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혁은 당황한 차설아의 반응을 보고는 그녀의 어깨를 툭툭 쳤다.“걱정 마요, 경윤이 친구니까 당신이 잘못되면 경윤이도 힘들 테니 깊은 말은 어디 가서 하지 않을 거예요.”차설아는 착잡한 눈빛으로 심호흡을 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반드시 그래야 할거에요. 내가 저지른 잘못은 이제 적합한 시기에 내가 잘 해결할 테니까.”"저한테 약속할 필요 없어요. 채원이가 자업자득이라는 걸 알아요. 저도 당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이 일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던 거로 치고 영원히 우리 둘의 비밀이 될 거에요.”강우혁은 냉혹하고 단호하게 눈빛을 돌렸다.차설아는 강우혁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의심하지 않았는데 그의 무뚝뚝한 표정은 진짜 마음이 굳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표정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갈수록 이해가 안 되는 건 남자가 마음이 변하면 다들 이렇게 현실적이고 냉혹해지는 건가였다.강우혁은 임채원을 사랑했고 심지어 그녀를 위해 경윤이를 속이기까지 한 망나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강우혁, 난 당신이 이해가 안 돼요. 임채원은 당신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 아닌가요? 그녀의 죽음이 나와 관련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왜 이렇게 냉정한 거죠? 복수는커녕... 감춰줄 의향까지 있다고요?”차설아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물었다.그녀는 강우혁이 고의로 그녀를 속이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일은 원래 그녀의 마음의 병이기 때문이다, 한순간은 속일 수 있어도 평생 속일 수 없다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만약 남자가 기회를 틈타 경찰에 신고하거나 협박을 하려고 한다면 그녀는 모두 인정하고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게 어디 있어요, 단지 내 집념일 뿐이죠...”강우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감개무량한 듯 말했다.“채원이는 너무 악랄한 짓을 많이 해서 그 결과를 맞게 된 것도 자업자득이죠.”“당신이 믿든 말든 말하는 건데 나는 정말로 그녀의 목숨을 건드릴 생각은 없었어요. 모든 것이 사고였죠. 그러나 시간을
하지만 경윤이의 미래를 위해 그녀는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나는 그날 그녀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머리를 풀어헤치고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말랐던데 그 모습을 보니 심지어 그녀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차설아는 묵묵히 손가락을 조이었는데 목구멍도 조여왔고 가슴은 말할 수 없이 괴로웠다.“그것은 모두 표상입니다. 이 여자는 무고한 척을 하며 사람들의 동정을 사는데 실제로는 매우 악랄하고 냉혹하죠. 그녀 같은 여자는 감정이 없습니다. 저는 제 진심으로 그녀를 치유하고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하지만 그녀로 인해 나락으로 끌려들어 가 버렸죠!”“허허, 정말 본인은 잘못이 없는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남자들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다룰 수 없어서 화를 내고... 그것만 봐도 임채원은 불쌍한 여자예요. 사랑한다고 했던 남자들이 결국 그녀를 포기했잖아요.”차설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남자는 다 똑같을 거다. 그래서 임채원과 원수라고 할 수도 있는 사이인데 어느 순간 임채원과 같은 감정을 느꼈었다.“그녀가 나와 경윤의 그 영상들을 가지고 당신과 나를 협박하는 것만으로 이 여자는 이미 뼛속까지 썩었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하죠, 전혀 동정할 가치가 없어요. 당신이 그녀를 절벽 아래로 밀어 내린 것은 결코 당신을 탓할 수 없어요, 그녀가 너무 지나치다는 걸 저도 알거든요!”강우혁은 냉정하게 말했다.“그래서 그날 밤 당신도 현장에 있었고 나와 그녀의 충돌을 보았고 또 내가 그녀를 어떻게 절벽에서 밀어 내렸는지 보았단 말인가요?”일이 이렇게 된 이상 차설아도 이미 매우 평온해졌고 이 사고를 다시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엄밀히 말하면 그녀는 살인범인 셈이다.그날 밤 임채원은 온갖 험담을 쏟아냈는데 그 목적은 원이를 내놓거나 배경윤과 강우혁의 사적인 영상을 공개하거나 두 가지였다.하나는 자신의 자식이고 하나는 자신의 절친이었다.두 사람 모두 조금의 상처도 받아서는 안 되었다.그래서 이성을 잃은 그녀는 앞으로 달려가 임채원이 들고 있는 동영상
