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비록 냉혹하고 인정머리 없지만, 어른들, 특히 어릴 때부터 그를 가장 아끼는 할아버지를 대할 때만큼은 항상 온화하고 인내심이 강했다."형제는 무슨. 남여사이에 오랫동안 함께 있으면 정말 결백하다고 해도 밖에서 듣기 거북할 거야, 그래서 허 영감이 이번에는 조급해하면서, 매일 나에게 말을 하라고 재촉하고 있어.”성 어르신도 마음이 급했다. 손주 놈의 자식은 설아를 다시 잡을 생각도 않고 새로운 감정을 시작하지도 않고, 설마 평생 이대로 외톨이가 되겠다는 거야?그러면 성가는 정말 대를 이을 사람이 없었다!"정말 그냥 형제예요. 우리 사이에 다른 감정이 있었다면 진작 만났겠죠. 저는 은아도 저에게 남녀 간의 정은 없다고 믿어요. 함부로 참견하지 마세요.”성도윤은 다소 피곤한 듯 조용히 말하며 목욕을 하고 푹 자려고 했다.하지만 그의 시선이 갑자기 책상 위의 피규어들에게로 가더니 짙은 눈썹을 살짝 틀었다.그는 예리하게 육비의 위치가 이전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챘다. 누군가가 건드린 것이 분명했다.우선 하인을 제외할 수 있었다.그의 방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으며, 하인이 청소할 필요도 없었다. 그가 정기적으로 청소했기 때문이다.둘째, 할아버지 또한 제외할 수 있었다.영감은 자기 방이 제일 꼴불견이라며 방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기 때문이다.마지막으로, 부모님도 배제했다.이 두 사람은 그가 '기사회생'하고 성대 그룹을 다시 통제한 이후로는 그를 완전히 내버려 두고 지금은 유럽에서 휴가를 보내느라 바쁘기에 그의 방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그러면 누가... 감히 성가의 본가, 그것도 그의 방에 침입할 수 있었을까?성가의 본가는 항상 보안이 철저해서, 보통 재물을 구하는 도둑은 전혀 침입할 수 없고, 감히 침입할 배짱도 없을 것이었다.따라서 성도윤은 침입자가 돈을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었다.설마 목숨을 해치려 온 건가?그의 표정이 순간 심각해졌다."할아버지, 시간이 늦었으니 먼저 주무세요.”성도윤은 먼
차설아는 각종 레고 블록 장식이 들어 있는 그 유리 진열장은 거울이 특수해서 정면은 반사되지 않지만 옆면은 반사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공교롭게도 성도윤이 서 있는 위치가 바로 옆이라 시선을 조금만 낮춰도 침대 밑의 차설아를 훤히 볼 수 있었다.성도윤은 침대 밑에 엎드려 있는 것이 차설아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갑자기 기운이 솟았다.그의 싸늘한 입가에 자신도 모르게 약간의 미소가 번졌다.이 여자, 만약 내 짐작이 맞다면 '칠색 유리병'을 훔치러 온 것이겠지, 정말 간단하고 폭력적이군.성도윤은 짙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이 여인을 놀리기로 했다.그는 소파에 앉았다. 늘씬한 다리를 포개어 우아하고 고귀했다.그는 긴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고는 어쩔 수 없다는 느낌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성 어르신을 향해 가여운 척을 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제가 언제 설아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습니까, 할아버지는 설아를 몰라요, 할아버지가 알고 있는 것처럼 부드럽고 순한 사람이 아니에요. 제 마음은 이미 상처투성이가 되었다고요.”???"그런 일이 있었어?”성 어르신은 엄숙한 표정을 드러냈다."그 아이가 너를 괴롭혀?”성도윤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 깊은 눈시울은 심지어 약간 붉어졌다. 그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말했다."설아에게 속은 거에요.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욕하고 싶으면 욕하고, 나에게 와인을 뿌리지 않으면 커피를 뿌리고, 단지 제가 설아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싶지 않아 혼자 묵묵히 견디고 있었던 거라고요.”"뭐, 와인과 커피를 쏟다니, 진짜야?”성 어르신은 미간을 찌푸리고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 앞에서 하얀 토끼처럼 얌전하고 부드러운 말투의 차설아가 와인이나 커피를 사람한테 뿌리는 모습은 상상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 제가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는 걸 아시잖아요,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보세요, 지금 바로 전화해서 물어보세요.”성도윤이 제안했다.전화?!차설아는 얼른 핸드폰 전원 버튼을 눌렀다.만약 이때, 성 할아버지가 그녀
