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설은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심부설은 이 정원의 꽃들을 보며 부러운 듯 말했다.“낙 낭자, 이 정원이 누구의 정원이었는지 아십니까?”낙요는 멈칫하더니 모른 척했다.“모릅니다.”“부에 정원이 많으니 빈 정원이겠지요.”심부설은 웃으며 답했다.“아니요, 여기는 다릅니다.”“여기는 예전의 왕비가 계시던 정원입니다.”“큰불에 다 타버려 이 정원의 모든 풀과 꽃은 다 왕야께서 직접 심은 겁니다.”“종종 혼자 이곳에 와서 꽃과 풀을 다듬습니다.”“어느 한번은 큰비가 내렸는데, 야심한 밤에 이곳에 와서 화초 몇 개를 방에 들여다 놓더군요.”“폭풍에 화초가 시들까 봐 말입니다.”“그러면서 하인들의 도움도 받지 않았습니다. 하인들이 부주의로 풍수를 파괴할까 봐 그런다나.”말을 하며 심부설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이 정원에 많은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가 없겠지요.”“모든 걸 가진 섭정왕이 정원 하나에 이렇게 신경을 쓰다니.”“다 한이 있어서 그렇습니다."심부설은 가슴 아픈 눈빛으로 말했다.낙요도 살짝 놀랐다. 부진환이 다시 수리한 건 알았지만, 이런 일이 있는지는 몰랐다.그때 헤어진 후, 부진환은 천궐국으로 돌아와 정원의 화초를 돌보았다.어쩌면 언젠가는 낙요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정원의 화초를 다시 보니, 더욱 생기가 넘치는 것 같았다.“심 낭자는 왕야를 아주 잘 아는 모양입니다.”낙요는 무심하게 말을 이어갔다.심부설은 쓴웃음을 지었다.“잘 알지 못합니다.”“왕야는 저를 구해주셨습니다.”“그해 만났을 때, 저희 가족 모두 목숨을 잃었고 저도 위독했습니다. 왕야께서 저를 구해주면서 조건을 내걸었습니다.”“누군가를 따라 하고, 시기가 적절하면 저를 황상께 바친다고 했습니다.”“저는 승낙했고, 왕야도 저 대신 복수해 주었습니다.”“왕야는 단호하고 위엄이 넘쳐 두려움의 상대지만, 저는 압니다. 마음이 약하고 저에게도 잘해줍니다.”“저를 보호하고 보살펴 주지만, 저는 그저
“언제 저를 버리면 저도 떠날 겁니다. 그 사람뿐이 아니니까요.”낙요의 덤덤한 말에 심부설은 안색이 어두워졌고 말문이 막혔다.한참 망설이다 심부설은 급히 말했다.“하지만… 오래 있다 보면 생각이 바뀝니다!”“오래 지나서 왕야가 좋아서 떠나기 싫으면 어떻게 할 겁니까?”낙요는 심부설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말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낙요는 덤덤하게 웃으며 말했다.“운명에 따르지요. 강요한다고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심부설은 멈칫하더니 어두운 눈빛으로 쓴웃음을 지었다.“낙 낭자는 참 명쾌하군요.”“정말 부럽습니다.”낙요는 웃으며 무심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당신에게 연모의 정이 있다면, 모든 노력이 의미 있는 겁니다.”“하지만 정이 없다면, 모든 것은 그저 웃음거리일 뿐입니다.”“생과 사의 이별까지 겪어봤으니, 이 세상에는 더욱 비통하고 안타까운 일도 많다는 걸 알 겁니다.”“그러니 자신을 가두지 마십시오.”“세상은 넓고, 인연은 이곳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이 말을 들은 심부설은 깜짝 놀란 듯 낙요를 바라보았다.눈앞의 낭자가 이런 말을 내뱉을 줄은 몰랐다.“어찌 저보다 겪은 게 더 많은 것처럼 들립니까?”“많은 이별을 겪었습니까?”낙요는 웃으며 말했다.“수도 없이 많지요.”여국의 모든 것을 버리고 부진환을 찾으러 온 건, 서로를 그리워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부진환이 낙요를 연모하지 않는다면, 절대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할 일도 많은데, 어찌 의미 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겠는가.그러니 심부설도 이런 도리를 깨우쳤으면 좋겠다.심부설은 침묵하더니 서서히 입을 열었다.“저도 낙 낭자처럼 명쾌하면 좋겠습니다.”“하지만 저는 할 수 없을 겁니다.”낙요는 위로했다.“심 낭자의 가치는, 대체품이 아닙니다.”“심 낭자는 심 낭자입니다.”“심 낭자의 몸도 고치지 못할 병이 아닙니다. 비록 안 지 얼마 되지 않지만, 춤을 추는 모습을 보니 부설이라는 명호가 없어도 충분히 자신만의 춤을 출 수 있을 겁니다.”심부설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후, 크고 작은 일은 거의 다 동생이 결정했습니다.”“하여 성질이 드세니, 낙 낭자에게 실수를 했다면 대신 사과하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낙요는 웃으며 말했다.“저에게 시비를 걸지 않으면 당연히 가만히 둘 겁니다.”심녕이 시비를 먼저 걸면 낙요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낙요는 다시 물었다.“평소에 먹는 약은 다 심녕이 가져다줍니까?”