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눈앞의 이 남자가 가짜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는 천성적으로 강한 포스를 가지고 있어 여전히 장재혁을 벌벌 떨게 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공손해졌다."그럼 그러지 뭐!”성도윤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문을 밀고 들어갔다."잠깐!"장재혁은 성도윤이 문을 밀 때 얼굴을 찌푸리며 그를 불렀다."잘 생각해봐요, 여기는 물 감옥이라고요. 들어가면 정말 죽을 수도 있어요.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한 고통을 받으며 서서히 죽어버릴 거라고요!”"그녀만 무사하다면 나는 상관없어.”성도윤은 심호흡하고 거침없이 문을 밀고 들어갔다.한편 감옥 안에서는 차설아의 허리까지 물이 차올랐고 이제 5분도 안 돼 어깨까지 물이 차오를 텐데 그러면 최소 500마리의 뱀과 쥐, 개미가 저절로 방출될 거다. 그중에는 독이 든 뱀이 들어 있어 아주 긴박한 상황이었다.“차설아!”쇠사슬에 묶인 여인을 본 성도윤은 심장이 조여오는 듯했는데 다급히 여인의 이름을 외쳤다."당신... 정말 온 거에요?”차설아는 남자가 오지 않을 거로 생각하고 포기하려고 했는데 남자가 정말 자신을 구하러 온 것을 보고 감동했고 더 이상 남자가 그를 가지고 논다는 생각을 접었다."내가 당신을 얼마나 찾았는데... 왜 나를 만나기 싫어하고 나를 성도윤에게 양보하려고 하는 거죠?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요, 묻고 싶은 일도 많고... 나는...”"말하지 말아요, 곧 위험해질 거예요. 얼른 물 감옥에서 나와요!”성도윤은 이 물고문이 얼마나 변태적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성심 전당포를 운영하던 지난 4년 동안 이 지역을 직접 봉쇄했었다.그 변태 Q가 돌아오자마자 이렇게 빨리 이곳을 재부팅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전에 다 부숴버리라고 했을 텐데!남자는 옷도 바지도 벗지 않은 채 물 감옥에 뛰어들어 차설아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족쇄를 풀려고 안간힘을 썼다.차설아는 얼어서 입술이 하얗게 질리고 온몸이 젖어있지만 눈빛은 반짝반짝 빛났고 감동한 듯 성도윤을 바라보았다.
차성철은 높은 자리에 서서 아직 물 감옥에 있는 차설아를 향해 소리쳤다."설아야, 빨리 올라와. 곧 수위가 차면 이 구멍에서 나오는 것은 물이 아니라 매우 무섭고 독이 있는 뱀, 벌레와 쥐일 거야.““안 돼!”차설아는 고개를 쳐들고 긴장된 표정으로 차성철을 바라보았다."오빠,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거야? 이 짝퉁은 내가 다 처리하기로 했잖아, 지금 뭐 하는 거야?“"너에게 전권을 주려고 했는데 이 짝퉁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되니 그냥 넘어갈 수는 없을 것 같구나. 이 오빠를 한 번만 용서해 줘.“차성철의 가면 아래 눈빛이 사납게 변했는데 이 짝퉁을 산산조각내고 싶어 하는 눈빛이었다."이것은 나와 이 자식의 개인적인 원한이야, 이 원수를 갚기 위해 내가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참았는데 어찌 놓아줄 수 있겠어?”"개인적인 원한이라고?"차설아는 손발이 쇠사슬에 묶인 채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성도윤을 돌아보며 물었다."당신이 누구인지 직접 말해줄 거에요?”그녀의 마음속에는 이미 약간의 추측이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는 믿고 싶지 않았다."미안."성도윤은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그가 이곳에 온 이상 신분이 들통날 각오를 했으니 차설아가 그를 용서하든 더 미워하든 이미 상관없었다.그냥... 그녀가 무사하면 된다."설아야, 네가 이렇게 똑똑하니 이미 짐작했겠지? 더는 자신을 속이지 말고 빨리 올라와.”차성철은 차설아가 고통받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었는데 수위가 갈수록 높아졌고 스위치는 인위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 계속 이렇게 지체하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나는, 나는 몰라. 정말 그가 누군지 모른다고, 그는...”차설아는 눈시울이 붉어졌는데 마치 고집이 센 바보 같았다.그녀가 그토록 부정하는 까닭은 자신이 남에게 제멋대로 속는 바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싫기 때문이다."너는 여전히 너무 감정적이야, 더 이상 너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차성철은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흔들며 부하들에게 명령
