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설아는 시계를 보더니 시간이 늦었던 터라 떠나려 했다.성도윤도 싱긋 웃으며 물었다."'칠색 유리병'은 이제는 필요 없나 보지?”차설아는 발을 멈췄다.그녀는 마음속으로 외쳤다.헛소리, 당연히 갖고 싶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침대 밑에 들어갔겠어?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새침했다. "그건 이제 필요 없어. 네가 가지고 가서 요강으로 써!”성도윤은 여자의 무뚝뚝하고 야비한 표정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칠색 유리병은 죽어도 차설아한테 요강 취급을 당할 줄 몰랐을 것이다.역시 여자는 못 건드려."원한다면 오늘 헛걸음하지 않도록 줄 수도 있어.”성도윤은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둘러 말했다.차설아는 망설였다.비록, 그녀는 1초 전까지만 해도 “싫어!”라고 당당하게 말했지만 말이다.30초도 안 되는 투쟁 끝에 차설아는 금세 빙그레 웃으며 남자를 바라보았다."정말 나에게 줄 의향이 있어? 나는 당신이 너그러운 사람인 줄 알았어. 비록 내가 당신을 욕하고 커피를 쏟았지만, 당신은 넓은 아량으로 날 용서할 줄 알았지.”성도윤은 대답했다.“물건 당연히 줄 수 있지...”차설아는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어디 있어, 오늘 밤에 그냥 가져가도 돼?”성도윤은 이마를 짚으며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말 좀 다 듣고 설레발 칠래?”차설아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린 듯했다."전제조건이 있을 줄 알았어. 또 이상한 말을 하고 싶은 거야?”"이번에 또 이상한 소리를 하면, 이번엔 커피를 뿌리는 거로 끝나지 않아!"성도윤은 웃으며 말했다."긴장할 필요 없어. 나와 함께 힘을 합쳐 한 가지 일만 해줘. 그러면 칠색 유리병은 네 거야.”차설아는 그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했다."내가 무엇을 하길 원해?”바닥에 놓인 거의 만 개의 블록에 시선을 박은 성도윤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물었다."블록 조립 수준은 좀 어때?”차설아는 어리둥절했다."보통이야.”"강박증이 있어서 손에 넣은 블록은 바로 맞춰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양이 너무
성도윤은 차설아가 블록을 좋아하는 줄도 몰랐고, 그녀가 고수라는 것은 더더욱 몰랐다.그녀가 잘하지 못하는 일로 그녀의 기세를 꺾을 목적이었지만... 차설아의 행동은 그야말로 놀라웠다.차설아는 다양한 모양의 블록을 모아 손쉽게 하나의 완전한 모양을 만들어냈다.이 정도의 사고능력과 속도는 보통 사람이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전혀 몰랐네. 당신 고수였어?”성도윤은 진심으로 감탄을 자아냈다.보통 사람들이 이 모양을 만드는 데 적어도 한 시간이 걸리지만, 그녀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그와 대등할 정도로 훌륭한 솜씨였다.차설아는 도면도 보지 않고 몇 개의 블록을 척척 맞추더니, 붉은 입술을 끌어올리며 여우처럼 교활한 웃음을 지었다.“당신 원래 사람 보는 눈이 없잖아. 모르는 게 당연하지!”성도윤은 똑똑한 머리를 지녔지만 사람의 마음을 읽는 데는 바보였다.그는 임채원을 ‘부드럽고, 착하고, 순진한’ 여자라 하고, 서은아를 ‘털털한 형제’라고 한다. 차설아를 오히려 가식적이고 꿍꿍이가 많은 여자라고 생각하니,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성도윤도 자리에 앉아 차설아와 함께 블록을 쌓았다.크리스탈 램프에 비친 그의 손가락은 훤칠하고, 뼈마디가 뚜렷해 잡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다.차설아는 원래 블록을 쌓는 데 집중했지만, 눈빛은 어느새 그의 예쁜 눈에 떨어졌고, 자연스럽게 속도가 느려졌다.“왜 집중 안 해?”성도윤은 여자의 집중력 변화를 예리하게 감지하고는 낮은 소리로 물었다.“무슨 생각해?”남자의 속도도 차설아와 맞먹었고, 말을 하는 사이, 자잘한 블록들이 그의 손에서 모양새를 갖췄다.“아니, 별것 아니야!”차설아는 볼이 살짝 뜨거워졌고, 이내 시선을 돌렸다.그는 속으로 자신을 꾸짖었다.‘차설아, 제발 철 좀 들어. 잘생긴 남자에 환장하는 것도 모자라 이젠 자기 손까지 통제 못하는 거야? 남자 손을 만져보지 못한 것도 아니고, 왜 설레고 난리야!’두 사람은 함께 비행선의 날개를 맞추고 있었다. 한 사람은 왼쪽, 한 사람은 오른쪽,
