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요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확실히 의심스럽습니다.”“다만 이 일을 증명할 방법이 없습니다.”그러니 단지 의심일 뿐이다.부진환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만일 심녕이 일부러 심부설에게 약을 먹였다면, 목적은 무엇일까?”낙요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낙요는 다급히 부진환으로부터 떨어져 책상 밖으로 걸어갔다.부진환의 표정은 삽시에 엄숙해졌다. “들어오너라.”문을 밀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심녕이었다.그녀는 깨진 약사발을 들고 있었다.낙요는 살짝 놀랐다.“여기에 계시다니 참 잘됐습니다.” 심녕은 차가운 표정으로 그녀를 힐끔 쳐다보았다.낙요는 이해할 수 없었다.심녕은 깨진 약사발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왕야, 고할 일이 있습니다.”“무슨 일이냐?”심녕은 곁에 서 있는 낙요를 쳐다보며 냉랭하게 말했다. “조금 전 낙운이 제가 없는 틈을 타서 언니에게 약을 가져다주었습니다.”“언니하고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언니는 낙운에게 완전히 세뇌되었습니다.”“다행히 제가 때마침 발견해서 언니가 이 약을 마시는 걸 제지했습니다.“저는 낙운이 이렇게 좋은 심보가 있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져가서 검사해 보았습니다.”“아니나 다를까 이 약에 독이 있었습니다.”“왕야께서 엄하게 벌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낙요는 심녕이 이런 술수를 쓸 거라는 건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부진환도 이 소리를 듣고 몹시 의아했다.그는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독이 있다고? 무슨 독이냐?”심녕은 냉랭하게 말했다. “저는 의원이 아니므로 무슨 독인지 모릅니다.”“왕야께서 만일 제가 저 여인을 모함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양의원을 모셔 검사해 보십시오.”심녕의 태도는 강경하고 당당했다.낙요는 불쾌한 표정으로 반박했다. “내가 나간 후에 당신이 독을 넣었는지 어찌 알겠소?”“내가 만일 독을 넣어 심부설을 해치려고 했다면, 직접 독이 있는 탕약을 그녀의 손에 가져다주지
부진환도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아서 냉랭하게 말했다. “그럼 본왕이 어떻게 하기를 바라느냐?”“낙운을 죽이기를 바라는 것이냐? 아니면 다시 황궁으로 돌려보내길 바라느냐?”심녕은 깜짝 놀랐다. “저는… “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부진환에 의해 끊겨버렸다. “심녕, 네가 낙운에 대해 불만이 있는 거 알고 있다.”“하지만 오늘 같은 일을 본왕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낙운은 이미 왕부에 왔으니 본왕은 절대 내쫓지 않는다. 네가 정말 받아들일 수 없다면 심부설을 데리고 나가서 살거라.”“조용히 휴양도 할 겸.”이 말을 들은 심녕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왕야의 이 말은 태도를 표명한 셈이다.어찌 되었든 그는 낙운을 처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억지로 소란을 피워도 결과는 단 하나다.바로 그녀와 언니가 이사 가는 것이다.낙운은 대체 무슨 내력일까? 왕야는 왜 이렇게 그녀를 감싸주는가?또 어떤 이유로 궁에 들어가게 된 건가?심녕은 몹시 화가 났지만, 그저 낙요를 노려보더니 이를 악물고 말했다. “알겠습니다.”이 말을 끝내고 서방에서 나갔다.--그날 밤, 심부설은 또 낙요를 찾아왔다.그녀에게 사과했다.그리고 심녕이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라고 했다.그 후 며칠 동안 왕부는 조용했다.심녕도 더 이상 낙요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하지만 전술을 바꿨다.거의 매일 부지환의 서방에서 지냈고 혹은 이야기를 다 나눈 뒤에 또 부진환을 찾아갔다.낮에는 거의 대부분 시간을 부진환 곁에서 보냈다.낙요가 부지환을 찾아갈 기회조차 없었다.혼자 있다가 낙요는 조용히 강여와 연락했다.그날 밤, 낙요는 저택으로 돌아와 강여와 그들과 만났다.송천초와 초경도 있었다.몇 사람은 마침 저택에 잠깐 모였다.밤바람은 시원했고 그들은 화원에 앉아 술을 따라 축하하기 시작했다.“낙청연이 드디어 부진환과 오해를 풀고 왕부에 입주한 걸 축하한다.”송천초는 술잔을 들었다.몇 사람 모두 술잔을 들고 즐겁게 마셨다.강여도 매우 기뻤다. “왕야는 그런 사람이