"차설아 씨."그는 차설아의 제법 앙상하고 쓸쓸한 모습을 보며 그녀를 뒤쫓았다."또 무슨 일이지?""정말 이대로 가십니까?”"그렇지 않으면?""빨리 가서 형님을 막으세요. 그는 농담이 아닙니다. 전체 전당포, 아니 해안 전체에서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입니다. 이대로 가시면 미스터 Q, 아니 성도윤 그 나쁜 놈은 정말 죽을 겁니다!”"나쁜 놈이 죽으면 온 세상이 다 기뻐하는 거 아닌가?”"말은 그렇지만 그가 죽으면 마음 아프지 않나요? 무슨 나쁜 후과가 생길까 봐 두렵지는 않아요?”장재혁은 약간 격앙된 어투로 말했다.성도윤은 줄곧 성심 전당포의 적이었고 양방이 싸울 때 그도 주력군이었는데 성가의 사람들에 의해 다리를 다쳐서 지금도 후유증이 남아 있었다.그러니 그도 당연히 성도윤을 미워했다.그러나 지난 4년 동안 그와 함께 지낸 것을 생각하면 성도윤이 그렇게 잔인한 사람이 아니고 이렇게 헛되이 죽을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허허, 내가 괴로울 게 뭐 있어?”차설아는 물감옥을 등지고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바보처럼 군거에 괴로워해야 할까, 아니면 나에게 희망을 주고 다시 실망하게 한 거에 괴로워할까? 또 아니면 그가 나를 포기해서 괴로운 거야?”그녀는 원래 자존심이 매우 강하고 교만한 사람이었다. 처음 상처를 입었을 때 자기 치유로 버틸 수 있었지만 반복해서 같은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도 또 마음이 약해지면 그것은 생각이 없는 바보인 거다."당신 말이 맞아요, 그는 속이지 말았어야 했어요. 하지만...어쩌면 그에게 무슨 고충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잖아요.어쨌든 당신에 대한 그의 사랑은 진실이잖아요. 그렇지 않다면 그는 당신을 구하기 위해 앞이 막다른 골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을 겁니다.”"그건 그 자신이 미련한 거야.”차설아는 이를 갈며 눈시울을 붉혔다.바보 같은 남자, 판인 줄 알면서도 달려오다니... 죽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제가 할 말은 다 했으니 잘 생각해 봐요. 부디 지금, 이
곧이어 차성철의 방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하하, 성도윤, 너에게도 오늘이 있을 줄이야, 그때 내가 그렇게 나에게 살길을 달라고 부탁할 때 눈도 깜빡하지 않더니 오늘 이렇게 된 것은 바로 그 응보야!”"다들 쉬지 말고 계속 넣어, 더 많은 것을 넣으라고. 이 건방진 놈에게 죽는 것보다 못하다는 것인지 무엇인지 맛보게 할 거야!”그리고 성도윤의 고통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장재혁은 발을 동동 구르며 차설아의 차가운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정말 오래 버티지는 못 할거에요. 제발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라요.”"아, 짜증 나!”차설아는 불평을 늘어놓고는 다시 물 감옥으로 돌아갔다.과연 이미 성도윤의 목까지 물이 차올랐고 뱀의 형태가 간간이 보였다.남자는 괴로운 표정이었고 의기양양하던 얼굴이 일그러진 걸 보니 뱀에게 적잖이 물린 모양이었다."그만해.”차설아가 소리쳤다."왜 또 왔어, 이 아름다운 모습을 너도 보고 싶은 거야?”차성철은 고개를 돌려 차설아를 보며 싱글벙글 웃었다."드디어 이 건방진 놈의 낭패한 꼴을 보았네, 나는 이날을 너무 오래 기다렸어.”"오빠, 부탁이야. 벌은 다 받았으니까 인제 그만 봐줘.”차설아는 눈시울이 붉어졌고 울먹이며 간구했다."너 왜 그래, 방금은 꽤 과단성 있지 않았어? 왜 이런 나쁜 남자 때문에 우유부단 하는 거야...”"그만해, 놔줘. 그는 오래 못 버틸 거야.”"오래 못 버티면 죽으면 되지. 애초에 봐 줄 생각 없었어.”"하지만 난 봐줄 생각이야. 그러니 오빠도 반드시 그를 놓아줘야 해.”"반드시?"차성철은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내가 널 아낀다고 이렇게 위아래가 없어도 되는 건 아니야. 너는 너무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해. 내가 오늘 이렇게 하는 목적은 너로 하여금 사랑을 끊게 하기 위함이야...”"그래, 오빠가 놓아주기 싫으면 내가 직접 구해 올게!”차설아는 두말없이 뛰어내렸다.“설아야!”차성철은 차설아가 이렇게 감정적으로 행동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고 황급히 손을 들었다."빨
