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에게 진 것은 엄청난 치욕이었다.제호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몰살하더라도 절대 이 여인에게 무릎 꿇고 사과할 생각이 없었다.다음 순간, 제호가 데리고 온 호위들이 일제히 나타나 낙청연을 향해 달려들었다.그때 암시장의 호위들도 곧바로 출동했다.분위기는 삽시에 날카롭게 변했다.겁을 먹은 구경꾼들은 혹시라도 억울하게 죽을까 봐 연신 뒷걸음질 쳤다. 제호는 낙청연을 죽어라 노려보다가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바로 그때, 검은색 옷을 입은 자가 날아왔고 은침 몇 개가 휙 날아왔다.살기등등했다.제호는 잽싸게 피했고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은침은 바닥으로 떨어졌다.위엄 가득한 목소리가 허공에서 들렸다.“감히 누가 나 우홍의 여동생을 건드리는 것이지?”그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사람들은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곧 그들은 처마 위 검은 옷을 입은 그를 볼 수 있었다. 귀신의 가면을 쓴 그는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겁먹게 하기에 충분했다.제호는 눈살을 찌푸렸고 순간 움츠러들었다.그는 암시장과 정면으로 적이 되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그는 이내 마음속 분노에 지배되어 화를 내며 말했다.“당신이 바로 반귀성의 성주요?”“난 운주의 통령 제호요!”“오늘 이 여인은 나에게 미움을 샀소. 이 여인을 내게 넘긴다면 잘잘못을 따지지 않을 것이고 반귀성을 탓하지 않을 것이오!”제호가 거만하게 말했다.우홍은 몸을 날려 바닥에 착지했다. 그는 낙청연의 앞을 막아서면서 제호를 마주했다. 그는 두려움이라고는 전혀 없었다.암시장이 이런 인물에게 밉보여서는 안 되지만 말이다.정말로 맞서 싸운다면 암시장은 그를 이길 수 없었다.하지만 우홍은 차갑고 단호하게 말했다.“낙청연은 우리 반귀성의 아가씨고 나 우홍의 여동생이오!”“감히 낙청연을 건드리는 건 날 건드리는 것이고 암시장을 건드리는 것이오!”그 말에 제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옆에 있던 우림은 대경실색했다.“당숙! 설마 저 여인이 암시장을 물려받게 할 생각입니까? 저야말로 당숙
우림은 바닥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그는 당황하며 소리를 질렀다.“주락! 뭐 하는 것이오? 얼른 손을 쓰시오!”멀리 서 있던 주락이 그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낙청연은 우림의 가슴팍을 힘껏 밟고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매서운 눈빛으로 말했다.“내가 말했지. 오늘 반드시 네 팔을 자를 것이라고!”말을 마친 뒤 낙청연은 바닥에서 검을 들었다.그녀는 우림의 팔을 향해 힘껏 검을 휘둘렀고 처절한 비명이 허공을 갈랐다.선혈이 사방으로 튀었다.우림은 잘린 팔을 붙잡고 아픈 듯이 비명을 연신 내질렀다.그 장면은 무척이나 잔인했지만 낙청연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다.“겨우 너 따위가 감히 성주의 자리를 넘봐? 쓰레기 같은 놈!”낙청연은 그를 발로 걷어찼다.그런데 바로 그때 주락이 만방검을 빼앗고 검을 들고 낙청연을 향해 달려들었다.낙청연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바라보다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만방검을 들고 있음에도 기세가 부족하네. 복맹과는 차이가 너무 크군.”검을 든 복맹의 기세는 사람을 섬뜩하고 두렵게 만들 수 있었지만 주락은 훨씬 뒤떨어졌다.주락은 낙청연의 앞에 멈춰 서서 사나운 눈빛으로 검을 들어 낙청연을 겨냥했다.“오늘 만방검은 저의 것입다. 제가 세 수를 먼저 내드리지요.”낙청연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적어도 그는 검을 빼앗은 것이 나쁜 짓이라는 걸 알아서 그녀에게 세 수를 먼저 내주었다.아마 그녀가 세 번 공격하게 만든 뒤 그녀를 죽일 생각인 듯했다.낙청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낙청연의 입꼬리가 차갑게 올라갔고 그녀는 손을 들었다.구십칠이 검갑을 들고 천천히 낙청연의 앞으로 걸어왔다.검갑이 열리자 주락이 눈을 빛냈다.낙청연은 부러진 천참검을 서서히 들어 한 번 살피고는 주락에게 다가갔다.“봐줄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당신이 제 세 수를 견디지 못할까 걱정되는군요.”차가운 말이었다. 건방지기 짝이 없었지만 주락은 확실히 흠칫 떨었다.주변에서는 격렬한 전
