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죽이려는 건 부진환 한 명뿐이다.-모 지하실.지하실 안에는 지도가 걸려 있었고 탁자 위에는 무지막지하게 큰 모래로 만든 지형 모형이 있었다. 그곳은 일을 논하는 곳이었다.부진환은 창백한 안색으로 차를 마시고 있었다.“콜록콜록...”소소가 재빨리 그의 등을 두드렸다.“왕야, 몸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습니다. 더는 지하실에 계시면 안 됩니다. 이곳은 너무 음산합니다.”부진환은 기침을 멈춘 뒤 손을 저었다.“나가면 침서에게 발각될 것이다.”“그는 여국인이기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를 찾을 수 있다.”“오직 이곳만이 음기가 양기를 덮어 들키지 않을 수 있다.”소소는 어쩔 수 없었다.“왕야만이 이런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을 겁니다.”그곳은 시묘살이의 지하실이었다.정확히 말하면 시묘살이가 식량을 저장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지하실 위는 온통 무덤이었다.지하실은 음기가 강하고 무척 추웠다. 아무리 옷을 두껍게 껴입어도 싸늘하고 음산한 기운을 막을 수는 없었다.부진환은 거의 두 달 가까이 그곳에서 머물며 침서의 추격을 피했다.그는 비밀리에 서릉을 관리하면서 전략을 세워 국면을 장악하고 있었다.부진환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다. 그는 여국 군대가 서릉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삼십 리 가까이 몰아냈다.국면은 좋았다.하지만 부진환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허약해져 갔다.바로 그때, 부장이 다급히 지하실로 내려와 선전포고서를 건넸다.“왕야, 이건 침서가 화살로 쏘아서 보낸 겁니다. 왕비 마마를 잡았다고 합니다!”그 말에 부진환의 안색이 급격히 달라졌다.그는 다급히 그것을 열어보았다. 그 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부진환, 낙청연은 이미 내 손안에 들어왔소. 당신은 나와 목숨을 걸고 한판 싸워야 할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낙청연을 내 병사들에게 넘겨 그들을 섬기게 할 것이오. 나는 낙청연이 죽도록 괴롭길 바라오. 그리고 난 섭정왕의 명성이 온 세상에 알려지게 할 것이오!”부진환은 그 글을
전고(戰鼓)가 울렸고 여국 대군은 다시 국경에 다다랐다.이번에는 부진환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전투에 나섰다.여국 군대의 선두에 사람은 침서였다.부진환을 보는 순간, 침서는 차갑게 웃었다.“드디어 숨지 않고 모습을 드러냈군! 보기 드문 일이오!”부진환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낙청연은 어디 있소?”침서는 차가워진 눈빛으로 득의양양하게 입꼬리를 당겼다.“죽였소.”부진환의 눈동자에 살기가 솟구치기 시작했다.“어떻소? 나랑 생사를 걸고 마지막 승부를 겨루겠소?”침서의 눈동자에서 뜨거운 빛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손을 쓰고 싶었다.부진환이 검을 들고 다가갔고 그 순간 소서는 심장이 철렁했다.침서는 거만한 미소를 짓더니 검을 빼 들고 뛰어내렸다. 그는 오늘 자신의 두 손으로 부진환을 죽일 셈이었다.두 사람은 상대방을 향해 검을 휘둘렀고 두 사람이 맞붙는 순간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살기등등했다.공격을 주고받으며 부진환이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침서, 우리 중 누가 이길 거로 생각하오?”“쓸데없는 소리, 당연히 나 아니겠소? 난 평생 진 적이 없소!”침서는 차갑게 웃으며 거만하게 말했다.부진환은 사력을 다해 침서의 공격을 막으며 차갑게 대꾸했다.“두 군대가 있는 이 자리에서 모든 이들이 당신이 천궐국 섭정왕을 죽이는 걸 본다면 어떤 결과가 있을 것 같소?”침서는 냉소했다.“당신을 죽이면 뭐 어떻소?”“난 지금 황위에 앉아있는 부운주가 당신과 원한이 있다는 걸 알고 있소. 당신이 죽는다고 해서 그가 나라의 힘을 다하여 여국을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오.”“오히려 당신을 죽여줘서 내게 고마워할지도 모르지!”침서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부진환의 심장을 사정없이 찔렀다.부진환은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해 침서의 검에 찔렸고 체내의 골정 두 개가 날아갔다.그러나 부진환은 웃었다.“기억하시오. 나 하나 죽인다면 천궐국 황제는 당신에게 고마워하겠지.”“하지만 한 명이라도 더 죽인다면 당신은 천궐국 전체의 적