심부설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평소에도 다 동생이 저를 보살핍니다.”“아무리 바빠도 매일 약을 달여주고, 마시는 것까지 보고 갑니다.”“약이 쓰다고 안 마실까 봐 말입니다.”심부설은 못 말린다는 듯이 웃었지만, 애정 가득한 얼굴이었다.심부설은 심녕을 매우 아끼는 모양이었다.낙요는 상황을 대충 알게 되었다.시간이 늦어 낙요는 직접 심부설을 정원에 데려다주고, 약을 달인 후 가져다주었다.아침에 나눈 대화로 친해지자, 심부설은 낙요가 반가웠다.“정말 감사합니다.”낙요는 약을 건네며 말했다.“왕야께서도 하루빨리 몸이 좋아지길 바라니, 저도 최선을 다할 겁니다.”이 말은 약에 손을 쓰지 않을 거라고 심부설을 안심시키는 말이었다.심부설은 웃으며 약을 마시려고 했다.바로 그때, 누군가가 급히 다가와 약을 바닥에 내던졌다.그러고는 매서운 눈빛으로 낙요를 바라보았다.“우리 언니에게 무슨 약을 먹인 겁니까!”심부설은 급히 심녕을 막으며 말했다.“오해하지 말아라, 낙 낭자는 몸에 좋은 약을 줬을 뿐이다.”“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니 어서 사과해라.”이 말을 들은 심녕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언니, 어찌 이 여인 편을 드는 겁니까!”“이 여인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까? 속지 마세요!”“제가 말하지 않습니까, 제가 준 약만 먹으라고! 그러다 몸이 상하면 어쩌려고 그럽니까?”“저는 언니밖에 없습니다!”심녕은 흥분하며 말했다.심부설은 낙운이 자신을 해치려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에 더욱 어찌할 바를 몰랐다.낙요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심녕, 나
심녕은 매서운 어투로 말했다.심부설은 심녕을 말리고 싶었지만, 심녕은 말을 듣지 않았다.낙요는 실눈을 뜨며 흥분하는 심녕의 모습을 보자, 오히려 심녕이 다른 속셈이 있는 것 같았다.곧바로 낙요는 방을 나섰다.방문을 나설 때까지도 심부설의 목소리가 들렸다.“낙 낭자에게 어찌 그러는 것이냐! 좋은 마음으로 약을 달여온 것인데!”심녕은 흥분하며 말했다.“언니! 언니 몸이 상하면 어떡하려고 그럽니까!”“왜 좋은 마음이라고 믿는 겁니까? 언니를 해치려는 겁니다!”“둘은 지금 적입니다. 어떻게 언니에게 좋은 마음으로 약을 가져다주겠습니까?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이렇게 쉽게 속지 말고!”“밖에서 힘들게 일하고 오는데, 제발 걱정 좀 끼치지 마세요!”심녕은 질책하는 어투로 말했다.심부설은 침묵했다.정원으로 돌아온 낙요는 이상하다고 생각되어 발걸음을 멈추고 미간을 찌푸렸다.그러고는 곧바로 부진환의 서방에 찾아갔다.부진환은 낙요를 보자 기쁜 얼굴로 맞이했다.“오늘 심부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느냐?”낙요는 살짝 놀라더니 말했다.“어찌 아시는 겁니까?”“심부설이 너를 해칠까 봐 주의하라고 하인에게 명을 내렸다. 오늘 네 정원에서 아주 오래 있었더구나.”낙요는 저도 모르게 웃으며 느긋하게 책상에 기댔다.“그 허약한 몸으로 저를 해친다고요? 반대로 말한 거 아닙니까?”“그리고 꿍꿍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당신을 연모할 뿐이지요.”말을 마친 낙요는 실눈을 뜬 채 부진환을 지그시 바라보았다.“부에 이렇게 오래 있었는데, 눈치채지 못했습니까?”부진환은 순간 위험을 감지했다.잠시 생각 후, 부진환은 침착하게 답했다.“무엇을 눈치채야 하는 것이냐?”“본왕은 할 일이 많아 심부설의 생각에 신경 쓸 시간이 없다.”이 말을 들은 낙요는 웃으며 말했다.“치밀한 대답이네요.”부진환은 웃으며 낙요를 다리에 앉히고 허리를 감싼 채 진지하게 말했다.“모두 사실이니, 다른 생각이 있었다면 천둥 벼락을 맞을 것이다!”낙요는 급히 부진환의 입을
낙요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확실히 의심스럽습니다.”“다만 이 일을 증명할 방법이 없습니다.”그러니 단지 의심일 뿐이다.부진환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만일 심녕이 일부러 심부설에게 약을 먹였다면, 목적은 무엇일까?”낙요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낙요는 다급히 부진환으로부터 떨어져 책상 밖으로 걸어갔다.부진환의 표정은 삽시에 엄숙해졌다. “들어오너라.”문을 밀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심녕이었다.그녀는 깨진 약사발을 들고 있었다.낙요는 살짝 놀랐다.“여기에 계시다니 참 잘됐습니다.” 심녕은 차가운 표정으로 그녀를 힐끔 쳐다보았다.낙요는 이해할 수 없었다.심녕은 깨진 약사발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왕야, 고할 일이 있습니다.”“무슨 일이냐?”심녕은 곁에 서 있는 낙요를 쳐다보며 냉랭하게 말했다. “조금 전 낙운이 제가 없는 틈을 타서 언니에게 약을 가져다주었습니다.”“언니하고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언니는 낙운에게 완전히 세뇌되었습니다.”