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점점 깊어졌다. 밤바람은 한줄기의 서늘한 기운을 불어왔다. 낙청연은 등 어멈의 부축하에 바람을 쐬러 방에서 나갔다.하지만, 이 시각 화정원에는 갑자기 광풍이 미친 듯이 휘몰아쳤다.낙월영은 동경(銅鏡) 앞에 앉아서 조심스럽게 약을 펴 바르고 있었다.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보고 온통 근심에 쌓였다.얼굴은 언제쯤 나아질까!갑자기, 창문은 광풍에 부딪혀 쾅 하고 열렸다. 대량의 먼지바람과 나뭇잎을 방안으로 몰고 들어왔다.낙월영은 깜짝 놀라서 다급히 소매로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그래도 먼지는 눈에 들어와 눈 앞을 가렸다.“장미, 어찌 된 일이냐?”장미는 다급히 달려와 허둥지둥 창문을 닫았다. 하지만 닫으면 또 열리고 닫으면 또 열렸다.나뭇잎은 강풍에 바스락 소리를 내며 괴이한 기운을 내뿜었다.마지막으로 장미는 문을 닫았다. 하지만 방문은 광풍에 부딪혀 열렸고, 장미마저 바람에 날려갔다. 그녀는 상에 아주 세게 부딪쳐 기절해버렸다.삐걱, 삐걱, 삐걱—쾅, 쾅, 쾅 –창문과 방문은 열렸다 닫혔다 반복하면서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낙월영은 놀란 나머지 갑자기 몸을 웅크리더니 숨어버렸다. 그녀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이런 광경을 그녀는 처음 보는 게 아니었다.그녀는 몹시 무서웠다. 그저 잘 숨어만 있으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러나 이때, 그녀의 등 뒤로부터 싸늘한 느낌이 전해졌다.삼엄하고 무시무시한 목소리가 그녀의 뒤통수에서 울려 퍼졌다--“낙월영, 어째서 나를 우물 속으로 밀쳤느냐? 나는 너를 위해 일을 했는데 왜 나를 죽인 거냐?”그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낙월영은 온몸이 갑자기 경직됐고 순간 얼음 창고에 몸을 담근것처럼 뼛속까지 사무치게 추워졌다.맹금우! 맹금우의 목소리다!공포가 마음속을 엄습했다.살고자 하는 한 줄기의 의식만으로 낙월령은 갑자기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면서 방을 뛰쳐나와 죽을힘을 다해 정원밖으로 도망쳤다.하지만 그녀는 등 뒤의 그 서늘한 기운이 그녀를 바짝 따라오는 것을 느꼈다.쉰 목소리는 분노로
등 어멈은 매우 놀랐다. “왕비, 참으로 대단합니다. 둘째 소저가 스스로 진실을 말하게 하다니요!왕야도 아마 들릴 겁니다!”낙청연은 실눈을 뜨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아직 등불이 환한 정원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연히 들리지.”“하지만 듣고 어떤 반응을 할지는 모르겠구나!”등 어멈은 기뻐하며 말했다: “왕야께서 둘째 소저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선하지 않고 실제로는 마음이 악독하고 수단이 악랄하며 악독하기 그지없다는 것을 알면 반드시 그녀를 예전처럼 대하지 않을 것입니다.”사실 요즘 왕야는 둘째 소저를 일부러 피하고 있었다. 그의 태도에 이미 변화가 생겼는데 지금 진실까지 밝혀지면 왕야는 반드시 둘째 소저를 싫어할 것이다!정원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얼굴에 분노가 가득 쌓인 부진환이 걸어 나왔다.마침 낙월영이 전방의 어딘가를 바라보면서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왕야가 왔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낙월영은 보더니, 입을 가리고 말했다: “낙청연을 상대할 방법도 네가 생각해낸 거였잖아! 혹시 너와 낙청연은 일부러 힘을 모아 나를 해친 거 아니야?”지금 낙월영의 눈에 이 말들은 맹금우가 물어보는 것처럼 보였다.낙월영은 급히 해석했다: “나 아니야, 내가 어떻게 그녀와 손을 잡고 너를 해하겠느냐? 나는 그녀를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하고 있어! 이 멍청하고 못생긴 여인이 어찌 왕비의 자리에 어울린 단말인가? 나는 당연히 네가 왕비가 되길 바랐지!”“만일 낙청연이 아니었다면, 네가 왜 죽겠어? 어서 낙청연을 찾아가서 복수하거라, 그녀를 찾아가거라!”낙월영은 급한 나머지 울고 싶었다. 맹금우는 왜 자신을 찾아왔을까? 분명 낙청연이 그녀를 해친 것인데!이런 말들을 들은 부진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이런 말들이 항상 온화하고 선한 낙월영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그는 그녀가 자신만의 잔꾀는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늘 알고 있었다. 또한 체면을 구기는 일도 종종 했지만, 그녀의 심보가 이토록 악독하다는 것은 전혀