“침서, 당신과 함께 돌아갈 테니 지금 당장 철수하세요.”낙청연이 서늘한 음성으로 말했다.침서는 곧바로 손을 들었고 여국 대군은 전진을 멈췄다.침서는 낙청연을 향해 손을 뻗었다.“진짜 나와 함께 돌아가겠느냐?”낙청연은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단호히 손을 내밀었다.침서는 의기양양하게 입꼬리를 당겼다. 그는 다소 흥분한 듯 보였다. 침서는 낙청연을 자신의 말에 앉히고는 선뜻 몸을 돌렸다.여국 대군은 결국 철수했다.소소는 그 장면을 보고 중얼거렸다.“여국이 물러났습니다. 왕비 마마께서 이 전쟁을 멈춘 겁니다...”부진환은 주먹을 꽉 움켜쥐며 흐릿한 시야 속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초조함을 안고 몸을 일으키려 했는데 결국 피를 토하며 정신을 잃었다.“왕야!”-흥분한 침서는 말을 채찍질하며 빠르게 달렸다.낙청연의 귓가에는 거친 바람 소리와 침서의 환희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낙요야, 이건 네가 처음으로 나와 말을 타고 싶어 한 것이다.”낙청연은 서늘한 눈빛으로 덤덤히 말했다.“천천히 가는 게 좋겠습니다. 귀가 아픕니다.”침서는 속도를 늦췄다.낙청연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이곳에 오기 전 사상환을 먹었고 침서에게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아직 여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전 당분간 몸조리를 해야 합니다.”침서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대답했다.“그래. 네가 원하는 만큼 쉬자꾸나. 나와 함께 내가 검을 만들던 곳으로 가겠느냐?”낙청연은 덤덤히 그러자고 대답했다.낙청연의 냉담한 반응에도 침서는 뛸 듯이 기뻐했다.여국 대군은 여국 국경으로 후퇴했고 낙청연은 다시 한번 산에 올랐다.산에 오를 때는 말을 탈 수 없었고, 낙청연은 몸이 너무 허약해 산에 오를 수 없었다. 그래서 침서는 기꺼이 그녀를 업고 산에 올랐다.산기슭에서부터 산꼭대기까지 침서는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낙청연은 침서가 그녀를 가두었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왔다.산속은 아직 추웠고 낙청연은 기침하면서 옷을 여몄다.“춥습니다.”침서는 황
침서는 살짝 흠칫하더니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낙청연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정말입니까? 아까워서 죽일 수 있겠습니까?”침서는 쭈그리고 앉아 그녀에게 차를 한 잔 따라주었다.“내가 아끼는 건 낙요 너뿐이다.”“네 몸이 조금 나아진다면 낙정을 죽이러 가겠다.”“이 산에 널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시선을 내려뜨린 낙청연의 눈동자에 차가운 빛이 감돌았다. 낙청연은 유유히 말했다.“제가 도망칠까 봐 두려운 건 아니고요?”“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먼저 당신과 함께 떠나겠다고 했으니 다시 돌아갈 일은 없습니다.”서릉을 떠나는 그 순간, 낙청연은 천궐국과 더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몇 번이고 죽었으니 이제 포기할 때도 됐다.낙청연은 마지막 시간을 사부님이 끝내지 못한 일을 끝내는 데 쓸 생각이었다.“그러면 약재를 구해오마.”지금 이 순간, 침서는 너무 다정해서 마치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그러나 낙청연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침서가 미치광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바로 변덕스러운 그의 성미 때문이었다.낙청연은 눈을 감았다. 피곤한 그녀는 그냥 이대로 잠이 들어 다시는 깨고 싶지 않았다.침서는 방에서 나갔고 문을 닫은 뒤 떠났다.그는 아주 빠른 속도로 약재를 구했고 땀을 뻘뻘 흘리며 산을 올랐다. 문을 열었을 때 창백한 얼굴의 낙청연은 여전히 의자에 기대어 있었다.침서는 그제야 불안하던 마음이 사그라들었다.곧이어 그는 마당에서 약을 달였다.도중에 잠에서 깬 낙청연은 눈을 실처럼 가늘게 떴다. 그녀는 평온하면서도 냉담한 표정으로 바삐 움직이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문득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침서 오라버니, 사부님은 제게 취분산(聚焚山)에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직 강대한 혼령들을 조종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일곱 살짜리 소녀는 내키지 않는 듯이 취분산의 비석 밖에 서 있었다.소년은 소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무서워하지 말거라. 내가 널 보호해 줄 것이다. 사부님이
