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가 진정한 사나이는 마음씨도 착하고 약한 사람들을 구해주는 슈퍼 히어로 같은 사람이라고 했어요. 하지만 할머니가 키운 아들은 건장한 체격으로 여자를 괴롭혔어요. 그러니 아들 교육에 실패한 거 아닌가요?”원이는 팔짱을 낀 채 기세등등해서 소영금에게 물었다.그가 보기에 나쁜 아빠의 악행들은 모두 어머니가 잘 가르치지 못했기때문이다. 어렵게 소영금을 만났으니, 반드시 차설아를 위해 나서야 했다.“도윤이가 여자를 괴롭혔다고?”소영금은 눈살을 찌푸리며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내 아들은 교양이 있고 매너도 좋은 신사야. 여자를 도우면 도왔지 괴롭힐 사람은 아니야. 그건 분명 오해야!”“오해 아니에요! 저랑 오빠가 직접 봤어요!”원이의 뒤에 숨어 있던 달이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의분을 토했다.“나쁜 아빠가 엄마를 몸 밑에 깔고 괴롭히고 있었어요. 저랑 오빠가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면 엄마는 나쁜 아빠에게 물렸을 거예요!”달이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방금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성도윤은 막 차설아를 물려고 했다. 너무 괘씸했다!“몸 밑에 깔고 물려고 했다고?”소영금은 이내 무슨 상황인지 알아채고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하느님 감사합니다. 도윤이가 드디어 남자가 가져야 할 세속적인 욕망을 갖게 되었네요.’여러 해 동안 지나치게 ‘깨끗하게’ 살아온 아들 때문에 소영금은 자기 아들이 ‘부족’한 줄 알았다.“너무 못됐구나! 어쩜 그렇게 정신 나간 짓을 했을까. 정말 짐승만도 못하네. 엄마인 내가 교육을 잘하지 못했으니 이따가 따끔하게 혼내줘야겠어!”소영금은 아이들의 장단에 맞춰 성도윤을 욕하기 시작했다.“참, 남자로 태어나서 어떻게 여자를 괴롭힐 수 있어? 내 아들은 정말 남자도 아니야. 어디 갇혀서 여자를 존중하는 법을 배울 때까지 세상에 나오지도 못하게 해야 해...”“사실, 나도 도윤이에게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너희들 어떻게 처벌하고 싶어? 마음껏 말해봐. 이 할머니가 가서 따끔하게 혼내 줄게.”“진짜 그 나쁜 놈을 혼낼
“역시 애들 말이 맞았어. 내가 널 잘못 가르쳤어. 자기밖에 모르는 얼음 같은 자식으로 키웠으니!”소영금은 투덜거리면서 성도윤의 팔을 쥐어뜯었다.하지만 성도윤의 팔 근육이 너무 단단해서 전혀 꼬집을 수 없어 등만 짝짝 두 번 세게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성도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원이와 달이를 보며 말했다.“얘들아, 나한테로 와. 이 노파가 여기가 고장 나서 너희들을 다치게 할지도 몰라.”그는 아이들을 보며 진지하게 머리를 가리켰다.“아니에요, 선녀 할머니는 좋은 사람이에요. 당신이야말로 나쁜 사람이잖아요. 엄마를 괴롭히는 나쁜 사람! 다시 우리한테 말 걸지 말아요!”달이는 성도윤의 미모에 푹 빠져있지만, 지금은 이성을 잃지 않고 순순히 소영금의 뒤에 섰다.“맞아요, 당신 엄마는 좋은 사람이지만 당신은 나쁜 사람이에요. 착해질 수 있게 엄마에게 혼 좀 나세요.”원이는 성도윤을 바라보며 도도한 표정을 지었다.“???”성도윤은 아이들이 할머니를 보자마자 바로 같은 편을 먹을 줄은 몰랐다.“엄마, 애들한테 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금세 한통속이 된 거예요?”성도윤은 ‘배움에 끝이 없다’는 심정으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소영금을 바라보며 배움에 목마른 표정을 지었다.사실, 그는 차설아를 상대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이 두 아이를 상대하는 건 더 어려웠다.차설아의 마음을 움직일 자신은 있었지만, 두 아이가 적의를 버리고 자신을 좋아하게 할 자신은 없었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팠다!“그거야 당연히 난 정의의 화신이니까. 너란 나쁜 놈을 교육하기 위해 아이들이랑 난 한편이야.”소영금의 말에 두 녀석은 강하게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정의는 절대 무너지지 않아요. 나쁜 놈이 우리 엄마를 괴롭혔으니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해요!”성도윤은 순식간에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차설아가 그를 무시하고, 아이들은 그를 벌하려 하고, 친어머니마저 그를 배신했다. 너무 비참했다.그는 순간 소영금이 왜 이렇게 빨리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깨달았다.“엄마