"어째서 그만둬, 네놈이 나를 속이고 우리 설아를 모독할 줄 알았어!”"그건 아니에요.”성도윤은 계속해서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이제야 생각났는데, 설아가 저를 블랙리스트에 넣었어요. 보세요, 저에게 와인 커피를 뿌렸을 뿐만 아니라 제 연락처도 지웠어요... 제가 아무리 마음이 강해도 슬프고 상처받는다고요.”그녀는 진작에 그를 차단했다, 따라서 그는 그녀의 전화를 걸 수 없었다.차설아는 한숨 돌렸지만 그의 말에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구르고 싶었다.빌어먹을 녀석.'나를 냉혈하게 말하고는 자신은 무고한 척. 내가 왜 자기를 괴롭히고, 왜 와인과 커피를 뿌렸는지는 왜 안 말한대?'"노력해봤자...”"할아버지, 저 정말 너무 아프고 피곤해요, 어쩔 수 없어요.”성 어르신은 평생 똑똑하셨지만, 더 똑똑한 손자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속아 넘어갔다.노인은 긴 한숨을 내쉬며 성도윤의 어깨를 툭툭 치며 위로했다."너도 너무 괴로워하지 마, 여자의 마음은 확실히 파악하기 어렵지만, 네가 노력했다면 할아버지도 너를 탓하지 않을 거야, 내가 시간을 내서 그 아이를 잘 타이르고, 다시는 이렇게 너를 다치게 할 수 없도록 할게....”차설아는 주먹을 쥐고 이를 악물고 바닥을 두드렸다. 화가 나서 터질 것 같았다.'할아버지, 제가 언제 성도윤을 괴롭혔다고요, 여우처럼 교활하고 빙산처럼 냉혹한 손자를 제가 어떻게 괴롭혀요?'차설아는 몰래 빠져나간 후 반드시 가장 먼저 성 할아버지에게 진실을 알리고 성도윤의 가면을 벗기기로 했다.마침내 성 어르신이 성도윤의 방을 나가셨고, 공기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차설아는 숨을 죽이고 꼼짝도 하지 못했는데 오히려 전보다 더 떨렸다.그녀는 성도윤의 발을 날카롭게 쳐다보며 시시각각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빠져나올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하지만 성도윤은 마치 일부러 그를 괴롭히는 것처럼, 때때로 침대 곁을 지나다녔고, 매번 그녀가 놀라 심장병이 도지려고 할 때마다 그는 또 적절하게 멀리 갔다.차츰 차설아의 인내심이 바닥났
누구한테서 전화가 온 거지? 뭘 갖고 온다는 거야?차설아는 침대 밑에 있어서 잘 들리지 않았다.하지만 분명한 건, 그녀는 당분간 빠져나갈 수 없다는 거다.'참... 오늘 밤 침대 밑에 갇히는 건 아니겠지?'차설아는 미칠 지경이었다.약 10분 후, 허은아가 성도윤의 침실 문을 쾅쾅 두드렸다."벌써 왔어?”성도윤이 문을 여는 순간 차설아는 퍽 의외였다."그럼!”허은아가 해맑게 웃으며, 성도윤에게 달려들어 목을 껴안고는 고개를 쳐들며 말했다."사실 본가에 도착해서 너한테 연락한 거야. 네가 본가에 있을 거로 생각했거든. 역시나 여기 있었네.”성도윤은 허은아와의 이런 스킨쉽에 익숙했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느꼈다.그는 여자를 안고 그녀의 정교한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주무르며 물었다."한밤중에 나한테 오면서 헤어스타일도 따로 하고, 솔직히 말해봐. 또 무슨 꿍꿍이야?”허은아는 얼굴에 엷은 홍조를 띠더니 대답했다."뭐야, 난 타고난 미모라고, 솔직히 말해. 나한테 반한 건 아니고?”"아휴, 들켰네, 난 벌써 너한테 빠져서 헤어나올 수가 없어!”성도윤은 팔짱을 낀 채 농담처럼 말했다.그들 무리는 일이 있든 없든 이렇게 허은아를 놀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실제로는 허은아를 여자로 여기지 않고 줄곧 거친 남자로 대했다.하지만 차설아의 시선으로 바라본 두 사람은 다리를 가까이 대고 계속 껴안고 있었고 말도 이처럼 오글거리게 하는 걸 보니 역시 보통 사이가 아닌 것으로 보였다.허은아는 성도윤이 장난을 치는 것을 알고도, 여전히 마음이 설레어 입꼬리는 걷잡을 수 없이 치켜 올랐다."네가 말을 제일 예쁘게 잘하네, 역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생이야.“"내가 오늘 준비한 선물은 분명 네 마음에 들 거라고 생각해.”그녀는 자신만만하게 말하고는 손바닥을 쳐서 문밖의 두 하인을 향해 말했다."들고 들어오세요.“두 하인은 명령을 받고 커다란 선물을 들고 조심스럽게 성도윤의 방으로 들어왔다."이게 뭐야?”성도윤도 궁금했다.“뜯어봐.”허은아는 성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성도윤이 블록을 조립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이런 것에 주의를 기울였고, 특히 귀한 것을 보면 즉시 사서 그에게 선물했다.물론 '좋은 형제'라는 명의로.성도윤이 사내아이처럼 선물을 뜯는 것을 볼 때마다, 그녀는 매우 특별한 성취감을 느꼈다!유리 진열장에 놓인 우주선 X2호도 그녀가 사준 것이었다.성도윤의 침실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여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자신이 그의 마음속에 분명 어떤 자리가 있으리라 생각했고 이로 인해 그녀의 사랑은 점점 더 깊어졌다.무려 수만 개가 넘는 블록을 꺼내 바닥에 아빠 다리를 하고 앉은 성도윤은 이미 조립하고 싶어 기대만발이었다.허은아도 따라 앉더니 성도윤을 뒤에서 껴안고 남자의 어깨에 턱을 대고 애교스러운 말투로 장난을 치며 말했다."선물을 이렇게 좋아하니 나한테 뭔가 상을 줘야 하는 것 아니야?”