그 순간, 갑자기 그 기억이 떠올렸다.마치 낙청연에게 침서의 일시적인 선의에 다른 목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일깨워 주는 듯했다.침서는 어릴 적부터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악랄한 사내였다.연민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낙요야. 자, 마시거라.”갑자기 침서의 목소리가 들렸고 낙청연은 정신을 차렸다.약그릇을 건네받은 낙청연은 그것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뜨겁습니다.”“그러면 내가 불어주마.”낙청연이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아니요.”침서는 약 두 병을 꺼내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이 약은 너의 내상을 치료하는 약이다. 잠시 뒤에 같이 먹거라.”말을 마친 뒤 침서는 또 떠났다. 그는 방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그녀를 위해 이불을 펴고 음식과 옷을 마련했다.낙청연은 움직이고 싶지 않아 줄곧 의자에 누워있었다.약을 마신 뒤 낙청연은 다시 잠이 쏟아졌다.침서는 방 안의 불더미에 장작을 더한 뒤 자리를 떴다.그에게 낙정을 죽이라고 했으니 결과를 가져와야 했다.-서릉.부진환은 다친 채로 침상 위에 누워있었고 소소는 송우를 거의 둘러업다시피 해서 데려왔다.바닥에 발이 닿는 순간에도 송우는 어안이 벙벙했다.그는 다급히 부진환의 맥을 짚고 상처를 검사했다.그는 깜짝 놀라 말했다.“몸에 왜 이렇게 상처가 많은 것이오?”“송 의원, 지금 왕야를 구할 수 있는 건 당신뿐입니다. 제발 왕야의 목숨을 구해주세요!”소소는 애간장이 탔다.송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최선을 다하겠소.”“얼른 물건을 좀 준비해 주시오.”소소는 황급히 대답했다.물건이 도착하자 송우는 손을 씻고 바늘을 불길에 달군 뒤 바늘로 상처를 꿰매기 시작했다.소소는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 바늘은 상처의 깊은 곳부터 꿰매었는데 갑자기 피가 솟구치며 피투성이가 되어 소소는 머리털이 쭈뼛 섰다.송우는 바짝 긴장했다. 부진환의 몸에는 골정이 남긴 수많은 구멍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꿰맨 적이 없었다.원래는 저절로 나아야 했지만 무엇으로 만든 골정인지 상처가
소소는 그 말에 깜짝 놀라더니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한빙영지가 어디 있습니까? 제가 찾겠습니다!”소소가 말하면서 문을 나서려고 할 때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제게 한빙영지가 있습니다.”다음 순간, 송천초가 부랴부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천초냐?”송우는 깜짝 놀랐다.송천초는 다급히 한빙영지를 송우에게 건넸다.“아버지, 얼른 사람을 구하세요.”송우는 눈을 반짝이더니 이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소소는 감격한 듯 말했다.“송 낭자, 정말 감사하오!”송천초는 숨을 고르면서 물었다.“청연은요? 어디 있습니까?”초경이 산에서 그녀를 마중했기에 이렇게 빨리 서릉으로 올 수 있었다.만약 초경이 없었다면 아마 이틀 더 걸렸을 것이다.소소는 그 말에 난색을 드러내며 송천초를 밖으로 데려갔다.그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왕비 마마는 침서와 함께 떠났소.”“여국으로 갔소.”그 말에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뭐라고요? 여국에 갔다고요?”“왜입니까?”소소는 당시 상황을 송천초에게 얘기했다.아주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소소는 왜 왕비가 침서를 따라갔는지 알지 못했다.송천초는 그 말을 들은 뒤 안색이 어두워졌다.청연이 떠났다니, 앞으로 그녀와 또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잠시 뒤, 송우가 방에서 나왔다. 잔뜩 굳어져 있던 그의 표정이 살짝 풀려 있었다.“송 의원, 왕야는...”송우는 미소를 지었다.“목숨은 건졌소.”“침서의 검이 급소를 찌르지는 않았는데 하필 그 검의 살기가 매우 강해 당분간 좀 쉬어야 할 것이오.”소소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송 의원!”송우도 지쳐 송천초를 데리고 떠났다.거처로 돌아온 뒤 송우는 휴식했고 송천초는 텅 빈 마음으로 홀로 처마 밑에 앉았다. 그녀는 많은 시간을 쏟아부어 약재를 구했고, 많은 산과 하천을 넘으면서 어렵사리 진소한의 기만이 가져다준 슬픔을 잊었다.그런데 돌아와서 낙청연이 여국으로 돌아갔다는 말을 들으니 또다시 기분이 가라앉았다.마음