“이건...”굵은 등나무 가지를 바라보던 소영금과 성도윤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이건 좀 굵지 않을까?”소영금은 조심스럽게 원이를 향해 물었다.비록 손자를 위해 아들을 팔기로 마음먹었지만, 어릴 때부터 한 번도 성도윤을 때린 적이 없었고, 다 큰 아들을 때리자니 마음이 약해졌다.“아니요. 아주 정상적인 굵기인데요? 엄마는 세게 때릴수록 품행이 단정해진다고 했어요. 할머니 아들이 지금 약자를 괴롭히고 있으니, 보아하니 어릴 때 적게 맞아서 그래요.”원이는 그럴듯하게 소영금을 설득했다.소영금은 굵은 등나무 가지를 보며 눈살을 찌푸리고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엄마가 이걸로 자주 너희를 때렸다는 거냐?”“그건 아니에요.”원이는 진지하게 대답했다.“엄마는 그저 겁만 줄 뿐 때린 적은 거의 없어요. 다른 집 아이들은 이렇게 맞으면서 큰다고 했어요. 저는 착해서 거의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할머니 아들은 다르잖아요. 그렇게 많은 잘못을 저질렀으니 진작 호되게 때려서 따끔한 교훈을 줘야 했어요!”성도윤은 어이가 없었다.‘원아, 넌 정말 나의 착한 아들이야!’“네 말이 맞아. 내가 이놈을 너무 곱게 키웠어. 맞아야 해!”소영금은 원이의 손에 들려있는 등나무 가지를 받아 들고 성도윤 옆으로 다가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아들, 협조 좀 해. 내 손자 손녀 기쁘게 좀 해줘야겠어.”성도윤은 어두워진 얼굴로 차갑게 말했다.“할머니가 자기 손주들 기쁘게 하려고 아들을 때리는 연기를 한다는 게 말이나 돼요?”“다른 방법이 없잖아? 그러니 왜 잘못을 저지르냐고. 쌤통이다.”“제가 무슨 잘못을 했어요?”“애들 엄마를 누르고 물려고 했다면서? 그냥 때리기만 하는 것도 많이 봐준 줄 알아!”성도윤은 순간 참지 못하고 난처해서 말했다.“애들은 몰라서 그렇다 치고, 엄마도 모르시겠어요? 그만하고 얼른 돌아가세요!”“내가 왜 돌아가. 꿈에서 바라던 손자와 손녀를 만났는데, 아까워서 어떻게 돌아가!”소영금은
지금의 차설아를 그는 전혀 통제할 수 없었다.차설아는 성씨 가문에 들어오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기에 성도윤은 괜히 자괴감이 들었고 체면이 서지 않기도 했다.“아이의 엄마가 누구냐니까? 뭔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거야?”소영금이 머리를 빠르게 굴리더니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물었다.“뉘 집 아가씨인지 어디 맞혀볼까? 적어도 8대 명문가 출신이겠지?”“설마 서은아 이 계집애 아니야? 어릴 때부터 두 사람 사이가 심상치 않더니, 둘이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정말 잘됐네. 우리 두 가문에서도 이날만을 기다렸잖아.”“은아 아니에요.”성도윤이 피곤한 얼굴로 부인했다.“나랑 은아는 그냥 친구 사이예요.”“그럼 네 첫사랑 아니야? 그... 이름이 뭐더라? 허청하라고 그랬지? 그 여자애가 명문 가문 출신이 아니어도 어디 흠잡을 데는 없잖아. 그럭저럭 두 사람 어울리긴 해.”성도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엄마, 이제 막 며느리 고르기 시작하신 거예요?”“그럼 도대체 누구야? 너랑 관계있는 여자가 다섯 손가락 안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은데 설마 임채원은 아니겠지? 그런데 임채원은 아이를 못 낳는다고 하지 않았어?”소영금은 한참 생각하다가 갑자기 두 눈을 번쩍이더니 제자리에서 퐁퐁 뛰기 시작했다.“어휴, 내 정신 좀 봐. 우리 성씨 가문의 며느리인 차설아였어? 세상에, 내가 그렇게 두 사람 잘되기를 바랐는데 이렇게 이어지네.”성도윤은 부인하지 않았지만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함부로 말씀하지 마세요, 지금은 성씨 가문의 며느리 아니잖아요. 나랑 이미 이혼한 사이라고요.”“세상에, 나 진짜 로또 맞은 기분이야. 기분이 너무 좋아서 날아갈 것 같다고.”소영금은 너무 기쁘기도 하고 흥분해서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그녀는 한참 이마를 짚더니 갑자기 성도윤을 찰싹 때리며 말을 이어갔다.“이 자식, 역시 나 소영금의 아들이야. 이러면 나에게 며느리, 손주, 손녀가 다 생기는 거잖아. 이제야 마음이 놓이네.”그동안 소영금은 성도윤을 위해
성도윤을 혼내겠다는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그녀는 등나무 막대기로 성도윤을 마구 후려치기 시작했다.“아파요!”아무리 성도윤이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고 하지만 매를 맞게 되니 저도 모르게 곡소리를 내었다.“엄마, 그만하세요, 진짜로 때리시게요?”“당연히 진짜로 때리려고 했지. 너 제대로 혼나지 않으면 절대 정신을 안 차릴 거잖아. 귀여운 나의 손주, 손녀들도 이래야 우리의 성의를 알아챌 거 아니야? 그러니까 이를 악물고 잘 견뎌. 너무 아프면 소리내서 아이들의 동정심도 얻고.”소영금이 때리면서 성도윤에게 쓴소리를 했다.“일리가 있네요.”성도윤은 처음으로 소영금의 생각에 동의한 듯했다. 그러고서는 고통스러운 듯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악, 너무 아파요!”“잘못했어요, 제발 그만 때려주세요!”아이들은 워낙 순수하기 때문에 불쌍한 척 연기를 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그를 용서할 것이다.다만... 차설아는 예외였다.그녀는 워낙 똑 부러지기에 성도윤은 분명 그녀의 동정심을 얻지 못할 것이다.차설아는 점심을 차린 후 향기로운 음식들을 식탁 위로 옮겼다. 하지만 이때, 별장 밖에서 남자의 곡소리가 들려왔다.