쌩얼로 전 남자친구를 만나는 것도 쪽팔리지만 지금 배경윤은 얼굴이 돼지가 되지 않았던가... 이런 낭패한 모습을 하고 강우혁을 보고 싶지 않았다!“경윤아, 숨지 마. 너인 거 알아.”강우혁은 배경윤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듯 감격스러운 표정이었다.그들 사이를 가로막은 사도현은 강우혁보다 몸집이 더 크고 우람하여 마치 큰 산을 사이에 둔 것 같았다.“실례합니다, 제가 경윤이한테 할 말이 있어서요.”하는 수 없이 강우혁은 예의 바르게 사도현에게 청했다.사도현의 시선은 거만하게 강우혁의 정수리를 넘었다.“어느 난쟁이가 말을 하는지 너무 낮아서 들리지 않네.”강우혁 옆에 있던 조수는 그 말에 반박해 나섰다.“무슨 말씀이세요. 강 교수님은 우리 병원에서 특별히 모신 전문가예요. 교수님의 높이는 어디 당신 같은 사람이 따라잡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요!”“그래서 그쪽도 교수가 키가 작다는 것을 인정하는 건가요?”“우리 교수님도 작지 않으세요. 신발까지 신으면 182인데 어디가 작아요...”조수는 최소한 188은 돼 보이는 사도현을 올려다보며 “다만 그쪽만큼 크지 않을 뿐이에요.”라고 낮은 소리로 덧붙였다.사도현은 머리 하나 낮은 강우혁을 내려다보며 말했다.“그래서 내가 난쟁이라고 부르는 게 무례한 짓은 아니겠죠, 난쟁이 씨?”“당신!”조수는 화가 나서 펄쩍 뛰었다.강우혁은 조수에게 말을 삼가라고 손사래를 친 뒤 사도현한테 말했다.“전 그쪽과 아무런 원한이 없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적대적인 거죠?”“그냥, 단순히 그쪽 보기 불편해서.”사도현은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 눈 밑의 시큰둥한 모습을 유감없이 드러냈다.배경윤이 아니었다면 이런 작은 의사는 그와 말을 섞을 자격조차 없었을 것이다.배경윤은 사도현 뒤에 숨어서 그들의 충돌을 듣다가 미안한 마음에 남자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겼다.“그만하지.”“이 자식이 너에게 깊은 상처를 줬다고 했잖아, 아직 제대로 손본 것도 아닌데 벌써 마음 아픈 거야?”사도현은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의미를
배경윤은 조금 억울해 갑자기 화를 내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네가 알레르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나한테 왜 뭐라고 소리 지르는 거야. 네가 아니면 내가 새우랑 게를 그렇게 많이 먹을 필요가 있었겠어?”“너...”사도현의 분노는 순식간에 가라앉았고 더욱 깊은 죄책감에 그를 깊이 머리를 파묻고 작은 목소리로 여자에게 말했다.“왜 이렇게 바보 같은 거야, 나는 네가 좋아하는 줄 알고 너에게 계속 까서 줬던 거야...”“너야말로 바보야!”배경윤은 퉁명스럽게 말했다.“내가 좋아한다고 까줄 필요 없잖아, 날 좋아하지도 않는데 뭘 그렇게 애써?”사도현은 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그래, 내가 바보지, 세상에서 나만 제일 바보야... 네가 제일 똑똑해.”강우혁은 두 사람의 썸 타는 모습을 보며 씁쓸해했다.“경윤아, 너 알레르기가 있어서 빨리 처치해야 해. 일단 먼저 따라와.”그는 사도현을 넘어 배경윤의 손을 잡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의사를 바꿔도 될까요?”사도현도 매우 불쾌했는데 예쁜 눈매는 배경윤의 팔에 걸린 그 손을 뚫어지라 쳐다봤는데 그 손을 그대로 베어버리고 싶었다.“강 교수님은 의술이 뛰어나기 때문에 환자의 경우 후유증이 생기지 않도록 강 교수님한테 치료를 받는 게 좋을 거에요.”간호사가 진지한 얼굴로 건의했다.“허허, 의술이 높다고 이렇게 환자한테 마음대로 손대도 되는 건가요? 여기가 병원인지 클럽인지 원?”“말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니세요? 억지를 부리지 마세요. 그렇지 않으면 저희도 환자의 치료를 거절할 수 있습니다.”“내가 잘못 말했나요? 의사로서 의덕이 전혀 없는데요. 무슨 근거로 의사가 환자의 손을 함부로 잡는 거죠?”강우혁은 어쩔 수 없이 배경윤의 손을 빨리 놓을 수밖에 없었다.그는 안경을 올리며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사도현을 바라보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저랑 환자분 사이가 좀 특별해서요. 저도 모르게 그만... 앞으로는 조심하죠.”“하지만 제 생각이 짧았더라도 환자 의견이 중요하지 당신 같