차설아는 전당포에 돌아와 강우혁이 건넨 영상을 말끔히 없앤 뒤 근심에 잠겨 잠이 들었다.그녀는 매우 불안했는지 반복해서 꿈을 꾸었다.꿈속에서 임채원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바다에서 기어 나왔는데 손발이 부러져 하얀 뼈가 선명하게 보였고 얼굴은 더욱 선혈이 낭자했는데 그녀를 향해 음산하게 웃고 있었다.“하하하, 차설아, 너의 좋은 날은 이미 끝났어. 나 임채원이 생전에 너를 이길 수 없었어도 죽어 사악한 귀신으로 변해서라도 너를 끌고 같이 지옥에 갈 거야!”그 피 묻은 얼굴은 점점 가까워져 마치 차설아의 얼굴을 덮을 것 같았고 질식하는 느낌은 그녀를 고통스럽게 했는데 그녀는 마구 손을 흔들며 소리를 질렀다.“싫어, 오지 마!”“아가씨, 아가씨 일어나세요. 날이 밝았어요!”민이 이모가 침대 옆에 앉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의 손을 잡고 깨우려고 했다.“아!”차설아는 마치 소용돌이 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갑자기 누군가가 잡아당겨 눈을 번쩍 떴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아가씨, 얼굴이 너무 하얗게 질렸는데 혹시 악몽을 꿨어요?”“네.”차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숨을 크게 쉬었다.아까의 악몽은 너무도 선명했는데 임채원은 피 묻은 얼굴로 그녀의 얼굴에 직접 닿았는데 그 숨이 막히는 느낌은 마치 물에 빠진 것 같이 너무 절망적이었다.“무서워 말아요. 깨어나면 다 괜찮아질 거예요...”민이 이모는 차설아의 등을 토닥이며 눈빛에는 안쓰러움이 묻어났다.“아가씨가 최근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이런 엉망진창의 꿈을 꿨을 거예요. 이따가 제가 약봉지 향낭을 만들어 줄게요. 가지고 다니면 살균도 되고 악령도 막을 수 있어서 다시는 그런 꿈을 꾸지 않을 거예요.”“고마워요.”차설아는 걱정스러운 듯 한숨을 내쉬며 민이 이모에게 조용히 물었다. “이모, 이 세상에 정말 악령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세요?”“글쎄요, 잘 모르겠어요.”민이 이모는 근엄한 표정으로 깊은 회상에 잠겼다.“어릴 때부터 할아버지를 따라 의학을 배우면서 각종 기괴한 일들
차성철은 신문을 내려놓으며 날카로운 눈빛을 하고 물었다.“그냥...회사에 가서 일을 좀 처리하려고. 그렇게 긴 휴가를 보냈으니 이제는 일을 시작해야지.”“너는 내 여동생이고 내가 있는데 네가 평생 휴가를 보내도 상관없어. 요즘 상황이 험악하니 좀 더 쉬었다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지금의 그는 바로 차가의 가장으로 24시간 차설아를 온실에 가두고 보호하려고 애썼다.지금의 해안은 이미 많이 변했는데 그에게 복수하려는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아 동생이 연루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그럴 리가, 오빠 여동생도 만만치 않은 사람이야. 누가 감히 나한테 험악하게 굴면 내가 알아서 혼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차설아는 손을 흔들고는 허리를 굽혀 원이와 달이에게 뽀뽀를 했다.“너희 두 녀석, 외삼촌과 민이 이모 말 잘 들어야 해. 엄마 갔다 올게.”“네, 엄마 조심해서 다녀오세요.”두 녀석은 차설아와 달콤하게 뽀뽀를 했는데 그들의 엄마가 위험에 처할까 봐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엄마가 얼마나 대단한지 외삼촌은 본 적이 없어도 그들은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어, 아가씨 잠깐만요!”민이 이모는 일어나서 문 앞에 다다른 차설아를 뒤쫓았다.“이 약봉지 향낭을 몸에 걸어요. 아가씨가 그 악몽을 꾸는 것은 좋지 않은 징조라고 생각해서요.”“걱정하지 마세요, 이모. 전 누구도 무섭지 않아요.”차설아는 향낭을 달고 자신만만하게 출발했다.하지만 그가 가는 곳은 회사가 아닌 드라마 촬영 현장이었다.어젯밤 그녀가 병원에서 돌아왔을 때 특별한 수단을 통해 윤설의 연락처를 얻었다.윤설은 그녀의 이름을 듣고 깜짝 놀라며 반가운 마음으로 만남을 허락했다.공교롭게도 촬영장 위치는 평탄도로 그녀와 임채원이 충돌했던 곳이었다.“정말 이상하네.”차설아는 차를 세울 곳을 찾고는 눈에 익은 경치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는데 안 좋은 예감을 느꼈다.“차설아 씨, 우리 설이가 아직 촬영 중이에요. 전 매니저고요. 제가 잠시 대기실로 안내해 드릴까요?”윤설의 매니저는 함