송천초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나도 초경과 일단 산장으로 돌아갈 생각이다.”“마침, 가기 전에 너와 모일 수 있어서 다행이다.”“이곳 일을 마무리하면 꼭 산장에 나를 찾으러 오너라.”낙요는 응했다. “그래, 그때가 되면 꼭 산장에 너를 찾으러 가마.”몇 사람은 잠깐 모여 술을 마신 후, 자시 전에 낙요는 조용히 후문으로 섭정왕부로 돌아왔다정원은 칠흑같이 어두웠다.낙요가 문을 닫자마자, 등 뒤에 갑자기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그녀는 경계하며 고개를 돌렸다.“누구야?”이윽고 익숙한 숨결이 엄습해 왔다.어둠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등 뒤에서 다가와 그녀를 안았다.무심결에 그녀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더니 불쾌한 어투로 말했다. “나가서 술을 마셨느냐?”“누구랑 마셨느냐?”부진환의 나직한 목소리가 귀에 닿자, 숨소리가 낙요를 약간 간지럽혔다.그녀는 다급히 그를 밀어냈다.“누구겠습니까?”“송천초랑 술을 좀 마셨습니다. 그들은 내일 경도를 떠납니다.”이 말을 들은 부진환은 여전히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왜 본왕을 데려가지 않았느냐?”“심녕이 하루 종일 당신에게 매달려 있는데 내가 어찌 당신을 찾아가겠습니까?“제가 정말 당신을 데리고 송천초네 밥 먹으러 간다면 당신은 갈 수 있습니까?”하지만 부진환이 말했다. “네가 말하면, 못 가는 것도 가야지.”이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갑자기 밖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렸다.부진환은 쉿 하라고 손짓했다.두 사람은 문에 바짝 붙어 바깥 동정을 들었다.확실히 정원밖에 수상한 사람이 있었지만,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누구십니까? 늦은 밤, 엿들으러 온 겁니까?” 낙요는 목소리를 낮췄다.“아마 심녕일 거다.” 부진환의 미간은 더욱 쪼그라들었으며 어투는 더욱 무거웠다.낙요는 탄식했다. “심녕은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닙니까? 늦은 밤, 잠도 안 자고 말입니다.”말을 마치자마자 갑자기 정원 밖 멀리서 시위의 고함이 들렸다. “거기 누구냐?곧 시위가 달려와 심녕을 바로 잡아 버렸다.심녕이 설명했다.
문득 부진환이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이런 의혹들을 품고 낙요는 더욱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낙요는 거의 밤새 한잠도 못 잤다.날이 밝자, 부진환을 찾아가 물어보려고 했지만, 심녕이 또 부진환의 서방에 함께 있었다.낙요는 어쩔 수 없이 또 떠나갔다.겨우 심녕이 떠난 것을 보고 낙요가 부진환을 찾아가니, 그녀가 막 도착하자 심녕이 또 먼저 부진환의 서방에 있었다.두세 번 이후, 낙요는 아예 다시 찾아가지 않았다.저녁 무렵에 왕부의 하인이 찾아왔다. “낙 낭자, 왕야께서 몸이 불편하시다고 합니다. 양 의원은 왕부에 안 계시니 낭자께서 왕야의 맥을 좀 짚어주십시오.”이 말을 들은 낙요는 깜짝 놀랐다. “몸이 불편하다고?”왜 갑자기 몸이 불편한가?낙요는 다급히 서방으로 달려갔다.도착했을 때 심녕이 서방에 있었다.그녀는 불쾌한 표정으로 낙요를 노려보았다.부진환은 공무를 처리하느라 심녕을 쳐다보지도 않고 분부했다. “물러가거라. 태풍상사에 또 다른 문제가 있으면 소유를 찾아가면 된다. 사사건건 본왕에게 보고할 필요 없다.”“하지만… 이 일들은 모두 매우 중요하니 왕야께 말씀드려야 마음이 놓입니다.”“필경 태풍상사를 이때까지 경영하면서 저는 저의 모든 심혈을 기울였습니다.”“지금 왕야께서 내놓으시라고 하시니 저는 당연히 사사건건 확실하게 교대해야 마음이 놓입니다.”부진환은 인내심을 잃으려고 한다.이런 말을 요 며칠 동안 그는 수도 없이 들었다.그는 피곤한 듯 이마를 문질렀다.어투도 한층 더 차가워졌다. “본왕이 태풍상사 하나를 설립할 수 있다면, 두 개, 세 개 상사를 설립할 수 있다.”“네가 계속 이렇게 쓸데없는 소리를 하면 태풍상사를 본왕은 없애버릴 수도 있다.”매서운 협박에 심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주먹을 꽉 주었다.“왕야… ““물러가거라!”부진환의 불쾌한 질책 소리에 심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하고 성이 잔뜩 나서 나가면서 낙요를 힐끗 쳐다보기까지 했다.방
