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를 살릴 수 있는 사람, 있습니다!”너무 당황한 탓에 하마터면 송천초를 잊을 뻔했다!지초는 눈물을 닦고 일어섰다: “등 어멈, 송 낭자는 의술이 뛰어나고 약재도 많으니 왕비를 구할 수 있을 겁니다. 근데 어떻게 부에 들어오게 해야 할까요?”“넌 일단 소유를 따라가 약재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고 송 낭자를 데려오게 하여라. 조심히 입을 열어야 하며 뭔가를 알아채게 해선 안 된다.”“절대로 왕비의 정체를 들키면 안 된다.”이 말을 들은 지초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바로 가보겠습니다!”고 신의는 왕야에게 약을 지어준 태의들을 돌려보냈다.그리고 침대에 누워있는 부진환을 보더니 따라 떠났다.부진환은 뭔가를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눈을 떴다.그리고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창백한 얼굴로 옷을 입고 벽을 짚으며 방에서 나갔다.소소는 앞으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왕야, 상처가…”“신경 쓰지 마라.” 부진환은 언짢은 어투로 떠났다.부진환은 가슴을 꽉 움켜쥐고 밀려오는 아픔을 참으며 말을 타고 장락길로 향했다.부진환이 가게에 오자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 “왕야… 안색이…”안색이 안 좋은 걸 보니 중상을 입은 게 분명했다.부진환은 가게로 들어가 벽에 가득한 약궤를 보면서 태의가 쓴 약재가 뭔지 생각하려고 애썼다.“전에 봉희를 줬던 약이 엄청 귀한 거라던데, 다른 진귀한 약재는 없느냐? 목숨을 살릴 수 있는 것 말이다!”송천초는 살짝 놀라 부진환을 바라봤다.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상처는 아닌데… 대체 누구에게 쓰려는 걸까?긴장한 모습을 보아하니 낙월영에게 쓰려는 게 아닐까?그럼 절대 없다!“왕야, 저를 너무 높이 보시는군요. 진귀한 약재가 어디 그렇게 흔합니까!” 송천초는 차가운 어투로 답했다.부진환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는 앞으로 다가가 강제로 약궤를 열어보며 말했다: “송 낭자, 정말 급해서 그러니 가격이 열 배라도 사겠소!”“왕야, 찾으시는 약재는 정말 없습니다!” 송천초는 불쾌한 어투로 답했다.낙청연이 부진환을 구하기 위
지초도 왜 왕야가 먼저 온 것인지 영문을 몰랐다.“송 낭자! 저 신산은 어디 갔나?” 부진환은 포기를 몰랐다.“다른 마을에 굿을 하러 갔습니다.” 송천초는 거짓말을 했다.“모두 약을 구하러 온 것인가요? 대체 어떤 중상을 입었길래 이러시는 건지…!”지초가 나타난 순간부터 송천초는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지초는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의원님, 저희 왕비 좀 살려주십시오! 목숨이 위태롭습니다!”이말을 들은 송천초는 숨이 탁 막혀왔다.낙청연이라고?아까는 죽어도 부진환에게 약을 주지 않더니, 갑자기 태도가 변하면 이상하지 않은가?“제가 가진 약재는 많지 않습니다! 써야 하는 것도 있으니 일단은 어떤 약재를 찾는지 한번 보겠습니다. 남는 게 있으면 가져가셔도 됩니다.”이말을 들은 소유는 처방을 꺼내 송천초에 건넸다: “여기에 적힌 것들입니다.”약재를 본 송천초는 깜짝 놀라며 입을 열었다: “정말 씀씀이도 크십니다! 진귀한 약재들만 골라서 찾는군요!”“근데 제가 쓰려는 약재와는 다르니 한번 가보지요!”송천초의 말을 듣자 부진환은 마침내 한시름 놓았다.소유는 곧바로 마차를 준비하러 갔다.송천초는 급히 약재와 약상자를 들고 마차에 올라 섭정왕부로 향했다.