“하하, 당연히 설이가 설아 씨랑 너무 닮았기 때문이죠.”매니저는 말을 덧붙었다.“둘이 너무 닮았어요. 우리 업계에서는 설이가 설아 씨의 대타라고 할 정도라니까요. 우리 설이가 출연한 첫 영화가 그 유명한 성 대표님과 찍은 이잖아요. 우리 설이도 이 영화로 유명해졌죠...”차설아는 머리를 뒤로 넘기며 어색한 반응을 이어갔다.“소문으로 들은 기억이 있네요.”“안타깝게도 성 대표님은 지금 서가네 아가씨와 사귀고 있으니... 우리가 지지했던 커플은 결국 새드 엔딩을 맞이했네요.”매니저는 긴 한숨을 내쉬었는데 차설아를 보는 눈빛에 아쉬움과 동정이 가득했다.차설아는 윤설의 촬영을 멀찌감치 지켜보며 매니저에게 물었다.“윤설 씨는 지금 솔로인가요?”“쟤요?”매니저 역시 윤설을 멀찌감치 바라보며 대답했다.“지금 설이 뒤에는 큰 분이 계셔서 이런 민감한 문제는 함부로 대답해 드릴 수 없죠.”“뒤에 있다는 분이 혹시 사도현인가요?”“아니, 아니요. 도련님보다 좀 더 높은 분이요.”“사도현보다 더 높은 분이라고요?”차설아는 진실을 직감하고 캐물었다.“도대체 누구예요? 사도현이 전에 윤설을 받쳐줬다고 들었는데 혹시 그 후 두 사람 사이에 무슨 불화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차설아는 이 두 사람에게 무슨 커다란 모순이 있었음이 틀림없다고 추측했고 그 모순이 너무 커서 지금까지도 사도현에게 트라우마로 남았기에 지금과 같이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그 후에도 매니저는 차설아를 흠모하는 마음으로 잡담을 나눴고 윤설의 촬영이 끝나자 우산을 들고 있는 다른 매니저와 함께 그들에게 다가갔다.“차설아 씨,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윤설은 웃으며 이들의 말을 끊고 매니저가 열어준 의자에 우아하게 앉았다.차설아는 눈앞의 여인을 살폈는데 4년 전 처음 만났을 때의 단순하고 수줍음이 사라지고 일거수일투족에서 능구렁이 같은 속셈이 보였는데 조금은 안타까웠
“그렇다면 도현 오빠를 좋아하는 건가요?”“남녀 사이에 무조건 좋아하는 것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간단히 말하면 내 친구가 그를 좋아하고 그도 내 친구에게 마음이 가는 것 같은데 좋아하지만 감히 시작도 못 하고 있어서 혹시 무슨 응어리가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어서요. 이 응어리가 혹시 윤설 씨랑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제 추측이죠.”“친구에게 마음이 끌렸다고요?”그녀의 눈망울 아래서 질투가 스쳐 지나갔는데 그녀는 냉소적으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아마도 설아 씨 친구가 괜한 생각을 한 것 같네요. 도현 오빠가 저에 대한 감정은 그렇게 함부로 변하지 않을 거예요. 비록 제가 그동안 거절해 왔지만 나중에 제가 그에 대한 감정을 확실히 알게 된 일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미 그와 함께하기로 했어요. 그가 설아 씨 친구를 거절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거예요.”“정, 정말요?”윤설의 이 말에 순간 차설아는 맥이 풀렸다.사도현이 그녀에게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졌는지는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니 거짓말 같지 않았다.“도현 오빠와의 갈등 때문에 제삼자에게 손해를 끼쳐서 정말 죄송하네요...”“사과는 됐어요.”차설아는 한숨을 내쉬며 배경윤을 안쓰럽게 생각했다.“똑바로 얘기했으니 됐어요. 두 사람 잘 만나길 바라요.”“잠깐만요.”윤설은 차설아의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그녀를 불렀다.“또 무슨 일이죠?”“설아 씨는 친구의 감정을 신경 쓸 여유도 있는데 자신의 감정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건가요?”“무슨 말씀이죠?”“성 대표님이 사고를 당했다고 들었는데 설아 씨는 성 대표님의 전 부인으로서 전혀 관심이 없는 건가요?”“아, 그거요.”차설아는 성도윤과 오빠의 갈등이 외부에 알려졌을 것으로 짐작하고 일부러 괜찮다는 듯 대답했다.“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계속 편하게 살겠어요. 이리저리 부딪히는 거죠.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죠.”“설아 씨의 이 말은 정말 냉랭하네요. 정말 당신은 조금의 양심 가책도 느끼지 않는 건가요?”“
차설아는 주차장으로 향했고 걸을수록 머리가 핑핑 돌고 발걸음이 무거워졌다.“자, 배우들, Standby, action!”뒤에서 감독이 슬레이트 치는 소리가 들렸다.윤설은 휴식처를 떠나 벼랑 끝에 선 채 촬영을 시작했다.이때 긴 생머리에 흰 치마를 입은 윤설을 보니 마치 3개월 전에 그녀의 실수로 절벽 아래로 떠밀어 보낸 임채원을 보는 것 같았다.윤설과 임채원의 얼굴이 하나로 어우러졌고 스태프 사이를 지나 그녀를 보며 음산하게 웃는 것 같았다. 웃다가 입가와 눈가에서 피를 흘린다...“아, 싫어, 오지 마!”차설아는 눈앞이 하얘지며 쓰러지고 말았다.얼마나 지났는지, 살아 있는지 아니면 죽었는지도 몰랐다. 이때 차가운 물 한 대야가 자신의 얼굴에 쏟아졌다.그녀가 눈을 번쩍 떠보니 자신은 어둡고 축축한 작은 창고에 누워 있었고, 목은 개처럼 쇠사슬에 묶여 시뻘건 자국이 났다.“악한 년, 드디어 깼구나!”