우홍이 뒤쫓아왔을 때였다.갑자기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나 전투에 뛰어들었다.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행동을 멈췄다.그들은 일제히 길을 열어주는 그 방향을 바라보았다.무수한 시위가 몰려오더니, 뒤따라 위엄 있는 한 사람이 느긋한 걸음으로 걸어 들어왔다.순간 뭇사람은 가슴이 뜨끔했다.제호는 들어오는 사람을 보더니 감격해 마지않았다. 그는 필사적으로 기어 일어나, 비틀거리며 침서에게 달려갔다.“대장군! 마침 잘 오셨습니다!”제호는 화가 나서 우홍과 낙청연을 가리키며 말했다. “장군님 어서 군사를 파견하여 반귀성을 진압하십시오! 반귀성의 성주가 저를 죽이려고 합니다!”“그리고 저 여인이 저에게 도발했습니다. 저는 이 여인을 잡아끌고 가서 관기로 만들겠습니다.”상처투성이가 된 제호는 우홍의 상대가 되지 않자, 자신의 배후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마침 침서가 왔다. 그는 분명 침서가 자신을 위해 싸울 거로 생각했다.그런데 침서는 마지막 한마디 말을 들었을 때, 안색이 돌연 어두워졌다.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제호를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 뭐라고 하였더냐?”“저 여인이 뭐 어떻다고?”제호는 침서의 눈빛과 돌변한 그의 어투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분노해서 말했다.“저 여인이 감히 저의 만방검을 빼앗았습니다. 순순히 검을 바치지 않고 뭐 하느냐? 저는 저 여인과 내기하였습니다. 만약 저 여인이 패하면 제가 잡아끌고 가서 관기를 시키겠다고 말입니다.”“이렇게 아리따운 낭자를 죽이면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만약 대장군께서 마음에 들면 일단 장군께서 실컷 즐기다가 나중에 저희에게 주십시오!”이 말을 들은 침서의 안색은 확 변했다.제호는 몹시 기대됐다.침서가 왔으니, 그 누가 또 굴복하지 않겠는가?그런데 다음 순간, 제호의 득의가 가득한 웃음은 그대로 얼굴이 굳어버렸다.침서가 다급히 낙청연에게 달려가더니,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괜찮으냐?”침서는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마음 아파하며 낙청연의 얼굴에 묻은 선혈을 닦아주었다.낙청연은
“당장 꺼지지 못하느냐!”제호의 부하들은 아주 신속하게 철수했다.삽시에 이곳은 썰렁해졌다.우홍도 다들 물러가라고 손짓했다.암시장의 시위가 급히 앞으로 달려와 시신을 끌고 나갔으며, 깨끗이 청소한 후에 신속하게 철수했다.이곳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고, 유독 공기 중에 가득한 피비린내만이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침서는 자책과 죄책감이 가득한 눈빛으로 낙청연을 쳐다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미안해! 홧김에 너를 여기 혼자 남겨두는 게 아니었어!”낙청연은 담담한 눈빛으로 그를 힐끔 쳐다보며,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침서가 없으면 오히려 낙청연은 더 조용하고 좋다.떠나지 않고 그곳에 있던 주락은 마침 침서의 그 말과, 그 어투를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낙청연이 그를 발견하고 냉랭한 어투로 말했다. “아직도 가지 않았습니까? 한 번 더 싸워볼 생각입니까?”주락은 읍하더니, 두 손으로 공손히 만방검을 건넸다.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그는 감히 돌려주지 않을 수 없었다.검을 건네받은 낙청연은 마음속으로 주락은 그나마 눈치는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생각밖에 주락이 또 말했다. “다만, 저는 여전히 낭자와 겨뤄보고 싶습니다! 시간 되실 때, 공평하게 한번 겨뤄봅시다!”복맹이 죽었다. 하지만 복맹은 이 여인이 죽였다. 그럼, 이 여인은 분명 복맹보다 더 강할 것이다.주락은 오랫동안 복맹에게 억압당했다.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복맹에게 도전할 수 없으니, 이 복맹을 죽인 여인을 도전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낭자께서 저의 도전을 받아주시길 바랍니다!”주락은 재삼 간곡히 부탁했다.낙청연은 생각하더니, 말했다. “좋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한 달 뒤에 다시 봅시다.”이 말을 들은 주락은 매우 기뻐했다.그런데 낙청연이 말했다. “제호가 만방검이 꼭 필요했던 건, 당신에게 주기 위해서입니까?”“그는 만방검으로 당신의 마음을 사려했습니까?”이 말을 들은 주락은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어떻게 그녀는 이렇게 전부 다 알고 있을까?