이 녀석 오늘 왜 이러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미쳤나 봐, 갑자기 왜 이렇게 이상하지?“고개 좀 가까이 대.”강우혁은 흰 장갑을 낀 채 전문적인 방법으로 항알레르기제를 발라주려고 했다.그가 몇 번이나 얘기했지만 여자는 들리지도 않는 것처럼 모든 주의가 바깥의 소리에 사로잡힌 것 같았다.“오, 뭐라고? 미안해.”배경윤은 그제야 남자의 말소리가 들렸는지 고개를 조금 돌렸다.“이 약은 자극적이어서 바르면 조금 아플 수 있지만 효과가 아주 좋아서 빨리 붓기를 가라앉힐 수 있으니 참아.”강우혁은 참을성 있게 여자에게 소개하며 부드러운 손놀림을 선보였다.“뭐라고?...아!”배경윤은 여전히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듣지 않고 밖에 있는 사도현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귀 기울다가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러다 얼굴에 묻은 약에 자극받아 울음이 나올뻔했다.“뭘 발랐길래 이렇게 아파? 내 얼굴 제대로 고치는 거 확실해?”배경윤은 아파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얼굴이 타는 듯한 통증은 마치 황산을 바른 것 같았다.“강력한 항알레르기 연고는 순수 식물에서 추출한 것이어서 산 비중이 강해. 그래서 피부에 자극을 줘 심한 통증을 유발할 수 있지만 약효가 좋고 부작용도 없어 가장 안전해.”강우혁은 설명하면서 약의 양을 늘렸다.그리고 복도 전체가 배경윤의 울부짖는 소리가 울렸다.“아아, 아파 죽겠어, 그만해. 얼굴이 다 타버릴 것 같아, 아파!”“조금만 참아, 곧 괜찮아질 거야. 많이 아프면 내 팔을 잡아!”강우혁도 마음이 아팠지만 여자가 빨리 탈민할 수 있도록 독하게 발라주는 수밖에 없었다.사도현은 문밖에서 배경윤의 고함을 듣고 더욱 통제력을 잃었다.“저 자식이 틀림없이 나쁜 짓을 하고 있어. 내 친구가 나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는 거라고. 비켜, 들어가야 해!”더 이상 좋게 말할 생각도 없이 간호사를 강제로 밀어내고 치료실로 들이닥쳤다.“야 이 망나니야, 의사가 직책을 이용해 환자에게 행패를 부리다니, 내가...”사도현은 나쁜 짓을
배경윤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강우혁을 싸늘하게 바라보았다.“우리 두 사람 사이를 네가 왜 궁금해해? 너한테 알려줄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경윤아, 화내지 마. 난 그저 그 남자가 좋은 사람 같지 않아서 그래. 완전히 바람둥이 같잖아, 상처받지 않도록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래.”“허허, 그가 아무리 좋은 사람 같지 않다고 해도 너 같은 사기꾼보다는 낫잖아!”배경윤은 강우혁의 옷깃을 움켜쥐고 눈 밑에 깊은 원한을 품고 말했다.“내가 너의 목숨을 남겨둔 것은 단지 내가 마음이 넓어서야. 내가 이미 과거의 원한을 잊고 너를 용서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인내심에 도전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날 미워할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지만, 그런 남자 찾아서 너 자신을 해치지 마, 너...”강우혁은 말을 끝내지 못했는데 문밖을 지키며 안의 인기척을 엿듣던 사도현이 끝내 참지 못하고 다시 쳐들어왔다.“방금 뭐라고 했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네가 어떻게 알아!”“왜 또 들어왔어요!”배경윤은 노기등등한 사도현을 보며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이 녀석은 어찌 이리도 남의 말을 엿듣기 좋아하는지!“내가 다시 들어오지 않았으면 이 비열한 소인배한테 어떤 먹칠을 당했는지도 모를 거잖아? 내가 그쪽이랑 아무 교류가 없었는데 왜 내가 좋은 사람 같지 않고 바람둥이가 된 거지?”사도현은 바람둥이라는 말을 반박하면서 힘이 부쩍 모자라는 기분이 들었다.“나는 단지 많은 아름다운 여자들과 친구를 사귀는 데 열중했을 뿐이야...”배경윤: “...”강우혁은 사도현을 외면한 채 배경윤을 바라보며 말했다.“경윤아, 네 상태가 완전히 호전되려면 일주일 정도 입원해야 해.”입원 절차를 마친 배경윤은 병원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고급 1인실에 입원했다.그녀의 얼굴은 그렇게 붓지는 않았지만 얼굴 전체가 빨갛게 달아올라 보기만 해도 끔찍했다.배경윤은 거울을 보며 중얼거렸다.“망했어, 나 진짜 얼굴 망가질 것 같은데 치료 못 하면 어떡하지?”사도
“강우혁?”차설아도 남자를 놀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그런 쓰레기는 당연히 배경윤이의 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져야 하는 게 맞는데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이렇게 자리에 나타났는지 너무 어이가 없었다.이 남자가 배경윤에게 한 갖가지 악행을 생각하자 차설아는 분노에 불타서 남자의 옷깃을 움켜쥐었다.“여기 왜 왔어요, 또 우리 경윤이에게 매달려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건데요? 진짜 더는 눈앞에서 알짱거리지 말죠, 내가 당신, 본인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게 보내줄 수 있는데.”“당연히 차설아 씨의 수단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죠. 누구의 목숨을 앗아가든 너무 쉬우신 거 너무 잘 알죠. 제가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거라는 걸요. 만약 그게 경윤이를 기쁘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세요.”