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행주가 쫓아오지 않자, 심녕은 조심스럽게 연못에서 나와 창가 옆에 붙었다.주위는 매우 어두컴컴하니, 창가 아래의 풀숲에 숨어 소리만 내지 않으면 들키지 않을 것이다.심녕은 긴장한 듯 숨을 참고 고개를 내밀었다.그러나 양행주는 줄곧 방에 있었다!양행주는 방에 앉아 그 화상을 자세히 바라보았다.양행주는 한참 동안 보다가 그제야 생각났다.이 낭자는 몸에 냄새가 수상해 무슨 일이 있으면 찾아오라고 했다.그러나 낭자는 오지 않았다.이 낭자와 낙운이 아는 사이라고?양행주는 의문을 품은 채 화상을 접어 품에 넣었다.창밖의 심녕은 매우 초조했다. 양행주는 어찌 가지 않는 걸까!언니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양행주와 마주치면 큰일이다!한참 지나자 심녕은 몰래 움직여 정원 앞에서 말을 타고 도망쳐 언니를 데리러 갈려고 했다.그러나 풀숲을 나서자마자 발소리가 들려왔다.심녕은 바짝 긴장하며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심녕? 오래 기다리진 않았느냐? 닭 두 마리를 사 왔으니 많이 먹거라.”심부설이 웃으며 말했다.심녕은 주먹을 꽉 쥐고 말을 하려 했으나,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방에서, 양행주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심부설은 방에 들어서며 양행주를 보자 깜짝 놀랐지만, 곧바로 웃으며 물었다.“양 의관은 어찌 오신 겁니까?”“저희가 여기에 있는 건 어찌 아시고…”심부설은 위험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양행주는 덤덤한 표정으로 심부설 손의 바구니를 보며 물었다.“닭을 샀소?”“그렇습니다. 양 의관, 앉아서 같이 먹읍시다.”“저희 동생을 보셨습니까?”심부설은 앞으로 다가가 닭을 꺼내며 물었다.“나가는 것 같았소.”“그렇다면 양 의관 먼저 드십시오. 이 한 마리는 동생에게 남겨주겠습니다.”심부설은 웃으며 전혀 경계하지 않았다.양행주는 고개를 숙이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먼저 드시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 하지 않았소.”이 말을 듣자, 창밖의 심녕은 주먹을 꽉 쥐었다.심부설도 멈칫하더니 양행주를 바라보았다.“양 의관, 그게
심부설이 마당에서 빠져나가기도 전에 양행주에게 붙잡혔다.“좋은 말로 해서는 안 되겠네!”차갑게 말하는 양행주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그는 심부설의 목을 조이며 들어 올렸다.심부설은 고통스럽게 발버둥 치며 필사적으로 벗어나려 했지만, 상대는 멈추지 않았다.그녀는 조금씩 힘을 잃어갔다.결국 두 손이 힘없이 축 드리워졌다.그렇게 숨이 끊겼다.그제야 양행주는 아무런 동요 없이 심부설을 놓아주었다.심부설은 바닥에 쓰러졌다.창밖에서 모든 것을 지켜본 심녕은 눈시울이 붉어졌고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러나 주먹을 꼭 쥔 채 그녀는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다.양행주는 바닥에 쓰러진 심부설의 시체를 보며 한탄했다.“동생이란 작자는 당신 죽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서 도망쳤군.”마당으로 나온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이곳은 온통 숲이었고 산이 겹겹이 둘러싸여 있었다.심녕을 쫓는다면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몰라 쉽지 않을 것 같았다.고민 끝에 그는 마음을 바꿨다.그 초상화를 꺼내 다시 확인한 그는 눈빛이 짙어졌다.“그럼, 너부터 찾아보자.”“예상치 못한 즐거움이 있을지도 모르는 거니까.”초상화를 챙긴 양행주는 자리를 떠났다.양행주가 떠났지만 심녕은 그가 근처에 매복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제 자리에 웅크리고 감히 나가지 못했다.그 상태로 아침이 밝을 때까지 기다렸다.양행주는 이미 떠난 것이 확실했다.그녀는 뻣뻣한 몸을 이끌고 풀밭을 벗어나 대문으로 향했다.마당에 들어선 그녀는 심부설의 시신을 보았다.심녕은 비틀거리며 뛰어가 심부설을 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언니...”“내가 꼭 복수해 줄게요!”-궁.막 의원에서 약을 받아오는 길인 심녕은 갑자기 눈꺼풀이 떨려 눈을 비볐다.왠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그때 궁전에서 컵을 떨어뜨리는 소리가 들렸다.“안 마신다고 하지 않았냐! 썩 꺼져라!”류공공과 몇 명의 간신들은 왕에게 쫓겨났다.류공공은 여전히 자신의 옷을 정리하고 있었다.“무슨 일이냐?”젊은 내시는 심각한 표정을