성도윤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줄게.”"나는 너를 원하는데?”허은아는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떠보았다.얼굴을 찡그렸던 성도윤은 여자를 돌아보며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를 만졌다.”너 어디 아파?”"하하하, 걱정 마, 넌 나한테 그냥 동생이야. 집에서 하도 닦달을 하니까 너한테 도움 좀 받으려고 했지.”허은아는 여전히 자신의 마음을 까발리지 못하고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구체적으로는?”그러자 성도윤은 별생각 없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봐봐, 난 아직 시집도 안 갔고, 너도 장가를 안 갔고. 그리고 어려서부터 같이 자랐고 서로 집안 형편도 알고... 뭐 그러니까 우리 둘이라도 같이...”허은아는, 마치 웅장하고 원대한 상업 프로젝트를 말하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말했다.침대 쪽을 향해 길고 날씬한 손가락이 콩알만 한 블록을 닥치는 대로 조립하는 성도윤이였다. 침대 밑의 차설아가 이 제안을 듣고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성도윤은 허은아를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말했다.
결혼에 대해 허은아는 성도윤의 마음을 떠보려 했을 뿐이었다.그런데 성도윤이 이 제안을 받아들일 줄이야...이것은 허은아에게 있어서는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만약 네가 나와 결혼하고 싶다면, 앞으로 허씨 집안도 너에게 맡길게. 어쨌든 나도 사업에 대해서 전혀 모르니까. 너한테 맡기면 나도 안심이야!"허은아는 이미 그녀와 성도윤의 아름다운 결혼 후 생활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남자의 팔을 잡고는 고개를 들어 반짝이는 수정 샹들리에를 바라보며 말했다. "서구에 단독주택을 사고 장식은 모두 우리의 뜻에 따라 하자. 너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블록을 좋아하니까 특별히 방을 남겨두자. 내가 전 세계에서 가장 희귀하고 조립하기 어려운 블록들을 다 사줄게.”"어쨌든 안심해. 나랑 결혼하면 분명 전처와는 느낌이 다를 거야. 난 우리의 삶을 다채롭게 만들 거야, 전처처럼 차갑고 딱딱한 사람이 아니니까, 지루하고 고지식해서 너를 결혼에 싫증 나게 하지 않을 거야.”예전에도 성도윤이 차설아와 이혼하지 않았을 때, 그들 무리는 그의 무미건조한 결혼을 놀리곤 했다.허은아는 당시 성도윤이 정말 결혼에, 그의 단아하고 정숙한 아내에게 싫증이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래서 그녀는 성도윤이 다시 결혼에 골인하기 위해서는 결혼의 재미를 느끼게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확실히, 내 전 아내는 조금 차가웠지. 그때 결혼생활을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성도윤은 여기까지 말하고는 멈칫했다."뭔데?"허은아는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이와 동시에 차설아도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 남자의 입에서 그들의 끔찍한 결혼생활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듣고 싶어 했다.성도윤은 대답했다."아무것도 아니야.”허은아는 조금 실망하여 얼굴을 찡그리며 불쾌함을 표시했다."뭐야. 그럼 말해 봐, 너는 너의 전처와의 결혼생활을 아직도 그리워하고 있는 거야? 만약 너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면 그녀와 또 결혼할 거야?”차설아가 성도윤의 마음에 얼마나 큰 자리를
그녀는 온몸이 굳어 있었다. 땀이 이마를 따라 땅에 떨어지며 숨을 쉴 수가 없었다.이번에는 진짜 망했네.그녀는 오히려 성도윤이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창피한 것이 더 두려웠다.맨날 그를 변태라고 욕하다가 침대 밑에 가만히 엎드려 있는 자기가 더 변태 아니냐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에잇, 블록이 떨어졌잖아.”허은아는 성도윤의 블록이 침대 밑에 떨어진 것을 발견했고 일어나서 블록을 주워 오려고 했다. "조심해, 이 장난감은 하나도 모자라면 안 된다고 내가 정말 큰 노력을 들여서, 갖고 온건데. 난... 으악!”그녀는 머리를 땅에 대고 블록이 어디로 굴러갔는지 보려고 하다가 침대 밑의 처설아를 한눈에 보고 혼이 다 빠져나가 목청을 돋우어 '와와' 소리를 질렀다."너 침대 밑에...”허은아는 창백한 얼굴로 성도윤을 바라보며 차설아를 가리키면서 더듬더듬 말을 잇지 못했다.성도윤은 우뚝 서서 말했다."이제 나와, 그렇게 오래 있었으니 힘들지 않아?”차설아는 놀랍고 굴욕감도 밀려왔다.성도윤 그녀가 침대 밑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모른 체하고 있었던 것이다.지금, 이 순간 그녀는 완전한 웃음거리가 되어버렸다."뭐야, 침대 밑에 누가 있는지 알아?”