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운희!낙운희는 그 사람과 팔짱을 끼고 내려다보며 아니꼬운 듯 콧방귀를 꼈다.“섭정왕이 사모하는 여인은 월영이라는 사실을 이 경도에서 모르는 사람도 있으려나? 이 추한 여인의 숨통을 끊어버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지, 어디 감히 섭정왕비라고 위세를 부려?!”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하필이면 낙운희가 여기에 있었다니!더 놀라운 건 옆에서 온계람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려왔다는 것이다: “류훼향! 비단부채를 들고 있는 여인이 바로 류훼향 입니다!”이를 들은 낙청연은 의문스러운 생각이 들었다.자세히 보니 낙운희는 류훼향과 꽤 친밀해 보이는 듯했으며 두 사람은 팔짱을 꼭 끼고 있었다. 낙운희는 왜 자꾸 이런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말인가? 주위에 마음씨가 착하고 진심인 친구는 없단 말인가?낙용 고모가 골머리를 앓을 생각을 하니 낙청연도 머리가 아파졌다.“뭘 쳐다보는 거냐? 눈알을 파버릴까 보다!” 낙청연을 비웃던 여인이 입을 열었다.낙청연은 그녀가 누군지 몰랐지만, 꽤 익숙한 얼굴이었다. 궁에서 낙월영과 무리 지어 다니던 그 몇 명이었다.명망이 높은 집안 같지는 않았다. 끼리끼리 뭉친다는 말도 있으니까 말이다.위운하(魏雲霞)는 자신의 호통에도 두려운 기색 없이 오히려 도발하는 듯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하는 낙청연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눈을 파버린다고 했냐? 그래, 내가 직접 찾아가지. 안 파기만 해 봐라!”위운하는 낙청연의 말에 놀라 얼굴색이 확 바뀌었다. “너!”낙청연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올라갈 테니 도망치지나 말아라!”말을 마친 낙청연은 빠른 걸음으로 낙운희 무리가 있는 회현루에 올라갔다.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낙청연이 이렇게 당당하게 위운하더러 눈을 파버리고 할 줄은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자, 해 봐라! 설마 못 하는 건 아니겠지?” 낙청연은 도발의 뜻이 담긴 미소를 지었다.“너! 진짜!” 위운하는 분을 못이겨 얼굴색이 시뻘게졌다.“아까 얘기하지 않았느냐? 파버린다며? 왜 못하는 거냐?” 낙청연은
“아주머니, 하실 말씀 있으면 하시지요. 괜찮습니다.” 낙청연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류훼향을 바라봤다.아주머니라는 말에 류훼향은 참지 못하고 낙청연의 뺨을 때리고자 팔을 들었다. “입 다물어라!”낙청연은 재빨리 다리를 들어 류훼향을 뻥하고 차버렸다.이를 지켜보던 온계람은 바람의 힘을 빌려 류훼향을 누각에서 떨어지게 했다.순간, 모든 사람은 깜짝 놀라 사색이 되고 말았다.풍덩!물에 빠지는 소리였다.사람들은 다급하게 뛰쳐나갔다. 류훼향은 호수에 빠져 아등바등하고 있었다.“세상에!”“낙청연은 간땡이가 부은 게 틀림없어!”“사람부터 구해야지!”회현루는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이때, 부진환은 변장한 황제 부경한(傅景寒)의 성화에 못 이겨 회현루에 끌려왔다.“셋째 형, 같이 가봅시다! 이 회현루가 그렇게 재미있다고 하는데, 아직 한 번도 못 와봤단 말입니다!”부진환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태후께서 몰래 출궁했다는 걸 알면 뭐라 할 게 분명하다.”“거의 반년 동안 궁에만 박혀있었습니다, 정말 숨 막힌단 말입니다!”부경한이 부진환을 끌고 인파를 넘어 회현루에 들어가려던 순간이었다.회현루의 사람들은 물에 뛰어 들어가며 류훼향을 구하려고 애썼다.누각의 천금소저들은 모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으며, 부진환은 한눈에 낙청연을 알아봤다.동시에, 낙청연을 꾸짖는 말들도 부진환의 귀에 들어왔다.낙운희는 놀라우면서도 분노에 차 낙청연을 노려보며 말했다: “낙청연, 정신이 나간 거야? 류훼향은 무려 진태위(秦太尉)의 손자며느리다!”“그게 뭐 어때서? 저 여인이 먼저 손을 댔다.” 낙청연은 아무렇지 않은 듯 입을 열었다.그러면서 물에 빠진 류훼향에게 다가가는 온계람을 쳐다보았다.류훼향이 지닌 부적은 종이류일 것이다. 물에 젖으니 효력을 잃어 온계람은 물에 들어가 미친 듯이 류훼향을 끌어당기며 빠져나오지 못하게 했다.온계람은 류훼향을 물속으로 끌어당기며 물을 먹게 했고, 류훼향을 구하려는 사람들은 류훼향을 끌어올렸다.