강우혁은 눈을 감은 채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차설아는 멱살을 잡은 손의 힘을 더 세게 주고 눈살을 찌푸리며 눈앞의 남자를 노려보았다.“무슨 뜻이죠? 당신이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거라는 건 무슨 뜻으로 한 말이에요? 내가 변태 살인마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에요.”강우혁의 옷깃이 그의 목을 옥죄는 바람에 그는 숨이 막혀 볼이 빨갛게 질렸다.“무슨 뜻인지는 차설아 씨가 제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경윤이도 자리에 있으니 어떤 말은 제가 너무 자세히 하기 불편하네요. 어떤 일은... 저희 두 사람만 알고 있으면 되니까요.”“싱겁기는.”그러다 차설아는 이 녀석이 곧 죽을 것 같아 보이자 결국 손을 떼고 땅에 내동댕이쳤다.강우혁은 허겁지겁 일어나 배경윤 옆으로 다가가 상태를 체크했다."걱정하지 마, 푹 자고 내일 일어나면 네 얼굴은 원래대로 회복될 거야.”말투는 부드러웠고 눈빛에는 꿀이 떨어질 것 같았다."내일 낫는데 왜 일주일 동안 입원해 있어야 해?”배경윤이 쌀쌀한 태도로 물었다.강우혁의 의술을 믿지 않았더라면 그와는 말도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알레르기 증상이 너무 심해서 반복될 수도 있어. 이번 주 안에 다시 알레르겐에 노출되면
“한 사람을 잊는 데는 시간과 새로운 사랑만 있으면 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어?”배경윤의 시선은 아득히 멀어지더니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그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녔던 것은 다양한 사람과 일을 만나 치유해 주고 싶어서였어.”“원래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는데 결국 운명처럼 사도현을 만나게 되었어. 그는 비록 내 새 애인은 아니었지만 마치 구조대원처럼 나를 깊은 바다에서 끌어내어 강우혁이 낸 상처를 완전히 치유할 수 있게 해줬어... 하지만 지금 보니 나는 어쩌면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진 것 같네...”차설아는 배경윤의 쓸쓸한 모습을 보고 매우 마음이 아팠다,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쟁취해 봐. 나는 사도현도 분명 무슨 응어리가 있어서 이렇게 삐뚤어진 것으로 생각해. 어쩌면 그도 물에 빠진 사람이라 네가 좀 도와줘야 할 수도 있고...”"그의 응어리라...”배경윤은 차설아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너일 수도?”“경윤아, 나랑 사도현은 정말 순수한 우정이야. 너랑 오빠가 계속 우리를 맺어주니 정말 난처해.”“네가 아니면 누구겠어?”배경윤은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너 말고 이 세상에 또 어떤 여자가 사도현의 응어리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어.”"아,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생각났는데 그 윤설이라는 여자가 사도현의 관심을 받아온 것 같은데 설마 응어리가 여기에 맺힌 건 아니겠지?”지난 몇 년 동안 사도현이 윤설을 얼마나 총애했는지 연예계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다.“네가 그렇게 말하니 나도 기억이 나. 사도현을 만난 날 사도현과 윤설 사이가 틀어졌었어. 윤설이 죽네 사네 하며 사도현에게 용서를 빌던데 설마 문제가 여기서 생긴 건 아니겠지?”“분명 이걸 거야!”“일단 넌 편안하게 몸조리해. 내가 이제 시간을 내서 윤설을 만나 사도현이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아낼게.”"설아야, 내 이런 하찮은 일은 신경 쓰지 마. 나도 사도현과 어떻게 할 생각은 없어. 섣불리 윤설을 찾으러 가는
강우혁은 당황한 차설아의 반응을 보고는 그녀의 어깨를 툭툭 쳤다.“걱정 마요, 경윤이 친구니까 당신이 잘못되면 경윤이도 힘들 테니 깊은 말은 어디 가서 하지 않을 거예요.”차설아는 착잡한 눈빛으로 심호흡을 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반드시 그래야 할거에요. 내가 저지른 잘못은 이제 적합한 시기에 내가 잘 해결할 테니까.”"저한테 약속할 필요 없어요. 채원이가 자업자득이라는 걸 알아요. 저도 당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이 일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던 거로 치고 영원히 우리 둘의 비밀이 될 거에요.”강우혁은 냉혹하고 단호하게 눈빛을 돌렸다.차설아는 강우혁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의심하지 않았는데 그의 무뚝뚝한 표정은 진짜 마음이 굳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표정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갈수록 이해가 안 되는 건 남자가 마음이 변하면 다들 이렇게 현실적이고 냉혹해지는 건가였다.