허은아는 마침내 정신을 차렸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성도윤을 바라보며 말했다."너희 두 사람, 뭐 하고 노는 거야?”차설아는 주먹을 불끈 쥐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침대 밑을 조금씩 기어 나왔다.존엄 따위는 이미 짓밟혔다."실례합니다.”차설아는 머리를 다듬고 어색한 듯 방을 나가려고 했다."그냥 나가려고?”성도윤은 여인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내가 알기로 주거침입죄는 형사범죄이고 형량이 작지 않을 건데.“허은아는 마침내 어떻게 된 일인지 눈치를 채고는 큰소리로 차설아를 향해 소리쳤다. "당신은 도윤이의 방에 몰래 침입한 것이군요, 변태예요? 내가 도윤이에게 말한 것 모두 엿 들은 거 아녜요? 도대체 무슨 목적이죠?“차설아는 입술을 깨물고 참
차설아는 겁내지 않고 OK 손짓을 했다.“마음대로 하세요.”“너!”허은아는 도리어 어찌할 바를 몰라 성도윤을 끌어당겨 원망했다. "이 여자 좀 봐, 자기가 불미스러운 일을 저지르고도 사과 한마디 없이, 이 세상에 어찌 이렇게 뻔뻔한 사람이 있을 수 있어?”성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이 매우 진지했다. "네 말이 맞아. 이런 뻔뻔한 사람은 절대 용서할 수 없지. 그러니까... 먼저 집에 가, 내가 잘 처벌할게.”"뭐... 뭐라고?”허은아는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자신이 차설아를 엄벌하겠다고 소란을 피우다가, 결국 성도윤이 제일 먼저 그녀를 내보내다니... 이는 그녀가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는 것처럼 보였다."너도 알다시피 설아는 내 전 부인이고 내 침실에 잠입한 것은 나를 잊지 못해서고, 이렇게 특별한 방식으로 내 마음을 되돌리려고 하는 거야...”성도윤은 차설아 바라보며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의 개인적인 일이니 남들 없이 우리 혼자 해결하는게 더 적합해.”“남?”허은아의 표정은 억제할 수 없이 약간 굳어 있었다.이 한 글자는 마치 그녀의 뺨을 때리는 것과 같았다.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빠르게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었다. 일부러 성도윤의 어깨를 툭툭 치며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정말 사랑꾼이네. 아까까지만 해도 형제라고 하더니 이젠 남이야?“"됐어, 설아 씨가 이렇게까지 하는 데 나도 감동했어. 그냥 설아 씨랑 잘 해봐.”차설아는 이 말을 듣고 있자니 유난히 불편했다.분명히 성도윤을 싫어하고 죽을 만큼 싫어했는데 결국 그들의 입에서 그녀는 그에게 끈질기게 달라붙는 변태가 되었다.이 분노를 그녀가 어떻게 참을 수 있을까?"성도윤, 그만해. 내가 왜 네 침대 밑에 들어갔는지 정말 몰라?”성도윤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나 못 잊었으면 솔직하게 말해. 숨길 필요 없어.”“웃기고 있네. 내가 널 왜 못 잊어?”차설아는 화가 나서 욕설을 퍼부었다.그녀는
박서영의 망설임을 보아낸 성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왜, 불편해?”“아니요, 불편한 게 아니라... 그분을 꼭 만날 필요가 있을까요?”박서영은 원래 대충 아무 핑계나 대서 거절하려고 했지만 그녀가 아는 성진이라면 단칼에 거절하는 자신을 이상하게 여겨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것 같아 거절 대신 저런 질문을 한 것이다.“당연히 봐야지.”“만약 그 사람이 정말 나한테 눈을 기증해준 사람이라면 나 대신 어두운 여생을 살아가게 될 텐데, 나한테 새로운 삶을 선사해준 그런 은인을 찾아보지 않는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자리 마련할게요...”주먹을 꼭 쥐고 말하는 성진의 의지가 강해 보이기도 했고 또 괜히 그에게 의심을 사고 싶지도 않아 박서영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차설아와의 만남은 없을수록 좋겠지만 그래도 수술 전이니 별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내일 오전 열 시에 별장으로 모셔올 테니까 두 분 얘기 나누세요.”“그래, 수고했어.”처음으로 박서영을 대놓고 칭찬한 성진은 밤바람을 느끼며 내일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달을 향해 고개를 든 그가 깊은숨을 들이마시자 몸속에 갇혀있던 영혼이 움찔거리며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이 아름다운 별빛도 얼마 안 있으면 보겠네.”성진을 방으로 데려다준 박서영은 곧바로 지하실로 향했다.차설아는 그곳에 놓인 하얀 침대 위에 가만히 누워있었는데 하반신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서도 표정만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수술을 받아야 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장기를 내어주기만을 기다리는 보관창고 같은 모습이었다.“아까 도련님이랑 달구경 좀 했어요. 3일 뒤에 수술하는 거 도련님도 동의하셨어요. 하지만 기증자가 차설아 씨라는 말은 못 했어요.”박서영의 말에 눈을 뜬 차설아가 천장을 보고 웃으며 담담히 답했다.“당연히 말 못 하겠죠. 그 사람이 알면 안 받으려고 할 게 분명하니까요. 그런 사람이니까 그때도 나 위해서 자기 눈을 성도윤한테 내어줬겠죠.”“그러게요.