"쓸데없는 소리 말고 버텨.”차설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도 체력이 다해 쓰러졌다.차성철은 결국 마음이 약해져 사람을 보내 차설아와 성도윤을 구해내 기술이 뛰어난 의사를 불러와 전력으로 응급처치를 하였다...이튿날.차설아는 고통 속에서 정신을 차리렷다."드디어 깼구나. 오빠 급해 죽을 뻔했어!”차성철은 차설아의 손을 덥석 움켜쥐고 격동하여 두 눈이 빨개졌다."너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나는 오빠로서 살아있을 필요가 없어...”차설아는 입술이 창백하고 힘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 와중에 성도윤 걱정부터였다.“성도윤은 어때?”"성도윤은...”차성철은 눈빛을 반짝이며 화제를 돌렸다. "너는 지금 어때, 두통도 없고 눈도 안 침침해? 잘 볼 수 있겠어?”"난 괜찮아, 그냥 머리가 좀 아플 뿐이야. 말해 봐... 성도윤은 어떻게 됐어?”차설아는 다급한 표정으로 물었다.오빠의 반응을 보면 성도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그 사람, 그 사람이 어떤지 나도 잘 몰라.”차성철은 한참을 우물쭈물했지만 여전히 대답이 모호했다.차설아는 더욱 급해졌다. 남자의 손을 꼭 잡았는데 순간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잘 모르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살아있어?”"살기는 살았는데...”"근데?”"아직 혼수상태이고 킹코브라 독에 중독됐는데 안구에 독이 옮은 것 같아... 어쩌면 실명할 수도 있어.”차성철은 말할수록 조심스러워졌다.예전의 성격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과하게 행동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고 상대가 성도윤이라면 시체가 조각조각 나더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을 거다.하지만 여동생이 이놈에게 이렇게 신경을 쓰고 심지어 죽음을 무릅쓰고 이놈을 구할 수도 있다는 결심을 보니 만약 성도윤에게 정말 뜻밖의 일이 생긴다면 그는 그가 모처럼 바라던 남매의 정이 끝장나리라 생각했다."뭐, 실명?”차설아은 머리가 윙 했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성도윤처럼 교만한 사람이 실명한다면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다 내 탓이야... 내가 왜
성도윤은 전당포 객실에 누워 눈을 질끈 감은 채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얼마나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빠졌어?”차설아는 허약한 몸을 가누고 재빨리 남자의 침대로 다가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성도윤을 보는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녀는 아무나 손가락을 조금만 움직여도 죽일 수 있을 만큼 나약한 모습의 그를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너희들은 함께 구조되었으니 사흘은 될 거야.”차성철은 뒤에 서서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솔직하게 대답했다."왜 병원에 보내진 않았어? 이런 경우 전문 병원이어야 방법이 있지 않겠어?”"왜 안 보냈냐고?”"내가 처음에는 사람을 보내서 너희들을 병원으로 보냈는데 그 의사들도 어쩔 수 없이 위독하다는 통지를 내렸어. 그리고 내가 큰돈을 들여 전문 의사를 찾아 너희들의 생명을 구한 거야. 그렇지만 말이야...성도윤이 생명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는 그의 운명에 달려 있지.”"허허, 그 말은 나와 그가 당신 생명의 은혜에 감사해야 된다는 뜻인가?”차설아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녀와 성도윤이 이렇게 되었는데 차성철을 완전히 원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하지만 이 사람은 자신의 혈육이니 정말 미워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그래서 그녀는 갈등했고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그녀를 괴롭혔고 고통스러워 죽을 지경이었다.차성철도 바보가 아니니 차설아의 복잡한 감정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있겠는가? 그의 잘생긴 얼굴도 덩달아 진지해졌다."설아야, 이놈이 도대체 너에게 무슨 짓을 했길래 너는 그에게 이렇게 목을 매는 거야?내가 기억하기론 너를 배신했잖아? 쓰레기 같은 남자를 위해서 네가 오빠와의 관계를 어색하게 만드는 것을 선택할 정도로 정말 가치가 있는 사람이야?”"나는 그에게 목을 매지 않았고 너와의 관계를 어색하게 만들지도 않을 거야. 나는 단지 그가 목숨을 바쳐야 할 정도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오빠의 방법은 너무 극단적이고 냉혈한 괴물 같아!”큰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차설아는 참다못해 고개를 들