창고의 높은 곳에서 쌀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차설아의 시선에 나타난 소영금, 그 옆에는 독사처럼 짙은 원한을 품은 서은아가 서 있었다.“영금 이모, 이 악한 년이 깨어났으니 본때를 보여줘요!”서은아는 소영금을 꼬드겼고 차설아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그녀는 자신이 그 남자들에 의해 땅에 엎드려 굴욕을 받은 고통을 잊을 수 없었고, 차설아가 장본인인 차상철의 동생으로서 가장 먼저 응보를 받게 하려 했다.소영금은 두 손으로 난간을 잡고는 매서로운 눈빛으로 바닥에 쓰러진 차설아를 째려보았다. 눈썹을 찡그린 채 목소리는 실망에 가득 찼다.“차설아, 무슨 할 말이 있어?”그녀가 차설아에 대한 감정은 복잡했다. 처음에는 인정하지 않다가 나중에는 볼수록 맘에 들었지만, 이제는 한이 뼛속까지 사무쳐 더는 접수하고 싶지 않았다. 아들이 깊이 사랑하는 여인이 이렇게 독할 수 있다니 믿기 어려웠다.그래서 이미 ‘확증’된 증거가 있더라고 전환될 가능성이 있기를 바랬다.적어도 차설아가 직접 그녀의 죄악을 고백하는 것을 듣고서야 단념하려 했다.차설아는
"…"소영금은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차설아의 머리는 예전과 다름없이 똑똑했고 그녀도 이런 차설아를 마음에 들어 했다.“허허. 남을 탓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탓해. 백설의 억울한 연기에 마비되었어? 역시백설은 연기대상 수상자로서 연기력이 끝내주는군.”차설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쓴웃음을 지었고, 감탄한 듯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그러니 네가 지은 죄를 다 인정했다는 말이니?”소영금은 두 손으로 난간을 꽉 잡은 채 연신 몸을 떨며 물었다.“내가 무슨 죄를 지었어요?”고개를 들어 높이 서 있는 소영금을 바라보는 차설아의 눈빛은 한결같이 날카로웠다.“네가 보기엔? 도윤과 은아가 너의 변태 오라버니 때문에 망가졌어. 넌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어?”“나를 모욕하는 것은 그나마 참아주겠지만 오빠를 욕해서는 안 돼요. 내가 성도윤 씨를 함정으로 끓어드렸기에 그 결과에 대해서는 나 홀로 감당할 겁니다.”오빠의 성질로는 성도윤과 서은아에게 과분한 짓을 한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만약 이 일을 수습하기 위해 반드시 설명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녀는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차설아에게는 오빠가 한 분밖에 없었다.“좋아!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억지 부리는 것을 보니 조금도 고칠 기색이 없군!”소영금은 차설아의 강인한 태도에 화가 나 몸을 떨며 하마터면 등을 돌릴 뻔했다.“모두 나의 잘못이야. 내가 사람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너를 착한 아이로 생각하여 딸처럼 여겼어. 도윤에게도 천하를 저버려도 널 저버려서는 안 된다고 명령했지만 인제 보니... 넌 피도 마음도 차가운 독사야! 전혀 따뜻해지지 않아!”“영금 이모,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마세요. 이 년이 꾀가 많아서 도망이라도 가면 더 힘들어져요. 빨리... 빨리 시작하셔야죠!”서은아는 무슨 변수가 있을까 봐 두려워 소영금더러 조속히 차설아를 수습하라고 재촉했다.어쨌든 성도윤은 이 일을 전혀 몰랐고, 만약 그가 알게 된다면 틀림없이 이 여자에게 마음이 약해질 것이다. 그러면 그녀는 다시 일어
“응. 보고 싶어. 그게 어딘데?”배경윤은 진지한 표정을 한 사도현을 바라보았고 심장이 미칠 듯이 뛰었다. 그래서 겨우 진정하고 태연하게 물었다.“그럼 나랑 같이 가볼래?”사도현은 배경윤한테 손을 내밀면서 부드럽게 물었다.“이 시간 때에 가야 볼 수 있어. 너만 괜찮다면 같이 가고 싶어. 네가 싫다면 강요하지 않을게.”배경윤은 사도현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가자! 혼자서 심심했었어.”“나의 공주님한테는 최고의 선물이 될 거야.”사도현은 눈이 휘어지게 웃으면서 배경윤을 데리고 자신만의 아지트로 달려갔다.두 사람이 멀어진 뒤로 배경윤이 처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날이었다.사도현은 자신이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준 모습에 배경윤이 감동했을 것이라고 여겼다.몇 분 후, 두 사람은 섬의 다른 한 끝에 도착했다. 그곳은 사도현이 지내는 초가집이었고 마당에서 게스트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모여 앉아 해산물을 구워 먹고 기타를 쳤다. 남성 참가자와 여성 참가자 사이에 핑크빛 기류가 흘렀고 분위기가 한층 더 무르익어갔다.“설마 제일 예쁜 풍경이 저 사람들이 해산물을 구워 먹는 모습은 아니겠지?”배경윤은 멀리서부터 한곳에 모여 놀고 있는 게스트들을 발견했다. 사도현한테 속은 것 같아서 화가 솟구쳐 올랐고 배신감이 들었다.‘이럴 줄 알았어. 진지한 척만 하고 항상 나를 놀리고 싶어 했지. 내가 또 속을 줄 알아?’“그쪽 말고 여기로 가자.”사도현은 배경윤을 데리고 아무도 모르게 뒷문으로 초가집 안에 들어갔다. 배경윤은 미간을 찌푸린 채 사도현을 노려보았다.“고작 초가집을 보여주려고 데리고 온 거야? 그럴 바에는 나가서 다른 사람들이랑 노는 게 낫겠어. 너는 왜 항상 나를 놀리는 건데? 단 한 번만이라도 진지할 수는 없어?”“잠깐만 기다려 줘. 곧 보게 될 거야.”사도현은 배경윤의 두 눈을 손으로 가리고 불을 껐다.“사도현,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또 허튼수작을 부렸다가는 소리 질러서 너를