“아마도?”차설아도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곰곰이 생각해보면, 그와 부부로 지낸 몇 년 동안, 그를 아낌없이 사랑했지만, 확실히 자존심을 버리며 그에게 매달린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그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지만, 그거 떠난다고 하면 쿨하게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설 수 있었다. 심지어 그보다 더 빨리 도망쳤다.그녀도 만약 그때 성도윤을 만류했다면 지금 어떤 결과일지 궁금했다.시간은 일분일초 흘러가고, 시곗바늘은 어느새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인체가 가장 피곤하고 자고 싶어 하는 시간이다.차설아도 조금 졸렸는지, 손동작이 느려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칠색 유리병을 얻기 위해 절대 잘 수 없었다. 반드시 정신을 바짝 차려서 날이 밝기 전에 이 비행선을 완성해야 했다.“좀 졸려.”성도윤은 기지개를 켜며 5분의 1밖에 완성하지 않은 블록을 보며 말했다.“어차피 완성하지 못할 텐데, 그냥 자.”차설아는 자신의 혀를 깨물며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졸리면 먼저 가서 자. 나 혼자 완성할 수 있어. 다만, 꼭 약속 지켜. 절대 장난이 아니길 바랄게.”“진짜 혼자 완성한다고?”“이 정도는 최소 보름은 걸려.”차설아는 고집스럽고 오만하게 말했다.“그건 보통 사람이고, 나 차설아는 절대 다르지.”성도윤은 여자의 지친 눈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지금 가서 자면 칠색 유리병을 줄게. 진심이야.”“아니, 됐어!”여자는 눈길도 돌리지 않고 손가락을 더욱 빨리 움직이며 말했다.“약속했으니 꼭 지켜야지. 당신 동정 따윈 필요 없어.”“그래, 난 잘게.”처음으로 여자의 고집을 본 성도윤은 조금 무서울 정도였다.그는 별다른 말 없이 혼자 침실로 가서 샤워했다.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차설아는 블록을 손에 쥐고 고양이처럼 땅바닥에 웅크린 채 쿨쿨 자고 있었다.“하하, 차설아 허세 죽이네!”성도윤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더니 그윽한 눈빛에는 어느새 부드러움이 피어올랐다.그는 맨발로 조심스럽게 여자 옆으로 다가가 허리를 굽혀 가로
이튿날, 차설아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떴다.포근한 침대에 누운 그녀의 이불에서는 편안하고 특별한 냄새가 났다. 바로 성도윤 특유의 향기였다.한 사람을 미치게 사랑하면, 그 사람만의 체취를 맡을 수 있다고 한다. 이 향기는 향수나 다른 무엇이 아닌, 그 사람 영혼의 향기라고 한다.아마도 차설아의 무의식 속에 성도윤은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여전히 그 특유의 향기를 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젠장!”눈을 뜬 차설아는 자신이 아직 성도윤의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정신이 번쩍 들더니 토끼처럼 폴짝 뛰었다.큰 방에 그녀 혼자였고, 성도윤은 이미 떠난 것으로 보인다.“참, 왜 잠들었지?”차설아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빈약한 의지력을 탓했다. 블록을 완성하지도 못하고 쿨쿨 잠을 잤다. 그것도 성도윤의 침대에서.성도윤이 얼마나 자신을 조롱하고 모욕했을지 눈에 선했다.이제 칠색 유리병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성도윤이 그녀를 비웃을 기회까지 주었으니, 그녀는 정말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차설아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옷을 후딱 챙겨입고 침대에서 내려왔다.그리고, 유리 진열장에 완성된 X3 비행선이 있는 것을 보고 눈알이 빠질 정도로 놀랐다.“헐, 이걸 완성했다고? 그 자식 마법이라도 부린 거야? 너무 대단한데?”분명 그녀는 어제 3분의 1도 못 채우고, 나머지 3분의 2는 널려 있는 블록 조각들이라 혼자서는 완성할 수 없는 양이었다.그리고, 성도윤은 일찍 잔다고 먼저 샤워를 했었다. 설마 자다가 깨어나서 한밤중에 완성했을까?하지만, 그는 그럴 이유가 없다.밤새도록 블록을 쌓으면 자기 몸이 상할 뿐만 아니라 차설아의 요구도 만족시키는 것이 되니, 성도윤에게는 전혀 이득이 없었다.어쨌든, 블록을 완성했으니 성도윤은 약속대로 칠색 유리병을 그녀에게 주어야 했다. 사내로서 뱉은 말은 꼭 지켜야 하니 말이다.이렇게 생각한 차설아는 갑자기 낯가죽이 두꺼워지기 시작했다.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남자에게 약속대로