“다행히 제가 때마침 발견해서 언니가 이 약을 마시는 걸 제지했습니다.“저는 낙운이 이렇게 좋은 심보가 있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져가서 검사해 보았습니다.”“아니나 다를까 이 약에 독이 있었습니다.”“왕야께서 엄하게 벌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낙요는 심녕이 이런 술수를 쓸 거라는 건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부진환도 이 소리를 듣고 몹시 의아했다.그는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독이 있다고? 무슨 독이냐?”심녕은 냉랭하게 말했다. “저는 의원이 아니므로 무슨 독인지 모릅니다.”“왕야께서 만일 제가 저 여인을 모함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양의원을 모셔 검사해 보십시오.”심녕의 태도는 강경하고 당당했다.낙요는 불쾌한 표정으로 반박했다. “내가 나간 후에 당신이 독을 넣었는지 어찌 알겠소?”“내가 만일 독을 넣어 심부설을 해치려고 했다면, 직접 독이 있는 탕약을 그녀의 손에 가져다주지
부진환도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아서 냉랭하게 말했다. “그럼 본왕이 어떻게 하기를 바라느냐?”“낙운을 죽이기를 바라는 것이냐? 아니면 다시 황궁으로 돌려보내길 바라느냐?”심녕은 깜짝 놀랐다. “저는… “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부진환에 의해 끊겨버렸다. “심녕, 네가 낙운에 대해 불만이 있는 거 알고 있다.”“하지만 오늘 같은 일을 본왕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낙운은 이미 왕부에 왔으니 본왕은 절대 내쫓지 않는다. 네가 정말 받아들일 수 없다면 심부설을 데리고 나가서 살거라.”“조용히 휴양도 할 겸.”이 말을 들은 심녕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왕야의 이 말은 태도를 표명한 셈이다.어찌 되었든 그는 낙운을 처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억지로 소란을 피워도 결과는 단 하나다.바로 그녀와 언니가 이사 가는 것이다.낙운은 대체 무슨 내력일까? 왕야는 왜 이렇게 그녀를 감싸주는가?또 어떤 이유로 궁에 들어가게 된 건가?심녕은 몹시 화가 났지만, 그저 낙요를 노려보더니 이를 악물고 말했다. “알겠습니다.”이 말을 끝내고 서방에서 나갔다.--그날 밤, 심부설은 또 낙요를 찾아왔다.그녀에게 사과했다.그리고 심녕이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라고 했다.그 후 며칠 동안 왕부는 조용했다.심녕도 더 이상 낙요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하지만 전술을 바꿨다.거의 매일 부지환의 서방에서 지냈고 혹은 이야기를 다 나눈 뒤에 또 부진환을 찾아갔다.낮에는 거의 대부분 시간을 부진환 곁에서 보냈다.낙요가 부지환을 찾아갈 기회조차 없었다.혼자 있다가 낙요는 조용히 강여와 연락했다.그날 밤, 낙요는 저택으로 돌아와 강여와 그들과 만났다.송천초와 초경도 있었다.몇 사람은 마침 저택에 잠깐 모였다.밤바람은 시원했고 그들은 화원에 앉아 술을 따라 축하하기 시작했다.“낙청연이 드디어 부진환과 오해를 풀고 왕부에 입주한 걸 축하한다.”송천초는 술잔을 들었다.몇 사람 모두 술잔을 들고 즐겁게 마셨다.강여도 매우 기뻤다. “왕야는 그런 사람이
송천초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나도 초경과 일단 산장으로 돌아갈 생각이다.”“마침, 가기 전에 너와 모일 수 있어서 다행이다.”“이곳 일을 마무리하면 꼭 산장에 나를 찾으러 오너라.”낙요는 응했다. “그래, 그때가 되면 꼭 산장에 너를 찾으러 가마.”몇 사람은 잠깐 모여 술을 마신 후, 자시 전에 낙요는 조용히 후문으로 섭정왕부로 돌아왔다정원은 칠흑같이 어두웠다.낙요가 문을 닫자마자, 등 뒤에 갑자기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그녀는 경계하며 고개를 돌렸다.“누구야?”이윽고 익숙한 숨결이 엄습해 왔다.어둠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등 뒤에서 다가와 그녀를 안았다.무심결에 그녀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더니 불쾌한 어투로 말했다. “나가서 술을 마셨느냐?”“누구랑 마셨느냐?”부진환의 나직한 목소리가 귀에 닿자, 숨소리가 낙요를 약간 간지럽혔다.그녀는 다급히 그를 밀어냈다.“누구겠습니까?”“송천초랑 술을 좀 마셨습니다. 그들은 내일 경도를 떠납니다.”이 말을 들은 부진환은 여전히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왜 본왕을 데려가지 않았느냐?”“심녕이 하루 종일 당신에게 매달려 있는데 내가 어찌 당신을 찾아가겠습니까?“제가 정말 당신을 데리고 송천초네 밥 먹으러 간다면 당신은 갈 수 있습니까?”하지만 부진환이 말했다. “네가 말하면, 못 가는 것도 가야지.”