‘뭐지? 성도윤이 낸 소리인가? 그런데... 그 차도남이 이런 소리를 낼 리가 없잖아. 워낙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차설아는 호기심에 별장을 나섰는데 곧바로 소영금의 등나무 막대기에 맞아 소리를 지르며 용서를 비는 성도윤의 모습을 발견했다.‘응? 이건 무슨 상황이지?’원이와 달이는 흥미진진하게 구경하고 있었다. 분명 두 사람의 연기에 제대로 홀린 모양이었다.아이들은 차설아를 발견한 후 곧바로 신이 난 채로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엄마, 빨리 이리로 오세요! 선녀 할머니가 나쁜 아빠를 제대로 혼내주고 계세요!”달이는 차설아가 혹여나 이 재미난 구경을 놓칠까 봐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면서 말했다. “응...”차설아는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전혀 몰랐고 또 어색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전 시어머니가 전남편을
“그런데 두 사람 뭐 하는 거야?”차설아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아이들 옆에서 두 사람을 한참 지켜보고는 물었다.“할머니께서 나쁜 놈을 혼내고 계세요, 엄마를 더 괴롭히지 못하게 말이에요. 그런데... 너무 살살 때리고 계신 것 같아요. 마치 연기를 하고 있듯이 말이에요.”무표정의 원이가 일침을 가했다.“설마. 방금 나쁜 아빠가 그렇게 서럽게 울었는데 진짜 많이 아팠을 거야. 연기는 아닐 거라고.”순수한 달이가 입을 삐죽이며 반박했다.소영금은 한참을 때렸는데도 성도윤이 체면을 차리면서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어쩔 수 없이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설아야, 이 자식이 널 괴롭혔다며? 방금 내가 대신 혼냈어. 그런데 아직도 덜 맞은 것 같아. 그러니까 이 막대기로 그동안 쌓인 원한을 모두 풀어. 도윤이가 절대 도망가거나 반항하지 못하게 내가 옆에서 잘 지켜보고 있을게.”소영금이 말하고는 등나무 막대기를 차설아의 손에 넘겼다.“네? 그건 좀 타당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차설아는 손에 든 굵은 막대기와 눈앞의 훤칠하고도 차가운 남자를 번갈아 보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못할 게 뭐가 있어. 넌 도윤이의 아내잖아. 남편이 나쁜 버릇이 있구나 잘못을 저질렀다면 아내가 혼내는 게 맞아. 걱정하지 말고 제대로 도윤이를 때려, 다신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교육하라고. 그래야 교훈을 얻고 앞으로 더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거야. 그럼 네가 속상해할 일도 없을 거고.”소영금이 무자비하게 말했다.“제가 교육할 게 뭐가 있어요. 그럴 능력도, 의무도 없어요. 다들 각자 제 삶을 잘 살면 그만이죠. 도윤 씨를 혼내는 건 여사님이 하세요.”차설아는 소영금이 원이와 달이의 신분을 알아챘다는 것을 짐작했다. 아니면 그녀는 귀한 아들을 이렇게까지 깎아내리면서 그녀의 동정심을 얻으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아이의 양육권 문제에 있어서 차설아는 단호했다.성도윤과 차설아가 어떤 방법을 쓰든, 사정을 하든 협박을 하든 그녀는 절대 타협할 생각이 없었다.“음식이
그들은 모두 식탁 앞에 앉은 채 차설아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성도윤은 소영금을 말리지 않았으니 그녀의 말에 동의한 셈이었다. 차설아가 마음을 돌릴 수만 있다면 그는 그 어떤 대가를 치를 의향이 있었다.“제가 원하는 건 많지 않아요. 하나밖에 없거든요...”차설아가 멈칫하더니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두 아이가 저 차설아의 아이라는 것을 잘 알아두셨으면 좋겠어요. 두 아이는 차씨 가문의 아이들이고, 성씨 가문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요. 절대 아이들을 뺏을 생각은 하지 마요, 아니면 당신들과 죽을 때까지 맞서 싸울 거예요.”차설아가 차갑게 뱉어낸 이 말은 방금 그녀가 내놓은 입장과 별다를 게 없었다. 아이의 일에 관해서는 전혀 상의할 여지가 없었다.“꿈도 꾸지 마!”성도윤은 이를 악물었는데 얼굴에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드러났다.‘이 여자, 진짜 똥고집이네. 마음 같아선 밧줄로 묶어서 길고양이를 다루듯 차설아의 센 고집을 다루고 싶은데 말이야.’하지만 소영금은 그와 달리 평온한 반응을 보였다.그녀는 한참 침묵하더니 식탁을 ‘탁’ 치고는 말했다.“네 뜻을 알겠어. 그렇게 어려운 요구도 아니네. 쉽게 할 수 있는 거잖아.”차설아와 성도윤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쉽게 할 수 있는 거 맞아요?”차설아는 소영금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그녀가 보기에 소영금이 성도윤처럼 다정한 척 연기를 하며 겉치레뿐인 체면을 유지하고 있는 건 그녀에게서 두 아이를 빼앗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게다가 차설아는 그들에게 절대 아이를 주지 않을 거라고 단호하게 말하기까지 했다. 예전의 소영금이었으면 진작에 화를 냈을 것이고, 오히려 지금 같은 덤덤한 반응이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당연히 쉽지.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나랑 도윤이 아버지가 그렇게 고지식한 사람 아니야, 남녀 차별은 하지 않는다고. 아이들만 좋으면 누구의 성을 따라든 무슨 상관이야.”“아이가 누구의 성을 따르는 문제가 아니라, 이건...”“이러는 건 어때? 도윤이를 데릴남편으로 차씨 가문에 들일 수
