르게 두 시진 정도 지나니 스르르 잠이 들어 침대 위로 쓰러졌다.

그녀는 꿈을 꿨는데 꿈속에서 흐릿한 얼굴을 가진 이가 매섭게 그녀를 질책했다.

“천명 나침반(天命羅盤)을 내놓아라!”

“싫어!”

그녀는 죽을힘을 다해 가슴팍에 숨긴 물건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

흐릿했던 얼굴은 어느새 악귀의 모습으로 변했고 그것은 날카로운 발톱으로 그녀의 뱃가죽을 찢었다.

“널 산채로 찢어발기더라도 천명 나침반을 손에 넣을 것이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온몸을 죄어오는 두려움에 그녀는 밤새 악몽 속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내 것이다. 나침반은 내 것이야. 내 것이라고!”

낙청연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잠꼬대했다. 그녀는 두 손으로 가슴께를 붙잡고 있었는데 힘을 얼마나 준 건지 손이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다음 날 아침, 날렵한 몸짓을 가진 자가 서방에 왔다.

“왕야.”

소서는 성큼성큼 걸어가서 더러워진 찐빵과 약 분말을 건넸다.

“이건 왕비 마마의 처소에서 발견한 찐빵입니다. 그리고 맹금우의 방 안에서 쓰다 남은 약을 발견했는데 극락산이었습니다. 이 약은 약효가 아주 강한 약입니다. 사람에게 환각을 보여주는데 사람과 짐승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이고 약효는 대략 네 시진 정도 지속됩니다.”

그 말에 부진환의 눈빛이 살벌해졌다.

“이렇게 고약한 약을 맹금우가 어찌 구한 것이냐? 부운주(傅雲州)와 관련이 있느냐?”

소서는 고개를 저었다.

“혼인날 왕비 마마께서 사용하신 미정향은 오황자가 제공한 것이었습니다. 오황자의 처소에 가서 조사해보았지만 극락산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 추측이지만, 만약 오황자에게 극락산이 있었다면 왕비 마마께 미정향을 주지도 않았겠지요.”

그 말에 부진환의 고민이 깊어졌다. 그는 가라앉은 눈빛으로 낮게 말했다.

“부운주에게 극락산을 가져가서 한 번 시험해 보거라. 다섯째는 절대 보이는 것처럼 단순한 자가 아니다. 이미 내 옆에 첩자도 심어두지 않았더냐.”

소서는 명령을 받고 떠나려 했는데 갑자기 무언가 떠올라 얘기했다.

“조금 전 왕비 마마의 처소에 가봤었는데 왕비 마마께서 악몽을 꾸시는 듯했습니다. 계속 나침반 얘기를 하더군요.”

그 말에 부진환은 코웃음을 쳤다.

“잘못한 일이 하도 마느니 악몽을 꾸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 나침반에 대해서는 잘 알아보거라. 어쩌면 그 둘의 사랑의 증표일지도 모르니.”

낙청연이 그저 잠시 귀신에게 홀려서 낙월영 대신에 혼인을 치른 것이면 괜찮았지만 그는 낙청연과 부운주가 밀회하는 모습을 몇 차례나 목격했었다. 자신에게 썼던 미정향마저 부운주가 준 것이니, 낙청연은 자신을 사랑하는 게 아니었고 그저 잠복해온 첩자에 불과하다고 부진환은 생각했다.

심지어 그녀가 했던 변명들마저도 전혀 믿음직스럽지 않았으니 자신을 속일 수는 없었다.

부진환은 다섯째 아우가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지 궁금했다. 자신에게 첩자까지 보냈으니 부진환은 부운주가 대체 뭘 하려는 건지 지켜볼 심산이었다.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낙청연은 여전히 침대 위에 누운 채로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저택의 계집종은 그 모습을 봤음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물을 받은 대야를 방 안에 두고서는 냉담한 얼굴로 나갔다.

점심시간이 되고 등 어멈이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총총걸음으로 급히 낙청연의 방문 앞에 섰다. 한참 동안 문을 두드렸는데도 반응이 없어서 그대로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등 어멈은 다소 기뻐 보였는데 침상 위에 누워있는 낙청연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왕비 마마. 왕비 마마! 얼른 일어나보시옵소서!”

등 어멈은 겁에 질린 얼굴로 낙청연을 마구 흔들었고 낙청연은 잠에서 깨어났다.

번쩍 눈을 뜬 낙청연은 마치 죽을 뻔했다가 살아 돌아온 사람처럼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낙청연은 얼굴이 창백했고 온몸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으며 머리카락이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다.

“에구머니나, 왕비 마마. 어떻게 된 일입니까?”

등 어멈은 부랴부랴 손수건을 꺼내어 그녀의 이마를 가득 적신 땀을 닦아줬다.

낙청연은 고개를 내저었다. 몸을 일으켜 앉으려고 하는데 아직도 가슴팍을 꽉 붙잡고 있는 걸 그제야 발견했다. 손가락은 저렸고 손을 펴려고 하니 시큰거렸다. 낙청연은 결국 등 어멈의 부축을 받으며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 순간 그녀의 품 안에서 무언가 굴러떨어졌다. 그녀의 품에서 떨어진 건 다름 아닌 그녀가 꿈속에서 안간힘을 다해 지켰던 천명 나침반이었다. 낙청연은 한참 동안 넋을 놓고 있더니 진짜 그것을 만지게 됐을 때는 더없이 기뻐하면서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그것을 손에 들었다.

천명 나침반. 진짜 천명 나침반이었다.

꿈에서 본 물건이 진짜 그녀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조상님께서 대대로 물려주신 보물이었고 생전에 그것을 빼앗으려 했던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지금쯤 이미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그녀에게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아마도 조상님들의 가호 덕분일지도 몰랐다.

“왕비 마마?”

등 어멈은 그녀의 모습에 몹시 놀랐다.

낙청연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서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나침반을 거두어들였다. 그러고는 선반 쪽으로 가서 세수하며 물었다.

“언제 돌아온 것이냐? 네 어미의 병은 어떻게 됐느냐?”

등 어멈은 잔뜩 들뜬 얼굴로 말했다.

“왕비 마마께서 말씀하신 대로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약을 드시고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의원을 모셨는데 의원께서도 다 나았다고 하셨지요. 제가 귀인을 만났다고 하시더군요.”

등 어멈은 신난 기색을 감출 수가 없었고 열정적인 태도로 낙청연을 화장대 앞까지 모셨다.

“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왕비 마마!”

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았으면 됐다. 그리고 네 어미에게 항상 조심하라고 일러두거라.”

낙청연은 그 말을 하면서 무심결에 고개를 들었는데 거울을 통해 등 어멈의 얼굴 반쪽이 청색의 비늘로 가득 뒤덮인 게 보였다.

낙청연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Comments (1)
goodnovel comment avatar
나나나나
이름 잘못쓰심! 낙월영이 아니라 낙청연이 큰 아씨 이고 낙월영이 지켜보는게 아니라 낙청연 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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