초경은 아주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침서가 산에서 내려온 지 사흘째였다.낙정을 죽이러 갔다고는 하지만 낙청연은 그가 진짜 낙정을 죽일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낙청연은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낙청연은 방 안에서 3일 동안 지내면서 외출하지 않았다. 그저 방문을 열어두고 의자에 누운 채로 문밖의 풍경을 바라볼 뿐이었다.며칠 동안 약을 마시니 조금 힘이 나는 것 같았다.그날 밤, 낙청연은 몸을 일으켜 마당에서 조금 움직였고 나침반으로 수련도 했다.그런데 갚자기 숲속에서 발소리가 들렸다.하지만 침서의 발소리가 아니었다.낙청연은 숲을 빤히 바라보았다.그러다 갑자기 남색 옷을 입은 여인이 험악한 얼굴로 기세등등하게 걸어왔다.그녀를 보는 순간 낙청연은 깜짝 놀랐다.고묘묘(高渺渺)!그녀가 오다니.고묘묘는 마당에 있는 낙청연을 훑어보았다. 낙청연은 흰색 옷에 검은 망토를 두르고 있었고 창백한 얼굴은 달빛을 받아 투명해 보여 죽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침서가 선호하는 용모였다.“당신이 침서가 천궐국에서 납치한 그 섭정왕비오?”낙청연은 덤덤히 대답했다.“이미 휴서를 받았으니 섭정왕비가 아니오.”“당신이 섭정왕비든 아니든 침서와 함께한다면 난 당신을 죽일 것이오!”고묘묘는 눈빛을 섬뜩하게 빛냈다. 그녀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채찍을 꺼냈고 채찍이 지면을 때리는 매서운 소리가 들렸다.낙청연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차갑게 말했다.“그에게 불만이 있으면 그를 찾아가야 하는 것 아니오?”고묘묘는 낙청연과 쓸데없는 얘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낙청연을 향해 힘껏 채찍을 휘둘렀다.낙청연은 다급히 몸을 피했고 마당에 있던 나무 탁자와 나무 의자는 채찍 때문에 두 쪽으로 갈라졌다.낙청연은 곧바로 죽림 쪽으로 달렸다.고묘묘가 휘두른 채찍이 대나무에 막힌 틈을 타 낙청연은 울창한 숲속으로 뛰었다.고묘묘는 채찍을 아주 잘 썼다.힘을 많이 쓸 때는 사람의 팔을 자를 수 있을 정도였다.고묘묘는 재빨리 낙청연을 뒤쫓으며 위협했다.“순순히 죽임을 당
낙청연이 부적을 찢자 철추가 낙청연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채찍이 날아오는 순간, 낙청연이 손을 뻗어 채찍을 잡았다.그리고 강하게 잡아당기니 오히려 고묘묘가 끌려왔다.고묘묘는 깜짝 놀라며 날아왔는데 낙청연은 그 틈을 타서 고묘묘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고묘묘는 멀리 날아가 나무에 세게 부딪힌 뒤 바닥에 쓰러져 입에서 피를 토했다.“당신! 당신은 대체 누구지?”고묘묘는 놀란 표정으로 창백한 얼굴에 허약해 보이는 낙청연을 바라보았다.그녀는 낙청연이 영혼을 조종해 빙의하게 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빙의된 사람이 힘이나 정신력이 강하지 않다면 언제든 집어삼켜질 수 있었다.그것도 떠도는 외로운 영혼이라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날 수 없기에 더더욱 육신을 갈망한다.그러니 허약해 보이는 낙청연이 영혼을 조종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낙청연은 영혼을 조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힘을 쓸 수 있었다.“낙청연이오.”낙청연이 덤덤히 대답했다.온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차가운 어조였다.낙청연의 온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고묘묘는 어쩐지 섬뜩해졌다.바로 그때, 낙청연은 가슴께가 아팠고 목구멍에서 피비린내가 났다.그녀는 손을 들어 가슴께를 누르면서 피비린내를 참았다.비록 철추의 힘을 빌렸지만 그녀의 몸으로는 철추의 존재를 버틸 수 없었다.고묘묘는 그 장면에 흠칫하더니 이내 다시 달려들었다. 그녀는 기회를 틈타 기습하려 했고 낙청연을 향해 채찍을 휘둘렀다.낙청연은 곧바로 뒤로 물러서면서 거리를 벌렸지만 결국 늦었다. 고묘묘의 채찍은 일반 채찍보다 더 길었다.낙청연은 채찍 끝머리에 목이 감겼다.목이 졸리니 숨이 막혔다. 낙청연은 순식간에 멀리 날아가서 나무에 부딪힐 뻔했다.바로 그때, 누군가 나타나 나무에 부딪히려는 낙청연을 안았다.침서의 눈동자에 살기가 일었다. 그는 낙청연을 바닥에 내려놓은 뒤 순식간에 고묘묘의 앞으로 다가갔다.그는 고묘묘가 들고 있던 채찍을 그녀의 목에 한 바퀴 감은 뒤 나뭇가지 위를 뛰어넘었다.