부진환은 재빨리 누각으로 향했다. 낙청연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는 모르겠으나, 절대로 가만히 놔둘 순 없다!낙청연이 말을 마치자 온계람은 바로 류훼향을 놓아주고 돌아왔다.류훼향은 마침내 호수에서 빠져나왔다.순간, 누군가가 낙청연의 팔목을 잡고 누각 안으로 끌어당겼다.너무 갑작스러워 낙청연은 그 사람의 품에 부딪히고 말았다.낙청연은 고개를 들어 부진환의 분노에 찬 눈빛을 바라보았다. 부진환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 하거라! 정말 죽일 셈이냐?”이를 들은 낙청연은 흠칫 놀라고 말았다.설마 부진환한테 들킨 건가?그러나 낙청연은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평온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왕야,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무슨 말이긴!” 부진환은 미간을 찌푸렸다.낙청연은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저 여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낙청연은 밖으로 걸어 나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부진환도 따라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사람들이 호수에서 구해낸 류훼향을 보더니 흠칫 놀랐다.낙청연은 부진환의 놀란 표정을 보더니 웃으며 차가운 어투로 말했다: “왕야, 오해는 하지 마세요. 먼저 손을 댄 건 저 여인입니다. 저는 그저 맞지 않으려고 한 것뿐이지요.”“대부 없습니까? 대부 말입니다!” 밑에 있는 사람들은 숨이 끊기려고 하는 류훼향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부진환이 입을 열려던 찰나, 낙청연은 재빨리 밑으로 달려갔다.“제가 하겠습니다.” 낙청연은 앞으로 달려가 류훼향을 가지런히 눕히고 가슴을 누른 다음 일으켜 등을 두드렸다.몇 번을 반복하니 류훼향은 물을 토해냈고 정신을 차렸다.“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회현루의 주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류훼향이 회현루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정말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낙청연은 류훼향의 맥을 짚으며 말했다: “의관으로 데려가세요,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그리고 낙청연은 류훼향의 옷에서 부적을 꺼내 돌아가려고 했다.그러나 위운하는 류훼향을 부축해 일으
류훼향은 더는 손찌검할 엄두가 나지 않는지 손을 거두어들였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서 몸을 떨던 그녀는 성난 얼굴로 반박했다.“섭정왕께서는 사람들 앞에서 왕비의 편을 들어주려 하시는 겁니까?”“다들 보았다시피 왕비가 저에게 발길질하는 바람에 전 물에 빠졌습니다. 왕비는 절 죽일 계획이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섭정왕께서는 이 죄를 그냥 묻어버릴 생각이십니까? 오늘 저에게 합당한 이유를 주지 않으신다면 이 일을 폐하께 고하겠습니다!”류훼향은 극도로 화가 난 상태였다. 진태위의 손주며느리로서 이러한 모욕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류훼향은 오늘 낙청연에게 크게 한 방 먹이지 않으면 절대 그만두지 않을 기세였다.그런데 사람들 틈 사이에서 지켜보고 있던 부경한은 잠깐 흠칫하더니 이내 흥미진진하다는 듯이 웃음을 띠었다.황제가 옆에서 구경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부진환의 얼굴에 언뜻 언짢은 듯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고 그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껴있는 부경한을 힐끗댔다.류훼향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으나 황제가 그곳에 있으니 제멋대로 굴 수는 없었다.“본왕이 왕비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와는 다르군.”부진환은 엄청난 위압감이 담긴 목소리로 싸늘하게 말했고 그 말에 옆에 있던 낙청연은 잠시 흠칫했다. 그녀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들어 부진환을 바라봤다.그가 외부인 앞에서 그녀를 왕비라 칭하고, 그녀의 편을 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눈앞에 있는 자의 얼굴은 여전히 더없이 차가워 보였지만 예전처럼 그렇게 밉지는 않았다.불현듯 계략이 떠오른 낙청연은 부진환의 소맷자락을 잡아당기면서 눈물을 닦았다.“왕야…”“전 입이 백 개라도 해명할 방법이 없습니다.”낙청연은 억울한 얼굴로 류훼향을 가리키며 말했다.“저들이 먼저 저를 비웃었습니다. 저를 돼지우리에서 도망친 암퇘지라고 했지요. 저는 그런 모욕이 익숙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 왕야의 체면을 생각해야 했습니다.””제가 암퇘지라면 왕야는 뭐가 됩니까?”낙청연은 점점 더 서럽게 울기 시작했고