낙청연을 보자 송천초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부진환이 언능 낙청연을 구하기 위한 거라고 말했다면 질질 끌지 않았을 것이다.최적의 때를 놓쳤을까 걱정이다!“정말 심하게 다쳤습니다. 지혈약만 쓰면 어떡하라는 겁니까?” 송천초는 원망하며 약을 썼다.“뜨거운 물을 받아와 주세요.”“이 처방대로 약을 달이세요, 빨리요!”송천초는 방에서 지시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계집종들도 바삐 움직였다.부진환은 걱정스러워 옆에서 지켜보며 몇 번이나 목숨에는 지장이 없는지 물어보려 했지만 송천초에 방해가 될까 입을 다물고 있었다.소유가 부진환의 가슴에 피가 새어 나오는 걸 발견하기 전까지 말이다: “왕야, 방으로 돌아갑시다! 상처가 벌어진 것 같습니다!”이말을 들은 송천초는 살짝 놀랐다.부진환은
낙청연은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무슨 일이냐?”등 어멈은 깨어난 낙청연을 보더니 멈칫하며 대답하지 않았다.“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낙청연은 언짢은 어투로 말했다.등 어멈은 미간을 찌푸린 채 서글픈 얼굴로 답했다: “낙태부께서 자결하셨습니다!”낙청연은 안색이 확 변하더니 깜짝 놀라며 말했다: “뭐?”낙청연은 바로 이불을 걷고 신발을 신더니 가면을 쓰고 밖으로 나갔다. 지초는 옷과 망토를 가지고 나오며 말했다: “왕비, 천천히 가십시오! 눈이 옵니다.”방에서 나온 순간, 눈꽃이 낙청연의 뒷목에 떨어졌다. 뼈까지 시려오는 한기가 마치 그녀를 쓰러뜨리려는 것 같았고, 떨어지는 눈꽃도 마음의 한기와 비하면 따뜻한 편이었다.대문에서 나오니 마침 마차가 있었다.곧바로 마차에 탄 낙청연은 마부를 향해 말했다: “태부부로 가주시오!”앉고 보니 맞은 편에 있는 부진환이 눈에 들어왔다.창백한 안색이었지만 어두운 표정이었다.마차에 있은 것도 태부부의 일을 전해 들어서 일 것이다.마차는 빠른 속도로 태부부로 향했고 낙청연은 불안한 마음에 입을 열었다:“등 어멈이 낙태부가 자결했다던데… 어찌 된 일입니까?”부진환은 미간을 찌푸린 채 답했다: “본왕도 이제 알았네. 범산화가 봉주를 훔친 일과 연관이 있어서인 것 같더군.”이 말을 들은 낙청연은 옷깃을 꽉 잡으며 말했다: “범산화는 관직이 없고 아버지도 경도에 없는데 어찌 봉주를 훔치겠습니까? 종묘 근처에 얼씬도 못 할 겁니다!”“이 사건에는 배후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대체 왜 태부부와 엮는 걸까요?”그날 대전에서 범산화를 봤을 때부터 느낌이 안 좋았다. 그러나 낙청연은 그때 중상을 입어 쓰러지고 말았다.요 며칠은 또 치료에 전념했고, 범산화의 일도 철저하게 조사가 될 거라 생각했다.그러나 낙태부가 자결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본왕도 모른다. 태부부에 가보면 알게 되겠지.”부진환도 낙청연과 똑같이 아침에 깨어났다.그 사람들은 봉주가 떨어졌다는 이유로 부진환을 옥에 가두고 갖은 수를 다해 죽이려
낙청연은 미간을 좁혔다. 며칠 안 되는 사이에 이렇게 큰 변고가 생길 줄은 예상치 못했다.태부부의 전체적인 풍수나 분위기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약간의 죽음의 기운이 드리워져 기세가 점점 쇠퇴하고 있었다.“죄를 인정해 자결했다니요?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낙청연은 순간 숨을 쉴 수 없었다.낙용은 한숨을 쉬며 대꾸했다.“범산화까지 조사했는데 그 뒤로는 진척이 없다. 범씨 어르신께서 직접 저택까지 찾아오셔서 아버지께 도움을 요청하셨다. 범산화는 현재 랑랑의 부군이니 아버지께서도 그냥 보고만 계실 수는 없으셨지. 그래서 낙해평에게 범산화를 한 번만 구해달라고 사정했다.”낙용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목이 메었다.