[재벌가 도련님과 암컷 돼지의 은밀한 관계!][사도현의 정신 상태 우려스러워...]사도현의 부드러운 노랫소리 덕분에 암컷 돼지는 첫 번째 새끼 돼지를 순리롭게 낳았다.“드디어 아기를 낳았어! 돼지야, 너는 정말 멋진 엄마야. 다른 아기도 힘내서 낳자!”사도현은 새끼 돼지 몸을 수건으로 닦아주고는 낡은 옷에 감싸안았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맺혔고 마음이 뭉클했다.예전부터 사도현은 딩크족이었다. 아이는 그저 악마 같은 존재일 뿐, 절대 가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갓 태어난 새끼 돼지를 보면서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이 프로그램이 끝나면 경윤이랑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거야. 경윤이를 닮은 아이면 얼마나 예쁠까?’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한 출산이 마무리되었다. 다섯 마리의 암컷 돼지는 순리롭게 몇십 마리의 새끼 돼지를 낳았고 장은학은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사도현이 빨리 달리고 용기를 낸 덕분에 다른 게스트를 제치고 먼저 1000점을 획득했다. 장은학은 마을 이장과 함께 꽃다발을 건넸고 ‘돼지 출산 전문가’라는 글이 적힌 상장도 주었다.사도현의 하얀 셔츠가 더럽혀졌지만 꽃다발과 상장을 안고 있으니 무척 행복했다.사도현은 배경윤 쪽으로 다가가서 환하게 웃더니 상장을 보여주면서 말했다.“경윤아, 내가 결국 해냈어. 네가 후회할 날이 올 거라고 내가 말했었지? 이제는 그렇게 여유롭지 못할 거야. 기대해도 좋아.”배경윤은 싱글벙글 웃는 사도현을 바라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고 슬며시 엄지를 내밀었다.“네가 진짜 해낼 줄은 몰랐어. 진짜 대단해.”날이 어두워지자 사도현은 게스트들을 불러 해산물 바비큐 파티를 열었다.게스트들은 모닥불 앞에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도현은 사람을 시켜 진찬영이 파티에 참가하지 못하고 업무 전화만 받게 했다.사도현은 배경윤이 지내는 숙소로 걸어갔다.배경윤은 해산물 바비큐 파티에 참가하지 않고 혼자 별장의 베란다에 기대 넓은 바다를 내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날이 어두워
암컷 돼지들은 괴로워하면서 소리를 질렀고 허공에 대고 발길질했다. 그러면서 몸에 붙어있던 배설물이 사방으로 튀어서 접근하기 어려웠다.사도현은 토하고 싶었지만 겨우 참았고 천천히 다가갔다.“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도 좀 해 봐! 난산이어서 이러다가 죽을지도 몰라.”장은학은 급한 마음에 목청을 높여 말했다.“확실히 할 줄 아는 사람 맞아? 할 줄 모르면 당장 나와. 자네 말고도 할 수 있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어.”“잠시만요. 제가 할 수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사도현은 코를 막고 겨우 말했다.‘이 세상에 내가 해내지 못하는 일은 없어. 고작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주는 걸로 겁먹지 말자. 나는 할 수 있어.’고민하던 사도현은 휴대폰을 꺼내 암컷 돼지의 출산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첫째, 산후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깨끗한 출산 공간을 만들어주고 괴망간산칼륨으로 암컷 돼지의 온몸을 한 번 닦는다.][둘째, 가위를 소독하고 새끼 돼지의 탯줄을 자른다.][셋째, 낡은 수건이거나 옷으로 새끼 돼지의 몸을 닦아주고 감싸안는다.][그리고 출산 과정에서 암컷 돼지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부드러운 말투로 다독이거나 노래를 불러서 암컷 돼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어야 한다.]암컷 돼지의 출산 절차를 보고 난 사도현은 당장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연예계에서 알아주는 재벌가 도련님, 유명한 회사의 대표가 이제는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주어야 했기 때문이다.황당한 일이 연속 벌어지니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사도현 씨, 할 수 있는 거 맞아요? 못 하겠으면 빨리 나오세요. 대학교 때 배웠던 적이 있어서 제가 더 잘할 것 같거든요.”하늘은 돼지우리 밖에서 목을 빼 들고 말했다. 하늘은 사도현 다음으로 제일 초라한 별장을 선택한 사람이었기에 별장을 바꾸고 싶었다.“할 수 있으니 들어오지 마세요. 이건 제가 알아서 할 거예요.”사도현은 심호흡하고는 가만히 누워있는 암컷 돼지를 괴망간산칼륨으로 닦아주었다.암컷 돼지는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면서 버둥거렸