“하느님도 도련님의 억울함을 느꼈나 보죠.”“기증자는 어떤 사람인데? 남자야? 여자야? 성씨 가문의 사람이야?”성진은 기쁘긴 했지만, 생각은 꽤 신중했다.세상에 공짜가 있다는 말을 믿지 않는 그는 진실부터 파헤쳐 보기로 했다.“그게...”박서영은 성진이 기증자에 이렇게 관심을 가질 줄 예상하지 못했는지 손톱을 뜯으면서 아무렇지않게 말했다.“여대생인데 집안에 돈이 부족해서 저희 모집 정보를 보고 건강 검진 결과를 보내왔더라고요. 그러다 우연히 매우 적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만약 눈을 기증한 사람이 바로 그가 목숨을 걸고 지키고 있는 차설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무조건 수술을 반대할 것이고, 심지어 크게 화를 낼지도 몰랐다.“아, 가난한 여대생이라...”성진은 이에 대해 별로 의심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으니, 누군가는 몸을 팔고, 누군가는 신장을 팔고, 심지어 누군가는 목숨을 팔기도 했다. 한 쌍의 눈으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많은 사람이 시도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만약 그녀가 정말 자발적으로 한 일이라면, 돈을 섭섭지 않게 챙겨드려. 가능하다면 그녀와 가족의 남은 인생을 책임지겠다고 해.”성진이 매우 의리 있게 말했다.그는 비록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보답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이다.“걱정하지 마세요. 반드시 잘 진행될 거예요. 도련님, 수술을 받으실 거예요?”박서영은 일이 이렇게 순조롭게 진행될 줄 몰랐는지 기쁜 마음에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안 받을 이유가 뭐가 있겠어?”성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내 자신을 사랑해. 그리고 누가 괜히 시각장애인이 되고 싶겠어? 만약 정말로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면 복수해서 설아를 내 곁에 단단히 붙잡아 놓을 거야.”“도련님, 시력을 회복하면 첫번째로 하고 싶은 일이 설아 씨를 되찾는 거예요?”“그럼!”성진의 눈빛은 확고해 보였다.“그동안 난 설아에 대한 마음이 더욱 확고해
박서영은 이렇게 슬프고 비관적인 성진을 보며 마음이 아파서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도련님은 그 여자 때문에 너무 많이 변했어요. 예전의 도련님은 이렇게 비관적이지 않았어요...”울먹거리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불만이 섞여 있었다.“그 여자 때문에 이렇게 변한 것이 아니라,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인 거야. 그녀를 만나면서 더욱 나 자신으로 변해버린 거고.”성진은 깊고도 막연한 초점 없는 눈으로, 미소를 지었다. 차설아를 언급할 때마다 표정이 부드러워지면서 행복감을 감출 수 없었다.“아니잖아요!”박서영은 이해되지 않는지 미간을 찌푸렸다.“예전에 도련님께서 말씀하셨잖아요. 이 세상에서 가장 의미 없는 감정은 사람을 얽매이게 하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고요. 분명 그때 성도윤 씨는 도련님을 상대로 패배했잖아요. 도련님이 조금만 더 냉정했더라면 지금 성대 그룹은 도련님이 지배하고 있었을 텐데, 결국엔... 그 여자를 위해서 어떻게 성도윤 씨한테 골수와 눈을 내어줄 수 있어요. 그 사람이 다시 일어설 때까지 저희는 구석에서 세월이나 한탄하면서 보름달을 구경하는 것도 사치가 되어버렸잖아요. 너무 억울해요!”박서영의 말을 듣고 있던 성진은 손가락을 움찔하면서 입을 꾹 다물었다.그렇다. 예전의 그는 사고가 명확하고,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 세상의 모든 사랑에 눈이 멀어있는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이었다. 그저 배부른 나머지 할 일이 없어서, 하루 종일 사랑 때문에 죽지 못해 안달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지금의 자신이 가장 경멸했던 그런 사람 중의 한명이 될 줄 몰랐다.“도련님, 시간이 되돌릴 수 있다면, 그때와 똑같은 선택을 하실 건가요?”박서영은 흔들리는 성진의 모습을 보면서 그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잘 모르겠어.”아주 진솔한 대답이었다.“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 번쯤 사랑에 미친다고 하잖아. 나는 이미 그래봤으니까 또다시 그런 일이 생기면 과연 그런 용기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어. 어쩌면... 완전히 나쁜 사람이 되어버릴지도 몰라.