이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갑자기 밖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렸다.부진환은 쉿 하라고 손짓했다.두 사람은 문에 바짝 붙어 바깥 동정을 들었다.확실히 정원밖에 수상한 사람이 있었지만,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누구십니까? 늦은 밤, 엿들으러 온 겁니까?” 낙요는 목소리를 낮췄다.“아마 심녕일 거다.” 부진환의 미간은 더욱 쪼그라들었으며 어투는 더욱 무거웠다.낙요는 탄식했다. “심녕은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닙니까? 늦은 밤, 잠도 안 자고 말입니다.”말을 마치자마자 갑자기 정원 밖 멀리서 시위의 고함이 들렸다. “거기 누구냐?곧 시위가 달려와 심녕을 바로 잡아 버렸다.심녕이 설명했다.
문득 부진환이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이런 의혹들을 품고 낙요는 더욱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낙요는 거의 밤새 한잠도 못 잤다.날이 밝자, 부진환을 찾아가 물어보려고 했지만, 심녕이 또 부진환의 서방에 함께 있었다.낙요는 어쩔 수 없이 또 떠나갔다.겨우 심녕이 떠난 것을 보고 낙요가 부진환을 찾아가니, 그녀가 막 도착하자 심녕이 또 먼저 부진환의 서방에 있었다.두세 번 이후, 낙요는 아예 다시 찾아가지 않았다.저녁 무렵에 왕부의 하인이 찾아왔다. “낙 낭자, 왕야께서 몸이 불편하시다고 합니다. 양 의원은 왕부에 안 계시니 낭자께서 왕야의 맥을 좀 짚어주십시오.”이 말을 들은 낙요는 깜짝 놀랐다. “몸이 불편하다고?”왜 갑자기 몸이 불편한가?낙요는 다급히 서방으로 달려갔다.도착했을 때 심녕이 서방에 있었다.그녀는 불쾌한 표정으로 낙요를 노려보았다.부진환은 공무를 처리하느라 심녕을 쳐다보지도 않고 분부했다. “물러가거라. 태풍상사에 또 다른 문제가 있으면 소유를 찾아가면 된다. 사사건건 본왕에게 보고할 필요 없다.”“하지만… 이 일들은 모두 매우 중요하니 왕야께 말씀드려야 마음이 놓입니다.”“필경 태풍상사를 이때까지 경영하면서 저는 저의 모든 심혈을 기울였습니다.”“지금 왕야께서 내놓으시라고 하시니 저는 당연히 사사건건 확실하게 교대해야 마음이 놓입니다.”부진환은 인내심을 잃으려고 한다.이런 말을 요 며칠 동안 그는 수도 없이 들었다.그는 피곤한 듯 이마를 문질렀다.어투도 한층 더 차가워졌다. “본왕이 태풍상사 하나를 설립할 수 있다면, 두 개, 세 개 상사를 설립할 수 있다.”“네가 계속 이렇게 쓸데없는 소리를 하면 태풍상사를 본왕은 없애버릴 수도 있다.”매서운 협박에 심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주먹을 꽉 주었다.“왕야… ““물러가거라!”부진환의 불쾌한 질책 소리에 심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하고 성이 잔뜩 나서 나가면서 낙요를 힐끗 쳐다보기까지 했다.방
묵계는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뱀독이 확산하여 썩어가는 송천초의 피부를 보니, 그녀는 못내 싫어졌다.시간이 흐르면 뱀독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 그러다 오장육부를 다치면 이 몸은 더 이상 소용이 없다.묵계는 갑자기 방법이 떠올랐다.“좋다. 진법을 거두거라. 나오겠다.”묵계도 조금 조급해졌다.“약속하거라. 너에게 다른 몸을 찾아줄 테니 절대 다른 짓 하지 말거라.”낙요가 말했다.“그래. 어서!”두 사람은 드디어 의견이 맞았다.낙요가 진법을 없애자, 묵계도 순순히 송천초의 몸에서 나왔다.낙요는 특별히 두 가닥의 혼이 모두 나왔는지 확인했다.낙요는 얼른 부적을 송천초의 몸에 붙였고 묵계는 다시 송천초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하지만 묵계는 낙요를 빤히 보고 있었다. 그녀는 낙요가 가까이 오자 바로 낙요의 미간을 파고들었다.그녀는 순식간에 낙요의 몸속으로 들어갔다.낙요는 심한 충격을 입은 듯 휘청이며 뒤로 물러서서 의자를 붙잡고 그제야 안정을 찾았다.그녀의 귓가에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하하하. 다른 몸을 찾을 필요 없다. 네 몸이 아주 마음에 드는구나.”“혼을 빼앗는 것에 난 도가 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너를 대신하여 여국의 여제가 될 것이다.”낙요는 안정을 찾고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지었다.“동하국에 너무 오래 있어, 바깥세상을 본 적 없는 모양이구나.”“아무나 너에게 혼과 몸을 빼앗기는 것은 아니다.”“제사장족의 대제사장들을 들어본 적 있느냐?”묵계는 낙요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제사장족? 동하국 사람한테서 들은 적 있다. 그때 나를 공격한 젊은이들도 제사장족 사람들이었다.”“그들이 쓰는 진법은 네 진법과 다를 것이 없다. 보아하니 너도 제사장족이구나.”“잘됐구나. 네가 강할수록 너의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이다.”묵계는 아직도 기뻐하고 있었다.낙요가 난감한 듯 웃었다.“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구나.”“너처럼 순진한 요괴는 처음 보