"앞으로 두 아이가 나를 미워할 것 같은데... 내가 아버지를 죽였다고.”"걱정하지 마, 내가 찾는 의사는 아주 용해. 제때 깨면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했어, 이 녀석은 분명 괜찮을 거야.”차성철은 원래 성도윤을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그놈이 조카의 친아버지라니 목숨을 살려줄 수밖에 없었다."그러길 바라야지...”차설아는 한숨을 쉬었다.“나 머리가 복잡해서 그러는 데 이 사람이랑 단둘이 있고 싶어.”"그래!"차성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설아의 어깨를 툭툭 치며 미안한 말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 이 일은 오빠가 잘못했어. 내가 어떻게든 만회할게.”차성철이 방을 나간 후 차설아는 더 이상 이성적이거나 냉담한 척하지 않았다.그녀는 남자의 침대 앞에 쪼그려 앉아 손을 뻗어 남자의 손을 잡았다. 미간에는 걱정이 가득했다."성도윤, 충분히 잤으니까 이제 깨어나야지. 나랑 아이들 모두 네가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어, 그러니 내 말 듣고 깨어나, 응?”“...”성도윤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비록 당신이 매우 냉혈하고 무자비하고 매번 나를 바보로 취급하니 나는 당신을 영원히 미워해야 맞지만 내가 마음이 넓으니 당신이 깨어나기만 하면 우리의 모든 원한을 깨끗이 청산할 기회를 줄게.”“...”성도윤은 여전히 아무 반응 없이 평온하게 누워 있었다.차설아은 절망적이었고 곧 무너질 것 같았다."성도윤, 그만해. 어떻게 하면 깨어날 수 있겠어? 내가 영원히 너를 떠나야 깨어날 거야?”차설아는 눈물을 흘리며 울먹였다. "그래, 약속할게. 너만 깨어나면 다시는 매달리지 않을게. 다시는 네 삶에 나타나지 않을게.”“...”신기하게도 차설아가 그렇게 말하고 나니 성도윤의 굳게 감은 눈꺼풀이 약간 움직이며 반응을 보이는 듯했다.차설아는 깜짝 놀라 멍하니 남자를 바라보았는데 씁쓸하기 짝이 없었다.이게 정녕 하늘의 지시란 말인가.그 둘은 함께 할 수 없는 운명이고 만약 진짜 함께라면 생명의 대가를 치르게 될 거란 말인
차설아가 방에서 나왔을 때 줄곧 밖에서 기다리던 차성철이 보였다."왜 그래? 저놈이 깼어?”"손가락이 움직이는 걸 보니 깨어날 것 같아...“차설아는 애써 감정을 추스르고는 굳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한 가지만 약속해 줄래?”"물론이지, 네가 뭘 요구하든 오빠가 다 들어줄게!”차성철은 하나뿐인 여동생이 그를 미워할까 봐 비굴한 태도로 말했다."성도윤을 잘 치료하고 그를 해치지 말아줘.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원이 달이를 위해서라도 그에게 살길을 열어줘.”차성철을 바라보는 차설아의 눈빛은 강인하고 조금의 양보도 없었다.이런 일련의 일을 겪으면서 그녀는 그녀가 차성철에 대해 아직 충분히 알지 못한다고 느꼈고 오랫동안 헤어진 오빠의 수단이 어떤지도 몰랐다.그래서 아무리 그들이 쌍둥이라고 해도 그녀는 감히 그를 완전히 믿지 못할 것이다."그건...”역시, 차성철은 눈빛을 번쩍이며 망설이는 것 같았다.아마도 그는 처음부터 성도윤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고 신의를 찾아 치료하려 했다는 것도 단지 차설아를 달래는 계략일 뿐이었을 거다."성도윤의 목숨은 바로 오빠와 나의 남매의 정이야. 그가 죽으면 우리도 관계를 끊는 거야.”차설아는 모질게 말했다.차성철은 눈살을 찌푸리며 격렬한 신경전을 벌인 뒤 차갑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성도윤의 개 목숨보다 남매의 정이 더 중요했다.“고마워.”차설아도 차성철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럼 부탁할게, 나 먼저 갈게.”"가?"차성철은 여자의 앞을 가로막고 곤혹스러워했다. "이 상황에 어딜 가? 그렇게 그를 신경 쓰면 그가 위험에서 벗어날 때까지 그의 곁을 지켜야 하는 것 아니야?”"아니."차설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나와 그는 공존할 수 없어, 내가 지금 떠나는 게 내가 그를 위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야.”"그럼 어디 가는 거야? 나랑 같이 가는 게 어때, 우린 이제 막 만났어. 난 너랑 헤어지고 싶지 않아...”"걱정하지 마, 오래 떠나지 않을 거야. 우린 아직 할 일이 많
사도현은 배경윤이 적은 글을 보고 낮게 한숨을 쉬었다.“윤설 씨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렇게 하면 더 큰 사이버 폭력이 일어날 수도 있어. 난 그냥 소란을 일으킨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 연예인 본인까지 끌어들일 필요는 없어.”[흠, 당연히 연예인 본인까지 끌어들이지 않길 바랄 거야. 그 사람들 도현 씨 팬들이잖아. 게다가 윤설 씨까지 얽혀서 그 여자가 곤란해질까 봐 그런 거지?]배경윤은 그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신경을 쓰는 모습을 처음 봤다. 윤설이 첫 번째이자 아마 유일한 사람일 거라는 생각에 그녀는 눈앞의 이 남자를 더 용서할 수 없었다.‘이런 바람둥이!’“조금만 머리 쓰면 내가 왜 이렇게 하는지 알 텐데.”사도현은 배경윤의 ‘모함’을 듣고 이 오명을 씻을 수 없다는 생각에 더 이상 해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차갑게 말했다.“네가 뭐라고 생각하든, 나는 이 사건에 연예인 본인을 끌어들이는 걸 절대로 허용하지 않아.”