“그만하세요!”성도윤이 차가운 얼굴로 일어서고는 차설아를 보며 협박했다.“돌아오려면 아이들을 데리고 얌전히 돌아와. 그러면 성씨 가문에서도 절대 당신에게 푸대접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굳이 우리 성씨 가문과 싸우려고 한다면 나 성도윤이 끝까지 상대해 주지.”말을 마친 후 그는 무표정의 얼굴을 한 채 위층으로 올라갔다.소영금과 달리 성도윤은 보수적이고 오만하기까지 했다.‘내가 왜 차씨 가문에 데릴남편으로 가겠어. 내 아이가 왜 다른 여자의 성을 따라야 하는데?”차설아는 벌컥 역정을 내는 성도윤을 보더니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만약 성도윤이 정말 제정신이 아니어서 소영금의 제의에 동의했다면 오히려 차설아가 어찌할 바를 몰랐을 것이다.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그녀는 차라리 성도윤과 피 터지게 싸우고 실력으로 승부를 보길 원했다. 그러면 패배해도 여한이 없을 것이니 말이다.“봐요, 도윤 씨가 얼마나 차가운지. 도윤 씨는 나와 재혼하기 싫은 것 같으니 여사님도 그만하시죠.”차설아가 고개를 숙이고는 일부러 실망한 척 소영금에게 말했다.“저 녀석은 겉과 속이 다르다고.”바보 같은 아들 때문에 화딱지가 난 소영금이 차설아에게 물었다.“나랑 솔직하게 말해. 도윤이랑 재혼할 마음이 있는 거야? 네 식구가 단란하게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렇게까지 서로 난처하게 굴 필요가 없잖아.”“만약 도윤 씨가 여사님 말씀대로 차씨 가문에 들어오고, 무슨 일이든 제 말을 듣는다면, 그리고 또 두 아이가 제 성을 따르는 것에도 이의가 없다면 저는 찬성이에요.”차설아가 쿨하게 말했다.한편으로 그녀는 성도윤이 성격상 절대 그렇게 비굴하게 굴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 일은 사실상 거의 일어날 수 없다고 볼 수 있다.다른 한편으로는 또 정말 성도윤처럼 잘생기고 능력 좋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모든 말에 고분고분 잘 따르는 ‘아내’를 얻을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이렇게 생각하니 역시 남자는 행복해. 결혼하면 아내가
성진은 격양된 목소리로 다그쳤다.분명 이 싸움에서 이긴 건 그였지만 이상하게도 철저하게 패배한 기분이었다.성도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책상을 정리하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차설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는 순간, 그의 표정이 한층 부드러워졌다.“설아야, 오늘 어땠어? 먹고 싶은 거라도 있어? 퇴근하고 가서 만들어 줄게.”전화 너머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성도윤은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전화를 끊을 때까지도 달달한 그 분위기는 옆에서 듣는 사람한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성진은 아무 말 없이 그의 곁에 서서 두 사람이 통화하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이 너무 우스워 보였다.성도윤이 사무실을 떠나려 하자 성진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형, 설아랑 다시 잘 지낸다며? 다 잊어버린 거 아니었어? 근데 이렇게 빨리 화해했다고? 설마 또 한 번 상처 주려고 그러는 거야?”성진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최악으로 끝난 사이인 줄 알았으니 말이다. 완전히 남남이 되어 다시는 엮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겨우 한두 달 만에 원래 사이로 돌아간 데다가 오히려 예전보다 더 서로를 소중하게 여겼다.눈동자까지 희생해 가면서 이루고 싶었던 삶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는 사실에 성진은 절망스러웠다. 성도윤은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쉽게 그 모든 걸 손에 넣었다는 생각에 그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인정할 수 없었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 이상 성도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할 수 없었다.“내가 설아랑 어떻게 지내는지 너한테 보고해야 돼?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성도윤은 담담하게 말했다.“부러우면 너도 마음에 드는 여자 찾아서 결혼하면 되잖아. 따뜻한 가정을 꾸려서 행복을 누리면 되잖아. 다만...”그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회의실을 둘러보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지금 너한테는 더 중요한 일이 있잖아. 이런 사소한 일에 마음을 빼앗길 여유가 있을까?”성도윤의 말투는 누가