강우혁은 임채원을 사랑했고 심지어 그녀를 위해 경윤이를 속이기까지 한 망나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강우혁, 난 당신이 이해가 안 돼요. 임채원은 당신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 아닌가요? 그녀의 죽음이 나와 관련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왜 이렇게 냉정한 거죠? 복수는커녕... 감춰줄 의향까지 있다고요?”차설아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물었다.그녀는 강우혁이 고의로 그녀를 속이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일은 원래 그녀의 마음의 병이기 때문이다, 한순간은 속일 수 있어도 평생 속일 수 없다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만약 남자가 기회를 틈타 경찰에 신고하거나 협박을 하려고 한다면 그녀는 모두 인정하고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게 어디 있어요, 단지 내 집념일 뿐이죠...”강우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감개무량한 듯 말했다.“채원이는 너무 악랄한 짓을 많이 해서 그 결과를 맞게 된 것도 자업자득이죠.”“당신이 믿든 말든 말하는 건데 나는 정말로 그녀의 목숨을 건드릴 생각은 없었어요. 모든 것이 사고였죠. 그러나 시간을
하지만 경윤이의 미래를 위해 그녀는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나는 그날 그녀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머리를 풀어헤치고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말랐던데 그 모습을 보니 심지어 그녀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차설아는 묵묵히 손가락을 조이었는데 목구멍도 조여왔고 가슴은 말할 수 없이 괴로웠다.“그것은 모두 표상입니다. 이 여자는 무고한 척을 하며 사람들의 동정을 사는데 실제로는 매우 악랄하고 냉혹하죠. 그녀 같은 여자는 감정이 없습니다. 저는 제 진심으로 그녀를 치유하고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하지만 그녀로 인해 나락으로 끌려들어 가 버렸죠!”“허허, 정말 본인은 잘못이 없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남자들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다룰 수 없어서 화를 내고... 그것만 봐도 임채원은 불쌍한 여자예요. 사랑한다고 했던 남자들이 결국 그녀를 포기했잖아요.”차설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남자는 다 똑같을 거다. 그래서 임채원과 원수라고 할 수도 있는 사이인데 어느 순간 임채원과 같은 감정을 느꼈었다.“그녀가 나와 경윤의 그 영상들을 가지고 당신과 나를 협박하는 것만으로 이 여자는 이미 뼛속까지 썩었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하죠, 전혀 동정할 가치가 없어요. 당신이 그녀를 절벽 아래로 밀어 내린 것은 결코 당신을 탓할 수 없어요, 그녀가 너무 지나치다는 걸 저도 알거든요!”강우혁은 냉정하게 말했다.“그래서 그날 밤 당신도 현장에 있었고 나와 그녀의 충돌을 보았고 또 내가 그녀를 어떻게 절벽에서 밀어 내렸는지 보았단 말인가요?”일이 이렇게 된 이상 차설아도 이미 매우 평온해졌고 이 사고를 다시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엄밀히 말하면 그녀는 살인범인 셈이다.그날 밤 임채원은 온갖 험담을 쏟아냈는데 그 목적은 원이를 내놓거나 배경윤과 강우혁의 사적인 영상을 공개하거나 두 가지였다.하나는 자신의 자식이고 하나는 자신의 절친이었다.두 사람 모두 조금의 상처도 받아서는 안 되었다.그래서 이성을 잃은 그녀는 앞으로 달려가 임채원이 들고 있는 동영상
사도현은 배경윤이 적은 글을 보고 낮게 한숨을 쉬었다.“윤설 씨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렇게 하면 더 큰 사이버 폭력이 일어날 수도 있어. 난 그냥 소란을 일으킨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 연예인 본인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어.”[흠, 당연히 연예인 본인까지 끌어들이지 않길 바랄 거야. 그 사람들 도현 씨 팬들이잖아. 게다가 윤설 씨까지 얽혀서 그 여자가 곤란해질까 봐 그런 거지?]배경윤은 그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신경을 쓰는 모습을 처음 봤다. 윤설이 첫 번째이자 아마 유일한 사람일 거라는 생각에 그녀는 눈앞의 이 남자를 더 용서할 수 없었다.‘이런 바람둥이!’“조금만 머리 쓰면 내가 왜 이렇게 하는지 알 텐데.”사도현은 배경윤의 ‘모함’을 듣고 이 오명을 씻을 수 없다는 생각에 더 이상 해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차갑게 말했다.