낙월영은 이를 악물고 목숨을 걸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전혀 답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낙청연이 죽는다고 소란을 피우니, 왕야가 그녀에 대한 태도를 바꿀 수 있었다. 그럼 그녀도 가능하다!그녀는 아주 세게 담벽락을 향해 머리를 처박았다.바로 그녀의 이마가 담벽락에 닿았을 때, 아주 큰 힘이 그녀를 뒤로 잡아당겼다.부진환의 안색은 아주 안 좋았다.낙월영은 울며 무릎을 꿇더니 말했다: “왕야, 저는 정말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무슨 허튼소리를 했는지 모르겠으나 그건 모두 저의 뜻이 아닙니다……”이때, 고 신의가 다가오더니, 낙월영의 안색을 보더니 부진환을 보면서 말했다: “왕야, 둘째 소저의 정신은 확실히 흐려진 것 같습니다. 혹시 정신을 흐리게 하는 어떤 약을 복용하여 정신이 흐려진 것 같습니다!”이 말을 듣고 있던 낙월영은 지푸라기라도 잡은 듯이 급히 말했다: “왕야, 그렇습니다. 누군가가 저를 해치려 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왕야, 고 신의도 이렇게 말씀하시니,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부진환은 당연히 낙월영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정신이 맑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낙월영의 오늘 밤 일은, 확실히 기괴하다.그는 자신도 모르게 어딘가를 바라보았다.낙청연은 담벽락 옆에 서 있었다. 부진환의 시선이 갑자기 느껴지자 그녀는 다급히 뒤로 숨었다.부진환은 낙청연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검은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의 두 눈에는 한 줄기의 한기가 스쳐 지나갔다.“여봐라!” 부진환은 사람을 불렀다.즉시 소유에게 분부했다: “화정원을 조사해보거라.”“예”낙월영은 몹시 놀란 표정이었다. 그녀는 너무 무서웠다.부진환은 그녀를 내려보더니, 눈가의 한기를 억누르고 천천히 말했다: “오늘 밤 많이 놀라서 기분이 격해졌구나! 어서 돌아가서 마음을 가라앉히거라. 다시는 바보 같은 짓 하지 말고.”“번거로우시겠지만, 고 신의께서 월영을 데려다주시오.
그 얼굴은 온계람의 얼굴이 되어 나타났다.홍색 옷 한 벌을 입고 있었고, 검은 머리는 폭포수 같았다. 그 더없이 아리따운 얼굴은 참으로 그림처럼 아름다웠다!온계람은 자기의 얼굴을 만지면서 몹시 기뻐했다. 다급히 또 무릎을 꿇더니 말했다: “은공, 감사합니다!”낙청연은 동일한 방법으로 온계람 아들의 얼굴도 바꿔줬다.무서운 흉터가 사라지자, 아이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낙청연은 기침을 몇 마디 하더니, 천천히 앉아서 말했다: “그럼 이제부터 너의 집안일과 너의 신분을 말해 보거라, 내가 도와줄 수 있게.”원래 낙청연은 속전속결(速戰速決), 내일 당장 온계람의 일을 해결해주려고 했다.하지만 온계람의 말을 듣고 그녀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저의 부군은, 태위부(太尉府)의 둘째 공자, 진백리(秦百裏)입니다.”차를 마시고 있던 낙청연은 하마터면 찻물을 내뿜을 뻔했다.“태위부?” 그녀는 온계람의 부군은 아마도 돈은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분도 이토록 높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온계람은 비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전에 제가 확실히 숨겼습니다. 태위부는 보통 집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도 몇 번이고 부군을 찾아갔지만 태위부와 그의 몸에는 모두 부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가까이 갈 수조차 없었습니다!”“만약 이 일이 매우 어렵다면, 은공님께 폐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우리 모자는 원한 때문에 한 가닥의 잔혼(殘魂)만 남아있습니다. 벌써 그 사람과 음양을 사이에 두고 있고, 만난다고 한들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온계람은 더 이상 집착하지 않았다.이분은 비록 섭정왕비라고 해도 그녀는 왕부에서 실제로 권력을 쥐고 있지 않았다. 또한 섭정왕의 총애도 받지 못하고 있는데 그녀를 도우려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온계람 자신도 포기하려고 하는 모습을 본 낙청연은 그녀가 더욱 가여웠다.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그저 너의 부군이 신분과 지위가 이토록 높은 분일 거라고 생각 못했을 뿐이다. 네가 말했듯 이 일은 확실히 어렵다.
