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요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확실히 의심스럽습니다.”“다만 이 일을 증명할 방법이 없습니다.”그러니 단지 의심일 뿐이다.부진환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만일 심녕이 일부러 심부설에게 약을 먹였다면, 목적은 무엇일까?”낙요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낙요는 다급히 부진환으로부터 떨어져 책상 밖으로 걸어갔다.부진환의 표정은 삽시에 엄숙해졌다. “들어오너라.”문을 밀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심녕이었다.그녀는 깨진 약사발을 들고 있었다.낙요는 살짝 놀랐다.“여기에 계시다니 참 잘됐습니다.” 심녕은 차가운 표정으로 그녀를 힐끔 쳐다보았다.낙요는 이해할 수 없었다.심녕은 깨진 약사발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왕야, 고할 일이 있습니다.”“무슨 일이냐?”심녕은 곁에 서 있는 낙요를 쳐다보며 냉랭하게 말했다. “조금 전 낙운이 제가 없는 틈을 타서 언니에게 약을 가져다주었습니다.”“언니하고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언니는 낙운에게 완전히 세뇌되었습니다.”“다행히 제가 때마침 발견해서 언니가 이 약을 마시는 걸 제지했습니다.“저는 낙운이 이렇게 좋은 심보가 있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져가서 검사해 보았습니다.”“아니나 다를까 이 약에 독이 있었습니다.”“왕야께서 엄하게 벌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낙요는 심녕이 이런 술수를 쓸 거라는 건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부진환도 이 소리를 듣고 몹시 의아했다.그는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독이 있다고? 무슨 독이냐?”심녕은 냉랭하게 말했다. “저는 의원이 아니므로 무슨 독인지 모릅니다.”“왕야께서 만일 제가 저 여인을 모함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양의원을 모셔 검사해 보십시오.”심녕의 태도는 강경하고 당당했다.낙요는 불쾌한 표정으로 반박했다. “내가 나간 후에 당신이 독을 넣었는지 어찌 알겠소?”“내가 만일 독을 넣어 심부설을 해치려고 했다면, 직접 독이 있는 탕약을 그녀의 손에 가져다주지
부진환도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아서 냉랭하게 말했다. “그럼 본왕이 어떻게 하기를 바라느냐?”“낙운을 죽이기를 바라는 것이냐? 아니면 다시 황궁으로 돌려보내길 바라느냐?”심녕은 깜짝 놀랐다. “저는… “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부진환에 의해 끊겨버렸다. “심녕, 네가 낙운에 대해 불만이 있는 거 알고 있다.”“하지만 오늘 같은 일을 본왕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낙운은 이미 왕부에 왔으니 본왕은 절대 내쫓지 않는다. 네가 정말 받아들일 수 없다면 심부설을 데리고 나가서 살거라.”“조용히 휴양도 할 겸.”이 말을 들은 심녕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왕야의 이 말은 태도를 표명한 셈이다.어찌 되었든 그는 낙운을 처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억지로 소란을 피워도 결과는 단 하나다.바로 그녀와 언니가 이사 가는 것이다.낙운은 대체 무슨 내력일까? 왕야는 왜 이렇게 그녀를 감싸주는가?또 어떤 이유로 궁에 들어가게 된 건가?심녕은 몹시 화가 났지만, 그저 낙요를 노려보더니 이를 악물고 말했다. “알겠습니다.”이 말을 끝내고 서방에서 나갔다.--그날 밤, 심부설은 또 낙요를 찾아왔다.그녀에게 사과했다.그리고 심녕이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라고 했다.그 후 며칠 동안 왕부는 조용했다.심녕도 더 이상 낙요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하지만 전술을 바꿨다.거의 매일 부지환의 서방에서 지냈고 혹은 이야기를 다 나눈 뒤에 또 부진환을 찾아갔다.낮에는 거의 대부분 시간을 부진환 곁에서 보냈다.낙요가 부지환을 찾아갈 기회조차 없었다.혼자 있다가 낙요는 조용히 강여와 연락했다.그날 밤, 낙요는 저택으로 돌아와 강여와 그들과 만났다.송천초와 초경도 있었다.몇 사람은 마침 저택에 잠깐 모였다.밤바람은 시원했고 그들은 화원에 앉아 술을 따라 축하하기 시작했다.“낙청연이 드디어 부진환과 오해를 풀고 왕부에 입주한 걸 축하한다.”송천초는 술잔을 들었다.몇 사람 모두 술잔을 들고 즐겁게 마셨다.강여도 매우 기뻤다. “왕야는 그런 사람이