“인제 보니 류 소저는 굳이 궁으로 가서 시비를 가를 생각인 것 같군. 그러면 같이 가지.”그러나 류훼향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호위들이 기세등등하게 몰려와 나란히 서더니 길을 하나 만들어 주었다.류훼향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추워서인지 아니면 겁에 질린 것인지 온몸이 덜덜 떨렸다.회현루의 주인장은 형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것을 보고 얼른 끼어들며 말했다.“여러분 모두 회현루에 오셨으니 다들 친구 아니겠습니까? 웃는 얼굴이 부를 가져다준다는 데 화목하게 지내는 게 좋지요.”“이 일은 저희 회현루에서 일어난 일이고 또 각자 주장하는 바가 있으니 저희 회현루의 규칙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건 어떻습니까?”“그리고 회현루를 나서면 은혜든 원한이든 전부 다 없는 셈 치는 겁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회현루는 대부분 특별한 신분의 귀족 공자들이나 아씨들을 대접했고 오늘은 섭정왕까지 회현루에 왔다.그래서 주인장은 최대한 일을 무마시키려 했다. 혹시나 진짜 궁에까지 이 일이 알려진다면 회현루가 손해를 볼지도 몰랐다.주인장의 말에 류훼향은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하고 말했다.“그래요. 주인장의 말이 맞습니다. 회현루의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요. 왕비, 그럴 용기가 있습니까?”부환은 미간을 구긴 채로 고개를 돌려 낙청연을 바라보았다. 그는 낙청연에게 승낙하지 말라고 눈치를 줄 셈이었다.그런데 낙청연은 생각지도 않고 곧바로 대답했다.“당연하지요.”그녀의 대답에 류훼향은 득의양양한 얼굴로 웃었다.“그래, 승낙했으니 무르면 안 됩니다. 오늘 물에 빠진 사람은 저이니 뭘 겨룰지는 제가 결정할 것입니다.”낙청연의 눈동자에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류훼향이 말한 것이 무예를 겨루는 것임을 눈치챈 낙청연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정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이 회현루의 규칙이 무엇인지는 알아야겠습니다.”부진환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현명하게 굴더니 왜 갑자기 멍청하게 남의 함정에 빠지려 하는 것인지 몰랐다.“낙청연
부진환은 미간을 구기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낙청연, 진짜로 멍청한 것이냐 아니면 멍청한 척하는 것이냐? 류훼향이 일부러 함정을 파놓은 것인데 눈치채지 못한 것이냐?”낙청연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왕야, 걱정하지 마십시오. 왕야께서 체면을 잃을 일은 없을 것입니다.”부진환은 낙청연의 어조에서 조롱을 읽어내고는 더욱더 미간을 좁혔다.“본왕이 체면 때문에 이런다고 생각하는 것이냐?”“아닙니까?”낙청연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설마 날 보호하려고 그런 것일까?그런 생각은 꿈에도 할 리가 없었다.체면 때문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일까?낙청연이 이기든 지든, 체면을 잃든 어찌 되든 그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그가 걱정하고 신경 쓰는 것은 무엇일까?부진환은 갑자기 더없이 냉랭해진 목소리로 말했다.“본왕을 실망시키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경고가 담긴 말투였다.말을 마치고 난 후 부진환은 먼저 걸음을 옮겼고 낙청연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면서 자조했다. 그는 그녀가 그의 마음을 꿰뚫어 보자 역정을 냈다.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좋은 구경거리를 보기 위해 회현루에 모여들었다.하지만 회현루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기에 밖에는 구경하러 온 백성들로 가득했다.회현루 안에서 점원은 탁자마다 차를 올렸고 사람들은 낙청연과 류훼향의 겨루기를 기다렸다.부경한도 몇몇 공자들과 함께 회현루에 들어가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황제가 그곳에 있음을 눈치챈 자는 아무도 없었다.회현루 안은 비교적 조용한 편이었지만 밖은 왈가불가 떠드는 소리로 가득했다.“류 소저의 부군은 젊었을 적 어용 화사였소. 최근 몇 년간 류 소저도 그를 따라 여러 가지 재간을 배웠다고 들었는데, 내가 보기에 류 소저가 왕비보다 서화(書畫)에 더 능할 것 같소.”“내 생각도 그렇소. 왕비는 그닥 이름도 없거니와 소문을 들어보니 아주 무능하다고 하던데 아마 참패할 것 같네.”“그러게 말이오. 동의하지 말아야 했는데, 너무 무모했소.”낙청연은 부진환의 옆