“네가 뭐라고 생각하든, 나는 이 사건에 연예인 본인을 끌어들이는 걸 절대로 허용하지 않아.”그도 어쨌든 윈스 엔터테인먼트의 CEO였고 연예계의 돌아가는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때로는 하나의 루머가 칼날처럼 되어 사람을 죽음의 길로 몰아넣을 수 있다.연예계에서 온라인 폭력에 의해 처참하게 망가진 스타들이 많았고 배경윤과 차설아 같은 일반인은 그 악플의 고통을 더 견디기 힘들 것이다.[헐, 이제 나를 협박하겠다는 거야? 도현 씨가 그렇게 말할수록 난 더 윤설을 찾아갈 거야. 날 어떻게 할 건데?]배경윤은 분노를 담아 빠르게 타자를 했다. 소리 없이 치는 타자 소리만으로도 그녀의 분노가 느껴졌다.성도윤은 그들 옆에서 분위기를 살피며 처음으로 연애 문제가 이렇게 복잡하고 피곤할 수 있다는 걸 실감했다.이 두 사람은 분명 서로에게 감정이 있었지만 계속해서 상처가 되는 말들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망쳐가고 있었다.‘내가 보기엔 차설아와 내 관계가 훨씬 더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 같아. 내가 정말 운이 좋아.’차설아를 떠올리며 성도윤은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지금 2층으로
“오늘 소란을 일으킨 사람 중에 내 팬도 있었던 거 확실해?”사도현은 사실 명성과 노출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배경윤 때문이 아니라면 절대 미디어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을 것이고 그런 어색한 연애 프로그램 같은 것도 참가하지 않았을 것이다.그가 이렇게 많은 팬을 얻게 된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조용한 성격이라 팬들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팬들이... 오물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충격을 받았다.“믿을 수 없지?”배경윤이 오늘 자신과 차설아가 괴롭힘을 당한 영상 파일을 사도현에게 보여주었다.“봐봐, 그 팬이라는 여자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도현 씨가 잘생기고, 부유하고, 성격도 좋고, 완벽한 남자라며 윤설과 천생연분이라고 하더라. 도현 씨가 윤설의 왕자인데 내가 그 악녀가 되어 두 사람의 관계를 망쳤다고 하면서, 심지어 설아까지 모욕했어.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뭐, 우리 설아까지 욕했다고?”옆에서 무표정하게 싸움을 구경하던 성도윤은 배경윤의 말을 듣고 나서 차설아에게 더 한없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그는 사도현이 들고 있던 핸드폰을 빼앗 분노에 차서 영상을 확인한 뒤 싸늘하게 말했다.“이 사람들, 이런 짓을 할 용기가 있다면 그 자만과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어떻게 할 건데?”배경윤이 성도윤에게 물었다. 이전과 달리 이제는 거부하는 태도가 없었다.“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이 사람들 다 찾아낸 뒤, 두 사람 앞에서 머리 조아려 사과하게 해야지.”성도윤이 이를 갈며 한 글자씩 뱉어냈다.이 말은 결코 가벼운 말이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끝까지 추궁할 수 있는 말이었다.“그나마 다행이네...”배경윤이 사도현을 보며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저것 봐, 사랑하는 여자가 괴롭힘을 당했으면 정상적인 반응은 저런 건데, 도현 씨는... 아니지. 도현 씨한테는 사랑하는 여자가 괴롭힘을 당한 게 아니라 사랑하는 여자의 팬이 그냥 길 가던 사람을 괴롭힌 정도잖아. 이제야 왜 이렇게 무관심한지 알
[무슨 소리야, 그건 옛날얘기지. 지금은 완전히 아니라고! 나도 한때 도현 씨를 내 ‘남신’이라고 했었잖아? 그런데 그 결과가 어땠어?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속은 형편없더라!]배경윤이 가차 없이 쏘아붙였다.[두 사람, 완전 끼리끼리야. 나랑 설아는 이제 두 사람이랑 거리를 둬야 해. 안 그러면 우리도 불행해질 거야. 봐, 오늘 내가 이렇게 재수 없는 일을 겪은 것도 다 네 탓이야.]“아니, 이게 왜 또 내 탓이야?”사도현은 어이없다는 듯 두 손을 들었다.그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는데 갑자기 죄인처럼 배경윤의 분노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당연히 도현 씨 탓이지! 오늘 나랑 설아에게 똥물을 뿌린 사람들이 누구인 줄 알아?]배경윤이 팔짱을 끼고 사도현을 노려봤다.“누군데?”사도현이 황당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아무리 세상이 험악해졌다고 해도 앞을 못 보는 여자랑 말을 못 하는 여자를 상대로 그런 짓을 할 정도면 정말 제정신 아닌 인간들 아니야?’[한쪽은 도현 씨 팬들이고, 다른 한쪽은 윤설의 광적인 팬들이야.]“뭐?”사도현의 표정이 얼어붙었다.