송천초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나도 초경과 일단 산장으로 돌아갈 생각이다.”“마침, 가기 전에 너와 모일 수 있어서 다행이다.”“이곳 일을 마무리하면 꼭 산장에 나를 찾으러 오너라.”낙요는 응했다. “그래, 그때가 되면 꼭 산장에 너를 찾으러 가마.”몇 사람은 잠깐 모여 술을 마신 후, 자시 전에 낙요는 조용히 후문으로 섭정왕부로 돌아왔다정원은 칠흑같이 어두웠다.낙요가 문을 닫자마자, 등 뒤에 갑자기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그녀는 경계하며 고개를 돌렸다.“누구야?”이윽고 익숙한 숨결이 엄습해 왔다.어둠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등 뒤에서 다가와 그녀를 안았다.무심결에 그녀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더니 불쾌한 어투로 말했다. “나가서 술을 마셨느냐?”“누구랑 마셨느냐?”부진환의 나직한 목소리가 귀에 닿자, 숨소리가 낙요를 약간 간지럽혔다.그녀는 다급히 그를 밀어냈다.“누구겠습니까?”“송천초랑 술을 좀 마셨습니다. 그들은 내일 경도를 떠납니다.”이 말을 들은 부진환은 여전히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왜 본왕을 데려가지 않았느냐?”“심녕이 하루 종일 당신에게 매달려 있는데 내가 어찌 당신을 찾아가겠습니까?“제가 정말 당신을 데리고 송천초네 밥 먹으러 간다면 당신은 갈 수 있습니까?”하지만 부진환이 말했다. “네가 말하면, 못 가는 것도 가야지.”이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갑자기 밖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렸다.부진환은 쉿 하라고 손짓했다.두 사람은 문에 바짝 붙어 바깥 동정을 들었다.확실히 정원밖에 수상한 사람이 있었지만,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누구십니까? 늦은 밤, 엿들으러 온 겁니까?” 낙요는 목소리를 낮췄다.“아마 심녕일 거다.” 부진환의 미간은 더욱 쪼그라들었으며 어투는 더욱 무거웠다.낙요는 탄식했다. “심녕은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닙니까? 늦은 밤, 잠도 안 자고 말입니다.”말을 마치자마자 갑자기 정원 밖 멀리서 시위의 고함이 들렸다. “거기 누구냐?곧 시위가 달려와 심녕을 바로 잡아 버렸다.심녕이 설명했다.
문득 부진환이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이런 의혹들을 품고 낙요는 더욱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낙요는 거의 밤새 한잠도 못 잤다.날이 밝자, 부진환을 찾아가 물어보려고 했지만, 심녕이 또 부진환의 서방에 함께 있었다.낙요는 어쩔 수 없이 또 떠나갔다.겨우 심녕이 떠난 것을 보고 낙요가 부진환을 찾아가니, 그녀가 막 도착하자 심녕이 또 먼저 부진환의 서방에 있었다.두세 번 이후, 낙요는 아예 다시 찾아가지 않았다.저녁 무렵에 왕부의 하인이 찾아왔다. “낙 낭자, 왕야께서 몸이 불편하시다고 합니다. 양 의원은 왕부에 안 계시니 낭자께서 왕야의 맥을 좀 짚어주십시오.”이 말을 들은 낙요는 깜짝 놀랐다. “몸이 불편하다고?”왜 갑자기 몸이 불편한가?낙요는 다급히 서방으로 달려갔다.도착했을 때 심녕이 서방에 있었다.그녀는 불쾌한 표정으로 낙요를 노려보았다.부진환은 공무를 처리하느라 심녕을 쳐다보지도 않고 분부했다. “물러가거라. 태풍상사에 또 다른 문제가 있으면 소유를 찾아가면 된다. 사사건건 본왕에게 보고할 필요 없다.”“하지만… 이 일들은 모두 매우 중요하니 왕야께 말씀드려야 마음이 놓입니다.”“필경 태풍상사를 이때까지 경영하면서 저는 저의 모든 심혈을 기울였습니다.”“지금 왕야께서 내놓으시라고 하시니 저는 당연히 사사건건 확실하게 교대해야 마음이 놓입니다.”부진환은 인내심을 잃으려고 한다.이런 말을 요 며칠 동안 그는 수도 없이 들었다.그는 피곤한 듯 이마를 문질렀다.어투도 한층 더 차가워졌다. “본왕이 태풍상사 하나를 설립할 수 있다면, 두 개, 세 개 상사를 설립할 수 있다.”“네가 계속 이렇게 쓸데없는 소리를 하면 태풍상사를 본왕은 없애버릴 수도 있다.”매서운 협박에 심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주먹을 꽉 주었다.“왕야… ““물러가거라!”부진환의 불쾌한 질책 소리에 심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하고 성이 잔뜩 나서 나가면서 낙요를 힐끗 쳐다보기까지 했다.방