차설아는 애써 해명했다.“할아버지, 사실 어젯밤...”“설명할 필요 없어. 부끄러워하지도 마. 젊은 사람들끼리 무슨 일이 일어나든 모두 정상이지. 나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니다. 다 이해해.”성주혁은 목청을 가다듬더니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 녀석이 이제야 철이 들었는지, 오늘 아침에 내려와서 특별히 나에게 부탁하더구나. 어젯밤에 네가 많이 피곤했으니 잘 쉬어야 한다고, 절대 널 방해하지 말고 푹 자게 내버려 두라고 했어.”차설아는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할아버지, 오해하셨어요. 어제 저랑 도윤 씨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그저...”“젊은 남녀가 한 침대에 누워 아무 일도 없었다고? 밤새도록?”“그건... 도윤 씨는 침대에 누워있지 않고 아마 블록을 쌓았을 거예요. 그래서 저희는...”차설아가 설명하면 할수록 두 사람의 사이가 더 의심스러워보였다.“괜찮아. 난 이해한다.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니까. 이제 그만 할 때도 됐지!”성주혁은 긴 한숨을 내쉬며 차설아의 어깨를 툭툭 치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할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차설아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너처럼 똑똑한 애가 내 뜻을 모른다고?”성주혁은 고개를 흔들더니 늙은 얼굴에는 안쓰러움이 가득했다.“설아야, 우리 도윤이가 확실히 잘못했고, 너에게 상처를 줬어. 하지만 도윤이도 너 때문에 괴로웠어. 요 몇 년 동안 그 녀석 아마 충분히 힘들었을 거야. 네 화풀이는 이제 끝났으니 고집 피우지 말고 둘이 잘살아봐.”“어젯밤에 내 손자가 처음으로 아주 괴롭다고 자기 속마음을 털어놓더구나. 최선을 다해 너를 붙잡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이야. 할아버지로서 그런 도윤이를 보고 있는 내 심정도 편치만은 않아. 네가 아직도 우리 도윤이에게 마음이 남았다는 걸 안다. 그래서 말인데... 이 할아버지 말 한 번만 들어. 이제 그만해. 그렇게 모질게 밀어내다간 앞으로 또 후회하게 될 거야.”그의 말을 들은 차설
차설아는 칠색 유리병을 들고 착잡한 심정으로 성씨 저택을 떠났다.그녀는 전화로 조인성과 약속을 잡았다. 최대한 빨리 차씨 저택의 일이 해결하고 싶었다.두 사람은 경치가 수려한 안양 리조트에서 만났다.조인성의 옆에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묘령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설아 씨 능력 있네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절세의 보물 칠색 유리병을 이렇게 빨리 손에 넣다니. 역시 나 조인성의 절친답게 능력자예요!”차설아는 칠색 유리병을 아름다운 상자에 담아 계속 품에 안은 채 웃으며 말했다.“별말씀을요. 단지 문물일 뿐, 대체품도 널렸고, 사람을 불로장생시킬 수 있는 약도 아닌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 필요가 있을까요?”조인성은 말없이 웃더니 차설아 품에 안긴 상자를 노려보며 여우처럼 교활한 눈빛을 보냈다.반대로 조인성의 곁에 앉은 묘령의 여자는 경멸하며 차설아를 비웃기 시작했다.“뭘 몰라도 한참 모르시네요. 칠색 유리병의 가치는 불로장생 약보다 얼마나 높은지 몰라요. 이 보물은 모든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악의 기운과 재난도 피할 수 있죠!”“매일 칠색 유리병에 탕약을 담아 마시면 정신이 맑아지고 무병장수할 수 있다는 전설이 있죠. 당시 성씨 가문이 성심 전당포에서 이 물건을 빼앗아 둘째 도련님의 목숨을 구하려고 가문이 하마터면...”“닥쳐!”차설아가 넋을 잃고 듣던 중, 조인성이 묘령의 여자를 노려보며 말했다.여자는 즉시 고개를 숙이고 감히 한마디도 더 하지 못했다.“성도윤의 목숨을 구한다고요?”차설아는 중요한 정보를 듣고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성씨 가문이 이 문물 하나 때문에 그렇게 큰 소동을 일으켰는지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이건 대체 어떤 물건이죠?”조인성은 능글맞은 웃음을 지었고, 당연히 차설아에게 많은 것을 알려줄 리 없었다.“설아 씨는 물건을 내놓고 저는 땅을 내놓으면 되는 일이죠. 그런 건 상관해서 뭐 해요? 이 물건이 성씨 가문의 명맥과 관계된다고 한들, 성도윤과 이미 이