묵계는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뱀독이 확산하여 썩어가는 송천초의 피부를 보니, 그녀는 못내 싫어졌다.시간이 흐르면 뱀독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 그러다 오장육부를 다치면 이 몸은 더 이상 소용이 없다.묵계는 갑자기 방법이 떠올랐다.“좋다. 진법을 거두거라. 나오겠다.”묵계도 조금 조급해졌다.“약속하거라. 너에게 다른 몸을 찾아줄 테니 절대 다른 짓 하지 말거라.”낙요가 말했다.“그래. 어서!”두 사람은 드디어 의견이 맞았다.낙요가 진법을 없애자, 묵계도 순순히 송천초의 몸에서 나왔다.낙요는 특별히 두 가닥의 혼이 모두 나왔는지 확인했다.낙요는 얼른 부적을 송천초의 몸에 붙였고 묵계는 다시 송천초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하지만 묵계는 낙요를 빤히 보고 있었다. 그녀는 낙요가 가까이 오자 바로 낙요의 미간을 파고들었다.그녀는 순식간에 낙요의 몸속으로 들어갔다.낙요는 심한 충격을 입은 듯 휘청이며 뒤로 물러서서 의자를 붙잡고 그제야 안정을 찾았다.그녀의 귓가에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하하하. 다른 몸을 찾을 필요 없다. 네 몸이 아주 마음에 드는구나.”“혼을 빼앗는 것에 난 도가 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너를 대신하여 여국의 여제가 될 것이다.”낙요는 안정을 찾고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지었다.“동하국에 너무 오래 있어, 바깥세상을 본 적 없는 모양이구나.”“아무나 너에게 혼과 몸을 빼앗기는 것은 아니다.”“제사장족의 대제사장들을 들어본 적 있느냐?”묵계는 낙요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제사장족? 동하국 사람한테서 들은 적 있다. 그때 나를 공격한 젊은이들도 제사장족 사람들이었다.”“그들이 쓰는 진법은 네 진법과 다를 것이 없다. 보아하니 너도 제사장족이구나.”“잘됐구나. 네가 강할수록 너의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이다.”묵계는 아직도 기뻐하고 있었다.낙요가 난감한 듯 웃었다.“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구나.”“너처럼 순진한 요괴는 처음 보
백서는 바로 방에서 물러나 방문을 닫았다.조영궁 밖이 조용해지자, 병풍 뒤에서 그림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초경이었다.그는 쓰러져 있는 송천초를 품에 안고 있었다.낙요는 안색을 굳히고 다급히 앞으로 걸어갔다.“어찌 된 일입니까?”초경은 송천초를 연탑에 눕히고 설명했다.“동하국에서 괴물을 만났습니다...”초경은 사건의 경과를 간단히 설명했고 묵계의 신분도 알려주었다.그의 말을 듣고 낙요의 표정이 굳어졌다.“그렇습니까?”“방법이 있습니까? 그 괴물은 천초의 몸을 차지하려는 것입니다. 독을 없애서 깨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천초가 위험할 것입니다!”초경은 몹시 조급했다.낙요가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급해하지 마십시오. 방법이 있습니다.”“천초 몸 안에 있는 묵계의 혼을 뽑는 것은 자신 있습니다.”“밖을 지키고 있으세요.”초경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놓였다.낙요는 여국에서 제일 강한 대제사장이었으니, 분명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천초는 괜찮을 것이다!“예. 밖에 있겠습니다.”초경은 바로 방에서 나가 정원을 지키고 있었다.낙요는 피로 진을 그려 송천초의 몸을 뒤덮었다.그리고 송천초 몸 안의 혼을 빼내기 시작했다.물론 묵계가 그녀의 몸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아, 과정이 쉽지 않았다.손을 세게 쓰면 송천초를 다치게 할 수도 있고 약하게 하면 묵계를 꺼낼 수 없었다.“넌 누구냐? 감히 나를 상대하려는 것이냐?”묵계의 낮고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여국과 오랫동안 싸웠는데, 여국의 여제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냐?”낙요는 가소롭다는 듯 답했다.그 말을 듣고 묵계는 깜짝 놀랐다.“여국 여제? 평범한 사람을 위해 이 진까지 쓰는 것이냐?”“이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난 너에게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나와 손을 잡지 않겠느냐?”낙요가 가볍게 웃었다.“보아하니 넌 사람의 감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사랑도 모르고 우정도 모른다.”“네가 몸을 원한다면 더 좋은 몸을 찾아주겠다. 얌전히 송천