그녀의 목소리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지 않았더라면 수수한 옷차림을 한 여인이 류훼향일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낙운희와 위운하도 도착했고 마침 그녀의 왼쪽에 자리를 잡았다.낙운희는 자리에 앉을 때 낙청연을 쏘아보며 말했다.“훼향 언니의 노여움을 샀으니 망신당할 준비나 하시지요!”“할아버지가 왜 당신을 손녀라고 인정했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당신이 창피를 당하든 말든 상관없지만 저희 집안에 폐를 끼치지는 마시지요! 저희 태부부는 줄곧 좋은 평판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당신 때문에 다 망하게 생겼잖습니까?”낙운희는 할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언니까지 왜 모두 낙청연을 좋아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낙청연은 생긴 것도 별로고 재간도 없으며 심지어 비겁한 수단을 써서 섭정왕비가 되었다.그래서 낙운희는 낙청연이 아주 미웠고 현재는 그녀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했다.낙청연은 콧방귀를 뀌면서 느긋하게 말했다.“네가 말하지 않는다면 이곳에 나와 태부부를 연결 지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당신!”낙운희는 화가 난 얼굴로 낙청연을 노려봤다.바로 그때 류훼향이 낙청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왕비, 우리의 약속을 기억합니까?”낙청연은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당연히 기억합니다. 무엇으로 겨루실 겁니까?”모두들 학수고대하는 눈치였다.사실 그들 모두 이번 시합에서 누가 이기고 질지는 뻔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단지 낙청연이 지고 난 뒤 섭정왕이 그녀에게 무릎을 꿇게 할는지가 궁금할 뿐이었다.비록 창피를 당하는 건 낙청연 본인이겠지만 부진환도 그 때문에 체면이 깎이게 될 것이니 말이다.구경꾼들은 그 모습을 구경하러 온 것이었다.낙청연과 류훼향의 실력은 굳이 비교할 필요가 없었고 낙청연이 이길 거라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다.류훼향이 입을 열었다.“서화를 겨루지요!”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류훼향의 부군 진백리는 과거 어용 화사였고 궁에 걸려있는 태상황과 태후의 초상화는 진백리가 그린 것이었다.류훼향의 그림 실력은 낙청연
“도박을 한 번 해볼 생각이다. 진백리가 이 그림을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구나. 기회가 있다면 그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그 말에 온계람은 깜짝 놀라더니 이내 감격한 듯 대꾸했다.“감사합니다!”그녀는 낙청연이 시합하는 중요한 시각에도 자신의 일을 신경 써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낙청연은 그녀를 진심으로 도우려 하고 있었고 온계람은 무척 고마웠다.—사람이 많은 곳에 시합이 있으면 노름판도 있기 마련이다.밖에서는 누군가 큰 소리로 외치며 낙청연이 이길지 류훼향이 이길지 노름을 벌이고 있었다.원래는 성세가 그리 크지 않았는데 섭정왕이 그곳에 도착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러 왔다.“난 류훼향한테 걸겠소.”“나도 류훼향이오!”“난 삼 냥을 걸겠소!”밖은 소란스러웠고 낙청연은 한참을 들었으나 자신의 이름은 듣지 못했다.낙청연의 눈동자에 순간 돈에 대한 욕망이 일렁였다.그녀는 참지 못하고 손을 들어 병풍을 열어젖혔고, 사람들은 그녀의 행동에 깜짝 놀랐다. 아직 시간이 다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패배를 인정하려는 것일까?그런데 낙청연은 고개를 내밀고는 부진환을 바라보며 말했다.“왕야, 저에게 백 냥을 빌려주시지요!”부진환은 미간을 사정없이 구겼다. 낙청연은 대체 뭘 어쩌고 싶은 거지?부진환은 저도 모르게 손에서 땀이 났다. 그는 불쾌한 어조로 물었다.“뭘 할 생각이냐?”“저에게 백 냥을 걸어 제 체면 좀 살려주시지요. 너무 창피하지 않습니까?”낙청연은 머쓱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부진환은 돌연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미간 사이에 먹구름이 잔뜩 꼈다.부끄러운 걸 알면서도 저런 얘기를 한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가서 천 냥을 걸 거라.”부진환은 두 장의 은표(銀票)를 꺼내 객사의 점원에게 건넸다.점원은 섭정왕의 뜻을 이해하고는 은표를 들고 판돈을 거는 것도 모자라 큰 목소리로 외쳤다.“섭정왕께서는 왕비 마마가 이기는 데 천 냥을 거신답니다!”부진환은 순간 멈칫했다.사람들은 의논하고 있었다.“섭정왕은 왕비에게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