“내일 또 보러 오겠습니다.”말을 마친 낙요는 자리를 떠났다.부운주는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반드시 그날이 올 겁니다.”-그날 이후.낙요는 매일 부운주에게 약을 올렸고 그와 함께 점심 식사를 했다. 부운주도 약 복용에 매우 협조적이었다.비록 탕약은 마시지 않았지만, 낙요가 그를 위해 약을 특제했고 해독 작용도 뛰어났다.이날 그녀가 왕부로 돌아오니 부진환이 서재에서 공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하여 작은 간식거리를 준비해 서재로 향했다.“배가 고프지 않다.”부진환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차갑게 말했다.낙요는 그의 입에 음식을 밀어 넣었다.“배가 고프지 않아도 내 손맛은 보셔야죠.”깜짝 놀란 부진환이 고개를 들어보니 낙요였다.그제야 진지하게 한입 베어 물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맛도 좋고 향긋하오.”낙요는 옆에 놓인 의자에 앉으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요 며칠 왜 양행주가 보이지 않지요?”“전에도 갑자기 사라진 적 있는지요?”그녀는 양행주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생각에 잠기던 부진환은 고개를 저었다.“전에는 이러지 않았소. 그러고 보니 어디로 갔는지 안 보이긴 하오.”낙요는 눈을 반짝이며 추측했다.“황후에 대해 알아보다 문제에 봉착한 걸까요?”“하지만 그 실력이라면 무사해야 하지 않을까요?”곰곰이 생각하던 부진환이 말했다.“그럼 내가 소소를 시켜 양행주의 행방을 알아보게 하겠소.”낙요가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그 뒤로 양행주에 대해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에 낙요는 조금 불안했다.낙요가 막 천명 나침판의 힘을 빌어보려던 그때 소소가 헐레벌떡 서재로 들어왔다.“전하, 큰일 났습니다!”부진환은 고개를 들었다.“뭐냐?”소소는 머뭇거리며 옆에 있는 낙요를 힐끗 쳐다보았다.그러자 부진환이 덧붙였다.“괜찮다. 말하거라!”그제야 소소가 입을 열었다.“청주원이 당했습니다!”“흔자는?”“납치되었습니다.”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그것은 심녕이 남긴 서신이었다.[전하, 우리 자매가 전하에게 헛된 망상을 품은 것은 맞습니다. 공은 없지만 열심히 하였는데 전하께서 매정하게 나오시니 저도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태자는 제 손에 있으니, 태자가 무사하길 바라신다면 낙운을 저에게 넘기고 저를 아내로 맞이하세요!][그렇지 않으면 시체를 보내겠습니다! 3일 내로 낙운을 봐야겠습니다. 죽었든 살았든 천주원으로 보내세요][태자가 걱정된다면 허튼수작 부리지 마세요.]서신을 본 낙요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그녀가 말한 태자는 누굽니까?”“또 여기 청주원은 어디에 쓰이는 건지요?”두 사람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부진환이 설명했다.“흔자는 왕의 아들이오.”“영비의 아이죠.”듣고 있던 낙요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문뜩 육궁을 통솔하던 영비가 떠올랐고 자신이 그녀에게 부적을 선물했던 사실도 기억났다.“후궁 영비는 아이를 낳지 못하지 않았던가요?”부진환이 말했다. “영비가 아이를 살렸고 약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나에게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소.”“그녀와 연락이 닿은 후 나는 그녀가 궁에서 조용히 출산할 수 있도록 했고 태어난 아이를 즉시 궁 밖으로 데리고 나갔소.”“그녀는 당시 예쁨을 받지 못했고 모두 그녀가 아이를 잃어 슬픈 나머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했소.”낙요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여기 청주원은 태자를 위해 특별히 마련한 곳이었군요.”“맞소. 여기서 글공부를 했고 나도 가끔 와서 가르쳤소.”“그리고 여기에 많은 고수들을 배치해서 놔서 심녕 혼자서는 절대 태자를 납치할 수 없었을 거요.”싸움의 흔적이 가득하고 시체가 여기저기 널브러진 것을 보면 심년이 사람을 많이 데리고 왔을 거라고 생각했다.다시 한번 서신을 보던 낙요가 눈썹을 치켜세웠다.“그녀는 당신이 냉정하게 굴었다고 했는데, 분명 떠날 수 있게 풀어주지 않았나요?”“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었는지요?”“서신의 내용으로 볼 때
그가 떠나지 않으면 심녕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부진환은 사람들을 이끌고 청주원을 떠나 교토로 돌아갔다.어둠이 내렸다.낙요는 손발이 묶인 채 힘없이 정자 기둥에 기대어 있었다.그녀는 대문을 향해 있어 불청객을 제때에 발견할 수 있었다.하지만 밤은 너무 고요했고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심녕이 몰래 지켜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낙요도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그렇게 사흘째 밤까지 기다렸다.낙요는 기둥에 기댄 채 잠이 들었고, 몸은 이미 굳어버린 상태였다.그때 갑자기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그녀는 번쩍 눈을 떴다.