다만 부진환의 맥을 짚어볼 기회가 없었다.그다음 날, 낙요는 서방에서 부진환과 함께 공무를 처리하고 그를 도와 밀보도 보고 읽어도 주었다.진지해진 부진환은 완전히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거뜬히 처리할 수 있었다.한편으로는 공무를 처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낙요가 읽어주는 밀보를 들었다.비록 이렇게 하니 진도는 빨라졌지만, 책상 위의 공문은 여전히 매우 많았다.저녁 무렵,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서야 낙요는 소유더러 음식을 가져오라고 분부했다.낙요는 서방에서 부진환과 함께 밥을 먹었다.밥을 먹은 후 계속해서 늦은 밤까지 공무를 처리했다.두 사람은 서방에서 각자 분주히 보냈지만,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서늘한 밤바람이 창문으로 불어 들어오고 촛불은 아른거렸으며 부진환의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났다.낙요는 마직막 밀보를 읽고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들이켰다.이윽고 턱을 괴고 부진환을 쳐다보았다. “저는 다 읽었습니다. 당신은 아직 처리할 공문이 많습니까? 일찍 쉬는 건 어떻습니까?”부진환은 고개를 들고 그녀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아직 조금 남았다. 처리하고 쉬자꾸나.”낙요는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그럼, 여기서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누구야?”문밖에서 잠깐 침묵을 지키더니, 심녕의 목소리가 들렸다,“왕야, 언니가 왕야께 설탕물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왕야께서 서방에서 하루 종일 바삐 보냈으니 좀 마시고 피곤을 푸십시오.”이 말을 들은 부진환은 완곡하게 거절했다. “괜찮다. 본왕은 먹고 싶지 않다.”“언니에게 수고했다고 전하거라.”심녕은 포기하지 않고 몇 마디 더 권했지만, 부진환은 대답하지 않았다.문밖의 사람은 잠깐 서 있더니, 돌아서 가버렸다.심녕은 연신 서방 쪽을 뒤돌아보며 결국 이를 갈더니 화를 내며 떠났다.왕야는 더 이상 그녀를 보고 싶지 않다는 뜻을 명백히 밝히고 있었다.그녀의 언니가 만든 물건도 쳐다보지도 않는다.비로 예전에 왕야의 태도도 매우 차가웠지만
“내일 보자.”부진환은 일어나지 못하자 아예 누워서 차가운 손가락으로 낙요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낮은 목소리 말했다.“본왕은 잠이 오지 않는데 어쩌냐?”낙요는 잠이 왔지만 애써 눈을 떠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그렇다면 조금 더 같이 봅시다.”그러나 부진환은 곧바로 낙요를 안고 몸 아래로 깐 채 낮은 목소리로 귓가에 대고 말했다.“본왕과 다른 것을 해도 좋다.”순간,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어 낙요는 심장이 두근거렸다.곧바로 부드러운 입술이 낙요의 입술을 감쌌다.쌀쌀한 저녁, 갑자기 맹렬한 불길이 타올랐다.오랜 시간의 그리움이 화염으로 바뀌어 두 사람 사이를 휘감았다.…날이 밝기 전에 낙요는 그제야 힘이 들어 깊은 잠에 들었다.이른 아침, 심녕이 또 아침을 전하러 왔다,그러나 서방 밖에 있던 소서가 심녕을 막아섰다.“왕야께서 서방에 안 계십니까?”“그런데 왜 저를 막는 겁니까?”“설마 낙운도 서방에 있는 겁니까?”“들어가 보겠습니다!”소서는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심 낭자, 조금 늦게 오십시오. 왕야께서 막 잠이 들었으니 방해하지 마십시오!”이 말을 들은 심녕은 더욱 화가 났다.막 잠이 들었다는 게 무슨 소리인가?!혼자 서방에 있은 게 아닌 낙운과 함께 밤을 새운 것이다!“들어가겠습니다!”심녕은 억지로 들어가려고 했다.소서는 어두운 안색으로 심녕을 끌고 나갔다.밖의 소란에 낙요는 눈을 떴다.고개를 들어 부진환을 보니, 깨지 않고 깊이 잠든 것 같았다.하여 낙요는 조심스럽게 부진환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었다.부진환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게 느껴지자, 낙요는 동공이 흔들렸다.역시나 맥을 짚지 못하게 하는 건 이유가 있었다!부진환은 병이 아니고, 중독된 것도 아닌 이전 부상들의 후유증이었다.이러한 후유증은 세월 따라 하나둘씩 나타나며, 점점 더 많아지고 예측할 수도 없었다.부진환의 몸은, 이미 죽은 몸이었다.약으로 목숨을 부지하지만, 그 부상들은 하나도 치료할 수 없었다.비록 낙요는 부진환의 몸이 이렇게 될 거
