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괴이하다.“고모, 제가 둘째 할아버지를 좀 뵈러 가도 되겠습니까?” 낙청연은 물었다.낙용은 생각하더니 말했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가보거라.”“예.”뒤이어 낙청연은 낙운희의 맥을 짚어보더니 약 한 첩을 처방하여 낙용에게 주었다. 낙용은 매우 의아해했다. “네가 의술도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낙용은 즉시 처방전을 임옥미(林玉薇)에게 주면서 약을 지어오라고 했다.낙청연은 무심코 처방전을 들고 나가는 계집종을 봤는데 바닥에는 축축한 발자국이 몇 개 남아 있었다.이상하다. 요즘은 모두 맑은 날이었고 비가 온 적이 없었다.어째서 축축하단 말인가?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계집종이 후원에서 일을 한다면 물에 축축하게 젖어 있을 수 있겠다 싶었다.“고모, 태부부에 있는 불결한 것들은 아직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좋기는 쑥(艾草)으로 깨끗하게 청소하여 액운을 없애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내일 준비하여 되도록 빨리 그것들을 몰아내겠습니다. 태부부에 있는 모든 초혼번을 재가 될 때까지 태워 항아리에 넣어서 깊은 산속의 땅속에 묻어야 합니다.’낙용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그래! 지금 바로 준비하도록 하마!”“밤이 늦었으니, 오늘 밤은 옆방에서 쉬도록 하거라. 객방은 음산하니 가지 말거라.”이 일을 언급하니 낙용은 갑자기 미안해졌다.처음에 낙청연을 객방으로 보낸 것은 그녀가 겁을 먹고 다시는 태부부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려던 것이었다.그들은 낙해평 그리고 낙해평의 딸들과 얽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오늘 밤, 낙청연이 이렇게 큰 도움을 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참으로 그녀의 능력을 얕잡아 봤다!낙용이 가자, 낙청연은 방으로 돌아와 쉬었다.이날 밤은 평온했다.-다음날, 날이 밝았다.낙청연은 밖에서 물을 뿌리고 쓸고 닦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낙용은 직접 나와서 쑥 잎을 들고 하인들이 물을 뿌리고 쓸고 닦는 것을 감시하고 있었다.그녀는 옆방으로 가서 낙운희를 살펴보았다.낙운희는 아팠다. 열
정문 쪽 벽에는 그림 한 폭이 걸려있었다. 지금 그 그림은, 큰불이 한 여인과 한 어린아이를 미친 듯이 태우고 있었다. 처참한 비명은 생생하게 귀에 들렸다.그들은 안간힘을 다해서 도망치려고 하지만 결국 도망치지 못하고 큰불에 삼켜버리고 만다.불에 타 죽지도 않고 도망치지도 못한다.“청연?”낙랑랑은 멍하니 서 있는 낙청연을 불렀다.낙청연은 그제야 생각에서 깨어나, 다시 한번 눈여겨봤다. 그 그림은 어떤 온화한 여인이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뒤돌아보는 모습을 그린 것이었다.그림 중의 사람은 살아있는 것처럼 생동감이 있었고,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낙청연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낙랑랑을 따라 방으로 들어왔다. 낙청연은 더욱 놀랐다. 방 안에는 온통 비슷한 그림들이 걸려있었다.여인의 단독 화상(畫像) 있었고, 아이의 단독 화상도 있었다.모두 같은 화사(畫師)의 그림이 아닌 것이 보였다. 각자의 화풍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또한 분명한 건 화상중의 용모는 모두 낙태부의 묘사에 의하여 그려냈다는 것이다. 최종 나타난 용모는 모두 닮은 듯하면서도 또 동일한 사람이 아닌 느낌이었다.방 안에는 온통 화상이 걸려 있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빼곡한 사람뿐이었다. 낙청연의 눈에는 한 폭의 화상마다 모두 큰불에 타는 장면이 보였고, 처참한 비명이 들렸으며 그녀를 닭살 돋게 했다.너무 섬뜩했다!설사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빼곡히 걸려있는 화상들과, 커다란 흑백색이 온 방 안을 유난히 답답하게 했다.그 온 방의 화상 뒤에, 시커먼 단향목 의자에 백발의 노인이 누워있었다. 그는 흰색 긴 옷을 입고 있었고 아무렇게나 튼 상투는 헐렁해져 있었고 나른한 기색을 띠고 있었다.낙청연은 더 자세히 보았다. 낙태부의 이마는 넓고 눈은 맑았으며 박식복록상이었다. 그러나 숨결이 약간 혼탁했다. 아마도 화상들의 영향 때문인 것 같았다.면상과 안색은 병은 없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둘째 할아버지.” 낙청연은 앞으로 다가가더니 예를 행했다.낙태부는 그