[내가 도현 씨를 알지 않았으면 윤설이랑 엮일 일도 없었을 거고, 그 여자의 팬들에게 이런 일을 당하지도 않았을 거야. 그리고 당신 팬들도 마찬가지야. 윤설 팬들이랑 다를 게 뭐야? 둘 다 극성맞고 정신 나간 사람들뿐이야. 그러니까 이 모든 게 도현 씨 탓이라고!]배경윤은 흥분해서 글을 계속해서 쳐냈다. 사도현은 그녀가 쓴 긴 글을 읽고 머리가 핑 돌 지경이었다. 글에는 온통 그에 대한 비난이 가득했다.사도현은 억울한 마음이 치밀어 올랐다.“근데 말이야, 팬들이 한 행동을 내가 어떻게 책임져? 사람마다 다 성격이 다르고 수천, 수만 명의 팬을 내가 어떻게 다 통제해?”[핑계 대지 마!]배경윤은 여전히 흥분한 상태였다.[팬들의 행동은 결국 본인이 책임지는 거야. 팬덤 문화 몰라? ‘팬들의 행동은 본인이 책임진다.’ 이게 기본 원칙이야! 팬들이 왜 그렇게 극성인지 알아? 그건 본인이
성도윤은 묵묵히 참다가 결국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배경윤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너는 아무것도 몰라. 나랑 차설아의 관계는 너 같은 외부인이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우리는 지금 행복해. 네가 보기 불편하면 그냥 나가면 되잖아.”“...”배경윤이 성도윤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손목이 붙잡히자 이번엔 발을 들어 그를 걷어차려 했다.성도윤은 체격이 크고 힘도 센 편이었지만 배경윤의 저돌적인 공격에 살짝 밀리는 기분이 들어 결국 긴 팔을 뻗어 그녀의 목을 단단히 옭아맸다.“형, 지금 뭐 하는 거야?”바로 그 순간, 사도현이 들어와 이 장면을 목격하고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상황이라니,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성도윤과 배경윤도 순간 굳어버렸다.“오해하지 마.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성도윤이 가볍게 헛기침하며 배경윤을 놓아주었고 배경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성도윤의 발을 힘껏 밟았다.“너 진짜 끝까지 이럴 거야?!”성도윤은 발끝이 부러질 것 같은 고통에 이를 악물었지만 차설아를 떠올리며 꾹 참았다.차설아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강렬했는데 그녀의 절친인 배경윤까지 보니 정말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떠올랐다.그리고 슬쩍 사도현을 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너, 보험 많이 들어둬.”“무슨 뜻이야?”사도현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무슨 뜻이긴? 저 호랑이 같은 여자를 네가 감당할 수 있겠냐고.”성도윤이 배경윤에게 얻어맞은 부위를 문지르며 투덜댔다.그러자 사도현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아니지, 우리 경윤이는 원래 이렇게 폭력적인 애가 아니야. 분명 형이 선을 넘었으니까 그런 거겠지.”그는 중요한 순간에 배경윤 편을 들기로 했다.사실 예전에는 서로 의견이 다를 때마다 배경윤과 말다툼이 잦았다.배경윤은 성도윤을 두고 철저히 쓰레기라고 욕했고 사도현은 차설아가 너무 까다롭다고 반박하며 두 사람은 끝없는 논쟁을 벌이곤 했다.하지만 이
“그만 좀 해요, 너무 닭살 돋아요.”차설아는 예전 같았으면 이런 사랑 고백을 들으면 쑥스러웠지만, 이제는 쑥스럽기보다 오히려 닭살이 돋아 참을 수가 없었다.처음엔 성도윤이 차갑고 말수가 적은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보니 그건 전부 겉으로만 그럴듯하게 꾸민 모습이었고 실제로는 입만 열면 온갖 달콤한 말을 쏟아내는 사람이었다.성도윤이 손으로 물 온도를 확인한 뒤 말했다.“물 받아놨어. 들어가서 몸 좀 풀고 와.”“좋긴 한데... 좀 나가주겠어요?”차설아가 고개를 푹 숙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그건 안 되지. 당신이 미끄러지거나 수건이 필요하거나 옷을 입어야 할 때 누가 도와줘?”“괜찮아요, 나 혼자서도 잘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잠깐만 나가 있어 줘요. 도윤 씨가 여기 있으면 부담스러워서 못 하겠어요.”차설아는 아직 성도윤과 그렇게까지 오픈된 관계는 아니었다.게다가 자신만 벗고 그는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니. 상상만 해도 얼굴이 뜨거워졌다.“알겠어. 그럼 욕조까지만 데려 줄게. 다 끝나면 전화해.”성도윤이 한발 물러나며 휴대폰을 욕조 옆 선반에 올려놨다.“여기 핸드폰 놔뒀어. 손만 뻗으면 닿을 거야.”“알았어요. 그러니까 이제 제발 가요!”차설아가 손을 휘저으며 성도윤을 재촉했다.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 후, 차설아는 그가 정말 나갔다고 확신하고서야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다.차설아는 원래 몸매가 좋은 편이었다. 곡선이 부드럽게 이어졌고 피부는 우유처럼 부드럽고 하얬다. 실루엣만 봐도 누구든 넋을 놓을 정도였다.그런데, 옷을 벗다가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거칠고 낮은 숨소리가 문가에서 들려오자 차설아는 순간 얼굴이 새빨개졌다.“도윤 씨, 변태예요?!”“들켰네.”성도윤의 목소리가 낮고 거칠게 갈라져 있었다. 그는 아쉬운 듯 차설아를 바라보다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불만 지르고... 알겠어, 나 간다.”그는 투덜거리며 재빨리 문을 닫고 나갔다.더 있다가는 차설아가 진짜로 그를 때려눕힐지도 몰랐다.성도윤은 자