백서는 바로 방에서 물러나 방문을 닫았다.조영궁 밖이 조용해지자, 병풍 뒤에서 그림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초경이었다.그는 쓰러져 있는 송천초를 품에 안고 있었다.낙요는 안색을 굳히고 다급히 앞으로 걸어갔다.“어찌 된 일입니까?”초경은 송천초를 연탑에 눕히고 설명했다.“동하국에서 괴물을 만났습니다...”초경은 사건의 경과를 간단히 설명했고 묵계의 신분도 알려주었다.그의 말을 듣고 낙요의 표정이 굳어졌다.“그렇습니까?”“방법이 있습니까? 그 괴물은 천초의 몸을 차지하려는 것입니다. 독을 없애서 깨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천초가 위험할 것입니다!”초경은 몹시 조급했다.낙요가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급해하지 마십시오. 방법이 있습니다.”“천초 몸 안에 있는 묵계의 혼을 뽑는 것은 자신 있습니다.”“밖을 지키고 있으세요.”초경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놓였다.낙요는 여국에서 제일 강한 대제사장이었으니, 분명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천초는 괜찮을 것이다!“예. 밖에 있겠습니다.”초경은 바로 방에서 나가 정원을 지키고 있었다.낙요는 피로 진을 그려 송천초의 몸을 뒤덮었다.그리고 송천초 몸 안의 혼을 빼내기 시작했다.물론 묵계가 그녀의 몸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아, 과정이 쉽지 않았다.손을 세게 쓰면 송천초를 다치게 할 수도 있고 약하게 하면 묵계를 꺼낼 수 없었다.“넌 누구냐? 감히 나를 상대하려는 것이냐?”묵계의 낮고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여국과 오랫동안 싸웠는데, 여국의 여제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냐?”낙요는 가소롭다는 듯 답했다.그 말을 듣고 묵계는 깜짝 놀랐다.“여국 여제? 평범한 사람을 위해 이 진까지 쓰는 것이냐?”“이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난 너에게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나와 손을 잡지 않겠느냐?”낙요가 가볍게 웃었다.“보아하니 넌 사람의 감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사랑도 모르고 우정도 모른다.”“네가 몸을 원한다면 더 좋은 몸을 찾아주겠다. 얌전히 송천
“대체 뭘 하려는 거냐!”초경이 매섭게 물었다.“나는 살고 싶다. 나를 풀어주면 안전한 곳에 가서 이 여자를 풀어주마.”그 말을 듣고 초경이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너를 풀어주면 천초를 놓아줄 것이라 믿지 않는다.”묵계가 담담하게 웃었다.“비록 웅황주가 나를 몰아냈지만, 이미 이 여인의 몸에 혼을 한 가닥 남겼다. 지금 두 가닥의 혼이 몸에 들어있으니, 7일 후 혼을 잃고 나의 몸이 될 것이다.”“이 몸은 이제 내 것이다.”“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얘기할 자격도 없다. 내 말대로 해야 이 여자는 살 기회가 있다!”“나를 놓아주거라!”묵계의 위협에 초경은 주먹을 꽉 쥐고 분노를 억눌렀다.“가거라.”“3일 후, 반드시 천초를 만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널 찾아 죽일 것이다.”묵계가 입꼬리를 올렸다.“좋다!”말을 마치고 묵계는 약사의 몸을 끌고 빠르게 그곳을 떠났다.낙현책이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걸어갔다.“정말 이렇게 풀어주는 것입니까? 천초 고모를 놓아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초경은 묵계가 떠난 방향을 빤히 보며 말했다.“괜찮다. 멀리 가지 못할 것이다.”낙현책은 살짝 놀랐다.이내 다들 그녀를 따라갔다.그들은 바닷가 암초에서 묵계를 따라잡았고 그녀는 이미 쓰러져 있었다.유생은 그녀가 중독된 것을 알아차렸다. 발목을 보니, 어느새 뱀에게 물려 있었다.유생이 고개를 돌려 초경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초경이 한 일인 것 같았다.초경은 놀라지 않고 마음 아픈 표정으로 송천초를 안았다.“천초를 데리고 먼저 돌아갈 테니 너희들은 부 태사를 돕거라.”“예!”이내 초경은 시선 속에서 사라졌다.다들 부 태사를 도우러 갔다.부진환은 병사를 이끌고 동하국을 공격했다. 비록 동하국 사람은 적지 않았지만, 방어에 강한 성벽과 무기가 없었고 선박뿐이었다.여국 병사들이 끊임없이 섬에 오르고 있으니, 동하국이 멸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초경은 송천초를 안고 청주로 돌아와 묵계의 혼을 어떻게든 몰아내려고 했지만, 줄곧 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금색 진법이 나타나 묵계를 진법 안으로 가두었다. 