낙랑랑은 낙청연의 사연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그녀들의 관계 또한 좋았다. 비록 어머니는 허락하지 않았지만, 특수한 장소에서 우연히 만나면 항상 함께 놀곤 했다.낙청연이 큰 병을 앓고 뚱뚱해지고 나서부터 그녀들은 완전히 왕래가 끊어졌다.낙청연은 그 뒤로 다시는 외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운희의 상황을 둘째 할아버지께서 알게 되면 걱정하시고 괴로워하실 거예요. 하물며 할아버지께서 보고 싶어 하시는 사람의 혼을 부르려다가 저런 일을 당하셨으니 자책도 하실 거고요, 둘째 할아버지께 이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것이 좋을 듯싶어요.”낙청연의 이 말을 듣더니, 낙랑랑의 눈동자는 반짝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웃으며 말했다: “역시 네 생각이 깊구나!”“청연은 여전히 어릴 때처럼 총명하구나!’그동안 바깥에 사람들이 낙청연을 멍청이라고 비웃을 때마다 그녀는 몇 번이고 용기를 내어 그들과 논쟁하다가 항상 그들에게 비참하게 괴롭힘을 당하곤 했다.그녀는 낙청연을 위해 변명할 능력이 없었다. 매번 이 일을 생각하면 유감스러웠다.오늘 만나보니, 그녀는 여전히 어릴 때와 다름없었다.낙청연은 낙랑랑의 눈에 고인 눈물을 보더니 마음속으로 한순간 감개무량했다. 그녀들은 어릴 때 아마도 아주 친한 사이였던 것 같다.그녀는 다정스럽게 바로 낙랑랑의 팔짱을 끼고는 말했다: “낭언니, 둘째 할아버지의 방에 있는 그 화상들은 다 어디서 가져온 거예요? 어째서 나는 계속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지요?”낙랑랑이 대답했다: “처음에는 할아버지 본인이 직접 화사를 모셨다, 할아버지는 그분들의 화상을 갖고 싶어 하셨지. 하지만 몇 명을 모셔도 할아버지 마음속에 모습을 그려내지 못했다 더구나.”“후에 이 소식이 어떻게 퍼졌는지 태부부에 아부하는 사람들은 전부 화상을 뇌물로 보내 더구나.”“할아버지는 너무 그리운 나머지 잘 그렸던 못 그렸던 전부 다 남겨두었지, 아마도 그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였을것이다..”“그래서 긴 세월 동안 이렇게 많은 화상을 모으게 된 거란다.”
낙청연은 작은 목소리로 낙용의 귀에 대고 자신의 방법을 얘기했다.그 말을 들은 낙용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정말 그게 가능하냐?”“저만 믿으세요.” 낙청연은 웃으며 확신에 찬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낙용은 사람을 쉽게 믿지 않았다. 하물며 어젯밤에서야 생각이 좀 바뀐, 여태껏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을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그러나 낙청연의 자신만만한 모습에는 이상하게도 믿음이 갔다.“그래, 그럼 부탁하마! 일이 성사되면 섭섭지 않게 챙겨주겠다!” 낙용은 팔을 들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낙청연은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 “그런 서먹한 말씀 마셔요, 고모를 도와주는 게 저한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까.”이건 사실이다. 그들을 도와주는 건 확실히 낙청연에게도 도움이 된다.이 말을 들은 낙용은 낙청연에게 더 호감이 갔다.목적이 없는 게 아니라 아주 명확하지만 반감을 일으키진 않고 오히려 진심이 느껴졌다.낙청연은 부에서 주의해야 할 일들을 당부하고 혼을 불러오는 물건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지도 자세하게 알려줬다.그리고 곧바로 태부부를 떠났다.낙용은 사람을 보내 그녀를 배웅하려 했으나 태부부에 하인이 얼마 남지 않은데다 남은 하인들은 부의 일까지 처리해야 하니 바쁜 것 같아 낙청연은 거절했다.-섭정왕부.“왕야, 이걸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낙월영은 얼굴을 감싸고 눈물을 흘렸다.부진환은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고 울음소리에 신경이 곤두서 짜증이 가득했지만 꾹 참고 낙월영을 달랬다.“걱정 말거라. 고 신의가 널 치료해 줄 테니 다 나아질 거다.”그러나 낙월영은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고 신의께서도 원래대로 돌아오려면 절반의 희망밖에 없다 하지 않았습니까… 혹시라도 돌아오지 못한다면…”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소유도 머리가 아파 왕야 앞으로 가서 말했다. “왕야, 고 신의께서 천산설련이 큰 효과를 볼 거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몇 년 전 엄가에서 낙태부에 준 선물에 천산설련이 있었습니다. 왕야, 태부부에 가보시는 게 어떻겠습