암컷 돼지가 새끼 돼지를 낳는 것을 도와주면 1000점을 얻을 수 있었다. 사도현이 그 점수를 얻게 되면 다른 참가자의 별장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를 것이다.그때가 되면 사도현은 배경윤이 선택한 바다 별장을 빼앗을 것이고 배경윤이 어떤 반응일지 몹시 궁금했다.사도현은 제일 빠른 속도로 달려 마을 안쪽에 있는 장은학의 집에 도착했다. 장은학은 국가의 정책에 따라 도움을 받을 정도로 아주 가난했다.집에서 암컷 돼지를 다섯 마리 기르면서 돈을 벌려고 했다. 장은학이 정성스럽게 보살핀 덕분에 암컷 돼지들은 출산을 앞두게 되었다. 하지만 장은학이 까막눈이라서 어떻게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야 할지 몰랐다. 그때 > 제작진이 이 섬에 오게 되었고 장윤태는 장은학을 만나게 되었다. 이야기를 들은 장윤태는 무르팍을 치면서 무척 좋아했다.“그럼 게스트들이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주면 되겠어. 새끼 돼지가 태어난다는 건 새 생명을 맞이한다는 거잖아. 남성 참가자와 여성 참가자가 같이 출산을 도와주면 기묘한 분위기가 이루어질 거야.”이때 제작진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장 감독님, 출산을 도와주는데 어떻게 기묘한 분위기가 생긴단 말이에요?”제작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장윤태는 암컷 돼지의 출산을 도와주는 일에 높은 점수를 걸었다. 이 에피소드는 시청률을 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다.하지만 암컷 돼지의 출산 장면이 나가기도 전에 이미 시청률은 정상을 찍고 있었다.사도현과 배경윤의 키스 장면 덕분이었다. 장윤태는 기대에 가득 찬 눈빛을 하고 말했다.“괜찮아. 암컷 돼지의 출산 장면은 이 프로그램의 두 번째 하이라이트가 될 거야.”장은학은 돼지우리 앞에 서서 미간을 찌푸린 채 기다리고 있었다. 사도현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는 재빨리 다가가서 말했다.“자네가 바로 출산을 도와주러 온 사람인가?”“저, 저는...”사도현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비록 제일 일찍 도착했지만 암컷 돼지의 출산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웃기지 마!”배경윤은 사도현을 밀어내고는 목청을 높였다.“너는 어쩌면 날이 갈수록 뻔뻔해지는 거야? 내가 선택한 바다 별장에 너 같은 사람은 절대 들어올 수 없어. 미안하지만 나가줄래? 앞으로 내 집에 들어오지 말아줘.”배경윤은 사도현이 어떤 남자인지 잘 알고 있었다. 미쳐 돌아서 카메라가 있는 곳에서 수위 높은 행각을 벌이려고 든다면 감당할 수 없었다.지금으로서 제일 좋은 방법은 사도현과 거리를 두는 것이다. 그러면 사도현의 음험한 계획에서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다.조각 같은 사도현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피어올랐다.“경윤아, 지금 네가 한 말 후회하게 될 거야. 그때가 되면 나한테 울면서 빌어도 소용없어.”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게스트들이 일부러 두 사람을 놀려댔다.“유명한 회사 대표가 경윤 씨만 바라보고 직진하는데 왜 자꾸 내빼는 거예요? 솔직히 마음 있잖아요.”“프로그램의 이름을 >이 아니라 >이라고 바꾸는 게 낫겠어요.”“사도현 씨, 경윤 씨가 지내는 별장에 들어오세요. 어차피 곧 가족이 될 사람들인데 초가집에 살든, 별장에 살든 상관없잖아요.”배경윤은 미간을 매만지면서 한숨을 내쉬었다.“여러분, 놀리는 것도 적당히 하세요. 사도현은 시한폭탄 같은 존재예요. 요트에서 저를 제압하고 그런 짓을 했으니 여성 참가자를 쉽게 보고 함부로 대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 저랑 같은 편에 서서 사도현과 맞서 싸워야 하는 거 아닌가요?”“그런 사람이라서 더 무섭다는 말이에요.”소수민은 웃음을 겨우 참으면서 사도현을 힐끔 쳐다보았다.“저는 차라리 사도현 님처럼 완벽한 남자가 다가와 주길 바랐어요. 그런데 이미 마음은 정해진 것 같으니 어쩔 수 없죠. 유빈 씨, 이나 씨. 제 말이 맞죠?”장유빈과 양이나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사도현 씨처럼 멋진 남자가 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어요? 그러니까 기회가 왔을 때 잡으세요.”명문대 학생 장유빈은 사도현을 지그시 쳐다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차갑기