다만 부진환의 맥을 짚어볼 기회가 없었다.그다음 날, 낙요는 서방에서 부진환과 함께 공무를 처리하고 그를 도와 밀보도 보고 읽어도 주었다.진지해진 부진환은 완전히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거뜬히 처리할 수 있었다.한편으로는 공무를 처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낙요가 읽어주는 밀보를 들었다.비록 이렇게 하니 진도는 빨라졌지만, 책상 위의 공문은 여전히 매우 많았다.저녁 무렵,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서야 낙요는 소유더러 음식을 가져오라고 분부했다.낙요는 서방에서 부진환과 함께 밥을 먹었다.밥을 먹은 후 계속해서 늦은 밤까지 공무를 처리했다.두 사람은 서방에서 각자 분주히 보냈지만,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서늘한 밤바람이 창문으로 불어 들어오고 촛불은 아른거렸으며 부진환의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났다.낙요는 마직막 밀보를 읽고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들이켰다.이윽고 턱을 괴고 부진환을 쳐다보았다. “저는 다 읽었습니다. 당신은 아직 처리할 공문이 많습니까? 일찍 쉬는 건 어떻습니까?”부진환은 고개를 들고 그녀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아직 조금 남았다. 처리하고 쉬자꾸나.”낙요는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그럼, 여기서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누구야?”문밖에서 잠깐 침묵을 지키더니, 심녕의 목소리가 들렸다,“왕야, 언니가 왕야께 설탕물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왕야께서 서방에서 하루 종일 바삐 보냈으니 좀 마시고 피곤을 푸십시오.”이 말을 들은 부진환은 완곡하게 거절했다. “괜찮다. 본왕은 먹고 싶지 않다.”“언니에게 수고했다고 전하거라.”심녕은 포기하지 않고 몇 마디 더 권했지만, 부진환은 대답하지 않았다.문밖의 사람은 잠깐 서 있더니, 돌아서 가버렸다.심녕은 연신 서방 쪽을 뒤돌아보며 결국 이를 갈더니 화를 내며 떠났다.왕야는 더 이상 그녀를 보고 싶지 않다는 뜻을 명백히 밝히고 있었다.그녀의 언니가 만든 물건도 쳐다보지도 않는다.비로 예전에 왕야의 태도도 매우 차가웠지만
“내일 보자.”부진환은 일어나지 못하자 아예 누워서 차가운 손가락으로 낙요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낮은 목소리 말했다.“본왕은 잠이 오지 않는데 어쩌냐?”낙요는 잠이 왔지만 애써 눈을 떠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그렇다면 조금 더 같이 봅시다.”그러나 부진환은 곧바로 낙요를 안고 몸 아래로 깐 채 낮은 목소리로 귓가에 대고 말했다.“본왕과 다른 것을 해도 좋다.”순간,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어 낙요는 심장이 두근거렸다.곧바로 부드러운 입술이 낙요의 입술을 감쌌다.쌀쌀한 저녁, 갑자기 맹렬한 불길이 타올랐다.오랜 시간의 그리움이 화염으로 바뀌어 두 사람 사이를 휘감았다.…날이 밝기 전에 낙요는 그제야 힘이 들어 깊은 잠에 들었다.이른 아침, 심녕이 또 아침을 전하러 왔다,그러나 서방 밖에 있던 소서가 심녕을 막아섰다.“왕야께서 서방에 안 계십니까?”“그런데 왜 저를 막는 겁니까?”“설마 낙운도 서방에 있는 겁니까?”“들어가 보겠습니다!”소서는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심 낭자, 조금 늦게 오십시오. 왕야께서 막 잠이 들었으니 방해하지 마십시오!”이 말을 들은 심녕은 더욱 화가 났다.막 잠이 들었다는 게 무슨 소리인가?!혼자 서방에 있은 게 아닌 낙운과 함께 밤을 새운 것이다!“들어가겠습니다!”심녕은 억지로 들어가려고 했다.소서는 어두운 안색으로 심녕을 끌고 나갔다.밖의 소란에 낙요는 눈을 떴다.고개를 들어 부진환을 보니, 깨지 않고 깊이 잠든 것 같았다.하여 낙요는 조심스럽게 부진환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었다.부진환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게 느껴지자, 낙요는 동공이 흔들렸다.역시나 맥을 짚지 못하게 하는 건 이유가 있었다!부진환은 병이 아니고, 중독된 것도 아닌 이전 부상들의 후유증이었다.이러한 후유증은 세월 따라 하나둘씩 나타나며, 점점 더 많아지고 예측할 수도 없었다.부진환의 몸은, 이미 죽은 몸이었다.약으로 목숨을 부지하지만, 그 부상들은 하나도 치료할 수 없었다.비록 낙요는 부진환의 몸이 이렇게 될 거