“그래요. 그러면 이따 올릴 거니까 일단 로그인해 주세요.”’박서영이 핸드폰을 건네면서 차설아더러 자기 SNS 계정에 로그인하라고 했다.핸드폰을 받아쥔 차설아는 매우 협조적으로 SNS 계정에 로그인했다.구조를 요청할 기회는 많았지만 그렇게 할 생각은 없었다.박서영도 차설아가 진심으로 속죄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점차 믿게 되었고, 다소 놀라면서 말했다.“생각보다 자기 눈을 내놓을 만큼 결단력 있는 사람이었군요. 그래서 저희 도련님이 당신을 이렇게 미치도록 사랑했던 거군요. 당신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에요.”“저에게 주는 칭찬이에요?”차설아가 박서영을 쳐다보면서 피식 웃었다.“저는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단지 남에게 빚지는 것을 싫어할 뿐이에요.”“저희 도련님께서 원하는 것이 바로 그거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도련님이 계속 바보 같이 지내는 것을 두고볼수 없어요. 박서영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고통은 결국 도련님만 겪는 거잖아요? 이번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저는 도련님께서 좀 더 냉정해져서 설아 씨를 곁에 뒀으면 좋겠어요. 예전부터 그래왔으니까요. 연애의 신 같은 건 도련님한테 전혀 어울리지 않아요.”박서영은 어릴 적부터 성진 부모의 교육을 받아 성진 한 사람만을 위해 헌신하며, 성진을 위해 무조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녀의 기억 속 성진은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완전히 좋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그중에서 배회하는 사람이었다.이런 사람은 완전히 흑화되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조금이라도 착한 모습을 보이면 끝없는 심연에 빠질 뿐이다.이번에는 박서영이 한눈파는 사이 어리석은 짓을 저지른 것이다. 박서영은 이대로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한때 냉혹하고 교활하며 결단력 있는 성진이 반드시 돌아와야만 했다.차설아는 다소 어두워진 표정으로 박서영에게 물었다.“그동안 성진은 어떻게 지냈나요?”“시각장애인이 뭘 어떻게 지냈겠어요.”박서영은 고개를 저으며
박서영은 그녀를 믿지 못하겠는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정말 기꺼이 두 눈을 내놓을 생각이 있으신가요?”그녀는 세상에 이렇게 바보 같은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분명 무슨 속셈을 꾸미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제가 성진한테 빚진 걸 갚는 거예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관없어요.”차설아가 말했다.“저를 못 믿겠다면 제가 무사하다는 것을 굳이 알릴 필요 없어요. 다만 그때 가서 일이 커지면 알아서 처리하세요.”거짓말할 마음도 없는 차설아는 진심으로 이 일이 잘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었다.항상 성진의 헌신 덕분에 남의 인생을 도둑질한 것처럼 느꼈고, 가끔 즐거울 때도 불안한 마음에 죄책감을 느꼈다.이 기간에 성진에게 연락하지 않았지만, 밤이 깊어질 때마다 그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이 남자가 어떤 어둠 속에 처해있을지, 어떤 절망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을지를 상상했다. 어쩌면 원수의 손에 잡혔을 수도 있고, 어쩌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가능성이 마치 비수처럼 심장에 꽂혀 잠을 이루지도 못하고 고통스럽기만 했다.차설아는 더 이상 이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빚을 한 번에 갚고 싶어 했고, 그렇게 되면 그나마 좀 더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그럼 어떤 방법으로 무사하다고 전할 건데요?”박서영은 차설아를 냉정하게 바라보며 여전히 경계하는 어조로 물었다.“SNS에 올리면 되죠.”차설아가 웃으면서 말했다.“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위험에 처했을 때 SNS를 올릴 마음이 있겠어요? 제가 SNS를 올려버리면 적어도 제가 안전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SNS만 올리게요?”박서영은 나름대로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SNS면 충분해요.”차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차성철도, 배경윤도, 선우 시원도 각자 바빴기 때문에 그녀를 신경쓸 새도 없었다.이럴 때 SNS를 올리면 최소한 무사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좋아요. SNS 올리는 것만은 허락해 줄게요.”박서영이 여러 번 고민
