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도 그 사내들은 굉장히 흥분했다.오늘 온 사람들은 구성이 복잡했고 겸손하고 온화한 자가 있는가 하면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하는 사람도 있었다.하지만 허 호군 같은 사람은 없었다.허 호군의 앞에 서자 그는 술잔을 들고 황급히 몸을 일으키더니 낙청연의 손목을 덥석 잡고 말했다.“부설 낭자, 나랑 교배주(交杯酒)를 마셔주시오.”“이거 놓으세요!”낙청연은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으나 허 호군은 그녀의 손목을 꽉 잡고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부설 낭자, 여기까지 왔는데 교배주 한 번 마신다고 큰일 나는 건 아니지 않소?”허 호군은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고 낙청연은 더는 참지 못하고 술잔을 깨부순 뒤 소매 안에서 비수를 꺼내 들어 그를 향해 휘둘렀다.허 호군은 반응이 아주 빨랐으나 날카로운 비수는 그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고 결국 피가 흘러내렸다.허 호군은 안색이 창백해졌고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누군가 그를 부축하자 그는 불같이 화를 냈다.“감히 사람을 해치려 하다니? 여봐라, 당장 이 자를 붙잡거라!”낙청연은 비수를 손에 꼭 쥔 채로 화를 억눌렀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높은 곳에 앉아있는 섭정왕을 보며 말했다.“왕야,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선이라는 게 있습니다. 토끼도 급하면 사람을 물어뜯는데 왕야께서 계속 저를 핍박할 생각이시라면 차라리 같이 죽는 걸 택하겠습니다!”그녀의 신랄한 말에서 분노와 결연함이 느껴졌다.낙청연은 정말 동귀어진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부진환은 의자 손잡이를 꽉 쥐었고 그의 평온하고도 차가운 눈빛은 그 깊이가 너무 깊어 도저히 속내를 알 수 없었다.부진환은 류만을 보며 말했다.“류 대인, 이쯤 하시게나. 기분 상하는 일이 생긴다면 다들 난처해질 텐데.”차가운 말에서 경고의 의미가 느껴졌다.류만은 어쩔 수 없이 화를 억누르며 몸을 일으키며 그들을 위로했다.“부설 낭자는 평범한 청루 여인들과는 다르지. 여인들과 함께 즐기고 싶은 모양인데, 안 그래도 다른 가무를 준비했소. 부설 낭자도 힘든 것 같으니 우선 방
낙청연은 살짝 놀랐다.예전에 행우에게서 류 대인의 부인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류 대인의 부인은 류 대인을 아주 엄하게 관리해서 평소에 대놓고 청루에 가지는 못하고 여인들을 자신의 사저(私宅)로 부른다고 했다.오늘 류 대인은 저택에서 큰 연회를 베풀고 있었고 또 특별히 부설을 불러 춤을 추게 했으니 류 대인의 부인은 그녀를 찾으러 온 것이 분명했다.바로 다음 순간, 누군가 방문을 박차고 들어왔다.류 부인(劉夫人)은 기세등등하게 방에 쳐들어오더니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네가 그 부설루의 여우냐?”류 부인은 광대가 높고 얼굴에 살이 없으며 두 눈은 총명하고 날카로우면서도 무정함이 있어서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류 부인은 낙청연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덥석 잡더니 그녀의 얼굴을 찢기라도 할 듯이 날렵한 동작으로 낙청연이 쓴 가면을 잡았다.“천한 것! 우리 류씨 저택이 어떤 곳인 줄 알고 이곳에 온 것이냐?”낙청연은 류 부인의 손목을 잡고 힘을 주었고 류 부인은 아파서 앓는 소리를 냈다.“그만하거라! 천한 것, 이 손 놓거라!”류 부인은 화를 내며 소리를 박박 질렀다.그러나 낙청연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류 부인, 이 류씨 저택이 무슨 풍수 좋은 곳이라도 되는 줄 아십니까? 제가 왜 이곳에 제 발로 찾아오겠습니까? 섭정왕이 아니었다면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전 류 대인께 아무런 흥미도 없습니다. 사람도 돈도 전혀 관심이 없다고요. 류 부인, 지금 절 이 저택에서 내쫓으신다면 오히려 제가 류 부인께 감사해야 할 판입니다.”낙청연은 지금 당장 이 저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녀는 조금 전처럼 모욕적인 상황을 더는 견딜 수 없었다.이곳에서 내쫓긴다면 부진환과의 거래도 성사된 것이니 앞으로 그녀가 뭘 하든 부진환은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류 부인은 그 말에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게 정말이냐?”“진짜입니다.”“알겠다. 내가 널 보내주마.”류 부인은 차가운 목소리