“대체 뭘 하려는 거냐!”초경이 매섭게 물었다.“나는 살고 싶다. 나를 풀어주면 안전한 곳에 가서 이 여자를 풀어주마.”그 말을 듣고 초경이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너를 풀어주면 천초를 놓아줄 것이라 믿지 않는다.”묵계가 담담하게 웃었다.“비록 웅황주가 나를 몰아냈지만, 이미 이 여인의 몸에 혼을 한 가닥 남겼다. 지금 두 가닥의 혼이 몸에 들어있으니, 7일 후 혼을 잃고 나의 몸이 될 것이다.”“이 몸은 이제 내 것이다.”“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얘기할 자격도 없다. 내 말대로 해야 이 여자는 살 기회가 있다!”“나를 놓아주거라!”묵계의 위협에 초경은 주먹을 꽉 쥐고 분노를 억눌렀다.“가거라.”“3일 후, 반드시 천초를 만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널 찾아 죽일 것이다.”묵계가 입꼬리를 올렸다.“좋다!”말을 마치고 묵계는 약사의 몸을 끌고 빠르게 그곳을 떠났다.낙현책이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걸어갔다.“정말 이렇게 풀어주는 것입니까? 천초 고모를 놓아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초경은 묵계가 떠난 방향을 빤히 보며 말했다.“괜찮다. 멀리 가지 못할 것이다.”낙현책은 살짝 놀랐다.이내 다들 그녀를 따라갔다.그들은 바닷가 암초에서 묵계를 따라잡았고 그녀는 이미 쓰러져 있었다.유생은 그녀가 중독된 것을 알아차렸다. 발목을 보니, 어느새 뱀에게 물려 있었다.유생이 고개를 돌려 초경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초경이 한 일인 것 같았다.초경은 놀라지 않고 마음 아픈 표정으로 송천초를 안았다.“천초를 데리고 먼저 돌아갈 테니 너희들은 부 태사를 돕거라.”“예!”이내 초경은 시선 속에서 사라졌다.다들 부 태사를 도우러 갔다.부진환은 병사를 이끌고 동하국을 공격했다. 비록 동하국 사람은 적지 않았지만, 방어에 강한 성벽과 무기가 없었고 선박뿐이었다.여국 병사들이 끊임없이 섬에 오르고 있으니, 동하국이 멸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초경은 송천초를 안고 청주로 돌아와 묵계의 혼을 어떻게든 몰아내려고 했지만, 줄곧 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금색 진법이 나타나 묵계를 진법 안으로 가두었다. 귀를 뚫을 듯한 그 노랫소리는 진법 속에 가로막혔다.흰옷을 입은 제사장족 제자 수십 명이 하늘에서 나타났다.그들은 복숭아나무 위에 가볍게 서서 열 손가락으로 진법을 그렸고 손끝에는 금빛 부문이 흐르고 있었다.묵계는 깜짝 놀란 후 그제야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깜짝 놀라 송천초를 바라보았다.“너구나!”송천초가 차갑게 웃었다.“설마 내가 혼자 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묵계는 굳은 표정으로 분노에 찬 듯 말했다.“괘씸하구나! 너에게 속다니!”그때, 밖에서도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송천초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부 태사가 사람을 데리고 동하국을 공격했으니, 당신은 도망가지 못할 것입니다.”“차라리 순순히 잡히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그녀는 어젯밤 묵계를 만난 후 막사로 돌아가 바로 이 일을 부진환에게 알리고 대책을 논의했다.부진환은 그 여자가 동하국 약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초경도 분명 그 여자의 손에 있을 테니 그에 따른 계획을 세웠다.그녀가 혼자 묵계를 만나러 간 것도 다른 사람에게 길을 안내하기 위해서였다. 다들 기관선을 이용해 그녀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묵계가 뱀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송천초는 웅황을 가득 챙겨 몸을 지키려 했다.묵계는 진법 속에서 절망하여 초경을 바라보며 말했다.“너와 나도 동족이라 할 수 있다. 나한테 한 짓을 다시 너한테도 할 것이다! 사람은 절대 믿어선 안 된다!”“정말 저 사람들을 도우려는 것이냐?”“초경. 난 너를 죽이려 한 적 없다!”초경은 한숨을 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너의 처지가 안쓰럽지만, 우린 동족이 아니다.”“우린 다르니, 같다고 하지 말거라.”“너의 딱한 처지를 보아, 솔직히 말하마. 동하국은 곧 멸망할 것이니, 너도 원수를 갚은 셈이다. 마음 놓고 떠나거라.”그 말을 듣고 묵계는 넋을 잃고 그들을 싸늘하게 훑어보았다.“죽으려면 함께 죽겠다!”묵계는 하늘을 향해 소
“그는 감금되었다. 우리는 그를 구할 수 없다. 그를 구할 유일한 방법은 바로 너의 몸과 나의 힘을 합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기회가 있다.”그 말을 듣고 송천초는 눈살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뜻입니까?”묵계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나와 하나가 될 수 있느냐? 그를 구할 수도 있고 그와 같은 수명을 가질 수도 있다.”“두 사람은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다.”“하지만 대가로 아픔을 겪을 수도 있다.”“할 수 있느냐?”송천초는 미간을 찌푸리고 사색에 잠겨 대답하지 않았다.묵계가 말을 이었다.“이곳은 동하국이다. 그들이 설치한 함정에 나는 들어갈 수 없고 평범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네가 들어가도 그를 구할 수 있겠느냐?”“우리가 힘을 합치면 할 수 있다! 잠시 힘을 합쳐 그를 구하고 다시 방법을 생각해 떨어지는 것이 어떠냐?”묵계가 한참 말을 한 뒤에야 송천초는 그녀의 말을 허락했다.“좋습니다. 허락하겠습니다.”그 말을 듣고 묵계는 기쁠 따름이었다. 송천초가 이렇게 쉽게 넘어올 줄은 몰랐다.만약 이 몸을 빼앗는다면 초경에게 청신요를 쓰지 않아도 된다.“좋다. 바로 자리를 옮겨서 시작하자.”송천초는 고개를 끄덕이고 묵계를 따라 복숭아나무가 무성한 곳으로 갔다.사방을 둘러보니 온통 복숭아나무였고 다른 것은 없었다.