심녕이 태연한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느리게 다가와 그녀 앞에 멈춰 선 심녕은 허리를 굽혀 낙요의 턱을 들어 올렸다.그리고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었다.“전하의 중요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군.”그녀는 청주원 밖에서 3일을 지켜봤다. 떠난 부진환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고 사람을 보내지도 않았다.낙운은 정자에 버려졌고 꽁꽁 묶여 움직일 수조차 없이 3일이 지났다.물 한 방울도 마시지 못한 채 말이다.전하는 낙운을 버린 것이 분명했다.심녕의 입꼬리는 저절로 올라갔다. 드디어 그녀에게 기회가 생겼다고 여겼기 때문이다.낙요는 힘없이 입을 열었다.“떠나지 않았던가? 왜 다시 돌아온 거지?”“언니는?”그녀의 말에 심녕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갑자기 분노에 찬 눈빛으로 노려보았고 그녀의 턱을 잡을 심녕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감히 내 언니를 언급해?”“네가 아니었다면 언니는 죽지 않았어!”“네가 나타나지만 않았다면 언니는 이미 왕비가 되었을 거야!”“모두 네가 망쳤어!”심녕은 이를 악물며 낙요의 목을 조였다.“죽여버릴 거야!”숨이 막이 막혀서 질식할 것만 같았다. 낙요는 뒤로 묶인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만약 심녕이 그녀를 진짜 죽이려 한다면 그녀는 여기서 심녕을 잡아야 했다.하지만 심녕은 화를 억누르며 힘을 풀었다.바닥에 내팽개쳐진 낙요는 고개를 들어 심녕을 쏘아보며 분노했
약 냄새가 퍼지는 그 순간, 낙요는 이것이 연골환(軟骨丸)이라는 것을 알았다.이 약은 사람의 사지를 무력하게 한다.“나를 죽이려는 거 아니었어?” 낙요는 차가운 표정으로 심녕을 노려보았다.심녕은 차갑게 웃더니 말했다. “그래 맞아, 하지만 너를 그리 쉽게 죽이지 않을 거야.”“나는 너에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안겨줄 것이다.”“왜? 일부러 나를 자극하여 통쾌하게 죽여주길 바라는 거야?“설마 왕야의 행동이 너를 슬프게 하였느냐?”이를 의식한 심녕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설마 네가 정말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생각한 것이냐?”“왕야는 너에 대해 그저 일시적인 신선함 때문이었어.”“여기 청주별원(清舟別院)에 누가 살고 있는지 아느냐?”“너는 아마 청주별원을 모르고 있겠지?”“이곳의 그 어린 도련님은 왕야의 아들이야.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아들이지.”“네가 어떻게 도련님보다 더 중요하겠느냐?”“왕야가 너를 버리는 건 당연한 선택이다.”낙요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그녀는 심녕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너는 어떻게 이곳을 알고 있느냐?”“왕야께서 너에게 이곳을 알려줬을 리가 없다.”심녕은 눈썹을 들썩이며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내가 왕야 곁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설마 잊었느냐? 그동안 눈치채지 못할 리가!”“왕야는 태풍상사를 이용하여 배후에서 한 무리의 사사(死士)를 양성했고, 태풍상사의 번 돈은 모두 그들을 부양하는데 쓰인다. 나는 당연히 호기심이 생겼고 그래서 조사해 보았다.”“그러다 보니 이곳을 발견했지 뭐야.”“보아하니 왕야는 이 비밀을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을뿐더러 너에게도 알려주지 않았구나. 너도 우리랑 별로 다르지 않구먼!”심녕은 비꼬는 어투로 말하며 득의양양하게 웃었다.낙요는 살짝 놀랐다.보아하니 그녀가 짐작한 것과 똑같았다.심녕은 부진환을 오랫동안 따라다녔으니,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알고 보니 태풍상사 배후에 한 무리의 사사가 존재했다.어쩐지 부진환은 태풍상사를 되찾으려고 했다.비록
낙요는 알약을 깨뜨려 단서를 남기는 수밖에 없었다.이번에 그들은 말을 타고 꼬박 이틀을 달렸다.또 잠깐 멈추더니 마차를 갈아타는 것이었다.낙요는 마차 안으로 내던져졌고, 마차 안에는 몇 사람이 그녀를 지키고 있었다.지금 낙요는 배가 너무 고파서 뱃가죽이 등에 붙을 것 같았다.낙요는 심녕이 일부러 그녀에게 음식을 주지 않는다고 의심했다.이럴 때마저 그녀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감시하다니, 낙요는 도망갈 힘이 전혀 없었다.마차 안에서, 낙요는 단서를 남길 방법이 없었다.하지만 다행히 마차는 위로 올라갔고 산 위로 올라간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만약 여기까지 추적해 온다면, 목적지를 확정할 수 있을 것이다.또 하루를 달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마차에서 끌려 내린 낙요는 어떤 방에 갇혔다.마차에서 내리는 그 순간, 낙요는 은은한 단향 냄새를 맡고 곤혹스러웠다.