그도 어쨌든 윈스 엔터테인먼트의 CEO였고 연예계의 돌아가는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때로는 하나의 루머가 칼날처럼 되어 사람을 죽음의 길로 몰아넣을 수 있다.연예계에서 온라인 폭력에 의해 처참하게 망가진 스타들이 많았고 배경윤과 차설아 같은 일반인은 그 악플의 고통을 더 견디기 힘들 것이다.[헐, 이제 나를 협박하겠다는 거야? 도현 씨가 그렇게 말할수록 난 더 윤설을 찾아갈 거야. 날 어떻게 할 건데?]배경윤은 분노를 담아 빠르게 타자를 했다. 소리 없이 치는 타자 소리만으로도 그녀의 분노가 느껴졌다.성도윤은 그들 옆에서 분위기를 살피며 처음으로 연애 문제가 이렇게 복잡하고 피곤할 수 있다는 걸 실감했다.이 두 사람은 분명 서로에게 감정이 있었지만 계속해서 상처가 되는 말들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망쳐가고 있었다.‘내가 보기엔 차설아와 내 관계가 훨씬 더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 같아. 내가 정말 운이 좋아.’차설아를 떠올리며 성도윤은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지금 2층으로
“오늘 소란을 일으킨 사람 중에 내 팬도 있었던 거 확실해?”사도현은 사실 명성과 노출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배경윤 때문이 아니라면 절대 미디어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을 것이고 그런 어색한 연애 프로그램 같은 것도 참가하지 않았을 것이다.그가 이렇게 많은 팬을 얻게 된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조용한 성격이라 팬들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팬들이... 오물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충격을 받았다.“믿을 수 없지?”배경윤이 오늘 자신과 차설아가 괴롭힘을 당한 영상 파일을 사도현에게 보여주었다.“봐봐, 그 팬이라는 여자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도현 씨가 잘생기고, 부유하고, 성격도 좋고, 완벽한 남자라며 윤설과 천생연분이라고 하더라. 도현 씨가 윤설의 왕자인데 내가 그 악녀가 되어 두 사람의 관계를 망쳤다고 하면서, 심지어 설아까지 모욕했어.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뭐, 우리 설아까지 욕했다고?”옆에서 무표정하게 싸움을 구경하던 성도윤은 배경윤의 말을 듣고 나서 차설아에게 더 한없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그는 사도현이 들고 있던 핸드폰을 빼앗 분노에 차서 영상을 확인한 뒤 싸늘하게 말했다.“이 사람들, 이런 짓을 할 용기가 있다면 그 자만과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어떻게 할 건데?”배경윤이 성도윤에게 물었다. 이전과 달리 이제는 거부하는 태도가 없었다.“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이 사람들 다 찾아낸 뒤, 두 사람 앞에서 머리 조아려 사과하게 해야지.”성도윤이 이를 갈며 한 글자씩 뱉어냈다.이 말은 결코 가벼운 말이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끝까지 추궁할 수 있는 말이었다.“그나마 다행이네...”배경윤이 사도현을 보며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저것 봐, 사랑하는 여자가 괴롭힘을 당했으면 정상적인 반응은 저런 건데, 도현 씨는... 아니지. 도현 씨한테는 사랑하는 여자가 괴롭힘을 당한 게 아니라 사랑하는 여자의 팬이 그냥 길 가던 사람을 괴롭힌 정도잖아. 이제야 왜 이렇게 무관심한지 알
[무슨 소리야, 그건 옛날얘기지. 지금은 완전히 아니라고! 나도 한때 도현 씨를 내 ‘남신’이라고 했었잖아? 그런데 그 결과가 어땠어?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속은 형편없더라!]배경윤이 가차 없이 쏘아붙였다.[두 사람, 완전 끼리끼리야. 나랑 설아는 이제 두 사람이랑 거리를 둬야 해. 안 그러면 우리도 불행해질 거야. 봐, 오늘 내가 이렇게 재수 없는 일을 겪은 것도 다 네 탓이야.]“아니, 이게 왜 또 내 탓이야?”사도현은 어이없다는 듯 두 손을 들었다.그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는데 갑자기 죄인처럼 배경윤의 분노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당연히 도현 씨 탓이지! 오늘 나랑 설아에게 똥물을 뿌린 사람들이 누구인 줄 알아?]배경윤이 팔짱을 끼고 사도현을 노려봤다.“누군데?”사도현이 황당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아무리 세상이 험악해졌다고 해도 앞을 못 보는 여자랑 말을 못 하는 여자를 상대로 그런 짓을 할 정도면 정말 제정신 아닌 인간들 아니야?’[한쪽은 도현 씨 팬들이고, 다른 한쪽은 윤설의 광적인 팬들이야.]“뭐?”사도현의 표정이 얼어붙었다.[내가 도현 씨를 알지 않았으면 윤설이랑 엮일 일도 없었을 거고, 그 여자의 팬들에게 이런 일을 당하지도 않았을 거야. 그리고 당신 팬들도 마찬가지야. 윤설 팬들이랑 다를 게 뭐야? 둘 다 극성맞고 정신 나간 사람들뿐이야. 그러니까 이 모든 게 도현 씨 탓이라고!]배경윤은 흥분해서 글을 계속해서 쳐냈다. 사도현은 그녀가 쓴 긴 글을 읽고 머리가 핑 돌 지경이었다. 글에는 온통 그에 대한 비난이 가득했다.사도현은 억울한 마음이 치밀어 올랐다.“근데 말이야, 팬들이 한 행동을 내가 어떻게 책임져? 사람마다 다 성격이 다르고 수천, 수만 명의 팬을 내가 어떻게 다 통제해?”[핑계 대지 마!]배경윤은 여전히 흥분한 상태였다.[팬들의 행동은 결국 본인이 책임지는 거야. 팬덤 문화 몰라? ‘팬들의 행동은 본인이 책임진다.’ 이게 기본 원칙이야! 팬들이 왜 그렇게 극성인지 알아? 그건 본인이