성진의 말에 성도윤은 할 말을 잃었다.그는 나중에야 자신이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성진 덕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었다. 그에게 놓고 말하면 성진이 생명의 은인인 것이나 다름없었다.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말싸움을 하는 건 아무 의미도 없었다.“그렇다면 일단 부대표님 뜻대로 진행하죠. 일단 한 분기를 기준으로 삼아서 시도해 보세요. 지켜보겠습니다.”성도윤의 냉정한 목소리에는 위엄이 있었고 이는 곧 성대 그룹의 미래를 결정짓는 말이었다. 회의에 참석한 모든 주주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뿐, 아무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역시 형은 마음이 넓은 사람이야. 회사를 위해서 헌신할 줄 아는...”성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내 방식대로 진행해 보고 나서 성대 그룹의 이익이 빠른 속도로 상승하면 어떡할 건데?”“넌 내가 어떤 결정을 했으면 좋겠어?”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불꽃이 튀는 듯했다. 성도윤을 지지하는 세력과 성진을 지지하는 세력 사이에서도 말이다.그때, 오준현이 입을 열었다.“성 대표님은 항상 회사를 위해서 생각해 주시는 분입니다. 만약 부대표님께서 정말 그룹에 좋은 방향으로 이끈다면 성 대표님도 기꺼이 자리를 양보하시겠죠, 그렇지 않습니까?”그러자 박지훈이 책상을 쾅 하고 내리치며 오준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오준현 씨, 회사의 대표 자리는 인간성과 능력을 겸비한 사람만이 앉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회사에 수천 명의 직원이 있어도 성 대표님 외에는 아무도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습니다.”“인간성이요? 그게 수익 앞에서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주주인 저희의 관심사는 오직 이익뿐이라고요. 누가 우리에게 더 많은 돈을 벌어다 줄 수 있느냐, 그게 바로 우리가 대표를 선택하는 기준입니다.”두 파벌은 서로 다른 의견을 두고 대립해서 싸우기 시작했다.보다 못한 성도윤이 손을 들어 올리며 차가운 목소
“제 비서 뜻이 곧 제 뜻입니다. 지금은 성대 그룹을 안정시키는 게 최우선이에요. 확장은 신중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성도윤은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성 대표님, 언제 이렇게 변하셨습니까? 너무 보수적인 거 아닙니까? 이 작은 규모만 지키려다가 무너지고 싶으세요?”장기준이 가감 없이 성도윤에게 의문을 제기했다.“다들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저는 형이 왜 이렇게 보수적으로 변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성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희 형은 지난 반년 동안 큰 충격을 겪었어요. 건강도 많이 나빠졌죠. 그로 인해서 성격까지 바뀐 겁니다. 좀 더 신중해진 거죠.”“그리고 여러분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더 있어요. 형은 뇌 수술을 두 차례나 받았거든요. 그 충격이 얼마나 클지 짐작 가세요? 석현아, 주주님들께 보여 드려.”“네, 부대표님.”석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리 준비해 둔 성도윤의 건강 검진 보고서를 주주들에게 하나씩 전달했다. 그러자 진무열이 분노하며 성진에게 소리쳤다.“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성 대표님의 건강 검진 결과는 개인 정보예요! 함부로 유포해도 된다고 생각해요?”“진 비서님, 진정하세요. 형을 생각해서라면 건강 검진 결과는 당연히 비밀로 할 수도 있죠. 하지만 지금 형은 성대 그룹의 대표님이잖아요. 이 회사를 이끄는 사람이에요. 형의 건강 상태도 곧 성대 그룹의 미래와 이어진다는 겁니다. 다들 성대 그룹의 수익이 감소한 원인을 찾고 있지 않나요? 전 이 검진 결과가 그 원인을 충분히 설명해 줄 거라 생각해요.”성진은 미소를 지으며 느긋한 태도로 말했다. 오늘을 위해 철저히 준비해 온 듯했다.주주들은 검진 결과를 확인한 후, 믿기 어렵다는 듯 표정을 굳혔다.“이럴 수가! 성 대표님의 건강이 이렇게 악화되었을 줄은...”“뇌를 다친 데다가 기억 상실증까지?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경영 방식이 전과 너무 다르더라니... 그 원인이 여기 있었군요.”“성대 그룹이 갑자기 변한 건 대표님