이곳은 절이었다.방문이 닫혔다.밖에서 계속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보아하니 이곳을 지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낙요는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다.그녀는 힘없이 벽에 기대어 눈을 감고 쉬고 있으며 사람이 오길 기다렸다.얼마나 지났을까?드디어 가까워지는 발걸음 소리를 듣고 낙요는 깨어났다.다음 순간, 머리 위의 검은 주머니가 벗겨졌다.눈 부신 햇살에 낙요는 눈이 시렸다.광선에 적응된 후, 낙요는 눈앞의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당신이었습니까?”부운주!부운주는 그녀의 창백하고도 허약한 모습을 보고 약간 마음이 아팠다.“오느라 수고했다.”그는 몸을 기울여 그녀의 손발을 묶은 밧줄을 풀었다.밧줄에 묶여 붉어진 손목을 보고 그는 살짝 멈칫했다.낙요는 냉정하게 손을 빼더니 불쾌한 어투로 말했다. “어떻게 당신입니까? 저를 납치한 사람이 심녕아니었습니까?”“당신과 심녕은 무슨 사이입니까?”낙요는 더 깊이 생각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하지만 부운주는 아무 대답도 없이 자기 의자로 가서 앉더니 상 위의 음식을 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밥부터 먹자꾸나.”“요 며
부운주는 고개를 끄덕이었다.배후가 부운주인 것을 알고 낙요는 오히려 한시름 놓았다.어린 황자가 부운주의 손에 있다면 분명 안전하기 때문이다.하지만 다음 순간 부운주가 말했다. “흔자를 아주 친절하게 부르는구나.”“부진환의 아이를 키워주는 걸 전혀 개의치 않다는 말이냐?”낙요는 놀라서 굳어버렸다.낙요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부운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일부러 사람을 시켜 청주별원에서 흔자를 납치했습니까? 설마 누구 아들인지 모르는 건 아니죠?”부운주는 살짝 웃었다. “부진환이 어떻게 너에게 말했느냐? 설마 내 아들이라고 말한 건가?”낙요는 그대로 굳어버렸다.그녀의 반응을 보고 부운주는 저도 몰래 웃으며 말했다. “짐에게는 황자가 없다. 이는 확실한 사실이다.”“하나도 남기지 않았다!”“엄내심의 수단으로 어찌 그물을 빠져나간 물고기가 있겠느냐?”“청주별원의 그 아이는 바로 부진환의 아이이다.”“다만 누구와 낳은 아이인지 모를 뿐이다.”“필경 그동안 부진환 옆에는 심 씨 자매뿐만 아니라 다른 여인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너를 닮은 사람들이었다.”“만약 그 아이가 정말 짐의 아이라면 부진환이 왜 짐의 병을 치료하려고 애쓰겠느냐? 그의 권세로 충분히 황자의 신분을 공개할 수 있는데 말이다.”“어린 황자를 보필하여 황위를 계승하고 직접 조정을 장악하면 되거든.”“진작에 나 같은 어리석은 황제를 페위시켰어야지.”낙요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당신은 이런 이유로 그 아이가 당신 아들이라는 사실을 안 믿는 겁니까?”“부진환이 당신을 바로 폐위시키지 않은 것은 당신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당신의 황위에 관심 없습니다.”“흔자는 당신 아들입니다!”“만약 부진환의 아들이었다면 그를 청주별원에 숨기지 않았을 겁니다.”하지만 낙요가 무슨 말을 해도 부운주는 그저 담담히 웃을 뿐이었다. “오직 너만 그의 말을 믿는다.”“부진환이 그 아이를 숨긴 이유는 너를 잃기도 싫고 또 아들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짐
묵계는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뱀독이 확산하여 썩어가는 송천초의 피부를 보니, 그녀는 못내 싫어졌다.시간이 흐르면 뱀독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 그러다 오장육부를 다치면 이 몸은 더 이상 소용이 없다.묵계는 갑자기 방법이 떠올랐다.“좋다. 진법을 거두거라. 나오겠다.”묵계도 조금 조급해졌다.“약속하거라. 너에게 다른 몸을 찾아줄 테니 절대 다른 짓 하지 말거라.”낙요가 말했다.“그래. 어서!”두 사람은 드디어 의견이 맞았다.낙요가 진법을 없애자, 묵계도 순순히 송천초의 몸에서 나왔다.낙요는 특별히 두 가닥의 혼이 모두 나왔는지 확인했다.낙요는 얼른 부적을 송천초의 몸에 붙였고 묵계는 다시 송천초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하지만 묵계는 낙요를 빤히 보고 있었다. 그녀는 낙요가 가까이 오자 바로 낙요의 미간을 파고들었다.그녀는 순식간에 낙요의 몸속으로 들어갔다.낙요는 심한 충격을 입은 듯 휘청이며 뒤로 물러서서 의자를 붙잡고 그제야 안정을 찾았다.그녀의 귓가에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하하하. 다른 몸을 찾을 필요 없다. 네 몸이 아주 마음에 드는구나.”“혼을 빼앗는 것에 난 도가 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너를 대신하여 여국의 여제가 될 것이다.”낙요는 안정을 찾고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지었다.