이 말을 하며 침서는 붓과 종이를 가져와 앉아서 그리기 시작했다.그는 신속하게 그려 낙청연에게 건넸다.“이 모양이다. 마음에 드냐?”낙청연은 쳐다보았다. 몸통은 가늘고 몹시 가벼워 보였으며, 검 자루 근처에 ‘낙’자가 새겨져 있었다.낙청연이 물었다. “이런 검 하나를 만드는데 얼마나 걸립니까?”침서는 웃으며 말했다. “보름 안에 꼭 만들어 주마.”낙청연은 의아했다. “보름 안에 가능하단 말입니까?”침서는 입꼬리를 올려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가능하다. 그러나 네 도움이 필요하다.”“뭘 도와주면 됩니까?”“내가 필요한 재료를 반드시 3일 안에 구해 산으로 옮겨야 한다.”이 재료들은 암시장에서 구하기 그다지 힘들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 낙청연은 바로 대답했다. “문제없습니다!”뒤이어 침서는 진지하게 도면을 완성했고, 낙청연은 잠시 옆에서 지켜보았다.한편으론 침서의 천부적인 주검 기술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오직 검을 만들 때만, 그는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진지했다.낙청연도 더 이상 방해하지 않고 방에서 나갔다.뒤이어 집으로 돌아온 낙청연은 우화응을 만났다.우홍은 이미 그녀를 찾아왔다.우화응은 정원에서 낙청연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낙청연을 보자, 그녀는 바로 낙청연을 향해 걸어왔다.“일전에 있었던 일은 미안합니다.”“그리고 저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낙청연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때 당신은 우경성에게 통제되었던 겁니다. 그러니 미안해하지 않아도 됩니다.”“예전에 저에게 했던 말은 모두 진실입니까?”우화응은 다급히 말했다. “모두 진실입니다. 한 마디의 거짓도 없습니다.”“다만 그때 저는 당신에게 숨기는 게 있었습니다.”“저의 오라버니가 우단봉에게 접근한 일을 숨겼습니다.”“다른 건, 다 진실입니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웃으며 말했다. “그럼, 더 이상 사과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이 돌아왔다는 건, 이미 성주에게 해명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우경성이 한 짓은 당신과 상관없으니, 마음에
“당신은 먼저 가서 말을 준비하십시오. 저는 구십칠에게 할 말이 좀 있습니다.”“알겠다.”뒤이어 침서는 말을 준비하러 갔다.낙청연은 마침 큰길에서 구십칠과 뒤에서 따라오는 기옥을 만났다.“내가 보름동안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으니, 네가 암시장을 좀 돌봐주거라.”“그리고 나 대신 오라버니에게 말 좀 해줘.”구십칠은 고개를 끄덕이었다. 마침 말고삐를 끌고 오는 침서를 보더니 구십칠은 걱정하며 물었다. “침서와 함께 가시는 겁니까? 위험하지 않겠습니까?”“괜찮다.”“제호가 죽었으니, 앞으로 암시장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잘 지켜보도록 하거라. 만일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이곳에 와서 불꽃을 터뜨리도록 하거라. 그럼, 내가 볼 수 있다.”낙청연은 말을 하며 구십칠에게 지도 한 장을 건넸다.구십칠은 열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이었다. “알겠습니다. 당신도 조심하십시오.”낙청연이 돌아서 막 가려고 하는데, 문득 기옥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기옥의 얼굴에 흑기가 뒤덮여 있었다.낙청연은 이를 보고 저도 몰래 깜짝 놀랐다.“왜 그러십니까?” 기옥은 낙청연의 이상해하는 눈빛을 보더니 궁금해하며 물었다.낙청연은 기옥을 한쪽으로 끌어당기더니 말했다. “요즘 집안 식구들은 괜찮으냐?”기옥은 잠시 멍해 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평안합니다. 왜 그러십니까?”낙청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의 얼굴에 흑기가 뒤덮인 걸 보아하니, 가족의 운세가 그다지 좋지 않은 모양이다. 아마도 혈광지재가 있는 듯하니, 시간이 있으면 집에 돌아가 보거라.”기옥은 이 말을 듣고 약간 놀라더니,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이때, 침서의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다. “청연, 출발해야 한다.”“지금 가지 않으면 어둡기 전에 도착할 수 없겠구나.”낙청연은 기옥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스스로 조심하거라.”이 말을 끝내고 그녀는 몸을 돌려 가버렸다.침서는 말 두 필을 끌고 와서, 한 필을 낙청연에게 건넸다. 두