갑자기 뒤에서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엊저녁, 왕비는 우리 부에 있었습니다!”고개를 돌려보니 낙용이 비단함을 든 계징종 몇 명을 데리고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낙청연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부진환도 살짝 놀라더니 공손하게 예의를 차렸다: “낙부인."낙용은 웃으며 앞으로 걸어오더니 낙청연을 슬쩍 보고 말했다: “청연이가 우리 부에 큰 도움을 줬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 특별히 귀한 약재들을 들고 왔지요.”낙청연이 큰 병을 앓고 나서 뚱뚱하고 못생겨졌다는 것도 낙랑랑이 알려줘서 알았다.태부부에는 해마다 많은 사람이 선물을 보낸다. 하지만 너무 귀한 건 받을 수가 없으니 사람들은 점점 약재를 선물하기 시작했다. 태부의 병을 치료하고 몸 보신을 해주라면서 말이다. 이러면 후환이 남지 않고 남의 입에 오르내릴 일도 없기 때문이다.낙청연한테 소용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운희의 목숨을 구했으니 기본적인 예는 차려야 한다.낙청연은 기뻐하며 연신 감사 인사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부인.”낙용은 갑작스라운 호칭의 변화에 놀랐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깜짝 놀란 건 부진환이다. 낙청연이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낙부인께서 직접 인사까지 올리러 온 것일까?경도의 높은 분 중에서도 낙부인은 어렵기로 소문난 분이다.누구든지 그녀의 눈 밖에 나면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다.낙용은 고개를 돌려 부진환을 보더니 말했다. “왕야, 왕비는 엊저녁 우리 부에 있었습니다. 온저녁 있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부진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부인께 폐를 끼쳤습니다. 들어오셔서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십시오.”“그럴 필요 없습니다. 선물을 전했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낙용은 몸을 돌려 떠났다.계집종들도 얼른 비단함을 섭정왕부의 시종에게 전달했다.비단함을 열어보던 소유는 깜짝 놀라 다급하게 말했다: “왕야, 이건…”부진환도 시선을 돌리더니 깜짝 놀라고 만다.모두 진귀한 약재들이었다.그중, 천산설련도 덩그러니 놓여있었다!부진환의
부진환은 서방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그렇게 소유는 정오가 돼서야 보고하러 돌아왔다.“왕야, 태부부 하인은 입이 너무 무거워서 왕비가 낙운희를 찾아 데리고 왔다는 것밖에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낙부인이 왕비를 부에 하룻밤 머물게 한 거랍니다.”“소인 태부부 밖에서 반 시진 넘게 머물렀습니다. 부에 하인들은 청소하느라 바빴고, 어젯밤 무슨 심각한 일이 있었는지 다들 말을 아껴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이를 들은 부진환은 신경이 곤두섰다.낙청연은 대체 무슨 속셈인가!낙운희를 데리고 태부부로 돌아가서 낙부인이 직접 찾아와 인사를 올린 것인가? 그럴 리는 없다!하물며 선물한 것은 모두 진귀한 약재들이다.생각에 잠긴 순간, 익숙한 발걸음과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왕야…” 낙월영은 아파서 말도 제대로 못 했고,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부진환은 마음이 덜컥 내려앉아 미간을 찌푸리며 보지 않으려고 했지만 저도 모르게 문밖으로 뛰쳐나갔다.“월영아.”낙월영은 그의 품에 안겨 울기 시작했다: “왕야, 저 너무 아픕니다…”왕야께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으니 얼굴을 치료하는 약을 얻지 못한 게 분명했다. 그러니 낙월영은 직접 찾아와 울고불고하는 수밖에 없었다.낙월영은 알고 있었다. 부진환은 낙월영의 눈물을 보지 못한다는 걸.“조금만 참아보거라. 본왕이 꼭 방법을 생각해 약을 찾아줄 테니.” 그리고는 사람을 불러 낙월영을 데려다주라고 했다. “고 신의를 모셔서 통증을 가라앉히는 약이라도 좀 처방받거라, 어서!”낙월영이 떠나자 부진환은 피곤한 듯 이마를 주물렀다.소유는 안쓰러워하며 말했다: “둘째 아씨 얼굴을 고치지 못하면 매일 왕야를 찾아올 겁니다.”“어떤 수를 쓰든 천산설련을 찾아야 한다!” 부진환은 두통을 꾹 참으려 말했다.그러자 소유는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람을 보내 경도의 모든 의관을 찾아 헤맸지만 천산설련은 없었습니다. 너무 귀한 물건이라 찾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지금 당장 찾을 수 있는 건 왕비 손의 것