“동하국에 너무 오래 있어, 바깥세상을 본 적 없는 모양이구나.”“아무나 너에게 혼과 몸을 빼앗기는 것은 아니다.”“제사장족의 대제사장들을 들어본 적 있느냐?”묵계는 낙요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제사장족? 동하국 사람한테서 들은 적 있다. 그때 나를 공격한 젊은이들도 제사장족 사람들이었다.”“그들이 쓰는 진법은 네 진법과 다를 것이 없다. 보아하니 너도 제사장족이구나.”“잘됐구나. 네가 강할수록 너의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이다.”묵계는 아직도 기뻐하고 있었다.낙요가 난감한 듯 웃었다.“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구나.”“너처럼 순진한 요괴는 처음 보
백서는 바로 방에서 물러나 방문을 닫았다.조영궁 밖이 조용해지자, 병풍 뒤에서 그림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초경이었다.그는 쓰러져 있는 송천초를 품에 안고 있었다.낙요는 안색을 굳히고 다급히 앞으로 걸어갔다.“어찌 된 일입니까?”초경은 송천초를 연탑에 눕히고 설명했다.“동하국에서 괴물을 만났습니다...”초경은 사건의 경과를 간단히 설명했고 묵계의 신분도 알려주었다.그의 말을 듣고 낙요의 표정이 굳어졌다.“그렇습니까?”“방법이 있습니까? 그 괴물은 천초의 몸을 차지하려는 것입니다. 독을 없애서 깨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천초가 위험할 것입니다!”초경은 몹시 조급했다.낙요가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급해하지 마십시오. 방법이 있습니다.”“천초 몸 안에 있는 묵계의 혼을 뽑는 것은 자신 있습니다.”“밖을 지키고 있으세요.”초경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놓였다.낙요는 여국에서 제일 강한 대제사장이었으니, 분명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천초는 괜찮을 것이다!“예. 밖에 있겠습니다.”초경은 바로 방에서 나가 정원을 지키고 있었다.낙요는 피로 진을 그려 송천초의 몸을 뒤덮었다.그리고 송천초 몸 안의 혼을 빼내기 시작했다.물론 묵계가 그녀의 몸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아, 과정이 쉽지 않았다.손을 세게 쓰면 송천초를 다치게 할 수도 있고 약하게 하면 묵계를 꺼낼 수 없었다.“넌 누구냐? 감히 나를 상대하려는 것이냐?”묵계의 낮고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여국과 오랫동안 싸웠는데, 여국의 여제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냐?”낙요는 가소롭다는 듯 답했다.그 말을 듣고 묵계는 깜짝 놀랐다.“여국 여제? 평범한 사람을 위해 이 진까지 쓰는 것이냐?”“이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난 너에게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나와 손을 잡지 않겠느냐?”낙요가 가볍게 웃었다.“보아하니 넌 사람의 감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사랑도 모르고 우정도 모른다.”“네가 몸을 원한다면 더 좋은 몸을 찾아주겠다. 얌전히 송천
“대체 뭘 하려는 거냐!”초경이 매섭게 물었다.“나는 살고 싶다. 나를 풀어주면 안전한 곳에 가서 이 여자를 풀어주마.”그 말을 듣고 초경이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너를 풀어주면 천초를 놓아줄 것이라 믿지 않는다.”묵계가 담담하게 웃었다.“비록 웅황주가 나를 몰아냈지만, 이미 이 여인의 몸에 혼을 한 가닥 남겼다. 지금 두 가닥의 혼이 몸에 들어있으니, 7일 후 혼을 잃고 나의 몸이 될 것이다.”“이 몸은 이제 내 것이다.”“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얘기할 자격도 없다. 내 말대로 해야 이 여자는 살 기회가 있다!”“나를 놓아주거라!”묵계의 위협에 초경은 주먹을 꽉 쥐고 분노를 억눌렀다.“가거라.”“3일 후, 반드시 천초를 만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널 찾아 죽일 것이다.”묵계가 입꼬리를 올렸다.“좋다!”말을 마치고 묵계는 약사의 몸을 끌고 빠르게 그곳을 떠났다.낙현책이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걸어갔다.“정말 이렇게 풀어주는 것입니까? 천초 고모를 놓아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초경은 묵계가 떠난 방향을 빤히 보며 말했다.“괜찮다. 멀리 가지 못할 것이다.”낙현책은 살짝 놀랐다.이내 다들 그녀를 따라갔다.그들은 바닷가 암초에서 묵계를 따라잡았고 그녀는 이미 쓰러져 있었다.유생은 그녀가 중독된 것을 알아차렸다. 발목을 보니, 어느새 뱀에게 물려 있었다.유생이 고개를 돌려 초경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초경이 한 일인 것 같았다.초경은 놀라지 않고 마음 아픈 표정으로 송천초를 안았다.“천초를 데리고 먼저 돌아갈 테니 너희들은 부 태사를 돕거라.”“예!”