“하지만 낙해평이 너무 무능했지. 조사는 흐지부지되고 일의 배후도 알아내지 못했다. 이 일이 끝을 맺으려면 누군가 자신의 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오늘 아버지를 뵈러 왔는데… 아버지께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더구나. 그리고 죄를 인정하는 혈서를 남겨 아랫것들에게 궁으로 보내라고 분부하셨다.”말하면서 눈물을 닦는 낙용의 얼굴은 짧은 사이 몇십 년은 늙은 것 같았다.낙청연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낙해평!”말이 끝나기 무섭게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둘째 삼촌!”부랴부랴 달려온 낙해평은 침상 위의 장면을 보는 순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둘째 삼촌…”낙해평을 본 낙용은 울컥 화가 치밀어올라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잔을 그에게 힘껏 던졌다.“무슨 낯짝으로 이곳에 온 것입니까? 당장 나가세요! 나가시라고요! 당신은 저희 아버지의 앞에 나타날 자격이 없습니다!”낙용은 눈이 벌겋게 되었고 온몸이 경직됐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낙해평을 죽이고 싶었다.낙해평은 피하지도 않고 그 자리에 멀뚱히 서 있어서 잔에 머리를 맞았다. 그는 괴로운 얼굴로 말했다.“난 정말 둘째 삼촌을 도울 수 없었다. 하지만 나도 둘째 삼촌이 이런…”낙해평이 비통한 표정을 짓자 낙청연은 질식할 것 같았다.화가 머리까지 치솟았던 그녀는 낙해평의 얼굴에 주먹을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았으니 조심하거라.”낙청연은 살짝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그의 깊은 눈매에서 걱정스러움이 느껴졌다.이상한 일이었다.낙청연은 몸을 곧추세우며 시선을 돌렸다.방 안에서 범씨 어르신은 자책하고 또 죄송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녀는 침상 옆에서 많은 얘기를 했고 그 말들은 전부 진심이 담긴 감격의 말이었다.그리고 그녀는 낙용에게 말했다.“낙태부를 안장할 때가 되면 저희 가족을 데리고 수도를 떠나 제 친정인 계양(溪陽)으로 갈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범씨 어르신의 친정은 계양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가족 수가 많지 않았기에 집 한 채만 있으면 충분히 근심 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낙용은 그 말에 미련 가득한 얼굴로 낙랑랑의 손을 잡았다.떠나보내고 싶지는 않지만 수도 곳곳에 보이지 않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이곳을 떠나야 안전하게 살 수 있었다.“그래, 계양으로 가거라. 거기가 더 안전하다.”낙랑랑은 눈물을 쏟으며 무릎을 꿇었다.“어머니!”낙용 또한 그녀처럼 눈물을 흘렸다. 낙용은 낙랑랑을 부축해 일으켜 세우더니 그녀의 뺨을 적신 눈물을 닦아줬다.“내 말 듣거라. 계양으로 가거라. 수도는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이곳을 떠나면 평온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벽에 기댄 낙청연은 문득 낙랑랑의 점괘를 봐줬던 일을 떠올렸다.그녀는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지는 못해도 평탄한 인생을 보낼 수 있었고 그럭저럭 괜찮은 운명을 타고난 자였다.하지만 낙청연은 그녀의 평탄한 인생이 낙태부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줄은 몰랐다.세상은 복잡하고 사람들의 운명은 마치 그물처럼 얼기설기 얽히게 되어 서로 다른 결과를 생성하게 된다.사람들의 운명이란 시시각각 변화하는 것이다.낙씨 집안에서는 낙태부의 제사를 준비하기 시작했고 낙청연과 부진환은 태부부를 떠났다.부진환은 곧장 입궁했고 낙청연은 그와 동행하기 어려웠기에 홀로 섭정왕부로 돌아왔다.“왕비 마마, 괜찮습니까? 안색이 아주 안 좋습니다.”줄곧 문가에