성도윤은 묵묵히 참다가 결국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배경윤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너는 아무것도 몰라. 나랑 차설아의 관계는 너 같은 외부인이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우리는 지금 행복해. 네가 보기 불편하면 그냥 나가면 되잖아.”“...”배경윤이 성도윤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손목이 붙잡히자 이번엔 발을 들어 그를 걷어차려 했다.성도윤은 체격이 크고 힘도 센 편이었지만 배경윤의 저돌적인 공격에 살짝 밀리는 기분이 들어 결국 긴 팔을 뻗어 그녀의 목을 단단히 옭아맸다.“형, 지금 뭐 하는 거야?”바로 그 순간, 사도현이 들어와 이 장면을 목격하고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상황이라니,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성도윤과 배경윤도 순간 굳어버렸다.“오해하지 마.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성도윤이 가볍게 헛기침하며 배경윤을 놓아주었고 배경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성도윤의 발을 힘껏 밟았다.“너 진짜 끝까지 이럴 거야?!”성도윤은 발끝이 부러질 것 같은 고통에 이를 악물었지만 차설아를 떠올리며 꾹 참았다.차설아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강렬했는데 그녀의 절친인 배경윤까지 보니 정말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떠올랐다.그리고 슬쩍 사도현을 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너, 보험 많이 들어둬.”“무슨 뜻이야?”사도현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무슨 뜻이긴? 저 호랑이 같은 여자를 네가 감당할 수 있겠냐고.”성도윤이 배경윤에게 얻어맞은 부위를 문지르며 투덜댔다.그러자 사도현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아니지, 우리 경윤이는 원래 이렇게 폭력적인 애가 아니야. 분명 형이 선을 넘었으니까 그런 거겠지.”그는 중요한 순간에 배경윤 편을 들기로 했다.사실 예전에는 서로 의견이 다를 때마다 배경윤과 말다툼이 잦았다.배경윤은 성도윤을 두고 철저히 쓰레기라고 욕했고 사도현은 차설아가 너무 까다롭다고 반박하며 두 사람은 끝없는 논쟁을 벌이곤 했다.하지만 이
“그만 좀 해요, 너무 닭살 돋아요.”차설아는 예전 같았으면 이런 사랑 고백을 들으면 쑥스러웠지만, 이제는 쑥스럽기보다 오히려 닭살이 돋아 참을 수가 없었다.처음엔 성도윤이 차갑고 말수가 적은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보니 그건 전부 겉으로만 그럴듯하게 꾸민 모습이었고 실제로는 입만 열면 온갖 달콤한 말을 쏟아내는 사람이었다.성도윤이 손으로 물 온도를 확인한 뒤 말했다.“물 받아놨어. 들어가서 몸 좀 풀고 와.”“좋긴 한데... 좀 나가주겠어요?”차설아가 고개를 푹 숙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그건 안 되지. 당신이 미끄러지거나 수건이 필요하거나 옷을 입어야 할 때 누가 도와줘?”“괜찮아요, 나 혼자서도 잘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잠깐만 나가 있어 줘요. 도윤 씨가 여기 있으면 부담스러워서 못 하겠어요.”차설아는 아직 성도윤과 그렇게까지 오픈된 관계는 아니었다.게다가 자신만 벗고 그는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니. 상상만 해도 얼굴이 뜨거워졌다.“알겠어. 그럼 욕조까지만 데려 줄게. 다 끝나면 전화해.”성도윤이 한발 물러나며 휴대폰을 욕조 옆 선반에 올려놨다.“여기 핸드폰 놔뒀어. 손만 뻗으면 닿을 거야.”“알았어요. 그러니까 이제 제발 가요!”차설아가 손을 휘저으며 성도윤을 재촉했다.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 후, 차설아는 그가 정말 나갔다고 확신하고서야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다.차설아는 원래 몸매가 좋은 편이었다. 곡선이 부드럽게 이어졌고 피부는 우유처럼 부드럽고 하얬다. 실루엣만 봐도 누구든 넋을 놓을 정도였다.그런데, 옷을 벗다가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거칠고 낮은 숨소리가 문가에서 들려오자 차설아는 순간 얼굴이 새빨개졌다.“도윤 씨, 변태예요?!”“들켰네.”성도윤의 목소리가 낮고 거칠게 갈라져 있었다. 그는 아쉬운 듯 차설아를 바라보다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불만 지르고... 알겠어, 나 간다.”그는 투덜거리며 재빨리 문을 닫고 나갔다.더 있다가는 차설아가 진짜로 그를 때려눕힐지도 몰랐다.성도윤은 자