두 사람은 서방에서 오후까지 잤다.소서가 정원을 지키고 있어 아무도 방해하지 못했다.그러나 정원 밖에서, 누군가는 급하다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심녕은 종일 정원을 찾아왔지만, 들어가지 못하게 해 화가 잔뜩 난 채로 떠났다.결국 심녕은 심부설의 정원에 찾아갔다.“언니, 지금 차를 마시며 햇볕을 쬘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왕야를 뺏기게 생겼는데!”심부설은 멈칫하더니 조심스레 정원 밖을 훑어보았다.그러고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말조심해라!”“뺏기긴 뭘 뺏기냐, 왕야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심녕은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눈빛으로 심부설을 보며 말했다.“정녕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는단 말입니까?”“낙운은 엊저녁부터 지금까지 서방에 있습니다!”“소서도 정원을 딱 지키고 있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그러니 둘이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뻔하지 않습니까!”“정말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는단 말입니까?!”심부설은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목소리를 낮추어라.”“왕야는 왕야의 서방에 계신다. 무엇을 하는지 생각할 필요가 뭐가 있느냐.”“우리는 그저 왕야의 부하일 뿐인데, 어찌 간섭한다는 말이냐.”“이 왕부도 왕야의 것이지, 우리의 것이 아니다.”심부설은 속상한 마음에 경쟁도 해보려고 했으나, 그날 낙운의 말에 깨달음을 얻었다.잘 해낼 자신은 없지만, 노력해 보고 싶었다.인연이라면 결국에는 이어질 것이고, 인연이 아니라면 강요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자신의 것이 아닌 건, 아무리 경쟁해도 빼앗아 올 수가 없는 것이다.그러나 심녕은 심부설의 말을 하나도 듣지 않고 오히려 불만을 표했다.“언니, 어찌 자신을 괴롭히는 겁니까?”“저는 누구보다도 언니를 잘 압니다. 그러니 언니의 생각도 알고 있습니다.”“아무도 왕야 마음속 왕비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지만, 언니는 가능합니다!”“언니는 왕야께서 직접 고르신, 왕비와 가장 닮은 사람입니다! 지금 어찌 낙운을 이렇게 대하는지 모르겠지만, 절대 연모의 감정으로 그러는 건 아닙니다.”“하
노점의 다양한 먹거리를 보자, 입맛이 돈 두 사람은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샀다.손을 잡고 시끌벅적한 인파 속을 누비며 두 사람은 순간의 행복을 느꼈다.저녁을 다 먹고 나니 시간이 늦어 두 사람은 남은 것을 들고 예전의 그 가게로 향했다.문을 열자, 바닥의 나뭇잎을 저녁 바람에 날렸다.오랜만인지라 또 먼지가 쌓여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정말 오랜만이구나.”가게에 다시 오니 추억이 떠올라 부진환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그러나 모든 게 변했다.“제가 청소하고 차를 우리겠습니다.”낙요는 급히 물건을 부진환 품에 맡기고 소매를 걷어 올린 다음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부진환은 물건을 놓고 같이 청소하기 시작했다.낙요가 지난번에 와서 청소한 덕분에 먼지와 낙엽을 청소하니 다시 깨끗해졌다.어두컴컴한 정원에 달빛이 비쳤다.낙요는 등불 두 개를 켠 다음 지붕에 걸려고 의자에 올라갔으나, 까치발을 들어도 닿지 않았다.“내가 하마.”부진환은 앞으로 다가가 낙요를 안고 내렸왔다.등롱을 건네받은 부진환은 의자에 올라가 가볍게 등롱을 걸었다.밝고 따뜻한 빛이 순간 퍼졌다.정원의 나뭇가지에 돋은 잎사귀에도 순간 색이 입혀진 것 같았다.등롱을 모두 건 후, 방에 촛불을 밝히자 어둡고 쓸쓸한 정원이 곧바로 따뜻해졌다.정원의 나무 아래에서 물을 끓여 차를 우리자, 차의 향기까지 발산되니 매우 아늑했다.두 사람은 마주 보고 앉아 차를 마시며 바둑을 뒀다.차와 함께 떡을 먹고 쌀쌀한 저녁 바람을 맞았으나 따뜻함이 느껴졌다.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매우 즐거웠다.낮에 온종일 잤던 탓에 두 사람은 자시가 넘어서까지 정원에 누워 손을 잡고 달을 구경했다.미풍에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바닥에 그림자가 비쳤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달이 구름 사이로 숨어버렸다.낙요는 차를 한입 마시고 탄식했다.“비가 오네요.”“돌아가는 게 어떻습니까?”부진환은 실눈을 뜨고 밤하늘을 보며 말했다.“종일 같이 있어 준다고 하지 않았냐. 아직 하루가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