“와, 대박! 이런 주제에 감히 남자를 뺏으려고 했다고?”그 여자들은 비웃으며 휴대폰을 꺼내 차설아와 배경윤을 마구 찍어댔다. 조롱과 비아냥이 섞인 웃음소리가 이어졌다.“으...”배경윤은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 한편으로는 차설아를 보호해야 했고 동시에 그 여자들과 맞서야 해서 허둥지둥했다.“꺼져!”날카롭고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성도윤이 험상꿎은 얼굴로 난동을 부리던 여자 하나를 단숨에 잡아채 거침없이 밀쳐버렸다. “설아야!”그는 온몸에 더러운 물을 뒤집어쓴 채 힘없이 서 있는 차설아의 모습을 보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주저 없이 배경윤을 밀어내고 차설아를 와락 끌어안았다.“도윤 씨?”차설아가 손을 더듬어 그의 손을 잡았다가 순간 움찔하며 한 발짝 물러났다.“가까이 오지 마요. 나 더러워요.”“상관없어.”성도윤은 단호하게 대답하며 그녀를 다시 품에 안아 두 손을 꼭 쥐고는 후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너무 늦게 왔지. 혼자 두지 말았어야 했는데... 정말 미안해.”그 모습을 본 여자들은 겁에 질려 황급히 도망쳤다.하지만 이 장면은 누군가에 의해 영상으로 찍혀 인터넷에 퍼졌고 각종 편집과 조롱으로 도배되었다.온라인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세상에 공평한 법은 있구나. 이게 바로 업보지!][아무리 그래도 팬들이 너무 폭력적이야.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그리고 바로 이 영상을 통해 차설아가 실명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한편, 성진의 차 안.성진은 무료한 듯 핸드폰을 스크롤내리며 영상을 보고 있었다.최근 권력 싸움에서 그는 확고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허전했다. 승리를 코앞에 두고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그러다 우연히 영상 속 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선글라스를 낀 채, 온몸에 오물을 뒤집어쓰고 초라하게 서 있는 차설아.그 순간, 그의 심장이 조여들었다.“설아의 눈이...”모든 게 퍼즐처럼 맞춰졌다.그가 가지고 있는 이 눈은 바로 차설아가 준 것이었다.여러 감
“당연히 다르지!”차설아가 단호하게 말했다.“너랑 나의 가장 큰 차이는,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도윤 씨 한 사람만 좋아했다는 거야. 그러니까 선우시원이든, 성진 씨든, 내 선택은 항상 도윤 씨였어. 하지만 넌 다르잖아... 네 마음은 진찬영 씨한테도 가고 도현 씨한테도 끌리고 있잖아. 솔직히 말하면, 너 둘 다 갖고 싶어 하는 거 맞지?”[너 진짜 무섭다!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집어내냐!]배경윤은 차설아의 날카로운 분석을 듣고 반박도 못 하고 민망하게 웃었다.사실 그녀도 자신이 왜 이렇게 고민하는지 몰랐고 이제 보니 이유는 간단했다. 너무 욕심이 많았던 거였다.“그러니까, 이제 솔직해지자. 굳이 도망갈 필요 없어. 양쪽 다 품으면 되잖아? 왼쪽엔 한 명, 오른쪽엔 한 명. 얼마나 좋아? 만약 내가 두 사람을 좋아할 능력이 있었으면 진작에 후궁 3천은 거느렸을걸?”차설아가 반은 농담, 반은 진심으로 말했다.[야, 진짜 맞는 말이네! 네 말 듣고 나니까 머리가 확 맑아졌어!]배경윤은 갑자기 머릿속이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그러더니 핸드폰을 꺼내 신나게 글을 써 내려갔다.[가만 생각해 보니까, 역사적으로 연애에서 이득 본 건 전부 남자들이었어. 우리는 애 낳아야지, 생리해야지, 시댁 챙겨야지, 애 키워야지, 일도 해야지, 불륜까지 걱정해야지... 정작 이득은 다 남자들이 보고 있잖아. 그렇게 따지면, 우리가 남편을 두 명쯤 두는 것도 합리적인 거 아니야?]“그치? 나는 진찬영 씨랑 도현 씨 둘 다 괜찮다고 보는데? 한 명은 집에서 살림하고 나 챙겨주고 한 명은 데이트하고... 완벽한 조합 아니야?”[하하하, 그러네, 그러네! 생각만 해도 너무 좋다.]배경윤은 벌써 왼쪽엔 진찬영을, 오른쪽엔 사도현을 끼고 달콤한 나날을 보내는 상상을 하며 싱글벙글했다. 그런데 갑자기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잠깐만, 그런데 말이야… 너 아까 네가 오직 성도윤 한 사람만 좋아했다고 했잖아. 설마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한 거야?]“어... 그러니까..