차설아는 칠색 유리병을 갖고 마음이 싱숭생숭하여 천신 그룹으로 돌아왔다.줄곧 이 물건을 성도윤에게 돌려줄지 고민했다.만약 진짜 그렇게 중요한 물건이라면,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까?앞으로 성도윤을 만나면, 싫은 기색도 내지 못한다면 얼마나 답답할까?‘됐어, 괜히 찜찜하게. 그냥 돌려주자!’천신 그룹의 직원들은 차설아를 보자마자 하나같이 긴장모드로 변했다.“대표님, 왜 오셨어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집에서 푹 쉬셔야죠. 절대 돌아다니면 안 돼요!”“회사에는 저희가 있잖아요.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으니 안심하고 푹 쉬세요.”“아, 대표님,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세요. 여기 아줌마가 방금 청소해서 미끄러워요.”모두 차설아를 걱정하며 안부 인사를 전했다.서윤은 우유를 건네며 친절하게 말했다.“대표님, 목마르세요? 여기 따듯한 우유 좀 드세요. 영양가도 풍부하고 갈증도 해소할 수 있어요.”차설아는 미간을 찌푸리고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다들 왜 이래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주상전하라도 납신 줄 알겠네요.”직원들이 그녀를 좋아하고 숭배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런 식의 애정은 감당하기 어려웠다.“대표님은 주상전하가 아니라 황후마마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하세요.”서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라는 눈빛을 보냈고, 차설아는 더욱 어리둥절했다.그녀는 자신의 의자에 앉아 칠색 유리병이 든 상자를 보며 물건을 돌려줄까 말까 계속 망설였다.갑자기 맞은편에 바로 성대 그룹 본사가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어쩌면 이 각도에서 성도윤의 사무실이 보일지도 모른다.“서윤 씨, 망원경 좀 찾아 주시겠어요?”차설아는 열정이 타올라 비서에게 물었다.“아마 있을 거예요. 제가 사무 직원에게 가져오라고 할게요.”사무 직원은 곧 고배율 망원경을 보내왔다.차설아는 창가에 서서 망원경을 들고 반대편을 탐색했다.성도윤의 사무실은 차설아의 사무실보다 층고가 조금 높았지만 면적이 커서 금방 찾을 수 있었다.“이 녀석, 진짜 일 중독자군. 점
차설아는 마루 창가 앞에 서서 각도를 조절해가며 마치 비밀요원처럼 열심히 남자를 관찰했다.사람마다 정탐하는 취미가 있는데, 그 상대가 성도윤이라면?렌즈 속 성도윤은 꼿꼿이 책상에 앉아 계약서 검토에 여념이 없었다. 입체적인 옆모습은 지나치게 우월하고 완벽해 마치 화보 모델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쳇, 계속 진지한 척한다고? 너도 사람인데 설마 하품도 안 하고 콧구멍도 안 파겠어?”여자는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는 듯, 마루 창가 앞에 서서 성도윤의 망가진 모습을 포착하려고 기다렸다.잠시 후, 성도윤은 전화 한 통을 받고 천천히 일어나더니, 커피 한 잔을 들고 창가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젠장!”차설아는 도둑질이라도 한 듯 마음이 켕겼다.워낙 자기애가 강한 사람인데, 만약 차설아가 망원경으로 자신을 훔쳐본 것을 알게 된다면 백 마디 말로도 설명할 길이 없게 된다.남자가 이미 걸음을 옮겼을 거라고 짐작한 차설아는 다시 고개를 내밀고 조심스럽게 남자의 모습을 찾았다.“응? 어디 갔지? 왜 갑자기 사라졌어?”차설아는 망원경을 집어 들고는 까치발을 했다가, 허리를 굽혔다가 하며 남자의 모습을 찾으려고 애썼다.“뭐 보는 거야?”뒤에서 나지막한 소리가 들려왔다.“당연히 성변태 보는 거지!”차설아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그녀는 계속 망원경을 들고 까치발을 하며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맞은편 성도윤의 사무실을 보며 유치하게 말했다.“혼자 있을 때 코를 파는지 확인해야겠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흐트러지는 모습도 있어야 하잖아? 아니면 사는 게 얼마나 피곤해?”“그렇게 궁금하면 내 앞에서, 가까이 보도록 허락하지.”남자의 나지막하고 탄식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차설아는 그제야 이상함을 감지하고 홱 돌아섰다.성도윤이 긴 다리를 포개고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그녀의 의자에 기대어 웃는 듯 마는 듯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망원경이 탁하고 땅에 떨어졌고, 차설아는 고개를 숙이고 죽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어디 쥐구멍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