“알겠습니다.”류 부인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낙청연을 힐긋 쳐다본 뒤 몸을 돌려 나갔다.류 부인은 떠나면서 방문을 닫았고 낙청연의 눈에서 마지막 남은 한 줄기 빛이 그렇게 사라졌다. 낙청연은 온통 압박감에 둘러싸였다.류 대인은 천천히 그녀에게로 다가갔고 커다란 얼굴이 허리를 숙이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음흉하고 간사한 미소에 머리털이 곤두설 지경이었다.순간 공포가 그녀를 덮쳤다.“그렇게 고고한 척하더니 결국엔 내 손에 들어왔구나. 이 수도에 내가 얻을 수 없는 여인은 없다.”류만은 웃으면서 손을 뻗어 그녀가 쓴 가면을 어루만졌고 낙청연은 힘겹게 몸을 뒤로 물리며 그의 손길을 피하려 했다.그 모습에 류만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크게 웃었다.“걱정하지 말거라. 네 가면을 벗길 일은 없다. 난 가면이 아주 마음에 들거든.”낙청연은 힘겹게 몸을 움직이며 일어나려 했으나 의식이 자꾸 흐려졌다. 그녀는 뒷머리가 차가운 것이 느껴졌다. 아마 계속 피가 흘러서 그런 듯했다.류만은 몸을 일으키더니 촛불 하나를 밝혔다. 그는 다시 낙청연의 앞에 쭈그려 앉더니 촛불을 흔들거리면서 낙청연의 몸에 촛농을 떨구었다.뜨거운 촛농에 낙청연은 참지 못하고 몸을 파르르 떨었고 죽어라 이를 악물었다.류만은 변태처럼 웃었다. 그는 그녀의 반응에 매우 흡족한 듯했다. 그러나 낙청연이 아파하는 소리를 듣지 못해 안색을 흐리며 말했다.“소리를 내거라! 왜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냐!”그는 다시 한번 낙청연의 몸에 촛농을 떨구었고 낙청연은 아파서 몸이 떨렸다. 그녀는 이를 악문 채로 그를 노려보았고 류만은 곧장 그녀의 손목에 묶인 밧줄을 풀었다.극심한 고통에 낙청연은 눈앞이 어질했다. 그러나 그녀는 정신만은 또렷했기에 손가락으로 옷소매 안에 있는 부적을 꺼내려 했다.그런데 류만이 그녀의 손을 덥석 잡더니 그녀의 손등 위로 촛농을 떨구었다.“소리 내라고! 벙어리냐!”류만은 불같이 화를 냈다.대량의 촛농이 손등에 떨어지자 도저히 통증을 참을 수 없었다.낙청연은 돌연
누군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어두운 방 안에 다시 한번 환한 빛이 들어왔고 류만은 깜짝 놀랐다.“누구냐!”낙청연은 허약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쏟아져 들어오는 빛 사이로 누군가 성큼성큼 그곳으로 걸어왔다.부진환은 그 장면을 보자 이마에 핏줄이 불거지고 눈동자에 살기가 일렁였다. 그는 힘껏 류만을 걷어찼다.바닥에 남은 핏자국과 찢긴 옷, 손등에 붉게 남은 흔적에 부진환은 울컥 화가 치밀어올라 당장이라도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그는 곧바로 겉옷을 벗어 그녀의 몸에 둘렀고 그녀를 안고서 급히 방을 나섰다.낙청연은 허약한 얼굴로 그의 가슴팍에 기대었다. 그녀는 흐릿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힘없는 목소리로 더없이 날카로운 말을 했다.“절 왜 구하십니까? 이런 걸 원하셨던 게 아닙니까?”그를 탓하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그녀의 차가운 목소리에는 그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지만 그 말은 수많은 칼날이 되어 부진환의 심장에 꽂혔다.그의 미간에는 난폭한 기운이 가득했고 눈은 벌겋게 돼서 살기가 느껴졌다.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그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류씨 저택의 모든 사람을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었다.부진환이 문을 박차고 나가자 낙청연은 마당에 호위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그 장면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굴욕감이 치솟아 오르자 낙청연은 부진환의 가슴에 머리를 묻었다. 그녀는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그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그 작은 행동에 부진환은 더욱더 마음이 아팠다.“다들 뭘 넋 놓고 있는 것이냐? 당장 류씨 저택의 모든 사람을 전부 붙잡아 들이거라. 하나라도 빠진다면 머리를 벨 것이다!”부진환이 호통을 치자 그곳에 있던 호위들은 곧바로 흩어졌다.곧이어 저택에서 계집종들과 머슴들이 비명을 지르며 황급히 도망가는 소리가 들렸다.류씨 저택을 나오는 순간, 위험이 완전히 사라지고 낙청연은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정신을 잃는 마지막 순간, 그녀는 호위들이