모든 주주들이 일제히 성진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충격이 서려 있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부대표님께서 실명했다고 하지 않았어?”“전에는 몸 상태도 많이 약해서 부대표님 자리까지 내려놓았는데 지금 보니 아주 생기가 넘치잖아?”“돌아왔다니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이제 성대 그룹도 다시 살아날 수 있겠어!”주주들은 성진의 복귀를 환영해 주었다. 그들은 성진이 성도윤을 대신해 성대 그룹을 위기에서 구해주기를 기대하며 중얼거렸다.성진은 미소를 머금은 채 곧장 성도윤의 곁으로 다가갔다.“형, 미안해. 그동안 형 혼자 성대 그룹을 관리하느라 정말 힘들었을 텐데... 이젠 나도 회복했으니 형을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성도윤은 싸늘한 눈빛으로 성진을 응시했다.그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성도윤은 심장이 순간적으로 옥죄어 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성도윤은 그 생각을 깊이 파고들고 싶지는 않았다.“회복했다니 다행이네. 앞으로 잘해보자. 우린 같은 배를 탄 사람이니까. 정말로 성대 그룹을 위기에서 구해낼 수만 있다면 나도 네가 돌아온 걸 환영하지 않을 이유는 없지.”성도윤은 마음속의 불안을 접어두고 형식적인 말로 대응했다.“역시 형은 큰 그림을 보는 사람이야. 걱정 마,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 내가 형의 자리를 대신해 성대 그룹을 구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성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속에는 권력을 향한 욕망이 가감 없이 드러나 있었다.순간, 주주들 사이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누구도 그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하지는 못했다.“좋아, 그럴 실력이 있다면 말이지.”성도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성진은 의자를 당겨서 자리에 앉았고 그의 비서인 석현이 나서서 주주들에게 새로운 전략과 방안을 설명했다.주주들은 숨죽이며 그의 말을 들었고 그들의 표정은 점점 열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해외 지사를 맡아왔던 만큼 확실히 사고방식이 개방적이네. 만약 이 계
“성 대표님, 지금 하셔야 할 말은 따로 있는 것 같은데요? 저희는 지금 주주총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모인 겁니다. 저희에게는 지금 수많은 경쟁자가 있을 뿐만 아니라 회사 내부에서도 심각한 분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게다가 능력 있는 인재들조차 불안함을 느껴 대거 이탈하는 상황이죠. 이대로 가다간 회사가 무너지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장기준이 말했다. 직접적으로 성도윤에게 대표직에서 물러나라는 말은 하지 못했지만 그의 의도는 뻔히 보였다.성도윤은 미소를 지으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럼 어떤 해결책이 가장 좋다고 보십니까?”“그건 저도 모르죠. 제가 뭘 알겠습니까...”성도윤과 눈이 마주친 순간, 장기준은 순간적으로 주춤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때 오준현이 나섰다.“간단합니다. 건강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거죠. 그리고 성대 그룹의 대표 자리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도록 해요.”이 말이 떨어지자 회의실에 있던 수십 명의 주주들은 순간 숨을 죽였다.각자의 속셈을 감추듯 아무도 함부로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런데도 성도윤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장기준 씨,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아뇨, 저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성대 그룹을 위해서, 또 성 대표님의 건강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말씀드린 것뿐입니다.”장기준은 손을 내저으며 황급히 해명했다.“그럼 그 깊은 배려에 감사드려야겠군요.”성도윤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그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섬뜩할 정도로 서늘했다.그때, 한 주주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장기준 씨의 의견도 일리가 없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성 대표님을 대신할 만한 사람이 있느냐는 것이죠. 괜히 대표 자리를 바꿨다가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건 아닐까요?”그러자 오준현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그건 여러분이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