소수민이 숙소를 선착순으로 정한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올림픽 금메달 선수 하늘과 더 얘기하지 않고 재빨리 달려갔을 것이다.“장 감독님이라면 그럴 줄 알았거든요. 장 감독님이 촬영한 예능을 보면서 어떤 스타일인지 알게 되었어요. 혹시나 해서 먼저 뛰었더니 진짜 선착순이더라고요.”“아까 경윤 씨가 사도현 씨랑 키스하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부러웠는지 알아요? 게다가 바다가 보이는 별장까지 선택했으니 정말 모든 걸 다 가졌네요.”소수민은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수민 씨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어요? 저랑 사도현을 보고 있었나요?”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배경윤은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다.“실시간 방송이라 진작에 소문이 났는걸요. 두 사람이 키스하는 장면을 네티즌이 편집해서 올린 모양인데 그게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어요.”“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어! 망신당했으니 어쩌면 좋아.”배경윤은 바다를 쳐다보면서 소리를 질렀고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인터넷에서 영상이 퍼졌다는 건, 진찬영도 그 영상을 보게 되었다는 뜻이다.‘사도현, 너 일부러 그런 거지? 나랑 찬영 오빠를 갈라놓으려는 수작이잖아.’배경윤은 저 멀리서 진찬영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진찬영의 두 눈은 오로지 배경윤을 향해 있었다.“찬, 찬영 오빠...”배경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발끝만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 모습은 바람이 난 아내가 남편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경윤 씨는 운이 참 좋은 것 같아요. 그전에 나한테 얘기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 별장이네요. 바다를 마주 보고 있고 날씨가 따뜻하잖아요.”진찬영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면서 미소를 지었다.“네. 정말 좋아요.”배경윤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물었다.“찬영 오빠는 어디에서 지내요?”“아주 운 좋게도 경윤 씨랑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내게 되었어요. 경윤 씨만 괜찮다면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식사해요. 이래 보여도 요리 하나는 자신 있거든요.”“저야 너
배경윤은 제일 빨리 달려갔고 여섯 채의 별장 중에서 가장 근사한 별장을 선택했다.반대로 사도현은 느긋하게 걸어서 마지막으로 남은 별장을 선택했다. 별장이라 하기에는 한없이 누추한 초가집이었고 지붕도 없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지낸단 말이에요? 다른 집으로 안내해 주세요.”사도현은 재벌가 도련님으로서 어릴 적부터 큰집에서 자랐다. 그런데 갑자기 초가집에서 지내라니 기가 찼다.“사도현 씨, 정말 죄송하지만 이곳의 규칙을 준수해야 해요. 숙소는 선착순으로 결정되지만 합산 점수가 가장 높은 참가자에게는 숙소를 바꿀 수 있는 자격이 주어져요. 며칠 동안 힘내서 점수를 얻으세요.”사회자 최빈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사도현은 윈스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지만 연애 프로그램에 참가했으면 규칙을 잘 준수해야 했다.그렇지 않으면 시청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다.“숙소를 바꿀 수 있다고요?”사도현은 턱을 매만지더니 씩 웃으면서 물었다.“어떻게 하면 점수를 얻을 수 있어요?”“밭일을 하거나 가축에게 먹이를 주면 돼요. 바닥에 널린 소똥과 개똥을 치워도 되고요. 아무튼 이곳은 할 일이 아주 많으니 일을 찾아서 하면 점수를 드려요.”그러자 사도현의 표정이 삽시에 굳었다.“연애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을 부려 먹는 프로그램 아니에요? 자꾸 힘든 일만 하라고 부추기는 것 같아요.”최빈은 어색하게 웃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아시다시피 장윤태 감독님이 >을 찍은 지 얼마 되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사랑을 찾으러 온 이곳에서 직접 일하면서 성취감도 느끼고 호감을 느끼는 상대의 마음을 얻으라는 취지라고 했어요.“하! 소똥이나 주우면서 매력을 발산하라는 말이네요? 궂은일만 하는데 어떻게 로맨틱한 분위기가 이루어지겠어요. 감독님도 참 대단해요.”사도현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왔다. 그러고는 주먹을 꽉 쥔 채 말했다.“합산 점수가 제일 높으면 된다는 뜻이죠? 내가 이런 승부욕은 또 있거든요. 다른 남성 참가자한테 뒤처지지 않을 거예요.”사도현은 소