송천초는 안타까운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두 사람은 정말 악연이네요.”—부진환은 빠른 걸음으로 마당을 나섰고 소유가 밖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왕야.”“류씨 저택으로 간다.”부진환은 대문을 나선 뒤 말에 올라타 류씨 저택으로 향했다.류씨 집안의 연회에 참석했던 빈객들은 잠시 전부 옥에 갇혔다. 그들 모두 류만과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었기에 류만이 구제금에 쓰일 은을 몰래 숨긴 일과 연관이 있는지 조사해야 했다.하지만 한 명이 저택에 남아있었다.그 사람은 다름 아닌 허 호군이었다.“날 왜 남기는 것이오! 이 일은 나랑 아무 상관이 없소! 믿지 못하겠다면 조사해 보시오! 난 그저 손님으로 왔을 뿐, 류만이 한 일에 대해서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소!”허 호군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자신을 감시하는 호위에게 빌었다.바로 그때, 부진환이 온몸에서 살기를 내뿜으며 서서히 걸어왔고 그 위엄에 차마 고개를 들어 직시할 수 없었다.허 호군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화려한 옷과 검은색 신발이 자신의 앞에 도착한 것을 보았다.곧이어 싸늘한 목소리가 그의 머리 위에서 울려 퍼졌다.“어느 손으로 그녀를 만졌느냐?”허 호군은 몸을 떨면서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무… 무슨 말씀이십니까?”부진환은 호위의 허리춤에서 천천히 장검을 빼 들었다. 위엄있는 그의 얼굴에는 그 어떤 표정도 없었고 다만 끝없는 한기가 감돌 뿐이었다. 허 호군은 등허리가 서늘했다.“이 손이겠구나.”날카로운 칼날이 허 호군의 오른손에 닿았다.“아니, 아닙니다…”겁에 질린 허 호군은 안색이 창백해졌고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그러나 그가 설명하기도 전에 날카로운 칼날이 내려왔다.“아—”하늘을 찢을 듯한 처참한 비명과 함께 허 호군은 피가 줄줄 흐르는 손목을 쥐고 바닥을 나뒹굴었다.비명이 끊이질 않았다.마당에 있던 모든 계집종과 하인들은 그 모습에 덜덜 떨었고 류 부인 또한 몸을 떨고 있었다.“어라? 오른손이 아니었느냐?”부진환의 차가운 목
그 말에 마당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깜짝 놀랐다.류만도 놀란 얼굴로 말했다.“역시 섭정왕답군. 자기 여인을 이용해 목적을 달성하려 하다니, 참 대단하군그래!”뒷짐을 지고 있던 부진환은 주먹을 움켜쥐었다.겉으로는 태연한 척, 전혀 놀라지 않은 척했다.그날, 류씨 저택의 비명에 거리를 거닐던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었다.섭정왕이 구제금을 횡령한 사건을 해결했다는 소식이 수도 전체에 퍼졌고, 섭정왕이 한 무희를 위해 류씨 저택에서 한 일 또한 수도에 파다하게 퍼졌다.그리고 섭정왕이 그 무희를 자기 여인이라 칭했다는 소문 또한 퍼지게 됐다.—낙청연은 침상 위에 사흘 동안 누워있었다. 가끔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의식이 불분명해 완전히 깨어나진 못했다.그녀가 아는 것이라고는 누군가 밤새 그녀의 침상 옆에서 그녀를 지키면서 약을 먹였다는 것뿐이었다.정신을 차려보니 역시나,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송천초였다.“깨어났군요!”송천초는 그녀가 깨어난 걸 보고는 흥분해 말했다.송천초는 얼른 그녀를 부축해 침상에 기대게 했고 혹시나 뒷머리의 상처를 건드리게 될까 조심스레 베개를 그녀의 등 뒤에 놓아줬다. “이번에는 심하게 다쳤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병이 남게는 하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송천초는 약 그릇을 들고 오며 말했다.“수고했다.”낙청연은 말을 마친 뒤 약을 마셨다.“저는 겨우 처방을 내린 것이라 힘든 일은 없었습니다. 힘든 사람은…”송천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가에 누군가 와 있었다.동시에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내가 때마침 왔나 보군. 부설 낭자가 깨어나다니.”그 사람은 다름 아닌 낙월영이었다.“그렇지 않소? 송 낭자. 먼저 나가 보시오. 부설 낭자랑 할 얘기가 있소.”낙월영은 자신이 왕부의 안주인인 것처럼 거들먹거리며 송천초에게 분부했다.송천초는 불쾌한 얼굴로 주저하며 낙청연을 바라보았고 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송천초가 당부했다.“부설 낭자는 이제 막 깨어났으니 충분히 휴식해야 합니다.”말을 마친 뒤 그녀는