두 사람은 서방에서 오후까지 잤다.소서가 정원을 지키고 있어 아무도 방해하지 못했다.그러나 정원 밖에서, 누군가는 급하다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심녕은 종일 정원을 찾아왔지만, 들어가지 못하게 해 화가 잔뜩 난 채로 떠났다.결국 심녕은 심부설의 정원에 찾아갔다.“언니, 지금 차를 마시며 햇볕을 쬘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왕야를 뺏기게 생겼는데!”심부설은 멈칫하더니 조심스레 정원 밖을 훑어보았다.그러고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말조심해라!”“뺏기긴 뭘 뺏기냐, 왕야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심녕은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눈빛으로 심부설을 보며 말했다.“정녕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는단 말입니까?”“낙운은 엊저녁부터 지금까지 서방에 있습니다!”“소서도 정원을 딱 지키고 있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그러니 둘이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뻔하지 않습니까!”“정말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는단 말입니까?!”심부설은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목소리를 낮추어라.”“왕야는 왕야의 서방에 계신다. 무엇을 하는지 생각할 필요가 뭐가 있느냐.”“우리는 그저 왕야의 부하일 뿐인데, 어찌 간섭한다는 말이냐.”“이 왕부도 왕야의 것이지, 우리의 것이 아니다.”심부설은 속상한 마음에 경쟁도 해보려고 했으나, 그날 낙운의 말에 깨달음을 얻었다.잘 해낼 자신은 없지만, 노력해 보고 싶었다.인연이라면 결국에는 이어질 것이고, 인연이 아니라면 강요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자신의 것이 아닌 건, 아무리 경쟁해도 빼앗아 올 수가 없는 것이다.그러나 심녕은 심부설의 말을 하나도 듣지 않고 오히려 불만을 표했다.“언니, 어찌 자신을 괴롭히는 겁니까?”“저는 누구보다도 언니를 잘 압니다. 그러니 언니의 생각도 알고 있습니다.”“아무도 왕야 마음속 왕비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지만, 언니는 가능합니다!”“언니는 왕야께서 직접 고르신, 왕비와 가장 닮은 사람입니다! 지금 어찌 낙운을 이렇게 대하는지 모르겠지만, 절대 연모의 감정으로 그러는 건 아닙니다.”“하
노점의 다양한 먹거리를 보자, 입맛이 돈 두 사람은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샀다.손을 잡고 시끌벅적한 인파 속을 누비며 두 사람은 순간의 행복을 느꼈다.저녁을 다 먹고 나니 시간이 늦어 두 사람은 남은 것을 들고 예전의 그 가게로 향했다.문을 열자, 바닥의 나뭇잎을 저녁 바람에 날렸다.오랜만인지라 또 먼지가 쌓여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정말 오랜만이구나.”가게에 다시 오니 추억이 떠올라 부진환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그러나 모든 게 변했다.“제가 청소하고 차를 우리겠습니다.”낙요는 급히 물건을 부진환 품에 맡기고 소매를 걷어 올린 다음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부진환은 물건을 놓고 같이 청소하기 시작했다.낙요가 지난번에 와서 청소한 덕분에 먼지와 낙엽을 청소하니 다시 깨끗해졌다.어두컴컴한 정원에 달빛이 비쳤다.낙요는 등불 두 개를 켠 다음 지붕에 걸려고 의자에 올라갔으나, 까치발을 들어도 닿지 않았다.“내가 하마.”부진환은 앞으로 다가가 낙요를 안고 내렸왔다.등롱을 건네받은 부진환은 의자에 올라가 가볍게 등롱을 걸었다.밝고 따뜻한 빛이 순간 퍼졌다.정원의 나뭇가지에 돋은 잎사귀에도 순간 색이 입혀진 것 같았다.등롱을 모두 건 후, 방에 촛불을 밝히자 어둡고 쓸쓸한 정원이 곧바로 따뜻해졌다.정원의 나무 아래에서 물을 끓여 차를 우리자, 차의 향기까지 발산되니 매우 아늑했다.두 사람은 마주 보고 앉아 차를 마시며 바둑을 뒀다.차와 함께 떡을 먹고 쌀쌀한 저녁 바람을 맞았으나 따뜻함이 느껴졌다.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매우 즐거웠다.낮에 온종일 잤던 탓에 두 사람은 자시가 넘어서까지 정원에 누워 손을 잡고 달을 구경했다.미풍에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바닥에 그림자가 비쳤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달이 구름 사이로 숨어버렸다.낙요는 차를 한입 마시고 탄식했다.“비가 오네요.”“돌아가는 게 어떻습니까?”부진환은 실눈을 뜨고 밤하늘을 보며 말했다.“종일 같이 있어 준다고 하지 않았냐. 아직 하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