귀를 뚫을 듯한 그 노랫소리는 진법 속에 가로막혔다.흰옷을 입은 제사장족 제자 수십 명이 하늘에서 나타났다.그들은 복숭아나무 위에 가볍게 서서 열 손가락으로 진법을 그렸고 손끝에는 금빛 부문이 흐르고 있었다.묵계는 깜짝 놀란 후 그제야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깜짝 놀라 송천초를 바라보았다.“너구나!”송천초가 차갑게 웃었다.“설마 내가 혼자 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묵계는 굳은 표정으로 분노에 찬 듯 말했다.“괘씸하구나! 너에게 속다니!”그때, 밖에서도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송천초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부 태사가 사람을 데리고 동하국을 공격했으니, 당신은 도망가지 못할 것입니다.”“차라리 순순히 잡히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그녀는 어젯밤 묵계를 만난 후 막사로 돌아가 바로 이 일을 부진환에게 알리고 대책을 논의했다.부진환은 그 여자가 동하국 약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초경도 분명 그 여자의 손에 있을 테니 그에 따른 계획을 세웠다.그녀가 혼자 묵계를 만나러 간 것도 다른 사람에게 길을 안내하기 위해서였다. 다들 기관선을 이용해 그녀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묵계가 뱀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송천초는 웅황을 가득 챙겨 몸을 지키려 했다.묵계는 진법 속에서 절망하여 초경을 바라보며 말했다.“너와 나도 동족이라 할 수 있다. 나한테 한 짓을 다시 너한테도 할 것이다! 사람은 절대 믿어선 안 된다!”“정말 저 사람들을 도우려는 것이냐?”“초경. 난 너를 죽이려 한 적 없다!”초경은 한숨을 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너의 처지가 안쓰럽지만, 우린 동족이 아니다.”“우린 다르니, 같다고 하지 말거라.”“너의 딱한 처지를 보아, 솔직히 말하마. 동하국은 곧 멸망할 것이니, 너도 원수를 갚은 셈이다. 마음 놓고 떠나거라.”그 말을 듣고 묵계는 넋을 잃고 그들을 싸늘하게 훑어보았다.“죽으려면 함께 죽겠다!”묵계는 하늘을 향해 소
“그는 감금되었다. 우리는 그를 구할 수 없다. 그를 구할 유일한 방법은 바로 너의 몸과 나의 힘을 합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기회가 있다.”그 말을 듣고 송천초는 눈살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뜻입니까?”묵계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나와 하나가 될 수 있느냐? 그를 구할 수도 있고 그와 같은 수명을 가질 수도 있다.”“두 사람은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다.”“하지만 대가로 아픔을 겪을 수도 있다.”“할 수 있느냐?”송천초는 미간을 찌푸리고 사색에 잠겨 대답하지 않았다.묵계가 말을 이었다.“이곳은 동하국이다. 그들이 설치한 함정에 나는 들어갈 수 없고 평범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네가 들어가도 그를 구할 수 있겠느냐?”“우리가 힘을 합치면 할 수 있다! 잠시 힘을 합쳐 그를 구하고 다시 방법을 생각해 떨어지는 것이 어떠냐?”묵계가 한참 말을 한 뒤에야 송천초는 그녀의 말을 허락했다.“좋습니다. 허락하겠습니다.”그 말을 듣고 묵계는 기쁠 따름이었다. 송천초가 이렇게 쉽게 넘어올 줄은 몰랐다.만약 이 몸을 빼앗는다면 초경에게 청신요를 쓰지 않아도 된다.“좋다. 바로 자리를 옮겨서 시작하자.”송천초는 고개를 끄덕이고 묵계를 따라 복숭아나무가 무성한 곳으로 갔다.사방을 둘러보니 온통 복숭아나무였고 다른 것은 없었다.송천초는 묵계의 말에 따라 다리를 꼬고 앉았다.묵계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그녀와 손바닥을 마주하고 있었다.“시작할 것이다. 조금 불편할 테니 참거라.”묵계는 말을 마치자마자 시작했다.송천초는 괴로워하며 눈살을 찌푸렸고 온몸의 기운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옆에 있던 복숭아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밀실에서 독을 없애려 애쓰고 있던 초경은 순간 송천초의 존재를 느꼈다.그는 번뜩 눈을 뜨고 송천초가 주위에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게다가 그녀는 지금 위험하다!초경은 마음이 초조했다. 그는 송천초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독을 없애기도 전에 다급히 밀실 문을 부수고 뛰쳐나갔다.