“와, 대박! 이런 주제에 감히 남자를 뺏으려고 했다고?”그 여자들은 비웃으며 휴대폰을 꺼내 차설아와 배경윤을 마구 찍어댔다. 조롱과 비아냥이 섞인 웃음소리가 이어졌다.“으...”배경윤은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 한편으로는 차설아를 보호해야 했고 동시에 그 여자들과 맞서야 해서 허둥지둥했다.“꺼져!”날카롭고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성도윤이 험상꿎은 얼굴로 난동을 부리던 여자 하나를 단숨에 잡아채 거침없이 밀쳐버렸다. “설아야!”그는 온몸에 더러운 물을 뒤집어쓴 채 힘없이 서 있는 차설아의 모습을 보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주저 없이 배경윤을 밀어내고 차설아를 와락 끌어안았다.“도윤 씨?”차설아가 손을 더듬어 그의 손을 잡았다가 순간 움찔하며 한 발짝 물러났다.“가까이 오지 마요. 나 더러워요.”“상관없어.”성도윤은 단호하게 대답하며 그녀를 다시 품에 안아 두 손을 꼭 쥐고는 후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너무 늦게 왔지. 혼자 두지 말았어야 했는데... 정말 미안해.”그 모습을 본 여자들은 겁에 질려 황급히 도망쳤다.하지만 이 장면은 누군가에 의해 영상으로 찍혀 인터넷에 퍼졌고 각종 편집과 조롱으로 도배되었다.온라인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세상에 공평한 법은 있구나. 이게 바로 업보지!][아무리 그래도 팬들이 너무 폭력적이야.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그리고 바로 이 영상을 통해 차설아가 실명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한편, 성진의 차 안.성진은 무료한 듯 핸드폰을 스크롤내리며 영상을 보고 있었다.최근 권력 싸움에서 그는 확고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허전했다. 승리를 코앞에 두고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그러다 우연히 영상 속 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선글라스를 낀 채, 온몸에 오물을 뒤집어쓰고 초라하게 서 있는 차설아.그 순간, 그의 심장이 조여들었다.“설아의 눈이...”모든 게 퍼즐처럼 맞춰졌다.그가 가지고 있는 이 눈은 바로 차설아가 준 것이었다.여러 감
“당연히 다르지!”차설아가 단호하게 말했다.“너랑 나의 가장 큰 차이는,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도윤 씨 한 사람만 좋아했다는 거야. 그러니까 선우시원이든, 성진 씨든, 내 선택은 항상 도윤 씨였어. 하지만 넌 다르잖아... 네 마음은 진찬영 씨한테도 가고 도현 씨한테도 끌리고 있잖아. 솔직히 말하면, 너 둘 다 갖고 싶어 하는 거 맞지?”[너 진짜 무섭다!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집어내냐!]배경윤은 차설아의 날카로운 분석을 듣고 반박도 못 하고 민망하게 웃었다.사실 그녀도 자신이 왜 이렇게 고민하는지 몰랐고 이제 보니 이유는 간단했다. 너무 욕심이 많았던 거였다.“그러니까, 이제 솔직해지자. 굳이 도망갈 필요 없어. 양쪽 다 품으면 되잖아? 왼쪽엔 한 명, 오른쪽엔 한 명. 얼마나 좋아? 만약 내가 두 사람을 좋아할 능력이 있었으면 진작에 후궁 3천은 거느렸을걸?”차설아가 반은 농담, 반은 진심으로 말했다.[야, 진짜 맞는 말이네! 네 말 듣고 나니까 머리가 확 맑아졌어!]배경윤은 갑자기 머릿속이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그러더니 핸드폰을 꺼내 신나게 글을 써 내려갔다.[가만 생각해 보니까, 역사적으로 연애에서 이득 본 건 전부 남자들이었어. 우리는 애 낳아야지, 생리해야지, 시댁 챙겨야지, 애 키워야지, 일도 해야지, 불륜까지 걱정해야지... 정작 이득은 다 남자들이 보고 있잖아. 그렇게 따지면, 우리가 남편을 두 명쯤 두는 것도 합리적인 거 아니야?]“그치? 나는 진찬영 씨랑 도현 씨 둘 다 괜찮다고 보는데? 한 명은 집에서 살림하고 나 챙겨주고 한 명은 데이트하고... 완벽한 조합 아니야?”[하하하, 그러네, 그러네! 생각만 해도 너무 좋다.]배경윤은 벌써 왼쪽엔 진찬영을, 오른쪽엔 사도현을 끼고 달콤한 나날을 보내는 상상을 하며 싱글벙글했다. 그런데 갑자기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잠깐만, 그런데 말이야… 너 아까 네가 오직 성도윤 한 사람만 좋아했다고 했잖아. 설마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한 거야?]“어... 그러니까..