낙운희!낙운희는 그 사람과 팔짱을 끼고 내려다보며 아니꼬운 듯 콧방귀를 꼈다.“섭정왕이 사모하는 여인은 월영이라는 사실을 이 경도에서 모르는 사람도 있으려나? 이 추한 여인의 숨통을 끊어버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지, 어디 감히 섭정왕비라고 위세를 부려?!”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하필이면 낙운희가 여기에 있었다니!더 놀라운 건 옆에서 온계람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려왔다는 것이다: “류훼향! 비단부채를 들고 있는 여인이 바로 류훼향 입니다!”이를 들은 낙청연은 의문스러운 생각이 들었다.자세히 보니 낙운희는 류훼향과 꽤 친밀해 보이는 듯했으며 두 사람은 팔짱을 꼭 끼고 있었다. 낙운희는 왜 자꾸 이런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말인가? 주위에 마음씨가 착하고 진심인 친구는 없단 말인가?낙용 고모가 골머리를 앓을 생각을 하니 낙청연도 머리가 아파졌다.“뭘 쳐다보는 거냐? 눈알을 파버릴까 보다!” 낙청연을 비웃던 여인이 입을 열었다.낙청연은 그녀가 누군지 몰랐지만, 꽤 익숙한 얼굴이었다. 궁에서 낙월영과 무리 지어 다니던 그 몇 명이었다.명망이 높은 집안 같지는 않았다. 끼리끼리 뭉친다는 말도 있으니까 말이다.위운하(魏雲霞)는 자신의 호통에도 두려운 기색 없이 오히려 도발하는 듯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하는 낙청연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눈을 파버린다고 했냐? 그래, 내가 직접 찾아가지. 안 파기만 해 봐라!”위운하는 낙청연의 말에 놀라 얼굴색이 확 바뀌었다. “너!”낙청연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올라갈 테니 도망치지나 말아라!”말을 마친 낙청연은 빠른 걸음으로 낙운희 무리가 있는 회현루에 올라갔다.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낙청연이 이렇게 당당하게 위운하더러 눈을 파버리고 할 줄은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자, 해 봐라! 설마 못 하는 건 아니겠지?” 낙청연은 도발의 뜻이 담긴 미소를 지었다.“너! 진짜!” 위운하는 분을 못이겨 얼굴색이 시뻘게졌다.“아까 얘기하지 않았느냐? 파버린다며? 왜 못하는 거냐?” 낙청연은
“아주머니, 하실 말씀 있으면 하시지요. 괜찮습니다.” 낙청연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류훼향을 바라봤다.아주머니라는 말에 류훼향은 참지 못하고 낙청연의 뺨을 때리고자 팔을 들었다. “입 다물어라!”낙청연은 재빨리 다리를 들어 류훼향을 뻥하고 차버렸다.이를 지켜보던 온계람은 바람의 힘을 빌려 류훼향을 누각에서 떨어지게 했다.순간, 모든 사람은 깜짝 놀라 사색이 되고 말았다.풍덩!물에 빠지는 소리였다.사람들은 다급하게 뛰쳐나갔다. 류훼향은 호수에 빠져 아등바등하고 있었다.“세상에!”“낙청연은 간땡이가 부은 게 틀림없어!”“사람부터 구해야지!”회현루는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이때, 부진환은 변장한 황제 부경한(傅景寒)의 성화에 못 이겨 회현루에 끌려왔다.“셋째 형, 같이 가봅시다! 이 회현루가 그렇게 재미있다고 하는데, 아직 한 번도 못 와봤단 말입니다!”부진환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태후께서 몰래 출궁했다는 걸 알면 뭐라 할 게 분명하다.”“거의 반년 동안 궁에만 박혀있었습니다, 정말 숨 막힌단 말입니다!”부경한이 부진환을 끌고 인파를 넘어 회현루에 들어가려던 순간이었다.회현루의 사람들은 물에 뛰어 들어가며 류훼향을 구하려고 애썼다.누각의 천금소저들은 모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으며, 부진환은 한눈에 낙청연을 알아봤다.동시에, 낙청연을 꾸짖는 말들도 부진환의 귀에 들어왔다.낙운희는 놀라우면서도 분노에 차 낙청연을 노려보며 말했다: “낙청연, 정신이 나간 거야? 류훼향은 무려 진태위(秦太尉)의 손자며느리다!”“그게 뭐 어때서? 저 여인이 먼저 손을 댔다.” 낙청연은 아무렇지 않은 듯 입을 열었다.그러면서 물에 빠진 류훼향에게 다가가는 온계람을 쳐다보았다.류훼향이 지닌 부적은 종이류일 것이다. 물에 젖으니 효력을 잃어 온계람은 물에 들어가 미친 듯이 류훼향을 끌어당기며 빠져나오지 못하게 했다.온계람은 류훼향을 물속으로 끌어당기며 물을 먹게 했고, 류훼향을 구하려는 사람들은 류훼향을 끌어올렸다.