송천초는 묵계의 말에 따라 다리를 꼬고 앉았다.묵계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그녀와 손바닥을 마주하고 있었다.“시작할 것이다. 조금 불편할 테니 참거라.”묵계는 말을 마치자마자 시작했다.송천초는 괴로워하며 눈살을 찌푸렸고 온몸의 기운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옆에 있던 복숭아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밀실에서 독을 없애려 애쓰고 있던 초경은 순간 송천초의 존재를 느꼈다.그는 번뜩 눈을 뜨고 송천초가 주위에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게다가 그녀는 지금 위험하다!초경은 마음이 초조했다. 그는 송천초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독을 없애기도 전에 다급히 밀실 문을 부수고 뛰쳐나갔다.묵계의 혼이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그 여자는 분명 온몸이 흠뻑 젖었지만, 송천초를 향해 걸어오는 도중 옷과 머리카락이 말랐다.송천초는 위험을 감지하고 바로 사람을 부르려 했다.그녀가 있던 곳에 마침 암초가 있어 그 여자의 모습을 막았다. 옆에 바로 청주군의 막사가 있었는데 이렇게 대담하게 이곳으로 오다니!송천초가 사람을 부르려는 그때, 여자가 입을 열고 그녀를 저지했다.“나는 적의가 없다. 그저 너를 찾으러 왔다.”“저요?”송천초는 의아한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송천초라 하느냐?”묵계는 그녀를 살펴보았다. 그녀가 본 기억 속의 그 여자와 똑같이 생겼다.“어떻게 아는 것입니까?”묵계가 웃으며 말했다.“나는 묵계라고 한다. 초경이 위험에 처해 있어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송천초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을 졸이며 저도 몰래 앞으로 한 걸음 걸어갔다.“무슨 일입니까?”“당신은 대체 무슨 사람입니까? 어찌 당신을 믿을 수 있습니까?”묵계 뒤에서 뱀 꼬리가 나타났다.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나는 그와 동족이다. 그가 너를 찾아오라 한 것이다.”“만약 그를 구하고 싶다면 오늘 밤 홀로 이곳에 오거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너를 데리고 그를 만나러 가겠다.”그 말을 듣고 송천초가 물었다.“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동하국입니까?”“그곳 말고 더 있느냐?”“오직 너만이 그를 구할 수 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거라. 초경의 목숨을 구하고 싶다면 내가 시킨 대로 하거라.”말을 마치고 묵계는 경계하며 막사를 힐긋 보고 몸을 돌려 바다로 사라졌다.송천초가 추궁하기도 전에 묵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그녀가 무슨 사람인지 말한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알 수 없었다.하지만 종일 불안했던 것을 생각하면, 초경에게 정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갑자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병사가 상황을 보러 왔다.“방금 이쪽에서 인기척이 있길래 보러 왔습니다. 무슨 일 없는 것입니까?”송천초는 망설이다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게 들리는 그 노랫소리는 그의 의식을 흐릿하게 했다. 그는 애써 소리를 막으려고 했지만, 자꾸 귀를 파고들었다.초경은 한참 몸부림치다가 결국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와 머리를 움켜쥐고 고통스럽게 바닥에 쓰러졌다.묵계는 그 모습을 보고, 그제야 그에게 다가갔다.“너를 상대하기가 참 어렵구나. 하지만 나를 너무 얕본 것 같구나. 인어족의 청신요는 죽어가던 사람도 깨울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현혹해 행동을 조종할 수도 있다. 쉬이 사용하지 않던 방법인데 이렇게 너에게 쓰게 됐구나.”묵계는 가볍게 웃으며 천천히 웅크리고 앉아 손을 뻗어 초경의 얼굴을 스쳤다.“청신요로 너의 기억을 바꾸면 오늘부터 나의 명을 따르며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거부하지 말거라. 자칫 잘못하면 정신을 잃을 수도 있다.”묵계는 웃으며 말을 마치고 손을 초경의 머리 위에 얹은 후 청신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맑은 소리가 주문처럼 초경의 귓가에 맴돌면서 바늘처럼 그의 머리를 파고들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묵계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애먹였다.그녀는 의지력이 이렇게 강한 사람을 본 적 없었다.묵계는 싸늘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버티고 있는지 봐야겠구나!”그녀의 손끝이 초경의 미간에 가볍게 닿자, 그녀는 실패의 원인을 찾았다.그의 기억 속에는 온통 다른 여자뿐이다.그것도 평범한 여자였다.청신요의 통제를 받지 않고 기억을 지우지도 못할 정도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니.묵계는 내키지 않았다. 그 여자가 자신과 함께 있고 싶지 않은 원인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고작 수십 년의 수명만 갖고 있어 결국 늙어 죽기에 그들과는 다르다.감정이라는 것을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의 육체가 다치지 않았다면 청신요를 쓰는 것도 애먹을 리 없었을 것이다.보아하니 이 방법으로는 그를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그럼...묵계의 눈에 빛이 반짝였다.묵계는 초경을 업고 돌아가 밀실에 가두었다.묵계는 그녀가 자리를 비웠을