낙청연은 침서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제호가 침서의 손에 죽었다는 소식은 분명 널리 퍼질 것이다.설령 원수가 있더라도 운주영의 사람은 아닐 것이다. 필경 제호의 죽음은 그들에게 좋은 점만 있을 뿐 나쁠 건 없다. 이 통솔자의 자리는 분명 많은 사람이 다툴 것이다.만일 누군가 이 원한을 암시장에 품고 있다고 해도, 우홍을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어젯밤 그 전투에서 제호조차 우홍의 상대가 못되었는데, 그 누가 감히 또 제 발로 찾아오겠는가?잠깐 휴식을 취한 후, 낙청연은 시간을 보더니 말했다. “먹을 걸 좀 찾아오겠습니다.”침서가 그녀를 불렀다. “내가 같이 가 줄까?”낙청연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 “아닙니다.”“당신은 당신 볼일 보십시오.”낙청연은 숲속으로 걸어갔다. 침서가 따라 나와, 멀리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여기는 천궐국과 가장 가까운 곳이다.그녀는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모르겠다.침서는 따라가 보고 싶었지만, 생각해 보더니, 그만뒀다. 혹여라도 낙청연이 발견하면 분명 화낼 것이기 때문이다.곧 침서는 물건을 정리하며 분주히 움직였다.그는 방안의 침대도 다시 정리했다.낙청연은 조용한 숲속을 걸었다. 날은 점점 저물어 갔고 어둠이 숲을 뒤덮는 모습을 보며 처음 이곳에 왔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그때의 그녀는 어떻게 여기서 도망갈지 매일 생각 했다.그런데 어느 날 주동적으로 침서를 따라 이곳에 오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앞길은 낯설고도 익숙했다.제월산장은 어떻게 되었을까?이미 재건되었겠지?주위는 여전히 사냥감이 보이지 않았다. 낙청연은 계속해서 찾으러 갔다.전방 풀숲에 드디어 움직임 소리가 들렸다.낙청연은 허리를 굽히고, 허리춤에서 비수를 뽑아 살금살금 다가갔다.풀숲에 꿩 한 마리가 있었다.낙청연은 민첩한 행동으로 즉시 비수를 내던졌다. 꿩은 날개를 퍼덕이었지만, 낙청연의 비수에 날개가 찔렸다.낙청연은 즉시 달려가 꿩을 붙잡아 들고 만져보았다. 하지만 너무 야위여서 두 사람 먹기에는
이치대로라면, 벙어리는 이곳을 알 이유가 없다.벙어리는 손짓으로 그녀를 따라 함께 산에 올라왔다고 했다.“당신은 나를 따라온 것이오?”벙어리는 고개를 끄덕이었다.“혹시 진익이 시킨 것이오?”벙어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 또 고개를 흔들었다.낙청연은 그의 긴장한 표정을 보더니,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됐소. 당신을 나무라지 않았소.”“마침 잘 됐소. 나도 아직 식사 전이니, 함께 먹기오.”벙어리는 고개를 끄덕이었다.곧 두 사람은 주위에서 토끼 한 마리를 잡아, 시냇가에서 깨끗이 씻은 후 불더미 위에 올려놓고 굽기 시작했다.정리하고 나니, 이미 밤이 되었다. 밤바람은 차가운 기운을 불어왔다.낙청연은 추위에 불더미 옆으로 바짝 다가갔다.벙어리는 일어나 바람받이에 앉았다. 그는 몸으로 그녀를 위해 밤바람을 막았다.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계속 고기를 구웠다.낙청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세심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진익이 당신에게 또 새로운 명령을 내렸소?” 낙청연은 그가 갑자기 떠났던 그날이 떠올랐다. 아마도 진익이 그를 불렀을 것이다.벙어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뭇가지로 썼다: 침서를 지켜보라고 했소.“침서를 지켜보라고? 그런 거였군!”낙청연은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벙어리는 벙어리만의 임무가 있다. 그건 그녀와 상관없다.“그럼, 당신은 줄곧 산에 있을 생각이오? 우리는 산에서 보름은 묶어야 하오.”벙어리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들이 언제 하산하면 그도 언제 산에서 내려갈 거라고 뜻을 표했다.낙청연은 이 산의 밤바람을 느껴보더니, 속상해하며 말했다. “이 산의 밤은 너무 춥소.”“잇닿아 있는 이 몇 개의 산에는 동굴이 없소. 오직 숲이요. 밤을 어떻게 보낼 셈이요? 불을 피우겠소?”“아니면 나와 함께 저쪽에 있는 집으로 가는 게 어떻소?”그러나 벙어리는 고개를 흔들며 승낙하지 않았다.“침서를 만날까 봐 그러는 것이오? 하긴, 당신이 우릴 따라온 걸 침서가 알게 되면 그는 절대 당신을 가만두지 않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