이내 초경은 시선 속에서 사라졌다.다들 부 태사를 도우러 갔다.부진환은 병사를 이끌고 동하국을 공격했다. 비록 동하국 사람은 적지 않았지만, 방어에 강한 성벽과 무기가 없었고 선박뿐이었다.여국 병사들이 끊임없이 섬에 오르고 있으니, 동하국이 멸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초경은 송천초를 안고 청주로 돌아와 묵계의 혼을 어떻게든 몰아내려고 했지만, 줄곧 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금색 진법이 나타나 묵계를 진법 안으로 가두었다. 귀를 뚫을 듯한 그 노랫소리는 진법 속에 가로막혔다.흰옷을 입은 제사장족 제자 수십 명이 하늘에서 나타났다.그들은 복숭아나무 위에 가볍게 서서 열 손가락으로 진법을 그렸고 손끝에는 금빛 부문이 흐르고 있었다.묵계는 깜짝 놀란 후 그제야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깜짝 놀라 송천초를 바라보았다.“너구나!”송천초가 차갑게 웃었다.“설마 내가 혼자 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묵계는 굳은 표정으로 분노에 찬 듯 말했다.“괘씸하구나! 너에게 속다니!”그때, 밖에서도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송천초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부 태사가 사람을 데리고 동하국을 공격했으니, 당신은 도망가지 못할 것입니다.”“차라리 순순히 잡히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그녀는 어젯밤 묵계를 만난 후 막사로 돌아가 바로 이 일을 부진환에게 알리고 대책을 논의했다.부진환은 그 여자가 동하국 약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초경도 분명 그 여자의 손에 있을 테니 그에 따른 계획을 세웠다.그녀가 혼자 묵계를 만나러 간 것도 다른 사람에게 길을 안내하기 위해서였다. 다들 기관선을 이용해 그녀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묵계가 뱀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송천초는 웅황을 가득 챙겨 몸을 지키려 했다.묵계는 진법 속에서 절망하여 초경을 바라보며 말했다.“너와 나도 동족이라 할 수 있다. 나한테 한 짓을 다시 너한테도 할 것이다! 사람은 절대 믿어선 안 된다!”“정말 저 사람들을 도우려는 것이냐?”“초경. 난 너를 죽이려 한 적 없다!”초경은 한숨을 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너의 처지가 안쓰럽지만, 우린 동족이 아니다.”“우린 다르니, 같다고 하지 말거라.”“너의 딱한 처지를 보아, 솔직히 말하마. 동하국은 곧 멸망할 것이니, 너도 원수를 갚은 셈이다. 마음 놓고 떠나거라.”그 말을 듣고 묵계는 넋을 잃고 그들을 싸늘하게 훑어보았다.“죽으려면 함께 죽겠다!”묵계는 하늘을 향해 소
“그는 감금되었다. 우리는 그를 구할 수 없다. 그를 구할 유일한 방법은 바로 너의 몸과 나의 힘을 합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기회가 있다.”그 말을 듣고 송천초는 눈살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뜻입니까?”묵계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나와 하나가 될 수 있느냐? 그를 구할 수도 있고 그와 같은 수명을 가질 수도 있다.”“두 사람은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다.”“하지만 대가로 아픔을 겪을 수도 있다.”“할 수 있느냐?”송천초는 미간을 찌푸리고 사색에 잠겨 대답하지 않았다.묵계가 말을 이었다.“이곳은 동하국이다. 그들이 설치한 함정에 나는 들어갈 수 없고 평범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네가 들어가도 그를 구할 수 있겠느냐?”“우리가 힘을 합치면 할 수 있다! 잠시 힘을 합쳐 그를 구하고 다시 방법을 생각해 떨어지는 것이 어떠냐?”묵계가 한참 말을 한 뒤에야 송천초는 그녀의 말을 허락했다.“좋습니다. 허락하겠습니다.”그 말을 듣고 묵계는 기쁠 따름이었다. 송천초가 이렇게 쉽게 넘어올 줄은 몰랐다.만약 이 몸을 빼앗는다면 초경에게 청신요를 쓰지 않아도 된다.“좋다. 바로 자리를 옮겨서 시작하자.”송천초는 고개를 끄덕이고 묵계를 따라 복숭아나무가 무성한 곳으로 갔다.사방을 둘러보니 온통 복숭아나무였고 다른 것은 없었다.송천초는 묵계의 말에 따라 다리를 꼬고 앉았다.묵계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그녀와 손바닥을 마주하고 있었다.“시작할 것이다. 조금 불편할 테니 참거라.”묵계는 말을 마치자마자 시작했다.송천초는 괴로워하며 눈살을 찌푸렸고 온몸의 기운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옆에 있던 복숭아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밀실에서 독을 없애려 애쓰고 있던 초경은 순간 송천초의 존재를 느꼈다.그는 번뜩 눈을 뜨고 송천초가 주위에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게다가 그녀는 지금 위험하다!