묵계는 이 남자를 죽이기 아까웠다. 그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기나긴 수명을 갖고 있어 함께 수련할 수 있었다.이런 사람을 또 찾기 어려울 것이다.초경은 그 말을 듣고 조금 의아했다.“그럼, 너는 진정한 약사가 아니냐?”묵계가 콧방귀를 뀌었다.“물론이다. 그 여자는 이미 죽었다. 나의 몸을 망가트렸으니, 그녀가 바다로 들어간 기회를 틈타 그녀를 죽이고 몸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 뱀의 기운은 무슨 수를 써도 사라지지 않았다.”“그동안 약사의 신분으로 동하국에서 지내며 바다에서 보물을 발견하여 일반인과 다른 힘을 얻었다고 그들을 속이고 바다에 들어가 보물을 찾게 했다.”“이로써 그들의 내전을 일으켜 영원히 평화로이 지내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나의 한을 풀었다!”초경은 그제야 이유를 깨달았다.“여국 바다에 있는 진도 네가 깬 것 같구나.”초경은 부진환에게서 여국과 동하국의 전쟁에 관해 많은 얘기를 전해 들었다.다들 대진이 깨지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동하국 사람은 여국 땅으로 침입할 수 없다.하지만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눈앞에 있는 이 괴물은 할 수 있었다.역시나 묵계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물론 나다.”“내가 아니었다면 동하국 사람은 평생 여국 땅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초경이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복수를 하고 싶지만, 동하국 사람을 모두 죽이지 않았다. 살생을 저질러 화를 입고 싶지 않은 것이구나.”“그래서 대진을 파괴하고, 동하국 내전을 일으키고 그들을 선동하여 여국을 공격한 것이냐? 그들이 전쟁으로 죽게 만들려는 것이냐?”“아주 완벽한 계획이구나. 하지만 전쟁을 일으켰으니, 결국 운명의 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묵계가 만족스럽게 웃기 시작했다.“나의 계획을 알아차리다니 정말 똑똑하구나.”“그들이 싸우려는 마음이 없었다면 대진이 사라졌다 해도 여국을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나와 상관없다.”“내가 화를 입는다 해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말을 마치고
그는 이내 약사를 찾으러 갔다.그러나 도림을 벗어나기도 전에 초경은 앞에 길이 없는 것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자리에 멈춰 서서 사방을 관찰하다 이곳이 미로라는 깨달았다. 그는 손바닥을 들었지만,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자세히 맡아보니, 바람 속에 복숭아 꽃향기와 옅은 약재의 향기가 섞여 있었다.독이 있다!뒤에서 여유로운 발소리와 묵계의 웃음 섞인 소리가 들려왔다.“왜 앞으로 가지 않습니까?”초경은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렸다. 지금의 묵계는 무서운 표정이 조금도 없었고 오히려 득의양양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초경은 가슴이 떨려왔고 미간을 세게 찌푸렸다.“네가 바로 약사냐?”묵계가 입꼬리를 올리며 가볍게 웃었다.“먼 곳에서 나를 찾아왔는데, 약사라는 이름만 알고 계십니까? 제 이름도 모르는 것입니까?”“다들 저를 자릉약사라 부릅니다.”“이곳에 온 순간부터 알아차렸습니다. 비록 신분을 모르지만, 홀로 이곳에 온다는 건 분명 만만치 않은 상대겠지요. 그래서 도림에 손을 조금 썼습니다.”“도림에 들어선 후부터 이미 중독되었습니다. 이곳에 오래 있을수록 독은 더욱 세질 것입니다.”“그리고 이 독은 사족을 겨냥한 독입니다.”묵계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초경을 바라보았다.초경은 슬쩍 내공을 써봤지만, 사지가 무기력했다. 무언가가 갑자기 그의 경맥을 막은 것처럼 내공이 안정을 잃고 통제하기 어려웠다.그는 손을 움켜쥐고 불편함을 참으며 내색하지 않았다.“사족? 나를 무서워하지 않은 것이냐? 넌 대체 누구냐?”초경은 의아했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는 이상할 것 없이 평범한 사람 같았다.묵계가 가볍게 웃자, 뒤에 환영이 나타났고 그녀의 꼬리가 보였다.하지만 재빨리 사라져 버려서 초경은 뱀 꼬리인지 아닌지를 똑똑히 보지 못했다.“공자, 우린 같습니다. 저를 죽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주 사이좋게 지낼 수도 있습니다.”묵계는 흥미진진하게 초경을 훑어보았고 눈빛에는 탐욕의 빛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초경의 강한 수위를 탐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