한편, 성대 그룹에서.성도윤의 지각은 이미 그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주요 주주들의 감정을 더욱 악화시켰다.비서가 연간 그룹의 매출과 주요 프로젝트 성과를 보고했지만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회의실은 무거운 분위기에 휩싸였다.“성 대표님, 보시다시피 올해 성대 그룹의 전체 이익이 계속 하락하고 있습니다. 관련 주가 역시 계속해서 하락세를 보고 있어요. 지금의 성대 그룹은 생존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습니다. 회사를 이끄는 책임자로서 이 상황을 타개할 만한 실질적인 해결책이 있습니까?”7대 주주 중 한 명인 오준현이 말했다.그는 평소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매년 주주총회에서만 나타났다. 그리고 나타날 때마다 날카롭게 비판을 던졌는데 항상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성도윤을 깎아내렸다.하지만 그럴 만도 했다. 성씨 가문 사람들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주식을 보유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그러자 그와 반대편에 서 있는 박지훈이 나섰다.“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이익을 볼 때도 있고 손해를 볼 때도 있는 법입니다. 성 대표님께서 성대 그룹을 맡은 후로 회사는 점점 성장해 왔습니다. 주가가 조금 하락했다고 이러시는 건가요?”“다들 아시다시피, 최근 몇 년간 특수 상황 때문에 대다수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 성대 그룹은 그나마 하락폭이 적은 편이에요. 솔직히 말해서 성 대표님이 아니었다면 저희는 이미 파산했을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 아닌가요?”박지훈은 성도윤을 강하게 지지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가진 지분은 많지 않았지만 성도윤과의 친분 덕분에 회사 안에서 상당한 영향력이 있었다.그러나 오준현은 코웃음을 쳤다.“그럼 성대 그룹이 몇 달째 내리막길을 걷는 것도 성 대표님 덕분이란 말이잖아요? 그렇다면 우리가 성 대표님께 상을 하나 드려야겠네요?”그의 냉소적인 말투가 회의실을 가득 채웠다. 오준현만큼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능력 있는 사람을 따르기 마련이었다. 그는 단순히 배경 때문이 아니라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을
“네가 감히 나를 때려? 두고 봐! 우리 아빠한테 이를 거야. 우리 아빠가 널 완전히 부숴버릴 거라고!”서은아는 분을 못 이겨 울먹이더니 퉁퉁 부어오른 뺨을 감싸 쥐고 황급히 도망쳤다.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차설아가 이미 시력을 잃었다는 사실을 말이다.“엄마, 엄청 멋졌어요! 나쁜 사람을 한 방에 쫓아내다니... 완전 슈퍼우먼이었어요!”달이는 차설아를 꼭 껴안고 반짝이는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달이도 커서 엄마처럼 슈퍼우먼으로 될 거예요!”차설아는 달이의 복슬복슬한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웃었다.“슈퍼 우먼은 무슨... 우리 달이는 그냥 예쁜 공주님이면 돼. 괜히 다른 사람에게 시비 걸진 말되 누군가를 두려워하진 마.”원이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엄마, 저 아줌마 정말 나쁜 사람이에요. 일부러 찾아와서 우리를 괴롭히려 한 거라고요! 뺨 몇 대만 맞고 도망가게 내버려두다니... 너무 쉽게 놔준 거 아니에요?”“원이야, 오늘 충분히 화풀이했잖아. 적당한 선에서 그만둬야 해.”차설아는 조용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저 아줌마 아무리 꿍꿍이를 가지고 왔다 해도 완전히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야. 단지 좀 삐뚤어진 것뿐이지.”“사실 저 아줌마도 피해자이긴 해. 불쌍한 사람이거든. 오늘 받은 교훈이면 충분할 거야.”차설아는 원이를 다독였다.솔직히 말해서 서은아에 대한 그녀의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수단이 좀 극단적일 뿐이지 말이다.그녀는 지나치게 직설적이고 솔직했지만 그래도 무엇보다 진심으로 성도윤을 사랑하고 있었다. 만약 그들이 같은 남자를 사랑하지만 않았더라면 어쩌면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차설아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건 서은아같이 대놓고 싸움을 거는 유형이 아니었다. 진짜 무서운 건 뒤에서 몰래 함정을 파고 그녀를 절벽 아래로 밀어버리는 그런 사람들이었다.과거의 기억이 스멀스멀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에 그녀는 몸을 살짝 떨었다.임