초경은 마음이 초조했다. 그는 송천초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독을 없애기도 전에 다급히 밀실 문을 부수고 뛰쳐나갔다.묵계의 혼이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그 여자는 분명 온몸이 흠뻑 젖었지만, 송천초를 향해 걸어오는 도중 옷과 머리카락이 말랐다.송천초는 위험을 감지하고 바로 사람을 부르려 했다.그녀가 있던 곳에 마침 암초가 있어 그 여자의 모습을 막았다. 옆에 바로 청주군의 막사가 있었는데 이렇게 대담하게 이곳으로 오다니!송천초가 사람을 부르려는 그때, 여자가 입을 열고 그녀를 저지했다.“나는 적의가 없다. 그저 너를 찾으러 왔다.”“저요?”송천초는 의아한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송천초라 하느냐?”묵계는 그녀를 살펴보았다. 그녀가 본 기억 속의 그 여자와 똑같이 생겼다.“어떻게 아는 것입니까?”묵계가 웃으며 말했다.“나는 묵계라고 한다. 초경이 위험에 처해 있어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송천초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을 졸이며 저도 몰래 앞으로 한 걸음 걸어갔다.“무슨 일입니까?”“당신은 대체 무슨 사람입니까? 어찌 당신을 믿을 수 있습니까?”묵계 뒤에서 뱀 꼬리가 나타났다.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나는 그와 동족이다. 그가 너를 찾아오라 한 것이다.”“만약 그를 구하고 싶다면 오늘 밤 홀로 이곳에 오거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너를 데리고 그를 만나러 가겠다.”그 말을 듣고 송천초가 물었다.“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동하국입니까?”“그곳 말고 더 있느냐?”“오직 너만이 그를 구할 수 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거라. 초경의 목숨을 구하고 싶다면 내가 시킨 대로 하거라.”말을 마치고 묵계는 경계하며 막사를 힐긋 보고 몸을 돌려 바다로 사라졌다.송천초가 추궁하기도 전에 묵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그녀가 무슨 사람인지 말한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알 수 없었다.하지만 종일 불안했던 것을 생각하면, 초경에게 정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갑자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병사가 상황을 보러 왔다.“방금 이쪽에서 인기척이 있길래 보러 왔습니다. 무슨 일 없는 것입니까?”송천초는 망설이다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게 들리는 그 노랫소리는 그의 의식을 흐릿하게 했다. 그는 애써 소리를 막으려고 했지만, 자꾸 귀를 파고들었다.초경은 한참 몸부림치다가 결국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와 머리를 움켜쥐고 고통스럽게 바닥에 쓰러졌다.묵계는 그 모습을 보고, 그제야 그에게 다가갔다.“너를 상대하기가 참 어렵구나. 하지만 나를 너무 얕본 것 같구나. 인어족의 청신요는 죽어가던 사람도 깨울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현혹해 행동을 조종할 수도 있다. 쉬이 사용하지 않던 방법인데 이렇게 너에게 쓰게 됐구나.”묵계는 가볍게 웃으며 천천히 웅크리고 앉아 손을 뻗어 초경의 얼굴을 스쳤다.“청신요로 너의 기억을 바꾸면 오늘부터 나의 명을 따르며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거부하지 말거라. 자칫 잘못하면 정신을 잃을 수도 있다.”묵계는 웃으며 말을 마치고 손을 초경의 머리 위에 얹은 후 청신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맑은 소리가 주문처럼 초경의 귓가에 맴돌면서 바늘처럼 그의 머리를 파고들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묵계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애먹였다.그녀는 의지력이 이렇게 강한 사람을 본 적 없었다.묵계는 싸늘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버티고 있는지 봐야겠구나!”그녀의 손끝이 초경의 미간에 가볍게 닿자, 그녀는 실패의 원인을 찾았다.그의 기억 속에는 온통 다른 여자뿐이다.그것도 평범한 여자였다.청신요의 통제를 받지 않고 기억을 지우지도 못할 정도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니.묵계는 내키지 않았다. 그 여자가 자신과 함께 있고 싶지 않은 원인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고작 수십 년의 수명만 갖고 있어 결국 늙어 죽기에 그들과는 다르다.감정이라는 것을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의 육체가 다치지 않았다면 청신요를 쓰는 것도 애먹을 리 없었을 것이다.보아하니 이 방법으로는 그를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그럼...묵계의 눈에 빛이 반짝였다.묵계는 초경을 업고 돌아가 밀실에 가두었다.묵계는 그녀가 자리를 비웠을