불과 20분도 채 안 돼서 배경윤은 성도윤은 물론 그의 주변 사람까지 깡그리 욕해버렸다.차설아는 그녀의 분노를 고스란히 느꼈고 이런 분위기에서 성도윤과 다시 화해했다는 사실을 밝힐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아 얼른 화제를 돌렸다.“됐고, 너 얘기나 해 봐. 그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촬영은 잘 끝났어? 최종 선택은 누구야?”“이 타이밍에 왜 하필 이걸 묻냐, 이 친구야!”배경윤은 코를 킁킁대며 조금 민망한 표정을 짓더니 또 귤을 집어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나 몇 회 봤는데 사도현 씨도 그렇고 진찬영 씨도 그렇고, 둘 다 너한테 진심이더라. 지금 많이 고민되겠어, 맞지?”차설아도 친구의 선택이 궁금했다.“하... 너까지 이 얘기를 꺼내다니, 나 진짜 이 주제에서 벗어날 수가 없구나.”배경윤이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퇴원 후 팬들을 만나고 오빠를 만나고 그리고 차설아를 만나기까지, 늘 똑같은 질문을 받는 것 같았다.그러다 문득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그래, 사도현과 진찬영, 둘 다 진심이었어. 그런데 나는 도대체 누구를 더 좋아하는 걸까?’“설아야, 너라면... 내가 누구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해?”배경윤은 차설아의 말을 가장 신뢰했기에 모든 기대를 걸고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너만 말해 봐. 네가 고르라고 하면 난 그냥 그 사람 선택할게.”“장난치지 마. 이런 중요한 인생 결정을 남한테 맡기면 안 돼. 네가 직접 결정해야지.”“내가 모르겠으니까 묻는 거잖아!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찬영 씨가 더 맞는 것 같아. 여러 면에서 봤을 때 우리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거든. 그런데...”배경윤이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찬영 씨가 나한테 마취 깨고 난 뒤의 영상을 보여줬거든. 그걸 보고서야 알았어. 내 무의식은 사도현한테 더 끌리고 있더라. 거의 그를 한입에 집어삼킬 기세였어. 이유 없이 스킨십하고 싶고 안고 싶고 뽀뽀하고 싶고... 나 진짜 미쳤나 봐.”“음, 알겠다. 그러니까 네가 진찬영 씨를 좋아하는 감정은 ‘영혼의 동반자’
두 사람은 점점 지루해졌다.[우리 근처 공원 가볼까? 여기 많이 변했더라. 원래 화학 공장을 지으려던 곳인데 결국 보존돼서 주민 지역으로 바뀌었대. 습지 공원도 새로 조성돼서 꽤 예쁘더라고...]배경윤은 문장을 입력하다 문득 차설아가 더 이상 앞을 볼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잠시 멈칫하다가 다시 문장을 고쳐 적었다.[우리 근처 습지 공원 가볼래? 공기가 정말 좋더라.]“좋아!”차설아는 고민 없이 바로 대답했다. 그녀도 사실 집에만 계속 있다 보니 너무 답답해서 누군가가 데리고 나가 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참이었다.배경윤은 차설아의 손을 잡고 함께 근처 습지 공원으로 향했다.공원 안에는 커다란 인공 호수가 있었고 호숫가엔 무성한 갈대밭이 펼쳐져 있었다. 많은 관광객들이 인증사진을 찍고 있었지만 차설아와 배경윤은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해 비교적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그곳엔 커다란 바위 하나가 호수 중앙을 향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덕분에 신선한 공기와 은은한 물풀 향기가 물씬 느껴졌고 햇살이 호수 위로 내려앉아 반짝이며 일렁였다.[괜찮으면 눈이 어쩌다 그렇게 된 건지 말해줄 수 있어?]배경윤은 귤을 까면서도 궁금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타자한 문자를 음성으로 변환해 차설아에게 물었다.“빚을 갚았어.”차설아가 담담하게 말했다.[무슨 빚이길래 네 눈까지 내줘야 했어?]“마음의 빚.”[마음의 빚이라니, 누구한테?]배경윤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네가 무슨 빚을 졌다고 그래? 항상 손해 보는 쪽은 너였잖아.]“성진 씨...”차설아가 낮게 한숨을 쉬었다.“예전에, 그 사람은 나를 위해 자신의 눈을 도윤 씨에게 줬어. 그렇게 똑똑했던 사람이었는데 점점 나락으로 빠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 그 모습을 보면서 너무 괴로웠어. 그의 인생을 망쳐버린 게 결국 나였으니까. 이 은혜를 갚지 않으면 평생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았어.”[뭐라고? 네 말은, 네 눈을 성진한테 줬다는 거야?]배경윤은 화가 나서 귤을 손에 꽉 쥐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