부진환은 재빨리 누각으로 향했다. 낙청연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는 모르겠으나, 절대로 가만히 놔둘 순 없다!낙청연이 말을 마치자 온계람은 바로 류훼향을 놓아주고 돌아왔다.류훼향은 마침내 호수에서 빠져나왔다.순간, 누군가가 낙청연의 팔목을 잡고 누각 안으로 끌어당겼다.너무 갑작스러워 낙청연은 그 사람의 품에 부딪히고 말았다.낙청연은 고개를 들어 부진환의 분노에 찬 눈빛을 바라보았다. 부진환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 하거라! 정말 죽일 셈이냐?”이를 들은 낙청연은 흠칫 놀라고 말았다.설마 부진환한테 들킨 건가?그러나 낙청연은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평온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왕야,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무슨 말이긴!” 부진환은 미간을 찌푸렸다.낙청연은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저 여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낙청연은 밖으로 걸어 나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부진환도 따라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사람들이 호수에서 구해낸 류훼향을 보더니 흠칫 놀랐다.낙청연은 부진환의 놀란 표정을 보더니 웃으며 차가운 어투로 말했다: “왕야, 오해는 하지 마세요. 먼저 손을 댄 건 저 여인입니다. 저는 그저 맞지 않으려고 한 것뿐이지요.”“대부 없습니까? 대부 말입니다!” 밑에 있는 사람들은 숨이 끊기려고 하는 류훼향을 보며 소리를 질렀다.부진환이 입을 열려던 찰나, 낙청연은 재빨리 밑으로 달려갔다.“제가 하겠습니다.” 낙청연은 앞으로 달려가 류훼향을 가지런히 눕히고 가슴을 누른 다음 일으켜 등을 두드렸다.몇 번을 반복하니 류훼향은 물을 토해냈고 정신을 차렸다.“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회현루의 주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류훼향이 회현루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정말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낙청연은 류훼향의 맥을 짚으며 말했다: “의관으로 데려가세요,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그리고 낙청연은 류훼향의 옷에서 부적을 꺼내 돌아가려고 했다.그러나 위운하는 류훼향을 부축해 일으
류훼향은 더는 손찌검할 엄두가 나지 않는지 손을 거두어들였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서 몸을 떨던 그녀는 성난 얼굴로 반박했다.“섭정왕께서는 사람들 앞에서 왕비의 편을 들어주려 하시는 겁니까?”“다들 보았다시피 왕비가 저에게 발길질하는 바람에 전 물에 빠졌습니다. 왕비는 절 죽일 계획이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섭정왕께서는 이 죄를 그냥 묻어버릴 생각이십니까? 오늘 저에게 합당한 이유를 주지 않으신다면 이 일을 폐하께 고하겠습니다!”류훼향은 극도로 화가 난 상태였다. 진태위의 손주며느리로서 이러한 모욕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류훼향은 오늘 낙청연에게 크게 한 방 먹이지 않으면 절대 그만두지 않을 기세였다.그런데 사람들 틈 사이에서 지켜보고 있던 부경한은 잠깐 흠칫하더니 이내 흥미진진하다는 듯이 웃음을 띠었다.황제가 옆에서 구경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부진환의 얼굴에 언뜻 언짢은 듯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고 그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껴있는 부경한을 힐끗댔다.류훼향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으나 황제가 그곳에 있으니 제멋대로 굴 수는 없었다.“본왕이 왕비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와는 다르군.”부진환은 엄청난 위압감이 담긴 목소리로 싸늘하게 말했고 그 말에 옆에 있던 낙청연은 잠시 흠칫했다. 그녀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들어 부진환을 바라봤다.그가 외부인 앞에서 그녀를 왕비라 칭하고, 그녀의 편을 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눈앞에 있는 자의 얼굴은 여전히 더없이 차가워 보였지만 예전처럼 그렇게 밉지는 않았다.불현듯 계략이 떠오른 낙청연은 부진환의 소맷자락을 잡아당기면서 눈물을 닦았다.“왕야…”“전 입이 백 개라도 해명할 방법이 없습니다.”낙청연은 억울한 얼굴로 류훼향을 가리키며 말했다.“저들이 먼저 저를 비웃었습니다. 저를 돼지우리에서 도망친 암퇘지라고 했지요. 저는 그런 모욕이 익숙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 왕야의 체면을 생각해야 했습니다.””제가 암퇘지라면 왕야는 뭐가 됩니까?”낙청연은 점점 더 서럽게 울기 시작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