“하하. 성도윤 씨랑 데이트하고, 선우가문의 도련님과 애정 어린 농담을 주고받고, 배씨 가문 도련님과 술 마시는 시간은 있으면서 저희 도련님을 찾을 시간은 없었나 보죠? 저희 도련님을 잊어버릴 정도로 바빴나 봐요.”서영이 흥분한 나머지 차설아의 목을 직접 움켜잡으면서 말했다.“그거 알아요? 당신이 성도윤 씨랑 얽히고설켜 있을 때, 저희 도련님은 좌절감에 스스로 인생을 끝내려고 했어요. 손목에 상처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아무리 칼날을 숨겨봤자 어떻게든 찾더라고요. 그렇게 강하던 사람이 이제는 약해빠져서 더 이상 살 수 없다고요. 알아요?”차설아는 저항하지도 않고 박서영이 자기 목을 조르는 대로 놔두었다. 애처롭게 바라보던 그녀의 두 눈에는 핏줄이 보이기 시작했다.“흥. 절대로 당신이 쉽게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예요.”박서영은 그제야 차설아를 놓아주며 차갑게 말했다.“당신한테 죗값을 치르게 하려고 이 저택으로 데려온 거예요.”“켁! 켁! 켁!”차설아는 잠깐의 질식 때문에 기침하면서 숨을 헐떡이며 박서영에게 물었다.“제가 어떻게 죗값을 치르기를 원해요?”“아주 간단해요. 저희 도련님의 시력을 돌려주면 돼요.”박서영은 앞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그동안 저는 도련님을 위해 거부반응이 없고 잘 맞는 한 쌍의 눈을 찾으려고 노력해 왔지만, 아쉽게도 찾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설아 씨의 건강 검진 데이터를 우연히 얻게 되었는데 아주 특별한 두 눈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마침 저희 도련님한테 빚진 것도 있으니까, 설아 씨의 눈을 저희 도련님의 눈과 바꾸는 거 어렵지 않겠죠?”차설아는 박서영의 최종목적을 듣고 침묵하고 말았다.“제 눈이 정말 성진한테 맞나요?”그때 성도윤이 실명했을 때도 눈을 물색하고 다녔는데 오직 혈연관계가 있는 성진의 눈만 거부반응이 없었다.그때는 성도윤이 빨리 낫기를 바라면서 성진을 신경 쓰지도 못했다.하지만 마음의 빚 때문에 계속 숨이 안 쉬어졌다.만약 자기 눈으로 성진의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면 마음의 위로 때문이라
차설아는 다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커다란 침대에 누워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온통 흰색 인테리어인 낯선 이곳은 영안실에 온 기분이었다.“드디어 깨셨군요, 약효가 너무 강해서 무려 사흘 동안 혼수상태였어요. 이러다 죽어버리는 줄 알았어요...”창가에서 한 여자의 덤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에게는 생과 사가 그저 자거나 깨어난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았다.경계 태세로 창가를 바라보던 차설아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당신이었어요?”그날 밤 병원에서, 몰래 차설아의 병실로 들어간 그녀였다.“저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네요. 영광이에요.”박서영은 창가에 앉아 꽃다발을 정리하고 있었다.그녀의 옆에 놓인 꽃병에는 이제 막 정원에서 따온 해바라기가 꽂혀있었다.박서영은 황금빛으로 만개한 해바라기 줄기를 비스듬히 잘라 하나씩 예쁘게 꽃병에 꽂아 넣었다.“저희 주인님께서는 설아 씨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해바라기라면서 정원에 해바라기를 심으라고 했어요. 이제는 만개했는데 볼 수 없어서 너무 아쉬워요. 마치 다른 사람한테 보이지 않는 주인님의 마음처럼 말이에요.”이때 박서영은 눈빛이 차가워지면서 꽃가지를 단단히 잘라버렸다.“주인님이라 하면 성진을 말씀하시는 거예요?”차설아는 사고가 날카로운 사람이라 바로 상대방을 추측해 냈다.그녀의 기억 속에서 일편단심이면서 실명한 사람은 성진뿐이었다.“도련님을 아직 기억하고 계셔서 다행이네요. 도련님 정성이 헛되지 않았네요.”박서영은 차설아가 성진을 아직 기억하고 있어 그나마 그녀를 향한 증오가 줄어드는 듯했다.“정말 성진이에요?”차설아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려 했지만, 온몸이 무기력해 마치 마비된 것처럼 전혀 힘을 쓸 수 없었다.차설아는 미간을 찌푸린 채 박서영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저한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예요?”“걱정하지 마세요. 그저 마취제 때문에 잠깐 의식을 잃고 침대에 누워있었을 뿐이니까요.”차설아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마에 식은땀을 흘렸다. 아무리 일어나고 싶어