문밖에 선 부진환 역시 그 대화를 듣고서는 참지 못하고 미간을 구겼다.그가 방 안에 들어서자 낙월영은 살짝 놀라며 얼른 몸을 일으켰다.“왕야.”부진환은 덤덤한 얼굴로 침상 위에 누운 사람을 바라보더니 낙월영에게 말했다.“부설 낭자는 상처를 입었으니 휴식하게 놔두거라.”“알겠습니다. 이번에 심하게 다쳤으니 제가 직접 부엌으로 가서 닭국을 끓이겠습니다.”낙월영은 어질면서도 너그러운 모습을 꾸며내며 말했지만 눈빛에서 보이는 억울함은 감추지 못했고 그 모습은 굉장히 안타까웠다.낙월영이 방에서 나가자 부진환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그리고 낙청연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녀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냉소를 흘렸다.“뭘 그렇게 보십니까? 둘째 아씨가 얼마나 억울할지 생각하시는 겁니까? 속으로는 울고 싶은데 너그러운 척, 착한 척하면서 자신의 연적을 위해 닭국을 끓이러 가다니. 왕야, 얼른 저를 내쫓으시고 왕비의 자리를 낙월영에게 줘서 보상하세요.”낙청연은 조금의 감정도 담지 않고 더없이 평온한 어조로 얘기했다.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비아냥대는 그녀의 말에 부진환은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했다.부진환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지금 내 탓을 하는 것이냐?”낙청연은 가볍게 웃었다.“제가 어찌 감히 왕야를 탓하겠습니까? 제가 죄인인걸요. 그러니 이 모든 건 제가 자초한 일이지요. 이제는 자유마저 제게 과분한 일이 되었습니다.”그녀의 비아냥대는 말에는 가시가 박혀있었고 부진환은 가슴이 저렸다.낙청연은 분명 그를 탓하고 있었다. 그녀를 류씨 저택으로 보내 춤을 추게 하고 그렇게 많은 굴욕적인 일을 겪게 한 것을 말이다.그는 마음이 복잡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정작 아무 얘기도 할 수 없었다.“상처가 나으면 언제든 떠나거라. 네 진짜 신분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을 것이다. 네가 뭘 하든 앞으로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 휴서는 줄 수 없지만 네가 원하는 자유는 줄 수 있다.”낙청연은 냉소를 흘렸다
“전부 잡혀갔습니다. 범 공자도 류씨 가문의 사람으로 인정되어 잡혀갔고 저택의 모든 값어치 있는 물건들이 몰수당했습니다. 범 공자와 류 부인이 몰래 사통하면서 쓴 서신과 증표 또한 몰수당했습니다. 지금 류씨 저택은 텅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습니다!”그 말에 금고는 화를 내며 탁자를 내리쳤다.“섭정왕, 정말 지독하구나! 얼마 되지도 않는 재물을 전부 몰수해 가다니!”금고의 어조가 무거워졌다.“범 공자가 류 부인에게 접근하게 만들어 류 부인의 약점을 캐내고 그것으로 류 부인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생각이었는데, 부진환 때문에 모든 것이 허사가 되었구나! 그전에 계획했던 모든 것들이 전부 허사가 되었다고!”금고는 불같이 화를 냈다.그 말에 낙청연은 잠시 멈칫했다.류 부인이 류 대인을 엄하게 관리한다는 행우의 말이 떠올랐다. 류 대인은 청루 여인들을 모두 자신의 사저로 불러들였다.그날 다쳐서 정신을 잃었던 낙청연은 류 부인이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그를 놓아주라고 빌던 게 생각났다. 류 부인이 말한 그는 아마 범 공자일 것이다.류 부인과 범 공자가 사통했고 류 대인이 그 약점을 틀어쥐고 있었기에 그날 류 부인이 낙청연을 함정에 빠뜨린 것이다.그런데 그 모든 일이 금고가 계획한 일이었다니, 정말 심계가 깊은 사람이었다.이제 류 대인을 찾을 수 없으니 금고에게 그 복수를 해야 했다.“넌 누구냐?”낙청연이 수상쩍게 문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몇몇 여인이 그녀를 불렀고 방 안에 있던 금고는 곧바로 그 점을 알아챘다.그녀는 안색이 돌변해서 벌떡 일어섰다.“누구냐!”금고가 문을 벌컥 열었다.낙청연은 깜짝 놀랐지만 바로 도망가지는 않았고, 문을 여는 순간 그녀를 본 금고는 경악했다.“감히 공공연히 초향각에 와서 몰래 엿듣다니!”금고는 화를 냈고 낙청연은 냉소를 흘렸다.“무서우십니까? 앞으로 더 무서운 것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낙청연은 의미심장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그녀의 서늘한 목소리에 금고는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소름이 돋았다.그녀는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