묵계는 이 남자를 죽이기 아까웠다. 그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기나긴 수명을 갖고 있어 함께 수련할 수 있었다.이런 사람을 또 찾기 어려울 것이다.초경은 그 말을 듣고 조금 의아했다.“그럼, 너는 진정한 약사가 아니냐?”묵계가 콧방귀를 뀌었다.“물론이다. 그 여자는 이미 죽었다. 나의 몸을 망가트렸으니, 그녀가 바다로 들어간 기회를 틈타 그녀를 죽이고 몸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 뱀의 기운은 무슨 수를 써도 사라지지 않았다.”“그동안 약사의 신분으로 동하국에서 지내며 바다에서 보물을 발견하여 일반인과 다른 힘을 얻었다고 그들을 속이고 바다에 들어가 보물을 찾게 했다.”“이로써 그들의 내전을 일으켜 영원히 평화로이 지내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나의 한을 풀었다!”초경은 그제야 이유를 깨달았다.“여국 바다에 있는 진도 네가 깬 것 같구나.”초경은 부진환에게서 여국과 동하국의 전쟁에 관해 많은 얘기를 전해 들었다.다들 대진이 깨지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동하국 사람은 여국 땅으로 침입할 수 없다.하지만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눈앞에 있는 이 괴물은 할 수 있었다.역시나 묵계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물론 나다.”“내가 아니었다면 동하국 사람은 평생 여국 땅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초경이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복수를 하고 싶지만, 동하국 사람을 모두 죽이지 않았다. 살생을 저질러 화를 입고 싶지 않은 것이구나.”“그래서 대진을 파괴하고, 동하국 내전을 일으키고 그들을 선동하여 여국을 공격한 것이냐? 그들이 전쟁으로 죽게 만들려는 것이냐?”“아주 완벽한 계획이구나. 하지만 전쟁을 일으켰으니, 결국 운명의 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묵계가 만족스럽게 웃기 시작했다.“나의 계획을 알아차리다니 정말 똑똑하구나.”“그들이 싸우려는 마음이 없었다면 대진이 사라졌다 해도 여국을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나와 상관없다.”“내가 화를 입는다 해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말을 마치고
그는 이내 약사를 찾으러 갔다.그러나 도림을 벗어나기도 전에 초경은 앞에 길이 없는 것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자리에 멈춰 서서 사방을 관찰하다 이곳이 미로라는 깨달았다. 그는 손바닥을 들었지만,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자세히 맡아보니, 바람 속에 복숭아 꽃향기와 옅은 약재의 향기가 섞여 있었다.독이 있다!뒤에서 여유로운 발소리와 묵계의 웃음 섞인 소리가 들려왔다.“왜 앞으로 가지 않습니까?”초경은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렸다. 지금의 묵계는 무서운 표정이 조금도 없었고 오히려 득의양양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초경은 가슴이 떨려왔고 미간을 세게 찌푸렸다.“네가 바로 약사냐?”묵계가 입꼬리를 올리며 가볍게 웃었다.“먼 곳에서 나를 찾아왔는데, 약사라는 이름만 알고 계십니까? 제 이름도 모르는 것입니까?”“다들 저를 자릉약사라 부릅니다.”“이곳에 온 순간부터 알아차렸습니다. 비록 신분을 모르지만, 홀로 이곳에 온다는 건 분명 만만치 않은 상대겠지요. 그래서 도림에 손을 조금 썼습니다.”“도림에 들어선 후부터 이미 중독되었습니다. 이곳에 오래 있을수록 독은 더욱 세질 것입니다.”“그리고 이 독은 사족을 겨냥한 독입니다.”묵계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초경을 바라보았다.초경은 슬쩍 내공을 써봤지만, 사지가 무기력했다. 무언가가 갑자기 그의 경맥을 막은 것처럼 내공이 안정을 잃고 통제하기 어려웠다.그는 손을 움켜쥐고 불편함을 참으며 내색하지 않았다.“사족? 나를 무서워하지 않은 것이냐? 넌 대체 누구냐?”초경은 의아했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는 이상할 것 없이 평범한 사람 같았다.묵계가 가볍게 웃자, 뒤에 환영이 나타났고 그녀의 꼬리가 보였다.하지만 재빨리 사라져 버려서 초경은 뱀 꼬리인지 아닌지를 똑똑히 보지 못했다.“공자, 우린 같습니다. 저를 죽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주 사이좋게 지낼 수도 있습니다.”묵계는 흥미진진하게 초경을 훑어보았고 눈빛에는 탐욕의 빛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초경의 강한 수위를 탐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