소유는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물었다.“오황자의 상처는 어떠합니까? 좀 나아졌습니까?”고 신의가 대답했다.“가장 좋은 약을 써서 지금은 거의 다 나았습니다. 원래 몸이 허약하셨던 분이라 며칠 더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정신이 혼미할 때도 계속 왕비 마마의 상처를 걱정하시더군요. 왕비 마마는 어떻습니까?”소유가 대답했다.“왕비 마마께서는 거의 다 나았습니다. 고 신의께서 오황자를 설득하시지요. 염려해서는 안 될 걸 자꾸 염려하시다 보면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수 있으니까요.”말을 마친 뒤 소유는 몸을 돌려 떠났고 낙청연도 발소리를 죽이고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떠났다. 그녀는 어두운 곳에 몸을 숨긴 뒤 소유가 멀어지는 걸 확인하고는 다시 자신의 처소로 돌아왔다.그녀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부운주가 상처를 입다니?어쩐지 며칠째 그가 보이지 않았다.새끼손가락이 잘리다니, 설마 부진환이 모함당해 형을 집행당한 것일까?그래서 부운주의 손가락을 잘라 태후에게 사람을 놓아주라 협박한 것일까?아무리 고민해봐도 그 가능성밖에 없었다.부운주는 겉으로 보기엔 섭정왕부에서 요양하는 것 같지만 그가 태후의 약점으로 부진환의 손에 잡혀있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 모두 알고 있었다.부진환은 모함을 당해 옥에서 고문당했으니 부운주의 새끼손가락을 잘라 태후를 위협했을 수도 있다.그러니 굳이 그녀가 방법을 생각해 부진환을 구하지 않는다고 해도 태후는 부운주가 죽기를 원하지 않았기에 그를 놓아줄 것이다.하지만 태후가 모진 마음을 먹는다면 부운주가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생각을 마친 낙청연은 부운주가 애처롭게 느껴졌다. 자신의 목숨이 남의 손에 달려있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무섭고 두렵고 단 한 번도 마음 놓고 살지 못하겠지.낙청연은 한숨을 쉬었고 때마침 방 안에서 나온 송천초는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왜 한숨을 쉬십니까?”낙청연은 조금 전 있었던 일을 그녀에게 얘기했고 송천초 역시 안타까워했다.“낙부인께서 범씨 집안이 수도를 떠나는 걸 허락하신 것
“저랑 함께 가시지요.”송천초는 우산을 들고 낙청연과 지초와 함께 왕부를 떠났다.낙청연은 만보루로 향했다.만보루는 평소처럼 장사가 계속됐다. 그들은 봉주 도난 사건에 휘말리지 않았고 그들의 장사 또한 영향받지 않았다.낙청연이 그곳에 도착하자 만보루의 점원은 단번에 그녀를 알아보고 얼른 다가가 비위를 맞추며 말했다.“왕비 마마, 무엇이 필요하십니까?”낙청연은 곧바로 대답했다.“다음 달에 우리 아버지 생신이신데 놀라움을 드리고 싶어 만보루에 선물을 사러 왔다.”물건을 사러 왔다는 말에 점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얼른 낙청연을 위층에 있는 별실로 안내했고 열정적인 태도로 차를 올렸다.곧이어 그는 그림들을 잔뜩 안고 와서 말했다.