묵계의 혼이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그 여자는 분명 온몸이 흠뻑 젖었지만, 송천초를 향해 걸어오는 도중 옷과 머리카락이 말랐다.송천초는 위험을 감지하고 바로 사람을 부르려 했다.그녀가 있던 곳에 마침 암초가 있어 그 여자의 모습을 막았다. 옆에 바로 청주군의 막사가 있었는데 이렇게 대담하게 이곳으로 오다니!송천초가 사람을 부르려는 그때, 여자가 입을 열고 그녀를 저지했다.“나는 적의가 없다. 그저 너를 찾으러 왔다.”“저요?”송천초는 의아한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송천초라 하느냐?”묵계는 그녀를 살펴보았다. 그녀가 본 기억 속의 그 여자와 똑같이 생겼다.“어떻게 아는 것입니까?”묵계가 웃으며 말했다.“나는 묵계라고 한다. 초경이 위험에 처해 있어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송천초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을 졸이며 저도 몰래 앞으로 한 걸음 걸어갔다.“무슨 일입니까?”“당신은 대체 무슨 사람입니까? 어찌 당신을 믿을 수 있습니까?”묵계 뒤에서 뱀 꼬리가 나타났다.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나는 그와 동족이다. 그가 너를 찾아오라 한 것이다.”“만약 그를 구하고 싶다면 오늘 밤 홀로 이곳에 오거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너를 데리고 그를 만나러 가겠다.”그 말을 듣고 송천초가 물었다.“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동하국입니까?”“그곳 말고 더 있느냐?”“오직 너만이 그를 구할 수 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거라. 초경의 목숨을 구하고 싶다면 내가 시킨 대로 하거라.”말을 마치고 묵계는 경계하며 막사를 힐긋 보고 몸을 돌려 바다로 사라졌다.송천초가 추궁하기도 전에 묵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그녀가 무슨 사람인지 말한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알 수 없었다.하지만 종일 불안했던 것을 생각하면, 초경에게 정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갑자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병사가 상황을 보러 왔다.“방금 이쪽에서 인기척이 있길래 보러 왔습니다. 무슨 일 없는 것입니까?”송천초는 망설이다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게 들리는 그 노랫소리는 그의 의식을 흐릿하게 했다. 그는 애써 소리를 막으려고 했지만, 자꾸 귀를 파고들었다.초경은 한참 몸부림치다가 결국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와 머리를 움켜쥐고 고통스럽게 바닥에 쓰러졌다.묵계는 그 모습을 보고, 그제야 그에게 다가갔다.“너를 상대하기가 참 어렵구나. 하지만 나를 너무 얕본 것 같구나. 인어족의 청신요는 죽어가던 사람도 깨울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현혹해 행동을 조종할 수도 있다. 쉬이 사용하지 않던 방법인데 이렇게 너에게 쓰게 됐구나.”묵계는 가볍게 웃으며 천천히 웅크리고 앉아 손을 뻗어 초경의 얼굴을 스쳤다.“청신요로 너의 기억을 바꾸면 오늘부터 나의 명을 따르며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거부하지 말거라. 자칫 잘못하면 정신을 잃을 수도 있다.”묵계는 웃으며 말을 마치고 손을 초경의 머리 위에 얹은 후 청신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맑은 소리가 주문처럼 초경의 귓가에 맴돌면서 바늘처럼 그의 머리를 파고들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묵계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애먹였다.그녀는 의지력이 이렇게 강한 사람을 본 적 없었다.묵계는 싸늘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버티고 있는지 봐야겠구나!”그녀의 손끝이 초경의 미간에 가볍게 닿자, 그녀는 실패의 원인을 찾았다.그의 기억 속에는 온통 다른 여자뿐이다.그것도 평범한 여자였다.청신요의 통제를 받지 않고 기억을 지우지도 못할 정도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니.묵계는 내키지 않았다. 그 여자가 자신과 함께 있고 싶지 않은 원인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고작 수십 년의 수명만 갖고 있어 결국 늙어 죽기에 그들과는 다르다.감정이라는 것을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의 육체가 다치지 않았다면 청신요를 쓰는 것도 애먹을 리 없었을 것이다.보아하니 이 방법으로는 그를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그럼...묵계의 눈에 빛이 반짝였다.묵계는 초경을 업고 돌아가 밀실에 가두었다.묵계는 그녀가 자리를 비웠을