겨우 눈을 뜬 서은아는 원이가 했다는 것을 확인하더니 지난 일까지 떠올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이 망할 꼬맹이가... 또 너야? 지난번엔 날 강에 빠뜨릴 뻔하더니 이번엔 물총까지 쏘면서 날 도발한다고? 죽고 싶어?”서은아는 이를 악물고 원이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가까이 가기도 전에 그녀는 물을 또 한 번 맞았다.원이는 허리에 손을 얹고 마치 자기가 어른인 것처럼 경고했다.“아줌마는 우리 집 손님이 아니에요. 여긴 아줌마를 환영하지 않아요. 지금 당장 나가세요!”“어린놈이 감히!”서은아는 자기가 어린아이에게 당할 리 없다고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결심했지만 원이의 민첩함을 과소평가한 것이 실수였다.아무리 쫓아다녀도 그녀는 원이의 옷깃 하나 스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균형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지며 풀밭에 얼굴을 처박았다. 흙이 입안 가득 들어가고 온몸이 엉망이 되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차설아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태연하게 말했다.“원아, 너무 심하게 하진 마. 그래도 여자잖아.”“엄마, 전 아무것도 안 했어요. 이 아줌마가 먼저 덤벼든 거라니까요? 그리고 이 아줌마는 여자가 아니에요. 그냥 나쁜 놈이죠! 완전 악당이에요! 지난번에 저를 호수에 빠뜨리려고 했어요! 나쁜 사람도 봐줘야 하나요?”원이의 입이 뿌루퉁해졌다.차설아만 옆에 없었더라면 원이는 벌써 ‘필살기’까지 써버렸을 것이다.“뭐라고? 널 호수에 빠뜨렸다고?”차설아는 커피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서은아를 향해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원이가 하는 말이 사실인가요? 정말 어린 애한테까지 손을 댔다고요?”서은아가 어릴 때부터 삐뚤어졌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설마 아이에게까지 손을 댈 정도로 몰상식한 사람일 줄은 몰랐다.어른들끼리의 다툼에 아이를 끌어들이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서은아는 가까스로 일어났지만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었고 머리는 산발이었으며 입 안은 흙과 풀로 가득 차 있었다.그녀는 눈물을 글썽하
“내가 말했었잖아! 도윤이만 가질 수만 있다면 망가뜨려도 상관없다고. 모든 걸 잃고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을 때야 내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깨달을 거야. 그러면 내 곁으로 돌아오는 것도 시간문제지.”서은아는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하, 웃기지도 않네!”차설아는 비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중얼거렸다.“도윤 씨는 사람이에요, 물건이 아니라. 그쪽이 부순다고 해서 부서질 존재가 아니라고요.”“그리고 도윤 씨가 사람들에게 버림받는 날은 오지 않을 거예요. 도윤 씨가 대기업 대표님이든, 그저 평범한 사람이든 나랑 아이들은 절대 그 곁을 떠나지 않을 거니까요.”“차설아, 네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아직 그런 상황이 오지 않아서야. 만약 도윤이가 모든 사람에게 손가락질받는 존재로 된다면? 도윤이와 엮이면 너까지 불행해지는 상황이라면? 그때도 떠나지 않을 자신 있어?”“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네까짓 게 어떻게 장담해? 사람이 발밑으로 내쳐지는 건 한순간이라고. 그러면 도윤이도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울 거야. 결국 모든 사람이 도윤이를 외면할 거고 도윤이는 가진 것 하나 없이 무너질 수도 있어. 그렇게 된다고 해도 떠나지 않을 거라고?”“첫째, 그럴 리 없어요. 둘째, 그렇게 될 때까지 제가 가만히 있을 것 같나요? 무너지면 제가 다시 일어서면 돼요. 비록 엄청난 부자는 아니지만 저한테도 나름대로 운영하는 작은 회사는 있거든요. 그 정도면 우리 가족이 먹고사는 데 부족할 게 없을걸요?”차설아가 말하는 ‘작은 회사’는 신흥 IT 강자인 천신 그룹과 거대한 자본을 가진 KCL 그룹이었다.하지만 두 그룹 모두 차설아의 소유라는 것이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기에 서은아도 그녀 앞에서 저렇게 우쭐거릴 수 있었다. 만약 서은아가 알게 된다면 얼굴도 들지 못하고 도망쳤을 것이었다.“네가 네 입으로 말했잖아. 겨우 작은 회사라고 말이야. 그걸로 성대 그룹 같은 대기업을 살리겠다고? 꿈도 크네. 만약 진짜 도윤이를 위한다면 헤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