윤설은 화면 속의 배경윤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배경윤, 네까짓 게 뭔데 내 남자를 차지해! 죽기보다 못한 삶을 살게 해줄 테니 딱 기다려. 연예계라는 곳은 너처럼 멍청한 년이랑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해줄게.”윤설은 심호흡하고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상대는 인터넷 마케팅 회사의 사장이었다. 그 회사는 수백 개의 계정으로 한 사건의 여론을 조작하는 것에 능했다.“윤설 씨, 오랜만이에요. 고귀하신 분이 어쩐 일로 연락했어요?”“장 사장님, 그동안 너무 받기만 해서 선물이라도 드리려고요.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예요.”“저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요즘 장사도 잘되지 않아서 골치 아팠거든요. 한번 들어나 볼까요?”“배경윤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있죠? 이 여자가 망신당하게 해주면 돼요. 평생 먹고 살 걱정 없이 챙겨드릴 테니 확실하게 해주세요.”“저한테 맡겨만 주세요. 밑바닥으로 끌어내리는 건 우리 회사가 이 바닥에서 제일 잘해요. 조만간 다시 연락드릴게요.”윤설을 전화를 끊고는 피식 웃었다. 한편, 요트에서 사도현이 돌진한 뒤로 배경윤은 꼼짝하지 못했다.“사도현, 너는 내가 본 남자 중에 제일 뻔뻔한 남자야. 너처럼 뻔뻔하면 못 하는 일이 없겠어.”조각상 같은 사도현의 얼굴에 빨간 손자국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사도현은 개의치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배경윤은 그저 한숨만 나왔다.“뻔뻔스러운 척했을 뿐이야. 너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여기 왔으니 뭐라도 해야지. 나는 직진할 줄밖에 몰라.”사도현은 평온하게 말했다.“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 나의 마음을 얻고 싶다면서 왜 계속 확신을 주지 않았어? 너는 진심을 표현할 줄 모르는 멍청이야.”배경윤은 사도현과 사귀기 전에 있었던 일들이 줄줄이 생각났다. 사도현의 여자가 되려고 애썼지만 고통만 받았기에 다시는 자신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내가 너한테 상처 준 걸 많이 후회했어. 너를 잃고 나서 내가 잘못했다는
“읍!”배경윤은 갑자기 돌진한 사도현을 뿌리치려고 발버둥 쳤지만 소용없었다. 사도현은 배경윤을 집어삼킬 것처럼 격렬하게 키스를 퍼부었다.편집 없이 실시간으로 방송되었기에 시청자들의 흥미를 자아냈다. 두 사람이 입을 맞추는 모습을 본 네티즌은 앞다투어 댓글을 달았고 시청률은 기록을 경신했다.[아니, 내가 이런 장면을 봐도 되는 거야? 드라마보다 더 로맨틱하잖아!][키스하는 것처럼 연기하는 줄 알았더니 정말 입을 맞추었어. 유명한 그룹의 대표와 사랑에 빠지는 대본을 나도 받아보고 싶네.][윈스 엔터테인먼트에서 그 여배우를 더 이상 밀어주지 않았던 건 다 이유가 있었어. 벌써 새로운 여자랑 놀아나고 있었던 거지!][그럼 배경윤이 첩이네. 첩 주제에 연애 프로그램에 왜 출연하는 거야? 이런 사람을 섭외한 제작진도 이상해.][지금 몇 세기인데 첩을 논해? 고귀한 사도현이 그 여우한테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다가 지쳤을 뿐이야.][네가 뭔데 우리 윤설을 여우라고 해? 윤설이 사도현한테 그렇게 해달라고 했어? 잘 모르면 가만히 있어.]네티즌은 의견이 분분했고 댓글이 삽시에 몇천 개씩 달렸다.사도현과 배경윤을 응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배경윤을 첩이라고 부르면서 모욕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윤설의 극성팬들이 윤설을 옹호했다.하지만 대부분 시청자는 두 사람이 입을 맞추는 장면에 감탄하면서 댓글을 달았다.사도현과 배경윤의 촬영을 맡은 일부 제작진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드라마 같은 장면을 계속 촬영해야 했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가늠조차 하지 못해서 장윤태한테 도움을 청했다.“두 사람을 방해하지 말고 내버려둬. 예능이 아니라 다큐멘터리를 찍는다고 생각해.”화면을 응시하고 있던 장윤태는 엄숙한 표정을 하고서 말했다. 배경윤과 진찬영을 이어주려고 했지만 갑자기 돌진한 사도현 때문에 흐름이 끊기고 말았다.수줍고 천천히 다가가는 진찬영과 달리, 사도현은 직진하는 남자였다.방송한 지 20분도 채 되지 않아서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아무리 잘 짜인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