묵계는 이 남자를 죽이기 아까웠다. 그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기나긴 수명을 갖고 있어 함께 수련할 수 있었다.이런 사람을 또 찾기 어려울 것이다.초경은 그 말을 듣고 조금 의아했다.“그럼, 너는 진정한 약사가 아니냐?”묵계가 콧방귀를 뀌었다.“물론이다. 그 여자는 이미 죽었다. 나의 몸을 망가트렸으니, 그녀가 바다로 들어간 기회를 틈타 그녀를 죽이고 몸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 뱀의 기운은 무슨 수를 써도 사라지지 않았다.”“그동안 약사의 신분으로 동하국에서 지내며 바다에서 보물을 발견하여 일반인과 다른 힘을 얻었다고 그들을 속이고 바다에 들어가 보물을 찾게 했다.”“이로써 그들의 내전을 일으켜 영원히 평화로이 지내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나의 한을 풀었다!”초경은 그제야 이유를 깨달았다.“여국 바다에 있는 진도 네가 깬 것 같구나.”초경은 부진환에게서 여국과 동하국의 전쟁에 관해 많은 얘기를 전해 들었다.다들 대진이 깨지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동하국 사람은 여국 땅으로 침입할 수 없다.하지만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눈앞에 있는 이 괴물은 할 수 있었다.역시나 묵계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물론 나다.”“내가 아니었다면 동하국 사람은 평생 여국 땅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초경이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복수를 하고 싶지만, 동하국 사람을 모두 죽이지 않았다. 살생을 저질러 화를 입고 싶지 않은 것이구나.”“그래서 대진을 파괴하고, 동하국 내전을 일으키고 그들을 선동하여 여국을 공격한 것이냐? 그들이 전쟁으로 죽게 만들려는 것이냐?”“아주 완벽한 계획이구나. 하지만 전쟁을 일으켰으니, 결국 운명의 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묵계가 만족스럽게 웃기 시작했다.“나의 계획을 알아차리다니 정말 똑똑하구나.”“그들이 싸우려는 마음이 없었다면 대진이 사라졌다 해도 여국을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나와 상관없다.”“내가 화를 입는다 해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말을 마치고
그는 이내 약사를 찾으러 갔다.그러나 도림을 벗어나기도 전에 초경은 앞에 길이 없는 것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자리에 멈춰 서서 사방을 관찰하다 이곳이 미로라는 깨달았다. 그는 손바닥을 들었지만,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자세히 맡아보니, 바람 속에 복숭아 꽃향기와 옅은 약재의 향기가 섞여 있었다.독이 있다!뒤에서 여유로운 발소리와 묵계의 웃음 섞인 소리가 들려왔다.“왜 앞으로 가지 않습니까?”초경은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렸다. 지금의 묵계는 무서운 표정이 조금도 없었고 오히려 득의양양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초경은 가슴이 떨려왔고 미간을 세게 찌푸렸다.“네가 바로 약사냐?”묵계가 입꼬리를 올리며 가볍게 웃었다.“먼 곳에서 나를 찾아왔는데, 약사라는 이름만 알고 계십니까? 제 이름도 모르는 것입니까?”“다들 저를 자릉약사라 부릅니다.”“이곳에 온 순간부터 알아차렸습니다. 비록 신분을 모르지만, 홀로 이곳에 온다는 건 분명 만만치 않은 상대겠지요. 그래서 도림에 손을 조금 썼습니다.”“도림에 들어선 후부터 이미 중독되었습니다. 이곳에 오래 있을수록 독은 더욱 세질 것입니다.”“그리고 이 독은 사족을 겨냥한 독입니다.”묵계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초경을 바라보았다.초경은 슬쩍 내공을 써봤지만, 사지가 무기력했다. 무언가가 갑자기 그의 경맥을 막은 것처럼 내공이 안정을 잃고 통제하기 어려웠다.그는 손을 움켜쥐고 불편함을 참으며 내색하지 않았다.“사족? 나를 무서워하지 않은 것이냐? 넌 대체 누구냐?”초경은 의아했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는 이상할 것 없이 평범한 사람 같았다.묵계가 가볍게 웃자, 뒤에 환영이 나타났고 그녀의 꼬리가 보였다.하지만 재빨리 사라져 버려서 초경은 뱀 꼬리인지 아닌지를 똑똑히 보지 못했다.“공자, 우린 같습니다. 저를 죽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주 사이좋게 지낼 수도 있습니다.”묵계는 흥미진진하게 초경을 훑어보았고 눈빛에는 탐욕의 빛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초경의 강한 수위를 탐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