날이 어두워지고 나서 제일 먼저 들려온 건 부운주에 관한 소식이었다.“왕비, 지금 부에 난리도 아닙니다. 다들 누가 5황자께 손을 댔다는 일만 의논하고 있습니다! 들어보니 상태도 아주 심각한 것 같습니다!”낙청연은 깜짝 놀라 다급하게 물었다: “5황자께 손을 대? 무엇 때문이냐?”무려 5황자다. 누가 감히 5황자에게 손을 댄단 말인가?“전하는 말에 의하면… 공자들이 왕비를 의논했답니다. 왕비를 비웃고 얕잡아 봤는데, 마침 5황자께서 지나가던 길이라 왕비를 위해 몇 마디 했답니다. 그런데 그 공자들은 오히려 왕비께서 부도를 지키지 않고 5황자와 사통하며 못생긴 데다 여기저기 내통한다고 모욕했답니다.”“5황자께서는 화가 치밀어 올라 먼저 손을 댔지만 너무 허약한 나머지 그 무리에 맞아 일어나지 못해 쓰러진 채 왕부에 들려왔다고 합니다. 정말 너무 안타깝습니다!”등 어멈은 안타까워하며 말을 꺼냈다.이 말을 들은 낙청연도 마음이 아팠다. 그녀를 위해 이 지경이 되다니…“등 어멈, 5황자의 상태가 어떤지 보고 오거라.”저녁 시간이라 직접 가면 다른 사람 입에 오르내릴 게 분명하니 낙청연은 일단 등 어멈을 보내 상태를 알아보라고 했다.등 어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방을 나섰다.-부운주가 다쳤다는 소식은 부진환의 귀에도 들어왔다.이 소식을 들은 부진환은 눈빛이 서늘해지더니 사람을 죽일 듯한 얼굴로 물었다: “손을 댄 자는 누구냐? 어디에서 그랬다더냐?”감히 황자에게 손을 대다니, 간땡이가 부은 게 분명하다!소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망심호의 정자에서 그랬답니다. 그곳에는 어부 한 명밖에 없었는데, 일이 터지고 나서는 쓰러진 5황자밖에 찾지 못했습니다. 그 어부는 누가 누군지 몰라 아직도 손을 댄 사람을 잡지 못했습니다. 5황자께서 깨어나셔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그리고…”소유는 잠깐 머뭇거렸다.“할 말 있으면 하거라!” 부진환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등 어멈이 남각에 갔습니다.”소유는 이 말 한마디만 했지만 부진
“왕비…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5황자께서도 왕비께 적지 않은 약을 보내왔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어려운 상황인데…”“뭘 어쩌겠느냐.” 낙청연은 눈빛이 차가워지더니 큰 발걸음으로 방문을 나섰다.그리고는 부진환의 서방으로 향했다.부진환은 일부러 부운주를 치료해 주지 않는다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하는 건 낙청연을 협박해 천산설련을 얻으려는 것이다. 지금 남각에 가도 아마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그러니 부진환을 찾으러 갈 수밖에 없다!늠름한 몸짓의 부진환이 느긋하게 서방의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손가락은 여유롭게 의자의 손잡이를 두드리고 있었고, 너무 평온하다 못해 산만해 보였다.하지만 낙청연의 눈에는 오만하기 그지없었다.낙청연을 본 부진환은 놀란 기색 하나 없었다. 심지어 의도가 무엇인지도 물어보지 않았다. 마치 모든 걸 꿰뚫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왜 5황자께 약을 써주지 않는 겁니까? 섭정왕부에서 죽으라고 그러는 겁니까?”낙청연은 날카로운 어투로 말했다.부진환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차가운 눈동자에는 서늘한 기운이 풍기고 있었다.“운주를 위해 직접 본왕을 찾아오다니. 두 사람, 아주 각별한 사이인가 보구나.”그 의미심장한 어투는 날카롭다 못해 베일 것 같았다.낙청연은 숨이 탁탁 막혀 더는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낙청연이 아니다. 부진환에게 죽기 살기로 매달리며 좋아하지 않는다. 비록 이 몸에 남은 원한과 억울함이 그녀를 괴롭히지만, 이런 감정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낙청연을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는 건, 정말 가소로운 일이다!“그럼 말해보시죠. 조건이 무엇입니까?” 낙청연은 차가운 어투로 말했다.“천산설련.”역시, 부진환은 그 이름을 꺼냈다.둘은 서로의 목적을 뻔히 알고 있었다.정말 숨 막힐 정도로 손발이 척척 맞았다.“좋습니다. 드리겠습니다! 지금 당장 5황자를 치료해 주시죠!” 낙청연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승낙했다.낙청연이 과연 이렇게 쉽게 협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