“이것이 저희 만보루에 있는 모든 수장품입니다. 여러 가지가 있으니 마음에 드시는 게 있으면 얘기해주십시오. 바로 가지러 가겠습니다.”낙청연은 태연한 얼굴로 그림을 고르면서 한 장 한 장 빼내기 시작했고 총 서른 장이 넘는 그림을 골랐다.“왕비 마마, 많이도 고르셨습니다. 전부 다 확인해보시겠습니까? 전부 가져올까요?”낙청연은 덤덤히 말했다.“다 가져오거라.”“알겠습니다.”그녀가 선택한 물건에는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었으며 화병도 있고 장식품도 있었다.물건이 하나둘 옮겨지면서 방 전체가 가득 찼다.낙청연은 그것들을 한 번 둘러보았다. 점원이 그것을 하나하나 설명하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 낙청연이 입을 열었다.“이것들 전부 사겠다.”그 말에 점원은 깜짝 놀랐다.“네? 전부 다요?”서른 개가 넘으니 가격이 꽤 높았다.“전부 다 살 것이다. 가서 가격을 계산해 보거라.”낙청연의 호쾌한 대답에 점원은 잔뜩 들떠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지금 당장 장궤를 찾아 가격을 계산해 보겠습니다.”점원이 떠나자 송천초는 가득 쌓인 물건을 바라보며 의아하게 물었다.“이렇게 많이 사시게요? 가격이 꽤 나갈 듯한데. 전부 아버님께 드릴 생각이십니까? 아깝지 않으십니까?”낙청연은 차가운 미소
“이 물건들을 전부 다 팔게 된다면 왕비 마마께서 다시 이곳에 오셔서 은자를 챙기시면 됩니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이 물건들은 내가 한 번 검사해 봐야겠다. 내친김에 표기도 해 놓을 터이니 장궤는 가서 먹과 붓을 가져오거라.”아직 돈을 지급하지는 않았지만 장궤는 무섭지 않았다. 상대는 섭정왕비이고 승상부의 딸이니 돈을 떼먹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장궤는 사람을 시켜 먹과 붓을 가져오게 했고 이내 별실을 나갔다.낙청연은 화병 하나를 들고 보면서 말했다.“지초야, 몰래 물건 좀 가져오거라.”지초는 낙청연에게 가까이 다가갔고 낙청연은 작은 목소리로 분부했다. 곧이어 지초가 별실을 나섰고 낙청연은 붓을 들어 화병 아래 부문을 적기 시작했다.송천초는 부문을 알아볼 수 없었기에 옆에서 간식을 먹으며 물었다.“이 물건은 전부 낙해평에게 줄 것이 아닙니까? 이 물건들이 그를 재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까?”낙청연은 덤덤히 대꾸했다.“재수만 없는 게 아니다.”가까이 다가간 송천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부문들이 전부 다른 것 같습니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바닥에 놓이는 화병은 구석 쪽에 놓일 것이고 작은 장식품들은 선반에 놓일 것이다. 이것들은 각기 다른 곳에 놓일 것이니 다른 부문을 적어야 서로 다른 진법 기세를 이룰 수 있다.”송천초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그 말은 처음부터 이 물건들을 어디에 놓을지 다 생각해두셨다는 뜻입니까? 하지만 낙해평이 당신의 말대로 놓지 않는다면요?”낙청연이 대답했다.“제자리에 놓는다면 살기가 더 강해질 수 있고 저택 안의 풍수를 더욱 빨리 파괴할 수 있지. 하지만 제자리에 놓지 않는다고 해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부문을 다 그리고 나니 지초가 돌아왔다.지초는 작은 주머니를 탁자 위에 쏟았고 그 안에서 쌍두침(雙頭針)과 얇은 칼날이 와르르 쏟아졌다.그녀는 붉은색 실로 쌍두침과 칼날을 조심스럽게 한데 묶었고 송천초와 지초가 옆에서 그녀를 도왔다.다 묶어 놓은 뒤 쌀풀로 칼날을 화병 아래에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