불과 20분도 채 안 돼서 배경윤은 성도윤은 물론 그의 주변 사람까지 깡그리 욕해버렸다.차설아는 그녀의 분노를 고스란히 느꼈고 이런 분위기에서 성도윤과 다시 화해했다는 사실을 밝힐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아 얼른 화제를 돌렸다.“됐고, 너 얘기나 해 봐. 그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촬영은 잘 끝났어? 최종 선택은 누구야?”“이 타이밍에 왜 하필 이걸 묻냐, 이 친구야!”배경윤은 코를 킁킁대며 조금 민망한 표정을 짓더니 또 귤을 집어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나 몇 회 봤는데 사도현 씨도 그렇고 진찬영 씨도 그렇고, 둘 다 너한테 진심이더라. 지금 많이 고민되겠어, 맞지?”차설아도 친구의 선택이 궁금했다.“하... 너까지 이 얘기를 꺼내다니, 나 진짜 이 주제에서 벗어날 수가 없구나.”배경윤이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퇴원 후 팬들을 만나고 오빠를 만나고 그리고 차설아를 만나기까지, 늘 똑같은 질문을 받는 것 같았다.그러다 문득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그래, 사도현과 진찬영, 둘 다 진심이었어. 그런데 나는 도대체 누구를 더 좋아하는 걸까?’“설아야, 너라면... 내가 누구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해?”배경윤은 차설아의 말을 가장 신뢰했기에 모든 기대를 걸고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너만 말해 봐. 네가 고르라고 하면 난 그냥 그 사람 선택할게.”“장난치지 마. 이런 중요한 인생 결정을 남한테 맡기면 안 돼. 네가 직접 결정해야지.”“내가 모르겠으니까 묻는 거잖아!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찬영 씨가 더 맞는 것 같아. 여러 면에서 봤을 때 우리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거든. 그런데...”배경윤이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찬영 씨가 나한테 마취 깨고 난 뒤의 영상을 보여줬거든. 그걸 보고서야 알았어. 내 무의식은 사도현한테 더 끌리고 있더라. 거의 그를 한입에 집어삼킬 기세였어. 이유 없이 스킨십하고 싶고 안고 싶고 뽀뽀하고 싶고... 나 진짜 미쳤나 봐.”“음, 알겠다. 그러니까 네가 진찬영 씨를 좋아하는 감정은 ‘영혼의 동반자’
두 사람은 점점 지루해졌다.[우리 근처 공원 가볼까? 여기 많이 변했더라. 원래 화학 공장을 지으려던 곳인데 결국 보존돼서 주민 지역으로 바뀌었대. 습지 공원도 새로 조성돼서 꽤 예쁘더라고...]배경윤은 문장을 입력하다 문득 차설아가 더 이상 앞을 볼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잠시 멈칫하다가 다시 문장을 고쳐 적었다.[우리 근처 습지 공원 가볼래? 공기가 정말 좋더라.]“좋아!”차설아는 고민 없이 바로 대답했다. 그녀도 사실 집에만 계속 있다 보니 너무 답답해서 누군가가 데리고 나가 주기를 바라고 있었던 참이었다.배경윤은 차설아의 손을 잡고 함께 근처 습지 공원으로 향했다.공원 안에는 커다란 인공 호수가 있었고 호숫가엔 무성한 갈대밭이 펼쳐져 있었다. 많은 관광객들이 인증사진을 찍고 있었지만 차설아와 배경윤은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해 비교적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그곳엔 커다란 바위 하나가 호수 중앙을 향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덕분에 신선한 공기와 은은한 물풀 향기가 물씬 느껴졌고 햇살이 호수 위로 내려앉아 반짝이며 일렁였다.[괜찮으면 눈이 어쩌다 그렇게 된 건지 말해줄 수 있어?]배경윤은 귤을 까면서도 궁금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타자한 문자를 음성으로 변환해 차설아에게 물었다.“빚을 갚았어.”차설아가 담담하게 말했다.[무슨 빚이길래 네 눈까지 내줘야 했어?]“마음의 빚.”[마음의 빚이라니, 누구한테?]배경윤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네가 무슨 빚을 졌다고 그래? 항상 손해 보는 쪽은 너였잖아.]“성진 씨...”차설아가 낮게 한숨을 쉬었다.“예전에, 그 사람은 나를 위해 자신의 눈을 도윤 씨에게 줬어. 그렇게 똑똑했던 사람이었는데 점점 나락으로 빠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 그 모습을 보면서 너무 괴로웠어. 그의 인생을 망쳐버린 게 결국 나였으니까. 이 은혜를 갚지 않으면 평생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았어.”[뭐라고? 네 말은, 네 눈을 성진한테 줬다는 거야?]배경윤은 화가 나서 귤을 손에 꽉 쥐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