진찬영은 배경윤에게 핸드폰을 건네면서 이 둘의 말다툼을 중단시켰다.“고마워요. 찬영 오빠는 역시 최고예요.”배경윤은 배시시 웃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 차설아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정말 제가 좋다면 이제는 찬영 오빠라고 부르지 마요...”진찬영은 갑자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찬영 씨라고 불러요.”“아, 그게...”배경윤은 진찬영의 갑작스러운 감정변화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심지어 조금 화가 난 것 같았다.“찬영 오빠는 팬분들이 불러주는 호칭인데 저희는 그런 사이가 아니니 이제부터는 찬영 씨라고 부르는 거 어때요?”“알았어요. 찬영 씨...”호칭을 바꿔 부른 배경윤은 얼굴이 발그레해졌다.‘왜 이렇게 부끄럽지?’역시 호칭은 알게모르게 두 사람이 얼마나 가까운지 설명할 수 있었다.찬영 오빠라고 부를 때에는 팬이 연예인에 대한 애정으로 별로 부끄럽지 않았는데 찬영 씨라고 부르니 확 부끄러워지는 느낌이었다.옆에 있던 사도현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지금 저를 투명 인간 취급하는 거예요?”지금 사도현이 비꼬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다 느낄수 있었다.“너랑 무슨 상관이야. 보기 싫으면 나가든가.”배경윤의 말을 비수처럼 심장에 박혔고, 사도현의 체면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흥! 누가 설아에 대해 나쁜 말을 하라고 했어?’배경윤은 차설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계속해서 무응답 상태였다. 반복해서 네다섯 번을 걸었지만, 여전히 아무도 받지 않았다.“무슨 일이지?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지? 뭔가 잘못됐어.”비경윤은 불안한 예감에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지금쯤 병원에 있어야 하는 설아는 원래 지루한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언제나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는데, 왜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 걸까? 분명 무슨 일이 있어!’배경윤이 이불을 걷어차고 침대에서 일어나려 한다.“제발 가만히 있어!”사도현이 다시 그녀를 침대에 눕히면서 말했다.“설아가 어린애야? 실력도 좋은데 무슨 일이 있겠어. 다른 사람을 건드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두세 시간 뒤에요.”진찬영이 대답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모든 독소를 제거하려면 세 시간 후에 전신 마취를 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 물을 마시면 안 돼요.”“아직 시간이 많네요...”배경윤이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했다.“제 핸드폰은 어디 있어요? 설아에게 안부를 전해야 하거든요.”사도현이 배경윤을 다시 침대에 눕히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지금이 어떤 때인데, 너나 잘 챙겨. 설아를 챙기는 사람은 많고도 많아.”“누군데? 설마 너의 그 쓰레기 같은 친구 성도윤은 아니지?”배경윤이 무례하게 반박했다.“난 그 자식이 방해할까 봐 걱정돼서 설아랑 계속 연락하려고 하는 거야.”사도현은 무심코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도윤이 형이 대체 너한테 뭘 잘못했다고 그래?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야. 그 두 사람은 딱봐도 재능과 미모를 갖춘 천생연분인데, 그냥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었을 뿐이잖아. 우리 도윤이 형을 바람둥이라고 단정 짓지는 말지?”“그 사람이 바람둥이 아니면 누가 바람둥이인데!”배경윤은 격렬하게 반응하면서 침대에서 일어나 사도현과 따지려고 했다.“혼인 중에 바람을 피우고, 다른 여자를 임신시키고, 겨우 설아 마음을 되돌리더니 또 다른 재벌 딸과 약혼하고. 이게 바람둥이가 아니면 뭔데?”“설아도 너의 오빠랑 그렇고 그런 사이였잖아. 요즘에는 선우 가문 도련님과도 뜨겁게 보내더니. 그리고 도윤이 형은 왜 이렇게 되었는데! 어떻게 실명하고 기억을 잃게 되었는지 설아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거야?”“그건 그냥 사고일 뿐인데 설아랑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러는 거야. 원망할 거면 하느님을 원망해. 누가 그런 악행을 많이 저지르라고 했어. 하느님도 노해서 가만두지 않은 거지.”“배경윤,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나한테 막말은 해도 도윤이 형한테는 그러면 안 되지.”“내가 뭘 어쨌다고? 너도 방금 우리 설아한테 뭐라고 했잖아!”두 사람은 마치 싸움닭처럼 감정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이것은 두 사람이 계속 다투게 되는 주제라